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륜교회 #LIghtOn #이호선교수 #강연노트
1. 나를 세우는 한 문장의 힘
일주일에 한 번, 도서관에 가십시오
저는 여러분이 이것을 꼭 한 번 해보셨으면 좋겠습니다.
일주일에 한 번, 반드시 시간을 정해 도서관에 가십시오. 그냥 가는 것이 아닙니다. 시간을 정해놓고 가야 합니다.
여러분,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왜 나는 평생 다른 사람의 주변으로만 살아야 할까요? 왜 나는 세상의 중심이 될 수 없을까요? 저는 누구나 자신의 삶의 중심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임마누엘 칸트를 아십니까? 몰라도 괜찮습니다. 이미 돌아가셨습니다.^^
칸트는 오후 3시 30분이면 뒷산에 산책을 갔다고 합니다. 칸트가 산책을 나서려고 운동화 끈을 매면, 동네 사람들은 그 모습을 보고 시계를 3시 30분으로 맞췄다고 합니다.
여러분도 그렇게 해보십시오. 내가 정한 시간과 공간을 누구도 침범하지 못하게 하십시오. 나조차도 깨뜨리지 않는 시간으로 정하고 그것을 유지하십시오. 그때부터 모든 시공간의 출발점이자 중심은 바로 그 시간이 될 것입니다.
정해진 시간, 정해진 장소를 만들라
일주일에 한 번, 시간을 정해 도서관에 가는 습관을 제안합니다. 이는 단순한 독서가 아니라 내 삶의 중심을 세우는 훈련입니다.
한 주에 한 문장을 붙잡으라
책을 완독 하거나 정독하지 않아도 됩니다. 열 페이지만 읽고, 그 안에서 마음에 남는 한 문장을 외우는 것이 핵심입니다.
저는 그 첫 번째 공간이 도서관이었으면 좋겠습니다.
도서관에 가서 무엇을 해야 할까요? 아무 책이나 꺼내십시오. 베스트셀러인지 아닌지, 내가 아는 책인지 모르는 책인지, 장르가 무엇인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시, 소설, 수필, 만화책, 그림책도 괜찮습니다. 완독 하지 않아도 됩니다. 정독하지 않아도 됩니다.
딱 열 페이지만 읽으십시오. 그리고 그냥 돌아오지 마십시오. 한 주에 한 문장을 외워 오십시오.
한 주, 한 문장.
이 한 문장은 그냥 외운 문장이 아닙니다. 열 페이지라는 맥락 속에서 이해한 한 문장입니다.
한 문장이 나의 존재를 바꿉니다
저는 우리 기독교인들이 더 지혜롭고 넓은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내가 아는 것 하나만 붙잡고 사는 사람이 아니라, 이 세상을 품을 수 있는 더 넓고 깊은 이야기들 속에서 하나님이 어떻게 의미 있게 드러나는지를 보여주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오롯이 내 것만 옳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 속의 수많은 지혜와 이야기를 통해 신앙의 깊이와 아름다움을 드러내면 좋겠습니다. 여러분의 아이들은 여러분보다 더 높은 평균 지능을 가지고 있고, 챗GPT와 같은 도구를 사용하며, 완전히 다른 시대를 살아가는 새로운 세대입니다. 그런 아이들에게 하나님을 어떻게 보여줄 수 있을까요?
저는 믿음이 가진 힘이 얼마나 강력한지 잘 압니다. 그러나 믿음은 더 넓은 세계와 만나야 합니다. 도서관이라는 공간을 통해 여러분의 메타인지를 확장했으면 좋겠습니다. 그 안에서 하나님이 얼마나 멋진 분인지, 기독교라는 신앙이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의미 있게 드러내는 과정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일주일에 한 번 도서관에 가십시오. 책을 한 권 꺼내고, 열 페이지를 읽고, 한 문장을 외우십시오. 그다음 주에도 같은 시간에 도서관에 가십시오. 또 책을 꺼내고, 또 한 문장을 외우십시오.
그렇게 일주일이 2주가 되고, 2주가 한 달이 되고, 한 달이 3개월이 됩니다. 6개월까지 가지 않아도 됩니다. 딱 3개월만 해보십시오.
깜짝 놀랄 일이 벌어질 것입니다.
“내가 왜 똑똑해진 것 같지?”
