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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세18. Day 1. 기도의 현장에서 승리하라 (출애굽기 17:8~16) 김은호 목사님

Jesus Christ/다니엘 기도회 2018. 11. 2.
단세18. Day 1. 기도의 현장에서 승리하라 (출애굽기 17:8~16) 김은호 목사님

* 단세를 시작하며 (들어가는 말)
열방과 함께 하는 다니엘 기도회가 시작되었다. 금년에는 1만 1천여 교회가 함께 할 예정이다.
우리는 21일 동안 한 마음으로 한 하나님께 나아가 기도하고 찬양하게 될 것이다.
비록 그 공간은 다양하게 떨어져 있을지라도, 또 속해 있는 교단과 교파가 다르고, 각자 교회 내의 직분이나 신앙의 경륜이나 은사 등이 모두 각각 다를지라도,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가 되어 함께 기도할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 모두는 그리스도의 한 몸으로서 예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고 그리스도는 교회의 머리이시기에 우리 모든 교회는 한 몸이다.
우리는 교단과 교파를 넘어서서 그리스도의 한 몸이 된 것이다. 이는 참으로 감격스러운 일이며, 감사할 뿐이다.
우리가 보기에 이렇게 좋을 때 하물며 우리를 바라보시는 보좌 위의 우리 주님은 얼마나 기뻐하실까?

1. (전쟁) 이스라엘과 아말렉의 싸움

오늘 본문은 (출17:8) '그 때에 아말렉이 와서 이스라엘과 르비딤에서 싸우니라'로 시작되는데, 여기에서 '그 때'란 언제를 의미하는가?
이는 모세가 이끄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신(Sin)광야를 지나 르비딤에 도착했을 때 물이 없어서 겪었던 큰 곤란을 해결받았을 때를 의미한다.(므리바)
바로 그 때에 아말렉이 기습을 해 온 것이다.

아말렉은 누구인가?
아말렉은 본디 이삭의 증손자이고 에서의 손자로서, 야곱의 이스라엘과는 혈족이지만, 그 후손인 아말렉 족속은 주로 사막지대에 살면서 약탈을 일삼던 고대 유목민족이었다.
특히, 아말렉은 출애굽시에 이스라엘을 가장 먼저 공격한 족속이다. 더군다나 그들은 피곤하여 무리에서 뒤쳐진 약한 사람들을 공격했다.
(신 25:18) '곧 그들이 너를 길에서 만나 네가 피곤할 때에 네 뒤에 떨어진 약한 자들을 쳤고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아니하였느니라'

오늘날 영적인 시각에서 보면, 구원 받은 성도가 천성을 향해 나아가는 길을 가로막고 대적하는사단 마귀 세력이 바로 아말렉이다.
그러기에 (삼상 15:18)에서는 '아말렉 사람을 진멸하되 다 없어지기까지 치라'고 하셨다.
즉, 아말렉이 구원받은 백성들의 천성을 향한 믿음의 행진을 가로막고 끊임없이 대적하는 악의 세력의 상징이 되기 때문에 이들을 진멸하라고 하신 것이다.

오늘 날의 아말렉 즉, 악의 세력은 어떻게 성도들의 믿음의 행진을 가로막는가?
교회의 완전하지 못한 모습을 보여 주며 공격한다. 그래서 가나안('안 나가'를 거꾸로 한 말로써, 교회에 출석하지 않고 혼자 신앙생활하는...) 성도로 만들어 버린다.
또는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 직장에서의 실직 등 여러 현실적인 어려움을 겪게 함으로써 성도들의 믿음을 행진을 가로막는다.
(벧전5:8)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에서도 마귀가 우는 사자처럼 삼킬 자를 찾는다고 했다.

아말렉 즉, 사탄은 누구를 공격했는가?
그 공격대상은 바로 '뒤쳐진 사람들'이었다.
예수님과 우리 (특히 나 자신) 사이에도 '간격/거리'가 생기면 안된다.
우리 주변에는 공연히 불평하고 원망하다가 굳건한 신앙의 대열에서 뒤에 떨어지는 사람들이 있다. 조심해야 한다.

