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를 구하지 말고 해답을 구하라
강사: 김은호 목사 (다니엘 기도회 운영위원장)
오륜교회 설립목사이며, 금년 12월로 예정된 조기 은퇴 후의 제2기 사역으로서 DNA Ministry (다니엘의 영적 DNA를 다음 세대 목회자 및 선교사들과 성도들에게 거룩한 습관으로 심어주는 선교 사역기관)를 준비 중입니다.
성경 본문: 막 11:20~25
Rapport:
할렐루야! 모든 영광을 우리 하나님께 올려드립니다. 옆 사람에게 이렇게 서로 인사합시다. "하나님을 자랑하는 간증의 주인공이 됩시다."
나는 해마다 다니엘 기도회가 다가오면, 하나님께서 받으실 영광과 하나님께서 행하실 역사에 대한 기대감으로 인해 영적 흥분을 느끼게 된다.
"다니엘 기도회의 영적 DNA는 연합이다."
다니엘 기도회는 오륜교회의 행사가 아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이 '교단과 교파의 벽을 뛰어넘고, 지역과 세대의 벽을 뛰어넘어' 성도가 연합하여 함께 찬양하고 같은 말씀을 듣고 같은 제목을 놓고 기도하는 교회의 연합 모임이다. '연합'이 중요하다.
"기도 때문에 시험 든 사람들"
대개는 기도하지 않는 것이 문제이지만, 간혹 오히려 기도하다가 시험에 드는 사람들이 있다. 성실한 신앙생활을 하며 뜨겁게 기도를 했지만 하나님께 그 기도에 대한 응답을 받지 못했다고 생각하여 시험에 든 사람들이다.
그런데, 기도 응답에는 다음과 같은 4가지가 있음을 알아야 한다. (기도 응답을 받고도 받지 못했다고 낙심하지 않기를 바란다.)
기도의 응답 4가지
1. 즉시 응답
2. 기다림
3. 다름으로 응답하심
4. 응답하지 않으심
첫째는 기도한 즉시 응답받는 경우다.
기도하면 떠오르는 대표적인 사람인 죠지 밀러는 고아들을 보살피는 동안에 기도 즉시 응답받은 경우가 많았기에 다음과 같이 고백했다.
" 나는 54년 9개월 동안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신자로 살면서 기도한 그 시간 혹은 기도한 그날에 응답받은 적이 3천 번이 넘는다” (죠지 뮐러)
둘째는 바로 응답하시지 않고 기다리게 하시는 경우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도 자녀를 주시고 자손을 하늘의 별과 같이 주시겠다는 약속을 받은 후 아들 이삭을 얻기까지는 매우 오랜 세월을 기다려야 했다.
셋째는 우리가 기도한 것과는 다른 결과로 응답하시는 경우다. 그리고 우리는 시간이 지난 후에 그 응답이 우리에게 최적의 것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넷째는 응답하지 않거나 거절하시는 경우다. 기도하는 우리 자신의 영혼에 유익하지 않거나 하나님의 뜻에 어긋나는 기도에 대해서는 하나님께서 응답하지 않으신다.
사도 바울이 자신을 괴롭히는 가시에 대해 기도했으나 하나님은 '내 은혜가 네게 족하다'라고 하시며 거절하셨다. 가나안에 들어갈 수 있기를 간구하는 모세에게 하나님은 '그만해도 족하니 이 일로 다시 내게 말하지 말라 (신 3:26)'고 분명하게 거절하셨다. 어린 아들이 구한다고 위험한 면도칼을 그 손에 쥐어주는 부모는 없지 않겠는가?
이 모든 경우가 기도의 응답임을 깨닫지 못하고 기도하다가 실족한 사람들은, 자기 기도 제목과 응답만 생각할 것이 아니라 자기가 어떻게 기도하고 있는지를 살피고 점검해야 한다.
그래서 오늘 우리가 어떻게 기도해야 하는지 살펴보려 한다.
