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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신앙 생활에 대한 단상들

Jesus Christ/주님과 함께 2015. 10. 17.

레너드 스윗 박사 관련 내용들에서...내 생각을 정리한다.


A. 거룩함에 대하여
 : '유대인들은 더러운 것에 가지 않는 것을 거룩함이라 여겼다. 예수님은 그걸 뒤바꿔 놓았다. 그 사람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 거룩함이라고했다. 예수님이 제자의 발을 씻은 것도 몸에서 가장 더러운 걸 씻은 것이다. 세상의 추악함 속에서 예수님을 볼 수 있어야 한다.'

예수님은 더러운 곳에 가지 않거나 더러운 것을 손대지 않는 방식이 아니라, 더러운 곳을 다니며 더러운 것을 묻혀온 제자들의 발을 씻겨 주셨다. 그를 통해 제자들의 마음 속으로 들어가셔서 그들을 변화시키셨다.

내 신앙생활은 어떤 모습인가? 정죄하고 밀어내고 있는가, 그들을 수용하며 그들의 상처를 씻겨주고 있는가?


B. JDD (Jesus Deficit Disorder, 예수 결핍 장애)에 대하여

 : 나는 기독교 신앙을 지키며 살아가고 있으나, 내 하루의 삶은 예수님 이외의 것들이 너무 많고, 교회에서의 예배나 교제도 그리스도 이외의 것으로 너무 많이 변질되어 있음을 느낀다. 

마틴 루터(1483~1546)의 말을 인용하면, 

‘하나님은 교회를 만드셨고, 악마는 채플을 만들었다.’ 

하나님도 뭔가를 하시지만 악한 세력도 뭔가를 한다. 

기독교는 미국에서 성공적으로 성장했고 한국의 기독교도 그 궤도를 따르되 그 폭을 더욱 크게 해서 큰 성장을 이루었다. 기독교인이 된다는 건 아주 존경 받는 일이었다. 

그런데 교회가 예수님 대신 그 동안의 성공, 그 자체를 예배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예수 결핍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기독교적 세계관'이란 말은 적절하지 않다. 기독교인이 가져야 할 세계관은 없다. 세계관은 모두 머리에서 나온 것인 바, 거기에서는 아무것도 얻을 게 없다. 성경은 하나님을 맛보고, 그걸 느끼라고 했다. 우리에겐 라이프(Life·삶 혹은 생명)가 필요한 것이지 뷰(View·관점)가 필요한 게 아니다. ‘예수를 믿는다’고 할 때 ‘믿는다(Believe)’란 단어에서 ‘e’만 빼보라. 그럼 ‘Be+live(생명이 되어라)’가 된다. 예수를 믿는 이는 생명이 되어야 한다. 그 생명에 내가 잠겨야 한다.


C. 립싱크 찬양

 : TV에 가수가 나와서 립싱크를 하면 특정 음악방송에 나올 수 없거나, 가창력이 없다는 비판을 한 몸에 받게 된다.

크리스챤으로서 우리는 많은 찬양을 부르지만, 입모양만 벙긋거리거나 그저 감정에 치우쳐서 예수 그리스도 없는 찬양을 부르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하나님을 진실로 찬양해야 하며, 거기에는 반드시 예수 그리스도가 계셔야 한다.


D. 내가 만든 예수 vs. 이미 있는 예수

 : 선교나 전도를 할 때 우리는 우리가 예수님을 모시고 간다고 생각하지만, 언제나 우리가 가기 전에 이미 하나님과 예수님이 일하고 계신 것을 발견하곤 한다. 불교 신자나 무신론자를 만날 때도 이미 하나님이 그 사람들 속에서 무언가를 하고 계시다는 걸 발견해야 한다. 내가 할 일은 가서 그들에게 뭘 이야기하는 게 아니라, 침묵하면서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다. 그들의 삶 속에서 하나님께서 이미 하시는 일에 우리가 함께 참여하는 거다. 그런데 현실의 기독교인은 그걸 존중하지 않는다. 우리는 달려가서 ‘예수를 전해 주겠다’고 말하곤 한다.

이 세계의 누구든, 기독교인이 되기 위해서 불교 문화나 이슬람 문화 또는 아프리카 문화를 포기할 필요는 없다. 우리가 국악 예배를 드리듯이....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으라’는 그 문화 속의 제자를 의미한다. 결코 서구의 문화를 심으란 얘기가 아니다. 그 문화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 드러날 때까지는 그게 어떤 형태인지 그 누가 알 수 있으랴.


E. 참된 선교

 : 선교 중의 진정한 선교는, 다름 아닌 내 안에서 예수님을 발견하고 함께하는 것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허락'을 해야 한다. 내 안에 예수 그리스도가 살도록 허락해야 한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예수님은 ‘제 뜻대로 마시고 아버지 뜻대로 하소서’라고 기도했다. 그게 허락하는 거다. 우리의 죄로 오염된 본성이 비워지고, 하나님이 창조하셨던 본래의 인간이 채워지는 거다. 비움만 있어도 안 되고, 채움만 있어도 안 된다. 둘 다 필요하다. 비본질적인 나를 비워서 본질적인 나를 찾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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