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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엘 기도회 22. Day 10. '외아들'의 시험을 통과하라 - 김한요 목사

Jesus Christ/다니엘 기도회 2022. 11. 1.

강사 - 김한요 목사

- 베델교회 담임목사
- Bethel Classical Academy (기독학교) 재단 이사장
- Westminster theological Seminary (D.Min Cand.)

외아들, 시험... 시험 출제자 하나님

외아들.... 나는 자녀가 넷(딸, 아들, 아들, 아홉 살 터울의 막내딸)이므로 외아들을 둔 것은 아니지만, 사랑하는 자녀들의 부모이기에 이런 시험이 내게도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시험.... 내 최종 학력은 신학교인데, 신학교의 마지막 시험이었던 blue-book(표지가 파란색인 시험 답안지)을 교수님께 제출하면서 '이것이 제 마지막 시험입니다.'라고 얘기했고 그렇게 믿었었는데, 나는 아직도 공부하고 있고 아직도 시험을 보고 있는 것 같은 인생을 살고 있다.
하나님은 시험을 출제하시는 분이시라고 생각할 수 있다. 기회만 되면 우리에게 시험문제를 제시하시는 분인 것 같다.

시험의 타이밍 - 모순적 상황

우리는 언제 시험을 겪게 될까? 시험의 특성은 항상 '모순'된 상황 속에서 우리에게 주어진다는 것이다. 즉, 시험의 타이밍은 우리에게 도저히 이해가 안 될 때, 그런 상황으로 주어진다.

 

오늘 본문에서 히 11:18을 우리말과 영어로 살펴보자

그에게 이미 말씀하시기를 네 자손이라 칭할 자는 이삭으로 말미암으리라 하셨으니 (한글 개역개정 성경)

even though God had said to him, "It is through Isaac that your offspring will be reckoned." (영어 NIV 성경)
한글 성경에서는 분명하게 뉘앙스를 살리지 않았지만, 영어 NIV 성경에서는 'even though' (또는 even if, 즉 '비록 ...일지라도')가 강조되어 번역되어 있다. 즉,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이삭을 통해서' 자손들을 번성하게 하리라고 약속하셨음에도 불구하고, 그 이삭을 믿음으로 드렸다는 것을 강조한다. 자녀가 하나 밖에 없는데, 하늘의 별과 같이 자손을 많게 하리라고 약속하시면서, 그 하나 밖에 없는 아들을 바치라고 하는 모순적인 상황의 시험이다. 


곤란한 전화가 왔을 때 간혹 자녀에게 '아빠 없다고 해~!'라고 거짓말을 시킬 때가 있다. 사실대로 '계시다며 전화를 바꿔 주거나, 계시지만 전화를 받지 않겠답니다'라고 이야기하는 것보다, 없다고 거짓말하는 것이 현명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우리는 거짓말을 하게 하는 것이다. 자기의 판단이 하나님의 말씀보다도 그 곤란한 상황을 피하는 데는 더 현명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임기응변으로라도 그 상황을 빠져나가려 한다. 거짓인가 진실인가? 항상 시험은 이러한 상호모순 또는 이율배반적 타이밍에서, 상황에서 주어진다.

죽음과 부활이라는 모순

(히 11:19 그가 하나님이 능히 이삭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줄로 생각한지라 비유컨대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도로 받은 것이니라)

'죽은 자 가운데서 도로 받은 것이니라'는 말씀은 죽음과 부활이라는 상반적 상황이 맞서는 문맥이다. 그런데, 이런 대립적 상황은 우리 삶 속으로 숱하게 찾아온다. 겨우 여기까지 왔는데, 이 순간에 하나님 말씀을 순종하면 죽을 것 같고 모든 것을 잃어버릴 것만 같은 때가 있다. 이때 결단하고 순종하면 정녕 죽겠으나, 결국 우리는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부활의 기쁨을 누리게 된다.

원수를 사랑하라...도 모순적 명령이다. 너를 핍박하는 자를 위해 기도하라... 도 역시 모순적인 명령이다. 말이 되지 않는 것 같다. 그러나 순종함으로 이 시험을 통과하면, 그 죽음과 같은 상황이 부활로 변화하고 회복된다.