이렇게 기도하라
1. 응답의 확신을 가지고 믿음으로 기도하라
- 막 11:24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
- 약 1:6~7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그러나, 이 성경 말씀들을 잘못 이해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자기 확신'을 강하게 해야 한다며 'I can do!'를 외치는 사람도 있고, 기도 응답이 지연될 때 자신의 '정성 부족' '믿음 부족' 때문이라며 괴로워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기도는 하나님을 향한 신뢰이며, 자신의 부족에 대한 고백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필요를 구하고, 선하신 하나님의 시선으로 자신을 바라보며 맞추어 나가는 것입니다. - 블로거 개인 생각)
기도는 '주문'이 아니다
기도는 '확률'이 아니다
"기도는 관계다"
우리는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 그분의 자녀로서 기도하는 것이다. 아버지와 자녀의 '관계'이다.
(기도는 내가 원하는 소원을 무조건 들어주는 요술램프의 지니를 소환하는 '주문'이 아닙니다. 기도하면 그래도 내 소원이 이루어질 '확률'이 조금이나마 높아질 것이라고 기대하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기도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아버지인 하나님께 그 관계를 의지하여' 올려드리는 내 연약함의 고백이고, 전능하신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예수님의 이름으로 고백하는 '관계이며 교제'입니다. - 블로거 개인 생각)
하나님을 움직이는 것은 우리의 필요나 정성이 아니라 우리의 '믿음'이다.
"간절한 기도가 하나님을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믿음이 하나님의 보좌를 움직인다."
하나님께 떼를 써서 내 열심히 내가 원하는 것을 얻어내는 것이 기도가 아니다.
하나님의 선하심을 '믿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순종하겠다는 결단으로 우리의 필요를 아뢰는 것이 기도다.
"누가 응답을 확신하며 기도하는가?"
첫째, '하나님을 믿는 자'가 응답을 확신하며 기도한다.
마가복음 11장에는 예수님께서 '열매 맺지 못한 무화과'를 저주하신 이야기가 나온다.
예수님이 저주하신 그 무화과가 말라버린 것을 보았을 때, 베드로는 "보소서 저주하신 무화과나무가 말랐나이다 (막 11:21하)"라며 그 기이한 사건에 주목하였지만, 예수님은 그러한 문맥에 맞지 않게 "하나님을 믿으라!(막 11:22하)"라고 대답하신다. 당시 유대 백성들이 신앙의 열매를 맺지 못한 것은 하나님을 온전히 믿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을 예수님은 지적하신 것이다.
그리고 곧 이어서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이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져지라 하며 그 말하는 것이 이루어질 줄 믿고 마음에 의심하지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 (막 11:23~24)"라며 '믿음과 기도'에 대해 말씀하신다.
기도는 기도의 내용보다 '기도의 대상'이 훨씬 더 중요하다. 기도의 대상에 따라 내용과 응답의 확신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우리 기도의 대상이신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창조주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다. 우리를 사랑하셔서 십자가에 달리셨고 부활하신 분이시다. 하나님의 선하심과 우리를 향한 사랑을 신뢰하며 기도하는 사람이 응답을 확신하며 기도할 수 있다.
둘째, '그 말씀이 있는 자'가 응답을 확신하며 기도한다.
다윗은 시편에서 기도에 대해 이야기하며 '그 말씀'을 찬송하며 기도했다고 한다.
- 내가 두려워하는 날에는 '내가 주를 의지하리이다' (시 56:3)
- 내가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 말씀'을 찬송하올지라 내가 하나님을 의지하였은즉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니 혈육을 가진 사람이 내게 어찌하리이까... 내가 하나님을 의지하여 '그의 말씀'을 찬송하며 여호와를 의지하여 '그의 말씀'을 찬송하리이다 (시 56:4,10)
우리가 기도할 때, 하나님이 내게 주시는 '그 말씀'이 있어야 한다.
리빙스턴에게는 늘 붙들었던 말씀이 2개 있었다.
- "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요 14:18)
- "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마 28:20)
죠지 뮐러도 "하나님은 고아의 아버지시며 (시 68:5)"말씀을 붙들고 고아를 위한 사역에 뛰어들었다고 한다.
