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노모의 유서 - 자네들이 고마웠네
다음은 팔순 경에 난소암으로 소천하신 어느 어머니의 유서라고 합니다.
저와는 무관하지만, 마치 작년에 소천하신 제 어머님의 글처럼 제게 다가옵니다.
자네들이 내 자식이었음이 고마웠네.
자네들이 나를 돌보아줌이 고마웠네.
자네들이 세상에 태어나
나를 어미라 불러주고,
젖 물려 배부르면
나를 바라본 눈길에 참 행복했다네.
지아비 잃고 세상이 무너져,
험한 세상 속을 버틸
수 있게 해 줌도 자네들이었네.
병들어 하느님이 부르실 때,
곱게 갈 수 있게
곁에 있어 줘서 참말로 고맙네!
자네들이 있어서 잘 살았네.
자네들이 있어서 열심히 살았네.
딸아이야 맏며느리, 맏딸노릇 버거웠지?
큰 애야, 맏이노릇 하느라 힘들었지?
둘째야, 일찍 어미
곁 떠나 홀로 서느라 힘들었지?
막내야, 어미젖이 시원치 않음에도 공부하느라 힘들었지?
고맙다. 사랑한다.
그리고 다음에 만나자.

노자의 신묘한 도덕
노자(老子)는 다음과 같은 것을 ‘현덕(玄德)’이라 했습니다. ‘인간이 아무리 알려고 해도 알 길 없는 묘한 도덕’이라는 말입니다.
‘낳아주되 제 것으로 갖지 않고, 위해주되 대가를 바라지 않고, 자라게 해 주되 간섭하지 않는다"
生而不有(생이불유),
爲而不恃(위이부시),
長而不宰(장이부재),
이것이 부모님의 사랑이라 할 것입니다.
당신이 있어 자식이 잘 산 것이 아니라 자식이 있어 당신이 잘 살았다 하고,
당신이 자식을 열심히 살게 한 것이 아니라 자식이 있어 당신이 열심히 살았다고 합니다.
당신 삶의 모든 공을 자식들에게 돌립니다.
노자는 이를 "功成而不居 (공성이 불거)"라고 했습니다.
공을 이루고도 연연하지 않는 것"이라 하며 이는 곧 ‘자연의 일' 즉, 자연이 만물을 대하는 이치와 같다고 했습니다.
노자의 도덕경에서는 이 구절 바로 뒤에
"오직 머물러 있지 않기에, 그 공이 오히려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다(夫唯弗居, 是以不去)"라는 말을 덧붙입니다.
우리가 부모님 은혜를 사별 이후에도 영원히 잊지 못하는 이유 중의 하나일 수도 있겠습니다.
아름다운 뒷모습을 생각하는 날
살아가며 무언가를 이루는 일보다 더 어려운 것은,
이룬 것을 가만히 내려놓는 일인지도 모릅니다.
위에 언급된 노자의 네 구절을 다시 살펴봅니다.
생이불유(生而不有).
온 정성을 다해 낳고 길러냈지만, 내 것이라 여기지 않는 마음입니다.
자식이든, 내가 일군 일터든,
그저 하나의 온전한 존재로 존중하며 바라보는 사랑입니다.
위이부시(爲而不恃).
아낌없이 베풀고 도왔지만, 내 공을 앞세우지 않는 자세입니다.
"내가 너에게 어떻게 했는데"라는 서운함을 비워낼 때,
내가 건넨 온기는 비로소 순수한 선물이 됩니다.
장이 부재(長而不宰).
앞장서서 이끌어주되, 내 뜻대로 휘두르지 않는 품격입니다.
품 안에 가두기보다 스스로 설 수 있도록 묵묵히 지켜봐 주는 것,
어른이 건넬 수 있는 가장 깊은 배려입니다.
공성이불거(功成而不居).
눈부신 성취를 이루고도, 그 자리에 연연하여 머물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종종 내가 세운 공로를 손에 꼭 쥐려 합니다.
하지만 꼭 쥔 손에는 새로운 바람이 머물지 못하고,
자리에 집착할수록 빛나던 성취마저 바래기 마련입니다.
머물지 않고 담담히 비워두기에,
그 사람의 품격과 진심은 비로소 사라지지 않고 남습니다.
