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참된 도피성, 예수 그리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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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sus Christ/주님과 함께
#주경훈목사님 #오륜교회 #주일설교 #20260906요약하나님께서는 가나안 정복 전쟁을 끝마친 후 승전비가 아닌 ‘도피성’을 세우라 명하셨습니다. 약속의 땅은 정죄와 보복이 아닌 ‘용서와 은혜’가 흐르는 곳이어야 하기 때문입니다.1. 넘어지기 전 피할 곳을 먼저 예비하시는 은혜하나님은 우리의 연약함을 아시기에, 우리가 넘어지기도 전에 피할 비상구인 도피성을 미리 준비해 두셨습니다.도피성은 각 지파가 분배받은 기름진 땅 한복판을 내어주어 세워졌습니다. 우리 역시 내 울타리를 넓혀 이웃을 품어주는 ‘선(先)용납, 후(後)이해’의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2. 영원한 도피성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도피성은 누구나 반나절이면 닿을 수 있는 거리에 있었고, 그 길은 항상 닦여 있었습니다.대제사장의 죽음으로 갇혀 있던 자..
김용규, 그리스도인은 왜 인문학을 공부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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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thers/이것 저것
책의 기본 비유부터저자가 신학을 설명할 때 쓰는 그림은 다리(橋)입니다. 한쪽 끝은 하늘(하나님의 계시, 성서)에, 다른 쪽 끝은 땅(인간의 세계, 인문학)에 걸쳐 있는 다리. 다리는 두 기둥이 다 있어야 섭니다. 성서만 붙들고 인문학 기둥을 뽑아 버리면 다리는 땅에 닿지 못하고, 인문학만 붙들면 하늘에 닿지 못합니다.더보기A 집사님: "성경만 있으면 돼. 철학이니 심리학이니 그거 다 사람 생각이야. 세상 학문 기웃거리다 신앙 버린 사람이 한둘이야?"B 집사님: "요즘 세상이 어떤 세상인데 아직도 그런 소리를. 니체도 읽고 하라리도 읽어야 대화가 되지."저자가 보기에 두 사람 다 절반씩 틀렸습니다. 그리고 그 이유를 논박이 아니라 역사로 보여 주겠다는 게 이 책의 전략입니다.A 집사님에게는 이렇게 말합니..
'가다'에서 '오다'로 from Going to Com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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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sus Christ/주님과 함께
우리는 떠날 사람들이 아니라 맞이할 사람들이다.톰 라이트의 『마침내 드러난 하나님 나라』(Surprised by Hope)와 『God's Homecoming』(2026)을 이어 읽고 나서1. 한 문장의 복음, 세 개의 오류한국 교회의 복음은 한 문장으로 압축된다."예수 믿고 천국 가세요."'예수 천당'이라는 오래된 외침이 그 문장의 압축판이고, 전도지의 마지막 장은 "당신은 죽으면 어디로 갑니까"라는 질문으로 끝나며, 장례식은 '천국 환송예배'라는 이름으로 드려진다. 우리는 "저 높은 곳을 향하여 날마다 나아갑니다"라고 찬송하고, 어떤 이는 "이 세상은 내 집 아니네"라고 노래한다. 나도 오래 그렇게 믿었다. 그런데 이 문장을 문법적으로 뜯어보면 세 자리가 있다."나는 천국 갑니다"주어는 '나'다. 동사..
우리는 왜 ‘천국 가는 것’이 성경의 결론이라 착각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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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sus Christ/주님과 함께
가다 vs. 오다‘영혼 탈출(Going to Heaven)’에서 ‘하나님의 귀환(God’s Homecoming)’으로의 패러다임 전환한국 교회의 복음을 한 문장으로 줄이면 아마 “예수 믿고 천국 가세요.”일 것입니다. 거리 전도의 “예수 천당”도, “죽으면 어디로 갑니까?”라는 전도지의 질문도 같은 방향을 가리킵니다. 장례에서는 사랑하는 이를 천국으로 떠나보냈다고 말하고, 찬송에서는 저 높은 곳을 향해 올라간다고 노래합니다. 이 말들이 모두 틀렸다고 말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신약은 실제로 죽은 성도가 그리스도와 함께 있다고 말합니다. 바울은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것”을 훨씬 좋은 일이라고 고백합니다. 문제는 그 그림이 기독교의 마지막 소망 전체를 대신할 때 생깁니다. 죽어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왜 완주(浣主)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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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thers/생각의 흐름
선친의 호 두 글자에 담긴 뜻제 선친의 '완주'라는 호를 처음 들으면 대개 온전할 완(完)을 떠올립니다. 그러나 실제로 쓰인 글자는 '빨다·씻다'라는 뜻의 浣(완)입니다. 이 글은 그 글자가 어떻게 골라졌고, 왜 하필 '빨래'의 글자였는지, 그리고 그 두 글자를 제가 어떻게 읽는지를 적습니다.완생(浣生)에서 완주(浣主)로'완생(浣生)'은 아버지가 2대 독자이자 종손으로 태어난 귀한 아들을 위해 지어 준 애정 어린 첫 호였습니다. 이 이름과 글자는 양명학을 공부한 외삼촌, 곧 아버지의 처남이 매우 고심하여 골라 권한 것이었습니다. 양명학에서 공부란 무엇을 더 쌓는 일이 아니라 타고난 양지(良知)를 가리는 사욕을 씻어내는 일이니, 양명학을 공부한 이가 하필 '씻는' 글자를 권한 것은 우연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우리는 고난의 이유를 다 알지 못하지만, 고난 속에서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는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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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sus Christ/주님과 함께
요약왜 하필 나일까, 라는 질문 끝에서살다 보면 도무지 이해할 수도, 받아들일 수도 없는 고난이 삶을 덮칠 때가 있습니다.가슴이 무너져 내리는 순간, 우리는 마음 깊은 곳에서 터져 나오는 두 가지 질문을 마주합니다."하나님이 계시다면 왜 이런 일이 일어날까?""이런 고통을 허락하신 하나님을 내가 계속 믿을 수 있을까?"첫 번째 질문에 대해 기독교는 모든 답이 적힌 완벽한 해설서를 주지 않습니다. 그러나 두 번째 질문에 대해서는 아주 분명하고 따뜻한 답을 건넵니다.1. 우리는 이유를 다 알지 못합니다우리는 인생의 작은 한 조각을 지나고 있을 뿐, 삶 전체와 역사의 큰 그림을 내려다볼 수 있는 자리에 있지 않습니다.우리가 고난의 구체적인 이유를 모른다고 해서 '아무 이유가 없다'는 뜻은 아닙니다. 또한, 고..
김은생 (金殷生) 개인 블로그
In His Ste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