사무엘의 어머니 한나도 "평안히 가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네가 기도하여 구한 것을 허락하시기를 원하노라 (삼상 1:17)"라는 엘리 제사장의 말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듣고 믿었다.
이번 기도회 동안에 매일매일 강사를 통해 말씀하시는 성령의 메시지를 우리의 말씀으로 받고 삶 속에서 나아가 선포하고 간증하자.
2. 용서하며 기도하라
기도와 용서는 동전의 양면과 같다. 아무리 기도해도 용서하지 못한 채 기도한다면 우리의 기도가 거기에 묶여 응답을 받지 못할 수 있다.
-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 (마 5:24)
예배가 먼저인가 용서가 먼저인가? 용서가 먼저다. 용서하지 못하면 그 일이 내 영혼을 병들게 하고 나를 하나님과 멀어지게 한다.
신약성경에서 예수님은 기도와 용서를 연결하여 말씀하신 적이 많은데, 마태복음 18장에서는 특히 기도의 능력과 용서를 이어서 말씀하셨다.
-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무엇이든지 너희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마 18:18)
- 그때에 베드로가 나아와 이르되 주여 형제가 내게 죄를 범하면 몇 번이나 용서하여 주리이까 일곱 번까지 하오리이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게 이르노니 일곱 번뿐 아니라 일곱 번을 일흔 번까지라도 할지니라 (마 18:21~22)
18절에서 '너희'는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이다. 즉 하나님은 교회인 우리에게 묶고 푸는 권세를 주셨다고 말씀하신 직후, 곧이어 '용서'에 대해 말씀하신다. 몇 번이나 용서해야 하느냐는 베드로의 질문에 예수님은 일흔 번씩 일곱 번, 즉 한계가 없다고 하신다. 달리 보면 '우리를 향한 예수님의 용서에는' 한계가 없다고 말씀하신 것으로도 생각된다.
왜 예수님은 기도에 관하여 말씀하신 다음 곧이어 용서에 관하여 말씀하셨는가? 기도의 응답과 용서는 불가분의 관계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입으로 용서한다고 하면서도 마음으로는 용서가 안될 때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라고 묻는 성도들이 있다.
성도라도 용서하고 싶은 '마음'이 먼저 드는 경우는 별로 없다. 용서는 죄성이 남아있는 우리의 본성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이 용서를 명하셨기 때문에 그 말씀에 순종하여 먼저 용서를 하는 것이다. 먼저 용서하면 나중에는 성령께서 진실로 용서하고 싶은 마음을 주신다.
왜냐하면, 용서는 타락한 인간의 본능적 성품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나님 아버지의 성품이기에, 하나님을 받아들이고 경험한 사람만이 용서를 하게 된다.
- 누가 누구에게 불만이 있거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 같이 너희도 그리하고' (골 3:13)
최고의 간증과 능력은 '용서'이다. 용서할 때 주님을 닮아가게 되며 하나님이 새로운 인생을 허락하신다. 요셉도 자신을 종으로 팔아넘긴 형들을 용서했기에 그 이후 더욱 풍성하고 새로운 삶을 경험했던 것이다.
3. 문제를 구하지 말고 해답을 구하라
- '큰 산아 네가 무엇이냐' 네가 '스룹바벨 앞에서 평지가 되리라' 그가 머릿돌을 내놓을 때에 무리가 외치기를 '은총, 은총이 그에게 있을지어다' 하리라 하셨고 (슥 4:7)
이 구절은 70년간의 포로 생활 후에 바벨론에서 돌아와 성전을 재건하려 했지만 결국은 중단되어 16년이 지난 그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주신 말씀이다.
여기에서 '큰 산'은 '성전재건을 방해하는 모든 대적과 장애물, 성전을 건축할 수 없는 모든 환경'을 뜻하지만, 오늘 우리에게 적용한다면 '내 앞에 있는 큰 산'은 '내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을 의미한다. 즉, 내 인생의 앞길을 가로막고 있는 가시 같은 어떤 사람이 큰 산이 될 수도 있고, 해결할 수 없는 경제적 어려움이나 고칠 수 없는 질병, 자녀나 배우자 문제 등 모든 문제들이 큰 산이 될 수 있다.
