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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엘 기도회 22. Day 16. 나의 하나님, 나의 아버지! - 이연숙 선교사

Jesus Christ/다니엘 기도회 2022. 11. 16.

강사 - 이연숙 선교사

- (사)한국 불어권선교회 선교사
- 서강교회 부목사 (2019년 12월 1일 ~)
- 장로회 신학대학원 (M.Div)

우물가의 사마리아 여인처럼 목마른 삶을 살았습니다.

여러분 자신을 스스로 안고 '지금까지 애썼고 하나님이 너무 사랑하신다'라고 말해주자.
오늘 이 자리를 준비하는 동안에, 하나님께서는 내게 요한복음 4장에 나오는 우물가의 사마리아 여인의 모습을 보여주셨다. 그 사마리아 여인은 정말 고단한 삶을 살아온 사람이었다. 다섯 남편을 겪고 다른 사람의 눈을 피해 살아야 했던 자신의 신세 한탄이 크지 않았을까?

그렇지만, 우물가에서 예수님을 만난 후 그녀는 달라졌다. 예수님은 그녀와 공감해주셨고, 그녀의 말에 귀를 기울여주었다. 그녀와 예수님의 대화는 예배로 이어졌고, 예배를 회복한 그녀는 물동이를 던져 버리고 자신의 아픔의 현장인 마을로 돌아가 구세주 예수님을 큰 소리로 외친다. 그로 인해 마을 사람들이 예수님을 구세주로 영접하게 된다. 진짜 놀라운 것은 그 사마리아 마을의 사람들이 다음과 같은 고백을 하는 것이다. (요 4:42 그 여자에게 말하되 이제 우리가 믿는 것은 네 말로 인함이 아니니 이는 우리가 친히 듣고 그가 참으로 세상의 구주신 줄 앎이라 하였더라)

사마리아 여인처럼 나도 늘 목이 말랐다. 나를 만나주시고 내 심한 목마름을 해결해 주신 내 하나님과 예수님을 자랑하고 높여드리려 한다. 우리는 모두 각자의 간증들을 가지고 살고 있다. 여러분 안에 계신 하나님의 영광이 자랑스럽다. 오늘은 내 삶에서 일하신 하나님에 대해 나누고자 한다.

나는 종종 헉헉거리며 새벽길을 달려가는 어린이의 꿈을 꾸곤 했다. 내가 중학생일 때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고3 졸업하던 해에 어머니가 돌아가셨기에, 나 혼자 서서 살아가야 했던 아픔의 상황이 그런 꿈을 꾸게 한 것 같다. 내 모든 것 같았던 어머니께서 돌아가신 후에는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없어서 수면제를 먹고 자살 시도를 했으나 하나님께서 살려주셨다. 내가 삶에 대해 큰 의미를 둘 수 없었던 것은 아빠와 엄마처럼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사별을 많이 겪었기 때문이었다. 3년간을 죽을 곳을 찾아 여러 곳을 다녔는데, 그 과정과 여정에서 하나님께서는 기적처럼 때로는 바람으로, 때로는 낯선 행인들의 인사말로 내게 위로의 말씀을 전해 주셨다. 나는 어려서부터 자존감이 너무 낮아서, 남들이 웃는 모습이 마치 나를 비웃는 것 같아서 돌아보고 확인해야만 했었다. 그렇지만 하나님의 위로를 통해 조금씩 회복되어 갔다.
(요 15:5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 특히 이 말씀으로 인해 '안정감'을 회복하게 되었다. 나무 되신 예수님뿐만 아니라, 서로 가지가 되어주는 이웃들과의 교제도 의미 있게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10년 동안 나를 가르쳐주신 멘토 목사님이 계셨는데, 그분을 따라서 말씀을 배우고 기도를 배우게 되면서, 나도 죽음이 아니라 행복하고 기쁜 삶을 살고 싶다는 소망이 생겨났고, 마침내 남편을 만나게 되었다.

