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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가 이렇게 씌어질 수는 없을까? TV뉴스를 봐도 궁금한 점이 더 생길 뿐 새롭게 알게 되는 정보는 충분하지 않은 경우가 간혹 있습니다. 특히, 각 기관이나 기업의 '보도 자료'를 기반으로 '발췌' 보도하는 경우에 더욱 그렇습니다. 예를 들어, 어제 발표된 '강원도청 신청사 부지 확정' 기사가 그런 경우입니다. 아마도 브리핑 내용을 충실히 옮기는 데 힘을 쏟은 것 같습니다. 직전 도지사 재임 시절의 결정을 번복하여 다른 곳으로 '확정'했다는 것은 정보로서 의미가 있지만, 그 선정 이유가 충분히 함께 공유되지 않았기 때문에 충분히 이해했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습니다. 'A 안이 아니라 B안으로 결정했습니다. B안으로 인해 향후 이렇게 저렇게 좋아질 것입니다.'라는 요지는 잘 이해합니다. 그런데, 기회비용의 제시는 전혀 없습니다. 보도자료 또.. 2022. 12. 22.
메타버스, Immersive Computing이 충분히 발달하면... 몇 가지 꿈을 꾸게 됩니다. 제조업체의 공장 견학 및 기술 전수/숙달 방식이 달라집니다 배터리 및 반도체 생산의 기술 인력 확보가 매우 중요한데, 이때 기술 전수 및 숙달시키는 방식이 크게 달라질 수 있습니다. 꿈꾸던 사파리를 실감나게 경험할 수 있게 됩니다 코로나19로 인해 해외 여행을 제대로 가지 못했습니다. 물이 바뀌면서 발생할 수 있는 배앓이 걱정을 하지 않으면서도 아프리카나 아마존 사파리를 경험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2022. 12. 20.
콩나물 국밥 아버지와 어머니는 콩나물 국밥을 무척 좋아하셨습니다. 함께 제공되는 '수란'을 참 좋아하셨지요. 명절 아침에도 며느리들이 너무 수고하는 듯하면 온 가족이 함께 전주 '두레박' 등 유명한 콩나물국밥집으로 자동차 여러 대에 분승하여 가서 아침식사를 해결하는 것이 일상화되었었습니다. 일해옥 최근 10여 년은 주현동의 '일해옥'이 모든 사랑을 독차지했습니다. 이곳은 수란이 제공되지 않지만 그래도 좋으셨습니다. 거동이 불편해지신 후에는 '포장'을 해서라도 즐겨 드셨습니다. 국물의 감칠맛이 다른 곳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맛이어서, 그 비결을 궁리해보았지만 알 수는 없었습니다. 언론에 드러난 내용으로는 첫째는 통영산 '조림용' 멸치(과거에는 일본산 멸치. 방사능 우려로 남해안 멸치로 교체)를 24시간 끓여내 육수를 .. 2022. 12. 19.
사극 또는 시대물과 역사적 고증 사극(史劇)으로 역사를 공부할 수 있을까? 사극 또는 시대(배경) 물은 역사 다큐멘터리가 아니므로 허구(fiction)라고 이해하고 재미로 즐기는 것이 필요합니다. 당연히 어떤 면에서 역사적 인식과는 다른 내용이 있는지를 살피기는 하겠지만, 그것으로 비난을 할 바는 아닙니다. 미스터 선샤인은 5년 전에 무척 인기 있었던 24부작 드라마였습니다. 김태리가 연기한 '고신애'의 부모는 일본에서 의병활동을 하다가 죽었는데 그때 관련된 것이 일본이 우리에게 개항을 강요한 운요호 사건이고 그로 인해 강화도 조약이 맺어지는데 그것이 1875년이므로, 고신애는 1875년생으로 봅니다. 그전에 장승구가 소년병으로 아버지의 죽음을 목도한 일이 '신미양요'인데 그것이 1871년이어서 드라마의 여러 내용과 연결할 수 있지만,.. 2022. 12. 18.
일제강점기의 수리(水利)조합 최근에 고향 익산과 친가, 외가에 대한 글을 여러 개 블로그에 남겼습니다. 제 어린 시절과 고향을 생각해보면 '수리조합'이나 '대수로 공사' 황등제 등 저수지의 매립, 동진강 간석지의 간척 사업 등 일제 강점기에 이루어졌던 대규모 토목공사가 큰 영향을 주었던 것 같습니다. 그 배경에 대해 조금 더 정리합니다. 호남평야는 일제 수탈의 가장 핵심기지였는데, 김제 평야의 유명한 저수지인 벽골제는 당시 이미 매몰되어 제 기능을 상실했고, 호남평야는 가뭄과 홍수의 영향에 따라 미곡의 산출량이 크게 요동을 쳤습니다. 이에 일본인 대지주들은 수리관개 시설의 필요성을 절감하게 됩니다. 특히 1924년에 우리나라는 큰 가뭄으로 흉년이 들었는데, 수리관개 시설이 좋은 지역은 오히려 풍작을 거두게 되어 옥구, 익옥 (임옥,.. 2022. 12. 16.
도도리와 됭계 - 어머니의 고향 마을 이야기 제 부모님 두 분 모두 일제 강점기와 해방을 전후해서 전주에서 중고등학교를 다니셨지만, 태어나고 자라신 곳은 익산과 김제의 시골마을이었습니다. 제 아버지는 익산군 북일면에서 태어난 후 유아 때 군산으로 이사했다가 1930년대 중후반에 익산군의 '터질목'으로 이사하셨고 그곳이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소천하실 때까지 사신 본가가 되었습니다. 지금은 익산시가 된 이 지역은 만경강과 황등제 사이에 있어 왕기 평야의 끝자락이 야산을 만나는 곳입니다. 논은 집과는 좀 멀어서 한참을 들녘 쪽으로 걸어 나가야 논이 나왔고 집 근처에는 주로 밭들이 있는 그런 곳이었습니다. 어머니는 전북 동쪽 지역의 높은 산중인 장수군에서 태어났지만 어려서 김제군 백산면 도도리로 이사오셔서 그곳에서 자랐습니다. 평야의 한 복판에 있는 곳이어.. 2022. 12. 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