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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엘 기도회 22. Day 11. 너는 크게 자유를 외쳐라 - 임선주 찬양선교사

Jesus Christ/다니엘 기도회 2022. 11. 1.

강사 - 임선주 찬양선교사

- 거리찬양전도자
- CBS 해피타임 고정게스트
- 포항극동방송 어머니 중보기도회 예배인도자

- 포항중앙침례교회 출석

- 유튜브 Hepbsibah Hepbsibah 운영 (https://www.youtube.com/channel/UCSPXGXt76giolRWwtZP3ZsQ/featured)

이혼하신 부모님,  술... 세상 재미, 이혼

약한 나로 강하게 가난한 날 부하게, 눈먼 날 볼 수 있게 주 내게 행하셨네.
약한 나로 강하게 가난한 날 부하게, 눈먼 날 볼 수 있게 주 내게 행하셨네.

내가 건너야 할 강 거기서 내 죄 씻겼네. 이제 주의 사랑이 나를 향해 흐르네.
깊은 강에서 주가 나를 일으키셨도다. 구원의 노래 부르리 예수 자유 주셨네.

(후렴) 호산나 호산나 죽임 당한 어린양, 호산나 호산나 예수 다시 사셨네

 

내 성량이 좀 크다. 몸은 작지만 우리 안에 계시는 주님은 크시다.

"여호와를 기뻐하는 것이 우리의 힘입니다."

이 시간 신앙의 선배들 앞에서 어떻게 여성 혼자서 길거리에서 찬양을 하게 되었는지 나누고자 한다. 내 개인적인 상처와 아픔을 조금 드러내는 것을 이해해 달라.

부모님은 이혼하시고 중풍 환자 할머니와 미혼 고모와 살았습니다

부모님이 일찍 이혼하셔서, 할머니가 나와 언니를 돌봐주셨는데, 할머니가 중풍에 걸려 오른쪽 마비가 오셔서 대소변을 받아내야 했다. 고모가 할머니를 돌보셔서 네 식구가 언덕 위 단칸방에서 살아야 했다. 부모님과 함께 사는 것이 당연하지만 어린 내게는 그것이 소원이었다. 엄마가 있다는 평범한 일이 내게는 특별한 일이 되어서 늘 엄마를 그리워해야 한다는 상황이 슬펐다. 엄마가 보고 싶었고, 아버지의 술주정으로 인해 너무 무섭고 힘들었다. 그래서 술이 싫고 무서웠는데, 미혼이었던 고모도 술을 드시면 술주정이 심했다. 술을 드신 고모로부터 데리러 오라는 뜻의 '내려와!'라고 전화를 받으면 추운 겨울에도 언덕 아래 시장 골목으로 내려가야 했다.

그 어느 날도 고모를 데리러 내려가다가, 엄마가 너무 보고 싶어 부산에 살고 계시던 엄마에게 공중전화를 걸었지만, 울음이 터져 나올까 봐 엄마를 부르지도 못하고 끊어져버린 수화기를 들고 울었다.

처음 경험한 상가 교회는 피난처가 되어 주었습니다. 

중학생이 되었을 때 새엄마가 들어오셨지만 아빠의 술주정은 계속되었다. 고등학생이 되었을 때 안양으로 이사를 해서, 2시간 걸려 서울까지 통학을 하며 다녔다. 지하철역과 우리 집 사이에 상가교회가 있어서, 언니와 함께 그 교회를 다니게 되었는데 교회는 마치 천국과도 같았다. 목사님과 사모님의 보살핌이 너무 따뜻했다. 아버지의 술주정을 피할 수 있는 피난처였다. 그렇게 드문드문 교회를 가까이했다.

부산으로 대학을 가서 엄마와 살았지만, 세상에 빠지게 되었고 이혼녀가 되었습니다.

