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인은 15분 무대 공포증을 가지고 있다.
- 따라서 본 교회의 설교나 모든 강연에서, 인사말과 도입 부분은 원고를 읽는 것을 관례로 하고 있다.
- 초반에 원고를 읽더라도 참고 기대해 주시라. 15분 후를.....ㅎ
- 우리는 10월 31일을 종교개혁의 기산일로 한다. 루터의 95개 조 논제에서 비롯된다.
- 먼저 루터교와 마틴 루터에 대해 살펴보자
- 한국에서는 목회자가 전현직을 다 더해도 70여 명에 불구하고, 1년에 4명씩만 신학생을 배출하는 매우 작은 교단이지만
- 유럽의 북부, 즉 북구라파에서는 90% 이상이 루터교 교인이다.
- 또한, 루터는 교회 안의 사람으로만 보면 안 될 듯하다. 개신교의 교회 의전이나 예배 형식 등뿐만 아니라, 예술/사상적으로 매우 광범위한 영향을 끼쳤다.
- 그러나, 루터 또한 '시대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한 면도 많이 있었던 사람이었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루터를 재조명하고 그의 믿음과 주장을 살피는 것은 바로 종교개혁의 바탕을 이룬 그 기본 믿음에 있다.
- 종교개혁 정신
- 종교개혁은 한마디로 '저항'을 의미하며, 속된 표현으로 하면 '개긴다'라고 할 수 있어, 개신교를 protestant라고 하게 되었다.
- 루터는 '권위(즉 교권)에 대한 믿음을, 믿음에 대한 권위'로 바꾸었다.
- 일반적으로 인용되는 것은 아니지만, 본인 생각으로는 루터의 종교 개혁 정신은 다음과 같은 4가지 핵심어로 구성된다고 생각한다.
- 질문
- 저항
- 소통
- 새로운 공동체
- 그리고 이 4가지는 오늘 설교의 주된 배경 개념이다.
- 루터의 개인적 성품에 대하여
- 수도사 서원
- 저 유명한 루터의 수도사 서원의 대상의 대상은 성부 하나님이나 성자 예수 그리스도가 아니었다.
- 그 대상은 성 안나였는데, 일반적으로 가톨릭에서 성 안나는 마리아의 어머니로 알려져 있다.
- 그러나 마틴 루터가 서원했던 성 안나는, 이 지역에서 매우 좁아서 자주 무너지던 갱도를 들어가야 했던 광부들을 지켜주던 수호성인으로서의 성 안나이다.
- 즉, 루터의 수도사 서원은 믿음보다는, 매우 미신적 서원이었다고 볼 수 있다.
- 또 중요한 이유로 흑사병이 만연했던 것도 고려해야 한다.
- 흑사병(페스트) 만연... 죽음이 가까이에 있다는 공포의 분위기 (어제 곽수광 목사의 죽음 언급 7번과 연계됨)
- 페스트로 인해 동네 전체가 몰살되는 경우도 다반사여서,
'내가 지금 죽으면....'을 깊이 고뇌하게 만들던 사회적 분위기였다. - 이러한 상황 속에서, 벼락 사건 이후에 마틴 루터도 갑자기 수도사로 돌이키게 만든 것으로도 볼 수 있다.
- 특히, 서원 몇 개월 전에 그가 다니던 법대의 교수 한 사람이 흑사병으로 학생들 앞에서 죽어 가면서, ‘내가 법대 교수가 아니라, 수도사였다면...’이라고 말하며 죽었던 모습이 강하게 남아 있었을 수도 있다.
- 당시 유럽에는 흑사병으로 인해, 예전의 개념인 천국/지옥 이외의 제3지대인 ‘연옥’이라는 개념이 등장하기도 했다.
- 연옥에서는 자기 죄를 다 씻을 때까지 있게 된다고 생각했다.
- 이는 한 마디로 말하자면, 살아 있을 때 사후 세계를 '결정'/변경할 수 있다는 생각이며, 매우 비그리스도교적인 생각이었지만....
- 이로 인해 면죄부 등이 가능해졌고, 이로 인한 부패에 대해 루터는 중점적으로 반박하게 되었다.
- 또한 페스트로 인해 성직자 계층과 교회의 타락과 부패가 더욱 심화되기도 했는데....
- 페스트는 저주로 여겨서 부모의 시신도 수습하지 않았기 때문에 사제들이 흑사병으로 인해 죽은 사람들의 시신을 수습하게 되었고, 그래서 병원균에 노출되는 기회가 많았던 사제들의 사망률이 가장 높았다.