“왜 다른 사람들의 말이 더 잘 들리지?”
“왜 가족들이 내가 쓰는 말이 달라졌다고 하지?”
이런 이야기를 하게 될 것입니다.
하이데거의 말처럼 “언어는 존재의 집”입니다.
내가 사용하는 말이 달라지면 생각이 달라지고, 결국 존재와 삶의 태도가 달라집니다.
내 말이 달라졌다는 것은 엄청난 변화입니다. 하이데거는 “언어는 존재의 집”이라고 했습니다. 어떤 사람이 어떤 말을 하는지를 보면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다는 뜻입니다. 내 말이 달라졌다는 것은 내 존재가 달라졌다는 말입니다.
한 주에 한 문장.
그 문장과 문장 사이, 단어와 단어 사이에는 수많은 멘토들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들은 우리의 손을 잡아주고, 우리의 심리적 포만감의 연대가 되어주며, 우리의 마음 운동장에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줍니다.
3개월의 도서관 습관이 올려주는 네 가지 힘
제가 말씀드린 이 방법은 1만 명이 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사전·사후 검사를 했을 때, 네 가지 지표가 모두 올라간 방법입니다.
첫째, 자기효능감입니다.
“나는 잘 해낼 수 있다”는 신념이 올라갔습니다. 떨어져 있던 효능감을 다시 끌어올리는 데 긍정적인 역할을 한 것입니다.
둘째, 회복탄력성입니다.
똑같이 넘어져도 누군가는 더 쉽게, 더 빨리 일어납니다. 다시 일어서는 힘, 회복탄력성이 올라갔습니다.
셋째, 생애 만족도입니다.
현재에 대한 만족도만 올라간 것이 아닙니다. 숨기고 싶었던 과거, 어두운 그림자, 상처투성이의 시간, 누구에게도 말하고 싶지 않았던 비밀스러운 기억에 대한 해석이 달라졌습니다.
넷째, 자존감입니다.
자존감은 가장 낮을 때가 1점이고 가장 높을 때가 10점이라고 할 때, 평균 1.4점이 올라갔습니다. 3개월 만에 자기 효능감, 회복탄력성, 생애 만족도, 자존감이 함께 올라간다는 것은 정말 놀라운 일입니다.
그러니 이번 주부터 시작하십시오. 여름 장마가 지나고 폭염이 끝날 때까지, 딱 3개월만 해보십시오.
일주일에 한 번, 시간을 정해 도서관에 가십시오. 내가 깨뜨리지 않고, 다른 사람도 침범하지 못하는 시간을 만드십시오.
작은 독서 습관이 내면의 단단함을 만드는 출발점이 됩니다.
이번 주에는 이 문장 하나를 외우면 좋겠습니다.
“언어는 존재의 집이다.”
조금 더 쉽게 줄이면 이렇게 외워도 좋습니다.
“언존집.”
이 문장을 다음 주 도서관에 갈 때까지 계속 써먹어 보십시오. 어떤 사람이 형편없는 말을 하는 것을 보게 되면, 속으로 이렇게 생각해 보십시오.
“언어는 존재의 집이라는데, 저 사람의 말은 왜 저럴까?”
유식한 사람은 그 그림자에서도 유식함이 묻어나고, 무식하고 무모한 사람은 그 영혼을 다 털어 자기 무식의 냄새를 풍깁니다. 누가 여러분의 학력을 묻습니까? 누가 여러분의 재산 정도를 묻습니까? 누가 여러분의 자존감 점수를 묻습니까? 아무도 묻지 않았지만, 우리는 이미 말과 태도로 자신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의 말이 달라지면 우리의 존재가 달라집니다. 달라진 존재는 가족 간의 말도 바꿔놓습니다. 여러분의 메타인지도 확장됩니다. 삶에 대한 해석도 달라집니다.
그러니 이 3개월의 시작을 꼭 해보시기 바랍니다.
2. 관계를 바꾸는 핵심, 에너지를 아는 것, 그리고 기쁨
내 안의 단단함을 만들었다면, 이제 그 의미를 가족과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로 확장해야 합니다. 우리는 가족과 좋은 관계를 맺고 싶어 합니다. 그렇다면 달라진 세상 속에서 어떻게 관계를 더 공고하고 의미 있게 만들 수 있을까요?
사람마다 에너지가 다르다
핵심은 에너지입니다.
