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본문 : 이사야 40:15
15 보라 그에게는 열방이 통의 한 방울 물 같고 저울의 작은 티끌 같으며 섬들은 떠오르는 먼지 같으리니
이요셉 작가
- 백석대학교 교수
- 럽앤포토 대표
- 다큐멘터리 작가
하나님 영광을 감추지 않기 위해 말할 용기를 내게 되었습니다.
나는 낮을 많이 가려서 사람들 앞에 서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데, 어느 날 '내가 사람들에게 말을 하지 않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이루신 많은 일들이 드러나지 않는다'는 마음의 도전을 받고 많이 울며 회개했는데, 그 후 말을 할 용기를 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오늘 나는 이러한 용기 위에서, 대단하지 않고 평범한 이야기를 나누려 합니다.
한 20년 전쯤 어느 방송 토크 프로그램에 나갔습니다. 그런데 방송에 나가기 전 방송작가들과 함께 무슨 이야기를 할지 미리 사전 인터뷰를 했습니다. 본 방송을 하는데, 제가 방송작가와 하려고 했던 이야기를 하나도 하지 않은 거예요. 그래서 녹화가 끝나고, 방송작가가 달려와 ‘작가님 왜 이러십니까?’ 하는 겁니다. 제가 왜 이야기하지 않았느냐면, ‘이 이야기를 하면 내 자랑이 되지 않을까? 이 얘기를 하면 내 의가 되지 않을까?’ 해서 이야기하지 않았습니다.
며칠 뒤 네팔에 촬영하러 가는 그 비행기 안에서 하나님이 저한테 이렇게 말씀하시는 거예요. “너의 자랑이 될까 봐, 너의 의가 될까 봐 말하지 않은 것들 때문에 내가 너와 보내는 수많은 시간들이 가려진다.” 그래서 비행기 안에서 정말 많이 울었던 것 같아요. 울면서, “하나님, 내 기질은 앞에 서는 게 너무 두렵습니다. 그렇지만 내가 서야 할 때, 이야기해야 할 때 내가 이야기할게요.” 그런 순종들이 이어져서 또 이 자리에 서게 되는 것 같습니다. 저는 이 자리에 서서 대단하고 멋진 어떤 이야기가 아니라, 그냥 평범한 이야기들을 할 것 같습니다.
두려움을 몰아내는 방법
우리 모두는 삶 속에서 여러 두려움을 가지고 있는데, 그것을 이겨내고 어떻게 믿음으로 살아갈지를 오늘 나누고 싶습니다.
이신론(理神論)은 하나님이 세상을 만드셨지만 그 후로는 세상이 태엽처럼 돌아가듯이 원리에 의해 돌아간다는 생각입니다. 그러나 정말 그럴까요? 하나님이 세상을 정말 그냥 버려두신 것일까요?
세상은 하나님과 별개로 돌아간다고 생각하니 두려움이 찾아왔습니다.
저는 예수님을 좋아했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중학교 때도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셨을까?’를 생각하면서 길을 가다가도 ‘예수님이라면 이렇게 쓰레기들을 주었겠지?’ 하면서 쓰레기를 줍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아무리 쓰레기를 주어도 길의 쓰레기는 사라지지 않는 거예요. 저 앞에서 또 누군가는 버리고 있고, 그러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내가 이렇게 믿음으로 반응한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내가 살아가는 데 있어서 내가 아무리 믿음으로 반응하려고 해도 내가 노력한 만큼만 결과가 나오는 게 세상이잖아요. 예수님은 겨자씨만 한 믿음만 있다면 이 산을 들리어 저 바다에 던져질 거라고 이야기했지만, 겨자씨만 한 믿음을 아무리 가져도 시험 성적은 내가 공부한 만큼만 나오죠. 그래서 하나님은 계시지만, 또 하나님을 사랑하지만, 세상은 내가 살아가야 하는 곳이라고 생각을 한 것입니다.
