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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First Seven Years 첫 일곱 해

Others/생각의 흐름 2015. 8. 29.

1984년 봄 대학교양영어 시간의 추억

대학교 1학년 때 '버나드 맬라무드'라는 낯선 이름을 교양영어 교과서에서 보게 되었습니다.
'The First Seven Years'가 교과서에 나와 있던 그의 단편 소설의 제목이었습니다.
문체는 쉽지 않았습니다. 힘겹게 예습을 했지만 전체 문맥과 주제를 파악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강사님으로부터 강력한 힌트를 얻었습니다. 'Genesis 29,20' 창세기 29장 20절....
"야곱은 라헬을 아내로 맞으려고 칠 년 동안이나 일을 하였지만, 라헬을 사랑하기 때문에, 칠 년이라는 세월을 마치 며칠같이 느꼈다. (표준 새번역 성경)"

교양영어 강사님의 요청에 제가 자원하여 앞으로 나가 경제과 같은 반 친구들 앞에서 설명했던 성경 내용의 요약은 다음과 같습니다.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은 두 쌍둥이 에서와 야곱을 낳았습니다. 야곱은 나이 들어 기력이 쇠해지고 앞을 잘 못 보던 아버지를 속이고 형의 몫인 장자에 대한 축복을 빼앗아 받습니다. 그리고 형의 보복을 피해 할아버지 아브라함의 고향이며 어머니 리브가의 친정이 있는 메소포타미아로 달아납니다. 그리고 외삼촌 라반을 만나 한 달가량 지났을 때, 보수를 정하려 하는 외삼촌께 야곱은 7년간 일을 해드리는 대신에 작은딸 라헬과 결혼할 수 있게 해달라고 청하여 승낙을 받습니다. 그리고 위의 성경 구절이 나옵니다. 그 칠 년이 며칠 같았다고요... 사랑의 힘이었죠.
그러나 칠 년 후 혼인 잔치에 취했던 야곱의 신방에 들어온 여인은 첫째 딸 레아였습니다. 그리고 다시 외삼촌과의 교섭을 거쳐, 7일간 레아와 신방을 차린 후에야 비로소 라헬과 초야를 갖게 됩니다. 추가 7년을 외삼촌께 또 다시 저당 잡히고요."

맬라무드의 단편소설은 여기에서 그 제목을 따왔습니다.
이 소설에는 1) 구두수선공 펠드, 2) 조수(助手) 소벨, 3) 펠드의 딸 미리암, 그리고 4) 학업에만 열중하여 미래가 유망해 보이는 맥스.. 이렇게 4명의 등장인물이 나옵니다. 펠드는 몇 년간 학업에만 열중해온 맥스에게 관심을 갖고, 그의 딸인 미리암과 만날 기회도 적극적으로 제공합니다. 하지만, 짧은 만남 후에 미리암은 맥스에게 호감이 없음을 분명히 했고, 오히려 미리암을 진정 좋아하는 소벨이 부각됩니다. 그는 미리암에게 책에 대한 여러 비평을 빌려주고 이것을 통해서 미리암과 서로 호감을 가지게 되었던 것입니다. 여러 갈등이 전개된 후 결말로서는, 소벨은 19세인 미리암에 대한 사랑을 품고 지난 5년간 열심히 일했고 또 앞으로 2년을 기다려 묵묵히 일을 함으로써, 미리암이 21세가 되어 다시 결혼 얘기를 꺼낼 기회를 기다리게 된다는 얘기입니다.

이 소설을 처음 접한 후의 지난 30여 년을 살면서 The First Seven Years 같은 꿈같이 달콤한 시절도 있었고, 정말 시간이 가지 않는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던 때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언제나 함께 하시며 꿈과 사랑으로 채우시고 달래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이 시간 다시 생각합니다. 믿음의 첫사랑을 회복하기를, 그래서 구원의 즐거움이 회복되기를 소망합니다.


영문 원문은 다음 첨부 파일을 다운로드하세요.

