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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모세, 조영애(엄마) - 다니엘기도회 23. Day 19.

Jesus Christ/다니엘 기도회 2023. 11. 19.

한나의 기도

강사: 조영애 집사(모세 어머니), 박모세 형제

- 수원시 장애인 합창단 단원
- 밀알복지 홍보대사
- 백석예술대학교 졸업

성경 본문: 사무엘상 1:12~18

"의학적 희망 1%도 없던 아이를 하나님 찬양하는 걸작품으로"
"태중에 사형선고를 받았던 아이가 하나님을 증거하는 아이로 자라나게 하신 기적"

 

연약하고 부족하고 초라한 모습으로 나왔다. 자랑할 것이 없는 저희이기에 하나님의 은혜가 더 크기를 바란다.

모세는 올해 나이가 31세가 되었지만, 지적 장애로 정신연령은 서너 살에 멈추어 있다.

한쪽 귀가 들리지 않고 한쪽 눈으로만 아주 조금 볼 수 있다. 악보는 전혀 보지 못해서 모든 노래는 듣고 외워서 부르고 있다.

일상생활에서는 먹고 마시고 신변처리까지 돌봄이 필요하다. 그래서 나는 모세의 전속 몸종이다.

지체장애, 지적장애, 시각장애, 자폐, 청력장애를 모두 가진 중복장애 1급이지만, 모세는 삼육재활학교를 거쳐 성악과로 백석예술대학교를 졸업했다.

간증에 들어가기 전에 모세가 '하나님의 은혜'를 먼저 찬양하겠다.

(2013 동계스페셜올림픽 개막식 노래 사진)

나를 지으신 이가 하나님
나를 부르신 이가 하나님
나를 보내 신이도 하나님
나의 나 된 것은 다 하나님 은혜라

나의 달려갈 길 다 가도록
나의 마지막 호흡 다하도록
나로 그 십자가 품게 하시니
나의 나 된 것은 다 하나님 은혜라

한량없는 은혜 갚을 길 없는 은혜
내 삶을 에워싸는 하나님의 은혜
나 주저함 없이 그 땅을 밟음도
나를 붙드시는 하나님의 은혜
태어난 지 며칠 만에 뇌의 90%를 잘라내야 했던 모세다. 생존확률 자체가 낮았었다. 죽음의 위기는 매번 찾아올 거라는 의사의 예상은 100% 맞았다. 그러나 그 위기의 결과는 의사의 예상과는 100% 달랐다. 보지도, 듣지도, 걷지도, 말하지도 못할 것이라는 의사의 예상과는 달리 느리고 엉성하지만 결국에는 말을 하게 되었고, 오늘 이렇게 아름다운 찬양을 한다.  아멘!

 

이 땅의 모든 장애인과 가족들에게, 부족한 저희 가족 모습을 통해, 위로가 되고 회복되기를 소망한다.

나는 불교 가정에서 태어나 자라서 결혼 전에는 하나님을 모르고 살았다. 불상에 절하며 자랐다. 기독교 가정에 시집을 와서도 처음에는 종교를 강요하지 말기를 남편을 통해 요청했었다. 친구들을 만나서 수다를 떨 때 보면 대개는 시어머니를 다 욕했지만, 우리 시어머님은 그런 분이 아니셨다. 인자하시고 온유하시고 자상하셨다. 상대방의 입장에서 모든 것을 배려하시면서 사랑으로 감싸주시던 분이셨다. 늘 조용히 기도하시는 따뜻한 분이셨기 때문에, 그분으로 인해 그분이 섬기는 분이 궁금하던 차에, 어머님을 기쁘게 해 드리기 위해 나 스스로 교회를 나가게 되었다. 처음에는 모든 것이 낯설었는데 어머니는 내 신앙의 멘토가 되어 주셨다.