시대마다 에너지가 다르고, 세대마다 에너지가 다르고, 개인마다 에너지가 다릅니다. 요즘 직장에서는 MZ세대와 라떼세대를 이야기합니다. MZ세대는 “이걸요? 제가요? 왜요?”라고 묻고, 라떼세대는 “나 때는 말이야, 그냥 하라고 하면 했어”라고 말합니다.
이 세대 간 차이는 시대가 가진 에너지의 차이와도 연결되어 있습니다.
여기 앉아 계신 분들의 얼굴을 한 번 보십시오. 전형적인 20세기 얼굴들입니다. 20세기는 산업혁명을 지나 활자의 시대를 살았고, 21세기는 IT혁명을 지나 영상의 시대를 살아갑니다. 우리는 종이와 연필로 공부했지만, 지금 아이들은 전자펜과 비대면 강의, 각자의 알고리즘 속에서 공부합니다. 그들은 여러분과 전혀 다른 방식으로 생각하고 살아갑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아이들과, 손주들과 소통하고 싶어 합니다. 그러려면 에너지를 알아야 합니다.
에너지가 많은 사람들은 대체로 공통점이 있습니다. 빠릅니다. 재촉합니다. 짧은 시간 안에 많은 일을 해냅니다. 그래서 다른 가족들이 자신과 같은 속도로 움직이지 못하는 것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러다 늘 화를 내고, 결국 한 번에 무너지기도 합니다.
반대로 에너지가 적은 사람들도 공통점이 있습니다. 날카롭고 예민합니다. 불평과 불만이 많아 보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어느 정도 타고나는 것입니다. 에너지가 많은 사람들은 세포 속 미토콘드리아가 더 많거나 더 활성화되어 있을 수 있고, 에너지가 적은 사람들은 몸 자체가 쉽게 지칠 수 있습니다.
그러니 기억하십시오.
내 몸은 내가 챙겨야 합니다.
이제 강한 남자만 있는 시대도 아니고, 약한 여자만 있는 시대도 아닙니다. 똑똑한 어른만 있고 어리석은 아이만 있는 시대도 아닙니다. 완전히 새로운 세계 앞에 선 지금은, 연약한 사람들이 서로 연합하고 서로를 돌보는 상호 돌봄의 시대입니다.
좋은 관계의 핵심은 온도다
인간관계를 잘하는 방법은 의외로 쉽습니다. 딱 하나가 필요합니다.
온도입니다.
심리학에는 해리 할로의 원숭이 실험이 있습니다.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붉은털원숭이를 어미에게서 떼어낸 뒤, 두 개의 가짜 엄마를 제공했습니다. 하나는 철사 엄마였고, 다른 하나는 헝겊 엄마였습니다. 철사 엄마에게는 생존에 필요한 젖병을 달아두었고, 헝겊 엄마에게는 아무것도 주지 않았습니다.
결과는 어땠을까요? 아기 원숭이는 배가 고플 때만 철사 엄마에게 가서 젖을 먹고, 나머지 대부분의 시간은 헝겊 엄마와 지냈습니다.
이 세상의 모든 생명은 따뜻함을 향합니다. 모든 생명은 온도를 향해 고개를 돌리고 발걸음을 옮깁니다.
“너 참 괜찮은 사람이야.”
“잘했어.”
“너는 잘 해낼 거야.”
나를 향해 웃어주고 믿어주는 사람에게 인간은 마음을 엽니다. 저는 온도의 또 다른 말을 사랑이라고 하고, 사랑의 또 다른 말을 친절이라고 생각합니다.
체력이 친절이다
그런데 친절은 그냥 나오지 않습니다. 친절에는 전제 조건이 있습니다.
체력이 친절입니다.
체력에는 정신 체력과 육체 체력이 있습니다. 그런데 정신 승리는 쉬운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그렇게 쉽게 정신 승리를 할 수 있었다면, 무너져서 울지 않았을 것입니다. 벌떡 일어나 앞으로 나아갔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원래 취약한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하나님 손을 붙들고, 울부짖으며, 다시 용기 내어 걸어가는 것입니다.
저는 행동 승리를 믿습니다. 인간은 결국 기승전 몸입니다. 내 몸이 건강해야 정서 체력과 정신 체력이 생깁니다. 관계 체력도 몸에서 시작됩니다.