Malamud_Seven_Years.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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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First Seven Years <첫 일곱 해> 전문

구두 수선공 펠드는 조수인 소벨이 그의 공상에 어찌 그리 무감각한 지 저쪽 작업대에서 연신 두들겨대는 것을 잠시라도 멈추려고 하지 않는 것 때문에 짜증이 났다. 그는 그쪽으로 쳐다보았지만 소벨의 벗어진 머리는 구두 골 위로 굽혀진 채로 작업을 하고 있었고 눈치를 채지 못하는 것이었다. 구두 수선공은 머쓱하게 어깨를 으쓱하고 군데군데 성에가 낀 창문 너머로 희뿌옇게 날리는 2월의 눈을 바라보았다. 창 밖의 하얀 눈이나 그가 유년기를 보냈던 폴란드 마을에 대한 갑작스러운 아련한 추억도(어느 날 아침 눈발을 뚫고 학교로 터벅터벅 걸어가는 그의 모습을 보았을 때부터 계속 마음에 떠오르는 인물인) 대학생 맥스에 대한 그의 생각을 돌리게 할 수 없었다 그는 맥스를 몹시 좋아하였는데, 겨울이나 더운 날이나 할 것 없이 그는 몇 년간 학업에 열중해 왔던 것이다. 딸이 아닌 아들이 한 명 있었으면 하는 옛 바람이 구두 수선공을 괴롭히기 시작했다. 하지만 펠드는 현실적이었기에 그런 생각을 눈발에 날려버렸다. 그래도 한 상인의 아들인 맥스의 부지런함과 교육에 대한 미리암의 무관심, 이 둘을 놓고 그는 비교할 수밖에 없었다. 사실 미리암은 항상 책을 끼고 살았는데, 막상 대학에 진학할 기회가 생겼을 땐, 이를 거부하고 일자리를 구해 보겠다고 말했던 것이다. 자식을 대학에 보낼 여유가 있는 아버지가 몇이나 있겠냐고 하면서 그는 그녀에게 대학에 가라고 계속 권유를 했었지만 그녀는 독립하고 싶다는 말뿐이었다. 또 그녀는 “교육이 말이 나왔으니, 교육이라는 게 책 보는 것이지 뭐 다른 게 있어요?” 라면서 책은 소벨이 부지런하게 고전을 읽고 있으니, 평소처럼 그가 나에게 책에 대해선 충고를 해 주면 된다는 그녀의 대답은 아버지를 무척 슬프게 하였다.

눈 속에서 누군가 나타났고 문이 열렸다. 카운터에 이르자 그 사람은 젖은 종이 백에서 수선할 낡은 신발 한 켤레를 꺼냈다. 그가 누구인지 구두 수선공은 순간 알지 못했다. 그러다가 그 사람의 얼굴을 완전히 분간하기도 전에 이 사람이 누구인지 깨닫자 그의 가슴이 떨렸다. 다름 아닌 맥스가 서있었고 그의 헌 신발을 어떻게 해주길 바라는지 당황한 듯 설명하고 있는 것이었다. 열심히 귀를 기울였지만 한 마디도 그는 들을 수 없었다. 그에게 갑자기 찾아온 기회(맥스에게 미리암에 대해 이야기할 기회)는 그의 귀를 멍멍하게 했다. 그 아이 보고 미리암과 데이트를 하라고 넌지시 이야기해 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 한번 이상이었던 것이 분명했기 때문에 그런 생각이 자신에게 언제 떠올랐던 것인지 그는 정확히 기억할 수 없었다. 하지만 감히 꺼낼 수가 없었다. 만약 맥스가 싫다고 하면 맥스의 얼굴을 어떻게 다시 볼 수 있겠는가? 아니면 독립 타령을 하던 미리암이 쓸데없이 간섭한다고 벌컥 화를 내며 자기에게 소리를 지르면 어떻게 된단 말인가? 그래도 이건 너무 좋은 기회라 그냥 내버려 둘 수가 없었다. 단지 소개만 하면 되는 일이었다. 만약 둘이 우연히 다른 곳에서 만났다면 오래전에 친구가 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니, 그 둘을 한 자리에 모으는 것이 자신이 해야 될 의무로서, 그 이상의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다. 예를 들자면 지하철에서 우연히 만난다거나 아니면 길거리에서 서로의 한 친구를 소개하는 것과 같은, 충분히 눈감아 줄 수 있는 아무런 해가 안 되는 일이 아닌가? 그냥 한번 그녀를 만나 얘기해 보게 하자. 그는 분명 관심을 가질 것이다. 미리암의 경우도 그렇다. 허풍 센 세일즈맨이나 무식한 점원만 만나다가 잘 생기고 학자다운 아이를 알게 되는 것이 사무실에서 고작 일이나 하는 여자아이에게 뭐가 해가 될 게 있겠는가? 그가 그녀에게 대학을 가야겠다는 욕망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는 일이었다. 그게 아니더라도 펠드는 마침내 품고 있던 속마음을 -그녀에게 교양 있는 사람과 결혼해 더 나은 삶을 살게 해 줄지도 모르는 일- 생각했다.

