망망한 바다와 늘 푸른 봉우리
내 주 하나님 능력과 내 주 하나님 영광을 잘 드러내는도다


하늘을 울리는 소리 하늘의 빛난 별
봄바람에서 주를 느끼네
주의 놀라운 손으로 지으신 모든 만물
우리에게 주신 선물이라
놀라운 주 이름 아름다운 음성
위대하신 주님 만왕의 왕이라
크신 주님 은혜 영광의 주 사랑
주는 여호와 만왕이 되신 주


넓은 바다의 힘 안에 우아한 눈꽃 속에
여명의 아침에 주 사랑 있네
풍성한 가을의 곡식 나의 친구 되신 주
우리에게 주신 선물이라
놀라운 주 이름 아름다운 음성
위대하신 주님 만왕의 왕이라
크신 주님 은혜 영광의 주 사랑
주는 여호와 만왕이 되신 주
창조주를 찬양하리 주의 능력 높여 찬양
나의 구세주를 찬양 나의 찬양이신 주
놀라운 주 이름 아름다운 음성
위대하신 주님 만왕의 왕이라
크신 주님 은혜 영광의 주 사랑
주는 여호와 만왕이 되신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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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입니다. Spring입니다.
spring은 용수철처럼 튀어 나온다는 의미도 있어 싹트고 움돋음을 뜻하기도 하지만, 샘이 솟아난다는 의미도 있죠.

저도 말씀을 읽다가 감동이 되는 구절이 있어서,
특히 이 봄을 지나 여름이 되어가는 시점에 감동이 커서,
공유 드립니다.

For as the earth bringeth forth her bud,
and as the garden causeth the things that are sown in it to spring forth;
so the Lord GOD will cause righteousness and praise to spring forth before all the nations.

땅이 싹을 내며
동산이 거기 뿌린 것을 움돋게 함 같이
주 여호와께서 공의와 찬송을 모든 나라 앞에 솟아나게 하시리라

이사야서 61:11 입니다.
정말 이 봄에 문학적으로 아름다운 표현이고 하나님을 찬양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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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이라말할때

이승철은 '안녕이라고 말 하지 마~~'라고 노래하지만,
우리에게는 안녕이라고 말해야 할 때가 있다.

기왕 이른 아침에 바닷가에 있을 예정이면
억지로 아직 어두울 때 일어나 일출을 보곤한다.
바닷가나 어느 교외에 있다가
어차피 캄캄한 밤이 되어야 서울에 도착할 것 같으면
일부러 눌러 앉아 일몰을 보곤 한다.

해돋이와 해넘이의 두 장면은 무척 다르면서도 닮아 있다.
오랜 기다림 속에 갑자기 중천으로 떠오르는 일출의 해는
오랜 물들임 속에 갑자기 바다 너머로 사라지는 일몰의 해와 닮았다.
그러나
해가 떠오르기 전에도 이미 여명은 밝고
해가 넘어간 후에도 상당 시간 세상은 훤하다.

마치 처음 만날 때 우리가 '안녕?'하고 인사하고 또
헤어질 때 우리가 '안녕~!'하고 인사하는 것처럼,
모든 일의 시작과 끝은 그렇게 이어지고 닮은 것은 아닐까?

우리가 오늘 나누는 안녕은 관계의 시작인가, 함께 보낸 시간에의 작별인가...
그 기쁨은 미래에 대한 기대와 우려가 함께 섞이고,
그 서운함은 지내온 시간에 대한 감사와 회한이 함께 섞이게 된다.

조카를 쏙 빼닮은 손자의 탄생을 기뻐하며 동시에 부모님의 노쇠함을 슬퍼하는 오후에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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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그 영광의 아침, 하늘 문이 활짝 열렸듯

(눅24:25~35 김운용 교수)


1. 지난 고난 주간 동안에 가까운 지인의 장례를 집례했다.

* 고인 자신의 부탁으로 인한 것이었다.

