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본문 : 사도행전 20:24
24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전 던 선교사
- 인도 올 네이션 처치 담임목사
- 서울은현교회 파송 선교사
-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 선교신학 Th.M 석사
- 인도 출신인 전 던 선교사는 폭력적인 삶을 살다가 교회를 통해 예수님을 만나 감옥에서 기도하며 변화를 경험함 🙏
- 예수님을 믿고 신앙을 가진 후 가정과 주변에 치유와 변화가 일어났으며, 부모님과 가족들 또한 신앙을 받아들이게 됨 👨👩👧👦
- 한국에서 신학을 한 후, 현재 인도에서 선교사로 활동하며 영적 전쟁이 큰 지역에서 교회를 세우고 치유와 회복의 기적들을 경험하며 사명을 이어가고 있음 🌏
1. 인사말
14억 인도 사람들의 마음을 모아 이 자리를 허락하신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드리며, 함께 참석해 주신 여러분께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저는 아내와 아들이 하나씩 있습니다. 제 아들은 "Made in Korea"입니다. 아들의 몸은 인도인이지만 마음은 한국 사람입니다. 저의 본래 이름은 ‘다스 프루카스’지만, 발음이 어려워 사람들이 저를 ‘박카스’로 불렀습니다. 이후에 저는 ‘전 던’이라는 닉네임을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오늘 저의 간증을 통해, 하나님께서 한 사람을 어떻게 부르시고 선교사로 사용하시는지 나누고자 합니다.
한국에 와서 한국어를 배우던 중, ‘무엇을 잘못했을 때는 "미안합니다"라고 해야 한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어느 날 한 형님과 오해가 생겨 화를 냈다가 관계가 나빠졌습니다. 관계를 회복하고 싶어 ‘가서 사과를 드리라’는 조언을 들었고, 웃음을 자아내는 일이지만, 마트에 가서 실제 사과를 사서 드린 적이 있습니다. 한국을 떠난 지 5년 반이 지나 다시 한국말이 어색해졌습니다. 제 한국어가 미흡해도 양해해 주시기를 ‘미리 사과드립니다.’
2. 삶의 변화
저는 가난하고 독실한 힌두교 가정에서 태어났으며, 어릴 적에는 힌두교의 신들을 섬기며 살았습니다. 삶에 꿈도, 목표도 없이 방황하던 중, 폭력적인 생활 속에서 만난 교회 다니는 친구가 저를 새로운 세상으로 이끌었습니다. 교회에서 배운 사랑과 용서의 가르침은 저에게 큰 감동과 찔림을 주었고, 결국 저를 예수님의 사랑으로 이끌었습니다.
당시 제 삶에는 꿈도 목적도 없었습니다. 제 주변에는 저를 나쁘게 평가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저는 나쁜 친구들을 만나 깡패가 되어 사람들을 때리고 돈을 빼앗으며 폭력적인 삶을 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어느 날 저는 좋은 친구를 만났습니다. 그는 교회를 다니는 친구였고, 그의 세계는 저에게 완전히 새로운 세상이었습니다.
저는 원수를 죽이고 맞으면 몇 배로 갚아줘야 한다는 가르침을 받고 자랐지만, 교회에서는 원수를 사랑하고 그들을 위해 기도하라는 가르침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가르침은 저에게 큰 충격이었고, 점점 교회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저는 점점 예수님도 좋아하게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교회 밖으로 나가면 여전히 깡패로서의 삶을 이어갔습니다.
그러던 중 어느 날 목사님께서 저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왜 교회에 오는지 안다.” 사실 제가 교회에 간 이유는 여학생들이 많고 먹을 것도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목사님께서는 “그렇지만, 혹시 네 삶에 문제가 생기고 아무 해결책이 없을 때, 예수님께 진지하게 기도해보고 네 삶을 예수님께 드려라”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러나 저는 가볍게 넘겨 버렸습니다.
3. 신앙의 첫 경험
깡패 생활 중 경찰서에 갇혔을 때, 두려움 속에서 교회에서 들었던 예수님에 대한 말을 떠올리며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절박한 마음으로 예수님께 기도하던 순간, 빛을 보며 "너를 사랑한다"는 음성을 들었고, 이는 저를 새롭게 변화시키는 경험이 되었습니다. 다음 날 기적처럼 풀려났고, 이 사건은 제 삶을 영원히 바꿔놓았습니다.