맥스가 자기 선발에 어떻게 때 주기를 바라는지 설명을 다 마치자, 펠드는 그저 못 본 척하면서 구두 밑창에 크게 구멍이 난 선발에 큰 백묵으로 X자 표시를 하였고, 못 부분까지 바싹 닿은 고무 뒷굽에다 '0'자 표시를 하였는데, 그 표시를 거꾸로 한 게 아닌가 싶어서 마음에 걸렸다.

맥스가 얼마냐고 묻자 구두 수선공은 목청을 돋우고는 소벨이 집요한 망치질 소리를 이기면서 맥스에게 옆문으로 해서 복도로 잠시 나가자고 말했다 놀라긴 했지만 맥스는 그의 요구대로 밖으로 나왔고, 펠드는 그의 뒤를 따라갔다. 소벨의 망치질이 멈췄기 때문에 한동안 그 둘은 조용했으며, 그 상황은 둘 다 할 말이 없다는 것을 이해하고 있는 듯했다. 그리고 다시 망치질 소리가 시작됐다. 펠드는 소리가 시작되자 왜 얘기 좀 나누자고 했던 것인지 큰 소리로 빨리 맥스에게 말했다.

"네가 고등학교에 들어갔을 때 말이야." 어두 침침한 복도에서 그는 말했다. "아침에 네가 역에서 학교로 가는 모습을 지켜봤는데, 저 아인 참 훌륭하고 많은 걸 배우고 싶어 하는 애로군 하고, 늘 혼자 생각했단다. "

"고맙습니다." 긴장한 듯 자세를 흐트러뜨리지 않고 맥스는 말했다. 그는 큰 키에 깡마른 체구의 날카로운 인상이었고 특히 매부리 같은 코가 그랬다. 그는 발목까지 늘어지는 헐렁하고 긴, 꾀죄죄한 코트를 입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앙상한 어깨 위에 양탄자를 걸쳐놓은 것 같았으며, 가지고 온 신발만큼이나 낡고 물기가 축축한 갈색 모자를 쓰고 있었다.

"난 장사꾼일세" 구두 수선공은 난처함을 숨기기 위해 돌연 그렇게 말했다. 그러니 단도직입적으로 이야기하지 내겐 딸이 하나 있어. 미리암이라고 해. 19살이고 썩 괜찮은 아이이며, 길을 거닐면 사람들이 다 쳐다볼 정도로 아주 예쁘지. 그리고 똑똑해. 항상 책을 끼고 살지. 그래서 생각한 것인데 너처럼 학식 있는 아이라면 이런 애를 만나보면 관심이 있을 것 같거든. 말을 마치고 그는 슬쩍 웃었다. 말을 더 하고 싶은 유혹이 들었지만 그러지 않는 게 좋다고 생각했다. 맥스는 매처럼 땅을 쳐다보았다. 잠시 거북한 상태로 말없이 있다가 그는 물었다.

"19살이라고요?"

"그래."

"사진이 있으면 좀 봐도 될까요?"

"잠깐만 기다리게." 구두 수선공은 급히 안으로 들어가서 사진을 한 장 갔고 돌아왔다. 맥스는 사진을 불빛 쪽으로 들어 올렸다.

"괜찮군요″그는 말했다

펠드는 기다렸다

"이성적입니까? 변덕이 심한 여자는 아니겠죠?"

"아주 이성적이지."

잠시 후에, 만나봐도 되겠다고 맥스는 말했다.

"이건 내 전화번호야″급히 종이쪽지를 전해주며 구두 수선공은 말했다.

"딸애에게 전화하게, 6시면 집에 오니까."

맥스는 종이를 접어 낡은 가죽 지갑 안에 넣었다

"그리고 신발..." 그는 말했다. “고치는데 얼마죠?"

"그건 걱정하지 말게.″

“그저 좀 알고 싶어서요."

"1달러 50센트." 구두 수선공은 말했다. 순간 그는 기분이 나빴다, 보통 이런 경우의 것은 수리비가 2달러 25센트였던 것이다. 제 값을 불렀거나 아니면 공짜로 해주어야 했는데 하는 생각이었다. 나중에 가게에 안에 들어서면서 심하게 부딪치는 금속 소리에 놀라 보니 소벨이 맨 구두 골을 온 힘을 다해 두들기고 있는 것이다. 구두골이 부러지면서 쇠가 탁하고 벽으로 튀는 것이다. 하지만 화가 머리끝까지 난 구두 수선공이 버럭 소리를 지르기도 전에 그 조수는 옷걸이에서 모자와 코트를 확 집어 들고는 눈 속으로 나가 버렸다.