* 그 분의 임종을 지켰다. 마지막 생명줄을 붙잡고 버티었으나 부인의 위로와 소망의 권면 후에 평안히 소천했다.

* 그분은 성공한 사업가였으나, ‘조촐한’ 장례에 대한 상세한 유언까지 남겼다.

* 그런데, 삶에서의 모든 성공에도 불구하고 그의 '죽음'은 모든 것에 대한 종지부를 찍는 것이었다.

* 죽음은 모든 것의 마지막이며 끝이다.


2. 예수님의 십자가에서의 죽음도 모든 것의 마지막인듯 절망적이고 어두운 것이었다.


* 눅 24:13~14 오늘 본문에서 엠마오로 내려가던 제자들에게도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은 모든 것의 ‘끝’, 종말처럼 보였다.

* 그 날에 (바로 그날에, that same day)...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그 날에

* 장소 : 예루살렘(에서 엠마오로 가는 길)...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사흘 만에 부활하신 그 곳 예루살렘,그리고 예루살렘에서 약 11킬로미터 (25리, 60 스타디온) 떨어진 엠마오로 내려가던 길

* 이 모든 된 일... 예수님의 십자가에서의 죽음과 부활 사건


3.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절망 속에 있던 그들에게 다가 가셨다.


* 눅24:15 예수님께서 그들과 함께 걸으셨다. (예수께서 친히 가까이 다가오셔서 그들과 동행하시나)

* 인류의 죄 문제를 해결하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이 그들에게 다가오셔서 그들이 나누던 슬픔의 이야기를 다 들으셨다는 것이다.


* 4월의 첫날 꽃들이 앞다투어 피어나고 있다.임보 시인의 ‘사월’이라는 시는 부활의 예수님을 노래하는 듯하다.


도대체 이 환한 날에

누가 오시는 걸까

진달래가 저리도

고운 치장을 하고

개나리가 저리도

노란 종을 울려대고

벚나무가 저리도 높이

축포를 터뜨리고

목련이 저리도 환하게

등불을 받쳐들고 섰다니

어느 신랑이 오시기에

저리도 야단들일까?


* Forever, we sing ‘Hallelujah’ ‘찬양 할렐루야’ https://youtu.be/b_TxobA6EgM 라는 찬양을 계속 불렀다.


저 해와 달과 별

모두 빛을 잃고

세상의 구원자

죽으셨네


십자가에 달려

보혈 흘리셨네

모든 저주

그가 지셨네


하늘도 외면한

마지막 숨소리

어둠 속에

주가 누이셨네


무덤 속의 전투

죽음과 싸웠네

어둠의 권세는

무너졌네


온 땅 흔들리고

돌문이 열렸네

이길 수 없는

완전한 사랑


사망아 어디 있느냐

부활하신 주님

사망 권세 이겼네


영원히 영광 받으실

영원히 높임 받으실

영원히 승리하실

주 사셨네

내 주 사셨네

찬양 할렐루야

찬양 할렐루야


* 그 지인의 장례식을 집례하면서, 입관 전에 고인의 얼굴을 완전히 염하지 말도록 부탁해두었다.

* 입관 전, 고인의 얼굴을 마지막 보는 순간에 가족에게 다음과 같이 권면했다.

* 이것이 끝입니다. 이제 고인에게 이 땅에서의 마지막 인사를 나누십시오, 고마웠다고, 사랑했다고...

* 그러나, 예수님을 내 구주로 삼고 예수님의 부활의 능력과 또한 우리의 부활을 믿는 사람들에게는 이것이 끝이 아닙니다.

* 천국에서 우리는 다시 보게 될 것입니다. 그러니 이것이 마지막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천국에서 다시 만나자’고 인사하십시오.


* 우리 삶에서도 마치 종착역같은 절망의 순간들이 많이 있지만, 그것은 결단코 끝이 아니다, 예수님을 구주로 모시고 있기만 한다면....

