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성형 AI를 가지고 그림을 그리다가 결과물에서 큰 충격을 받는 경우가 있습니다.
손가락을 매우 기형적으로 표현하기 때문입니다. 개수가 적거나 많고, 그 모양이 괴기한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1960년대 초반에 '샤갈'이 그린 '이삭의 희생'이라는 그림에서도 우리는 매우 이상한 손가락들을 발견하게 됩니다.
칼을 쥔 아브라함의 오른손은 손가락이 6개이고, 이삭을 찌르려는 아브라함을 급히 말리는 천사의 손가락은 4개입니다. 샤갈의 어떤 의도가 있었겠습니다만,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단지 생성AI와의 유사점을 보았을 뿐입니다.
그밖에도, 이 그림은 무척 여러 생각을 하게 합니다.
1. 장작 위의 이삭은 한쪽 눈만 감고 다른 눈은 뜬 채로 칼을 쥔 아버지를 바라봅니다.
2. 성경에는 없는 내용이지만, 나무 뒤에서 어머니 사라가 외아들을 죽이려는 아브라함을 안타까운 포즈로 숨어 지켜보고 있습니다.
3. 우상단에는 십자가를 지고가는 하나님의 외아들 예수님을 그렸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시험하셨고 믿음 좋은 아브라함이었기에 잘 통과하여 복을 받았다고 이 내용을 풀어 적용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사랑이시지 사랑의 비교 대상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내가 아들보다 더 사랑하는지 비교할 대상이 아닙니다.
또한 우리 가족도 우리의 사랑의 대상이지 신을 위해 버리고 희생시켜야 할 양자택일의 존재가 아닙니다.
여기 아브라함과 이삭의 이야기는, 우리의 구원을 위해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세상에 보내시고 희생 제물이 되게 하신 하나님의 크신 사랑을, 이삭을 희생제물로 바치는 아브라함의 마음을 통해 우리에게 밝혀 보여주신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이 잔인하다라든지 또는 아브라함의 믿음을 본받자는 단순하고 잘못된 해석이 아니라, 하나님의 크신 사랑을 깊이 느끼는 큰 감동이 이 그림과 성경 이야기에서 성도가 갖게 되는 은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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