시험의 목적

(창 22:1상 그 일 후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시험하시려고 그를 부르시되)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또 우리를 시험하시려고 부르실 때가 있다. 마귀는 우리를 함정에 빠뜨리고 멸망시키려고 시험을 하지만, 하나님이 우리를 시험하시는 것은 목적이 전혀 다르다. 무엇일까?

우리의 실력 향상을 위한 것이다.

내가 다닌 고등학교는 교정이 대학교 캠퍼스 및 여자고등학교와 붙어 있어서 왕래가 용이했다.  대학교 캠퍼스가 아름답고 또 여고생들도 볼 수 있었기 때문에, 봄이 되면 졸린 오후에는 수업 대신에 꽃구경을 가기를 선생님들께 졸라대곤 했다. 어떤 선생님은 그 요청을 받아들여서 꽃구경을 시켜주셨지만 어떤 선생님은 무척 엄격해서 '국물도 없었다 (No soup! 농담 같은 콩글리쉬 표현^^) 그러나 세월이 흘러도 여전히 기억나고 존경하는 선생님은 꽃구경을 시켜주신 분보다는 엄격하셨지만 우리의 실력 향상을 위해 애쓰셨던 선생님이다.
시험을 좋아하는 학생은 없지만, 시험을 통과하면 그 시험 준비 과정에서 우리의 실력이 향상되어 있음을 알 수 있었다. 하나님의 시험의 목적도 마찬가지다. 우리 실력 향상을 위해, 우리 실력을 고도화(upgrade)하고 향상(enhance)시키기 위해 시험을 주시는 것이다.

우리 신앙의 현주소를 보게 하기 위한 것이다.

시험을 통해 우리가 A/B/C의 평가를 받아야 자기의 믿음의 실상을, 위치를 제대로 파악하게 된다(신앙의 메타 인지). 시험이 없으면 누구나 자기가 정상(正常)이거나 최고라고 생각하기 십상이다. 하나님의 시험은 우리의 신앙의 현주소를 보게 해 준다. 몇 대째 신앙이든, 모태신앙이든 상관없이 시험을 받을 때, 비로소 신앙의 실력이 드러난다. 

네 삶의 이유인 외아들 이삭을 바치라

아브라함의 시험은 무엇이었나?

백세에 얻은 아들을 번제로 드리라는 것이었다. (창 22:2 독자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  번제는 whole burnt offering이다. 제물의 전부를 '홀라당' 불태워 바치는 것이다. 그것도 '네 사랑하는 아들' 즉 '독자,  그 외아들, 독생자'를 제물로 바치라는 것이다. 그 말씀에 순종하여 아브라함은 (히 11:17 외아들을 드렸느니라) 즉, 외아들, only son을 드린 것이다. 


아브라함에게는 하갈을 통해 이스마엘이라는 아들이 있었기 때문에 이삭은 외아들이 아니라고 지적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성경에서 이삭을 외아들이라고 한 것은, 아브라함에게는 이삭이 외아들, 독자, 전부였기 때문이다.
개인적인 얘기를 하자면, 내 늦동이 막내딸이 참 예쁘다. 오빠와 열다섯 살 터울인데 너무 사랑스러워서, 자기 오빠 결혼식 때 그 아이에게는 평생 아빠와 함께 살자고 했다. 너무 예쁘다.

마찬가지 아닐까? 아브라함의 마음을 온통 사로잡은 자, 아브라함이 아침에 일어나고 경제생활을 영위한 이유... 그의 모든 것이 바로 '이삭' 때문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이삭은 아브라함의 독자요, 그의 전부였다고 표현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 아들을 내놓으라시는 것이다. 제사드릴 때 사용할 장작을 지고 갈 정도로 장성한 이삭은 적어도 청소년이었을 것인데, 그 십 수년 동안 쌓인 사랑이 얼마나 큰데, 또 하나님의 약속(하늘의 별처럼, 바닷가의 모래처럼 수많은 자손들)을 성취시켜줄 유일한 아들이었는데, 어떻게 하나님께 제물로 바칠 수 있을까? 그것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모순적인 상황이었다.