결혼, 선교사 파송, 선교지에서의 사고로 인한 남편과의 사별

남편 고(故) 허태준 선교사

남편의 첫인상은, 큰 가방을 둘러매고 큰 옷을 입고 첫 약속부터 2~3시간 늦게 온 사람이었다. 그는 그 이후에도 나를 만나러 오다가 이단을 만나면 시간을 내서 이야기하며 돌아오게 하려 했고, 전도 찬양대를 만나면 이야기를 하며 격려하고 와야 하는 사람이었다. 큰 가방을 들고 다닌 이유는, 이단들의 전단지를 보이는 대로 다 주워서 집으로 가져와 잘게 찢어버리기 위함이었다. 큰 옷을 입고 다닌 것도 항상 바자회에서만  헌 옷을 구해 입기 때문이었다. 그런 사람이 내 남편 고 허태준 선교사다.

결혼을 약속할 때, 나를 잘 이해하시는 멘토 목사님은 남편에게 '연숙는 아픔이 가라앉아 있는 것과 같은 사람이니, 혹시 어떤 일이 있어서 그 가라앉은 먼지와 흙이 올라와 물이 탁해질 때는 참고 기다려주고 사랑해주라.'라고 남편에게 당부했고, 그는 그 약속에 대해 언제나 신실했다. 사실 그와의 결혼 생활은 5년에 불과했다. 우리의 결혼식 축가가 '이 산지를 내게 주소서'였을 정도로 아프리카 선교와 하나님을 향한 사역이 우리 결혼의 기반이었다.

2004년에 서부 아프리카 말리로 가기 위해 파송을 받아 떠나서, 프랑스에서 1년을 거하며 불어 공부를 했는데, 2005년에 아프리카 서부 해안의 가나 공화국 바로 북쪽에 있는 부르기나파소(Burkina Faso)로 사역지가 바뀌었다. 나는 그 변경 자체도 하나님의 구체적인 개입이었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그곳이 그가 묻힐 곳이었고, 그가 묻히기를 그토록 바라던 곳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아프리카 사람들을 정말 사랑했다. 가정예배로 시작한 작은 교회가 짧은 기간 안에 아가페 교회로 세워졌다.

선교지에서 남편이 세상을 떠나던 날

어느 날 한 여인이 뱀에 물려 사경을 헤매게 되었다. 치료를 위해서는 가나 근처 국경까지 먼 길을 가야 했다. 그나마 우리에게 낡은 선교 차량이 있어서 우리가 그 여인을 데리고 다녀와야 했다. 남편은 '차가 좀 이상하지만 주님의 도우심으로 가야지...'라며 길을 나섰다. 먼 길을 다녀오는 것이 소중한 그곳이기에 그 여인의 가족들이 함께 가겠다고 나서는 바람에, 나와 준영이는 빠지고 집에서 기다리게 되었다. 정오경에, 자동차 펑크가 나서 때운 후에 집으로 출발한다며 저녁에 있는 한인교회 모임에 늦지 않도록 도착하겠다는 전화까지 받았는데, 돌아오는 길에 사고가 나서 결국 남편은 집에 돌아오지 못했다.

 

차를 몰고 돌아올 때, 소떼가 길을 막아서 피하려다가 급히 회전하는 바람에 차가 길 밖으로 벗어나 아래로 세 바퀴 반을 굴러 떨어졌는데, 다른 동승자들은 무사했으나 남편만 그 자리에서 소천했다는 것이었다. 아침 기도시간에 '나사로의 기적'을 읽었던 날이었기에 나는 하나님께 그를 살려달라고 기도했고 기도는 금방 울부짖음으로 변했다. '내게 있는 향유 옥합~' 찬송을 부르며, 주님께서 남편을 살려주시기를 간절히 구하는 기도의 씨름을 했다. 엄마와 아빠가 모두 돌아가시고 삶의 소망이 없다가, 이제 남편을 만났는데 그마저 데려가실 수는 없다며 기도했지만, 하나님은 '그가 네게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알지만, 이제 그를 내게 달라'라고 하셨다. 그래고 마침내 나는 하나님께 굴복했다. 