엄마와 함께 살 방법을 찾다가, 꾀를 내어 일부러 대학 진학을 부산으로 했다. 엄마와 함께 사는 시간이 너무 좋았다. 하지만 통기타 동아리에 들어가서 라이브 가수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세상을 맛보아 알게 되어 세상에 빠져서 그토록 경멸하던 술을 내가 즐겨 마시게 되었다. 어린 나이인 스물세 살에 (나와는 달리 술은 마시지 않았지만 하나님은 믿지 않던) 남자를 알게 되어 결혼하여 딸을 낳았으나, (결혼에 대한 가치관도 정립되지 않은 상태에서의 결혼으로 인해 힘든 시간을 보냈다. 남편은 게임 등 중독 증세도 보였고 구타도 있었는데 엄마 생각도 많이 나서) 도저히 함께 할 수 없다는 생각에 결혼 8년 만에 이혼을 하게 되었다.

십자가 부흥회에서 나를 위해 죽으신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딸을 시댁에 맡긴 후 아기를 보고 싶을 때마다 술을 마시며 달랬을 뿐, 하나님을 원망만 하고 기도는 하지 않았다. 그렇게 인생의 나락으로 떨어져서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을 때, 어느 권사님의 권유로 '십자가 부흥회'를 가게 되었다. 교회당에 들어가자마자 마음이 울렁거리던 중에  '세상뿐만 아니라 교회 안에도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 많다'는 목사님의 충격적인 말씀에 머리는 망치로 맞은 것 같았고, 가슴은 뛰기 시작했다. 목사님은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하나님이 내 주인이 되셔서 내 삶을 인도해 가시도록 살아가는 것'이라며, 내가 주인 되어 마음대로 살던 삶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뜻을 구하고 하나님의 뜻을 물으며 삶을 살아가는 것이 믿음이다.'라고 말씀하셨다. 그때까지 나는 주님의 뜻이 무엇인지 물은 적이 없었다. 내 연민에 빠져서 내게 필요한 것을 빌고 구했지만,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는 관심도 없었고 여쭌 적이 없었는데, 목사님의 그 도전적 말씀에 '지금까지 내가 하나님을 믿지 않고 있었다'는 마음이 들면서 온몸이 덜덜 떨렸다.

 

기도하려고 눈을 감자 검은 큰 그림자가 내 양팔을 잡고 교수대 위로 끌어올리는 게 보였다. 교수대에서 목을 매달기 직전에 '우리 선주는 안된다'는 음성이 들렸다. 눈을 떠보니 저는 교수대 밑에 풀려 내려와 있었고, 하얀색의 큰 십자가가 보였다. 그때 예수님이 우리 죄를 위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다는 말씀이 가슴으로 믿어지기 시작했다. 기도회 시간 내내 어린아이처럼 발을 구르고 크게 '왜! 왜! 왜! (왜 나 같은 사람을 위해 십자가에 달리셨어요?) 라며 악을 쓰고 울었다. 울다가 눈을 떠보니 교회에 아무도 없고, 나를 데려가셨던 권사님만 계셨다.

 

집에 돌아와 자고 있는 딸 곁에 무릎을 꿇었다. 이혼 후에 잠시 딸과 떨어져 살았다. (나는 라이브 가수로서 밤에 일하러 가야 했기 때문에 딸아이를 보살피기 어려워서 시어머니께 보내게 되었기 때문이다.) 언제든 보고 싶을 때는 딸을 만날 수 있을 것으로 알았는데, 시댁에 가 있던 딸이 중국으로 유학 갈 수도 있기 때문에 어쩌면 다시 엄마를 볼 수 없을 수도 있다고 하면서 눈물을 삼키던 일이 생각이 나서, 딸에게도 엄마와 똑같은 아픔을 겪게 한 것이 미안해서, 딸 곁에서 울며 용서를 구했다. 딸의 용서를 받고 주님께 다시 기도하며 여쭈었다. '왜 그러셨어요?' 예수님은 '십자가 고통이 하나도 아프지 않을 만큼 죽기까지 너를 사랑한다'라고 말씀해 주셨다. 내 안에 이제 살았다는 마음과 함께 주님께 너무 부끄럽고 죄송한 마음이 들었고, 이제는 주님을 위해 살겠다는 고백이 나오며, 이 찬양을 주셨다.