작은 틈새의 시험, 작은 죄로 삶이 무너진다.

대개는 이런 모순 속에서, 우리의 가장 소중한 존재/문제인 '이삭'으로 인해 하나님과의 틈새가 생기고, 사탄은 이 틈을 파고들어 우리가 시험에 빠지게 한다. '네가 사는 이유는 하나님이 아니라 네 아들 아닌가?' 이렇게 우리를 참소하기 위함이다. 우리는 은혜와 선물(gift)에만 눈이 멀어서 그 선물을 주신 분 (giver)를 잊어버리는 우를 범하고 시험에 빠지게 된다. 바늘 도둑이 소 도둑 된다고 하는데, 작은 죄로 인해 우리의 큰 삶 전체가 무너지게 된다. '죄는 유도 선수'라고도 한다. 작은 죄라도 우습게 생각하면 안 된다. 집안에 있는 사소해 보이는 저속한 책들, 인터넷에서 잠깐 클릭하는 음란 동영상들... 이 작은 죄들을 가볍게 생각하면 안 된다. 제거해버려야 한다.

당신의 이삭은 무엇인가? 누구인가?

여러분에게도 외아들이 있다. 이삭이 있다. 이 문제만 해결되면..., 내일 아침에 일어날 이유가 되는 사람과 일, 또 모든 것을 포기하고라도 결혼하고 싶은 사람, 너무 바라는 고액 연봉, 고대하는 학교와 직장.... 이것들이 여러분의 외아들이며 이삭이다. 그런데 그것을 하나님께서 내놓으라는 것이 시험이다. 다음은 내가 '이삭'에 대해 묵상하며 적은 글이다.

 
관심이 이삭이 되면 염려가 되고

실망이 이삭이 되면 절망이 되고

나랑 생각 같음이 이삭이 되면 분쟁이 됩니다.

 

성격차이가 이삭이 되면 이혼하고

정치적 성향이 이삭이 되면 원수가 되고

능력이 이삭이 되면 교만하게 됩니다.

 

취미생활이 이삭이 되면 쾌락주의자가 되고

운동이 이삭이 되면 희생할 줄 모르는 이기주의자가 되고

재물이 이삭이 되면 일만 악의 뿌리, 우상이 됩니다.

 

사람의 인정이 이삭이 되면 비겁자가 되고

친구가 이삭이 되면 패거리가 되고

이 이삭이 되면 기도의 능력을 잃어버리는 자가 됩니다.

 

여러분의 이삭은 무엇인가? 어떤 사람은 잠이 너무 소중해서 새벽기도를 못하거나, 저녁 예배를 소홀히 하기도 한다. 그 경우는 잠도 이삭이 되는 것이다.

시험 통과 방법

그러면, 어떻게 시험을 성공적으로 통과할 수 있을까?

첫째. 생각 (Reason)을 해야 한다.

(히 11:19 그가 하나님이 능히 이삭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줄로 생각한지라)
여기서 '생각했다'는 것은 영어로 표현하면 단순히 think 했다는 것이 아니라, 깊이 생각하고 숙고하라는 것이다. 즉 reasoning을 한 것이다. 증거(evidence)를 수집해서 판단한 것이다. 성경은 '덮어 놓고' 믿는 것이 아니라 '펼치고 읽어' 깊이 묵상하여 믿는 것이다. (영어 성경에서 아무리 쉬운 번역에도 think를 사용한 경우는 없다. reason, conclude, account 등 곰곰이 생각하고 따져 결론을 내렸다는 의미의 단어들을 사용했다.)

