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겐 아직 길이 있습니다
강사: 강철호 목사
- 새터교회 담임목사 (1968년생)
- 북한 기독교 총 연합회 이사장
- 감리교신학대학교 동 대학원 졸업
성경 본문 - 열왕기하 4:1~7
1 선지자의 제자들의 아내 중의 한 여인이 엘리사에게 부르짖어 이르되 당신의 종 나의 남편이 이미 죽었는데 당신의 종이 여호와를 경외한 줄은 당신이 아시는 바니이다 이제 빚 준 사람이 와서 나의 두 아이를 데려가 그의 종을 삼고자 하나이다 하니
2 엘리사가 그에게 이르되 내가 너를 위하여 어떻게 하랴 네 집에 무엇이 있는지 내게 말하라 그가 이르되 계집종의 집에 기름 한 그릇 외에는 아무것도 없나이다 하니
3 이르되 너는 밖에 나가서 모든 이웃에게 그릇을 빌리라 빈 그릇을 빌리되 조금 빌리지 말고
4 너는 네 두 아들과 함께 들어가서 문을 닫고 그 모든 그릇에 기름을 부어서 차는 대로 옮겨 놓으라 하니라
5 여인이 물러가서 그의 두 아들과 함께 문을 닫은 후에 그들은 그릇을 그에게로 가져오고 그는 부었더니
6 그릇에 다 찬지라 여인이 아들에게 이르되 또 그릇을 내게로 가져오라 하니 아들이 이르되 다른 그릇이 없나이다 하니 기름이 곧 그쳤더라
7 그 여인이 하나님의 사람에게 나아가서 말하니 그가 이르되 너는 가서 기름을 팔아 빚을 갚고 남은 것으로 너와 네 두 아들이 생활하라 하였더라
Take-aways:
1. 인간은 특히 성도는 다른 사람들 대한 책임이 있습니다. 내 이웃뿐만 아니라 동포의 고통을 외면하는 것은 따라서 참된 행복으로부터 멀어질 뿐만 아니라 동시에 하나님께 등을 돌리는 일입니다. 그래서, 북한 동포들과 또 대한민국에서 함께 살게 된 새터민들을 돌아보는 것이 하나님 앞에서 의미가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북한 동포와 중국에서 북송 위험에 있는 탈북자들을 위한 하나님의 자녀들의 '외침'이 중요합니다. 행동과 실천이 요구됩니다.
2. 우리 마음에는 여러 상처가 있습니다. 북한에서의 경험은 우리가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아픔이었고, 또 우리 각자의 삶 속에서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상황과 아픔을 겪으며 오늘까지 살아왔습니다. 감사보다 원망이 있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요셉의 고백처럼 하나님의 열심 속에서, 일하심 속에서 나중에는 하나님 은혜를 감사하는 날이 있을 것이라고 소망합니다. 나 보다 크신 하나님을 내 인식의 틀로 묶어두지 말고 '신뢰하며' 나아갑니다. 탈북민들을 회복시키고 통일을 준비하는 일에도 하나님의 만져주심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3. 북한과 민족 통일이라는 주제에 대해 우리는 정치적으로 대적하기도 했고 햇볕정책을 펴기도 했습니다. 경제적 협력을 펼치기도 했고, 인도적으로 탈북 과정을 지원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역사의 주관자이신 하나님 없이 진행하는 것은 의미가 없습니다. 오직 복음 통일을 위해 힘을 다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의 엘리사 제자의 미망인은 빚 독촉의 절망 앞에서, 사람을 찾아가 읍소하거나 극단적 포기를 하지 않고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를 찾아갔습니다. 우리의 해법은 하나님입니다. 통일도 하나님의 주관입니다.
아울러, 서독이 했던 프라이카우프와 같은 지혜도 검토해야 합니다. 인도주의적 접근도 복음과 연결되어야 합니다. 다시 함께 기도할 때입니다.