 

십자가 십자가 내가 처음 볼 때에 나의 맘에 큰 고통 사라져
오늘 믿고서 내 눈 밝았네, 참 내 기쁨 영원하도다

 

거리 찬양과 영일대 바닷가 찬양을 시작하다

주님이 내 아픈 상처를 만져 주시고 치유해 가시기 시작했다. 자기 연민에 깊이 빠져 있던 내 모습을 고치기 위해 이사야 62:4 말씀을 주셨다.

(사 62:4 다시는 너를 버림받은 자라 부르지 아니하며 다시는 네 땅을 황무지라 부르지 아니하고 오직 너를 헵시바라 하며 네 땅을 쁄라라 하리니 이는 여호와께서 너를 기뻐하실 것이며 네 땅이 결혼한 것처럼 될 것임이라)

주께서는 나를 헵시바와 뿔라로 불러 주셨다. 헵시바는 '너는 나의 기쁨이야'라는 뜻이고, 뿔라는 '너는 나의 신부야'란 뜻이다. 네 형편과 모습이 어떠하든 너는 내 기쁨이야...라고 말씀해 주신다는 말씀으로 기쁨이 넘쳐났다.

 

그렇게 주님을 만나고 계속 생각났던 것이 거리였다. 나처럼 방황하는 사람들이 교회에 오기는 힘든데, 거리에는 많다. 그곳에서 주님을 사랑하고 싶었다. 내가 얻게 된 기쁨을 '거리에서' 외치고 싶었다. 여러분 사탄에게 속지 말고, 그만 고아처럼 방황하고, 참 주님을 만나세요... 하고 외치고 싶었다.

그동안 아무 연고도 없었지만 언니가 살고 있던 포항으로 거처를 옮기게 되었다. 거리에서 찬양 사역을 하는 목사님과 전도사님과 함께 남빈동 사거리에서 2007년부터 거리 찬양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분들과 함께 4~5 정도 찬양을 하다가 각자의 사역으로 돌아갔다.)

2014년에 매너리즘에 빠져 힘들던 중에, 세월호 사건을 보면서 바닷가로 나가야겠다는 마음을 주셨다. 집에서 15분 거리에 있는 영일대 해변으로 나가서, 사람들 쪽이 아니라 바다 쪽을 바라보며 찬양을 하기 시작했고 지금까지 매주 토요일 오후에 찬양 버스킹을 하고 있다.

유튜버 찬양사역자가 되다

친구와 함께 2016년에 경주로 벚꽃 구경을 갔는데, 벚꽃이 너무 예뻐서 '주님의 높고 위대하심을 내 영혼이 찬양하네~'하는 찬양이 저절로 나왔다. 다음 주부터 거리 찬양을 하기로 마음을 먹고 장비를 챙겨 경주에 다시 갔으나 불교의 영향력이 센 지역이어서 찬양할 수 있는 적절한 장소를 찾지 못해서 여기저기 돌아다니다가, 겨우 대릉원 돌담길 벚꽃 아래서 열심히 찬양을 했다. 친구가 찍은 그 휴대폰 영상을 별생각 없이 유튜브에 올렸는데 일주일이 지나지 않아 교회 청년이 SNS 스타가 되었다며 연락이 왔다. 몇 주 만에 3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시청했다는 것이었다. (https://youtu.be/0oJXY4I2S_A)

많은 청년들이 댓글을 달았는데, 저 정도면 나도 하겠다며 삼삼오오 (거리로) 나오기 시작했다. 그때 진리를 진리라고 외칠 수 있는 청년들이 많이 나올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했던 게 생각나면서 하나님의 때에 일하신다는 마음이 들었다. 그전엔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거리로 나갔다면,  그다음부터는 하나님이 이제 찬양을 '사명'으로 내게 주시는 것이라고 생각했고, 지금까지 240여 개의 동영상을 올리게 되었다. 아프리카 등 세계 여러 나라에서 유튜브 동영상 찬양을 통해 은혜받았다는 피드백이 오고 있어, 하나님께 더욱 감사하며 찬송하고 있다.