펠드는 딸과 맥스의 일이 어떻게 돼 갈 것인지 기대가 되기도 했지만 한편으로 마음에 큰 걱정거리가 생겼다. 그 변덕이 심한 조수가 없이 그는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몰랐다. 특히 그가 가게를 꾸려 가는 게 벌써 몇 년째가 되었기 때문이다.

구두 수선공은 무리하면 바로 목숨을 위태롭게 할 심장병을 오랫동안 앓아왔다. 5년 전에 심장마비가 있은 후, 가게를 경매에 넘겨버리고 몇 푼 안 되는 수입으로 먹고살던지, 아니면 결국엔 자신을 파렴치한 직원에게 맡겨서 파산하게 될 것인지,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할 것 같았다. 그러나 절망적인 바로 그 순간에 폴란드 출신의 피난민 소벨이 어느 날 밤에 길에서 나타나서 일자리를 달라고 한 것이다. 그는 작달 만한 키에 옷차림은 남루하였고 예전엔 금발이었을 벗어진 머리에, 너무도 평범한 얼굴과, 슬픈 책에 쉽게 눈물을 흘리는 부드러운 푸른 눈을 지닌 젊지만, 그러나 나이가 들어 보이는 사람이었다. -누구도 그가 30살이라곤 누구도 생각 못했을 것이다.- 비록 구두 수선에 대해 아는 건 없었지만 소질이 있으니 일을 가르쳐만 주면 몇 푼 안 받고 일하겠다고 그는 말했다. 결국 유태인끼리 같이 있으면 전혀 모르는 사람보다는 두려움이 덜 하리라는 생각에 펠드는 그를 고용하였고 6주가 채 안되어서 그 피난민은 그에 못지않게 구두를 잘 고쳤고 얼마 안 돼서 자신을 대신해 그 가게를 능숙하게 이끌어 갔기에 펠드는 완전히 안심하게 되었다.

펠드는 어떤 일이든지 그를 믿을 수 있을 정도였고 또 실제로 믿었기에 가게에 한두 시간 있다가 소벨이 빈틈없이 잘 지키리라는 걸 알고 있기에 금고 안에다 모든 돈을 놓아둔 채 집으로 가는 일 이 빈번해졌다. 놀라운 일은 소벨이 요구하는 것이 별로 없다는 점이었다. 그가 필요로 하는 물건은 별로 없었다. 돈에 관심이 없었고 책 이외에 것엔 관심이 없는 듯하고, 저녁에 하숙집에서 혼자서 한 권씩 읽은 책에 대한 여러 비평을 미리암에게 빌려 주었다. 딸이 14살 때부터 무슨 하나님의 말씀이 적혀 있는 것처럼 한쪽 한쪽을 신성한 태도로 읽고 있으면 펠드는 어깨너머로 그 두툼한 비평문을 슬쩍 보고는 했다.
소벨을 붙잡아 두기 위해선 펠드는 그렇게 하도록 마음을 쓸 수밖에 없었다. 소벨은 그가 요구하는 것 이상을 받았다. 하지만 펠드가 소벨에게 다른 곳에서 일한다거나 가게를 따로 연다면 상당한 돈을 받을 것이라고 솔직히 말하긴 했어도 현재 받고 있는 봉급보다 더 나은 봉급을 소벨이 받아들이도록 적극적으로 주장하지 않은 게 자꾸 양심에 걸리는 일이었다. 그러면 그 조수는 자기는 다른 곳에 가는데 관심이 없다고 조금은 무뚝뚝하게 대답을 하였다. 무엇이 그를 이곳에 붙들어 매는 것일까? 왜 이곳에 머물러 있는 거지? 하며 펠드는 스스로에게 자주 물어보기도 하지만 그 사람은 분명 피난민으로서의 끔찍한 경험 때문에 세상을 두려워한다고 펠드는 스스로에게 대답하였다. 구두 골이 부러진 그 일이 있은 후에, 비록 건강이 위험할 정도로 무리가 따르고 장사가 손해 보는 일이 있어도 그냥 소벨을 하숙집에서 조바심이 나도록 내버려 두겠다고 구두 수선공은 생각했다. 그러나 부인과 딸로부터 몇 차례 잔소리를 들은 후에 결국 그는 소벨을 찾아갔다. 

