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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sus The Dramatic Trailer - Sight and Sound Theater
Takeaways
- 예수님이 직접 가르쳐 주신 주기도문은 소모임 마칠 때 서둘러 외울 수 있는 전형적 기도문이 아니라, 예수님이 전 공생애와 십자가 희생과 부활, 승천을 통해 직접 보여주신 순종과 영광의 기도임을 이 영화 전편에 걸쳐 느끼게 되었다.
특히 Your will be done.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이다…의 의미가 예수님과 성모 마리아의 기도와 절규 가운데 무겁게 다가왔다. - 이 영화의 피날레 찬양 가사는 'He saved this one.'이다. 얼핏 문장의 형식이 3인칭 단수인 ‘He’를 사용하고 me/us가 아닌 ‘this one’을 사용하여 객관적 서술로 보이지만, ‘this one’에서 자기 자신을 가리킴으로써,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이 막연한 인류나 다른 사람이 아닌 '바로 나 자신'을 구원하셨음을 고백하며 마무리한다.
어제 그레이스 콰이어의 부활절 찬양 제목이 ‘우리 때문에’이었기에 더욱 감동이 된다. - 이 영화를 통해 왜 초기 기독교 지도자들이 삼위일체라는 이해하기 어려운 교리를 사수했는지 깨닫게 된다. 그것은 한 마디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경험이 너무나 강렬했기 때문이다. 단순히 공생애 뿐만 아니라 부활/승천 이후까지 그 임마누엘 예수님의 함께 계심의 경험이 너무나 강렬했기 때무니다.’
유대인으로서 여호와 성부 하나님을 유일신으로 섬겨왔으며, 공생애 기간 동안 예수님과 나눈 강력한 현존과 부활 승천 이후에도 계속된 너무나도 강렬한 예수님의 함께 하심의 경험, 그리고 오순절 성령 강림의 강력한 감동과 역사들을 경험하며, 삼위일체 하나님을 강조할 수 밖에 없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나도 이 영화를 통해 성자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를 다시 한 번 강렬하게 경험했다. - 예수님이 문둥병자를 낫게 하시는 장면을 보면, 문둥병자를 치유의 대상으로 하신 것 자체가 얼마나 혁신적인 일이었는지를 깨닫게 된다. 문둥병자를 기피하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코로나19 초기가 생각하게 되어 그 상황이 생생하게 다가온다. 예수님은 그 더러운 문둥병자를 안으신다.
- 맹인의 눈에 침으로 갠 진흙을 바르시고 실로암 못에서 씻으라고 하시는데, 맹인이 보게 된 후에 이렇게 고백한다. ‘I was blind and now I see.’ 이것은 찬송가 Amazing Grace의 가사이기도 하다. 단순한 비유가 아니라 진정한 암흑과 비교되는 하나님의 영광의 모습니다.
- 예수님의 유모어다. 불평하는 마르다에게 예수님이 사용하시는 유머다. ‘사실…. 나는 지금까지 마르다의 음식을 좋아하지 않았어….. (극도의 서운함!)…. 사랑했지 (극도의 기쁨)
I don't like it. I love it.' - 잡다한 상식:
- 예수님을 '파스카의 어린 양'으로 한글 자막을 번역했는데, 파스카는 가톨릭에서 유월절을 호칭하는 것이다. 개신교의 '유월절 어린 양'의 뜻이다.
- 막달라 마리아가 예수님의 빈 무덤에서 울고 있다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알아보고서 ‘Rabboni’라고 부른다. 랍비여…라는 뜻이다.
- 예수님께서 붙잡히실 때 베드로가 ‘말고’의 귀를 베고 예수님이 다시 붙여 치료해주신다. 그의 이름이 Marko라면 ‘마가’와 이름이 같을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찾아보니 Malchus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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