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회사의 연구개발(R&D) 공간이라고 하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시나요? 외부인은 발도 못 붙이는 삼엄한 보안, 가림막으로 꽁꽁 싸맨 위장막 차량이 먼저 생각납니다.
하지만 최근 자동차 기업의 UX(사용자 경험) 스튜디오는 완전히 다른 행보를 보이고 있습니다. 현대자동차그룹이 강남대로 한복판에 ‘UX스튜디오 서울’을 열고 연구원들의 일터와 고객의 공간을 하나로 합친 것처럼 말이죠.
자동차 기업의 UX 스튜디오는 일반 IT 기업의 디자인 룸이나 기존 자동차 연구소와 무엇이 다르고, 그곳에서는 실제로 어떤 일들이 일어나는지 정리해 보았습니다.
자동차 UX 스튜디오, 무엇이 다른가요?
1. 연구실을 벗어나 고객 ‘코앞’으로 (거리와 속도의 혁신)
과거에는 신차에 대한 피드백을 받으려면 고객을 경기도 화성 남양연구소 같은 보안 시설로 초대해야 했습니다. 서울에서 왕복 2시간이 넘는 거리를 이동하고, 삼엄한 보안 검색을 통과하느라 고객의 충성심마저 지치게 만들었죠. 리서치 하나를 진행하는 데 행정 절차만 한 달이 걸리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도심형 UX 스튜디오는 이 물리적·심리적 거리를 단번에 없앴습니다.
- 오전 이슈 접수 → 오후 인터뷰 완료: ‘내비게이션 화면 상시 고정’에 대한 궁금증이 생기자마자 1층 스튜디오로 내려가 반나절 만에 방문객 12명의 의견을 수집하고, 이를 실제 ‘더 뉴 그랜저’ 양산에 즉각 반영했습니다.
- 상시 리서치 크루 확보: 일평균 150~200명의 도심 방문객을 2,000여 명 규모의 온·오프라인 ‘리서치 크루’로 전환해, 설문 발송 서너 시간 만에 수백 명의 데이터를 얻는 기동성을 갖췄습니다.
2. “왜?”라고 묻지 않는 질문법
일반적인 설문조사는 “어디가 불편하세요?”, “왜 이 기능을 좋아하세요?”라고 묻습니다. 하지만 사람은 자신의 진짜 욕망이나 무의식적 행동의 이유를 스스로도 잘 모릅니다. 단도직입적으로 물으면 그럴듯한 ‘거짓말(자기합리화)’을 만들어내기 십상이죠.
자동차 UX 스튜디오는 제품의 스펙 대신 고객의 삶과 로망을 묻습니다.
- “2028년 당신의 일기장에 자동차가 등장한다면 어떤 문장일까요?”
- “어떤 라이프스타일을 가진 사람이 가장 부러우신가요?” 상대방의 부러움과 로망을 통해 진짜 원하는 차의 성격과 감성을 역추적하는 방식입니다.
UX 스튜디오에서는 실제로 무엇을 할까?
① 0.01초 단위의 생체 신호와 무의식 관찰
시속 100km로 달리는 자동차 안에서는 1초만 시선이 뺏겨도 28m를 눈감고 달리는 것과 같습니다. 운전 중에는 ‘말’보다 ‘몸의 반응’이 훨씬 정직합니다.
- 시선 추적(Eye-tracking): 특수 안경을 착용한 운전자의 동공 흔들림, 고개 각도를 0.01초 단위로 측정합니다. 이를 통해 고개를 숙이지 않고도 필수 정보를 한눈에 볼 수 있는 9.9인치 ‘더 뉴 그랜저 슬림 디스플레이’를 탄생시켰습니다.
- 오조작 원인 규명: 편리한 ‘에어컨 오토(AUTO)’ 기능을 왜 고객들이 안 쓰는지 손동작을 관찰했더니, 오토 버튼 바로 옆에 풍량 버튼이 있어 무의식중에 손이 닿아 풀려버린다는 사실을 밝혀내고 UI를 전면 수정했습니다.
② 목재 벅(Mock-up)과 시뮬레이터 체험
실제 차를 만들기 전, 목재로 1:1 크기의 실내 공간(Mock-up)을 제작해 고객이 직접 타보고 짐을 놓아보게 합니다. 여기에 실제 도로에 온 듯한 시뮬레이션 장비를 결합해 주행 환경에서의 인체공학적 편의성을 검증합니다.
③ 고객의 삶을 관찰해 ‘문화적 별자리’ 엮기
단순히 나이나 성별로 고객을 나누지 않습니다. 미국 고객의 집을 방문해 바쁜 일정과 화상회의 중심의 라이프스타일을 읽어내고, 유럽 고객의 거실 소파 중심 문화를 파악합니다.
- 이렇게 고객의 삶을 무대 위 주인공으로 바라보았기 때문에, 패밀리 전기차 ‘아이오닉 9’에 2열 시트를 180도 돌려 가족이 마주 앉는 ‘스위블 시트(Swivel Seat)’ 같은 감성적 연출을 구현할 수 있었습니다.
④ 기능이 아닌 ‘장면과 안도감’ 연출
단순히 버튼 하나로 기능을 묶는 것을 넘어, 고객이 마주할 감정의 흐름을 설계합니다.
- 세차 모드의 안심 연출: 자동 세차장에 들어갈 때 운전자는 ‘혹시 빠뜨린 조작이 있나’ 불안해합니다. UX팀은 세차 모드 실행 시 기어가 중립이어도 차가 멈추지 않도록 ‘오토 홀드를 해제하라’는 팝업을 띄워, “내가 깜빡해도 차가 나를 챙겨준다”는 심리적 안도감을 설계했습니다.
자동차 기업의 UX 스튜디오는 더 이상 단순한 자동차 조작계를 테스트하는 곳이 아닙니다.
0.01초의 안전을 지키는 정밀한 신체 데이터 측정부터, 고객의 숨은 로망을 이동 공간에 구현하는 무대 연출까지. 고객의 입술 너머에 있는 ‘무의식과 감각’을 읽어내어 완성도 높은 라이프스타일을 빚어내는 곳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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