이에 대해 "큰 산아 네가 무엇이냐?"라고 외치고 도전하라고 하나님이 말씀하신다.
우리의 이성과 경험으로 성령의 역사를 제한하지 말자.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믿자. 큰 산을 만났을 때 우리의 죄성이 남아 있는 본능을 따라 도피하려 하지 말고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도전하자.
다윗도 골리앗을 향해 도전했다. 갈렙도 85세의 노인으로서 '이 산지를 내게 주소서'라며 도전했다.
당신의 문제가 크더라도 낙심하지 말라. 문제가 크다는 것은 영적으로 누리게 될 희열이 클 것을 얘기해 주는 것일 뿐이다.
믿음으로 외치라
"문제를 외치지 말고 해답을 외치라"
'큰 산아 네가 무엇이냐'(문제)만 외치지 말고 '스룹바벨 앞에서 평지가 되리라'(해답)라고 외쳐야 한다.
큰 산이 '평지가 되리라' 성령께서 역사하시면 불가능한 일들이 가능하게 될 것이다. 어떤 고난도 이겨내게 된다.
문제를 외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다. 그러나, 해답을 외치는 것은 '믿음이 있는 사람만'이 할 수 있다.
여러분도 자기 이름과 위해서 기도하는 사람의 이름과 자기 교회명을 아래에 넣어 믿음으로 해답을 외치며 기도하자, 선포하자.
큰 산아, OOO 앞에서 평지가 되리라
큰 산아 OOO 교회 앞에서 평지가 되리라
역전의 은혜가 임했다
- 그가 머릿돌을 내놓을 때에 무리가 외치기를 '은총, 은총이 그에게 있을지어다' (슥 4:7하)
머릿돌을 내놓았다는 것은 주축이 되는 첫 돌을 놓았다는 것이며, 하나님의 역사를 믿고 시작하면 완성될 것이라는 의미다.
믿음으로 선포한 대로, 믿음으로 성전 재개를 한 후 약 4년 만에 성전이 준공되었다. 불가능해 보였던 큰 산이 평지가 된 것이다.
유프라테스 강 서편 총독이 예루살렘 성전 건축을 방해하기 위해 페르시아 왕에게 상소를 올렸으나, 하나님의 역사를 통해 고레스 왕의 옛 칙령을 본 다리오 왕은 오히려 성전 공사를 다시 시작하도록 하였고, 상소를 올린 서편 총독으로 하여금 성전 건축에 필요한 모든 경비와 물품을 지원하도록 명령을 내렸다. 하나님의 역전의 은혜가 임한 것이다.
우리가 자신의 문제만을 위해 기도하면 마귀가 틈을 탈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 수도 있다.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붙들고 해답을 구하는 사람이 믿음의 사람이다.
Q: 왜 기도하다가 오히려 시험에 든 사람들이 있습니까?
A: 자신의 기도가 1) 바로 응답되지 않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2) 믿음으로 기다리게 하시는 것도, 3) 또 다른 결과로 인도하시는 것도, 4) 거절도 우리 기도에 귀를 기울이시며 가장 좋은 것으로 주시는 하나님의 응답이신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기도하는 사람은 자기의 기도 제목이 응답되었느냐에만 집중할 것이 아니라 자신이 어떻게 기도하고 있는지 점검하고 돌아볼 필요도 있습니다.
Q: 그러면 어떻게 기도해야 합니까?
A: 가장 먼저 '응답의 확신'을 가지고 기도해야 합니다.
Q: 어떻게 또는 누가 자기 기도의 응답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기도할 수 있습니까?
A: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응답을 확신하며 기도할 수 있습니다.