- 13세기는 스콜라 시대... 성직자가 되기 어렵고 인기가 있었으나, 흑사병으로 인해 성직자들이 죽어 나가면서 교육받지 못한 사제들이 대거 유입되어서 성직자 계층의 질적 하락(정규 신학교육을 받지 않고도 신부가 됨)과 부패가 심화되었다.
- 루터도 안수받은 후에야 비로소 신학 교육을 받게 되었던 경우다.
- 이러한 상황 속에서, 교회 안에서도 매관매직이 성행하였고, 특히 소위 '르네상스 교황기 (1440-1520)'는 중세 말기의 교회의 부패가 극심했던 시기로서, 흑사병 탓이 크다.
- 특히 루터가 로마까지 도보로 여행을 한 적이 있는데, 수도원의 검박함도 오히려 로마에 가까워질수록 사라지고, 특히 교황청 근처에서는 사제들을 위한 공창을 발견하고 충격을 받았고, 기독교 교의와 현실이 매우 다름을 느끼게 되어 문제의식이 더욱 강화되었다.
- 루터는 학자였으며, 목회자였다.
- 비텐부르크에서... 성채교회의 정문은 루터가 처음 라틴어로 95개 조 논제를 붙였던 곳이다.
- 르네상스 시기에 이탈리아는 예술을 꽃피웠으나, 독일 등에서는 인문주의가 발달했다.
- 원천으로 돌아가자 (ad fontes)는 그 인문주의자들의 주장이었다.
- 이때 '원천'이라 함은 성경을 라틴어가 아닌 원문, 즉 헬라어와 히브리어를 알아야 된다는 의미였다.
- 에라스뮈스의 헬라어 성경이 큰 도화선이 되었다.
- 95개 조의 첫 조항이 얘기하고 있는 마태복음 4:17을 보자면, 원래 헬라어 성경에서 있는 ‘회개하라’를 기존 가톨릭의 라틴어 성경에서는 ‘죄의 값을 치러라’로 속여 왔던 것이다.
- 본디 죄에는 죄의식과 책임(벌)이 따른다고 가톨릭에서는 가르쳤고, 죄의식은 사제의 용서 선언으로 사라지지만 그 죄의 책임은 연옥에 죄로 쌓인다고 가르치며, 그 값을 치르기 위해서는 ‘보속’이 필요하다고 오도했던 것이다.
- 이러한 배경에서 마틴 루터는 특히 일상 생활어인 독일어로 설교를 하고 성경을 번역함으로써 '소통'을 이끌었다.
- 루터는 '나는 신학박사이지만 독일어를 사용하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라고 했는데, 모든 지식계층의 언어였으나 일반 국민은 95% 이상이 문맹이었던 라틴어가 아니라, 모두가 이해할 수 있는 독일어를 사용하였던 것이다.
- 이러한 시대적 배경 속에서, 마틴 루터의 95개 조 논제 또한 처음에는 독일어가 아니라 라틴어로 쓴 것이었다.
- 그 이듬해에 독일어로 풀어쓰고 해석하여 출판을 한 뒤에야 비로소 영향력을 갖게 되었다.
- 질문/저항/소통의 마틴 루터
- 마틴 루터의 9월 성경은 단 11주 만에 신약성경을 번역한 것이었는데,
- 이는 성도가 성경을 스스로 읽고 판단하고 고민하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 당시 5억 원 정도를 호가하던 필사본 성경은 매우 부유한 귀족이나 교회만이 가지고 있었다. 루터도 성경을 처음 제대로 본 것은 대학에서 성경학을 전공하게 되었던 때였다.
- 이토록 고가였던 성경책이 마틴 루터의 9월 성서는 인쇄/출판으로 인해 가격이 150만 원 정도로 내려가서, 지역별로 유력한 사람들은 성경을 갖게 되었고, 여전히 고가이기는 했지만 훨씬 많은 사람들이 독일어로 성경을 접할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 만인 제사장설.... 사람 위에 사람 없다. 서로가 서로에게 제사장, 그리스도, 가치 있는 사람이 된다는 주장
- 이로부터, 교회뿐만 아니라 삶의 일터에서도 사제로의 삶을 살아야 한다는 '직업 소명론'으로 발전했으며
- 이는 또다시, 섬김 즉 디아코니아(Diaconia)와 더욱 나아가서는 오늘날의 사회복지 시스템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 루터가 강조한 내용에 의하면,
- 하늘에 꽂혀 있는 관심을 땅으로 돌려야 한다.
- 예수님은 땅으로 내려와 우리와 함께 계셨기 때문에 예수님을 하늘에서 찾기보다는 이 땅에서, 우리 사람들의 삶 속에서 찾아야 한다고 볼 수 있다.
- 모든 그리스도인은 하나님께 가치 있게 부름 받았다.
