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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그리스도의 나심(being born)은 이러하니라... 그리고 사심(living)도 이러하니라...

Jesus Christ/주님과 함께 2011. 12. 25.


성탄절을 맞이하면서 그동안의 삶에서 많은 설교를 들어 왔지만, 오늘의 설교는 가장 감명 깊은 설교 중의 하나가 될 것 같습니다.
그 이유는 오늘의 설교는 성탄절에 국한되지 않고, 앞으로의 삶을 규정할 수 있는 설교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에 대해 3위 중에서 예수님뿐 아니라 '성령'에 초점을 맞추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Differentiated from usual)

요즘 제 아침 일과 중의 하나는, Facebook 친구 중에서 '오늘'이 생일인 사람들이 떠오르면 그 분들께 생일 축하 인사를 남기는 것입니다. 수많은 날들 중에서 생일을 특별히 챙기는 것은, 각자에게 가장 의미있는 날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자기의 삶이 작고 초라해 보여도, 누구나 자기의 생일을 통해서 자기의 삶의 의미를 깨닫게 됩니다. 저는 그래서 '생일(日)'을 축하하기 보다는 앞으로의 '삶(生)'을 축복하는 글을 남기곤 합니다. 

오늘은 예수님의 생일입니다. 진짜 생일인 지, 문화적으로 남겨진 기념일인지는 잘 모르지만 (또 별로 관심도 없지만),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셨음을 기념하는 복된 날입니다. 예수님의 탄생은 매우 특별했습니다. 아버지 요셉의 정자와 어머니 마리아의 난자의 결합으로 수태된 것이 아니라, 성령으로 말미암아 잉태되어 마리아의 자궁을 빌어 태어났기 때문입니다. 처녀가 잉태하여 태어난 아기이기에, 마리아의 난자가 역할을 했는 지 안했는 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아버지 요셉의 정자가 아무런 기여를 하지 않은 것은 확실합니다. 약혼녀의 임신 소식을 듣고 조용히 파혼하려던 요셉의 행동을 보면 그렇습니다. 

동정녀 마리아에 의한 예수님의 탄생에 대해 역사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도전을 해 왔습니다. 예수님을 사생아 취급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코미디언 구봉서씨가 동료 연예인과 성경공부하다가 던진 얘기는 의미심장합니다. "남편 요셉도 믿는다는데, 왜 당신이 못믿는다고 난리야?"

왜 예수님은 성령으로 잉태되어야 했을까요? 여러 신학적인 내용을 여기에서 다시 얘기하고 싶지 않습니다. 오늘의 새로운 메시지는, 예수님은 성령으로 잉태되었고 성령으로 살아가셨으며, 성령 가운데서 십자가에 달리셨고 부활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보혜사로서 성령을 보내주셨습니다. 그 분의 삶은 철저하게 우리를 죄에서 건져 내시기 (Jesus) 위한 것이었습니다. 이제 이 성탄절에 예수님을 믿는 우리에게 '성령으로 인한 잉태'가 주는 메시지는, 예수님을 믿어 성령의 역사로 새로운 생명을 얻게 된 우리의 삶도 성령으로 충만하여 성령에 이끌리는 삶이 되어야 하며, 성령 안에서 우리의 삶이 마무리 되어야 하고, 그래서 하나님 앞에 온전한 모습으로 설 수 있게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생일은 우리의 출생을 기념하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그 출생에서 비롯된 우리의 '삶'이 우리 주변에 끼친 관계들로 인해, 그들로부터 축복을 받는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가족을 이루어 함께 하는 삶으로 인해 배우자의 생일을 축복해주고, 지금껏 내게 이루 말할 수 없는 큰 기쁨과 걱정을 함께 준 자녀들의 삶과 존재로 인해 그들의 생일을 축하합니다.  

마찬가지로, 예수님의 생일인 성탄절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오셨다는 성육신(incarnation)에만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 분이 우리에게 많은 메시지를 던지셨고, 내 죄를 대신해 십자가에 달리셨고,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셨으며 승천하셨고, 우리에게 성령을 보내셔서 '항상 함께 계시다'는 데 의미가 있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인 '임마누엘'이 바로 그 의미입니다. 따라서, 이제 나도, 우리도 새로운 결심을 하게 됩니다. 성령으로 거듭난 우리의 삶이, 마지막 순간에 이르기까지 성령으로 충만하여 살기를 소원합니다. 우리의 행복은 지금 누구와 함께 있는 가에 의해 결정됩니다. 사랑하는 가족도, 친구도, 동료도 함께 있지만, 누구보다도 신실하신 예수님께서, 성령께서 우리와 항상 함께 계심이 우리를 행복하게 만들고, 외롭지 않게 만듭니다. 

* 오늘 마침내 교회에 등록했습니다. 목사님께서 '오래 다니셨쟎아요?' 하며 물으셨습니다. 일만 수천명이 되는 예배자들의 얼굴을 익히고 계신 목사님의 관심에 크게 놀랐습니다. 
** 자기 백성을 죄에서 '건져낼' 자라는 이름 '예수(Jesus)'는 그 당시 유대에서는 매우 흔한 이름이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 이름은 하나님 아들이 사람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심에 따라 능력의 이름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오늘도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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