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마지막 순간에 잠시 망설이고 있었다....
이제 저 문 뒤에서, 간호사의 품 안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을 새로운 생명.... 'OOO 아기' ....
그 생명을 마주하기 전에 그는 복잡한 감정의 실타래를 가다듬어야 했다.
아들들이 장성해서 결혼할 나이가 거의 되었지만, 내게도 종합병원 신생아실에서 아들들을 처음 만나던 순간들이 바로 어제 일만 같다.
나를 통해 이 세상에 있게 된 새생명에 대한 경이로움이 주된 감정이었지만 한편으로는 아들이 이 세상에서 맞게 될 기쁨의 순간들에 대한 기대와 함께, 아들들이 이 세상에서 헤쳐나가야 할 험한 인생살이에 대한 걱정과 안타까움의 마음도 내게는 작지 않았다.
사랑스러운 여인을 만나고 결혼하고 임신의 기간을 함께 보냈지만 미처 아버지가 되기 위한 준비는 전혀 되지 않았던 첫째 아들과의 만남은 물론이고, 삼년 반 후 작은아들과의 첫만남도 여전히 내게는 경이로움과 더불어 두려움이 무게있게 내 안에 자리잡고 있었다. 그들을 마주하기 전에 신생아실 앞에서 나는 나름대로 큰 용기가 필요했다.
성탄절에 예수님이 수퍼 히어로우나 뛰어난 연예인으로 이 땅에 오시지 않고 매우 미약한 핏덩이 어린 아이로 이 땅에 오신 것은 그냥 '고요한 밤 거룩한 밤' 찬양으로 경건하게만 흘려보내기에는 큰 충격적인 사건이다.
어떤 사람은 성탄을 기념할 때 동물의 분뇨를 교회당 내부에 덕지 덕지 발라 놓아야 한다고 하기도 한다. 뉴욕 맨해튼의 센트럴 파크 근처에 가면 갑자기 역한 냄새가 몰려올 때가 있는데 대개는 마차가 다가올 때이다. 손님들을 태우는 마차의 말도 그렇게 냄새가 나고 그들이 서 있는 곳은 분뇨 악취가 코를 찌르는데, 예수님이 태어나신 마굿간은 바로 그런 곳이었다는 것이다. 징글벨 산타클로스 노래나 부르는 사람들에게는 어쩌면 그런 실제적 경험이 필요할 지도 모르겠다.
심지어 그 새생명 어린아이는 정치적 폭압에 의해 살해의 위험에 노출되었고, 가난한 목수의 아들로 살아가야 했다.
그리고... 나는 지금까지 내가 생각지 못했던 하나의 시선을 이번 성탄에 느꼈다.
바로 '하나님 아버지'의 눈길이다.
신생아실 앞에서 내가 가졌던 두려움을 어쩌면 그의 아들을 이 세상에 신생아로 보내신 하나님 아버지도 느끼지 않았을까? 물론 전지전능한 신이심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모든 아버지들이 느끼는 어린 생명에 대한 안타까움을 인격적인 하나님도 갖지 않으셨을까? 그만큼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 더 절실하게 다가온다. 하나님의 아들이 우리와 같은 육신을 입고 이 세상에 오셨다는 것은, 단순한 성육신을 넘어서서 어린아이의 나약함과 성장과정과 고뇌 등을 몸소 겪으셨다는 것들을 우리에게 알려 준다. 그래서 성탄절이 더욱 큰 사랑의 의미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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