탈북민, 내 정체성은 하나님의 자녀
나는 대한민국에 살고 있는 3만 5천 명 탈북민 중의 한 사람이다. (1997년 탈북한 강 목사는 국내 최초의 탈북민 목회자다.)
탈북민의 가장 큰 고민은 '정체성'이다. '나는 누구인가,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나는 북한 사람인가, 남한 사람인가?' 이런 고민을 마음에 품고 아파하며 살아간다.
그러나 나는 예수님을 믿고, 정체성의 답을 얻었다고 당당히 말할 수 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다. 이 정체성으로 인해 모든 갈등을 극복할 수 있었다.
'왜 나는 북한에서 태어나서 그런 고생을 해야 했나? '라는 생각에 마음이 아플 때가 많았다.
이북 5 도청은 한국전쟁 이후에 실향민들이 많이 모였고 지금은 그 2세들이 많이 모이는 곳이다. 그곳에서 만난 2세들이 부모님의 고향인 북한을 어느 정도 이해하는 것처럼 이야기하지만, 나는 오히려 그들이 대한민국의 고마움을 잊지 말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다.
'국제시장'이라는 영화가 있었다. 그 영화에서는 한국 전쟁 중 '흥남 부두'에서 모든 스토리가 시작하는데, 내 고향이 바로 '흥남'이었다. 모든 반동들이 한국 전쟁 때 미군 배를 타고 다 도망갔다고 아버지가 저주하던 일이 생각난다. 그런데, 그 저주 대상이던 반동들이 대한민국에 와서 모두 잘 되었다. 우리 아버지도 그들을 반동이라고 욕하지 말고 그때 그 배를 타고 대한민국으로 오셨었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을 한다.
부모님의 공개 처형, 마음대로 생각을 드러내 말할 수 없는 나라, 북한
나도 단란한 부모와 가정이 있었다. 그러나 부모님이 김일성을 비판했다고 공개처형을 당해 고아로 살아오며 많은 시련을 겪었다. 나는 오늘 그 이야기는 하지 않으려 한다. 나는 그 상처를 늘 숨기며 살았는데, 왜냐하면 그 이야기를 해도 사람들로부터 값싼 동정 밖에 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누가 그 아픔을 이해할 수 있을까? 아버지가 공개처형 당할 때, 우리 가족들은 원하지 않았지만, 공산당은 가족들이 그 처형 광경을 목격하게 했다. 그 아픔과 상처는 도저히 치유받기 어려웠다.
내가 어릴 때 북한의 유치원에서 처음 가르친 것은, '너희 부모님은 너를 낳았을 뿐이고 네 생명을 끝까지 책임질 분은 김일성, 김정일 장군님이고 조선노동당이다'라는 것이었다. 집으로 돌아와서 부모님께 여쭤봐도 그 말이 맞다고만 하셨다. 덧붙여 '위대한 장군님께 끝없이 충성하는 아들 딸이 되어라'라고 하셨다. 우리 아버지가 그렇게 밖에 말씀하실 수 없었던 것은, 어린 내가 밖에 나가 말로 실수할까 봐 그러셨던 것이다.
이 아픔과 분노 속에서 나는 도저히 북한 땅에서 살 수 없었다. 김일성을 비판한 부모님의 잘못 때문에 우리 가족과 내가 겪은 고난은 너무 심했다. 내가 대한민국에 온 이후 숱하게 '왜 왔습니까?'라는 질문을 농담처럼 들었지만, 사실 그런 질문은 우리 탈북민의 큰 아픈 상처를 건드리는 것이었다.
이 상처와 관련하여, 동서독 통일되었을 때의 우화가 하나 있다.
동독 개가 서독으로 탈출했다. '너 왜 왔니? 배고파서, 집이 없어서 왔지?'라고 서독개가 물었다.