신학적인 용어로는 그것을 ‘이신론’이라고 하는데요, 하나님은 세상을 만드셨지만, 세상은 하나님과 상관없이 그냥 태엽 돌아가듯이 그냥 돌아가는 것이라는 생각을 하니까 저는 두려운 거예요. ‘어떻게 살아가야 하지? 하나님이 내 인생을 도와주지 않는다면, 살피지 않는다면, 나는 내 힘으로 살아가야 하는데, 어떻게 살아가야 하지?’ 그러다가 선생님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선생님이 되고 싶은 어떤 대단한 사명감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 선생님이 되면 안정적이고 또 보람도 있고 방학도 있어서 너무 좋겠다는 생각이었습니다. 신기하게도 선생님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한 순간 더 이상 두렵지가 않은 거예요.
우리가 가지고 있는 많은 두려움들은 우리가 기도한다고 사라지는 게 아닙니다. 우리가 가진 여러 가지 두려움은 찬양을 한다고 없어지는 것도 아니에요. 두려움은 그것보다 큰 것으로 밀어내는 개념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제가 돈은 많지 않지만, 여러분들에게 다 1억 원씩 나눠드린다고 생각해 보세요. 그러면 그 돈만큼 여러분들의 두려움을 살 수가 있어요. 대출금이라든지, 진로에 대한 부분이라든지 여러 가지 두려움들을 그 돈만큼은 살 수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돈은 얼마의 재화를 살 수 있는 권위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보다 차라리 돈 10만 원이 더 실제적일 때가 있지 않나요? ‘어떻게 살아가야 하지? 하는 두려움’은 ‘선생님이 되면 되지? 라는 생각’으로 밀어낸 거죠. 그래서 저의 학창 시절은 별로 스트레스가 없었어요. 선생님이 되면 되니까요.
두려움을 없애는 방법은 두려움보다 더 큰 것으로 밀어내는 것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그 더 큰 것은 바로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삶의 실패와 하나님의 인도하심
나는 학생 때부터 선생님이 되려 했으나, 수능에서 터무니없는 실수를 해 원하는 대학에 가지 못했습니다. 여러 해 후에 다시 공부해 마침내 교육대학교에 합격했지만, 이번에는 신체검사에서 색약이 발견되어 결국 선생님이 되지 못했습니다. 계속되는 실패 속에서 나는 내 삶을 어떻게 살아갈지에 대한 두려움이 계속 있었습니다. 그 속에서도 예수님을 점점 더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그 두려움은 제게서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첫 번째 수능 시험을 쳤는데, 외국어 영역 5번 문제부터 끝번 문제까지 답안지를 다 밀려 쓴 거예요. 그래서 제가 원했던 선생님이 되지 못했고, 원하지 않았던 대학과 원하지 않았던 학과를 전공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긴 여행을 갔다 왔습니다. 이대로는 평생 후회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남은 기간을 고시원에 들어가 공부를 해서 교육대학교에 시험을 쳤습니다. 음악, 미술, 체육도 가르치기 때문에 교육대학교 면접에서는 음감검사도 하고, 신체검사도 하는데, 신체검사 중 제가 색약 색맹 검사에서 색약으로 걸린 겁니다. 저는 원래부터 색약이어서 숫자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나중에 집에 돌아오니 어머니께서 “잘 좀 보지 그랬니?” 하셨습니다. 그래서 선생님이 되지 못했고, 다른 원하던 대학과 전공을 하면서, 군대에서도 여러 자격증을 공부했습니다.
군대에서 돌아와서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두려움이 있었지만, 시간이 지나갈수록 저는 예수님을 점점 더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점점 더 사랑하게 되었지만, ‘어떻게 살아가야 하지?’에 대한 두려움은 어떻게 할 수가 없는 거예요. 한 예로 제가 고등학교 때 학원에 갔거든요. 학원에 가니까 신입생 환영회라고 노래를 시켰는데, 그때 제가 불렀던 노래가 이성균의 ‘골목길’이라는 노래입니다. 노래 가사가 이런 가사예요. ‘한 걸음 두 걸음 골목길 걸을 때, 우리 주님 네온 십자가’ 신입생 왔다고 노래시켰더니, 막 십자가 나오고, 피 나오고, 보혈 나오고 해서 싫어했지만, 저는 그런 게 전혀 두렵지 않았어요. 왜냐하면 예수님을 사랑했었으니까요. 하지만 예수님을 사랑했음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살아가야 하지?’에 대한 두려움을 어떻게 할 수가 없는 거예요.