 

(마 6:26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공중을 나는 새를 '보라'는 말씀도 look이나 behold를 사용하지만, 그것이 전부가 아니라 진짜 의미하는 것은 'consider' 하라는 것이다.(헬라어는 '엠블레포'라는 단어를 사용했는데, '... 보다. ~를 주목하다'란 뜻이지만, 비유적으로 쓰일 때는 '~을 유의하다, 깊이 생각하라, 숙고하라'는 뜻으로 해석된다. 즉, '눈을 뜨고 살펴보라'는 의미다.)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지, 들풀이 어떻게 피고 지는지 제발 생각 좀 하라는 말씀이 뒤에 계속 이어진다. 생각하면 염려가 사라진다. 생각이 많으면 걱정이 많다고 하는 말은, 생각을 하다 말기 때문에 생긴 것이다. 끝까지 생각해보라. 그러면 염려가 사라진다.


그때까지 아브라함은 자기의 생각에 따라,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는 대로 살아왔다.  갈대아 우르를 떠나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떠났지만 아브라함은 곤란한 상황에서 자기 꾀로 아내를 누이라고 연거푸, 반복해서 속이고 다녔다.(죄는 반복해서 짓게 된다. 한 번 회개했다고 마음을 놓아서는 안된다. 반복되는 죄를 조심하라.) 사라를 통해 아들을 낳기를 소망 중에 기다리다 지쳐서 자기가 맞다고 생각하는 대로 하갈을 통해 이스마엘을 얻었으나 그 결과는 가정의 분란이었다. 그렇게 자신의 생각대로 살아온 삶에서 제대로 된 것이 하나도 없었기 때문에, 전부인 아들을 바치라는 이 인생 최고의 시험에서는 '내 생각대로 하지 말고' 하나님의 명령대로 따르자고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대강 생각한 것이 아니라, 끝까지 생각한 것이다.


과연 자기 생각대로 삶을 사는 경우가 누가 있는가? 미국 어바인의 우리 이민교회 성도 중에, 자기 인생을 처음부터 분명한 계획대로 살아서 어바인에 이민 와서 살고 있는 분은 한 명도 없다. 내 이름과 내 삶도 그렇다. 내 이름 '한요'는 한국의 요셉이란 뜻이다. (요한을 거꾸로 한 것이 아니다. ) 그런데 한국의 요셉이 지금 수십 년째 미국에 살고 있다. 내 이름을 한요로 지으신 우리 아버지는 생각도 못했던 일이다. (우스개 이야기이지만, 나는 내 아들의 이름을 '세상의 요셉'이 되라고 '세요'로 지으려 했으나, 성이 김 씨라 '김세(새)요'라는 김새는 이름이 될 것 같아서 하지 못했다.)

시험을 겪을 때는 반드시 '생각'하라.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하나님의 뜻을 생각하라. 깊이 끝까지 생각해보라.

둘째. 어린양을 바라보아야 한다.

아브라함은 외아들을 제물로 바치면 자신이 죽을 것만 같았으나, 생각해보니 '외아들을 주신 분은 하나님 아버지'셨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희생을 통해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의 구원의 섭리, 그 아버지의 마음을 가장 근접하게 느끼고 이해한 사람이 바로 아브라함이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과 가장 가까이 상황에서 그 마음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아브라함이기 때문이다. 아들이 제물이 어디에 있냐고 물을 때, 아버지 아브라함의 마음은 무너져 내렸을 것이다.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부르짖는 예수님을 바라보시는 아버지 하나님의 마음도 그랬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선하신 분이라는 확신을 아브라함은 갖고 있었다. 하나님은 어떻게든 결과를 선하게 이루실 것이라고 믿었다. 아브라함은 자신이 아들을 찌르고 죽이고 태워 바쳐도, 하나님은 분명히 그 아들을 회복시키고 돌려주실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에 칼을 들 수 있었다. 그날 아브라함에게는 그를 멈추게 하는 하나님이 계셨으나, 하나님이 그 아들 예수를 십자가에 달리게 했을 때는 아무도 말리지 않았다.

Now I know that Jesus loves me!

(창 22:12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

영어로는 Now I know that...이다. 이것은 아브라함이 시험을 통과해 나가는 모습을 보시고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이다.

