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그리스도 안에 거하라
강사 : 유기성 목사
- 위지엠(With Jesus Ministry) 이사장
- 선한 목자 교회 원로목사 (1957년생. 65세에 조기 은퇴한 후, 2기 사역 중)
- 제4차 로잔대회 한국준비위원장
성경 본문: 요한복음 15:4-6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
이번 유기성 목사님의 간증 및 설교를 통해 답을 찾을 수 있는 문제들:
-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 교회와 가정에서 왜 세상 사람들처럼, 아니면 더 무섭게 서로 싸우고 미워할까요?
- 어떻게 하면 겉으로 성도인'체' 하는 것이 아니라, 진짜로 예수님을 내 안에 모신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 수 있을까요?
- 내 안의 들키지 않은 은밀한 죄를 어떻게 끊어내고 반복하지 않을 수 있을까요?
- 우리는 죄성을 가진 연약한 육체이므로 늘 넘어지는 것이 당연한 것일까요? 혹시 변명은 아닌가요?
- 내가 마음만 독하게 가지면 내면의 유혹도 이겨낼 수 있을까요? 아니면 어떻게 이겨내야 할까요?
Rapport - 자녀에게 물려줄 진짜 믿음이 있습니까?
전국 교회와 성도들이 함께 기도하고 찬양하고 한 말씀으로 은혜받는 것은 제 개인적으로도 하나님께서 주셨던 놀라운 비전인데, 다니엘기도회를 통해 이뤄지는 모습을 보니 너무 좋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오늘 이러한 우리 예배와 기도를 통하여 한국 교회 안에 영적 각성이 일어나게 해 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하게 됩니다. 우리 안에는 주님을 바라보는 눈을 분명히 떠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 모두에게 다 하나님께서 계획하고 계시다고 믿습니다.
한 번은 목사님들끼리 모여서 '다음 세대에게 우리 신앙을 어떻게 물려주면 좋을까'에 대해 아주 심각하고 진지한 토의를 하였다. 우리에게 중요한 문제이고 한국 교회의 위기이기도 하다. 우리 어른들 세대의 믿음을 자녀들에게 또 이 시대의 청년 학생들에게 어떻게 물려줄 수 있을까에 대해 다양한 논의가 진행되었다. 그런데, '우리 어른들에게 자녀들에게 물려줄 신앙이 있기는 한가?'라는 질문이 나오자, 목사님들이 아무 말씀도 못하셨다. 진짜 고민은 '우리 어른들 세대가 이미 신앙을, 믿음을 잃어버렸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만약 우리에게 진짜 믿음이 있다면, 다음 세대에게 물려주는 것은 사실 고민할 문제가 별로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믿음은 전염력이 정말 강하기 때문'이다. 진짜 믿음은, '저 사람은 예수님과 함께하는 사람이야'라고 하면 전해지지 않을 수 없다. 몰래 믿을 수가 없다.
여러분의 지금 현재의 신앙생활은 요한복음 15:5 말씀 대로 인가?
예수님은 포도나무고 나는 가지이고, 나는 주님 안에 주님은 내 안에 거하고 계셔서, 여러분 삶에서 열매를 많이 맺고 있는가?
우리는 예수 믿는 것에 대한 명확한 정의를 주님에게 듣고 있고 다 알고 있다.
나는 아버지가 목사님이셨기에 어릴 때부터 교회에 살았는데, 가장 많이 볼 수 있었던 이미지가 포도송이였다. 어린이 예배실에는 항상 포도송이가 걸려있었다. 그래서 한 명 전도해 오면 포도 한 알을 받고, 암송하면 받고, 그래서 포도송이가 다 차면 연필하나 받고, 공책하나 받던 시절이었다.
그렇지만 예수님이 내 안에, 내가 예수님 안에 거한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았다. 현실이 아니었다.
- 우리 안에 진짜 자녀에게 물려줄 참 믿음이 있는가?
- 예수님이 진짜 내 안에, 내가 예수님 안에 거하고 있는가?
그렇다면 걱정할 필요 전혀 없이, 주님이 하시며 부모의 믿음을 자녀에게 전해주실 것이다.