 

그는 '나의 앞모습과 뒷모습이 같니?' '내가 하는 말과 행동이 같니?' '내가 처음 하나님께 소명을 받은 때와 지금이 같니?' 이렇게 내게 늘 확인하고 또 확인하는, 주님 앞에 한결같기를 원했던 사람이었기에, 나는 그를 하나님께 보내 주어야 했다. 그때 동갑인 우리 나이는 겨우 38세였다.(허태준 선교사는 1969년 생)


그 사고는 내 믿음이나 기도와는 무관하게 일어난 일이었다. 하나님이 뜻하신 바가 있었다고 나는 믿는다.  그런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우리에게 일어날 때, 거기에는 하나님의 이유가 있고, 그 이유를 알아가는 것이 기도하는 사람들의 숙제라고 생각한다. 울부짖으며 기도하다가 그 새벽에 하나님의 임재 앞에 순종을 선택하고 남편을 하나님께 올려드릴 때 받은 말씀은 (잠 3:24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였다. 마음을 지키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다. 특히 사탄은 마음을 공격한다. 우리 마음을 주 안에서 지켜내야 한다. 거기에 생명이 있다.

하나님께 순종하기로 결단한 후, 남편의 죽음은 상실이 아니라 천국에 대한 소망이 되었기에 나는 해결을 받았지만, 자녀에게는 아빠의 부재를 납득시키기 어려웠다. 하나님의 도우심을 기도했다. 그런데, 어느 날 딸이 내게 이야기했다. '하나님이 내게 말씀하셨는데, 아빠가 천국에서 너무 필요해서 일찍 데려가신 것이래' 하나님께서 직접 말씀해 주신 것이다. 그 이후, 하나님은 언제나 그 아이를 보살펴 주셨다. 지금은 대학생이다.

남편을 부르기나 파소에 묻고, 패잔병 모습으로 귀국하다

남편의 장례식을 아프리카 현지에서 행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세 번씩 기도했던 바울의 육체의 가시가 도리어 하나님의 은혜가 된 것처럼, 우리 안에 해결되어야 하는 한계적 문제가 있다면 하나님과 씨름하는 시간이 있어야 하며, 그때 하나님의 약속을 받아내어야 한다. 그 새벽, 기도 중에 내 잘못이 아니라 하나님의 섭리 안에 이루어진 일이라는 확신이 있어서 힘을 내어 남편의 장례를 치르고 중심을 잡을 수 있었다. 당시 내 태중에 4개월 된 아이가 있었다. 유복자 아들 충성이다. 


남편의 천국 환송예배는 아름다웠다. 부르기나 파소의 전 국민이 안타까워했고 운구행렬이 지나갈 때는 연도에서도 애도의 예를 갖추어줬다.
장례식을 마치고, 세 살 된 딸과 뱃속의 아이와 함께 짐을 쌌다. 짐 정리를 하며 보니, 소천하던 날 남편이 마지막 읽은 성경은 죽지 않고 하늘로 옮겨진 에녹 이야기였다. 그렇게 모든 것을 아프리카에 놓아두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전쟁터에서 패잔병이 되어 돌아오는 마음이었다.

 

남편 없는 험한 세월 속에, 시댁과 하나님의 위로를 받았습니다.

한국으로 돌아와 둘째 출산을 위해 부산 시댁에 머무는 동안, 찬양과 기도 속에서 하나님의 위로를 받았다. 시댁 입장에서는 사랑하는 아들과 형제를 잃은 사람들로서의 상실감이 컸고 나는 남편을 잃은 사람으로서 상처가 컸는데, 이렇게 상처 입은 사람들이 한 집에서 함께 사는 것이 쉽지 않았을 텐데, 시댁에서는 오히려 나를 딸로 받아들여 주셨다. 나는 정말 매일 울며 기도했고 하나님의 응답을 기대했다. 어쩌면 기도라기보다 나의 투정 소리 같은 기도였으나, 하나님께서는 늘 참고 들어주셔서 내가 그 깊은 슬픔의 강을 잘 건널 수 있었다.

꿈속에서 만난 남편

둘째를 낳기 위해 산통을 겪으며 수술을 받을 때는 침대 아래쪽으로 찾아온 남편이 내게 미소를 보내 주는 것을 보았다.

또 삶의 어려움으로 힘들어할 때 꿈 하나를 꾸었다. 