* (고전 15:17,19)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신 일이 없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요...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바라는 것이 다만 이 세상의 삶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이리라


4. 예수님이 엠마오로 가는 그 길에서, 두 제자들과 함께 걸으셨으나

‘그들의 눈이 가려워졌기에’,

예수님과 3년 동안이나 동고동락 했던 그 두 제자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했다.


* 예수님은 모든 사람을 다 구원하셨으나,

* 어떤 사람들은 자기 생각, 자기 신념과 다른 경우에는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에,

* 그들은 예수님의 구원을 누리지 못하고 있다.


* 리빙스톤 이야기 : 불루마 원주민 종족의 공격을 겪으면서도 믿음을 지킨 이야기


* 1856년, 영국이 낳은 위대한 선교사, 데이빗 리빙스턴(David Livingston)은 그의 16년 동안의 아프리카 선교 활동 가운데 가장 커다란 문제에 직면했다. 악명높은 불루마(Buluma) 부족이 야영하기 위해 캠프를 치고 있을 때 포위하고 들어 왔다.

저녁 식사도 못하고 선교단의 모든 멤버들은 공포 가운데서 떨고 있었다. 아주 잔인한 부족으로 알려진 저들이 언제 공격해 올지 모르기 때문이었다. 리빙스턴은 그의 텐트로 가서 성경을 폈다. 그리고 그가 선교를 위해 영국을 떠나오기 전 받았던 말씀들을 읽기 시작했다. 그 말씀을 짚으며 조용히 기도했다.

그리고 그날 그의 일기 가운데 이렇게 쓰고 있다.

“ 1856년1월14일, 나는 마음이 아주 안타깝다. 우리를 포위하고 있는 원주민들을 볼 때 이상한 비통함을 느낀다. 우리는 저들에게 생명을 전해 주기 위해서 왔는데 저들은 우리의 생명을 위협하고 들어오고 있다. 모든 일행들은 두려움 가운데 떨고 있다. 만약 저 원주민들이 이 밤 공격해 온다면 우리는 어떻게 저들의 공격을 막아낼 수 있을지 그 방법을 잘 모르겠다.

그러나 나는 절대적으로 우리 주님의 약속을 믿는다.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이것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신 가장 위대하신 신사의 약속이 다. 내가 영국을 떠나올 때 내게 주신 이 약속의 말씀을 나는 일점일획도 의심하지 않고 확실히 믿는다. 나의 삶의 가장 어려운 이 문제 상황 가운데 그분이 약속하신 대로 나와 함께하실 줄을 확실히 믿는다. 우리는 가장 위대하신 신사의 약속을 믿으며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고 내일 강을 건널 것이다.”

그 다음날 아침, 리빙스턴 일행은 강을 건널 준비를 하였다. 그 원주민들의 잔인함을 잘 아는 짐꾼들이 먼저 건너가게 해 달라고 애원했다. 그래서 리빙스턴은 그들을 먼저 건너가게 했다. 그리고 선교단원들을 건너가게 했다. 그 불루마 부족들은 화살을 겨누고, 창과 칼을 뽑아 들고 강을 건너는 그들을 지켜보았다. 모든 일행들이 카누를 저어 저만큼 갔을 때 리빙스턴은 그 부족들에게 뚜벅뚜벅 걸어갔다.

그리고 그들에게 감사의 말을 전하고, 그들을 축복했다. 그리고 천천히 카누로 걸어갔다. 그 부족들은 여전히 칼과 창과 화살을 겨누고 있었으나, 리빙스턴에게 위해를 가하지는 않았다. 믿음이 이긴 것이다.


* 믿음이 있으면 모든 것을 이길 수 있으나,엠마오로 내려가던 제자들은 믿음을 송두리째 잃어버리고 있었다.

* 그러나, 예수님의 설명으로 하나님의 말씀이 그들에게 들어가자 그들의 마음이 뜨거워지기 시작했고, 엠마오에서의 식사에서는

* 떡을 가지사(take the bread)

* 축사하시고(bless the bread)

* 떼어(break the bread)

* 그들에게 주시니(give the bread)

그들의 눈이 밝아져 예수님을 알아보게 되었다.

