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함을 앎으로 착각하는 것을 경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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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sus Christ/주님과 함께
익숙함을 앎으로 착각하면 생기는 문제점연세대학교 김학철 교수가 유튜브에서 한 얘기로 긴 글을 시작하려 합니다.우리가 평생 숨을 쉬며 살아왔다고 해서 인체 구조를 꿰뚫고 있는 생물학자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마찬가지로 교회에 수십 년 다녔거나 사회에서 기독교 문화를 자주 접했다고 해서 기독교와 성경의 본질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기독교인이든 비기독교인이든, 몇 가지 교리나 단편적인 인상에 익숙해진 순간 "나는 기독교가 뭔지 다 안다"고 결론지어 버립니다. 하지만 어떤 사상이나 고전이든 다 안다고 여기는 순간 질문과 탐구가 멈추고 생명력을 잃게 됩니다.이러한 착각 때문에 생기는 구체적인 문제점은 다음과 같습니다.배움과 사유의 중단이미 다 안다고 생각하면 더 이상 성경을 깊이 읽거나 새로운 질문..
그때도 지금도 앞으로도 하나님이 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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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본문: 여호수아 23장 1~10절설교자: 주경훈 목사말씀을 위한 기도하나님 아버지, 우리의 걸음을 지금까지 인도해 주신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오늘 여호수아의 마지막 고별의 음성을 통해 우리를 향한 주님의 뜻을 밝히 보여주옵소서. 세상의 불안과 두려움을 내려놓고, 우리보다 앞서 싸우시는 하나님만 온전히 바라보는 복된 시간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110세 여호수아의 마지막 유언우리나라 철학계의 원로이신 김형석 교수님은 1920년생으로 올해 만 106세를 맞이하셨습니다. 일제강점기 윤동주 시인, 도산 안창호 선생과 동시대를 호흡하셨고 헬렌 켈러를 직접 만나기도 하셨던 분입니다. 주판을 쓰던 시절에 태어나 인공지능이 세상을 바꾸는 오늘날까지도 『AI 시대의 인문..
성서·기독교 연구 - 어느 신학자를 검증하다가 조우한 주제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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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출발점① 사도행전의 바울: 세 정체성은 누가의 서사 도구다사도행전은 바울에게 유대인, 다소 시민, 로마 시민이라는 세 정체성을 줍니다.이것은 역사적 바울의 이력서라기보다 누가의 서사 도구입니다.서신의 바울은 로마 시민권을 한 번도 언급하지 않습니다. 누가는 각 정체성을 필요한 장면에서 꺼냅니다. 유대인 정체성은 성전과 회당에서 바울의 정통성을 세웁니다(22:3). 다소 시민권은 천부장 앞에서 그가 하찮은 인물이 아님을 보이고, 로마 시민권은 매질을 멈추고 황제 상소의 길을 엽니다.그래서 세 정체성과의 관계는 찬반의 이분법보다 '활용'으로 보는 편이 정확합니다.바울은 어느 정체성도 버리지 않지만, 어느 것도 최종 기준으로 삼지 않습니다.최종 기준은 부활하신 예수에 대한 증언입니다(행 26:22-23..
오늘의 성서 읽기와 신앙의 길: 일곱 가지 논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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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성서는 천천히, 정확하게, 그리고 겸손하게 읽힐 때 오늘의 삶을 바꾸는 말이 됩니다. 이 글은 이 명제를 일곱 가지 논점을 통해 검토합니다. 오늘날 성서와 신앙을 둘러싼 논쟁은 크게 두 방향에서 제기됩니다. 교회 안에서는 경전을 문자 그대로 고정해야 한다는 입장과 역사적 맥락 속에서 다시 읽어야 한다는 입장이 맞섭니다. 교회 밖에서는 종교가 배타적이고 비판을 허용하지 않는다는 불신이 커지고 있습니다. 이 글은 각 논점마다 대립하는 입장을 먼저 제시하고, 성서 본문과 그리스도교 전통을 근거로 분석한 뒤, 나름대로의 분명한 해결 방향을 제시합니다. 다루는 논점은 경전 해석의 방법, 복음의 공적 성격, 공동체 윤리, 예술과 신앙, 고통과 허무, 번역과 재해석, 그리고 다원 사회에서 신앙의 자세입니다.논점 ..
성경과 교리에 대한 재해석은 신앙의 배신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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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sus Christ/주님과 함께
#기독교의정체성은무엇으로유지되는가서론교리의 재해석은 기독교 신앙을 해체하는 행위가 아니라, 살아 있는 전통이 자신을 유지해 온 방식입니다. 따라서 "재해석을 해도 되는가"라는 질문은 잘못 놓인 질문입니다. 오히려 물어야 할 것은 "무엇은 반드시 붙든 채로 재해석할 것인가"입니다.현대 과학과 역사비평이 발전하면서, 창세기의 문자적 독법이나 물리적 내세관을 그대로 유지하기 어렵다는 문제 제기가 꾸준히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 흔히 두 가지 위험한 반응이 나옵니다. 하나는 교리 체계를 하나도 양보할 수 없다는 입장이고, 다른 하나는 교리 일부가 무너졌으니 기독교 전체가 거짓이라는 입장입니다.이 글은 두 입장이 사실상 같은 전제 위에 서 있음을 밝히고, 그 전제가 역사적으로나 논리적으로 성립하지 않음을 논..
Why the Name "Hangeul" Was a Revolu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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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thers/이것 저것
Why Hangeul Has Different NamesI never attended kindergarten. In the winter before I entered elementary school, my mother sat me down and taught me my first letters through a singsong rhythm: "ga-gya-geo-gyeo."Not long after, I learned about Hangeul Day. I assumed it celebrated the day our alphabet was invented, but my teacher explained that it actually commemorates the official promulgation of ..
김은생 (金殷生) 개인 블로그
In His Ste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