 

그날 벚꽃 아래서 부른 찬양은 '예수로 나의 구주 삼고'이다. (작사: Fanny J. Crosby, 작곡: Phoebe Palmer Knapp)

1. 예수를 나의 구주 삼고 성령과 피로써 거듭나니
이 세상에서 내 영혼이 하늘의 영광 누리로다

 

2. 온전히 주께 맡긴 내 영 사랑의 음성을 듣는 중에
천사들 왕래하는 것과 하늘의 영광 보리로다

 

3. 주 안에 기쁨 누림으로 마음의 풍랑이 잔잔하니
세상과 나는 간 곳 없고 구속한 주만 보이도다

 

(후렴) 이것이 나의 간증이요 이것이 나의 찬송일세
나 사는 동안 끊임없이 구주를 찬송하리로다 아멘

네까짓 게 vs. 새로운 피조물이라

그렇게 사역이 사역인 줄도 모르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시작해서 평범했던 집사가 찬양선교사가 되어 여기에 서 있다.
그렇지만 종종 사탄이 나를 정죄하는 네 글자가 있다. '네까짓 게'다. '네가, 네까짓 것이 무엇 인대, 감히 찬양사역자로 산다는 것이냐?' 하며 나를 참소한다. 나는 포항극동방송 어머니 중보기도회를 인도하고 있는데, 어느 날 아침에 일어났더니 갑자기 너무 가기 싫고 마음에 불만들이 올라왔다. 내 재정적인 어려움만 크게 보였다. 그리고 '네까짓 게 뭔데?' 하는 마음이 훅 들어왔다.

 

그렇지만, 그때 또 다른 마음이 내게 들어왔다. "하나님은 상한 갈대를 꺽지 않으시고 꺼져가는 등불을 끄지 않으신다. (고후 5:17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예수님의 음성이 들렸다. "내가 네 그 언약함 때문에 십자가를 진 것이니, 이제 너는 죽고 내 보혈을 의지해라. 그래야 산다."

"맞아요. 주님 사랑해요."하고 내가 주님께 말씀드리자, 주님은 답변하셨다."내가 너를 더 사랑해. 너는 나의 헵시바요 뿔라야." 

 

우리 함께 보혈찬양을 부르자.

죄에서 자유를 얻게 함은 보혈의 능력 주의 보혈
시험을 이기는 승리되니 참 놀라운 능력이로다

육체의 정욕을 이길 힘은 보혈의 능력 주의 보혈
정결한 마음을 얻게 하니 참 놀라운 능력이로다

눈보다 더 희게 맑히는 것 보혈의 능력 주의 보혈
부정한 모든 것 맑히시니 참 놀라운 능력이로다

(후렴) 주의 보혈 능력 있도다 주의 피 믿으오
주의 보혈 그 어린양의 매우 귀중한 피로다

거리에서, 바닷가에서, 그리고 삶에서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토요일마다 거리에서 주님을 찬양한 지 10여 년이 넘어간다. 거리 찬양을 하다 보면 엄지 손가락을 들어 응원하는 분도 있고, 욕을 하거나 침을 뱉고 가는 분들도 있다. 그런 일들에 대해 별로 핍박처럼 생각하고 유념하지 않지만, 특별히 나를 힘들게 했던 어느 분이 변화된 사연을 나누고자 한다.