'나는 동독에서 배고프고 집 없는 것은 참을 수 있었지만, 마음껏 짖을 수가 없어서 서독으로 왔어.'라고 동독에서 탈출한 개가 대답했다.
탈북민이 배고파서 남한으로 온 것은 맞지만, 그곳이 제대로 된 사회였으면 우리가 그렇게 굶주리고 넘어왔겠는가? 탈북은 '자유'를 향한 몸부림이다.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탈북의 기회만을 찾고 있다.
탈북 후 조선족 교회 목사님의 헌신을 통해 예수님을 만나다
내가 예수 믿는 사람이 아니었다면, 내가 어떻게 오늘 이 자리에 서고 이토록 많은 사랑을 받을 수 있었을까?
나는 중국으로 탈북한 후에 중국에서 예수님을 만났다. 중국 조선족 교회에 어느 할머니 손에 이끌려 밥을 얻어먹을 요량으로 따라갔다.
그 목사님이 나를 따뜻하게 위로해 주셨는데 너무 감동이 되었다. "주 예수를 믿으라,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는 말씀과 함께, 성경책을 한 권 선물로 주셔서, 또 길과 진리가 있다고 해서 열심히 읽어보았다. 북한의 김일성 일대기를 담은 혁명 로작(勞作/ Work,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 등 역대 최고지도자 명의로 발표된 보고, 연설, 담화, 명령, 지시, 연구 등을 담은 논문 형태의 책자)과 너무나도 흡사했다. 그래서 목사님이 나를 놀린다고 오해했다. 게다가 예배 때 교인들이 울며 기도하는 모습도 북한과 똑같았다. 그렇게 마음문을 닫으니, 성경과 설교 말씀을 전혀 믿을 수 없었다.
그 목사님의 사랑을 받으며 그곳에서 6개월을 더 지냈다. 그런데 누군가가 탈북자가 교회에 거주한다고 고발해서 공안이 몰려왔는데, 그 목사님이 목숨을 걸고 나를 보호해 주셨다. 나는 마음 문을 닫아걸고 있었기에, 오히려 목사님께 '나를 지켜준 목적이 뭐냐?'라고 따졌다. '젊은 사람을 붙들어 두고 일 시켜먹으려는 것 아닙니까?'라고 억지 소리도 했다. 그런데 목사님은 전혀 화를 내지 않고 나를 안아 주시며, 한 생명이 천하보다 귀하다'라고 하나님이 말씀하셨기 때문에 선한 거짓말을 해서라도 지켜준 것이라고 하셨다.
그 사랑에 신앙의 힘을 처음으로 느꼈다. '나는 죄인입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을 믿겠습니다'라고 목사님께 고백을 하고 그날로 세례를 받았다.
대한민국에 왔지만 분노와 아픔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렇게 중국에서 7년을 살았는데, 연변 해양대학교에서 여권을 대행할 수 있는 전문 자격증을 따고, 여러 교수님들의 사랑의 보살핌을 받아서 한국으로 무사히 올 수 있었다. (1997년) 한국에 와서도 많은 분들에게 사랑을 받았다. 곳곳에 크리스천들을 심어 주셔서 인도하시고 보호해 주셨다. 특히 과천 은파선교감리교회 이근희 목사님을 만나 큰 사랑을 받고, 그 목사님의 어깨 너머로 목회에 대해 하나하나 배울 수 있었다.
나를 남한으로 보내신 하나님의 뜻을 생각하다가 소명을 갖고 감리교 신학교에 들어갔다. 북한 선교를 위함이었다. 북한 선교를 하면서 또 마음에 상처를 받았다. 북한 선교를 하신다는 목사님들이 내게 북한과 김정일을 용서해야 한다고 하셨다. 내 마음에 분노가 솟아올랐다. '우리의 아픔과 상처를 잘 알지도 못하면서 용서를 그렇게 쉽게 말하나?'라는 이유였다.