* 즉, 말씀과 성찬을 통해 그들은 회복되었던 것이다. 이른바 ‘엠마오 예배’였다


5. 예배


* 칼 바르트는, 예배란 ‘하나님이 현존하고 계시다’ 또한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것을 소리쳐 주장하는 것이라고 얘기했다.

* 칼 바르트는 2차대전 중의 아우슈비츠같은 하나님이 더 이상 존재하고 계시지 않는 것 같은 시대에, 하나님의 현존을 강조해야 했다.


* 오륜교회 교인인 정국인 시인의 ‘그를 두고 오는 길’에서,


그를 두고 오는 길이

멀었다

그는 이미

거기에 없을 터인데


따뜻한 저녁상을 받는데

더 미안했다

그는 이제

더 맛난 것을 먹을 터인데


새날이 왔는데 아득하다

그는 늘

새날이 좋은 날일 터인데


* 정국인.1961년생. 한국 외국어대학교 일본어과를 졸업하고 도카이은행The Tokai Bank 서울지점에서 12년간 근무했다. 평소 건강했던 남편(김동균. 중앙일보 기자 출신)은 자상한 아빠이자 신망받는 기자였다. 아이들 입시도 마치고 주변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할 무렵, 느닷없이 남편의 발병 소식을 듣게 되었다. 간암 말기였다. 이후 1년을 열흘 못 채운 기간 동안 남편을 간병하고 먼저 떠나보냈다. 과부 된 자의 시린 그리움과 절망의 진창을 포복으로 지나, 지금은 엄마의 이름으로 매일을 달리고 있다.


* 오늘 엠마오 도상에서 살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인 우리들의 삶은 아프고 힘들고 어렵다.

* 그러나 예수님을 만난 후 그들의 삶은 뒤집어지고 변화되었다. 우리에게도 그렇다.


* 톰 라이트 (Tom Wright)는 복음의 전복성을 강조한다. 즉, 복음을 통해 기존 판이 뒤집히는 것을 의미한다.

* 부활 사건은 모든 것을 전복시킨다.


6. 끝으로, 부활 신앙은 단순히 예배의 자리에서 끝나지 않고, 우리들 각자의 구체적인 삶의 자리로 이어지게 되며, 우리 삶 속에서 적용되고 우리 삶을 뒤집어 변화시키게 될 것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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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슬비


              권오순


송알송알 싸리잎에 은구슬
조롱조롱 거미줄에 옥수슬
대롱대롱 풀잎마다 총총
방긋 웃는 꽃잎마다 송송송

고이고이 오색실에 꿰어서
달빛 새는 창문가에 두라고
포슬포슬 구슬비는 종일
예쁜 구슬 맺히면서 솔솔솔


---------------------------
1919년 3.1만세운동이 일어나던 날 태어난 시인은
3살에 열병을 앓아 불구의 몸이 된다.

자라면서 사촌오빠들이 만세운동으로 일본순사들의
고문받은 이야기를 들으며 항일의식을 키운다.

학교에서 일본어로 시키는 교육을 거부하고
혼자서 한글대사전을 구입해서 한글을 한자도 안 빠뜨리고
공부하고 시를 썼다.

13살에 쓴 동시가 하늘과 바다이다.
그리고 18살에 쓴 동시가 구슬비이다.

재속 수녀가 되어 고아들을 돌보고
삵바느질로 생계를 이으며 동시를 썼던 권오순 시인!

구슬비는 우리의 가슴에
노래로 남아서 불리어지고 있다.


*권오순(權五順, 1919년 ~ 1995년 7월 11일)은 일제 강점기와 대한민국의 아동문학가, 시인이다. 본관은 안동(安東)이고 호(號)는 맹물, 설봉(雪峯, 雪峰)이며 황해도 해주 출생이다. 1937년 아동문학 동인지 《소년》에 동화를 발표하여 아동문학가로 문단에 첫 등단하였다. 해방 후 평안남도 평양 종로국민학교 교사로 있다가 그만두고 월남하여 대한민국에서는 1947년 시인으로도 등단, 이후 대한민국에서 아동문학가와 시인으로 활동하였다.
1995년 7월 11일 향년 77세로 사망하였다.