율법주의적 종교가 되어버린 기독교
실제 한국교회는 심각한 문제가 있다. '율법주의적 종교'가 되어버린 것이다. 율법주의적 종교는 우리들끼리는 익숙한데 외부 사람이 보기에는 하나도 매력이 없는 것이다. 우리가 다른 종교에 시설에 들어가 보면 '여기는 자기들끼리 종교생활을 하는 곳이구나'는 이해되지만, 좋은 느낌은 안 드는 것처럼, 불신자들이 또는 우리 자녀들이 그렇게 느끼게 되었다는 것이다.
전도사 때 처음으로 감리교회 지방회에 참석했다가 엄청 울었다. 은혜받아서가 아니라 서로 너무 심하게 싸우셨기 때문이다. 목사님, 장로님들이 대표인데 왜, 무슨 싸울 일들이 있을까 싶었다. 언성을 높이고 마이크를 뺏고 회의가 난장판이 되었다.
그런데, 더 심각한 것은 예배순서가 되었을 때였다. 돌아가신 장로님 추도예배 시간이 되자, 그렇게 싸우다가 갑자기 예배를 같이 드리는 것이었다. "이게 가능한 일인가, 이게 이렇게 예배드릴 수 있는 상황인가? 하나님은 우리가 예배 시간에 그냥 찬송 부르자고 하고 기도하자고 하면 다 받으시는 하나님이신가?" 눈물이 났다. 그렇게 예배가 끝나고 다시 싸우는 것이었다. 이것이 율법주의적 종교가 된 것이다.
싸우는 것도 열심이 있어야 한다. 준수하고 지키는 것에는 열심이 있는데, 평안도 기쁨도 사랑도 없는 것이다.
우리도 예수님이 내 안에 계시다고 고백하지만, 왜 집에서는 소리를 지르고 부부싸움을 그렇게 오래 하는가? 예수님이 내 안에 계시다면, 할 말이 있고 못할 말이 있고, 할 일이 있고 못할 일이 있는 것 아닌가? 머리로는 알고 있고 믿는다고 말하지만, 실제가 아닌 것이다.
하나님이 당신에게는 실제인가?
나는 목사의 아들로 목사가 될 사람으로 자라났다. 큰 아들이라고 낳자마자 부모님께서 바치셨기 때문이다. 서원하셨기에 그냥 목사가 되어야 하는 것으로 알고 자랐다. 그렇지만 기쁨도 없이 시키는 대로만 하는 모범생이었을 뿐이다. 그 정도면 믿음 좋은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군목 훈련받다가 고관절이 부러지는 중상을 입고 장애인이 될 거라는 말을 들으며 응급 수술을 받게 되었다. 수원에서 목회하시던 아버지께 연락해서 민간의 제대로 된 병원에서 치료를 받으면 조금 더 괜찮지 않을까 싶은 생각밖에 없었지만 아버지에게 전화해 줄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결국 혼자 수술 준비실에 들어가는데, 그때서야 하나님이 생각나서 큰 소리로 "하나님 하나님 하나님" 3번을 불렀다. 그러나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내가 믿는다고 믿는 하나님에게 아무 응답도 들을 수 없었다. 내게 있어서 하나님은 실제가 아니었던 것이다.
장애인이 되는 것은 아무 문제가 아니었다. '나는 진짜 하나님을 믿는 사람인가?' 하나님도 안 믿는 목사라니... 너무 비참했다.
그것이 나의 회심의 시작이었다.
실제로는 하나님을 믿지 않으면서도 믿는 줄로 알았고, '예수님은 나의 포도나무시고 나는 가지다'라는 것이 내게 실제가 아니었던 것이다.
지금은 한국교회 위기이다. 교인 수가 줄어들고 다음세대가 떠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지금 나온 교인들이 종교생활화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주일이면 교회 나오는 것, 십일조 드리는 것, 교회 봉사하는 것들로 믿음을 겨우 지키고 있는 것이다. '나는 그래도 예수님을 믿어'라며 자기 스스로를 위안 삼는 것이다. 그렇게 겉으로 하는 종교생활은 다른 종교들도 우리보다 더 철저한 종교들이 대개 그렇다. 이단들도 그렇다.
