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 공중전화, 스마트폰
어린 시절, 학교에서는 학급 학생들의 전체적인 가정환경을 조사하기 위해, 수업시간에 모든 학생을 모아 놓고 자기 집에 어떤 물건이 있는지 손을 들게 한 후에 선생님이 각 항목별로 수를 세곤 했습니다. TV, 냉장고, 전화, 피아노... 이런 품목들이었습니다.
초등학교 입학 직후에 아버지께서 피아노 교습 부업을 위해 큰돈을 들여 사놓으신 피아노를 제외하면, 우리 집에는 대부분의 조사 대상 물건이 없었습니다. 마침내 전화를 들여놓은 후의 다음 학년 초에 재산 조사를 할 때 '전화' 항목에서 손을 힘주어 들던 기억이 아직 생생합니다.
전화기 없는 집이 우리 집뿐이 아니었기에, 급한 연락을 위해서는 동네에 전화기가 놓인 집의 전화번호를 알려주었습니다. 전화를 하려면 전화국에 가서 전화를 하고 사용료를 건별로 내야 했고요. 대개 먼 곳에 사시는 친지에게 급한 일이 생기면 그 전화번호로 소식이 왔고 그러면 그 전화기 있는 집의 어린이는 해당 집으로 달려가 전화받을 사람을 데려오는 것이 일상적인 일이었습니다. 우리 집에 전화기가 놓인 후에는 상당 기간 동안 그것이 제 일이 되기도 했습니다.
그다음에는 공중 전화기가 여기저기에 놓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때부터 어머니는 '비상금'으로 동전 2개씩을 호주머니에 넣어 주셨습니다. 급한 일이 생겼을 때 집으로 전화할 수 있도록 주신 것이었습니다. 2개인 이유는 전화기 품질이 좋지 않아서 가끔 동전만 먹어버리는 경우가 흔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물론 중간에 통화가 끊기는 것도 잦았고요. 진짜 급한 경우에만 전화해야 했습니다. 공연히 전화해서 '엄마, 사랑해~' 이런 말을 하는 것은 꿈도 꾸지 못했습니다.
DDD 공중전화기가 생기면서 전화카드가 대신했고, 삐삐 페이저를 거쳐 스마트폰을 대부분의 사람들이 1대 이상씩 보유하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이제는 길을 걸으면서도 메시지를 확인하고 스마트폰으로 인터넷 검색을 합니다. 잠을 잘 때도 곁에 두고 아침에 일어나면 맨 먼저 찾는 물건이 되었습니다. 24시간 365일 함께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 - Anytime, anywhere, anyhow를 누리는가?
구약의 성막과 성전에는 성소와 지성소가 있었습니다. 제사장들조차 마음대로 들어가지 못하던 그곳이 예수님의 십자가 희생으로 찢어지고 우리는 언제 어디서든 하나님의 은혜의 보좌로 나아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일주일에 한 번 주일에 교회에 갔을 때만 기도합니다. 아니 식사할 때만 기도합니다.
'이런 일들까지 기도해야 할까? 기도해도 될까?' 하는 생각으로 기도를 멀리합니다.
기도는 특별한 때에, 특별한 곳에서, 특별한 방식으로만 기도해야 한다고 여전히 생각합니다.
집집마다 전화기가 놓이고, 모든 사람이 언제라도 서로 전화를 하고 데이터로 연결되어 있는 이 시대에도 특별한 때, 특별한 곳에서, 특별한 방법으로만 접속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처럼, 우리는 기도에 대해 오해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항상 기뻐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는 말씀이 새롭게 다가옵니다.
그레이스 콰이어에서 함께 봉사하고 계신 이영숙 권사님이 문자로 보내주신 '내 영혼 안정시키기' 책의 한 챕터를 읽고 받은 감동으로 적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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