에너지가 부족한 사람을 위한 세 가지 방법 - 몸을 돌보라
에너지가 줄어드는 나이에 접어들었다면, 혹은 원래 에너지가 부족한 사람이라면 몇 가지를 기억해야 합니다.
첫째, 짬짬이 자십시오.
에너지가 없는 사람들은 압니다. 5분을 자야 5분의 에너지가 생기고, 10분을 자야 10분의 에너지가 생깁니다. 예민하고 날카로운 사람들도 잠깐 잠을 자고 나면 뾰족한 감정이 동글동글해지는 경험을 합니다.
잠잘 시간이 없다면, 일터에서라도 잠깐 눈을 감으십시오. 화장실 변기 뚜껑을 닫고 그 위에 앉아 3분에서 5분만 눈을 감고 있어도 도움이 됩니다. 내가 예민한 사람이라는 것을 아는 것, 이것을 의식화라고 합니다. 그리고 나만의 대안을 가지고 있으면 날카로운 사람도 견딜 만한 사람이 됩니다.
둘째, 영양제의 도움도 받으십시오.
물론 모든 건강기능식품은 반드시 의사나 약사와 상의해서 드셔야 합니다. 몸으로만 버티려 하지 말고, 필요한 도움을 받으십시오.
레이먼드 커즈와일이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특이점이라는 개념을 대중화한 인물로 알려져 있고, 구글의 수석 엔지니어로도 일했습니다. 그는 무병장수를 위해 수많은 영양제를 먹는 것으로도 유명합니다. 그가 중요하게 언급한 영양소로는 오메가3, 비타민D, 코엔자임 Q10, 포스파티딜세린 등이 있습니다.
오메가3는 혈관 건강과 관련해 자주 언급됩니다. 비타민D는 뼈뿐 아니라 정서, 면역과도 관련이 있습니다. 코엔자임 Q10은 항산화와 관련해 알려져 있습니다. 포스파티딜세린은 단기 기억력 향상에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고통스럽게 버티며 살지 않는 것입니다. 내 몸이 평안해야 내 안쪽도 평안해지고, 내 안쪽이 평안해야 내 영혼도 편안해집니다.
셋째, 자기 기쁨을 찾으십시오.
이것은 정말 중요합니다.
이집트 신화에는 사람이 죽으면 신 앞에 서서 두 가지 질문을 받는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너의 인생은 너에게 기쁨이었니?”
“그 기쁨은 다른 사람에게도 기쁨이었니?”
이 질문은 죽은 사람을 위한 질문이 아니라, 살아 있는 사람을 위한 질문입니다. 특히 어른으로 살아가는 우리 모두를 위한 질문입니다.
여러분에게는 여러분만의 기쁨이 있습니까? 없다면 반드시 찾아야 합니다. 발견해야 하고, 발굴해야 하며, 필요하다면 돈을 주고라도 사야 합니다.
자기 기쁨이 없는 사람은 위험합니다. 자기 기쁨이 없는 사람은 다른 사람의 기쁨을 용납하지 못합니다. “나는 슬픈데 왜 저 사람은 웃지?”, “나는 고통스러운데 왜 저 사람은 즐거워하지?” 하며 다른 사람의 웃을 권리, 행복할 권리까지 빼앗으려 합니다.
자기 기쁨이 없는 사람은 다른 사람의 기쁨도 받아들이기 어렵습니다.
작고 소소한 기쁨을 여러 개 발견해야 삶이 무너지지 않습니다.
기쁨은 하나만 있어서는 안 됩니다. 여러 개 있어야 합니다.
“내 기쁨은 자식뿐”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위험합니다. 자식은 반드시 떠나가야 합니다. 성장한 존재는 떠나가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기쁨의 불이 하나뿐이면 그 불이 꺼졌을 때 인생이 암흑이 됩니다. 그러나 여러 개의 기쁨을 가진 사람은 한두 개의 불이 꺼져도 나머지 기쁨의 반짝임으로 삶을 이어갈 수 있습니다.
심리학에서는 나를 지탱하게 해주는 여러 자원이 있는 상태를 자기복합성(self-complexity)이라고 합니다. 자기복합성이 높은 사람은 생애 만족도가 높고, 그중에서도 관대함이 올라갑니다. 저는 이것이 어른의 중요한 덕목이라고 생각합니다.