진짜 우리 안에 주님이 살아계셔서 어떤 처지나 형편에도, 평안하고 기쁘고 감사하고 원수도 사랑할 수 있는 이런 역사가 우리에게 있냐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우리 안에 계신데 왜 우리는 예수님을 모신 사람처럼 살지 못할까?
예수님을 모시는 사람으로 살지 못하기 때문에, 많은 성도들이 자기 안에 예수님이 계신다는 것을 확신하지 못한다. 말은 그렇게 들었지만 '예수님이 내 안에 계신데 이렇게 살 수 있겠어?'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있다.
분명히 예수님은 내 안에 계시다. 우리가 예배를 사모하고 참여하는 것은 주님이 하신 것이다. 우리 안에 주님의 역사하심은 확실하다.
그런데 예수님의 사람답게 살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오늘 본문을 보면, 예수님이 우리 안에 계신다고 하기 전에, 우리가 예수님 안에 거하면 예수님이 우리 안에 거하게 된다고 말씀하신다.
우리는 '우리가 예수님 안에 거한다'는 것은 너무 소홀히 생각하고, 오직 '예수님이 내 안에 계시다면 왜 역사 안 해주시는 거야?'라고 답답해하기만 한다.
여러분 우리가 낙심하고 시험 들고 영적으로 메마른 것은 사람을 잘못 만나거나 환경이 어려워서가 아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께서 분명히 말하셨다. 왜 우리가 어렵고 영적으로 꺾어진 삶을 사는가?
원인은 딱 하나다. 우리가 예수님 안에 거하지 않으니까, 예수님을 모시고 사는 사람답게 살지 못하는 것이다.
우리에게 있어서 정말 중요한 문제는 '우리가 예수님 안에 거하는 것'을 반드시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점이 한국 교회 각성의 열쇠이다.
예수님은 이미 우리 안에 계시고 한국교회를 떠나지 않으셨다. 여전히 성령님은 우리 안에 거하고 계시지만, 많은 성도들이 영적으로 무너지고 지치고 메말라있다. 이유는 자신이 주님 안에 거한다는 것이 명확하지 않기 때문이다.
어떻게 하면 주님 안에 거할 수 있을까? - 나는 십자가에서 죽었다. 다 주님께 맡긴다.
간단하다. 주님께 내 모든 것을 다 맡기는 것이다.
기차 안에 있으면 기차에 다 맡기고 자리에 앉아있는 것이다. 기차 안에서 빨리 가려고 뛰어가는 사람이 있을까? 기차 안에 있으면 목적지로 다 실어다 주는 것이다. 비행기도 그냥 자리에 앉아있기만 하면 제주, 일본, 미국으로 데려다주는 것이다.
'예수님 안에 거하라'도 마찬가지다. 내 인생을 모두 예수님께 맡기는 것이다. 내 감정의 싫고 좋은 모든 것을 주님께 이제 다 맡기고, 주님 마음대로 사는 것이다. 내 마음대로가 아니라 주님 마음대로.
사도바울은 그것을 이렇게 말한다.
- 갈 2: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이것이 바로 예수님 안에 거하는 것이다. 요한복음과 갈라디아서는 다른 내용이 아니라, 똑같이 말하고 있는 것이다.
예수님 안에 거하는 사람은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닙니다. 나는 죽었습니다'라는 고백이 명확한 사람이다. '이제는 예수님이 내 생명이시고 나는 왕을 모시고 사는 사람입니다'라는 고백이 되는 것이 '예수님 안에 거하고 예수님이 우리 안에 거하는 삶이고, 나는 죽고 예수님이 내 안에 사는 삶'이다.
안타깝게도 많은 성도들이 예수님과 함께 죽는 것이 어렵다고 말한다. 죽어야 하는 것은 알겠는데, 죽는 것이 너무 어렵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속지 말라. 죽는 게 어려운 게 아니라 안 죽어서 힘든 것이다. 안 죽은 상태에서 주님 말씀대로 살려니까, 용서도 힘들고 사랑도 힘들고 기쁨도 감사도 안되고 능력도 없고 맨날 시험만 들고 사는 것이다.
