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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의 봄날 (사 44:1~4) 전광식 교수 설교 20190519 오륜교회

Jesus Christ/주님과 함께 2019. 5. 20.

벌써 한 해의 절반에 가까운 5월 중순이다. 
5월은 봄기운이 가장 만연한 시절이다.
그러나 이렇게 좋은 봄 계절과는 달리, 우리의 인생이나 신앙 생활에 있어서는 아직 춥고 어두운 겨울철에 있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다.
우리의 영혼도 이렇게 화창한 봄날이 되기를 꿈꾸면서, 성경에서 영적 겨울을 벗어나 봄날을 경험한 예수님의 제자들의 이야기를 살펴보자.

I. 예수님의 제자 훈련

짧고 굵게 산 인생, 바로 예수님의 삶이 그러했다. 
이 땅에서의 삶 전체도 33년에 불과했으나 특히 공생애는 3년으로서 매우 짧았다.
이렇게 짧은 공생애 기간 동안 예수님은 과연 무엇을 하셨을까?

물론 궁극적으로 인간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십자가를 지셨으나, 
마태복음에 의하면 1) 가르치고 (teaching), 2) 전하시고 (preaching), 3) 고치심 (healing)의 사역을 하셨다.
(마 4:23 예수께서 온 갈릴리에 두루 다니사 그들의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백성 중의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
(마 9:35 예수께서 모든 도시와 마을에 두루 다니사 그들의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라)

그런데, 고치심은 간혹 틈틈이 하신 사역이었으나, 가르침과 전하심은 늘상 하신 평상의 주된 사역이었다.

그러면, 예수님은 무엇을 누구에게 가르치고 전하셨을까?
예수님은 '천국 복음'을 전하셨으며, 일반 대중에게도 전하셨으나 특히 '제자들'에게 가르치셨다.
예수님은 3년의 공생애 기간 동안에 제자들을 부르신 후에 그들과 동행, 동숙하면서 그들을 가르치시고 훈련시키셨다.
이렇게 볼 때 예수님의 공생애는 제자들을 세우시고 훈련시키시고 파송하신, 제자 사역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오늘날 우리도 먼저 예수님을 진실로 믿는 '신자화'가 되어야 하지만, 일단 신자가 된 후에는 '제자화'의 단계로 나아가야 한다.

II. 제자들의 변화

당시 예수님과 동행 동숙한 제자들은 각별한 영적 특혜를 누린 것이었고, 그 결과 그들은 예수님의 제자 훈련 이후 매우 크게 변화했다.
먼저, 갈릴리 바다에서 고기 잡는 어부에 불과했던 그들이, 견줄 수 없이 넓은 세상(World)에서 사람을 낚는 어부로 변화함으로써, 그들의 '신분과 삶이 크게 변화'했다.

그러나, 그들의 신분과 눈에 보이는 삶이 변한 만큼 그들의 '내면, 속사람'도 바뀌었을까? 꼭 그렇지는 못했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십자가의 고난에 동참하지 못하고 달아나버렸다. 
그들은 스승의 고난에도 불구하고 적극적인 구출 작전은 고사하고 비교적 소극적으로 볼 수 있는 '합심 기도'조차 없었다. 영적 무기력만을 보였다.

그들은 그렇게 영혼의 어두운 겨울을 보내고 있었고 예수님의 제자 훈련은 실패한 것으로 보인다.
그런 실망스러운 제자의 모습은 오늘 바로 우리 자신의 자화상이기도 하다. 
신앙의 고백은 잘 해도 신앙의 삶은 없으며, 교회 안에서 주일에는 신앙의 원리가 우리를 지배하는 것 같지만 평일의 세상의 삶에서는 그렇지 못한 칙칙한 겨울을 보내고 있다.

이러한 겨울에서 제자들은 어떻게 영혼의 봄날을 맞이할 수 있었는가?
요한복음 뒷부분에서의 예수님의 수난에 즈음하여 무기력했던 그들이었으나, 바로 몇 장 뒤인 사도행전 2장에 가면 제자들의 놀라운 변화를 보게 된다. 
배우지 못했던 그들의 무식함이 사라지고 3천명을 주께로 돌아오게 하는 청산유수의 깊이 있는 연설을 하게 되었다.

  1. 두려움이 사라졌고 연약함이 감추어졌다.
  2. 하나가 되어 편가르기도 없었다. 마음이 하나가 되었다. (행 1:14 더불어 마음을 같이하여 오로지 기도에 힘쓰더라)
  3. 그들은 마치 취한 사람처럼 보였다. 초능력을 보유한 것처럼 놀라운 일들을 보였다. 말씀의 능력, 치유의 능력을 보였다.