자기복합성이 높은 사람은 자신을 설명하는 모습이 여러 가지입니다. 예를 들어 “나는 부모다”, “나는 직장인이다”, “나는 친구다”, “나는 신앙인이다”, “나는 운동을 좋아하는 사람이다”처럼 자신을 이루는 여러 영역이 분명합니다.
그래서 일상에서 좋은 일이나 나쁜 일이 생겨도 감정(affect)이나 자기평가(self-appraisal)가 크게 흔들리지 않습니다. 한 영역에서 부정적인 일이 생겨도 그것이 자기 전체를 무너뜨리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자기복합성이 낮은 사람은 자신을 설명하는 영역이 적고 흐릿합니다. 그래서 어떤 한 가지 일에서 실패하거나 부정적인 평가를 받으면, 그것을 자기 전체에 대한 평가처럼 받아들이기 쉽습니다.
즉, 자기복합성이 높은 사람은 일상 사건을 영역별로 나누어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compartmentalize) 그래서 어떤 피드백을 받아도 감정적으로 극단적으로 반응(affective responses)할 가능성이 낮습니다.
자기복합성이 높다는 것은 나를 지탱하는 정체성이 여러 개 있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한 부분이 흔들려도 나 전체가 쉽게 무너지지 않습니다.
나의 기쁨을 찾고 가족에게 물으십시오
기쁨을 찾는 방법은 어렵지 않습니다. 과거부터 뒤져보십시오.
“예전에 이걸 할 때 살짝 재미있었어.”
“그때 조금 신났어.”
“이건 왠지 즐거웠어.”
그런 것들을 적으십시오. 적지 않으면 사라집니다.
두려움도 마찬가지입니다. 마음속에 막연한 두려움이 있다면 그 두려움에 이름을 붙여야 합니다. 이름을 붙이면 명료해지고, 명료해진 것은 더 이상 막연한 공포가 아닙니다.
과거의 기쁨에 이름을 붙이고, 현재의 기쁨도 적으십시오.
일주일에 최소 세 개 이상의 기쁨을 찾아보십시오. 사실 우리는 일주일에 세 번이나 기쁜 적이 별로 없습니다. 그러니 기쁨을 찾는 일 자체가 엄청난 일입니다.
그리고 그 기쁨을 찾았다면 가족에게 물어보십시오.
“아버지, 저는 요즘 이런 게 기쁜데 아버지는 요즘 어떤 게 기쁘세요?”
“엄마, 저는 요즘 이런 게 재미있는데 엄마의 기쁨은 뭐예요?”
“여보, 당신은 요즘 어떤 게 즐거워?”
“얘들아, 너희는 요즘 뭐가 기쁘니?”
누가 우리에게 기쁨을 묻습니까? 아무도 묻지 않습니다. 우리는 책임과 의무만 있는 사람처럼 살아갑니다. 그러나 우리 가족도 마찬가지입니다.
내 기쁨을 물어보는 사람이 나의 친구입니다. 그러니 이번 주에 여러분만의 기쁨 세 가지를 꼭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3. 우리 집안의 역사를 써 내려가십시오 - 말과 이야기
이제는 개인의 역사를 넘어 가족의 역사로 나아가야 합니다. 요즘 한국사, 세계사 콘텐츠가 많습니다. 잠잘 때 듣는 세계사도 유행입니다. 그런데 다른 사람의 역사를 많이 알면 뭐 합니까? 우리 집안의 역사 한 줄이 없다면 말입니다.
여러분은 다음 세대 앞에 서 있는, 살아서 걸어 다니는 역사입니다.
그렇다면 우리 집안에는 어떤 역사가 있습니까? 없다면 지금부터 만들어야 합니다.
우리 집안의 극복 이야기를 들려주라
첫 번째는 극복 이야기입니다.
아이들에게 들려주십시오.
“옛날에 엄마가 이런 일이 있었는데 이렇게 극복했어.”
“아빠가 예전에 이런 어려움을 겪었는데 이렇게 이겨냈어.”
“네 할머니와 할아버지도 이런 일을 겪었지만 이렇게 극복하셨어.”
아이들에게 극복의 이야기를 전달해야 합니다. 요즘 아이들은 여러분보다 훨씬 낯선 세계에서 더 많이 넘어지고 흔들릴 것입니다. 20세기의 우리는 앞서 따라갈 사람이라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아이들은 자신들 앞에 아무 모델도 없는 세상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때 아이들에게 말해주어야 합니다.