얼마 전에 어느 목사님이 설교하시는 것을 차 안에서 설교를 듣고 큰 은혜를 받았다.
사무엘하 6장에서 웃사가 여호와의 법궤를 수례로 싣고 가다가 그만 그 수례가 흔들리고 법궤가 땅바닥에 떨어질 상황에서 급히 그 법궤를 붙잡았다가 죽어나간다.
여호와의 법궤가,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그 거룩한 법궤가 땅바닥에, 온갖 동물 배설물에 흙바닥 오물 투성이인 곳에 떨어져 나 뒹굴게 하지 않으려고 그 법궤를 붙잡았는데, 그걸 하나님께서 죽이셨다. 웃사가 뭘 그렇게 잘못했을까?
그 목사님은 이렇게 설명하신다. 그 오물 투성이인 흙바닥보다 '사람이 더 더러운데', 만물보다 더 더럽고 부패한 것이 사람의 마음인데...!
동물 배설물이 많은 흙바닥은 평가할게 안된다. 오히려 깨끗한 것이다. 하나님이 지으신 만물의 일부일 뿐이지만, '사람은' 얼마나 악하고 더러운가. 어떻게 그렇게 더러운 사람이 법궤에 손을 대냐는 의미였다고 하셨다. 웃사가 특별히 죄가 많아서 죽었다기보다는, 우리가 얼마나 죄가 많은 존재인지, 오물 투성이인 바닥이 차라리 깨끗하다는 것을 우리로 하여금 깨우치게 하는 선지자 같은 사람이었다는 말씀이었다.
목사인 나, 거룩한 성직을 맡았다고 하는 나도 여러 번 죽었을 사람이다. 여러분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죽어야 하지만 아직 살아있다. 십자가의 능력, 복음의 능력으로 우리를 죄에서 정결하게 하시고 저주에서 건지시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신 은혜로 우리가 살고 있을 뿐이다.
이 사실을 알고 나면 죽는 게 뭐가 어렵고 두려운가? 이제는 죽고 말고 가 아니다. 이미 우리는 죽은 자이다. 하나님이 정하셨다. 앞으로 죽을 것이 아니라 이미 죽은 자라는 것을, 그 사실을 믿기만 하는 것이다. 그게 바로 예수님 안에 거하는 것이다.
시험이 생기고, 교우들 사이에, 세상의 별의별 핍박과 환란, 어떤 상황에서라도 '나는 이미 죽었습니다. 예수님 안에 거할 뿐입니다'라고 고백할 때, 그다음에 우리 안에 계시는 주님의 역사가 그때부터 일어나기 시작하는 것이다. 진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진짜로 예수님 안에 거하는 삶'이다.
예수님을 계속 바라보라
예수님 안에 거하기 위해서 가장 먼저 내게 깨우쳐주신 것은, 예수님이 마음에 계신 것을 진짜 믿고 항상 주님을 계속 바라보라는 것이다. 예수님이 여러분 안에 계신 것을 믿는가? 믿는다면 아침에 일어났을 때에 처음 예수님의 생각부터 했는가? 누가 여러분 방에서 함께 잤다면 아침에 일어났을 때에 인사도 안 할 수 있는가?
예수님은 여러분 안에 계시다. 눈을 떴을 때에 가장 먼저 의식하는 대상이 예수님이시고, 누구를 만나든 무슨 일을 할 때든 예수님을 의식하고 주님이 나와 함께 계신다는 믿음을 가지려면 계속 주님을 바라보라는 것이다.
제가 2007년 10월에 맹장수술을 시작으로 한 달 동안 병원살이를 했다. 이해할 수 없는 수술들이 겹쳤다. 10월 일정표에는 하루도 빠지지 않고 설교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빡빡한 일정이었지만 병원에 입원해 있어서 한 번도 설교하지 못했다.
하나님이 나를 다루심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간절히 기도하다가 그게 통곡이 되고 저 자신도 이해할 수 없는 방언으로 한참을 울면서 기도했다. 그렇게 기도한 끝자락에 제 마음에 너무나도 선명하게 깨우쳐주셨다.