III. 성령의 역사

이렇게 놀라운 변화의 영적 생명력은 어디에서 온 것일까? 비밀의 열쇠는 무엇일까?
바로 사도행전 2장에서 나타난 성령의 강력한 임재요 충만 때문임을 알 수 있다.

사람이 바뀌는 것, 신분과 삶이 아니라 속사람이 변화되는 것은 사람의 의지나 계획만으로 이루어 지지 않는다.
속사람이 변화되고 하나님의 교회가 부흥되는 단 하나의 원칙은 '위로부터 임하시는 성령님의 임재와 역사'만으로 가능하다.
(슥 4:6)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영으로 되느니라

그러면 예수님의 3년간의 제자 훈련은 아무 의미가 없었는가? 아니다.
예수님은 땔깜을 마련하신 것이었고, 거기에 불을 붙인 (ignite) 것 즉 점화한 것이 바로 성령의 임재였다.

베드로는 배우지 못한 자로서 그물질, 낚시질, 칼질, 욕질, 싸움질, 성질을 부리던 촌부였으나 (예수님 앞에서조차 혈기를 부림)
(행 4:13 그들을 본래 학문 없는 범인으로 알았다가 이상히 여기며) 
성령을 받은 후에 수많은 사람들 앞에서 그는 하나님 나라와 복음의 놀라운 메시지를 감동적으로 전하는 자로 바뀌었다.

베드로의 이러한 변화처럼 오늘날 우리도, 성령이 임하시면 완전히 변화하게 된다는 것이다.
늙었어도, 시골 사람이든, 평생 무학이든, 거칠게 살아왔더라도 성령이 임하시면 모든 약점이 다 사라진다. 
우리가 당했던 실패와 무력감, 아픔 등 과거의 흔적들이 모두 사라진다.
모든 한계는 극복되고 경계는 철폐되며 우리의 약점이 강점으로 변화하게 된다.
우리도 베드로처럼 허물 투성이라고 해도 성령 충만으로 새로운 지평을 열 수 있다. 

VI. 성령 충만할 이유 

그러면 왜 우리는 성령 충만을 받아야 하는가?

첫째, 성령 충만을 받지 않으면 우리의 욕망과 죄를 이길 수 없다.
칭의 이후의 단계는 성화의 단계인데, 이 땅 위에서는 우리는 완전 성화에 이를 수 없다.
우리는 도상(途上)적 존재여서 과정에 있을 뿐이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옛사람의 죄성이 잔재로서 남아 있다.
이 죄성의 잔재는 우리의 욕망과 죄가 들어오는 창문이 된다.
성령의 강력한 임재와 충만이 없이는 이 죄의 창문을 막을 수 없다.
그 대표적 예가 아나니아와 삽비라이다.
성령의 능력이 우리의 죄와 욕망의 창문을 지켜줘야만 한다.

둘째, 성령이 없으면 우리 인생에 열매가 없다.
성령이 없어도 가능해 보이는 부와 명예와 같은 성공의 열매는 하나님 앞에 인정받지 못하는 것이어서 인생의 열매라고 할 수 없으며, 자기 명예와 욕망의 금자탑은 하나님 앞에 쓰레기에 불과하다. 내가 내 힘으로 쌓은 대단한 업적은 천국으로 가져갈 수 없는 쓰레기이다.
그러나 영원한 인생의 열매는 성령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맺을 수 없다. 
갈라디아 5장의 성령의 9가지 열매는 오직 성령을 통해 맺을 수 있다.

세째, 성령이 없으면 은사도 없고 은혜도 없다.
우리 삶이 풍성하고 편안해서 아쉬운 것이 없는 경우에도, 내 힘과 능력으로 모든 문제가 다 해결될 수는 없다.(약 1:17 온갖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부터 내려오나니 그는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니라)
모든 은혜와 은사는 위로부터 성령으로 말미암아 받는 것이다.
성령을 보혜사라고 한다. 보혜사는 '보' 도와주시는 분일 뿐 아니라, '혜' 은혜를 주시는 분이시다.
성령은 이 가전의 시대의 전기와 마찬가지로, 가장 중요한 분이시다.
하나님의 영이 떠난 후로 비참해졌던 노년의 솔로몬이 반면 교사가 된다.
성령 충만함으로 온전한 그리스도인이 되고 새로워지기를 축복한다.

