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집이 왕의 성소가 될 때 - 벧엘에서 묻는 은혜의 기억과 예배의 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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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sus Christ/주님과 함께
성경의 벧엘(Beth-El, 하나님의 집)에는 서로 다른 기억이 겹쳐 있습니다.창세기에서 벧엘은 길을 떠난 야곱에게 하나님이 찾아오신 장소입니다. 그러나 열왕기와 예언서에서는 왕권을 지키기 위한 예배와 우상 숭배가 고발되는 장소가 됩니다. ‘하나님의 집’이라는 이름과, 그 이름에 어울리지 않는 삶이 한 도시 안에 함께 남아 있는 것입니다.이 이야기는 거룩한 장소도 타락할 수 있다는 경고를 들려줍니다. 동시에 묻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주신 은혜를 기억하며 살아갑니까? 아니면 그 은혜의 기억을 이용하여 지금의 욕망과 권력을 지키고 있습니까?벧엘을 따라가는 일은 옛 성소의 위치를 찾는 여행이면서, 우리의 신앙이 무엇을 섬기고 있는지 돌아보는 여정입니다.하나님의 집은 어떻게 왕의 성소가 되었습니까솔로몬 사후 ..
거실에만 계신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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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sus Christ/주님과 함께
여러분의 하나님은 지금 어떤 자리에 계십니까?결혼해서 분가한 뒤에도, 고향 본가에 가면 저는 어느 방이든 편하게 들어가 쉴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부모님이 서울 저희 집에 오셨을 때는 주로 거실에만 머무셨습니다. 안방에 들어가 좀 쉬시라고 해도 무척 미안해하셨습니다. 저희 부부를 배려하신 마음이었겠지만, 그 모습이 마음 아팠습니다.부모님의 것은 모두 제 것처럼 누렸는데, 제 것은 부모님께 조심스럽게 지켜 주고 존중해 주어야 하는 영역이었던 것입니다. 그것이 슬펐습니다. 부모님께 "이 방에서는 편히 계십시오" 하고 특별히 자리를 정해 드려야 했던 일이 너무나 송구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도 저는 그렇게 하고 있지 않을까요? 하나님이 머무실 자리를 제가 정해 드리고, 그 바깥으로는 들어오지 않으시기를 바라면..
어머니는 자녀들 덕에 살았다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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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thers/생각의 흐름
어느 노모의 유서 - 자네들이 고마웠네다음은 팔순 경에 난소암으로 소천하신 어느 어머니의 유서라고 합니다.저와는 무관하지만, 마치 작년에 소천하신 제 어머님의 글처럼 제게 다가옵니다.자네들이 내 자식이었음이 고마웠네.자네들이 나를 돌보아줌이 고마웠네.자네들이 세상에 태어나 나를 어미라 불러주고,젖 물려 배부르면 나를 바라본 눈길에 참 행복했다네.지아비 잃고 세상이 무너져,험한 세상 속을 버틸 수 있게 해 줌도 자네들이었네.병들어 하느님이 부르실 때,곱게 갈 수 있게 곁에 있어 줘서 참말로 고맙네!자네들이 있어서 잘 살았네.자네들이 있어서 열심히 살았네.딸아이야 맏며느리, 맏딸노릇 버거웠지?큰 애야, 맏이노릇 하느라 힘들었지?둘째야, 일찍 어미 곁 떠나 홀로 서느라 힘들었지?막내야, 어미젖이 시원치 않음에..
말씀으로 기도하기: 루터에게 배우는 단순한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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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sus Christ/주님과 함께
기도는 사람이 하나님께 올라가는 기술이 아니라, 말씀으로 내려오시는 하나님을 맞이하는 일이다. 그래서 기도의 자격은 숙련이 아니라 약속에, 재료는 내면이 아니라 주어진 말씀에, 자리는 수도원이 아니라 일상에 있다.이발사의 질문 - 기도를 어떻게 해야 하나?기도를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말은 부끄러운 고백이 아니라 기도의 출발점입니다. 1535년 독일 비텐베르크에서 이발사 페터가 친구이자 손님인 마르틴 루터에게 바로 그것을 물었습니다. 루터는 《단순한 기도》라는 짧은 책을 써서 답했습니다.오늘 우리도 같은 것을 묻게 됩니다. 기도해야 한다는 것은 알지만 막상 앉아 눈을 감으면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릅니다. 몇 분 지나지 않아 딴생각이 들고, 유창하게 기도하는 사람 옆에서는 주눅이 듭니다. 루터의 답..
사방이 닫혀도 하늘은 열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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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sus Christ/주님과 함께
본문: 열왕기하 7장 3~10절"성문 어귀에 나병환자 네 사람이 있더니 그 친구에게 서로 말하되 우리가 어찌하여 여기 앉아서 죽기를 기다리랴. 만일 우리가 성읍으로 가자고 말한다면 성읍에는 굶주림이 있으니 우리가 거기서 죽을 것이요, 만일 우리가 여기서 머무르면 역시 우리가 죽을 것이라. 그런즉 우리가 가서 아람 군대에게 항복하자. 그들이 우리를 살려 두면 살 것이요, 우리를 죽이면 죽을 것이라 하고" (열왕기하 7:3~4)계산이 서지 않는 인생의 막다른 골목인생을 살다 보면 아무리 머리를 쥐어짜도 답이 나오지 않고, 사방이 꽉 막혀 방법이 보이지 않는 막막한 상황에 처할 때가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이스라엘의 처지가 바로 그러했습니다.당시 이스라엘은 사마리아 성에 갇혀 있었습니다. 성 밖에는 ..
왕의 침실에 있던 소녀를 기억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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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sus Christ/주님과 함께
노쇠한 거인의 침실에 버려진 온기 - 수넴 여자 아비삭한때 큰 통일 왕국을 세웠던 용감한 왕 다윗도 나이가 들자 몹시 약해졌습니다. 이불을 아무리 덮어도 몸이 따뜻해지지 않았습니다.그러자 신하들은 한 시골 마을에서 아름다운 소녀를 데려와, 늙은 왕 곁에서 왕의 몸을 따뜻하게 하도록 했습니다.성경은 그녀에게 소케네트 즉 '왕을 돌보는 사람'이라는 이름을 붙였지만, 사실 그녀는 왕을 데우는 난로처럼 쓰였습니다.성경은 왜 이 이야기를 적었을까요?열왕기 저자는 이 기이한 만남의 끝자락에 의미심장한 기록을 남깁니다."왕이 그녀와 잠자리를 같이 하지 않았다"이렇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왕이 깨끗하게 행동했다는 칭찬이다."그러나 여러 학자들은 이 문장이 그 시대에는 "이제 왕이 힘을 잃었다"는 뜻으로 읽혔다고 설명..
김은생 (金殷生) 개인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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