 

첫딸을 낳았는데, 지금은 결혼하여 아이 엄마가 되었고 내 기도의 동역자가 되었다. 둘째로 모세를 가졌고 누구에게 묻지도 않았는데 태아가 아들이라고 알려줘서 기뻤는데 1992년 2월, 임신 4개월째에 태아 머리 뒤쪽 뼈가 형성이 되지 않은 부분에서 뇌가 다 흘러나와 아이가 살 수 없다고 했다. 그때 처음으로 하나님 앞에 간절한 마음으로 무릎 꿇고 오진 가능성을 열어두고 한 주간 기도했지만 재검진 결과는 동일했고 병원에서는 산부인과 전체회의 끝에 낙태를 권유했다. 낙태 수술 날짜를 잡고 병원에 입원했다. 목사님이 위로차 심방을 오셔서 오늘 본문을 읽고 예배를 드렸다.

  • 삼상 1:17-18 엘리가 대답하여 이르되 평안히 가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네가 기도하여 구한 것을 허락하시기를 원하노라 하니 이르되 당신의 여종이 당신께 은혜 입기를 원하나이다 하고 가서 먹고 얼굴에 다시는 근심 빛이 없더라

이 말씀을 듣는 순간 마음에 평안이 찾아왔고 아이의 미세한 태동을 느꼈다. 생명을 포기하는 대신 낙태 수술을 포기하고 1992년 8월 4일 제왕절개를 통해 모세가 세상으로 나왔다. 머리만 한 뇌가 뇌막에 싸인채로 머리 밖으로 흘러나와 있었다. 의사들은 “수술을 해도 의학적으로는 1%의 희망도 없다”라고 답할 뿐이었다. 뇌가 밖으로 나온 채로 태어나 그대로 둬도 죽고, 뇌를 안으로 집어넣으려 해도 이미 다른 것으로 채워져 있는 데다 감염이 돼서 죽을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우리 부부는 “그러면 이 아이가 수술을 해서 산다면 그것은 의학이 한 일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하신 일이겠네요?”라고 되물었고, 태어난 지 3일째 되는 날, 모세는 대뇌의 70% 소뇌의 90% 이상을 절제하는 수술을 했다.

 

모두 얼마 살지 못할 것이라고 했다. 전신 경련과 함께 호흡경련이 찾아왔고, 의사는 마지막 순간이라고 했다. 시어머니께서 그 말을 듣자마자 자주 다니던 산으로 달려가 하나님의 선한 뜻을 알게 해달라고 하나님의 응답 없이는 내려가지 않겠다고 그 비탈을 구르고 또 구르며 하나님 앞에 울부짖으며 기도하셨다. 계속 기도하라는 응답에 한 주간 작정 철야 기도에 들어가셨다. 기진해서 쓰러져 계신 모습을 발견하신 목사님(경기도 용인 구성 성결교회)이 여름휴가까지 반납하시며 기도 요청을 하셔서 온 교회가 목사님과 함께 100일 특별기도회(하루 2번씩 기도)에 들어갔고, 며칠 후에 아이는 평안해졌다. 하나님의 승리였다.

 

그 이후 어머니는 거처를 교회로 옮기셨다. '사람들은 남의 일은 3일이면 잊어버린다. 내가 이곳에서 오가야 사람들이 모세를 기억하고 기도해주지 않겠냐?'라고 하셨다. 그 후 25년간 교회 교육관에서 거하셨다. 지금은 98세가 되셔서 요양병원에 계시다. 지금도 기도하고 있다며, 모세는 하나님이 붙들고 계시니 오직 하나님의 영광만 드러나도록 늘 겸손하게 간증하라고 하신다. 그런 어머님의 눈물 어린 기도와 지금까지 잊지 않고 중보기도를 해주시는 많은 분들로 인해, 연약하고 초라한 모습이지만 모세가 오늘까지 하나님의 선한 도구로 쓰임 받고 있다.

이 시간까지 많이 힘들었다. 하나님께 대든 적도 없지 않았다. 우리가 주저앉고 싶을 때마다 늘 함께 하신 하나님을 찬양한다.