-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를 위한 매일매일의 책임적 존재가 되어야 한다.
- 회중 찬양
- 루터 이전에는 회중들은 찬양을 하지 않았다. 그레고리안 성가처럼 콰이어가 단율의 찬송만을 했을 뿐이었다. 오늘날과 같은 회중 중심의 찬송가는 루터로부터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 강대상 뒤편에 있게 되는 제단화에는 루터의 교회론이 잘 나타나 있다.
- 루터에 의하면, '거룩'은 교회 안에 누구든지 들어와서 누구든지 ‘용서’를 받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 성만찬 제단화의 사람들의 얼굴은 그 동네의 사람들의 얼굴이었는데, 박해를 피해 한 번 흩어진 경험이 있어서 서로 도망가지 않기를 맹세한 의미가 컸다.
- 그 제단화의 최후의 만찬 식탁은 원탁이다.
-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최후의 만찬이 장방형 식탁이다.
- 장방형 식탁에는 주빈이 가운데에 앉는 것처럼 구분이 있으나
- 원탁은 계급이 없다는 의미이다.
- 그 제단화의 중앙에는 '어린양'이 있다. 어린양 예수를 중심으로 모든 사람에게는 계급과 차별이 없다.
- 가룟 유다가 한 발을 밖으로 빼고 있는 것을 보면 '양다리 걸치고 있는 모습'으로 보인다. 우리 신앙은 이렇게 나뉘게 되면 이미 죄의 구렁텅이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오직 예수!
- 또한 마틴 루터의 개혁은 폭동을 사용하지 않는다는 점이 중요하다.
- 이 제단화에는 마틴 루터가 나오는데, 이는 개혁이 폭동으로 치닫았을 때 은거에서 튀어나와 폭동을 말렸던 루터의 모습이다.
- 또한 그는 안에 있던 포도주를 밖으로 빼낸다. 복음을 흘려보내는 것이다.
- 제단화에는 한스루프트라는 사람이 나온다. 그는 성경책을 인쇄했던 인쇄업자였다. 성직자로 국한되지 않고 만인 제사장설을 강조한 배경이 짐작된다.
- 공동금고... 새로운 공동체
- 지난 9.6일에 <루터의 재발견> (복 있는 사람)이란 책을 발간하고 여러 곳에서 피드백을 받고 있는데, 가장 큰 관심을 보여주시는 내용이 비텐베르크 교회의 헌금함인 “공동금고‘라는 부분이었다.
- 1523년에 루터가 시작한 이 헌금함이 특별한 것은 그 사용처가 규정되어 있다는 점이다.
- 가장 우선적으로 쓰여야 할 곳이 갑자기 재난 당한 지역주민을 위해 쓰여야 하고,
- 그다음이 고아와 홀로 된 여인,
- 그다음은 아이들과 여인들이 배울 수 있는 학교 건립을 위해서,
- 그리고 은퇴한 목회자를 위해 사용된다.
- 이보다 더 관심을 끄는 대목은 이 금고엔 자물쇠가 세 개 있는데, 세 개의 열쇠를 동시에 꼽아 돌려야만 열린다
- 이 세 개의 열쇠는 교회 목사 대표, 일반 신자 대표, 시민대표가 각각 가지고 있다가 언제든지 합의되기만 하면 열어서 가난한 이웃을 위해 사용된다
- 즉, 비텐베르크의 공동금고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교회란 이웃과 함께 살아 숨 쉬는 곳이라는 것이다
- 그런데 책에서 각주로 처리하고 본문에서 언급하지 않은 내용이 있습니다.
- 이 비텐베르크의 공동금고는 약간 원시적인 형태이지만, 그해 온전한 형태의 공동금고가 하나 더 생기게 된다.
- 비텐베르크에서 약 60Km 떨어진 곳에 라이스니히(Leisnig)라는 마을 전체가 개신교화 되면서 루터에게 도움을 요청하게 된다.
- 그러자 루터가 앞서 시행했던 비텐베르크의 공동금고를 모델로 세부시행 세칙을 동네 사람들과 함께 만들게 된다.
- 이 금고의 자금 마련이 특별하다.
- 우선 당시 이 마을엔 세 개의 수도원이 있었는데, 이곳의 재산을 청산하여 이 금고에 넣고,
- 마을 사람들의 헌금과 더불어
- 이웃 간에 돈을 꿔 주고받을 때 붙는 이자들을 이곳에 자발적으로 넣어 기금을 만들기로 결정한다.
- 이 기금이 쓰이는 내용은 비텐베르크 공동금고와 마찬가지로
- 갑자기 재난 당한 지역주민,
- 홀로 된 여인과 아이들,
- 그리고 여자들과 아이들을 위한 학교 건립에 우선적으로 사용하도록 규정된다.