- 이창동 감독의 영화 <밀양>의 원작 소설 제목은 '벌레 이야기'다.
늦둥이로 태어난 아들 알암이를 애지중지 키우던 아내는 어느 날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듣는다. 알암이가 유괴되어 살해된 것이다. 아내는 미칠 것 같았다. 세상의 모든 터전이 흔들렸다. 아내는 약국집 김 집사의 집요한 설득에 넘어가 교회를 다니기 시작했다. 흔들리는 마음을 붙들어 줄 닻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어느 날 아내는 다소 위험한 발상을 한다. 감옥에 갇힌 범인을 찾아가 그를 용서한다고 말하겠다는 것이다. 주위에서는 말렸지만 그 고집을 꺾을 수 없었다.
- 그러나 감옥에 다녀온 아내는 더 깊은 절망감에 사로잡힌다. 범인은 이미 감옥에서 전도를 받아 평안을 누리고 있었던 것이다. 범인이 오히려 아내를 위로했다. 이 뒤집힌 현실을 아내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가 없다. 아내는 절규한다
"살인자가 그 아이의 어미 앞에서 어떻게 그토록 침착하고 평화로운 얼굴을 할 수 있느냔 말이에요. 살인자가 어떻게 성인 같은 모습으로 변할 수가 있느냐 그 말이에요. 절대로 그럴 수는 없는 일이에요. 그럴 수가 없기 때문에 전 그를 용서할 수가 없었던 거예요.
- 이미 용서받았기에 용서할 수도 없었다는 사실은 아주 잔인하게 아내의 가슴을 할퀴었다. 아내는 김 집사에게 이렇게 절규한다.
그래요. 내가 그 사람을 용서할 수 없었던 것은 그것이 싫어서보다는 이미 내가 그러고 싶어도 그럴 수가 없게 된 때문이었어요. 집사님 말씀대로 그 사람은 이미 용서를 받고 있었어요. 나는 새삼스레 그를 용서할 수도 없었고, 그럴 필요도 없었지요. 하지만 나보다 누가 먼저 용서합니까? 내가 그를 아직 용서하지 않았는데 어느 누가 나보다 먼저 그를 용서하느냔 말이에요. 그의 죄가 나밖에 누구에게서 먼저 용서될 수가 있어요? 그럴 권리는 주님에게도 있을 수 없어요. 그런데 주님은 내게서 그걸 빼앗아 가버리신 거예요. 나는 주님에게 그를 용서할 기회마저 빼앗기고 만 거란 말이에요. 내가 어떻게 다시 그를 용서합니까."
영화 속의 '아내'가 통곡하던 모습이 바로 내 모습이었다. '어떻게 네게 그토록 깊은 상흔을 남긴 북한의 그 사람들을 용서하라고 할 수가 있을까?'라는 마음이었다. 사람들은 내게 '얼굴 인상을 펴라'라고 하지만, 그 말도 싫었다. 온유한 마음도 갖기 어려웠다. 매일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그래서 세상으로 나가 방황할 때도 있었다.
요셉을 묵상하며 아픔이 치유되다
요셉에 대한 이야기를 묵상하게 되었다.
요셉은 보디발의 아내에게 모함을 받아 억울하게 감옥에 들어갔지만, 자기의 분노를 잘 다스리고 하나님과 함께 하는 삶을 살았다. 마침내 가장 낮은 자리에서 가장 높은 자리로 올라갔던 요셉을 보며, 나도 그렇게 변해야 겠다고 생각했다. 거울을 보며 웃는 연습도 해보았다. 그러나 잘 되지 않았다.
그런데, 나중에 요셉이 애굽에서 형들을 만났을 때,' 당신들이 나를 팔아넘긴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 가족을 구원하기 위해 애굽으로 미리 보낸 것이다.'라고 이야기하며 용서하는 모습을 보고, 그것이 바로 신앙이요 인격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예수 믿고 자랑할만한 큰 은혜 받은 것은 없지만, 당당하게 이야기할 것은 이제 내 아픔이 치유되었고 상처를 이겨나갈 용기를 갖게 되었다는 것이다.