어느 날, 깡패 조직의 한 형이 경찰에게 쫓기다 죽었고, 이 사건이 외부에는 자살로 발표되었습니다. 이후 경찰은 깡패 소탕령을 내렸고, 저는 새벽 2시에 경찰서에 잡혀가 갇히게 되었습니다. 당시 경찰은 저를 겁주며 형의 죽음을 언급했고, 저는 두려움에 휩싸였습니다. 목사님 말씀이 떠올라 감옥에서 무릎을 꿇고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예수님, 당신이 정말 살아계시다면 저를 살려주세요. 너무 무서워요. 도와주세요. 살려주세요.” 간절히 기도하는 순간, 빛을 보게 되었고, 마음속에 “나는 너를 사랑한다. 그러나 네 안에 죄가 있다. 나는 너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었고 부활했다.”라는 음성이 들렸습니다. 제 죄가 눈앞에 펼쳐지자, 저는 예수님께 용서를 구하며 “살려주세요”라고 기도했습니다.
죄인인 저를 만나주신 예수님께 감격했고, 지금도 이 기억을 떠올리면 눈물이 납니다. 예수님은 살아계시며, 지금도 역사하고 계십니다. 사도 바울에게 말씀하시던 예수님이 저를 만나주셨습니다.
다음 날 아침, 경찰서장이 저를 불렀습니다. 죽을 수도 있다는 두려움이 있었지만, 놀랍게도 그는 “집에 가라. 이제부터 이 길로 돌아가지 마라”라고 말하며 저를 풀어주었습니다. 저와 함께 갇힌 친구들은 4~5년, 가난한 친구들은 9년 형을 선고받았지만, 저는 기적적으로 풀려난 것입니다. 그 후 하나님께서 저를 여기까지 인도해주셨습니다.
4. 가족과 함께한 신앙 여정
신앙을 지켜나가는 것이 쉽지는 않았습니다. 특히 가족이 힌두교도였기 때문에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기적적인 치유 경험과 간증을 통해 저의 부모님도 신앙을 받아들이게 되었고, 이후 온 가족이 기독교 신앙 안에서 하나가 되었습니다. 지금은 아버지께서 장로님이시며 어머니께서 권사님이 되셨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나서 모든 문제가 해결될 줄 알았지만, 그렇지 않았습니다.
독실한 힌두교도였던 아버지가 교회에 다니냐고 물으셨을 때, 저는 두려움에 아니라고 거짓말을 했습니다. 주일이면 크리킷 옷을 입고 집을 나와 교회에 갔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입에서 피가 나기 시작해 한 그릇을 채울 정도로 많이 나왔습니다. 의사는 ‘결핵’에 걸렸다고 하며 좋지 않은 상태라고 했습니다. 주일에 작은 성경으로 성경 공부를 하던 중 “이 병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라는 말씀이 나왔습니다. 기도 중에 “엄마를 모시고 교회를 가라”는 감동을 받았고, 어머니께 마지막 소원이라며 교회에 가자고 부탁드렸습니다. 어머니는 아버지께 부탁드려 허락을 받았고, 어머니와 저는 누나와 함께 교회에 갔습니다. 예배 후, 안수 기도를 받았는데 이상하게도 피가 더 이상 나오지 않았습니다. 기적이었습니다.
아버지께서는 병원에 입원을 시키려고 하셨지만, 진단 결과 아무 이상이 없다고 나왔습니다.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어머니께 “예수님은 살아계세요. 어머니도 예수님을 믿으세요”라고 말했고, 어머니는 집으로 돌아가 아버지께 이 사실을 말씀드린 후 집안의 우상을 모두 버리게 되었습니다. 이후 결국 아버지와 어머니 모두 예수님을 믿게 되셨습니다.
5. 한국에서의 선교 훈련
1. 사도바울의 선교는 '주 예수께 받은 사명'의 선교이다.
2. 사도 바울의 선교는 '복음을 증거 하는' 선교이다.
3. 사도 바울의 선교는 '생명을 아낄 수 없는' 선교이다.
4. 사도 바울의 선교는 '십자가의 은혜를 전하는' 선교이다.