미국 수도인 워싱턴 D.C.에는 포토맥(Potomac) 강이 있다. (관광으로 워싱턴을 간 경우에도 쉽게 볼 수 있는데, 링컨 기념관 뒷편에 흐르는 강이 포토맥이다.) 추운 겨울에 그 강을 스쿨버스가 넘어가다가 다리가 미끄러워서 버스가 강으로 추락한 적이 있다.(또는 인터넷에서 그 구체적인 기사를 찾을 수 없으니, 추락했다고 가정해도 좋을 것 같다....) 어린이들이 강물에서 허우적댈 때, 구조대가 미처 도착하기 전에, 청년 한 명이 강으로 뛰어들어가서 한 명씩 구조해내다가 다섯 번째 어린이를 구하려 할 때는 지쳐 그가 심장마비로 죽게 되었다. 구조대원이 헬리콥터로 그 청년의 시신을 끌어올릴 때, 그것을 본 학부모들은 'Why?'라는 질문 속에서 그를 바라보아야 했다. 우리 아이와 아무 관계가 없는 저 사람이 왜 우리 아이를 구하기 위해 자신을 희생했을까?
마찬가지로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신 모습을 보며, 이제는 우리가 'Why?'라는 질문을 해야 하는 것 아닌가? '왜 날 사랑하나?' 그리고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하셨던 말씀을 이제는 우리가 해야 하는 것 아니가? "아, 이제야 하나님이 나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이제야 알겠다. Now I know... Now I know that Jesus loves me."

우리의 이삭을 내려놓고, 외아들 예수님을 내려놓으신 하나님을 바라보며, 우리의 모순적인 시험을 이겨가자

아브라함은 이렇게 가장 어려운 시험을 넉넉히 통과했다.
하나님 말씀이 이해되지 않고, 심지어 가당치 않아 보이는가? 죽을 것 같은 결과가 예상되더라도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면, 비록 죽더라도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활시켜 주실 것이다. 나를 위해 외아들 예수를 내놓으신 하나님을 바라보며, 지금까지 우리가 줄곧 실패했던 시험을 넉넉히 이기자. 우리의 외아들을 내려놓자. 

하나님이 여기까지 우리를 어떻게 인도하셨는지를 '생각해보라'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대속의 은혜와 승리의 부활을 바라보며, 이 시험을 멋지게 통과하자.

기도:

힘들고 어려우며 이해가 안 되는 시험이 우리 앞에 있습니다. 이것을 포기하자니 죽을 것만 같습니다. 내 인생의 마지막 같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면, 내려놓으면 죽음 뒤에 부활이 있을 것을 믿습니다.

김은호 목사님 정리 기도

외아들의 시험을 통과하자.

우리 인생은 시험의 연속이다. 이해할 수 없는 모순된 상황을 만나면 하나님의 시험이라고 생각하자.

시험을 당해 절망하게 될 때, 그것을 움켜쥐고 해결해 주시기를 기도하기보다, 내 인생의 외아들이고 이삭이 되어버린 그것을 우리가 내려놓자. 그때 우리는 시험을 통과하고 부활의 능력을 경험하게 될 것임을 믿는다.

생각이 중요하다. 바울도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하게 하라'라고 했다.(고후 10:5) 이해할 수 없는 시련을 인생 가운데 겪을 때 불평하지 말고 하나님을 신뢰함으로,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붙들고, 우리가 움켜쥔 것을 내려놓고 하나님께 순종하자. 
하나님은 우리가 부활의 능력을 경험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우리를 죽음의 시험을 겪게 하신다.

 

우리 삶에 개입하시고 시험하심을 감사합니다. 내 인생의 우상이며 이삭이 무엇인지 적나라하게 깨닫게 하소서. 내 우상이 기도제목이 되어서 그것을 관철하기 위한 기도가 되지 않게 하시고, 이 시험을 잘 통과하는 믿음을 갖게 하소서.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붙들고 그것들을 과감히 내려놓고 우리에게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게 하소서. 외아들의 시험을 통과해서 부활의 능력을 경험하게 하소서''

 

더하여, 우리 가정이 '하나님의 임재를 통해' 세상과 구별되게 하소서. 이를 위해 우리 가정에 기도와 찬양과 예배가 떠나지 않고 쌓이게 하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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