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지난 수 십년간 저녁을 잊고 살았습니다.
야근... 회사에서, 고객사에서, 또 여러 모임들에서...
우리의 저녁은 흘러 갔습니다.
2. 어제는 모처럼 집에서 저녁 식사를 하고 아내와 동네 산책을 했습니다.
언제나 우리 집 앞에 있는 아파트 내의 어린이 놀이터를 지나,
아파트 곁의 야산을 개발한 근린공원을 지나, 두 아들이 졸업한 초등학교 쪽으로 가다가
단독 주택가의 구석에 자리 잡은 무척 작은 근린공원 놀이터에 발이 머물었습니다.
우리 아이들이 초등학교가 파하고 집에 올 시간이 지났는데도 귀가하지 않으면
찾아 나선 길에 꼭 들려 확인하던 곳이었습니다.
3. 아파트 근처의 놀이터들과는 달리,
작은 빌라 중심 주택가의 후미진 놀이터는
작은 가로등 하나만이 외롭게 서 있었습니다.
웬지 어린 시절 내가 뛰놀던 동네 놀이터의 느낌이
거기에는 있었습니다.
4. 친구들이 뛰놀던 소리가 잠잠해지면,
차라리 무섭기까지 한 으스름함이 내리깔렸고,
때로는 그 곳에 한 어린 아이가 시소 한 쪽을 올라타고
눈물을 흘리곤 했습니다.
낮에 은밀하게 저지른 잘못이 들통날까봐,
때로는 저녁 식탁에서의 나쁜 버릇 때문에 꾸중을 들어서,
그리고 더 자라서는 공연히 마음 속에 밀려오는 서러움 때문에,
어쩌면 가슴에 가득 차오르는 막연한 동경과 사랑 때문에
아이는 시소 한 쪽에 앉아 눈물을 훔치곤 했습니다.
5. 시소 건너편에 한 여자 아이가 앉게 되었을 때,
그 아이는 놀이터 벤치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사랑을 속삭였고, 사소한 일로 다투었고, 그리고... 헤어졌습니다.
6. 어느덧 아내와 한 몸으로 살아온 지 25년....
이제 시소 건너편에는 아내가 있습니다.
때로는 아내는 내 품에 있고 시소 건너편에는
예전에는 아내와 내 품 안에 있던 두 아들이 있습니다.
결혼기념일은 그저 그렇고 그런 하루 하루가 아니라,
가슴 벅차 오르는
수많은 페이지들로 아름다운 날이 됩니다, 해질녁 놀이터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