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갯들 남성고 국어 선생님들의 추억 고등학교 시절 국어과 선생님들에 대한 기억이 아주 오랫동안 남아 있습니다. K선생님은 시인이셨습니다. 시를 어떻게 읽고 어떻게 즐길 수 있는 지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예를 들면, 김영랑의 '오-매 단풍들것네'라는 시를 표준말로 '밋밋하게' 읽으면 무척 나무라셨습니다. 전라도 고유의 발음과 억양으로 읽어야 했습니다. '워~매~ 단풍 들겄네~이~' 그 시의 첫 구를 어떻게 읽느냐에 따라 선생님의 칭찬과 꾸중이 달라졌습니다. 또, '피아노 치는 여인의 손놀림' 모양 짓을 하시면서 '햇빛 영롱한 바다 수면 위를 차고 오르며 펄떡이는 갈치의 춤'을 생각해 보도록 하셨고, '생각난다'는 자동사보다는 피동 보조 어간 '히'를 넣어서 '생각힌다'라는 맞춤법에 맞지 않지만 진한 의미를 주는 .. 2022. 12. 15.
직성이 풀리다 화신 쏘니 카세트 라디오 @ 1978 초등학교 교감으로서 여러 연구활동을 활발히 하시던 아버지 덕분에, 어렸을 때인 1960년대 후반과 1970년대 초반에 여러 시청각 미디어 기기를 접할 수 있었습니다. 학교에서 환등기를 가져오셔서 마당에서 흰색 창고 벽을 스크린 삼아 여러 사진을 보여주시기도 하셨고, 때로는 영사기를 가져오셔서 영화를 보여주시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아코디언 박스만 한 릴 테이프 녹음기를 가져오셔서 녹음 소리를 자녀들에게 들려주셨습니다. 그런데, 1970년대 후반이 되면서부터는 카세트테이프 레코더가 등장했습니다. 초등학교 때에는 집안에 한 대 밖에 없는 카세트 라디오를 가지고 교육방송을 녹음했다가 다시 듣기 위해서는 누이들과 일정을 잘 조정해야 했습니다. 그러다가 제가 중학교에 들어갔을 .. 2022. 12. 14.
고향에서의 다른 종교 경험들 보호되어 있는 글 입니다. 2022. 12. 8.
익산 새실 익산 동광 감리교회 아버님께서 소천하시기 한 두 해 전에, 익산시 금강동에 있는 동광 감리교회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습니다. 아버님께서 신흥초등학교 교감으로 근무하시던 1970년 경에 그 근처의 동광 감리교회 목사님의 아드님이 신흥초등학교 학생이었는데, 여름방학을 마친 후 글짓기 시간에 해수욕장에 다녀온 이야기를 쓰면서 "비키니 아가씨들이~"라는 표현을 해서 당시 학교에서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일이 있었다는 말씀이었습니다. 그때는 그 이야기가 무척 유명해서 초등학교도 들어가지 않았던 저도 여러 번 들어서 기억하고 있었고, 50년이 지났지만 부자가 모두 기억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아버지께서 동광교회가 있던 곳이 '새실'이라고 하셔서 의아했었습니다. '새실'은 아버지의 친지이셨던 '유세현'님이.. 2022. 12. 8.
어린 시절 간혹 걸어가기에는 멀었던 산(?)들 이리/익산 저는 전북 익산시에서 태어나서 성장했습니다. 제가 살던 때의 이름은 이리(裡里)였습니다. 이곳은 원래는 조수 간만의 차가 큰 서해 바다의 특성상 만경강의 범람으로 인해 바닷물이 자주 밀려오던 습지여서 갈대밭으로 덮여 있던 곳입니다. 지금은 익산시로 모두 합해져 있지만 원래 익산은 마한/백제/고려로 이어오면서 줄곧 큰 마을이었던 '금마(金馬)'지역을 말하며 원나라 순제의 기 씨 황후의 외가 쪽 고향이어서 '익(益)'이라는 글자를 하사 받아 고려말 이후 조선시대를 거쳐오면서 익주/익산 등의 명칭이 자리 잡았습니다. 갈대밭이었던 과거의 이리시 지역은 조선시대에는 전주군 남일면으로 속해 있다가 고종 때 전주에서 분리되어 익산군에 편입되었습니다. 일제 강점기가 되면서 '이리'라는 명칭이 처음 생겼는데,.. 2022. 12. 1.
남향집이 필요한가? 남향집의 추억 입주한 지 10여 년이 흐른 아파트에 들어가서 산 지 30여 년이 되어간다. 당연히 재개발 조합이 구성되어 있고, 조합장 선거라든지 설계라든지 여러 이슈를 단체 톡 방에서 접하게 된다. 그때 가장 중요한 포인트 중의 하나는 '남향 구조인가? 전체 세대 중에서 어느 정도가 남향인가?' 등의 문제가 된다. 재개발을 앞둔 아파트에 투자하기는 어렵고 그냥 살기도 어려워, 낮은 금액으로 전세를 내주고 웃돈을 얹어 보다 깨끗하고 넓은 주상복합 아파트 전세로 나왔다. 이때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포인트 중의 하나는 '남향'이라는 것이었다. 내가 어릴 때 살던 한옥은 동향집이었다. 해가 일찍 떠올라 도저히 늦잠을 잘 수 없는 구조였고, 언제나 집 뒤쪽으로 보이는 석양의 아름다움을 매일 느낄 수 있었지만,.. 2022. 11. 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