북기총 이사장으로 섬기다
북기총(북한 기독교 총연합회)은 탈북민 교회 26곳과 탈북민 목회자와 신학생, 선교사 등 79명이 회원이다. 남북 분단을 복음으로 극복하고 신앙 안에서 복음통일을 이루어 북한에 무너진 교회를 재건하고 하나님 말씀에 합당한 대한민국을 만드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북기총 이사장을 맡아 섬기고 있다. 특히 다니엘 기도회에서 북기총에 차량 10대를 보내주셔서 잘 사용하고 있다. 나도 탈북민 성도들을 오해할 때도 있었지만, 결국에는 하나님께서 그들을 다듬어 주시는 것을 보았다. 사람을 함부로 평가하지 말자. 하나님이 만들어 가신다.
1997년에 한국에 와서 2004년에 목회 시작 이후 20년을 목회했으나 탈북민 교인들에게 받은 상처도 있지만 하나님께 받은 은혜가 더 크다. 탈북민들이 부족해도 그들을 위해 기도해 달라. 그들이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소중한 일군으로 준비될 것이다.
나는 개인적으로는 20년 목회 끝에 육신의 건강을 잃었다. 원망도 했지만, 바울의 가시를 보고 마음을 새롭게 하여, 금년말로 담임을 내려 놓고 선교 목사로 집중하여 활동하기로 했다.
어느 탈북민 10대 여성 이야기 - 누가 이들을 위해 외쳐줄 것인가?
탈북민 목회자들과 함께 중국에 갔을 때, 한 19세 여성 탈북민을 보았는데, 그녀는 우리가 너무 부럽다고 했다.
그녀의 자세한 이야기를 들었다. 그녀는 17세에 중국으로 팔려왔다. 중국과 내통하는 브로커가 동네에 있어서 부모님을 유혹했지만 넘어가지 않았는데, 오히려 그 여성이 자기 가족을 살리기 위해 부모 몰래 자진해서 20만원 정도를 받아 집에 남겨 놓고 중국으로 팔려왔다는 것이다. 중국에서는 자기 아버지뻘 되는 사람이 자기를 샀다고 시골 집으로 데려 갔는데, 70대 아버지와 50대 아들 둘만 여성은 아무도 없이 사는 사람들이었다. 팔려온 것이 아니라 시집온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청소를 하고 밥을 지었지만, 밤에는 세 남자에게 겁탈당했다.
그들을 위해 통일을 이야기하고 울어줘야 한다. 정치적으로 오해하지 마세요. 광화문에서 위안부를 위해 시위하는 모습을 보았다. 그렇다면 탈북 여성들을 위해서는 왜 아무도 외쳐주지 않는가?
복음 통일을 준비하자
통일은 김정일과 의논할 바가 아니다. 하나님이 주셔야 한다. 정치인이 아니라 한국 교회와 기독교인들에게 통일의 키가 있다.
평양이 다시 동방의 예루살렘으로 회복되어야 한다. 다니엘은 민족을 위해 기도했던 사람이다. 예루살렘의 회복이 이스라엘 민족의 회복이었기에 매일 세 번씩 예루살렘을 향해 기도했다. 우리도 평양의 회복을 위해 기도해야 한다.
대한민국은 하나님이 세우시고 보호하시는 국가인 것을 남한에 와서 역사를 통해 배웠다.
"하나님이 보우하사 대한민국 만세~~~ "에 감동을 받았다.
새마을 운동의 정신도 기독교 정신이었다. "새벽종이 울렸네~" 마을회관 스피커를 통해 새마을 노래가 울리기 전에, 교회에서 그 새벽종을 먼저 울렸다. 교인들은 교회로 와서 새벽기도를 하고 다음에 일터로 나가 열심히 일해서 오늘날의 대한민국 번영을 가져왔다.