V. 성령 충만의 길

어떻게 성령 충만할 수 있을까?

첫째, 다른 무엇에든 취해 있지 않아야 한다.
(엡 5:18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
성령과 술을 대조하여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의 삶과 세상의 삶을 묘사하고 있다.
술 뿐만 아니라, 마약, 도박, 음란, 게임, 연속극, 우익논리, 좌익 이데올로기 등 무엇이든 취해 있으면 안된다.
분노나 원한에도 취해 있으면 안 된다. 빈 마음 가난한 영혼이 성령 충만을 위해 필요하다.

둘째, 철저히 겸손하고 교만하지 않아야 한다.
(약 4:6하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 하였느니라)
(벧전 5:5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시느니라)
타락한 인간이 빠지기 쉬운 가장 큰 죄는 '교만'이다.
돈, 사회 정치적 지위, 인물, 키, 나이 등으로 교만하기도 하고, 도덕적 우월로 인한 윤리적 교만, 종교적 교만 등도 있다.이러한 교만은 '하나님 앞에서 살지 않고 사람 앞에서 살기 때문에' 온다.
사람들은 '코람 데오' 하나님 앞에서 살지 않고, '코람 호미니부스' 사람 앞에서 살기 때문에 
자기와 남을 비교하고, 조금만 나은 것이 있어도 교만하고 조금만 못해도 기가 죽는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 앞에 살면 잘나도 도도할 이유가 없고 부족해도 간구함으로 살게 된다.

성도가 교만해질 때 성령은 떠나가고 악령이 그 자리를 차지하게 된다.
그리고 자아(ego)가 주인이 되어 버렸기 때문에 성령은 오지 않는다. 
내가 주인인 곳에서 성령이 종이 될 수는 없다.

셋째, 회개해야 한다. 
성령은 정결케 하실 뿐만 아니라 정결한 분이시다. (cleaning일 뿐 아니라 clean한 분이시다.)
성령이 내주하시는 우리의 마음이 죄를 가장 많이 짓게 된다.
(행 2:38 베드로가 이르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

네째, 열심히 기도해야 한다.
사도행전의 성령 받는 장면의 모든 구절에는 반드시 포함되는 부사가 있는데, '오로지'라는 말이다.(전혀!)

다섯째, 성령 받기를 간절히 사모해야 한다.
풍요로운 대한민국의 번영 속에서 포만감, 자족감에 살아가게 되자, 성령을 향한 타는 목마름과 갈증이 없어졌다.  
숨 넘어가는 영적 허기가 없다.
목마른 사슴이 수백리를 달려 물을 찾듯이 하나님을 전적으로 바라보고 있는가?
하나님과 천국은 잊어버리고 세상 재미 속에서 다른 일과 물건 들에 마음을 빼앗기고 분주하지는 않은가?
하나님을 찾지 못할 정도로 다른 일로 바쁘지 않은가?
고독한 주바라기가 되어야 한다.
(사 44:3 나는 목마른 자에게 물을 주며 마른 땅에 시내가 흐르게 하며 나의 영을 네 자손에게, 나의 복을 네 후손에게 부어 주리니)

모압과 암몬이 유대를 치려 할 때 여호사밧 왕이 백성들 앞에서 이렇게 말한다.
(대하 20:12 우리 하나님이여 ... 오직 주만 바라보나이다 하고)
(대하 20:15 여호와께서 이같이 너희에게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이 큰 무리로 말미암아 두려워하거나 놀라지 말라 이 전쟁은 너희에게 속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라)
우리가 전적으로 무기력하고 오직 하나님만 바라볼 때 성령 충만의 역사가 우리에게 나타나는 것이다.

결어:
봄이 왔다. 우리의 노력 때문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혹한을 물리치고 봄이 오게 하신 것이다. 
햇살과 봄바람과 봄비를 주셨기에, 영혼의 봄날이 오게 된다.성령의 충만을 경험할 때 우리의 영혼은 봄날을 맞게 될 것이다.
(행 2:17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말세에 내가 내 영을 모든 육체에 부어 주리니)
하나님이 누구에게나 '부어주시겠다고' 약속하셨다. 누구나 성령 충만을 받을 수 있다.
다른 유혹에 취하지 말고, 하나님 앞에서 철저히 겸손하며, 통렬히 회개하고, 열심히 기도하며 성령 충만을 간절히 사모함으로써우리 영혼의 봄날을 누리기를 축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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