"너는 설교 못해서 답답해하지만, 진짜 문제는 네가 설교하는 것과 실제로 사는 것 사이의 조금이라도 생기는 틈을 작게 여기는 것이다."
나는 그 말씀이 너무 두렵게 느껴졌다. 나는 말씀을 전하지만 어떻게 100% 그렇게 사느냐? 사람이기에 그럴 수 없지만 말씀은 또 전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사람인데 어떻게 하나님의 말씀이지만 어떻게 100% 하나님 말씀대로 살면서 설교할 수 있는가?라고 생각했다.
대개 목사님도, 성도들도 100% 설교한 그대로 살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렇게 작게 여기는 것들 때문에 많은 목사들도 스캔들, 여러 가지 실족하는 일들을 통해 한국 교회에 악영향을 끼쳤다.
언제나 허다한 증인들이 지켜보고 있다 - 아무도 없을 때란 없다
그렇다면 어떻게 말씀대로 살 수 있을까?
하나님께서 내게 놀라운 눈을 열어주시는 계기가 있었다.
2010년에 천안 유관순 기념 체육관에서 연합집회가 열리는데, 설교부탁을 받아서 말씀 전하러 갔더니 사람들이 체육관에 꽉 찼었다. 그 열기는 대단했다. 찬송 부르고 기도하는데 용광로 갔았다. 그리고 강단에 올라가는데 사람들은 주목하고 카메라 여러 대가 비추고 있어, 그 많은 사람들 앞에 서 있는 것 자체가 너무 부담되었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지켜보고 있는 그 앞에 있다'는 그 느낌을 하나님께서 내게 경험하게 하려고 그 자리에 세우신 것 같았다.
- 히 12:1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하며
- 히 12:2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그런데, 그 상황은 연합 집회 강단 위에 선 나뿐만 아니라,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 모두 다 동일하다.
예수님을 믿고 난 후에는, 그 어떤 사람도 혼자 있는 순간이 없다!
먼저 믿음으로 살다가 간 허다한 믿음의 증인분들이 여러분들을 다 내려다보고 있다. 그것을 안다면 죄지으라고 해도 지을 수 없을 것이다.
만약에 우리가 어려워도 힘들어도 혼자 있어도 하나님을 신실하게 의지하고 주님이 기뻐하는 뜻대로 말하고 행동하며 살아가면 박수소리가 들릴 것이다. 하지만 아무도 안 본다고 엉뚱한 죄, 은밀한 죄, 혈기를 부리고 싸우고, 욕심을 부리고, 세상을 기웃거리고 살면 탄식이 들리는 것이다.
그 소리가 들려야 한다. 육신의 눈과 귀로 보고 듣는 것만이 전부가 아니다. 이 사실을 알고 나면 말씀대로 살지 않을 수 없다. 사람들이 다 지켜보고 있는 앞에서 죄 지을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그런데, 더 중요한 것은 예수님을 바라보자는 것이다.
사람들의 눈은 겉으로만 잘하면 되지만, 우리 안에 예수님이 계시고 내 마음과 생각도 다 알고 계시며, 늘 함께 하시는 예수님을 나도 늘 바라볼 때에 온전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예수 동행일기 - 24시간 주만 바라봅니다
예수 믿는 우리가 어떻게 더 이상 죄에 기웃거리지 않고 유혹 앞에 넘어지지 않고 온전할 수 있는지를 알 수 있었다. 그때 유관순 체육관 집회에서 내가 가장 은혜를 받고 눈이 완전히 열렸다. 그리고 시작한 것이 예수동행일기다. 일기를 써가며 매일 점검하고 살기를 한 달, 일 년, 십 년을 살아보라. 나는 죽고 예수로 사는 것이 되는지 안되는지, 나는 주님 안에 주님이 내 안에 거하시는 것이 실제인지 아닌지 그때 가서 체크해 보라는 것이다.