울퉁불퉁한 길을 달리는 불편한 버스에 내가 타고 있었다. 불편한 자리에라도 겨우 앉았는데 버스 문이 열렸을 때 밖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아주 따뜻한 훈풍이었고, 그다음에 버스 문이 열렸을 때는 너무 향기로운 바람이 불어왔다. 뒤를 돌아보았더니 맨 뒤 가운뎃 자리에 신랑이 앉아있었다. 내가 힘이 들어 내리겠다고 하니 남편은 아직 아니라고 만류하는 것이었다.

주님이 신랑의 모습으로 꿈에 찾아와 주셨다고 생각한다. 나는 아직도 버스 안에서 힘들지만 내가 내려야 할 정거장을 향해, 불편하더라도 내리지 않고 포기하지 않고 여전히 나아가고 있다.

기도하며 인내와 연단 속에서 소망을 갖게 되었습니다.

욥의 고난처럼... 내가 하나님께 잘못해서 고난을 받는 것은 아닐 것이다. 여러분도 혹시 고난 중에 있다면 그것은 여러분이 죄를 지었기 때문이 아니다. 그런데도, 간혹 내 안에 그런 나쁜 생각이 밀려왔다. '하나님은 왜 내게 이런 어려움을 허락하셨지?' 그래서 청계산 기도원으로 올라갔다. '왜 그렇게 하셨어요?' 하고 묻는 기도를 했다. 미친 듯이 울던 울음이 잦아질 때 하나님의 음성이 들렸다. '내가 너를 사랑한다.'

 

그리고 '새벽길을 달려가던 어린 내 모습'을 보여주셨다. 내가 몸이 약해서 집으로 박수무당이 와서 굿을 하기도 했지만, 나는 어려서부터 교회를 다녔다. '그때 내가 너와 함께 있었다.'라고 예수님이 말씀하셨다. 또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10대의 내 모습을 보여주시며, 내 곁에서 나만큼 슬퍼하시는 예수님을 볼 수 있었다. 또 남편의 시신 앞에 있는 내 모습을 보여 주시며, 하나님도 슬펐고 나를 사랑한다고 하셨다. 그렇게 하나님과 화해했다. 하나님은 진짜 아버지가 되어 주셨고, 나는 하나님의 막내딸이 되었다. 


또 우리가 파송받아 떠나던 날의 플래카드를 다시 보여주셨다. 허태준, 이연숙, 허준영... '허태준 외 2명'이 아니라, 우리 가족 하나하나를 선교사로 부르셨던 모습을 다시 보게 된 것이다.

 

(롬 5:3~4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환난을 허락하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소망으로 나아가게 하기 위한 것이다.

 

감당할 수 없는 상실을 겪을 때, 돌아온 탕자처럼 하나님께로 달려 가자. 그 누구도 이 아픔을 해결해 줄 수 없다. 아버지 하나님께로 가서 부르짖고 귀를 기울이며 기다리자. 인내가 필요한 기다림의 시간을 견디자. 사람의 방법이나 다른 데에서 답을 찾으려 하면 안 된다. 하나님이 응답하지 않으신다는 분이 계실 수도 있다. 내 전부였던 엄마를 살려달라는 기도를 하나님은 끝내 들어주지 않으셨다. 기도는 들어주지 않으셨지만 응답을 안 하신 것은 아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가장 좋으신 것으로 내게 응답하신 것이다. 비록 내가 원하는 방법이 아니더라도 아멘하고 받아들이면 거기에서 하나님의 방법으로 소망이 보인다.


하나님께서 '내게 미안하다'라고 말씀하시는 것 같은 마음을 주셨다. '다른 사람처럼 평범하게 살게 하지 못해서 미안하다. 세상에 아픈 사람들이 너무 많아 마음이 아프다. 그러니 그들에게 내가 사랑한다고 전해달라'라고 말씀하셨다. 여러분 한 분 한 분을 하나님께서 사랑하신다. 지금은 이해할 수 없어도 언젠가는 하나님께서 그 아픔의 이유를 설명해 주실 것이다.

하나님이 책임져 주셨습니다.