 

깡마르고 검은 피부에 검은 선글라스를 끼고 다니셔서 암흑을 떠올리게 하는 분위기의 아저씨가 계셨다. 이 분은 내 옆으로 오셔서 '찬양을 그만하라'라고 하시고, 때로는 찬양하는 내 옆에서 라디오를 틀면서 찬양을 방해하기도 했다. 그 방해의 시간이 오래되다 보니 서로 익숙해져서 이름도 알려 드렸더니, 나를 '임 양~'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어느 날, 경주에서 집회를 마치고 그 교회 성도들과 함께 거리에서 찬양을 했는데, 그 아저씨도 신이 나셔서 '예수 한 번 믿어 주소~'하고 외치며 거리의 사람들에게 전도물품인 물티슈를 나눠주기 시작했다. 함께 기도하기를 여러 번 권했지만, 당신은 절에 다니는 아내와 교회 다니는 딸 사이에서 중립을 지켜야 한다며 계속 사양했다. 그렇지만 어느 날은 승낙을 받고 함께 간절히 기도했더니 아저씨는 '아멘'하고 받아들이셨다. 

포기하지 않고 복음의 씨를 뿌립니다

코로나19 이후 많은 사람들이 '예수' 이름에 대해 예전보다도 더한 민감한 (부정적) 반응을 보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욱 뜨거운 가슴으로 주님을 찬양할 수밖에 없다. 우리 주변의 전도해야 할 사람들을 포기하지 말자. 우리는 씨만 뿌리면 된다. 열매 맺는 것은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께서 이루실 것이다. 태신자들, 믿지 않는 분들을 놓고 함께 찬양하며 기도하자.

예수 예수

슬픈 마음 있는 자, 몸과 영혼 병든 자
누구든지 부르시오, 예수 이름 부르시오
그 이름을 믿는 자, 그 이름을 부르는 자
그가 어떤 사람이든 그는 구원 얻으리

예수 예수 오 능력의 그 이름 예수, 나 외쳐 부르네
예수 예수 오 구원의 그 이름 예수 , 나 외쳐 부르네. 예수 그리스도

은과 금 내게 없으나 나 가진 것 너에게 주니
능력의 이름 예수라, 그 이름을 붙드시오
그 이름을 믿는 자, 그 이름을 외치는 자
그가 어떤 사람이든 그는 주의 영광 보리라

우리에게 주신 영광의 이름, 나 어찌 잠잠하리
세상에 크게 외쳐 부르리, 나의 주 예수 그리스도

예수 예수 오 능력의 그 이름 예수, 나 외쳐 부르네
예수 예수 오 구원의 그 이름 예수 , 나 외쳐 부르네. 예수 그리스도

주님의 복음은 자유를 선포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함께 읽자
(눅 4:18~19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
이 말씀은 성령을 받은 우리 모두에게 주시는 말씀이다. 주님을 만났으면 이제 주님의 양들을 돌봐야 한다.

 

세상은 너무 흉흉하지만, 이럴 때일수록 우리 하나님의 사랑과 위대하심을 세상에 외쳐야 한다.
우리 하나님은 이 땅과 온 세상의 왕이시므로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실 것을 믿는다.
주님만이 우리 왕이심을 고백하며 나아가자.

내 사모하는 주님 온 세상 구주시라
내 사모하는 주님 영광의 왕이시라

주님 다시 오실 때까지 나는 이 길을 가리라
좁은 문 좁은 길 나의 십자가 지고
나의 가는 이 길 끝에서 나는 주님을 보리라
영광의 내 주님 나를 맞아주시리

주님 다시 오실 때까지 나는 일어나 가리라
주의 영광 온 땅 덮을 때 나는 일어나 노래하리라
내 사모하는 주님 온 세상 구주시라
내 사모하는 주님 영광의 왕이시라

김은호 목사님 정리

에수를 믿어 진정한 자유를 얻은 사람은, 이렇게 당당하게 다윗처럼 외칠 수밖에 없다.
거리의 찬양처럼, 우리 각자의 삶의 현장에서 드리는 참된 삶의 예배를 하나님께서는 원하신다.
사탄의 참소를 이기고 주 안에서 진정한 자유를 외치고 노래하는 우리의 신앙생활이 되기를 기도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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