- 또한, 재미있는 것은 이 기금이 일종의 청년 복지를 위해 사용되었다는 점인데,
- 당시에 결혼을 하려면 일종의 지참금이 필요했다고 한다. 아마 밀 서말 정도 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
- 그런데 당시 가난한 청년들이 이 지참금이 없어서 결혼하지 못했고, 이 청년들을 위해 사용할 것을 라이스니히 공동금고 규정은 명시한다.
- 이 금고 사용을 위해 구성된 위원회가 참 특별하다.
- 여기 금고 열쇠는 세 개가 아니라 네 개로 하나가 더 늘어납니다.
- 귀족 대표 2명, 현직 시의원 2명, 평민 대표 3명, 그리고 농민대표 3명으로 구성되는데 각각의 대표 중의 한 사람이 열쇠를 하나씩 갖게 된다.
- 물론 네 개의 자물쇠를 모두 풀어야 이 금고는 열리게 되어 있다.
- 비텐베르크에선 목사 대표와 교회의 평신도 대표가 하나씩 가졌는데,
- 라이스니히에선 교회 관련자가 모두 빠지고 그 자리에 평민과 농민이 들어간다
- 그렇다고 교회가 하는 일이 아무것도 없는 게 아니다.
- 이 공동금고는 당시 가장 안전하다고 여겨졌던 교회에 비치하고,
- 열 명의 위원들은 매 주일 11시에 모여 예배 후에 이 기금을 사용할 용처에 대해 의논했다는 점이 중요하다.
- 또한 이 기금이 바르게 사용되기 위해선 하나님의 말씀이 바르게 선포되어야 한다는 점에 모두 동의했고,
- 이를 위해 공동기금에서 교회의 전임 사역자와 (학교) 교사의 생활비를 전액 지급하게 된다.
- 이것이 의미하는 바가 크다. 교회는 세상의 아픔을 함께 나누고 위로하는 통로가 된다는 점이다
- 오늘날과의 연계 및 발전
- 5백 년 전의 일이지만 이 공동금고는 과거의 사건으로 끝나지 않았다.
- 독일의 경우는 모든 복지사업 추진을 종교기관인 개신교의 디아코니아와 가톨릭의 카리타스가 갖고 있다.
- 학자들은 디아코니아의 시작을 바로 이 공동금고로부터 그 기원을 찾는다.
- 디아코니아의 정신 가운데 빼놓지 않는 것은 복지의 일방적 수혜자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 어떤 사람이든지 다른 사람을 섬길 수 있고, 그렇게 해야 한다는 것이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복지와 다른 측면이다.
- 교회는 이렇듯 세상 속에서 하나님의 용서와 사랑을 함께 흘려보내고,
- 서로가 서로에게 제사장이 되며,
- 서로가 서로에게 그리스도가 되는 공동체인 것이다.
- 이것이 바로 루터가 성경에서 발견한 만인사제직이고,
우리 용서(탕감) 받은 그리스도인들의 신앙생활이다. - 하나님의 용서는 나에게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다.
아무리 좋은 보화라도 숨겨 놓고 감추고 있으면 돌덩어리에 불과한 것과 같다.
하나님의 용서는 이웃에게 흘러들어 가야 한다.
따라서 용서받은 사람들이 모인 교회 역시 그렇게 용서와 사랑을 흘려보내야 하지 않을까? - 맺는말
- 마틴 루터가 절대적으로 모든 면에서 옳은 것은 아니었다. 루터교 목사인 본인이 보기에도 적절하지 못한 경우도 있었다.
- 그러나 우리는 중세라는 암흑의 시대적 배경 위에서 마틴 루터를 바라보아야 한다.
- 그의 양심은 철저하게 복음에 사로 잡혀 있었다.
- 그리고 그 복음을 모든 사람이 누려야 한다고 주장하고 목숨 걸고 싸웠다.
- 그로 인해, 귀족과 성직자뿐만 아니라, 일반 대중을 위한 보편 교육이 시작되었다.
- 아무도 저항하지 않을 때, 그는 '질문'을 시작했다.
- 질문하는 신앙이 필요하다.
- 헤겔은 '근대(Modern)는 끝까지 질문하는 정신이다'라고 말했다.
- 이는 곧, 스스로 성경을 읽고 스스로 생각하고 저항하고 소통하며,
하나님의 나라가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같이 이 땅 위에서도 이루어지기를 기도하고 일해 나가는 것이다. - 교회란 무엇인가?
- 질문하고, 저항하고, 소통하며, 하나님 나라 공동체를 이루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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