<퍼온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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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서울대에서 영등포쪽으로 운행하던 버스 노선번호 중의 하나가 333번이 있었습니다.
제자반에서 아래 성경 구절의 주소(몇 장 몇 절)를 외울 때 그 버스 노선을 연상해서 기억했었죠.

예레미야 33장 3절 말씀입니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이 부분의 성경 말씀 배경은 그냥 일상적인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예레미야는 제사장의 아들로서, 20세도 안되는 젊은 나이에 선지자로 부르심을 받았으나, 내성적이며 소극적인 사람이었습니다.
요시야왕이 새로 발견된 율법책에 기반하여 종교 개혁을 시작했을 때,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명령을 받고 모든 유다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외쳤다가, 타락한 아나돗 사람들에 의해 죽을 뻔 하기도 했습니다. 요시야왕이 죽자, 백성의 생활은 과거의 죄악된 상태로 되돌아가 버렸으며, 희생 제물에만 얽매이는 형식적인 종교 생활로 고착되었죠.
단지 예루살렘 성전이 남아 있기 때문에 유다가 영속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며, 유다의 멸망을 예언했기에 예레미야는 백성들의 미움을 받고 옥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33:3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는 말씀은 바로 그런 때에 예레미야에게 주신 하나님의 말씀이었습니다.

우리는 속상하고 억울한 일을 당하면, 하나님께 쏟아 놓기 보다는 그 억울한 일에 빠져 들게 되어 자기 자신을 망치게 됩니다. 즉, ‘억울함을 묵상’하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하나님께 부르짖으라...고 하십니다. 하나님께 간절히 부르짖어 기도해야만 그 힘든 순간을, 시간을 극복해 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부르짖으라'는 한글 성경의 과장된 표현일 수도 있다는 생각도 햡니다.
영어 성경들은 그저 Call to me...이며, 공동번역이나 새번역에서도 '나를 부르라'로 약한(?) 표현으로 되어 있기 때문이죠.
결국, 이 기도는 소리를 크게 지르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진실로 하나님을 바라보고 '간절히'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께 즉시 기도하자. 부르짖자. 하나님의 응답을 기대하자. (2018년 2월 11일 김은호 목사님의 주일 설교에서 파생된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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헨리 스미스 거룩하신 하나님

고후 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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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륜교회에는 카페가 있습니다. 이름이 TOBIAS입니다. 

비즈니스 선교를 지원하는 비영리법인을 만들어서 카페를 비롯한 여러 사업을 진행하는데, 그 법인 이름이 TOBIAS이기 때문입니다.

TOtal BusIness And Supplier의 줄인말입니다.

그러나, 사실 Tobias는 서구에서 많이 사용되는 남자 이름이기도 합니다.

외경 중의 하나인 토빗(Tobit)서의 주인공 이름에서 시작되어 Tobias라는 이름이 생겼다고 합니다.

그 이름의 원래 뜻은 'God is good' 즉 하나님은 선하시다...입니다. (아멘)


또한, 제게는 맥스 루케이도 목사의 '토비아스의 우물'이라는 그림책의 내용으로 더욱 가까이 다가옵니다.

----+----

비도 거의 오지 않는 메마른 사막 한 가운데 물이 거의 없는 한 마을이 있었다.

그러나 그 마을 근처에는 시원한 물이 펑펑 나오는 우물을 가진 토비아스라는 사람이 있었다.

토비아스는 마을 사람들에게 물을 나누어 주는 것을 아끼지 않았고

아들 쥘리안에게도 물을 나누어 주는 것에 대해서 아까워 하지 말고 나누어 주기를 가르쳤다.