제가 오늘 "하나님이 제게 이렇게 말씀하셨어요"라고 표현할 때가 있는데, 이는 육성으로 들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마음이 부어지면 하나님이 내게 말씀하셨다고 표현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말씀드리는 표현입니다.
어느 날 하나님께서 내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출애굽 말씀을 보면, 가나안을 다녀온 열두 명의 정탐꾼의 보고가 갈렸습니다. 부정적인 보고를 한 열 명이 본 것은 모두 사실이었습니다. 하지만 여호수아와 갈렙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면 그들은 우리의 밥이다"라고 보고했습니다. 열 명이 본 사실을 긍정하면서도 그 해석과 태도는 판이하게 달랐던 것입니다.
우리네 일상 속의 어떤 상황이나 장소에 우리가 있든 진짜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이 시간과 이 장소를 어떻게 바라보시는가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과 우리의 일상
나는 하나님이 크신 분이라면 그 하나님을 내 일상 속에서 만나고 싶다고 기도했습니다.
만일 하나님을 교회나 예배 중에만 만나고 일상 속에서는 만나지 못한다면, 그런 하나님은 내게 너무 무능력하게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내 아버지이기에 그 관계 속에서 내 기도를 들어주시겠지만, 만일 그 관계적 요소를 제외하면 하나님이 내 기도를 굳이 들어주셔야 할 어떤 이유가 있을까요?
만일 하나님이 내 기도를 들어주신다면, 그 이유는 뭘까요? 물론 우리가 그분의 자녀이기 때문에 들어주시겠죠.
이런 관계적인 이유들 다 빼고, 내 기도를 하나님이 들어주셔야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하나님의 약속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약속을 반드시 지키시는 분입니다.
그렇다면 우리 일상 속에서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방법은 하나님의 약속을 내 일상 속에다 올려놓으면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하나님이 일상 속에서 자주 만나주시게 됩니다.
창세기 15장 17-18절에 보면, 고대 근동에서는 어떤 두 사람이 쪼갠 고기 사이로 지나가는 것은 목숨을 걸고 약속을 지키겠다는 의미의 의식이었다고 합니다. 이 성경 구절에서 하나님이 쪼갠 고기 사이로 지나가신 것은 하나님의 약속을 반드시 이루리라는 맹세이었습니다. 나는 '하나님의 약속 위에 우리 일상을 올려놓으면' 일상 속에서도 하나님을 만날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그것은 믿음이 좋은 다른 누군가의 이야기라고만 생각했습니다.
기도와 순종의 과정 - 일상 속에서
기도 중 하나님이 내게 말씀하실 것 같은 순간이 되면, 나는 기도를 멈추곤 했습니다. 내가 도저히 할 수 없을 것 같은 일을 지시하실까 두려웠기 때문입니다. ‘아직 아니에요. 제가 좀 더 준비된 다음에요...'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것은 나는 하나님이 감당할 수 있는 능력과 마음을 주신다는 것을 알지 못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용서하라'는 명령이 성경에 있습니다.
"용서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지내는 것이 아니고, 용서를 선포하는 것도 아니다. 지금의 복잡한 마음을 하나님께 올려드리는 것이 용서의 시작이다."
이는 남학생에게 괴롭힘을 당해 속상해하는 제 딸아이를 달래며 한 말이었습니다.
우리는 자주 "이렇게 하면 하나님이 기뻐하실 거야"라고 생각하지만, 그게 항상 옳지는 않습니다.