이 확신은 기도 제목의 달성을 향한 맹목적 자기 확신이 아니라 기도의 대상이신 전능하신 하나님을 알고 믿고 신뢰하기에 가질 수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다음으로는 '그 말씀이 있는 사람'이 응답을 확신하며 기도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언제나 하나님의 (성경) 말씀에 의지하여 기도하며 자신의 삶을 개척해 나갔습니다.
Q: '용서하며 기도하라'라고 하셨는데, 용서가 왜 기도의 전제 조건처럼 강조되나요?
A: 기도와 용서는 불가분의 관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용서할 마음이 생기지 않더라도, 하나님께 받은 죄 사함과 구원의 은혜를 생각하여 하나님의 성품을 따라서 용서하면, 성령께서 진실로 용서하는 마음도 허락하실 것입니다.
Q: '문제를 구하지 말고 해답을 구하라'는 어떤 의미입니까?
A: 스가랴서 4장 7절 말씀에 기반한 권유입니다.
우리의 이성과 경험으로 성령의 역사를 제한하면 안 됩니다.
우리 삶에는 우리 능력으로는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여러 문제들이 있는데 이것이 '큰 산'입니다. 이러한 큰 산을 만났을 때 회피하지 말고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골리앗을 향해 담대히 나아간 소년 다윗처럼, '믿음으로 외치며' 도전해야 합니다. 문제를 하나님께 아뢰는 것은 대개 잘할 수 있지만 해담을 외치는 것은 '믿음이 있는 사람'만 할 수 있습니다. 스가랴서의 이 말씀에 근거하여, 자신의 이름을 대입하여 자신의 큰 산이 평지가 될 것을 믿고 외쳐야 합니다.
Q: 문제가 아닌 해답을 구하며 믿음으로 외칠 때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A: 역전의 은혜가 그들에게 임했습니다. 그들의 기도처럼 '은총, 은총이 있었습니다.' 큰 산이 평지가 되었습니다.
그들의 성전 재건을 방해하는 상소를 올렸던 유프라테스 강 서편 총독에게 페르시아 황제가 적극적인 지원과 부담을 명령하여, 16년간 중지되었던 공사가 탄력을 받아 불과 4년 만에 성전을 재건하게 되었습니다.
기도할 때, 문제에만 매달리지 말고,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붙들고 해답을 구하는 사람이 믿음의 사람입니다.
정말 은혜받은 찬양이었습니다.
https://youtu.be/Fe9n9DE5C2U?si=zmshP_2fAtVk0glV
에필로그의 찬양 '말씀의 힘으로(With 에필로그)'는 정식 음원으로 발매되었습니다. 그 가사 입니다.
내가 자랑했던 것이 나의 부끄럼 되고
나의 행복을 주던 것이 불행의 씨앗 되고
내가 자신했던 것이 내게 상처를 주고
내가 받은 모든 것이 내가 했다고 믿네
(이 줄의 가사는 제게 감동도 주었지만 분명한 해석은 어려웠습니다. 제가 이해하고 은혜받은 해석은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로 선물로 받은 것들인데 겸손하고 감사하지 못하고 내가 이룬 것이라고 생각했던 과거를 회개하는 내용'으로 이해하는 것이었습니다. 내가 이룬 것이라고 자랑하고 행복을 느끼고 자신에 넘쳤던 일들이 결국은 부끄럼이 되고 불행의 씨앗이 되었으며 상처를 주기도 했지만, 이제는 그로 인해 하나님 앞에서 오직 말씀만 의지하여 주님만을 찬양하며 살아간다는 내용으로 해석합니다.)
말씀의 힘으로 하루를 살아갑니다
말씀의 힘으로 간절히 기다립니다
다시 오실 주님 온 맘 다해 찬양해
진리의 하나님을 찬양해
주님 말씀에 내가 순종합니다
주님 나라 영원한 생명 주신 주님
어떤 말로 표현할 수가 없네 오직 말씀만
말씀의 힘으로 하루를 살아갑니다
말씀의 힘으로 간절히 기다립니다
다시 오실 주님 온 맘 다해 찬양해
진리의 하나님을 찬양해
관련 김은호 목사님의 이전 설교
https://governance.tistory.com/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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