 

그러던 어느 날 토비아스와 쥘리안은 타국으로 여행을 떠나게 되자

그 우물을 하인인 엘제비르에게 맡기며 마을 사람들에게 물을 잘 나누어 주라고 했다.

그러나 우물을 맡은 엘제비르는 마을 사람들이 물을 공짜로 마시는 것에 대해서 감사해 하지 않는 것을 알았고

그는 임의대로 마을 사람들에게 "감사해 하지 않으면 물을 주지 않겠다"라는 명령을 내렸다.

마을 사람들은 물을 마시기 위해서 엘제비르의 말을 따를수 밖에 없었고,

시간이 가면 갈 수록 엘제비르의 횡포는 더욱더 심해졌고

결국 우물에서 물을 얻어갈 수 있는 사람들은 거의 없어지게 되었다.

 

그 때 토비아스의 아들인 쥘리안이 나타나 우물물을 마을 사람들에게 나누어주며

그 우물을 모두와 함께 공유하는 것이 아버지의 뜻임을 알려주었다.

다시금 우물물을 찾은 마을 사람들은 횡포를 부린 엘제비르에게 물을 주지 말 것을 건의했으나

쥘리안은 그 역시 이 마을 사람이고 그에게도 물을 나누어 주는 것이 아버지의 사랑임을 알려준다.

---+---

어린이들의 연극에서도 많이 이용되지만,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우리가 어떻게 받아들이고 나누고 섬겨야 할 지를 보여주는 이야기인 것 같습니다.

새해 오륜교회의 표어는 '은혜에 굳게 서라'입니다.

은혜를 왜곡하지 않도록 마음을 가다듬습니다.

------+---

Imagine a land so dry that every drop of rain is like pure gold.
And in the middle of this arid land
there is a village filled with people who need more than just a few buckets of rainwater to survive.

Fortunately for them,
Tobias lives nearby.
He owns the only wellspring in the desert,
and it pours forth clear, cool water—water he and his son happily give to everyone who asks.
He is lovingly called the Watermaster, and he believes that the water should be a free gift to all.

But when the Watermaster goes on an unexpected journey,
the people realize in a whole new way the amazing gift he's been giving them. The only gift they really need.

God's grace is a gift more precious than water in a desert.
It is all you and your children ever need.
As our bodies cannot live without water,
so our souls cannot truly live without God's grace.
It is by His grace alone that we can come to Him and ask for the Living Water, which is eternal life.
His grace poured out at Calvary cleanses our hearts and souls.
So marvelous and matchless is this gift—a gift we do not deserve, a gift we cannot buy or earn—yet we need only ask and believe.

윈도우10에서 가끔 '파일이름이 너무 깁니다'라는 메시지가 뜨면서 파일 삭제가 안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 "F:\다운로드\파일이름이 너무 길어서 삭제가 안되고 있는 파일" 이 녀석을 지워보도록 하겠습니다.

1. 먼저 "파일이름이 너무 길어서 삭제가 안되고 있는 파일"을 지우고 싶으므로 그 상위 폴더인 다운로드폴더로 만들어 줘야 합니다. 기존에 C드라이브에 존재했던 녀석을 f: 를 치고 엔터를 치면 F드라이브로 바뀌게 되며, F드라이브내 다운로드 폴더로 위치시켜야 하므로 cd 다운로드 를 타자친 후 엔터를 치면 커맨드창에 F:\다운로드> 상태가 되며 이 때부터 본격적인 명령어를 쳐 내려가면 됩니다.

2. mkdir empty_dir 을 입력한 후 엔터(아무 변화없음)

3. robocopy empty_dir "삭제할 폴더명(따옴표 유의)" /s /mir 를 입력 후 엔터(띄워쓰기 주의)->변함

4. rmdir empty_dir 을 입력후 엔터 (아무 변화없음)

5. rmdir "삭제할 폴더명" 을 입력후 엔터(아무변화 없음)

어떤 에러 메시지가 나오든 상관하지 말고 5번까지 따라서 해보세요. 잘 풀리네요. 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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