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고난의 이유를 다 알지 못하지만, 고난 속에서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는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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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sus Christ/주님과 함께
요약왜 하필 나일까, 라는 질문 끝에서살다 보면 도무지 이해할 수도, 받아들일 수도 없는 고난이 삶을 덮칠 때가 있습니다.가슴이 무너져 내리는 순간, 우리는 마음 깊은 곳에서 터져 나오는 두 가지 질문을 마주합니다."하나님이 계시다면 왜 이런 일이 일어날까?""이런 고통을 허락하신 하나님을 내가 계속 믿을 수 있을까?"첫 번째 질문에 대해 기독교는 모든 답이 적힌 완벽한 해설서를 주지 않습니다. 그러나 두 번째 질문에 대해서는 아주 분명하고 따뜻한 답을 건넵니다.1. 우리는 이유를 다 알지 못합니다우리는 인생의 작은 한 조각을 지나고 있을 뿐, 삶 전체와 역사의 큰 그림을 내려다볼 수 있는 자리에 있지 않습니다.우리가 고난의 구체적인 이유를 모른다고 해서 '아무 이유가 없다'는 뜻은 아닙니다. 또한, 고..
가장 배타적인 복음이 가장 넓은 품을 만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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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sus Christ/주님과 함께
기독교 복음은 진리의 내용에서는 배타적이지만, 그 진리를 믿는 사람의 태도에서는 오히려 가장 겸손하고 포용적이어야 한다.결국 질문은 “누가 배타적인가?” 가 아니라 “당신이 믿는 진리가 당신을 어떤 사람으로 만드는가?”가 중요하다.본문: 요한복음 14:6, 에베소서 2:14-18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는 다양성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서로 다른 생각, 서로 다른 문화, 서로 다른 종교와 가치관을 인정하고 함께 살아가야 한다고 말합니다.이런 시대 속에서 기독교 신앙은 자주 질문을 받습니다.“왜 예수님만이 길이라고 말합니까?”“왜 기독교만이 진리라고 주장합니까?”“그렇게 말하는 것은 너무 배타적이지 않습니까?” 실제로 예수님은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
죽음, 그 후 - 성도의 죽음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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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호설립목사 #주일설교 #내이해로수정함더보기죽음은 본래 좋은 것이 아니라 죄로 들어온 마지막 원수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고 부활하심으로 죽음의 권세를 깨뜨리셨습니다. 그러므로 성도에게 죽음은 여전히 슬픈 원수이지만, 더 이상 최종적인 패배가 아닙니다. 성도는 죽음 가운데 그리스도와 함께하며, 마지막 날 몸의 부활을 기다립니다. 우리의 궁극적인 소망은 죽어서 영혼만 천국에 가는 것이 아니라, 부활하신 그리스도와 함께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완전한 생명을 누리는 것입니다. 부활을 바라보며 오늘을 믿음으로 살아갑시다.죽으면 끝인가? - 세상이 줄 수 있는 가장 좋은 대답사람이라면 반드시 물어야 할 질문이 있습니다. 바쁘고 먹고사는 일이 힘들어도, 내가 짐승이 아니라 사람이라면 언젠가는 붙들어야 ..
가난도 성공도 우리를 의롭게 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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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와 청빈, 자기의와 복음적 자유에 관한 성경신학적 비평오늘날 교회에서 돈을 둘러싼 신앙의 언어는 이상할 만큼 양극화되어 있습니다.한쪽에서는 성공과 번영을 하나님의 축복의 가시적 증거처럼 말합니다.(번영 신학) 좋은 직장, 사업의 성장, 재산의 증가, 사회적 상승을 하나님의 특별한 호의와 연결합니다. 다른 한쪽에서는 그에 대한 반작용으로 가난과 검소함을 더 높은 영성의 표지처럼 여깁니다. 적게 가지고, 적게 누리고, 많이 포기할수록 더 진실한 신앙인에 가까워진다고 생각합니다. 둘은 서로 반대처럼 보입니다.그러나 복음의 관점에서 보면 놀랍도록 비슷합니다.둘 다 눈에 보이는 어떤 상태를 통해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영적 위치를 확인하려 하기 때문입니다.성공주의자는 말합니다.“내가 이만큼 복을 받았으니 하나님께..
두 종류의 그리스도인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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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이드 존스의 팔복 강해가 무너뜨리는 신앙의 분할거룩한 사람과 평범한 사람은 따로 있을까요?우리는 이 질문에 생각보다 자주 “그렇다”고 대답하며 살아갑니다.목회자와 선교사는 특별한 소명을 받은 사람들이고, 일반 교인은 조금 덜 헌신적으로 살아도 된다고 생각합니다. 주일은 거룩하지만 월요일은 현실이고, 예배당은 하나님의 공간이지만 직장은 생계를 해결하는 장소라고 여깁니다. 산상설교의 팔복도 특별히 경건한 사람들에게나 어울리는 높은 수준의 말씀이라고 생각하며 자신을 한 걸음 뒤로 물립니다.마틴 로이드 존스가 팔복 강해의 출발점에서 흔드는 생각이 바로 이것입니다.기독교에는 두 종류의 그리스도인이 없습니다.물론 성경은 모든 구별을 없애지 않습니다. 교회에는 서로 다른 직분이 있고, 선과 악도 분명히 구별됩니다...
천국을 안다고 생각하는 순간, 다시 물어야 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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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를 오래 접했다고 해서 기독교를 잘 안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오히려 오래 들어온 말일수록 더 조심해야 합니다.천국. 지옥. 구원. 심판. 십자가. 부활.우리는 이런 말들의 뜻을 이미 알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신학은 때로 새로운 답을 만들어 내는 일보다, 너무 익숙해져 더 이상 질문하지 않게 된 답을 다시 낯설게 바라보는 일에서 시작합니다.그래서 천국에 대해 묻는 일도 "정답은 이것이다"라고 서둘러 결론짓기보다 먼저, 우리가 무엇을 천국이라고 불러왔는지를 다시 살피는 데서 시작할 필요가 있습니다.다만 낯설게 보는 일과 계시를 흐리는 일은 다릅니다. 하나님은 자신을 충분히 알리셨고, 성경은 구원에 필요한 것을 명료하게 말합니다. 우리가 다시 물어야 할 것은 하나님이 말씀하신 것 자체가 아니라,..
김은생 (金殷生) 개인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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