나를 드러내지 않고,
소유하려 욕심내지 않으며,
박수받을 때 조용히 자리를 비켜줄 수 있는 사람.
비워낸 자리에 조용히 피어나는 삶의 향기를 기억하며,
오늘도 그런 단단하고 따뜻한 어른의 뒷모습을 닮아가고 싶습니다.
기독교적 시각으로 바라본 노자의 네 구절
굳이 그래야 할까? 싶지만... 그래도 그래야 한다면?...
이 네 가지 구절은 기독교 신앙의 가장 깊은 영성인 청지기(Stewardship) 정신, 자기 비움(Kenosis), 그리고 오직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리는 태도와 정확히 맞닿아 있다고 연결 지어 생각할 수 있습니다.
生而不有 (생이불유): 모든 것의 주인을 하나님으로 인정하는 청지기 신앙
내가 낳은 자녀도, 내가 피땀 흘려 일군 일터와 성과도 실은 내 소유가 아니라 창조주 하나님이 잠시 맡겨주신 선물이라는 고백입니다. 욥이 "주신 이도 여호와시요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오니"라고 고백했듯, 인생의 모든 결실에 대해 내 소유권을 내려놓고 하나님께 주권을 돌려드리는 태도입니다.
爲而不恃 (위이부시): 공로 사상을 넘어선 은혜의식
이웃을 위해 헌신하고 선한 일을 행하되, 그것을 나의 공로(의, 義)로 삼거나 대가를 바라지 않는 마음입니다. 예수님께서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라고 하신 말씀이나, 사도 바울이 수많은 사역을 감당하고도 "나의 나 된 것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라고 고백한 것과 같습니다. 내 힘으로 행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은혜의 통로로 쓰임 받았을 뿐임을 아는 겸손입니다.
長而不宰 (장이부재): 발을 씻기신 예수님의 섬김의 리더십
높은 위치에 오르고 사람들을 이끌게 되었을 때, 권력으로 지배하거나 억누르지 않는 자세입니다. 성경은 "맡은 자들에게 군림하는 자세를 취하지 말고 양 무리의 본이 돼라"(베드로전서 5장)고 권면합니다.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한다"며 친히 제자들의 발을 씻겨주신 예수님의 섬김의 리더십(Servant Leadership)이 바로 이 모습입니다.
功成而不居 (공성이불거): 무익한 종의 고백과 자기 비움(케노시스)
큰 성취를 이룬 뒤 그 자리의 영광과 기득권을 스스로 쥐려 하지 않는 초연함입니다. 이는 예수님이 말씀하신 "우리는 무익한 종이라, 마땅히 하여야 할 일을 한 것뿐이라"(누가복음 17장)는 고백과 통합니다. 성취의 영광을 자신이 가로채지 않고 온전히 하나님께 돌리며(Soli Deo Gloria), 자신을 낮추어 하나님 뜻에 순종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자기 비움(빌립보서 2장)을 닮아가는 삶의 태도입니다.
결국 노자도덕경의 이 지혜를 기독교의 언어로 바꾸어 표현하면 다음과 같은 한 문장으로 수렴됩니다.
"모든 것은 주님께로부터 왔으니, 청지기로서 충성스럽게 섬기되, 모든 결실과 영광은 주님께 돌려드린다."
아마 제 어머니의 마음도 그런 뜻일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선물로 주신 내 육 남매 내 새끼들아... 나는 그 선물을 맡아 최선을 다했지만, 그저 감사한 마음으로 모든 결실과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며 내가 약해지고 없어진 후의 내 새끼들의 삶도 하나님께서 책임져 주실 것을 믿고 감사한다."
초등학생도 이해하는 쉬운 요약
이 글은 한 어머니가 자녀들에게 남긴 감사의 말을 읽고 부모의 사랑을 생각합니다.
어머니는 자녀를 키운 일을 자랑하기보다 자녀가 곁에 있어 자신이 힘을 내어 살 수 있었다고 고백합니다.
글쓴이는 사랑하는 사람을 내 것처럼 붙잡거나 대가를 바라지 않고, 스스로 자라도록 돕는 것이 좋은 사랑이라고 설명합니다.
또 기독교의 눈으로 보면 가족과 삶의 성과는 하나님이 맡기신 선물이므로, 서로를 겸손히 섬기고 감사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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