2. (전쟁 전략) 모세는 아말렉의 공격에 어떻게 대처했는가? 싸움과 기도의 병행 작전!

(출 17:9) '모세가 여호수아에게 이르되 우리를 위하여 사람들을 택하여 나가서 아말렉과 싸우라 내일 내가 하나님의 지팡이를 손에 잡고 산 꼭대기에 서리라'

즉, 모세는 여호수아로 하여금 사람들을 택해서 나가서 싸우도록 한 후에, 자기 자신은 산꼭대기에 서서 '기도'하겠다고 했다. 즉, 싸움과 기도의 병행 전략을 채택했다.
우리는 기도할 때, 사람이 해야 할 일은 마땅히 사람이 행하면서 동시에 하나님의 도움을 구해야 한다.
사람이 해야할 일은 아무 것도 하지 않으며 기도만 하다가 기도 응답 없음에 대해 낙심하는 모습을 간혹 보게 된다.
심지어는 정작 내가 할 일은 다 하나님께 떠넘기고 오직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일을 자기가 하겠다고 나서는 경우도 본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죽은 나사로를 살리실 때.... 먼저 사람들에게 무덤의 큰돌을 옮겨 놓으라고 하셨다. 그리고 그 후에 하나님께 감사 기도를 하시고 죽은 나사로에게 걸어 나오라고 하시자 죽은 나사로가 살아서 무덤에서 나왔다.
즉, 나사로 이야기에서도 알 수 있는 것은, 죽은 자를 살리시는 것은 하나님만의 일이지만 무덤의 문을 열어 놓는 것은 사람들이 해야 할 일이었음을 알게 된다.
또한 눅 5장에서는 베드로에게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리라고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장면이 나온다. 그 말씀을 들은 베드로가 이에 '순종'하였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물이 찢어질 정도로 고기를 잡히게 하셨다.
미신과 기독교의 다른 점이 무엇이겠는가? 미신은 소원의 성취만을 빌지만 기독교는 사람의 책임 또한 묻는다는 점에서 다르다.
(김은호 목사의 저서의 제목이기도 한) '무릎으로 승부하라'는 기도만 하라는 것이 아니다. 성도가 자기가 해야 할 일은 최선을 다하는 것을 전제로, 간절히 기도하라는 것이다.

3. (싸움) 아말렉과 싸우는 여호수아
(출 17:10상) '여호수아가 모세의 말대로 行하여 아말렉과 싸우고'

왜 여호수아를 택하였을까? 그만큼 여호수아가 충성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아무나 들어 쓰시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충성된 자를 영적전쟁의 선봉에 서게 하신다.
사실, 당시의 이스라엘 민족은 한 번도 제대로 싸워본 적이 없는 사람들이었다. 그 전쟁에의 승산이 그다지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호수아가 나가서 싸운 것은 바로 그가 '충성'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고전 4:2) '그리고 맡은 자(청지기)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

4. (기도) 기도하는 모세
(출17:10하~11) '모세와 아론과 훌은 山 꼭대기에 올라가서 모세가 손을 들면 이스라엘이 이기고 손을 내리면 아말렉이 이기더니'

여호수아가 싸우는 동안에 모세는 산꼭대기로 올라가서 '기도를 했다'.

*모세의 기도 질문 1. 왜 모세는 산 꼭대기에 올라갔는가? (기도의 산)

기도하는 사람들은 대개 산에 올라가는 것일까? 산기도 하는 사람들에게는 이른 바 응답봉, 능력봉 등등의 별칭을 가진 곳들이 있기도 하다.
그러나 본문의 모세가 산에 올라간 것은 (전쟁의) '현장'을 바라보며 기도하기 위해서였다.
기도의 산에 오르면 영적 시야가 넓어져서 멀리, 분명히 볼 수 있게 된다. 또한 하나님의 영광의 구름 속에서 영적 시야가 넚어져서 더 잘 보이게 된다.
기도의 산에 오른다는 것은 기도의 깊은 경지에 들어가는 것을 의미한다. 강력한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 있는 것이고,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아 기도하는 것이다.
단세 기간 동안에도 막연히 기도하기 보다는 우리 각자의 영적 전쟁의 현장을 바라보며 기도하자.
마가복음 6장 45절부터 48절을 보자.
제자들은 배타고 벳세다로 먼저 가게 하시고 예수님은 산에 들어가 기도하셨으나, 뭍에 있던 예수님이 갈릴리 바다에 있던 제자들이 바람을 거스리느라 힘겨워 하는 것을 '보셨다.' 고 48절에 나온다. 즉, 예수님은 비록 떨어져 있었어도 '현장을 보시며' 기도하셨던 것이다.
우리도 또한 풍랑에 밀리지 말고 그 풍랑을 밟고 서서 기도해야 한다. 영적 전쟁의 현장을 바라보며 전심으로 기도해야 한다.