나의 등뒤에서 (일어나 걸어라)

1절
나의 등 뒤에서 나를 도우시는 주
나의 인생길에서 지치고 곤하여
매일처럼 주저앉고 싶을 때
나를 밀어주시네

2절
나의 등 뒤에서 나를 도우시는 주
평안히 길을 갈 때 보이지 않아도
지치고 곤하여 넘어질 때면
다가와 손 내미시네

3절
나의 등 뒤에서 나를 도우시는 주
때때로 뒤돌아 보면 여전히 계신 주
잔잔한 미소로 바라보시며
나를 재촉하시네

후렴
일어나 걸어라 내가 새 힘을 주리니
일어나 너 걸어라 내 너를 도우리

 

몸무게 미달로 퇴원을 허락하지 않던 아이를 각서를 쓰고 퇴원시켜서, 교회로 가서 목사님께 기도를 받고 33일 만에 집으로 갔다. 머리는 찌그러진 냄비 모양에 몸은 가죽만 비틀어져서 꽈배기처럼 꼬여 있었다. 살아서 숨 쉬는 자체가 기적이었다. 우유 한 모금을 제대로 삼키지 못했고 눈만 뜨면 울어댔다. 아기는 울지만 울음소리도 나지 않았다. 아기가 못 듣는 것 같아서 크게 불러보고 큰 소리도 내보았지만 아이는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나는 모세가 어떤 모습이라도 좋으니 살아서 내 곁에만 있어 달라고 간절한 마음을 담아 기도했다.
뇌를 잘라낸 합병증으로 인해서 뇌수종과 뇌출혈이 찾아왔고, 숨이 끊어졌다는 의사의 말에 나는 정신을 잃었다. 1분 간격으로 숨이 끊어졌다 붙기를 반복했고 응급으로 뇌출혈 수술을 받았다. 나는 중환자실에서 피투성이가 되어 신음하는 아기를 보면서도 아이의 고통을 대신해 줄 수 없어서, 생명을 갖게 한 것이 내 욕심인 것 같아서 목놓아 울었다. 그때 옆에서 기도하시던 시어머니께서 하나님의 뜻이 분명히 있을 거라고 믿고 기도하자고 하셨고, 나도 어머니를 따라 하나님의 선한 뜻을 좇아 기도했다. 이후 뇌수종 전문병원을 수소문했지만 뇌를 잘라냈다는 이유로 거절당했다. 그 일을 놓고 기도하기 시작했고 한 달 만에 하나님의 응답하심으로 지금의 서울성모병원으로 옮길 수 있었다

인공적으로 뇌수가 인공관을 통해 위로 흐르도록 하는 수술을 하는 등, 네 번의 뇌수술과 2번의 다리 교정 수술, 총 6번의 수술을 했다. 

 

모세 수술비로 많은 빚을 졌는데 설상가상으로 남편이 하던 일도 어려워져서 모든 것을 내려놓고 싶을 때, 하나님은 우리가 기도하게 하셨고 남편에게 큰 은혜를 주셨다. 이제 더 이상 내려갈 곳이 없기 때문에 올라갈 일만 남았다며 조금만 더 힘내서 위로 올라가 보자는 남편의 말을 듣는 순간 하나님께 감사했다. 우리 부부는 우리가 지켜줘야 할 아픈 아이, 모세를 보며 용기를 내고 버텼다.

나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무엇이든 찾아서 최선을 다했다. 목욕탕 청소, 우유배달, 커피/음료수 자판기 관리 등. 그렇게 열심히 살았지만 너무 힘들었다. 생활은 달라지지 않았다.

어느 날 목욕탕 청소를 하다가 미끄러졌고 너무 아파서 주저앉아 울었다. 제 모습이 너무 비참해서 하나님을 향한 원망이 튀어나왔다. 그때는 하나님의 선한 뜻을 몰랐기에 이 세상의 모든 고통과 고난은 저 혼자 짊어진 줄 알았다. 며칠을 하나님을 원망하며 우는데 옆을 돌아보니 아이가 저를 바라보며 웃고 있었다. 그 순간 내가 살아만 달라고 간절히 기도했던 아이를 살려 주셨는데 더 바라면 욕심이라는 생각에 하나님 앞에 회개했고, 있는 것에 감사했다. 그러자 세상이 달라 보이기 시작했고, 하나님께선 있는 것에 감사하면서 믿음으로 기도하게 하셨다. 목욕탕 청소 일을 하기 때문에, 돈 내지 않고 매일 목욕을 할 수 있음을 감사했다.