남편이 살아 돌아온 것은 아니지만, 이제 새벽길을 헉헉거리는 그 불안한 어린아이는 사라졌다. 이제 감사하며 살아가기 때문이다.
남편의 호흡이 끊어지기 직전, 그 짧은 순간에 남편은 무엇을 했을까? 남겨진 가족을 위해 하나님께 기도했으리라 생각한다. 우리 가족은 남편의 기도의 열매라고 생각한다. 남편의 그 마지막 기도처럼 하나님 보좌 우편의 예수님의 우리를 위한 중보 기도도 그러하리라고 생각한다.

'자녀들이 선지자처럼 산다면, 선교사가 되겠다고 하면 어떻게 할래?' 하나님께서 물으시는 것 같을 때 내 마음은 '싫어요. 평범하게 살게 해 주세요.'였다. '우리 두 아이가 선지자처럼 살면 좋겠어요.' 사람들에게 내가 늘 하던  말이었다. 그러나 진실의 순간에는 아이들은 나와는 다른 편안한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더욱 강했다. 내 가식과 진실이 부딪히는 시간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다시 하나님께 굴복했다. "하나님, 자녀들이 선지자 같은 삶을 살게 해 주세요. 내가 아이들 발목 잡지 않게 해 주세요."라고 기도했다.

첫째 딸 준영이는 국제기구에서 일하고 싶어 했는데, 하나님께서 미국으로 보내주셨다.  둘째는 아들(허충성)인데, 학교에서 힘든 시간을 보냈다. 하나님께서는 '방주를 짓듯이 지어라'는 응답을 주셨다. 생명을 지키는 삶을 살기를 축복한다.


아이들과 함께 남편의 사고 현장에 가보았다. 아이들이 다섯 살, 세 살 때였다. 남편과 사별한 지 몇 해 되지 않을 때였지만, 상처가 회복되는 기회였다. 그 일이 없었으면 내 안의 쓴뿌리와 분노를 해결하지 못했을 것이다.

시댁 식구들과 함께 거의 매해 아프리카를 다녀온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힘든 상처들과 직면하게 하신다. 아픔은 가지고 있지 말고, 빛이신 하나님께 그 아픔을 드러내야 한다. 하나님만이 해결하실 수 있다.

이렇게 내 남편은 내게 그리스도의 흔적(stigma)이 되었다. 남편은 슬픔이나 아픔이 더 이상 아니다. 딸의 나에 대해 쓴 글이다. "그녀는 한 번도 자기 인생을 자기가 운전해본 적이 없다. (하나님이 운전하셨다.)" 이렇게 아빠는 슬픔이 아니라, 복음의 흔적으로 아이들에게도 남아 있다.

2016년에 파소에 단기 팀과 함께 부르기나 파소로 들어가서 남편의 소천 10주기 기념을 했다. 남편과 알고 지냈던 가브리엘 목사가 한 에피소드를 이야기해주었다. 가브리엘 목사가 남편에게 군인들에게 배포할 성경이 필요하다고 했더니, 남편이 가브리엘 목사의 차에 손을 얹고 기도했다고 한다. 이제 남편은 이 세상에 없지만 그 기도받은 차가 기도대로 '말씀을 나르는 차'가 되었기 때문에 남편도 함께 하나님 말씀을 전하고 있다고 말했다.

나는 아직 그 불편한 버스를 타고 가고 있다. 마라의 쓴 물을 달게 하는 이름 없는 막대기가 되고 싶다. 사마리아 여인이 자기의 아픔이 있는 마을로 돌아가 예수님을 외쳤듯이, 우리 삶의 현장에서 예수님을 외쳐야 한다. 우리는 사나 죽으나 주의 것이다. 하나님께 영광이 되고 우리는 이름 없이 사라지는 존재가 되자. 아버지의 영으로 눈물과 고통을 씻어 주실 것이다. 무릎을 곧게 세우자. 일어서자. 주님이 여러분을 사마리아 우물에서 기다리신다.

김은호 목사님 정리

상처가 복음의 흔적이 되는 간증이었다. 함께 찬송하자. 오늘 간증의 핵심이 이 찬양에 나와 있는 것 같다.