나는 내 안의 은밀한 죄와 싸우는 것이 너무나도 치열했다. 나는 어려서부터 목사가 될 사람이었고, 이미 목사였지만, 속은 너무나도 더러웠다. 교인들을 속이고 살았다. 생긴 게 착하게 생겨서 우리 교인들은 저를 착한 줄 알았지만, 사람이 착한 것과 착하게 생긴 것은 너무나도 다른 것이다. 사기꾼들이 괜히 사기꾼들이 아니다. 겉은 멀쩡하고 말은 진실하게 해도 속은 진짜 악한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교인들을 평생 속이고만 사는 게 너무나도 두려웠다. 하나님께서 그때 제게 주신 말씀이 '내 안에 거하라'이었다.
내가 죄와의 싸움에서 늘 질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내가 스스로 어떻게든 내면의 죄를 이겨내려고 했기 때문이다. 사람이 의지로 내면의 죄를 이겨낼 수 있다면 예수님이 왜 십자가에 달리셨겠는가? 내 성실과 열심과 자신의 결심으로 해결해보려고 했기 때문이다. 주님께서 '내 안에 거하라 그러면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라는 말씀은 내게 정말 복음이었다. 내 안의 말할 수 없이 추하고 더러운 내면을 주님 앞에 고백했다. "저는 늘 넘어지고 너무나도 큰 실패작이지만 주님 안에 거하라 하시니 그냥 주님 안에 거하고 앉아있겠습니다. 저를 죄에서 넘어지지 않게 하시고 죄에서 승리하게 하실 분은 제가 아니라 주님이십니다. 주님이 제 안에 거하는 것을 분명하게 믿어질 때 저는 죄에서 이길 수 있겠습니다."라고 고백했다.
탕자가 아버지 집에 돌아올 때에 심정이었다. 탕자가 아버지 집에 돌아올 때 그가 한 것은, 그저 아버지께 다 맡긴 것뿐이었다. 새 옷을 입혀주시고 잔치를 채려 준 것, 씻겨준 것, 이것은 다 아버지가 하신 것이었다.
참 놀라운 것은 그때부터 죄에서 이김이 일어나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마음과 생각이 주님 앞에 붙잡히기 시작하니, 상황과 여건에 상관없이 기쁨을 누리게 되고 감사를 알게 되고 용서하게 되고 사랑하게 되고, 죄보다도 주님과의 교제가 더 기쁘고, 죄의 유혹보다 주님이 더 내게 실제가 되시는 것이었다. 너무나도 놀라운 일이었다.
이런 영적 각성이 우리에게 정말 필요하다. 한국 교회에 꼭 필요한 것은, 예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것에 눈을 뜨는 것이다. 이것이 한국교회 전체에서 나타나야 한다.
제4차 로잔 대회 - 한국 개최
내년 2024년 9월 엄청난 일이 한국에서 일어날 예정이다. 전 세계 220개 국가 5000명이 넘는 복음주의권의 지도자들, 목회자, 선교사, 평신도 지도자들이 한국으로 온다.
성경의 절대적 진리를 믿고, 예수 그리스도가 유일한 구주임을 믿고, 선교의 우선과제는 전도 즉, 영혼구원이라는 사실을 붙잡고, 더불어 사회에 대한 책임도 분명하게 지자는 의미로 사회도 변화시키고, 환경 문제도 우리가 책임진다는 분명한 의식을 가지고 있는 지도자들이 한국에 혼다. 영적 폭탄이 터지는 것과 같은 이 엄청난 일이 이제 10개월 후에, 4차 로잔대회가 한국에서 열린다.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때까지, 한 족속 한 민족 한 사람에게라도 더 복음이 전해지고 영혼이 구원되는 역사를 위해, 교회와 성도들이 쓰임 받는 일을 위하여 전략을 짜고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고, 변화되는 환경에 대처하는 지혜를 강구하는 선교대회다. 하나님이 뜻이 분명히 함께 한다고 생각한다. 한국 교회 안에 똑같은 영적 각성이 일어나게 하시려고 4차 로잔대회가 일어나게 하시는 것이다. 이 대회의 주제가 '교회여, 다 함께, 그리스도를 선포하고 나타내자.'인데, 이를 풀어서 설명하자면 '전 세계 모든 교회가 다 함께, 그리스도가 이 땅을 통치하고 있음을 선포하고, 우리 삶을 통하여 예수그리스도를 나타내자.'는 것이다. 이것이 향후 선교의 과제요 목표다.
