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고향의 따뜻한 말들...
"어머, 너 어디 사니?"
어제 퇴근길 아파트 놀이터에서 너무 귀여운 아이와 마주쳤을 때 내가 무심코 뱉어낸 말이다. 억양도 스스로 놀랄 만큼 매우 서울틱했다.
서울에서는 그토록 깔끔한 서울말과 악센트를 사용하지만, 익산 톨게이트만 타고 있는 차가 지나가면 내가 말하는 습관이 확 바뀌곤 했다.
"워메... 야는 워디 산댜...?"
같은 상황에서 고향 아파트에서라면 내가 할 법한 표현이다.
보고리채다
초등학교 동창 밴드에서 고향을 지키고 있는 두 친구가 재미있는 사진을 밴드에 올리고 내리고... 이른바 고향 표현으로 '찢고 까불고' 하는 도중에 한 친구가 얘기했다.
" 그러면 나도 너 보고리챈다!"
그 댓글을 보고 빵 터졌다. 이것이 얼마 만에 오리지널 사운드 트랙으로 보는 완전 살아있는 고향의 어휘냐?
'보고리챈다'는 표현은 전라도에서 쓰는 표현이다. 무슨 뜻일까?
'보고리'라는 단어로는 그 어원이나 그 뜻을 짐작하기 매우 어렵다.
나와바리, 아끼바리, 고도리 등의 일본어 단어들에 익숙하다 보니 보고리도 일본어에서 온 속어로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오랜 서울 생활 동안 경상도 친구들과도 많은 우정을 가져온 사람들은 유사한 표현이 경상도에도 있음을 금방 알게 된다.
경상도에서는 '보골챈다, 보골채운다'라고 표현한다. 보골은 경상도 방언으로 '허파, 폐'를 말하는 어휘이며 여기서는 '부아'가 끓다 정도로 생각하면 된다. 따라서 보골채운다 또는 전라도식으로 보고리채운다는 표현은, 부아가 끓게 하다... 즉 화를 돋우다... 는 뜻임을 알 수 있다.
얼핏 보면 순수한 전라도 사투리로 보이는 '보고리 채운다'라는 표현도 따지고 보면 경상도 방언의 표현을 전라도에서 가져다 쓴 것임을 생각할 때, 예전부터 소백과 노령산맥들이 방해했다 하더라도 이 좁은 나라에서는 동서의 사람들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을 수밖에 없었음을 알게 된다.
자냐?
*용걸이의 보고리에 이은, 기형이의 맨맛한 이야기...
이 초등 동창 밴드가 주는 즐거움 중의 하나는, 항상 튀어나오는 '자냐?' 뿐 아니라 여러 토속적 고향의 말투가 묻어나는 게시글 및 댓글들이다.
'자냐?'도 고향 친구들이기에 가능한 표현이다. 경상도 친구였으면 '자나?'였을 것이고, 서울 친구였으면 '자니?'였을 것이다. 순천 친구들은 '자는가?'였고, 울산 후배는 '자니껴?'였다.
맨맛하냐?
어제 형범에게 기형이가 단 댓글 중에는 '내가 맨맡허냐?'가 있다. 오랜만에 보는 이 도전적이며 고향 냄새 물씬 나는 표현을 그냥 지나칠 수 없어, 오늘 아침에 두 번째의 게시글을 올리게 된다.
방언이므로 정답으로 보는 철자법이 따로 있으랴마는 대개 사람들은 'ㅅ' 받침을 써서 '맨맛하다'라고 쓴다.
이는 '만만하다'는 의미로서 예를 들면..."냄편 웂어진 신세에 가면 워디로 가겄소. 맨맛한 것이 친정이제라." 하는 형식이다.
고향 떠난 지 오래이다 보니, 고향에 가면 나도 아무렇지 않게 쓰는 표현들이, 때로 색다르고 정감 있게 다가와서, 맨맛한 것이 고향 말투라 한 번 적어 보았다. 앞으로도 친구들의 많은 활약을 기대한다.
이런 맛이 없으면 누가 '맥엄씨' 밴드에 자주 들어와 보겠는가?
맥엄씨(脈엄씨) - '맥없이'의 전라도 방언. 별 뜻 없이, 의미 없이, 공연히, 괜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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