“아무것도 없다고 말하지 마. 네 안에는 극복의 DNA가 있어. 우리 집안에는 이렇게 이겨낸 이야기가 있어. 그 극복의 DNA가 모인 사람이 바로 너야.”
우리가 아이들에게 남길 수 있는 것이 꼭 돈이나 재산이어야만 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 집안이 가진 극복의 이야기를 남겨야 합니다. 우리는 부모의 극복 이야기를 잘 모릅니다. 그렇다면 우리 아이들도 우리의 극복 이야기를 모를 가능성이 큽니다. 그러니 지금부터 전달해야 합니다.
물론 조금 부풀려도 괜찮습니다. 원래 위대한 역사에는 이야기의 힘이 있습니다. 박혁거세가 알에서 태어났다는 이야기는 그가 조류였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의 탄생이 남달랐다는 것을 말해주는 탄생 설화입니다.
여러분은 박혁거세는 아니지만, 적어도 자녀들 앞에서는 살아 움직이는 역사입니다. 여러분의 극복 이야기는 아이들에게 회복탄력성의 근원이 될 수 있습니다.
가족만의 문화 이야기를 만드십시오
두 번째는 문화 이야기입니다.
가족에게는 우리 집만의 문화가 있어야 합니다. 그중 하나가 음식일 수 있습니다.
저는 요리를 잘하는 사람은 아닙니다. 그런데 제가 잡채를 잘합니다. 그래서 저희 집은 명절에도 잡채, 생일에도 잡채였습니다. 어느 해 제가 심장 수술을 했을 때, 마침 아들의 생일이 있었습니다. 그때 아들이 문자를 보냈습니다.
“어머니, 낳아주셔서 감사합니다. 키워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런데 이번 생일에는 잡채가 없네요.”
그때 알았습니다. 저희 집 아이들에게 잡채는 특별한 날 먹는 음식이었습니다. 우리 집의 역사 음식이 된 것입니다. 시간이 지나 아이들이 멀리 떨어져 있어도, 명절이 되면 잡채가 생각나고 생일이 되면 잡채가 생각날 것입니다. 제가 죽은 다음에도 아이들이 그 음식을 기억한다면, 그것은 우리 집의 문화 이야기가 될 것입니다.
우리 집은 이때 이것을 먹는다.
우리 집은 이런 말을 한다.
우리 집만의 문화가 있다.
이런 것이 필요합니다.
우리 집만의 음식, 습관, 문장이 필요합니다.
명절 음식, 생일 음식, 반복해서 들려주는 말이 가족의 문화가 됩니다.
그리고 음식뿐만 아니라 문장도 가족의 문화가 될 수 있습니다. 아이들이 몇 살이든 상관없이, 꼭 말해주십시오.
“너는 뭐가 돼도 될 거야.”
이 말은 거짓말이 아닙니다. 인간은 정말 뭐가 돼도 됩니다. 중요한 것은 누가 그 말을 해주었느냐입니다.
아이가 태어났을 때, 그 앞에 서 있던 첫 번째 전능자는 부모입니다. 나에게 가장 좋은 것, 가장 값진 것, 가장 의미 있는 것을 주기 위해 자신의 청춘을 내어준 사람이 부모입니다. 그런 사람이 해주는 말은 아이 안에 깊이 심깁니다.
“너는 뭐가 돼도 될 거야.”
여기서 ‘뭐’는 가능성의 공간입니다. 희망의 공간입니다. 미래의 공간입니다. 제2, 제3의 빅뱅이 터지는 공간입니다.
아이들이 그 주머니를 어떻게 채울지는 결국 아이들의 몫입니다. 그러나 그런 주머니가 너에게 있다고 말해주는 사람은 있어야 합니다. 그 말을 들은 아이와 듣지 못한 아이는 다르게 자랍니다.
기도의 이야기를 남기십시오
마지막은 종교 이야기입니다.
아이들에게 꼭 말해주십시오.
“엄마가 너를 위해 기도한다.”
“아버지가 너를 위해 기도한다.”
“엄마와 아버지가 언젠가 떠난 뒤에도, 하나님이 너와 함께하신다.”
“그러니 염려하지 마라. 두려워하지 마라.”
