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전쟁과 튀르키예/시리아 지진 이재민들을 위한 특별 헌금 등 섬김과 나눔
교회에서는 즉각 구호 팀을 파견하고 이어서 특별헌금과 바자회 등을 기획하여 시행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일들을 추진하며 목사님께서 주로 인용한 성경 말씀은 로마서 12장 15절 입니다.
Rejoice with those who rejoice, weep with those who weep.
기뻐하는 자들과 함께 기뻐하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
우는 자들과 함께 우는 것은 상대적으로 쉽습니다. 그러나 기뻐하는 자들과 함께 진정으로 기뻐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누군가가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 동정심을 느끼기 쉽습니다. 사람들이 우울해할 때 격려하기는 쉽습니다. 하지만 같이 어울리던 친한 동료 중에서 누군가가 승진하고 자신은 누락되었을 때는 어떨까요? 감당하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의 성공을 기뻐하기보다는 오히려 분개할 수도 있습니다. 다른 사람의 촛불을 끄면 내 촛불이 더 밝게 빛날 거라는 생각에 그 사람에게 나쁜 일이 일어나기를 바랄 수도 있습니다. 경쟁 사회, 제로섬의 사회에서는 더욱 그렇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는 충분합니다.
예수님의 비유 중에서 포도밭주인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는 포도밭에서 일할 일꾼을 1 데나리온에 새벽에 고용했고, 오전과 오후 내내 계속 일꾼을 같은 일당으로 고용했으며, 오후 5시경에 그에게서 일감을 얻은 어떤 일꾼은 한두 시간만 일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일꾼들에게 임금을 지급할 때가 되자 포도밭주인은 모든 일꾼들에게 똑같은 금액을 지급했습니다.
새벽에 고용된 일꾼들은 불공평하다고 불평했지만, 포도밭주인은 "내 것을 가지고 내 뜻대로 할 수 없다는 말이오? 내가 후하기 때문에, 그것이 당신 눈에 거슬리오?(마태복음 20:15 새 번역)"라고 대답했습니다.
때때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다른 사람을 축복하실 때 같은 감정을 느낄 수 있습니다. 나는 열심히 일하고 하나님이 시키는 모든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분이 내게는 특별히 복을 주시지 않으면서 내 곁의 다른 사람을 아낌없이 축복하시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 사람은 우리만큼 열심히 일하지 않았거나 우리만큼 신실하게 하나님을 섬기지 않은 것 같아서 복을 누릴 자격이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다른 사람에게도 복을 주시기를 원하신다면 하나님이 다른 사람들에게 무엇을 주고 싶어 하시는지 걱정할 필요조차 없습니다. 우리는 오로지 우리 자신에게 주어진 것을 가지고 무엇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만 염려해야 합니다.
부러움과 시기는 구분하기 쉽지 않습니다. 부러움과 시기심은 가까운 곳에서 일어납니다. 특히 시기심은 전혀 관계없는 사람이 아니라 가까운 동료와의 관계에서 발생합니다. 일반적으로 또래가 아닌 사람들을 부러워하지 않습니다. 가끔 좋아하는 가수나 배우를 떠올리며 "나도 저 슈퍼스타처럼 되고 싶다"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가장 큰 부러움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가장 가까운 사람들입니다. 가족과 친구들이 성공하는 모습을 보는 것은 가장 힘든 일입니다. 사촌이 밭을 사면 배가 아픈 법입니다.
시기심은 아주 해로운 것입니다. 다른 사람의 가치를 떨어뜨리고, 관계를 파괴하며, 자신을 비참하게 만듭니다. 질투는 마음속에 숨겨져 있지만 그 결과는 매우 파괴적입니다. 그리고 많은 기쁨을 잃어버리게 합니다.
나는 결혼하지 못하고 있거나 헤어졌는데, 주변 누군가의 청첩장을 받으면 속이 상합니다. 다른 사람의 촛불이 빛나면 내 촛불은 꺼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더 비참해지리라고 생각합니다.
다른 사람의 성공을 기뻐하고 행복하는 법을 배우십시오.
그러나 그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다른 사람의 성공에 행복해하는 법을 배우면 인생이 훨씬 더 즐거워질 것입니다. 자기 일이 잘 풀릴 때만 행복하다면 평생 비참한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다른 사람의 성공과 축하에 박수를 보내는 법을 배우면 항상 행복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고린도전서 13장 4절에 "사랑은 시기하지 않습니다. Love doesn not envy."(ESV)라고 말합니다.
사랑은 부러워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사랑은 다른 사람을 향한 하나님의 선하심을 찬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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