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규, 그리스도인은 왜 인문학을 공부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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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thers/이것 저것
책의 기본 비유부터저자가 신학을 설명할 때 쓰는 그림은 다리(橋)입니다. 한쪽 끝은 하늘(하나님의 계시, 성서)에, 다른 쪽 끝은 땅(인간의 세계, 인문학)에 걸쳐 있는 다리. 다리는 두 기둥이 다 있어야 섭니다. 성서만 붙들고 인문학 기둥을 뽑아 버리면 다리는 땅에 닿지 못하고, 인문학만 붙들면 하늘에 닿지 못합니다.더보기A 집사님: "성경만 있으면 돼. 철학이니 심리학이니 그거 다 사람 생각이야. 세상 학문 기웃거리다 신앙 버린 사람이 한둘이야?"B 집사님: "요즘 세상이 어떤 세상인데 아직도 그런 소리를. 니체도 읽고 하라리도 읽어야 대화가 되지."저자가 보기에 두 사람 다 절반씩 틀렸습니다. 그리고 그 이유를 논박이 아니라 역사로 보여 주겠다는 게 이 책의 전략입니다.A 집사님에게는 이렇게 말합니..
'가다'에서 '오다'로 from Going to Com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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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sus Christ/주님과 함께
우리는 떠날 사람들이 아니라 맞이할 사람들이다.톰 라이트의 『마침내 드러난 하나님 나라』(Surprised by Hope)와 『God's Homecoming』(2026)을 이어 읽고 나서1. 한 문장의 복음, 세 개의 오류한국 교회의 복음은 한 문장으로 압축된다."예수 믿고 천국 가세요."'예수 천당'이라는 오래된 외침이 그 문장의 압축판이고, 전도지의 마지막 장은 "당신은 죽으면 어디로 갑니까"라는 질문으로 끝나며, 장례식은 '천국 환송예배'라는 이름으로 드려진다. 우리는 "저 높은 곳을 향하여 날마다 나아갑니다"라고 찬송하고, 어떤 이는 "이 세상은 내 집 아니네"라고 노래한다. 나도 오래 그렇게 믿었다. 그런데 이 문장을 문법적으로 뜯어보면 세 자리가 있다."나는 천국 갑니다"주어는 '나'다. 동사..
우리는 왜 ‘천국 가는 것’이 성경의 결론이라 착각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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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sus Christ/주님과 함께
가다 vs. 오다‘영혼 탈출(Going to Heaven)’에서 ‘하나님의 귀환(God’s Homecoming)’으로의 패러다임 전환한국 교회의 복음을 한 문장으로 줄이면 아마 “예수 믿고 천국 가세요.”일 것입니다. 거리 전도의 “예수 천당”도, “죽으면 어디로 갑니까?”라는 전도지의 질문도 같은 방향을 가리킵니다. 장례에서는 사랑하는 이를 천국으로 떠나보냈다고 말하고, 찬송에서는 저 높은 곳을 향해 올라간다고 노래합니다. 이 말들이 모두 틀렸다고 말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신약은 실제로 죽은 성도가 그리스도와 함께 있다고 말합니다. 바울은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것”을 훨씬 좋은 일이라고 고백합니다. 문제는 그 그림이 기독교의 마지막 소망 전체를 대신할 때 생깁니다. 죽어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왜 완주(浣主)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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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thers/생각의 흐름
선친의 호 두 글자에 담긴 뜻제 선친의 '완주'라는 호를 처음 들으면 대개 온전할 완(完)을 떠올립니다. 그러나 실제로 쓰인 글자는 '빨다·씻다'라는 뜻의 浣(완)입니다. 이 글은 그 글자가 어떻게 골라졌고, 왜 하필 '빨래'의 글자였는지, 그리고 그 두 글자를 제가 어떻게 읽는지를 적습니다.완생(浣生)에서 완주(浣主)로'완생(浣生)'은 아버지가 2대 독자이자 종손으로 태어난 귀한 아들을 위해 지어 준 애정 어린 첫 호였습니다. 이 이름과 글자는 양명학을 공부한 외삼촌, 곧 아버지의 처남이 매우 고심하여 골라 권한 것이었습니다. 양명학에서 공부란 무엇을 더 쌓는 일이 아니라 타고난 양지(良知)를 가리는 사욕을 씻어내는 일이니, 양명학을 공부한 이가 하필 '씻는' 글자를 권한 것은 우연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우리는 고난의 이유를 다 알지 못하지만, 고난 속에서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는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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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sus Christ/주님과 함께
요약왜 하필 나일까, 라는 질문 끝에서살다 보면 도무지 이해할 수도, 받아들일 수도 없는 고난이 삶을 덮칠 때가 있습니다.가슴이 무너져 내리는 순간, 우리는 마음 깊은 곳에서 터져 나오는 두 가지 질문을 마주합니다."하나님이 계시다면 왜 이런 일이 일어날까?""이런 고통을 허락하신 하나님을 내가 계속 믿을 수 있을까?"첫 번째 질문에 대해 기독교는 모든 답이 적힌 완벽한 해설서를 주지 않습니다. 그러나 두 번째 질문에 대해서는 아주 분명하고 따뜻한 답을 건넵니다.1. 우리는 이유를 다 알지 못합니다우리는 인생의 작은 한 조각을 지나고 있을 뿐, 삶 전체와 역사의 큰 그림을 내려다볼 수 있는 자리에 있지 않습니다.우리가 고난의 구체적인 이유를 모른다고 해서 '아무 이유가 없다'는 뜻은 아닙니다. 또한, 고..
가장 배타적인 복음이 가장 넓은 품을 만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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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sus Christ/주님과 함께
기독교 복음은 진리의 내용에서는 배타적이지만, 그 진리를 믿는 사람의 태도에서는 오히려 가장 겸손하고 포용적이어야 한다.결국 질문은 “누가 배타적인가?” 가 아니라 “당신이 믿는 진리가 당신을 어떤 사람으로 만드는가?”가 중요하다.본문: 요한복음 14:6, 에베소서 2:14-18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는 다양성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서로 다른 생각, 서로 다른 문화, 서로 다른 종교와 가치관을 인정하고 함께 살아가야 한다고 말합니다.이런 시대 속에서 기독교 신앙은 자주 질문을 받습니다.“왜 예수님만이 길이라고 말합니까?”“왜 기독교만이 진리라고 주장합니까?”“그렇게 말하는 것은 너무 배타적이지 않습니까?” 실제로 예수님은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
김은생 (金殷生) 개인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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