우리는 길을 가다 넘어지면 “엄마야”를 부릅니다. 부를 이름이 엄마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엄마로 살아본 사람들은 압니다. 엄마도 얼마나 취약한 존재인지 말입니다.
그러니 아이들에게 엄마와 아버지보다 더 크고, 더 넓고, 더 오래 함께하실 이름을 전해주어야 합니다. 그것이 신앙의 아주 원초적인 기능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기본적인 전제에서 출발해 신앙을 성숙으로 이끌어가야 합니다.
믿는 아이든 믿지 않는 아이든, 교회를 오는 아이든 오지 않는 아이든, 꼭 말해주십시오.
“엄마가 널 위해 기도한다.”
“아버지가 널 위해 기도한다.”
“하나님이 너와 함께하실 것이다.”
아이가 인생의 가장 밑바닥에 떨어지는 순간, 가장 고통스러운 순간에, 그 말은 가장 크고 웅장한 소리로 다시 들릴 것입니다.
“엄마가 너를 위해 기도한다.” “아버지가 너를 위해 기도한다.”
“하나님이 너와 함께하신다.”
이 말은 아이가 가장 힘든 순간에 다시 붙잡을 수 있는 영혼의 안전망이 됩니다.
4. 마무리: 개인의 역사와 가족의 역사를 함께 써 내려가십시오
우리는 길어진 인생, 달라진 세상 속에서 내 역사를 잘 써 내려가기 위해 일주일에 한 번 도서관에 가기로 했습니다. 그곳에서 열 페이지를 읽고, 한 주에 한 문장을 외우며 심리적 포만감을 확보하기로 했습니다.
또 우리는 관계를 잘 유지하기 위해 에너지를 알아야 한다고 배웠습니다. 에너지가 부족하다면 짬짬이 자고, 필요한 도움을 받고, 무엇보다 내 기쁨을 찾아야 합니다. 나의 기쁨을 묻고, 가족의 기쁨을 물어보는 과정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가족의 역사를 새롭게 써 내려가야 합니다. 아이들에게 극복의 이야기를 들려주십시오. 우리 집안에는 극복의 DNA가 있다고 말해주십시오. 가족만의 음식과 문장을 만들어 문화 이야기를 남기십시오. 그리고 마지막으로, 아이들의 영혼에 기도의 이야기를 심어주십시오.
“엄마가 너를 위해 기도한다.”
“아버지가 너를 위해 기도한다.”
“하나님이 너와 함께하신다.”
“그러니 염려하지 마라. 두려워하지 마라.”
한 주 한 문장으로 나를 세우고, 에너지와 기쁨으로 관계를 살리며, 극복·문화·기도의 이야기로 가족의 역사를 남기라.
내가 어떤 말을 쓰고, 어떤 기쁨을 찾고, 어떤 이야기를 남기는지가 결국 가족의 역사가 됩니다.
나의 내면을 세우는 일이 가족과 다음 세대를 세우는 일입니다.
저는 오늘 오륜교회에 처음 왔습니다. 이 교회의 역사를 보며, 이것은 한 지역의 이야기가 아니라 기독교의 역사를 써 내려가는 이야기라고 생각했습니다. 이 거대하고 웅장한 신앙의 역사 속에서 여러분도 개인의 역사와 가족의 역사를 잘 써 내려가셨으면 좋겠습니다.
무엇보다 하나님은 여러분이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여러분을 그 존재 자체로 아름답고 빛난다고 말씀하십니다. 그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
오늘도, 내일도, 그리고 올해 2026년에도 여러분의 역사가 하나님 앞에서 가장 아름답고 선하고 빛나는 역사가 되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Others > 이것 저것' 카테고리의 다른 글
| 김광규 시인을 공감하다 (0) | 2026.06.03 |
|---|---|
| James Joyce 'Clay' 진흙 (0) | 2026.05.23 |
| 2025년에 왜 신흥국, 특히 라틴아메리카 주식시장이 그렇게 많이 올랐는가, 그리고 2026년에는 어떻게 될 것 같은가? (0) | 2026.03.26 |
| 형성으로 이해하는 한자 음운 입문 (1) | 2026.01.20 |
| 양자역학 (1) | 2026.01.18 |
| 욜로에서 요노로: MZ세대가 선택한 새로운 소비 트렌드 (0) | 2026.01.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