우리는 마치 결혼식 행사를 주관만 하는 결혼업체 직원들처럼, 결혼식 행사를 모두 진행은 하지만 자기 결혼식은 아닌 그런 행사로만 치를 수는 없다. 우리 일이 되어야 한다. 그래서 한국 교회가 영적으로 각성되도록 1년 전부터 중보기도를 하고 있다. 여러분도 모두 같이 기도해 주시길 바란다.
이제 불과 10개월 남았는데 한국교회에 영적 각성이 일어날 수 있을까? 그동안 열심히 기도했는데도 뚜렷한 영적 각성의 계기가 보이지 않는데 10개월 동안 무슨 일이 일어나겠는가? 이런 생각이 들 수도 있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우리 안에 계신 주님의 인도를 정확히 받기 시작하면 10개월도 너무 긴 기간이다. 열쇠는 우리가 주님의 인도를 정확하게 받느냐는 것이다.
노량진교회 원로목사님이신 림인식 목사님이 어릴 때, 할아버님이 목사님이셨는데, 일제강점기였는데 눈물로 매일 기도하는 기도제목이 두 개 있었는데, 하나는 한국교회가 이 민족의 지도자가 되고 세계 열방에 복음을 전하게 해 주세요, 또 다른 하나는 우리나라가 일제에서 독립하게 해 주세요. 였다. 어린 나이지만 말도 안 되는 기도라고 생각했으나, 태풍이 부는데 촛불을 켜는 것과 같이 이룰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때 한국 교회는 정말 미약할 정도로 작은 공동체였고 한국교회 자체가 존립하기 어려운데 세계 열방에 복음 전하는 것도 말도 안 되고, 조선이 일제에서 독립한다는 것도 현실이 아니라고 생각했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결국 우리나라는 독립했고 세계 2위의 선교대국이 되는 것을 보고 림인식 목사님이 충격을 받았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진짜 살아계시며 하나님이 부어주시는 기도의 제목으로 기도하면 반드시 하나님이 이루신다'는 것을 알게 되셨다고 했다.
참된 부흥 - 예수님이 내 안에 계시다, 진짜로.
우리 안에 분명히 주님이 계시다. 이것이 부흥이다. 더 이상의 바랄 것은 없다.
만약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있다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정말 내 안에 계시다'는 것을 진짜 믿는 것이다. 진짜 부흥은 이 자리에서가 아니라, 끝나고 집으로 돌아갔을 때에도 이렇게 뜨거운 분위기이면 부흥이 일어난 것이다. 예수님은 여러분 안에 계시다. 집회 때만 계신 것이 아니라, 그 예수님을 모시고 집회 끝나고 집에 돌아가서도 주님의 동행이 믿어지면, 또 여러분의 일터에 갔을 때도 어디서든지 예수님이 계신 것이 믿어지면 진짜 영적 각성이 일어난 것이다.
그런데 이 일이 1년 뒤에 가서 일어날 이유가 있을까? 10년 뒤에 가서 이뤄질 이유가 있을까? 주님이 이미 우리 안에 와 계시다. 다니엘기도회 참여하는 성도님들만이라도 주님은 나와 함께 계시고 그분은 나의 왕이시라고 명심하고 주님의 명령 대로 살기 시작하면 한국교회는 뒤집어지기 시작할 것이다.
신학교 다닐 때 한국교회 부흥역사에 대해 도서관에서 리포트를 쓰다가 도서관 바닥에 무릎 꿇고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목사 되기 싫었지만 억지로 신학교 갔는데, "이런 역사가 일어난다면 하나님 저 목회해보겠습니다", 그 초창기에 일어났던 간증들과 놀라운 일들을 읽으면서 "이런 일들이 일어날 수 있다면 목회해보겠습니다" 라며 기도했고, 그것이 내 소원이고 갈망이었다.
그런데 올해 4월에 은퇴했다. 내게 있어서 부흥이 이제는 경험할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부흥의 개념을 하나님께서 많이 바꿔주셨다. 처음에는 기사와 이적이 일어나고 수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이 계신 걸 알고 교회에 몰려드는 것을 부흥이라고 생각했지만, 하나님께서는 기사와 이적이 문제가 아니라 기사와 이적을 행하신 주님이 마음에 계신 것이 항상 믿어지고 의식되는 것이 진짜 부흥이라는 것을 알게 해 주셨다.