얼마 안 된 일이지만 전에도 그런 일이 있었다. 펠드는 별생각 없이 딸의 눈이 너무 충혈이 되었으니 딸애한테 책을 너무 많이 주지 말라고 했을 뿐인데. 소벨은 자신이 모욕당했다고 생각했는지 발끈하여 자리를 떠나버린 것이다. 구두 수선공이 그에게 사과를 하고 나서야 소벨은 되돌아왔고, 결국 그 일은 평범한 일 인양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된 일이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아니었다. 펠드는 눈길을 헤치며 소벨의 집으로 갔다. 미리암을 보낼까 하고 생각해 봤지만 탐탁지가 않았다. 뚱뚱한 주인은 문에서 코 맹맹한 소리로 그가 집에 없다고 말했다. 갈 곳이 어디 있기나 하나? 펠드는 주인 말이 뻔한 거짓말임을 알았다. 하지만 그래도 어떤 이유에서인지 자신의 그런 생각에 확신이 없었다. 아마 추위와 피곤해서였던 것 같다. 펠드는 그를 만나려고 고집 피우지 않기로 결심했다.

그 대신 그는 집으로 돌아가서 새 조수를 구했다. 문제를 해결 하긴 했지만 썩 만족스러운 것은 아니었다. 전 보다 할 일이 많아진 것이다. 가령 소벨에게 했던 것처럼 , 짜증을 내고 씩씩거리며 일을 하는 무뚝뚝하고 시꺼먼 새 조수에게 열쇠를 맡기고 싶지 않아 가게문을 열기 위해 일어나야 했으니 아침에 늦게 까지 누워 있는 것이 불가능하게 된 것이다. 게다가 이 조수는 그런대로 수선은 할 줄 알지만 가죽의 품질이나 가격에 대해선 아는 게 없어서 펠드 자신이 직접 물건을 구입하였고, 밤마다 문 닫을 시간이 되면 금고 안의 돈을 세고 잠가야만 했던 것이다.

그렇다고 전혀 만족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맥스와 미리암에 대한 생각에만 파묻혀 살 수 있게 된 것이다. 그 대학생은 딸애에게 전화를 걸었고, 그들은 돌아오는 금요일에 만나기로 했다. 토요일이면 더 근사한 진짜 데이트가 이루어질 수 있을 거라고 느꼈기에 구두 수선공은 개인적으로 토요일이 더 마음에 들었지만, 미리암이 금요일을 선택했으니 그로서는 할 말이 없는 없었다. 요일은 중요하지 않았다. 데이트 후가 중요한 것이었다. 서로 마음에 들어 친구가 되고 싶은 걸까? 이걸 알기까지는 오랜 시간을 기다려야 할 생각을 하고 그는 한 숨을 쉬었다. 간혹 그는 미리암에게 그 아이에 대해 얘기해 보고 맘에 드는 타입이냐고 물어보고 싶은 유혹이 들었다. 그는 단지 맥스란 아이는 괜찮은 아이이고 그래서 그 아이 보고 너에게 전화해 보라고 했다는 말을 했을 뿐이다. 그러나 한 번은 그 아이가 맘에 드냐고 물어보자 그녀는 그걸 어떻게 아냐고 하면서 그에게 쏘아 붙었다. 마침내 금요일이 왔다. 그다지 썩 몸이 좋은 게 아니라 펠드는 침대에 누워있었고 부인 역시 그와 침실에 있는 게 낫다고 생각하고 있던 참에 맥스가 왔다.

미리암이 그 아이를 맞이했고 그녀의 부모는 그들이 얘기를 나눌 때, 그 아이의 거친 목소리와 그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떠나기 바로 전에 미리암은 맥스를 침실로 데리고 왔고, 그 아이는 잠시 거기 서있었다. 그는 큰 키에 약간 구부정한 모습으로 두툼한 약간 처지는 양복을 입고 있었는데, 분명 편한 자세로 구두 수선공과 그의 아내에게 인사를 건넸다. 분명 좋은 표시였다. 그리고 미리암은 하루 종일 일했는데도 청순하고 예뻐 보였다. 그녀는 큰 체구에 몸매가 잘 다듬어진 아이로 솔직했다. 그녀는 어머니는 이미 잠들었지만 구두 수선공을 잠자리에서 나와 잠옷을 입고 부엌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놀랍게도 미리암은 식탁에 앉아 책을 읽고 있었다.

“그래 어디 갔었니?” 즐거운 듯 펠드는 물었다.

“산책 갔다 왔어요.” 고갤 들지도 않고 그녀는 말했다.