주님과 함께 하는 이 고요한 시간
주님의 보좌 앞에 내 마음을 쏟네
모든 것 아시는 주님께 감출 것 없네
내 맘과 정성 다해 주 바라 나이다
온 맘 다해 사랑합니다 온 맘 다해 주 알기 원하네
내 모든 삶 당신 것이니 주만 섬기리 온 맘 다해

나 염려하잖아도 내 쓸 것 아시니
나 오직 주의 얼굴 구하게 하소서
다 이해할 수 없을 때라도 감사하며
날마다 순종하며 주 따르오리다
온 맘 다해 사랑합니다 온 맘 다해 주 알기 원하네
내 모든 삶 당신 것이니 주만 섬기리 온 맘 다해
온 맘 다해 사랑합니다 온 맘 다해 주 알기 원하네
내 모든 삶 당신 것이니
주만 섬기리 온 맘 다해 주만 섬기리 온 맘 다해

이해할 수 없는 일들 때문에 하나님을 향한 불평과 원망의 응어리를 안고 사는 사람들이 있다. 그래도 하나님의 얼굴을 구해야 한다. 하나님께로 나아와 하나님께 따지고, 하나님의 얼굴을 구해라. 그러면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뜻을 알게 하실 것이다. 우리의 상처가 복음의 흔적이 되게 하실 것이다. 이해할 수 없는 고난 속에서, 고난이 고난으로 끝나지 않도록 하나님께서 도와주시기를 기도하자. 우리가 연단되고, 나를 향한 하나님을 깨닫게 하소서. 우리의 상처가 우리의 우상이 되거나 주인이 되지 않게 하소서.

우리에게도 어느 날에는 주님이 나를 부르실 것이다. 나는 어떤 모습으로 이 땅을 떠나고 주님을 만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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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허태준 선교사님이 보내신 마지막 기도편지

샬롬! 사랑하는 교회와 지체들에게 주님의 이름으로 따뜻한(?) 부르기나파소에서 문안드립니다. 이 땅에도 성탄절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어느 해보다 주님의 따뜻한 사랑을 체험하는 겨울이 되시길 기도합니다. 저희 가정은 소중한 지체의 기도와 하나님의 사랑 가운데 와가두구에서 새로운 기후와 문화, 그리고 사람들을 기쁨으로 접하며 잘 정착하고 있는 중입니다.

부르기나파소 소식

 

10월부터 건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어 낮에는 뜨겁고 아침, 저녁으로는 조금 쌀쌀해졌고, 많은 먼지바람이 불기 시작했습니다. 11월 3일에 이슬람의 라마단이 축제와 함께 성황리에 끝이 났습니다. 이어서 대통령 선거가 무사히 치러졌는데, 1987년부터 집권하고 있는 꼼빠오레 대통령이 거의 단독 유세를 화려하게 펼치고 12명의 후보 가운데 80%의 압도적인 지지로 다시 당선되었습니다. 장기 집권중인 대통령이 바른 정치를 펼칠 수 있도록 기도를 부탁드립니다.

하나님 나라 선교사도 턱없이 부족한데 한국의 이단들이 이곳에서 열심히 사역하고 있습니다. 오래전부터 활동하고 있는 이단도 있고, 구원파도 지난 연말부터 선교사가 상주하고 있는데 지난주에는 나흘 동안 현지인을 대상으로 성경세미나를 열어 포교활동을 하였습니다. 이슬람, 전통신앙, 그리고 이단들과 치열한 영적 전쟁을 벌이는 이곳에 더 많은 선교사들이 들어오기를 기도합니다. 우선 이단에 대해 지혜롭게 대처할 수 있도록, 한국 선교사협의회가 구성되어 함께 기도하며 조직적으로 대응할 수 있도록 기도를 부탁드립니다.

새 땅에서의 정착과 사역

2005년 8월 18일에 꿈에 그리던 아프리카 땅을 다시 밟았습니다. 잠시 다녀가는 발걸음이 아니라 주님께서 허락하신 날까지 사역하기 위해 밟는 땅이라 각오가 새로웠습니다. 현지에서 사역 중인 세계로 선교회 선교사님들의 도움으로 Assemblée de Dieu(하나님의 성회) 선교사 게스트하우스에서 한 달 반을 머물면서 다소 어려웠지만 감사하게 우선 정착할 집을 구하여 10월 초에 이사하였습니다.