저는 이사야 66장 1-2절을 보며 "하나님 앞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 있을까?"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 우리의 일상과 마음을 올려드리면, 하나님은 우리를 만나 주십니다.
여러분들은 마음이 무너지는 시간들이 있지 않으세요? 저는 종종 있거든요. 버스를 타고 가다가도 왈칵 눈물이 쏟아지는 시간들도 있어요. 그런데 손가락 하나도 움직일 수 없을 것 같을 때, 저는 그럴 때마다 ‘하나님, 제가 하나님께 집 지어드릴 수는 없지만, 심령이 가난한 이 마음은 하나님께 올려드릴 수 있을 것 같아요.’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의 일상에 올려놓는 것은 너무 멀리 있는 무언가가 아니라, 우리의 수많은 일상 속에서 하나님을 만나는 장면들인 것입니다. 그렇게 우리의 마음들을, 우리의 발걸음들을, 우리의 일상들을 올려놓을 때, 하나님은 끊임없이 우리를 만나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사역
나는 여러 핸디캡을 가지고 있었지만 결국 그것으로 사진작가가 되었습니다. 나는 거리와 풍경 속에서 예수님을 만나려 노력했습니다.
두한이라는 아이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는 13년간 노숙과 구걸을 하며 살았던 사람입니다. 잠실역에서 자주 잠을 잤던 그는, 내가 신림역 고시원에서 머물 수 있도록 돕게 되면서 노숙 생활을 청산하고 지금까지 잘 살고 있습니다.
여러 해가 지난 후 갑자기 하나님은 그 일을 떠올리게 하시며 "요셉아, 고맙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작은 자를 섬기라는 말씀을 내 일상 속에 두었더니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저는 선생님이 되지 못해서 사진작가가 되었습니다. 색약 핸디캡을 가진 눈으로 사진작가가 되었다는 게 참 역설적인 것 같습니다. 저는 예수님을 점점 더 사랑하게 되었구요.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하시는 거예요. 마태복음 25장 40절에 ‘가장 작은 자에게 한 것이 곧 나에게 한 것이다.’ 정말로 예수님을 만나고 싶은데,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하신 겁니다. 하나님 나라의 어떤 계산법과 우리는 좀 다른 것 같아요. 실제로 살인을 해야 살인한 자인데, ‘형제를 미워하는 자들마다 살인한 자다.’라고 말씀하시는 것처럼, 마찬가지로 가장 작은 누군가에게 한 것이 곧 나한테 한 것과 똑같이 생각하실 거라고 하십니다. 그래서 저는 거리에서 예수님을 만나려고 애썼어요. 집 앞에 있는 노숙인들하고 같이 빵을 나누고 음료를 나누고 인생을 이야기하기도 했습니다. 너무 추운 어느 날 길을 걸어가다 신림역에서 허리가 기역 자로 굽은 한 할머니를 만났습니다. 그래서 제가 따뜻한 음료를 가져다 드리면서 “할머니, 많이 추우시죠? 할머니는 누구랑 사세요?”라고 했는데 할머니가 “저는 하나님과 살아요.”라고 얘기하는 거예요. 사람들이 거들떠보지도 않는 사람, 그 한 사람 한 사람 속의 이런 말들이 너무나 나를 놀랍게 하는 거예요. 그래서 어떤 때는 시각장애인 목사님이 다니는 교회에 다니기도 하고, 거기서 여름에 홍천 수련회에 가기도 하면서 많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중에 ‘두환’이라는 친구가 있어요. 