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은 내가 며느리를 얻고, 내가 사위를 얻는 날이 아닙니다. 내 아들이 내 딸이 ‘배우자’를 만나 둘이서 한 인생을 시작하는 날입니다. 그 결과로 내 아들의 배우자가 며느리가 되고, 내 딸의 배우자가 사위가 되는 것이죠. 이걸 모르면 부모가 자녀의 결혼생활에 사사건건 끼어들게 됩니다.
1. 결혼하는 순간부터, 아내·남편이 ‘영순위’
부모도 아니고, 자식도 아니고, 심지어 반려동물도 아닙니다. 결혼으로 맺어진 부부가 영순위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정해 주신 ‘0촌’, 곧 한 몸이 된 사이이기 때문입니다. 부모는 자녀를 떠나보내고, 자녀도 부모에게서 떠나와야 진정한 부부의 인생이 시작됩니다. 결혼하고 나서도 “내가 우선”인 태도를 고집하거나, 남편·아내 사이에 부모를 내세우거나, 자식을 영순위로 삼으면 결혼 본연의 행복을 누릴 수 없습니다.
2. 결혼은 ‘남녀가 죽는 예식’
결혼 전, 남자는 총각으로 자기 인생을 살았고, 여자는 처녀로 자기 인생을 살았습니다. 그러나 결혼해 부부가 되려면, 예전의 ‘총각’, ‘처녀’로 살던 자아가 매일 죽어야 합니다. 마치 초록색 페인트와 노란색 페인트가 섞여서 전혀 다른 ‘연두색’이 되듯, 둘이 각자의 색을 고집하면 결코 한 인생이 되지 못합니다.
아이를 낳으면 또 죽어야 합니다. 남편이 ‘아버지’가 되고, 아내가 ‘어머니’가 되려면, 그전까지 살아온 방식과 생각을 새롭게 내려놓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이렇게 매일매일 내 욕심과 옛 자아를 죽여야만 비로소 “둘이서 한 인생”을 살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자기 부인(自己否認)’을 통해 점점 성숙해지고, 나이가 들어서는 진정한 ‘어른’이 됩니다. 세월만 흐른다고 누구나 어른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나이가 들면 대부분 ‘노인’이 되지만, 평생 자기 욕심을 죽이던 사람만이 참된 ‘어른’이 될 수 있습니다.
3. 결혼은 ‘서로를 알아가기 시작하는 예식’
부부가 결혼하기 전에 상대방을 완벽하게 알 수 있을까요? 사실 불가능합니다. 나를 낳아 주시고, 평생 같이 살아온 부모조차도 우리는 모두 다 안다고 확언할 수 없는데, 결혼 전 몇 년 교제했다고 해서 배우자를 다 알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착각입니다.
그래서 결혼은 상대에 대한 ‘허상’을 깨고 ‘실상’을 알아가기 시작하는 날입니다. 결혼 생활이 깊어질수록, 내 남편·아내가 지닌 새로운 면을 알게 되고 그 폭과 깊이에 놀라게 됩니다. 이 ‘알아가는 즐거움’과 ‘함께 자라는 기쁨’이 결혼생활을 풍성하게 만들어 줍니다. 그 과정에 겸손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성경 창세기 4장 1절에 “아담이 그의 아내 하와와 ‘동침’하매”라고 하였는데, 원어(히브리어)로 ‘알다’(yada‛)라는 단어가 함께 쓰입니다. 즉, 부부의 육체적 결합은 서로를 더 깊이 알아가는 과정이라는 뜻입니다. 배우자에 대해 알아가고, 또 그를 통해 나 자신도 더 깊이 알게 되는 것이 부부의 삶입니다.
4. 결혼은 서로의 ‘남성성’과 ‘여성성’을 지켜주는 것
창세기 1장 27절은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라고 증언합니다. 하나님은 남자가 아니고 여자도 아니며, 남성성과 여성성을 동시에 지니신 분이십니다. 그분이 자기 형상의 일부를 ‘남자’에게, 또 다른 일부를 ‘여자’에게 부어 주셨습니다. 그리고 남자와 여자가 결혼으로 한 몸을 이루어, 하나님의 풍성한 형상을 드러내도록 하신 것입니다.
- **남편이 아내를 사랑한다**는 것은, 하나님이 아내에게 부어 주신 **여성성**을 지켜 주고 존중해 주는 것입니다. 여성성의 대표적 특징은 부드러움과 섬세함입니다. 이것이 짓밟히면, 아내가 호랑이처럼 변할 수도 있습니다. 여성성 상실을 막기 위해 남편은 아내의 마음을 세심히 살피고, 자기중심적인 태도로 아내를 몰아붙이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 **아내가 남편을 사랑한다**는 것은, 하나님이 남편에게 부어 주신 **남성성**을 지켜 주고 존중해 주는 것입니다. 남성성은 너그러움과 책임감으로 대표됩니다. 아내가 남편을 계속해서 무시하고 “당신이 뭘 알아?” 하는 식으로 깎아내리면, 남편의 마음이 점점 닫히고 바늘구멍처럼 옹졸해질 수 있습니다. 반면에 아내가 “당신이 우리 가정의 머리입니다. 믿습니다.” 하고 인정해 줄 때, 남편의 마음은 너그러워지고 책임감이 커져, 가정에 든든한 기둥이 됩니다.
서로가 서로의 여성성과 남성성을 지켜 줄 때, 부부는 나이가 들어서도 아름다운 ‘여성성’, 넉넉한 ‘남성성’을 간직할 수 있고, 이를 통해 풍성한 가정이 됩니다.
맺음말: 가정이야말로 ‘땅끝’의 출발점이자 종착점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라.”(행 1:8)라는 말씀을 우리는 흔히 공간적으로 먼 곳, 선교지로 이해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지으신 지구는 둥글기 때문에, 어디든 ‘땅끝’에 도달하면 다시 출발점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결국 진짜 땅끝은 “내가 지금 두 발 딛고 서 있는 자리”, 곧 우리 가정입니다.
우리 가정을 믿음의 땅끝으로 만들지 못하면, 우리는 어디 가서도 주님의 증인으로 살 수 없습니다. **부부가 동일한 신앙을 갖고, 서로의 영역(부모와 자녀 등) 거리를 인정하고, 매일 자아를 죽이며, 날마다 상대를 새롭게 알아가고, 서로의 여성성과 남성성을 지켜 줄 때**, 그 가정이야말로 주님께서 기뻐하시고, 이 시대를 새롭게 하시는 땅끝이 될 것입니다.
결혼은 그저 둘이 한 집에 사는 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부모를 떠나, 아내와 남편이 영순위가 되고, 매일 ‘나’를 죽이며, 서로를 알아가고, 서로에게 부어주신 아름다운 성(性)을 존중해 줄 때, 그 가정 안에 참된 행복이 움트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풍성함을 누릴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