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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운 일을 당할 때, 기도하고... 또...?

Jesus Christ/주님과 함께 2012. 1. 9.
여리고성을 아세요? 크고 견고한 성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민족이 가나안에 들어올 때, 엿새동안 성을 한바퀴씩 돌다가 이레째에는 성을 일곱바퀴 돌자 무너져 버렸답니다. 여기까지가 유년주일학교에서부터 배워 온 이야기입니다. 기생라합의 이야기와 함께... 제 삶에 큰 힘이 되어온 이야기이기도 하고, 아니면 먼 옛날 이야기이기에 별로 의심할 필요도 없는 얘기로서 무덤덤하게 제게는 다가오던 얘기입니다.

오늘 설교의 마지막 시간에는 이 이야기가 제게 큰 깨달음을 주었습니다.
그냥 줄거리로 피상적으로 이해하지 않고, 그 현장을 실감나게 상상하며 그 말씀을 묵상하면, 완전히 얘기가 달라집니다.
크고 견고한 여리고성이 굳게 닫혔습니다. 어떻게 그 견고한 성을 무너뜨릴 지 고민하고 전투력을 가다듬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민족에게 하나님은 성을 날마다 돌고, 이레째에는 일곱바퀴 돌라고 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그 말씀을 따라서 성 주위를 돌았습니다. 최효종의 개그처럼... 참 쉽죠~잉?
제가 놓쳤던 부분은 지금부터 입니다. 보다 그 광경을 현실적으로 생동감있게 상상해 보겠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옆사람과 잡담하거나 투덜대면서 슬렁슬렁 성 주위를 배회했나요? 성을 도는 것이 그저 자기 맘대로 였을까요? 웅성웅성대며 의미없이 여리고성을 돌고 있었을까요? 하나님이 성을 무너뜨려주시기로 했으니까 믿는 마음으로(?) 널널하게 있었을까요?
성경은 여호수아가 백성에게 '너희 입에서 아무 말도 내지 말라'고 했다고 합니다. 제사장들이 맨 앞에 서고 여호와의 언약궤가 따르며 백성들은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기도하고 하나님께 집중하면서 대열을 이루어 질서 있게 성을 돌았습니다. 그것도 아침 일찍 돌았고, 마지막날에는 새벽 일찍 돌았습니다. 그리고, 여호수아의 명령이 있자 일제히 크게 소리 질러 외쳤습니다. 그리고 여리고 성은 무너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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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인생을 살면서 때때로 내 인생의 골리앗을 만나고 풍랑을 겪습니다. 그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역대하 20:14~17절이 오늘의 본문 말씀인데,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두려워하거나 놀라지 말라'라고 하십니다. 세 나라의 연합군이 쳐들어 왔을 때 여호사밧과 온 유대 백성들은 예루살렘에 모여 '합심 기도'를 했습니다. (특히, 여호사밧 왕은 그냥 막연히 기도하지 않고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붙들고 기도했습니다. 아브라함에게 주신 하나님의 약속, 솔로몬에게 주신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붙들고 기도했습니다. 우리는 기도할 때,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붙들고 기도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그 약속을 믿을 수 있는 신실하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그 약속의 말씀을 붙들고 하나님께 기도하면 우리에게 훨씬 더 강력한 기도응답의 확신과 끈기가 생기기 때문입니다.)

여호사밧 왕이 약속의 말씀을 붙들고 기도를 했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요? 여호와의 영이 임하셨습니다. (여호와의 영은 그 많은 군중 가운데서, 찬양하는 가문에서 찬양하는 일을 하며 하나님께만 집중하고 있던 야하시엘에게 임하였습니다.) 여호와의 영에 사로잡힌 야하시엘이 선포한 하나님의 말씀은 바로 오늘 설교의 제목인 '두려워하거나 놀라지 말라'는 것이었습니다.

왜 하나님은 두려워하거나 놀라지 말라고 하셨을까요?
첫째는 이 전쟁이 하나님께 속한 전쟁이지 사람이 이렇게 또는 저렇게 할 수 있는 전쟁이 아니기 때문이라고 하십니다.
둘째는 하나님께서 유대 나라와 함께 하실 것이기 때문에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둘째는 이해됩니다. 유대 민족이 회개하고 하나님의 도움을 구했으니, 하나님이 함께 하실 것이 확실합니다. 저도 이 정도는 알죠.
그런데, 첫째는 이해되지 않습니다. 세나라의 연합군은 하나님때문에 형성된 상황이 아닙니다. 여호사밧이 아합과 연합하는 등, 사람의 책략을 꾀하다가 빠진 어려움입니다. 이 전쟁은 결코 하나님께 속한 전쟁이 될 수 없습니다.
제 아들을 특별한 잘못도 없이, 길가던 아저씨가 괜히 트집을 잡아 겁박하는 상황을 제가 지나다가 본다면, 이제 그 상황은 곧바로 제게 속한 상황이 될 것입니다. 제가 온 힘을 다해 아들을 대신해서 싸울 것입니다. 그게 하나님께서 '내게 속한 전쟁'이라고 하는 상황입니다. 그런데, 여호사밧은 욕먹어도 될 법한 상황을 자업자득했습니다. 하나님께 속한 전쟁이 결코 될 수 없습니다.
그러면, 왜...아니면, 언제... 오늘 성경 본문의 내용처럼, 우리의 문제를 당신의 문제로, 우리의 전쟁을 당신의 전쟁으로 여기고 대신하여 싸워 주실까요? 바로 우리가 오직 주만 바라볼 때, 우리를 대신해서 싸워주십니다. 즉, 우리의 하나님과의 관계가 온전할 때 우리의 전쟁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 됩니다. (여기까지는 그저 어느 설교에서나 듣던 내용일 수 있습니다. 참고 더 읽어 보세요. ^_^)

그러면... 하나님만 바라보고 의지함으로써, 하나님께서 나를 위해 싸우신다면 내가 해야 할 일은 아무 것도 없을까요? 무엇인가를 해야 할까요?
성경은 너희와 함께 한 여호와가 구원하는 것을 '보라'고 합니다. 역시 참 쉽죠~잉? 나는 아무 것도 하지 않고, 그저 보라고...?
그러나, 우리의 삶을 생각해 보세요. 하나님께 기도하고도 계속 전전긍긍하든지, 아니면 기도했다고 막연히 낙관적으로 생각해버리고 내 멋대로 살아버리든지...하고 있는 것 아닌가요?
여호와가 구원하는 것을 보라는 말씀은 두 가지의 우리 숙제를 병행시키고 있습니다.
첫째는 '대열을 이루고 서서' 라고 하십니다. 즉, '영적 긴장감'을 갖고 흐트러짐 없이 지켜 보라는 것입니다. 마치 여리고성을 돌던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리고성을 돌 때, 하나님의 언약궤를 앞세우고 조용히 묵상하며 질서 있게 돌았습니다.
둘째는, 매일 '적진을 향해 나아가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은 믿음의 실천을 요구하십니다.

기독교는 하나님께 절대적으로 의지할 것을 요구합니다. 그러나, 방탕을 허용하지도 않습니다.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않으십니다.
(이것은 저 자신에게 하는 얘기입니다. 이 시간, 여러분께는 얘기하지 못할 여러 일들로 회개합니다. 영적 긴장감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하나님의 영이 저를 사로잡기를 기도합니다. 또, 뜨거운 감화력이 아닌, 지정의의 하나님이신 성령을 걱정시키는 일을 그만하도록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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