두환이는 13년 동안 노숙을 하며 구걸을 했습니다. 두환이가 저를 되게 많이 따랐어요. 항상 손을 잡고 다니기도 했었는데, 이 아이는 항상 잠실역에서 잠을 잤었거든요. 여름에는 그나마 괜찮은데, 겨울은 춥잖아요. 그래서 겨울을 보낼 곳이 없을까 생각하며 저희 집에서 몇 번 재워보기도 했지만, 이 아이가 잘 만한 공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찾아다녔는데, 가는 곳마다 문전박대를 당했어요. 그래서 막 보도블록에 앉아서 울기도 하고요. 두환이는 저한테 “형, 미안해” 그러면 “야, 너가 미안할 게 뭐 있냐?” 이런 얘기들도 했습니다. 그러다 서울대입구역 앞의 한 고시원에서 두환이를 받아줬어요. 그 이후로 두환이가 노숙을 그만두게 되었어요. 그래서 지금까지도 잘살고 있습니다. 아마 이 영상도 보게 될 것 같은데, 여러 에피소드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한참의 시간이 지났어요. 그때 일들은 다 잊고 지냈었는데, 어느 날 하나님이 그때 일을 생각나게 하시는 거예요. “요셉아, 참 고맙다!”라고 하셨어요. 저는 할 말을 잃었습니다. 왜냐하면 내가 주목하는 것들, 내가 하나님 앞에서 대단하다고 생각했었던 수많은 장면들이 있었겠죠? 그런데 하나님은 그것을 말씀하시는 것이 아니라, 나는 대단하다고 생각하지도 않고 찢었던 한 장면을 들어 말씀하시는 거예요. 수많은 우리의 일상 속에서 하나님은 우리 가운데 그렇게 말씀하신다는 것입니다. 말씀 위에 우리의 일상을 올려놓으면, 하나님이 관념적으로 계신 분이 아니라, 실체적이시고 구체적이신 분이라는 것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실제적 역사와 우리의 반응
하나님은 관념적인 분이 아닙니다. 2007년 그해는 나에게 개인적으로 특별한 해였습니다.
나는 한 달에 하루 정기적인 인터뷰 촬영으로 천만 원 넘는 돈을 벌 기회가 있었지만,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기대하며 그 제안을 거절하고 중고시장에서 일시적인 일을 하며 생계를 이어갔습니다. 또한, 낙도 선교를 다녀온 후에 그런 결심을 했고, Good Neighbors와 함께하는 일들에도 참여했습니다.
"내가 네게 무엇을 해줄까?"라는 하나님의 물음에 나는 "주님을 보고 싶습니다"라고 답했습니다.
2007년은 정말 잊을 수 없는 뜨거웠던 한 해였던 것 같아요. 비가 새고 곰팡이가 가득한 그 집에서도 저는 정말 기뻐하고, 감사하면서 보냈었거든요. 집을 보러 가서 제가 더 꼼꼼하게 보지 못한 탓도 있겠지만, 이삿짐을 다 가지고 왔는데 벽이 곰팡이로 다 물들어 있는 거예요. 그래서 이사한 첫날에 짐도 못 옮기고, 짐을 한 곳에 다 그냥 세워놓고, 곰팡이 가득한 검은색 벽지를 그냥 계속 뜯었던 것 같아요. 다시 벽지를 교체했는데, 집이 지하라서 장마 때 침수가 되었어요. 그때 제가 다니던 청년부에서 수해 복구도 해줬어요. 여름에 장판 다 걷어내고 시멘트 바닥에 보일러 켜놓고 잠을 자기도 하고, 그렇게 또 몇 개월이 지나니 다시 한쪽 벽이 까맣게 물들기 시작했어요. 그래도 저는 이 집에서 정말 감사하면서 보냈어요. 왜냐하면 내 눈에 보이는 것은 곰팡이가 가득한 집이지만, 이 곰팡이가 가득한 집과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는 것은 또 별개의 문제거든요. 