*모세의 기도 질문 2. 왜 모세는 하나님의 지팡이를 손에 들고 올라갔는가?

(출17:9 하) '내일 내가 하나님의 지팡이를 손에 잡고 산꼭대기에 서리라'
하나님의 지팡이는 바로 '능력'의 지팡이를 의미한다.
새 언약의 백성인 우리의 손에 들려진 능력의 지팡이는 바로 '예수의 이름'과 '예수의 보혈'의 능력이다.
우리는 기도할 때 이 두 가지 무기를 잊지말고 가져가야 한다.
예수의 보혈로, 예수님의 이름으로 사탄의 참소를 물리칠 수 있어야 한다.

5. 기도의 현장에서 승리하라

(출17:11) '모세가 손을 들면 이스라엘이 이기고 손을 내리면 아말렉이 이기더니'
이 전쟁은 '기도'에 의해 그 승패가 좌우되었다. 즉, 하나님에 의해 전쟁의 승패가 좌우 되었던 것이다.
모세의 손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연약한 손이었으나 그 모세가 손을 들 때, 즉 하나님께 기도할 때 그 손은 승리의 손이 되었다.
여호와 닛시 (출17:15)에서 닛시는 승리를 상징하는 깃발이란 말인 바, 여호와 닛시는 곧 여호와는 나의 승리의 깃발이라는 뜻이 된다.
왜 닛시(깃발)인가? 에베레스트 정상을 정복한 산악인도, 인천상륙작전 후에 서울을 수복했을 때도 우리는 승리의 깃발을 꽂았다.
우리의 삶에서, 영적 전쟁에서 우리에게 이김을 주시는 분은 오직 하나님 한 분 뿐이다.
(고전 15:57)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이김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분이시다.

6. (전쟁 승리 요인) 왜 하나님께서 이 전쟁을 승리하게 하셨을까?

* (기도) (출17:16) '여호와께서 맹세하시기를..' 부분에 대해 각주2번에는 '여호와의 보좌를 향해 손을 들었으니...'로 되어 있다.
즉, 우리가 은혜의 보좌 앞에 나아가 기도하면 (손을 들면) 하나님께서 맹세하신 대로 우리를 대신해 싸워 주실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기에,
기도가 승리의 요인이었다고 볼 수 있다.

* (항복) 손을 든다는 것은 '항복'이라는 믿음의 고백을 담고 있다.
기도는 내 간절한 소망이나 야망을 성취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기도는 하나님 앞에 내가 항복당하는 것을 의미한다.
모세가 손을 올리고 내리는 그 행위 자체가 중요한 것은 아니었을 수 있다.
아마도 모세는 피곤해서 손을 내렸을 때마저도 계속 기도했을 것이다. 왜냐 하면 서로 죽고 죽이는 전쟁의 현장을 내려다 보면서 그의 기도를 쉴 수는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손을 내릴 때 이스라엘이 졌던 것은 바로 기도가 '항복'을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에, 손을 내리면 그 항복의 의미가 희미해졌기 때문으로 보인다.
즉, 모세와 이스라엘의 항복의 고백을 보시고 하나님이 개입하셨던 것이다.