그러더니 기도의 응답도 해주시고 감사의 조건을 날로 더해주셨다. 아이가 스스로 앉았다 누웠다만 할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했는데 어느 날 앉게 하셨고, 서게 해달라고 기도했는데 서고 걷게 해주셨다. 또 기도했더니 들을 수 있는 한쪽 귀를 허락해 주시고 암기할 수 있는 재능도 허락하셨다. 말할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했는데 아이가 다섯 살에 말문이 트이면서 처음 쏟아낸 단어가 사도신경과 주기도문이었다. 아픈 아이를 데리고 제가 할 수 있는 건 기도생활, 예배생활뿐이었다. 아기가 그 모든 소리를 듣고 외우고 있다가 말문이 트였을 때 신앙고백을 하듯이 쏟아낸 것이다. 그렇게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셨다.

그때부터 아이는 각종 모든 소리를 따라했다. 교회에서 아이의 별명이 앵무새였다. 또 아이가 먹지도 못하는데 자라니까 ‘기도 먹고 자라는 아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신기하고 감사한 건 따라쟁이가 나쁜 소리는 한 번도 입으로 내어본 적이 없다는 것이다. 하나님 은혜다.

 

7세 때까지는 아이가 할 수 없는 것은 거의 없었다. 그렇지만 또래 아이들 노는 소리라도 듣도록 할머니께서 선교원에 데리고 다니셨다. 재롱잔치를 위해 요한복음 15장 1절에서 16절 말씀을 암송시켰다. 찬양도 곧잘 따라 불러서 찬양을 한 곡 부르게 했는데, 노래 후의 사람들의 반응을 보고 우리 부부는 모세의 노래 가능성을 보았다. 어느 자매가 찾아와서 모세의 노랫소리가 귀에서 떠나지 않으니 녹음을 하고 싶다고 했다. 다른 교회 자매여서 그 교회에 가서 녹음을 해서 자료가 남았다. 그때의 녹음을 한 곡 들려드리겠다.

주님 한분 밖에는 아는 사람 없어요
가슴 깊이 숨어 있는주를 사랑하는 맘
주님 한분밖에는 기억하지 못해요
처음 주를 만난 그날 울며 고백하던 말

나는 행복해요 죄 사함 받았으니
아버지 품에서 떠나 살기 싫어요
나는 행복해요 사랑이 샘솟으니
이 세상 무엇이 든 채우고도 남아요.

주님 한분밖에는 사랑함이 없어요
작은 가슴 뜨거웁게 피가 흘러요
주님밖에는 약속한 이 없어요
나를 믿고 따르는 자 반석 위에 서리라

나는 행복해요 죄 사함 받았으니
아버지 품 안에서 떠나 살기 싫어요
나는 행복해요 사랑이 샘솟으니
이 세상 무엇이 든 채우고도 남아요.

 

이 가사가 우리 모두의 고백이 되기를 바란다.

 

늘 따라 하기만 하던 모세가 하나님을 찬양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고백을, 의사표시를 했다. 시어머니는 모세가 세상을 무대 삼아 하나님을 찬양하는 사람이 되게 해달라는 기도의 제목을 주셨고, 나도 그때부터 열심히 기도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의 순수한 고백을 들으시고 하나님의 때에 가장 좋은 방법을 통해서 아이를 세상에 알려주셨다

2013년 평창 동계 스페셜 올림픽 개막식에서 애국가를 불렀다. 사람들은 '모세의 기적', ‘희망을 노래하는 기적의 청년’이라는 타이틀을 주면서 격려와 응원의 박수를 보내주었고, 각종 방송과 언론에 출연하게 되었다.