“그 아이에게 충고했었지.” 목청을 돋우며 펠드는 말했다.

“돈을 너무 많이 써서는 안 된다고 말이야.”

“전 상관 안 했어요.”

구두 수선공은 차를 마시기 위해 물을 끓이고는 차 한잔과 두툼한 레몬 한 조각을 가지고 식탁에 앉았다.

“그래...” 그는 한 모금 마신 후 한숨을 쉬었다.

“어때, 재미있니?”

“괜찮았어요.”

그는 말이 없었다. 그녀는 그의 실망감을 느꼈음에 틀림없다. 그녀는 덧붙여 말했다.

“첫 만남에 많은 걸 말할 순 없잖아요.”

“그 청년을 또 만날 거니?”

페이지를 넘기며, 그녀는 맥스가 한번 더 만나자고 했다고 말했다.

“언제 보기로 했는데?”

“토요일에요.”

“그래서 넌 뭐라고 했니?”

“뭐라고 했냐고요?” 뜸을 들이며 그녀는 말했다.

“좋다고 말했지요.”

후에 그녀는 소벨에 대해 물었다. 펠드는 그렇게 말하는 이유를 정확히 알지 못한 채 소벨은 다른 데 직장을 구했다고 말한 것이다. 미리암은 더 이상 말이 없이 책을 읽기 시작했다. 양심이 구두 수선공을 괴롭히지 않았다. 토요일에 있을 데이트에 만족했으니까.....

2주 동안 그는 간간히 질문을 던짐으로써 어렵사리 미리암에게서 맥스에 관한 정보를 얻어내었다. 그를 깜짝 놀라게 한 사실은, 그는 의사나 변호사가 되기 위해 공부를 하는 게 아니라 회계사 학위를 받는데 필요한 비즈니스 과정의 수업을 받고 있다는 것이다. 회계사를 금전을 관리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고 ‘좀 더 높은’ 직업을 바랐기 때문에 펠드는 약간 실망을 하였다. 하지만 그 방면을 조사해 봤더니, 공인회계사는 굉장히 존경받는 위치의 사람이란 걸 알게 되었고, 그래서 토요일이 다가오자 그의 만족은 대단했다. 그러나 토요일은 바쁜 날이라서 그는 대부분 가게 안에 있었고, 그래서 미리암을 부르러 맥스가 왔을 때 그를 보지 못했다. 부인으로부터 그는 그들의 만남에 특별한 것은 없었다는 걸 알았다. 맥스가 벨을 울리자 미리암은 코트를 챙기고 그와 나갔던 것이다. 그 이상의 것은 없었다. 펠드는 캐묻지 않았다. 부인은 그다지 관찰력이 예민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무릎에 신문을 올려놓고 미리암을 기다렸는데, 미리암에 대한 생각에 너무 골몰한 나머지 좀체 신문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잠에서 깨 보니 방안에 그녀가 피곤한 듯 모자를 벗고 있었다. 그녀에게 인사를 하며 그는 문득 그날 저녁에 대해 물어보는 것이 왠지 모르게 두려웠다. 미리암은 처음엔 분명히 이야기하지 않고 얼버무리려다가 생각을 바꾸고는 잠시 후 말했다.

“지루했어요.”

펠드가 고통스러운 실망감에서 벗어나 그 이유를 묻자 그녀는 서슴없이 대답했다. “그 사람은 물질 주의자에 불과해요.”

“물질 주의자라니, 무슨 소리냐?”

“그는 영혼이 없어요, 오로지 물질에만 관심이 있어요.”

그는 한참 동안 그녀의 말을 곰곰이 생각해보고는 물었다.

“다시 그를 만날 거니?”

“그가 만나자는 말을 안 했어요”

“만약 만나자고 한다면?”

“전 안 만나요.”

그는 논쟁하지 않았다. 하지만 날이 갈수록 그녀가 마음을 바꾸었으면 하는 그의 바람은 커졌다. 미리암이 경험 없는 눈으로 알아보지 못하는 더 많은 어떤 점이 그에게 있다는 걸 확신하였기 때문에 그가 전화해 주기를 그는 바랬다. 하지만 맥스는 전화하지 않았다. 사실 그는 다른 길을 통해 학교에 갔으며, 구두 수선공의 가게를 더 이상 지나쳐 가지 않았고, 이에 펠드가 받은 상처는 컸다.