* (믿음) 우리의 마음과 손이 함께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 들려져야 한다.
(애가 3:41) '우리의 마음과 손을 아울러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 들자'
우리는 마음 즉 믿음으로 하나님께 기도해야 한다. 그냥 형식적으로 손을 드는 것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
다윗도 위급한 상황에서는 주의 지성소를 향해 손을 들고 기도했다.
(시 28:2) '내가 주의 지성소를 향하여 나의 손을 들고 주께 부르짖을 때에 나의 간구하는 소리를 들으소서'
우리도 주의 보좌 앞에서 손을 들고 기도해야 한다.
손을 들 때는 나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을 고백하고 믿음의 고백을 가지고 거룩한 손을 들어 기도해야 하는 것이다.
그 우리의 손이 하나님의 보좌에 닿을 때 역사는 이루어진다.

* (기도의 현장에서의 승리)
전쟁의 진짜 승패는 싸움의 현장이 아니라 기도의 현장에서 결정되었다.
예수님도 겟세마네 기도의 현장에서 승리하였기에 골고다 십자가 현장에서 승리하실 수 있었다.
그러나 제자들은 겟세마네 기도의 현장에서 잠을 자다 실패했기에 십자가 현장 앞에서 달아나 버렸다.
기도의 현장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세상에 나아가서 당당하게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게 된다.
우리는 이 기도의 현장에서 응답을 받아야 하고 평안을 누릴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기도의 현장 없이 일터에서, 사업장에서의 전투에서 승리하려 하는 것이 우리의 일반적인 모습 아닌가?
기도의 현장에서 승리할 때 사역의 열매도 맺어진다.
기도의 동역자라는 책 인용 "초대교회는 10일 기도하고 10분 설교해서 3천명을 구했는데, 현대 교회는 10분 기도하고 10일 설교해 3명을 구한다."
기도의 현장이 중요하다는 의미다. 흘러 넘치는 기도가 있을 때 비로소 흘러 넘치는 추수가 가능하다. 기도의 현장에서 승리하자.

* 맺는 말
외로운가? 무릎이 떨리는가? 두려운가? 미운 사람이 있는가? 기도의 무릎을 꿇어라.
현장을 바라보며 기도해라. 기도의 현장이 기적의 현장이 된다. 기도의 현장에서 승리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보고 간증의 주인공이 되자.

* (적용 기도)
언제부터인가 우리에게서 기도의 현장이 멀어지고 사라지지 않았는가?
이 기도의 현장에서 하늘의 문이 열리고 주님의 어루만지심을 경험할 수 있어야 한다.
다니엘에게 하나님이 말씀하신 '두려워 말라, 강건하라 강건하라'를 이 기도의 현장에서 우리는 들을 수 있어야 한다.
(단 10:19) '이르되 큰 은총을 받은 사람이여 두려워하지 말라 평안하라 강건하라 강건하라 그가 이같이 내게 말하매 내가 곧 힘이 나서 이르되 내 주께서 나를 강건하게 하셨사오니 말씀하옵소서'
주 앞에서 항복하는 믿음의 고백이 함께 있어야 한다. 손만 들면 안 된다.
단세를 통하여 오직 하나님께서 홀로 영광 받아 주시옵소서. 하나님의 영광이 이 땅에 드러나게 하소서.
하나님의 임재가 있는 단세가 되게 하소서.
거기에 가장 필요한 것은 바로 '회개'다. 육신의 정욕을 따라 산 것, 세상의 쾌락을 하나님보다 더 사랑했던 것, 하나님 이외에 더욱 소중하게 생각했던 우상을 섬긴 것을 회개하자. 끊지 못한 것들을 끊어버리게 하소서.
기도회의 성공은 우리의 응답에 있지 않고 하나님의 영광에 있음을 기억하게 하소서.
습관을 따라 기도하기 보다 거룩한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아 영적 산꼭대기에 올라가 널리 분명히 보며 기도하기를 소망하자.
첫날의 중요성... 다니엘이 기도를 시작한 그 첫날에 하나님이 그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셨기 때문이다. 그 응답이 오기까지 21일간의 영적전쟁이 있었던 것이다. 우리도 의심을 버리고 간절히 기도하자. 다른 사람의 기도가 들려서는 안된다.

*관련 기사 http://www.christiantoday.co.kr/news/317296#.W9uaeIjmlBc.mail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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