게스트하우스에 머무는 동안 하나님께서 귀한 만남을 주셔서, 신실한 M. Dabsorba 가정(기독중학교 교사, AD교회 찬양 반주자, 부인은 초등학교 교사. 새로운 기독교학교 개설을 위해 기도 중에 있음.)과 좋은 교제를 나누고 있고, 이연숙 선교사는 자매와 함께 불어 개인교습을 10월부터 계속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AD교회 원로 목사이신 알파 트라오레 목사님(현재 번역사 역 중, 부인은 프랑스인으로 병원 책임을 맡고 있음) 부부와의 만남을 통해 부르기나파소의 기독교 상황에 대해서 들을 수 있었습니다.

11월 초에는 은퇴 후 남은 여생을 아프리카에서 선교사로 헌신하겠다며 사역지를 찾아 정탐을 오신 최낙성 장로님 부부와 짧고 찐한 만남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칠순의 나이로 이슬람에 대적(중동 한인교회에서 오랫동안 사역함)하고 하나님 나라 확장을 위해 헌신을 다짐한 두 분이 하나님께서 준비해놓으신 좋은 선교지를 찾아 뜨겁고 아름답게 사역할 수 있도록 기도를 부탁드립니다.

현재 이연숙 선교사는 매주 월, 수, 목요일 저녁 6시부터 8시까지 프랑스 문화원에 가서 중급반 불어를 공부하고 있습니다. 3개월 과정이 거의 끝나갑니다. 차량으로 왕복 30분인 거리를 2시간 이상 도보, 버스와 택시를 번갈아 이용하다가 2주 전부터 하나님께서 믿음의 택시기사를 보내주셔서 집에서 문화원까지 다닐 수 있게 되었습니다.

허태준 선교사는 정착을 위한 제반 사항들을 준비하고 실행하는 데 힘쓰고 있는 중입니다. 가정과 한국 불어권선교회 부르기나파소 선교회 사무실에 필요한 물품들을 구입하고, 차드 선교부와 콘스탄틴 형제님(고아원사역)의 도움을 통해 선교회의 ONG등록(최소6개월 내지 1년이 소요된다고 합니다)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또 부르기나파소 정보와 자료들을 모으며 내년에 있을 지방 정탐 사역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현재 살고 있는 곳은 ‘와가2000’이라는 수도 내 신개발지로 한창 건물들이 들어서고 있는 지역으로  먼지가 많고 교통은 불편하지만, 주님의 은혜로 이슬람이 대부분인 이웃들을 주셔서 좋은 관계를 맺어가고 있고, 시내와 길거리에서 발품을 팔며 복음을 전할 친구들을 사귀어가고 있는 중입니다. 현지 교회들을 출석하면서 부르기나파소 교회들을 배우고 있으며, 내년 초부터는 언어훈련을 재개하고, 선교회 게스트하우스와 센터를 마련할 장소를 물색할 예정입니다. 부르기나파소 교회들과 교우들의 영적 부흥을 위해 기도를 부탁드립니다.

특별한 이야기

하나님의 인도하심 속에 개인전도를 시작했습니다. 최근에 세 명의 형제들에게 사영리로 복음을 전했고, 모두가 주님을 그의 구세주로 영접했습니다. ‘프랑크’ 형제는 아버지와 함께 가톨릭 신자이며, 친어머니는 모슬렘입니다. 한 달 동안 준영이의 통학을 도와준 한인 가정의 운전사입니다. ‘에밀’ 형제는 부모님이 꼬뜨디부와르에 계시는 가톨릭 신자였는데, 와가에서 택시운전을 하고 있습니다. 큰 형님의 집에 머물게 되면서, 함께 살기 위해서는 개종을 해야 된다고 해서 모슬렘이 된 형제입니다. 주님을 영접하고 결단하여 이번 주에 함께 현지 교회에 출석하기로 했는데, 연락이 되지 못하는 안타까움이 있었습니다. 주일 아침에 그의 형과 통화했고, 예배 중에 그가 전화를 했는데 받지 못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형제가 생활의 어려움과 가족관계의 어려움 속에서도 그가 영접한 주님을 끝까지 신뢰하고 믿음으로 자라날 수 있도록 기도를 부탁드립니다. ‘무사’ 형제는 5년 전부터 이슬람교를 믿고 있었던, 저희 집 근처(삼촌 집 건축을 감독하고 있음)에 살고 있는 청년입니다. 좋은 관계를 맺어오다가 복음을 전했고, 그는 기쁘게 주님을 영접했습니다. 할렐루야! 바라쿠에남!(하나님께 영광을!)