그래서 또 한쪽 벽이 이렇게 물드는 것을 보면서 제가 이렇게 얘기했던 것 같아요. “하나님, 하늘 아래 바람 부는 곳에 살고 싶어요.” 한 2분 지나서 “하나님 아니에요. 저 괜찮아요. 정말 괜찮거든요. 신경 쓰지 마세요. 괜찮아요. 저는 충분하니까, 다른 사람들 기도 응답해 주세요.” 그러다가 또 한 5분 정도 지났어요. 다시 기도드렸어요. “하나님, 잘 생각해 보니까, 하나님이 내 아빠인데 저는 괜찮은데 제가 이 집에서 힘들면 아버지가 힘들 것 같아요.” “저는 진짜 괜찮은데, 내가 힘들면 아빠도 힘들 것 같으니까 아빠 마음대로 하세요.”라고 했어요. 그런데 조금 지나서 서로 모르는 3명의 사람이 저한테 전화가 왔어요. 의대 교수로 있던 선배가 전화가 왔어요. 본인이 기도하는데, 자꾸 너한테 이 말을 전해주라는 마음을 주셨다는 거예요. 어떤 마음이냐면 ‘하나님이 너 빨리 이사 가라 하신다.’는 겁니다. 그래서 제가 어디로 이사 가면 되냐고 물었더니, 그 선배가 ‘하늘 아래 바람 부는 곳으로 빨리 이사 가라.’고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제가 되게 단순하거든요. 그래서 이사 가라 하시니까 집 보러 가야지 하면서 집을 보러 갔습니다. 집을 보러 가는 길에 또 그 선배한테 문자가 왔어요. 문자 내용이 뭐냐면, ‘설날 전에, 4층 빌라, 전원주택’이라는 단어예요. 서로 합이 맞지 않는 단어잖아요. 4층 빌라인데 어떻게 전원주택이 되겠어요? 설날은 일주일 정도 남았던 것 같아요. 어느 집에 갔는데, 이 집이 마음에 들어서 부동산 아저씨한테 “아저씨, 저, 이 집 마음에 들어요. 그런데 돈은 없어요.” 하고 집에 왔어요. 그런데 한 3일 정도 지나서 부동산 아저씨한테 전화가 왔어요. 그 집주인이 갑자기 이사를 가버렸다는 거예요. 그래서 “아저씨, 그럼 그 집이 빈집이 되었겠네요? 그 집에 제가 들어가면 안 될까요? 그런데 돈은 없어요.”라고 했는데, 아저씨가 일단 들어오라는 거예요. 그래서 며칠 공사를 하고 나서 그 집에 들어갔습니다. 처음으로 초인종 있는 집에 살게 되어 혼자 초인종을 누르면서 기뻐했습니다. 방이 두 개로 나누어져 있고, 한강대교가 내려다보이는 4층 빌라였습니다. 그때 기도했던 그 선배가 이사 선물을 좀 보내줄 테니, 집 주소 좀 불러보라고 해서 불러줬더니, 웃으면서 전화가 왔습니다. 왜 그러냐고 했더니, 자기가 기도할 때 녹색을 봤대요. 그래서 전원주택으로 이사 가라는 줄 알았는데, 주소가 동작구 본동 그린빌라였던 겁니다.
그런데 제가 그 집에서 기도를 하면 좀 달랐습니다. 프린트가 고장 나서 “하나님 프린트가 고장 났어요.” 하면 CBS 작가에게 전화가 와서 “작가님, 혹시 복합기 필요하세요?” 하구요. “하나님, 교회에 가야 하는데, 거리가 좀 멀어졌어요. 새벽에 기도하러 가고 싶어요.” 하면 친구에게 갑자기 전화가 와서 “내가 급히 오토바이를 맡겨야 하는데, 니가 이 오토바이 좀 써줄 수 있겠니?” 처음에 준 오토바이는 친환경 일본 오토바이인데, 최고 시속이 40km밖에 안 나오는 거예요. 그래서 “하나님 40km는 너무 느린 것 같아요.” 기도하니까 그 친구에게 다시 전화가 와서, “미안해, 그 오토바이는 내가 써야 할 것 같고, 대신 이 오토바이를 써.” 하면서 야마하 오토바이를 주었습니다. 필요했던 노트북, 카메라, 침대, 전자레인지, 이런 것들이 다 그렇게 바뀌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그때 한 번도 놀라지 않았습니다. 왜 놀라지 않았느냐면, 그냥 실제적이시고 구체적이신 그분이 내 아빠라는 생각 때문에 놀라지 않았어요.