2010년에 인도로 오신 한국인 선교사(조준우)님을 만나 선교사의 마음을 배웠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을 사랑하고 섬겨주셨습니다. 제가 돈이 없어 공부도 못 했는데, 선교사님이 <요셉 만들기 프로젝트>를 통해 공부하고 훈련하게 하셨습니다.
한편 김천대학교에서 단기선교팀이 오셨는데, 한국의 김천대학교로 공부하러 보낼 학생을 10명 후보로 뽑고, 그 중에서 다시 5명을 선발하고, 다시 3명을 선발하여 한국으로 보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혼자 한국에 단돈 12만 원을 들고 왔습니다. 학비도 없고, 너무 외롭게 있었는데, 김천대학교 김춘권 교수님이 저의 아빠가 되어서 많이 도와주셨습니다. 이후 김천대학교에서 학업을 이어가며 선교사의 길을 걷게 되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여러 한국 교회의 도움과 지원을 받으며 훈련을 쌓았고, 이 경험은 인도로 돌아가 선교활동을 시작할 수 있는 큰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2001년에 한국 선교사님을 만나 한국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한국인의 섬김을 통해 한국에 대한 사랑을 느끼며 한국에서 공부와 훈련을 받았습니다. 한국 생활은 힘들었지만, 하나님께 기도하며 학비와 생활비를 충당할 수 있었습니다.
어느 날은 닭공장에서 일하면서 힘들어 기도 중에 “사람 낚는 어부를 만들려고 보냈는데 너는 돈 욕심에 닭을 잡고 있니?”라는 마음의 찔림을 받았고, 이후 전도사와 찬양 인도자로 사역하게 되었습니다.
2010년에 인도로 돌아가 결혼을 하고, 2011년에 아내와 함께 한국으로 돌아왔습니다. 임신한 아내가 풍질에 걸려 유산하라는 의사의 조언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하나님께 맡기며 기도하였고, 건강한 아들을 낳았습니다.
한국에서 신학을 마치고 선교사로 파송되어 인도로 돌아갔고, 여러 지역을 다니다 기도 중에 제 고향인 West Bengal에서 사역하기로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6. 인도 선교지에서의 사역과 기적
제가 사역하는 지역은 힌두교와 이슬람 신앙이 주류를 이루며 영적 전쟁이 큰 지역입니다. 코로나 시기에는 청년들과 함께 ‘여호수아의 7일 기도’를 통해 많은 사람들에게 기도를 전하며 교회가 세워졌습니다. 지금 우리 교회에서는 다양한 치유와 회복의 역사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장애인이 치유되고, 암 말기 환자가 나음을 입는 등 초대 교회와 같은 역사를 경험하고 있습니다. 4년 만에 교인이 135명으로 성장했으며, 103명의 다음 세대 예배와 수십 명의 청년부 예배도 활발히 진행되고 있습니다.
7. 맺는 말과 신앙 안에서의 도전의 말씀
이 모든 일들은 제가 아닌 주님께서 이루어가고 계시는 역사입니다. 제 삶을 통해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증거하며 인도 영혼을 위해 헌신하고 있습니다. 인간적으로는 한국에서 살고 싶지만, 주님의 사명에 순종하여 인도로 돌아가 사역하고 있습니다.
주님은 한국교회의 부흥기와 초대교회에서 역사하셨던 것처럼 오늘도 동일하게 일하고 계십니다. 여러분도 이 복음의 길에 함께 동참하여 주님의 사역에 귀하게 쓰임 받기를 소망합니다.
기도 제목
1. 가족을 위해 - 아내 뿌자, 아들 아얀
• 환경과 사람에게 흔들리지 않고, 늘 겸손하게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고 믿음으로 살아가는 나와 가족의 삶이 되도록
2. 인도교회와 All Nation Church 위해
• 핍박받고 있는 인도 교회와 우리 All Nation Church 성도들이 끝까지 믿음을 지키며 영적인 예배와 말씀을 통해 성령충만하여 땅 끝까지 믿음의 증인이 되도록
3. All Nation Church 비전 위해
• 교회 비전인 1만 명의 성도, 2천 명의 리더, 3백 명의 선교사를 파송하는 비전이 주님의 뜻대로 이루어질 수 있도록
4. 교회 이전과 교회 부지 구입을 위해
• 내년에 교회를 이전하는 것과 앞으로 교회와 학교 사역을 위한 부지 구 입의 재정이 채워질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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