그러나 어느 날 오후 맥스가 와서 신발을 달라고 했다. 구두 수선공은 다른 신발과 섞이지 않게 따로 신발을 놓아두었던 선반에서 그의 신발을 꺼냈다. 펠드 자신이 직접 수선을 해서 밑창과 굽이 튼튼하게 잘 고쳐졌다. 신발은 반짝반짝하게 광을 내놔서 새것보다도 더 좋아 보였다. 그 신발을 보자 맥스의 목젖이 한번 올라갔다 내려왔고 그의 눈에선 작은 빛이 반짝였다.

“얼마입니까?” 구두 수선공을 쳐다보지 않고 말했다.

“전에 말했던 것처럼.” 펠드는 슬픈 듯 대답했다. “1달러 50센트일세.”

맥슨은 구깃구깃한 지폐 두 장을 건네주었고, 거스름돈으로 새로 만든 은전 50센트를 받았다. 그리고 떠났다. 미리암 얘기는 하지 않았다. 그 날밤 구두 수공은 새 조수가 지금까지 돈을 훔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는 심장마비를 일으켰다.

심장마비가 약하긴 했지만 3주간 그는 누워 있었다. 미리암이 소벨을 부르러 갔다고 하자, 아픈 와중에도 그 생각에 그는 분노로 치를 떨었다. 하지만 내심 다른 방도가 없음을 그는 알고 있었고, 게다가 다시 가게에 나가서 보낸 힘든 하루로 인해 그의 마음은 굳어졌다. 그날 밤 저녁식사 후 아픔 몸을 끌고 소벨의 하숙집으로 갔다. 몸에 안 좋을 걸 알면서도 그는 계단을 힘들게 올라갔다. 방은 도로를 향한 창문이 하나밖에 없는 작고 볼품없는 방이었다. 방 안에는 좁은 침대 하나에 낮은 식탁이 있었고 책들이 벽을 따라 바닥 위에 어지럽게 널려져 있었는데, 배운 것이 하나도 없으면서도 읽는 게 저리도 많은가 싶은 것은 저 소벨이란 녀석은 참 희한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한때 소벨에게 물어본 적이 있었다. 책을 이토록 읽어대는 이유가 뭐냐고, 그 조수는 대답할 수 없었다. 대학에서 공부한 적이 있냐고 그는 물어보았는데 소벨은 고개를 흔들었다. 알기 위해 책을 읽는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무엇을 알려고 하는지, 그리고 왜 알려고 하는지, 구두 수선공은 계속 물었다. 소벨은 설명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건 그가 이상한 사람이기 때문에 많은 책을 읽는 것이라는 점을 입증해 주었다. 펠드는 앉아 호흡을 고르고 했다. 조수는 육중한 등을 벽에 기댄 채 침대에 앉아 있었다. 그의 셔츠와 바지는 깨끗했고, 그의 뭉뚝한 손가락은 한동안 일을 안 해서인지 이상할 만큼 창백했다. 그의 얼굴은 창백했는데, 그날 가게에서 뛰쳐나간 후 줄 곧 방 안에 틀어박혀 있은 듯싶다.

“그래 언제 다시 가게에 나올 건가?”

펠드는 그에게 물었다.

놀랍게도 소벨은 “안 갑니다.”라고 대답하고는 벌떡 일어서서 비참한 길거리가 내다보이는 창문 쪽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왜 다시 가게에 나가야 되는 거죠?” 그는 소리쳤다.

“봉급을 올려주겠네.”

“봉급 따윈 상관없어요!” 그가 봉급 따위는 신경 쓰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는 구두 수선공은 달리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난감했다.

“소벨 내게서 원하는 게 대체 뭔가?”

“아무것도 없어요.”

“난 항상 자네를 내 아들처럼 대해줬는데.” 소벨은 그 말을 듣고 격렬히 부인했다.

“그러면 거리에 이상한 녀석이 미리암과 사귀기를 바라고 계십니까? 저에 대한 생각은 왜 안 하시는 거죠?”

구두 수선공의 손과 발이 차가워졌다. 목소리가 너무 쉬어서 말을 할 수가 없었다.

마침내 그는 목청을 돋우고 거친 목소리로 말했다.

“내 가게에서 일하는 35세의 구두 수선공과 내 딸이 도대체 무슨 상관이 있다는 건가?”

“제가 아저씨를 위해 그렇게 오래 일한 게 무엇 때문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소벨은 소리를 질렀다.

“쥐꼬리만 한 봉급 받으며 고작 먹고 마시고 잠자리 얻기 위해 제 5년의 인생을 희생했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러면 무엇 때문인가?”구두 수선공은 외쳤다.