복음을 전하게 되면서 새로운 사역의 필요성이 생겼습니다. 두 형제는 문맹이라 안타깝지만 성경을 읽을 수가 없습니다. 신앙 성장에 있어서 제일 중요한 말씀을 읽는 일을 할 수 없다는 사실은 문맹퇴치의 필요성을 가슴 깊이 느끼게 해 주었습니다. 우선 요한복음 성경 통독 테이프를 구하고, 장기적으로는 문맹퇴치 사역과 함께 성경 테이프를 제작해야 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세 명의 형제들과 계속 접촉하면서, 중학교 과정을 마친 ‘무사’ 형제와는 개인 양육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세 형제와의 만남과 교제, 그리고 양육을 위해 기도를 부탁드립니다. 이곳의 상황은 영접에 대해서도 신중히 재점검하고, 지속적으로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믿음이 잘 자라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합니다. 그래서 저희가 만나는 소중한 한 영혼, 한 영혼을 위해 그들의 영적 성장을 저희와 함께 바라보면서 영적 아버지와 어머니의 심정으로 중보기도 할 동역자들이 필요합니다.(가칭 ‘한 영혼 중보기도 운동’. 자세한 문의는 한국 불어권선교회로 해주시면 됩니다.) 이 사역을 위해 기도해주십시오.

꼬마 선교사 준영(기쁨) 이야기 + ‘충성’이 이야기

할렐루야! 선교지에서 새로운 생명을 잉태케 하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이제 10주가 지났습니다. 산모와 태아(충성)의 건강과 안정, 그리고 안전을 위해서 기도를 부탁드립니다.

‘아빠 이제 뭐하지?’ 찬양에 탁월한 은사(?, 아빠와 엄마 생각입니다)가 있는 준영이가 아빠와 함께 밤에 엄마를 마중 나가거나 집에서 함께 찬양할 때 늘 하는 말입니다. 작고 예쁜 입술에 어울리지 않게 엄청 큰 소리로 목놓아 찬양하는 딸의 모습이 얼마나 감사한지요. 때로는 혼자서 부흥회를 하기도 합니다. 지금 준영이는 영재(?)는 아니지만 다른 한인 아이들처럼 두 학교를 다니고 있습니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는 Ecole Bilingue(레바논 사람이 운영하는 학교. 학비가 비싸지만 프랑스학교보다 싸고, 집에서 훨씬 가깝기 때문에 우선 다니기로 했습니다)에서 불어와 영어를 배우고, 토요일에는 와가두구 한인교회(임행주 목사) 한글학교에서 한글을 씩씩하게 배우고 있습니다.

꼬마 선교사로서 말씀과 기도, 그리고 찬양을 통해 주님 안에서 밝고 해맑게 잘 자라서 아름다운 복음의 일꾼으로 준비될 수 있도록 기도를 부탁드립니다.

● 허태준, 이연숙, 허준영 선교사 기도제목

1. 영적으로 깨어있는 삶과 예배를 통해 승리하도록
2. 부르기나파소 땅과 영혼들을 잘 정탐할 수 있도록
3. 개인전도 대상자들과 현지인 동역자들을 준비시켜 주시도록
4.ONG 단체 등록 준비와 접수, 처리가 잘 이루어지도록
5. 새 생명(충성)을 잉태케 하신 하나님께 감사, 산모와 태아의 건강을 위해
6. 허준영 꼬마 선교사가 학교에서의 사역을 잘 감당할 수 있도록
7. 팀사역을 위한 선교사들이 잘 준비될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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