통일은 한국교회를 통해서 이루어질 것이다.
독일 통일은 운이 좋고 시기를 잘 만나서 통일된 것이 아니었다. 분단 시에 서독교회가 '프라이카우프’(Freikauf, '자유를 사다'라는 뜻)' 운동을 했다. 큰 돈을 모금해서 동독을 도와주었는데, 공짜가 아니라 그 댓가로 감옥에 갖혀있던 정치범들의 몸값을 지불하고 데려왔다. 1962년부터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질 때까지 정치범 34,000여 명을 서독으로 데려왔다. 현재 우리 탈북민 수와 비슷한 수다. 또 그들을 방치하지 않고 각 교회가 그들을 품었다. 그들이 신앙을 가지며, 정치가 아니라 진리가 우리를 자유케 한다는 것을 알게 해주었다. 그래서 그들이 고향의 부모 형제들에게 복음의 진리를 가르쳐 주기 시작했다.
이때 하나님이 역사하셨다. 자유를 억압하는 것이 아니라는 쇼를 보여주기 위해, 지도자가 TV에 나와 여행의 자유를 선언할 예정이라고 했는데, 동독 사람들이 '자유다!'라고 일어나서 베를린 장벽을 무너뜨린 것이다. 하나님이 만드신 통일이었다.
“독일 통일은 우연이 일어난 것이 아니다. 당시 서독은 통일운동을 했고, 교회가 앞장서 동독을 돕기 위해 모금하고 지원했다. 우리는 대가 없이 지원하지만, 그들은 공짜로 지원하지 않았다”
“서독은 동독 감옥에 갇힌 자들을 위해 지원하는 생명 살리기 운동을 했다. 교회는 탈동독인들을 데려와 하나님의 진리를 알려주는 복음 운동을 했다”
나는 예수 믿고 인격이 변했다.
대한민국의 탈북민 교육장에 가보면 좋은 강사도 많지만, 때로는 떨릴 정도로 걱정되는 때가 많다. 강사들이 대한민국에서는 돈을 많이 벌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심지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라고 한다. 그 말이 도전일까? 도덕과 윤리가 무너졌다면 탈북자부터 회복시켜 나가야 한다.
나는 부족하지만, 여기까지 오는 동안 많은 분들의 눈물의 기도가 있었다. 나는 목동에서 20년 동안 목회를 했는데, 목동 지구촌 교회의 조봉희 목사님의 도움을 크게 받았다. 그분들의 믿어주고 기도해주는 마음때문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특히, LA의 어바인 벧엘한인교회의 손인식 목사님은 북한 선교에 헌신하시다가 돌아가셨다.
하나님의 은혜로 통일을 허락하시기를 기도하자
오늘 본문 말씀을 살펴보면, 이름도 없는 한 여인이 나온다. 엘리사 제자의 아내였다. 죽은 남편의 빚으로 인해 두 아들을 빚쟁이들이 데려가겠다고 하는 절대절명의 시점이었다. 그녀는 엘리사를 찾아간다. 그랬기에 하나님께 큰 복을 받는다. 그녀의 가정이 회복되었다. 기름, 즉 은혜의 복이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다. 하나님이 주신다. 하나님이 통일을 허락하실 것이다. 북한을 위해 기도해 달라.
어떤 사람은 통일 비용을 고려하며 부정적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북한에는 어마어마한 지하자원과 관광자원이 많다. 설악산은 우리집 뒷동산 정도다! 통일이 되면 7대 경제 강국이 될 것이다. 이 통일을 위해 교회가 나서야 한다. 부르짖어야 한다.
정치인들이 말하는 것처럼 정치는 공짜가 아니다. 순교자들로 인해 한국 교회가 복을 받은 것이다. 우리가 함께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역사하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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