그래서 예수 동행운동을 시작했지만 이렇게 끝내는 것이 너무 아쉬웠다. 한 번은 기도하는데 너무 눈물이 났다. 은퇴하고 후임 목사님에게 다 물려드린 후 마음에 드는 허탈감이 있었는데 하나님께서 '이미 부흥은 네 안에 있잖아'라고 하시던 것이다. 너무 놀랐다. 그것을 몰랐다. 그렇게 '생각'은 하면서도 '실제'가 아니었다.
초대교회 성도들이 한국에 오면 다 놀랄 것이다. 예수 믿는 사람들이 많음에 놀랄 것이다. 초대교회에서는 예수 믿으면 그냥 순교해야 하고 쫓겨나야 하던 시절이었기에 예수 믿는 사람 찾기 어려웠는데 지금 이렇게 많다.
모세, 아브라함, 다윗과 같은 믿음의 영웅들의 시대에는 이 지구상에 여호와 하나님을 참 하나님이라고 믿는 사람들은 유대 민족들 밖에 없었지만, 지금은 온 세상 열방에 여호와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다. 천국에서 아브라함과 모세와 다윗은 우리를 보고 부러워할 것이다. 우리가 성령의 시대에 살고 있다고 할 것이다. 우리 안에 엄청난 부흥의 강이 흐르고 있는 것이다.
여러분들만이라도 우리가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은 '예수님을 알고 예수님을 사랑하고 예수님과 동행하기 위해서 태어난 것처럼, 예수님 때문에 기쁘고 만족하고 감사하고 예수님 한분으로 만족하고 주님과만 동행하고 싶고, 예수님과 동행하는 사람 만나면 너무 기쁘고 예수님을 모르는 사람을 만나면 너무 애통해하며, 그렇게 평생 주님과 함께 살려고 한다면 오늘부터라도 이 땅에 영적 대각성이 일어난다고 믿는다.
예수님을 대면하여 만나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모든 무거운 짐 다 벗겨지고 불평불만 다 사라지고, 모든 고난 오히려 감사함으로 받을 것이다. 은밀한 죄도 끝난 것이다. 예수님 만나면 그렇게 된다. 그 예수님이 지금 우리 안에, 여러분 안에 계시다는 것을 진짜 믿자.
"예수님은 우리 안에 계시고, 나는 왕을 모시고 사는 사람이다. 하나님 이제 제가 그렇게 살겠습니다."
내가 이렇게 기도한 적이 있다. "하나님 오늘은 죄에서 이기고, 제 마음을 지키고, 주님께 순종하며 그렇게 살게 도와주세요."
주님이 '그것은 도와줄 문제가 아니라 네가 믿을 문제다.'라고 하셨다. 너무 깜짝 놀랐다. 그동안 계속 '하나님 도와주세요, 죄를 이기고 늘 마음을 지키고 주님이 기뻐하시는 일에 순종하게 도와주세요.'라고 했는데 그것은 믿음의 문제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기도를 바꿨다. "주님 감사합니다. 저의 왕이 되시고 생명이 되시고 저와 동행하여 주시니 너무 감사합니다" 그날은 완전히 다른 날처럼 느껴졌다.
도와달라 말라할 것도 없었다. 이미 주님이 이루신 일이다. 내게 오셨고 왕이 되셨는데 이 일을 내일로, 내년으로 미룰 필요 없다. 이미 우리에게 다 허락된 은혜이니, 오늘 붙잡으시길 바란다.
우리가 기도할 때에는 이제는 정말 '주님을 주목하고 주님을 바라보자'. 이 땅에 거룩한 영적 각성이 일어나고 세계에서 복음주의권 지도자들이 한국에 도착하는 그때, 한국교회는 영적으로 완전히 달라져있게 해 주세요. 그들이 한국교회를 보면서 교회가 다시 살아날 수 있음을 그들 눈으로 생생히 목격할 수 있도록 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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