“미리암이요” 그는 불쑥 내뱉었다. “그녀를 위해서요...”

잠시 후 구두 수선공은 간신히 말했다. “봉급을 현금으로 내 주지.” 그리고 말이 없었다. 흥분이 되어 화가 끓어오르는 반면 그의 마음은 냉정하게 분명 해졌다. 그리고 소벨이 이런 감정을 갖고 있는 것을 그는 내내 감지하고 있었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럴 리 없다고 그는 의식적으로 생각해 왔지만 , 그는 그것을 계속 느껴 왔고 그래서 두려웠다.

“미리암도 알고 있나?” 그는 쉬어버린 목소리로 말했다.

“알고 있어요”

“자네가 말했는가?”

“아니요”

“그러면 미리암이 어떻게 알고 있나?”

“어떻게 아냐고요?” 소벨은 말했다.

“왜냐하면 그녀는 알고 있으니까요. 내가 어떤 사람인지 내 마음이 어떤지 그녀는 알고 있어요.”

펠드는 갑자기 분명해졌다. 뭔가 비유적인 방법으로 즉, 책과 이에 대한 비평으로 소벨은 자신이 그녀를 사랑한다는 걸 미리암에게 이해시켜준 것이다. 그리고 자신이 속았다는 것에 그에게 엄청난 분노를 느꼈다.

“소벨 넌 제정신이 아니야.” 그는 잔인하게 말했다.

“미리암은 너처럼 추악한 사람과 절대 결혼하지 않을 거야.”

소벨은 분노로 얼굴이 흙빛으로 변했다. 그는 펠드를 저주했다. 하지만 그때, 참으려고 몸을 떨었지만 눈물이 가득 고였고, 결국 그는 흐느끼기 시작했다. 펠드에게 등을 돌린 채, 창문 가에 서서 주먹을 꽉 쥐고 울음을 참으려는 듯 어깨가 들썩거렸다.

그를 지켜보고 있으니 구두 수선공의 분노가 차츰 사그라졌다. 그에 대한 동정심의 감정이 일어났다. 그의 눈가가 촉촉해졌다. 정말 슬프고 이상한 일이었다. 피난민이며, 받은 고통들로 머리가 벗어지고 나이가 들어버린 다 자란 어른이, 가까스로 히틀러의 살육을 피해 미국으로 와서 자기 나이의 반도 안 되는 여자를 사랑하게 되다니... 5년의 세월을 하루하루 그는 의자에 앉아 자르고 때리고 하며 시간을 보내면서 속 후련히 이야기도 할 수없이 아무 말 못 하고 절망적인 심정으로 어린 소녀가 어엿한 여자로 성장하기를 기다렸던 것이다.

“추악하다고 한 건 진심이 아닐세." 그는 들릴락 말락 하게 말했다.

그러고 나서 그는 추악하다고 한 것은 소벨이 아니라 미리암의 삶을 두고 한 말임을 깨달았다. 딸에 대해 뭔가 이상하게 죄어오는 슬픔을 느꼈다. 이미 그녀가 소벨의 신부, 구두 수선공의 아내가 되어버리고, 그녀의 어머니와 다를 바 없는 인생을 살아가기라도 하듯이, 그리고 그녀에 대한 그의 모든 꿈 -이 꿈 때문에 평생 가슴 죄어가며 일을 하면서 노예처럼 파괴해 버린 것인데- 바로 더 나은 사람에 대한 이런 모든 꿈들이 다 사라져 버린 것이다.

방은 조용했다. 소벨은 창문가에 서서 책을 읽고 있었다. 신기한 것은 책을 읽을 때 그는 젊어 보였다.

“내 딸애는 이제 열아홉밖에 안됐어.” 펠드는 힘없이 말했다.

“결혼하긴 너무 어린 나이잖아. 앞으로 2년 동안 21살이 되기 전까진 말하지 말아라. 21살이 되면 그때 얘기하게.”

소벨은 대답하지 않았다. 펠드는 일어나 방을 나갔다. 계단을 천천히 내려갔다. 하지만 일단 밖으로 나오자 거리를 하얗게 만드는 눈이 내리고 차디찬 밤이었지만 그는 좀 더 힘 있게 성큼 걸어가기 시작했다.

다음날 아침 구두 수선공이 가게문을 열기 위해 착잡한 마음으로 도착했을 때, 그는 올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의 조수가 이미 구두 골에 앉아 가죽을 두들기고 있는 것이었다. 그의 사랑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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