또 우간다 장애인학교 건립을 위한 모금 운동을 위해 기도 중이던 미국 선교사님의 초청으로 두 달여 동안 미국 12개 주를 다니면서 하나님을 찬양하고 수많은 하나님의 기적을 체험했다. 플러튼시의 명예시민증을 받기도 했다. 나는 많이 힘들었지만 오히려 모세는 힘 있게 찬양을 했다. 다시 몇 달 후에는 미국과 캐나다에서 장애인 사역하는 분들과 장애아 가족들을 하나님의 사랑으로 위로하고 격려하고 회복하게 하셨다. 뉴욕 세계장애인 기념식에도 보내주시고 유엔 본부에서 모세의 입을 통해 하나님은 찬양으로 영광을 받으셨다

하나님께선 공영방송도 예비해 두셨다. KBS ‘노래가 좋아’에서 최초 4연승 명예졸업을 하게 되었다. 그 일로 인해서 아침 마당, 불후의 명곡 등 방송에 출연하게 하시고 세상 속에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에게까지 모세의 기적을 알려주셨다. 지방에도 많이 가는데, 휴게소에서도 모세를 알아보는 분들이 있어 모세의 입을 통해 하나님을 간증하고 있다. 온몸에 장애가 극심해서 얼마 살 수 없을 거라는 의료진들의 말을 모두 뒤집고, 비록 부족하고 연약하지만 이 아이의 입을 열어 주셨고 그 입으로 하나님을 찬양하는 걸작품으로 만들어 주셨다

 

잘린 뇌도 다시 자라기 시작해서 60%까지 채워졌다. 그래서 말하고 들을 수 있게 된 것이다. (미국에 갔을 때 뇌신경학을 연구하는 박사님을 만났었는데, 뇌를 잘라냈는데 그 뇌가 채워진 건 무엇으로도 설명할 길이 없다고 했다.). 이렇듯 사람이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때 하나님은 은혜를 베풀어주셨다.

 

이 시간이, 평범한 것 같은 우리의 일상이 우리에게 허락하신 하나님의 기적이라는 걸 기억하면 좋겠다. 이 평범한 일상이 지금도 누군가에게는 간절한 기도가 되고 있다. 이것을 인식하고 감사하자. 

지금 고난을 당하고 있다면 하나님이 장차 주실 축복의 사인임을 잊지 말자. 믿음으로 기도하여 절망이 기쁨이 되기를 소망한다. 불가능을 가능하게 하신 하나님이 우리 하나님이시다.

모세의 고백은 죽는 순간까지 하나님을 찬양하고 싶다고 한다.

우리 모세를 기억하고 위해 기도해 주세요. 하나님을 찬양하는 삶을 살도록 기도 부탁합니다.

사명

주님이 홀로 가신 그 길 나도 따라가오
모든 물과 피를 흘리신 그 길을 나도 가오
험한 산이라도 나는 괜찮소
바다 끝이라도 나는 괜찮소
죽어가는 저들을 위해 나를 버리길 바라오
아버지 나를 보내주오 나는 달려가겠오
목숨도 아끼지 않겠소 나를 보내주오


험한 산이라도 나는 괜찮소
바다 끝이라도 나는 괜찮소
죽어가는 저들을 위해 나를 버리길 바라오
아버지 나를 보내주오 나는 달려가겠오
목숨도 아끼지 않겠오 나를 보내주오

세상이 나를 미워해도 나는 사랑하겠오
세상을 구원한 십자가 나도 따라가오

생명을 버리면서 까지 나를 사랑한 당신
이 작은 나를 받아주오

나도 사랑하오

 

김은호 목사님 기도 인도

하나님의 은혜란 무엇일까?

내가 잘되고 건강한 것이 하나님의 은혜일까?

비록 장애를 가졌어도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드러내고 자랑할 수 있는 것이 은혜 아닐까?

https://youtu.be/rEH_sk80Bag?si=MOnr-zJF7TYFT5V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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