그 이후, 곰팡이가 피는 집에서 산뜻한 바람이 부는 좋은 집으로 이사하게 되는 등, 하나님의 실제적이고 구체적인 역사를 체험하게 되었지만, 그것으로 간증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을 자동판매기로 만들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도구가 아니라 우리 주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왜 하나님이 나에게 그렇게 해주셨는지 알지 못하지만, 나는 언제나 예수님으로 인해 기뻤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의 구원을 확증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결혼의 두려움
두려움은 더 큰 것으로 밀려나지만, 때로는 해결되지 않는 두려움도 있습니다.
제게는 결혼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습니다. 자기가 좋아서 나와 결혼할 아내는 몰라도 내 자녀들이 고생하게 할 수는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내 아버지가 되어주셨듯이, 내 자녀의 하나님이시기도 하다는 마음을 주셨고, 그 평안한 마음으로 나는 결혼했고 벌써 결혼 생활을 유지한 지 16년이 지났습니다.
우리에게 결핍이 있어서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갈 수 없을까요? 그것은 아닙니다.
제가 너무 힘든 상황이 되었을 때 아내가 용기 내는 말을 해주었습니다. 그 말 자체는 터무니없는 유머이었지만, 그때 저는 아내와 함께라면 내가 걸어가던 길을 계속 걸어갈 수 있을 것 같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가장 가까이 있는 아내의 말을 통해 힘을 얻게 되었습니다.
일상의 삶 속에서 하나님께 순종하다
차드에 갔을 때의 일입니다. 나는 그들에게 우물 하나를 만들어 주고 싶었는데, 그 일을 위해서는 당시에는 400~450만 원의 비용이 필요했습니다.
그 돈이 거의 준비가 되었을 때 갑자기, 아내가 다니던 건설회사가 1차 부도를 맞으면서 그 돈을 빚을 갚는 데 사용하면 경제적 손실을 크게 막을 수 있는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우리 인생의 목표는 자아성취가 아닙니다. 대신에 만일 예수님과 이어져 있는 것이 목표라면, 순종은 하나의 과정이 됩니다. 나중에 하늘나라에서 예수님과 대면해 만났을 때 "내가 너를 다 안다"라고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해 주시는 것이 진정한 성공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우물을 만들어 준다는 원래의 마음에 순종하여 작년까지 하나님 은혜로 아프리카에 우물이 50개 만들어졌고, 올해도 니제르에 우물을 만들고 있습니다.
저는 사진도 찍고 책도 쓰고 강의도 하고 있지만, 본디 그렇게 재능 있는 사람이 아닙니다.
대학생 때 작은 교회에 들러 매일 1시간씩 기도했는데, "하나님, 저를 사용해 주세요"라는 기도 대신 "저는 쓸 데가 없어요. 그렇지만 하나님이시라면 이런 저도 사용할 수 있겠지요? 한 번 저를 사용해 보시죠"라는 푸념과 원망에 가까운 기도를 드리곤 했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기도조차 들어주셨습니다.
사도 바울이 가시를 없애달라고 하나님께 세 번 기도했지만, 하나님의 응답은 "내 은혜가 네게 족하다"였습니다.
우리의 연약함을 부끄러워할 것이 없습니다. 환난은 인내를 낳는다고 성경이 말씀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만일 '사랑을 주세요, 용기를 주세요'라고 기도한다고 사랑과 용기가 캡슐처럼 한 번에 툭 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일상 속에서 믿음으로 반응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적용 기도
어려움이 닥치면 문제를 보는 대신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묵상해야 합니다.
큰 것은 작은 것을 물리칩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두려움을 몰아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 문제보다 크신 분이십니다.
오늘 하나님이 주신 약속 위에 우리 일상의 삶을 올려놓아야 합니다.
또한 중요한 한 문장이 있습니다. "감사가 기적을 만든다."
https://youtube.com/shorts/zGmv2pOKfhY?si=j21-VQ2wm5SrCn_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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