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youtu.be/vP4iY1TtS3s?si=syXtKKkREy-WX28R
우리가 이곳에 모인 이유 - We have come to cash the check.
I am happy to join with you today in what will go down in history as the greatest demonstration for freedom in the history of our nation.
Five score years ago, a great American, in whose symbolic shadow we stand, signed the Emancipation Proclamation. This momentous decree came as a great beacon light of hope to millions of Negro slaves who had been seared in the flames of withering injustice. It came as a joyous daybreak to end the long night of captivity.
우리나라(미국) 역사상 자유를 향한 가장 위대한 군중 집회로 기록될 이 현장에 여러분과 함께 있게 되어 매우 기쁩니다.
100년 전, 한 위대한 미국인(링컨 대통령)은 노예해방선언서에 서명했고, 오늘 우리는 그 위대한 미국인의 상징적인 그림자 앞에 서 있습니다.
이 선언서는 시들게 만드는 불의의 불길에 타들어 가던 수백만 명의 흑인 노예에게 희망의 등대이자, 긴 속박의 어두운 밤이 끝났음을 알리는 기쁨의 아침 해가 되었습니다.
But one hundred years later, we must face the tragic fact that the Negro is still not free. One hundred years later, the life of the Negro is still sadly crippled by the manacles of segregation and the chains of discrimination. One hundred years later, the Negro lives on a lonely island of poverty in the midst of a vast ocean of material prosperity. One hundred years later the Negro is still languishing in the corners of American society and finds himself an exile in his own land.
하지만, 백 년이 지난 오늘까지도 흑인은 여전히 자유롭지 못하다는 비극적인 사실을 직시해야 합니다.백 년이 지난 지금도 흑인의 삶은 인종차별이라는 족쇄와 차별의 사슬에 묶인 채 슬픔 속에 짓눌려 있습니다. 백 년이 지났음에도 흑인은, 물질적 풍요의 광활한 바다 한가운데 외롭게 떠있는 빈곤의 섬에 살고 있습니다. 백 년이 지났음에도 흑인은, 미국 사회의 구석진 곳에서 힘겹게 살아가고 있으며, 자신의 나라에 있으면서도 망명자 같은 삶을 살고 있습니다.
So we have come here today to dramatize an appalling condition. In a sense we have come to our nation’s capital to cash a check. When the architects of our republic wrote the magnificent words of the Constitution and the Declaration of Independence, they were signing a promissory note to which every American was to fall heir. This note was a promise that all men would be guaranteed the unalienable rights of life, liberty, and the pursuit of happiness.
그래서 이러한 참담한 상황을 알리고자 오늘 우리는 이 자리에 모였습니다. 비유하자면, 우리는 수표(어음)를 현금으로 바꾸기 위해 우리 나라의 수도인 여기 모였습니다. 우리 나라(공화국)의 헌법과 독립선언문에 건국의 아버지가 위대한 문구를 작성하면서 남긴, 모든 미국인이 상속인이 될 약속 어음 말입니다. 이 어음에는 모든 인간은 (백인뿐만 아니라 흑인도) “생명, 자유 그리고 행복 추구권”이라는 “그 누구도 빼앗을 수 없는 권리(양도하거나 포기할 수 없는 권리)”를 보장하는 약속이 담겨져있습니다.
It is obvious today that America has defaulted on this promissory note insofar as her citizens of color are concerned. Instead of honoring this sacred obligation, America has given the Negro people a bad check; a check which has come back marked “insufficient funds.” But we refuse to believe that the bank of justice is bankrupt. We refuse to believe that there are insufficient funds in the great vaults of opportunity of this nation. So we have come to cash this check―a check that will give us upon demand the riches of freedom and the security of justice.
그런데 분명한 것은 우리나라가 국민의 피부색을 따져 유색인종 국민에게는 약속 어음에 대한 채무를 이행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미국은 이 신성스러운 의무를 이행하기는커녕, 흑인에게는 “자금 부족”이라고 새겨진 부도 수표를 발행한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정의의 은행이 파산하였다고 믿지 않습니다. 우리는 이 나라의 거대한 기회의 금고에 자금이 부족하다는 것을 믿지 않습니다. 이에, 우리는 이 수표를 현금으로 바꾸고자 여기에 모였습니다. 이 수표는 우리가 요구할 때, 충분한 자유와 보장된 정의를 제공해야 합니다.
We have also come to this hallowed spot to remind America of the fierce urgency of now. This is no time to engage in the luxury of cooling off or to take the tranquilizing drug of gradualism. Now is the time to make real the promises of democracy. Now is the time to rise from the dark and desolate valley of segregation to the sunlit path of racial justice. Now is the time to open the doors of opportunity to all of God’s children. Now is the time to lift our nation from the quicksands of racial injustice to the solid rock of brotherhood.
우리는 또한 지금이 얼마나 긴박한 상황인지 미국에게 상기시키기 위해 이 신성한 장소에 모였습니다. 화를 가라앉히는 사치를 부리거나 점진주의라는 진정제 따위를 먹을 때가 아닙니다. 이제는 민주주의의 약속을 실현시킬 때 입니다. 지금 바로, 인종차별이라는 황량하고 어두운 골짜기에서 벗어나 햇살이 가득한 정의의 길로 나아가야 합니다. 지금 바로, 모든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기회의 문을 열어야 할 때입니다. 지금이야말로 우리 나라를 인종차별의 늪에서 끌어 올려 형제애로 뭉쳐진 단단한 반석 위에 세워야 할 때입니다.
우리의 행동 원칙 - 비폭력
It would be fatal for the nation to overlook the urgency of the moment and to underestimate the determination of the Negro. This sweltering summer of the Negro’s legitimate discontent will not pass until there is an invigorating autumn of freedom and equality. Nineteen sixty-three is not an end, but a beginning. Those who hope that the Negro needed to blow off steam and will now be content will have a rude awakening if the nation returns to business as usual.
There will be neither rest nor tranquillity in America until the Negro is granted his citizenship rights. The whirlwinds of revolt will continue to shake the foundations of our nation until the bright day of justice emerges.
이 나라가 지금의 긴박함을 간과하고 흑인들의 결의를 과소평가한다면 그 결과는 매우 치명적일 것입니다. 숨 막히는 여름과 같은 흑인들의 이 정당한 불만은 자유와 평등의 상쾌한 가을이 오기 전에는 지나가지 않을 것입니다. 1963년 오늘은 끝이 아니고 시작일 뿐입니다. 누구는 ‘흑인이 울분을 터트릴 필요가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마음의 안정을 찾을 것이다’라고 희망합니다. 그러나 이들은, 오늘 우리가 이 집회가 끝나고 다시 제 자리에 돌아갔을 때, 그 희망이 착각이었음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흑인에게 부여된 정당한 시민권을 인정받기 전에는 이 나라에 안식과 평온은 없을 것입니다. 정의의 밝은 날이 오기 전에는 봉기의 회오리가 이 나라의 뿌리를 계속 흔들 것입니다.
But there is something that I must say to my people who stand on the warm threshold which leads into the palace of justice. In the process of gaining our rightful place, we must not be guilty of wrongful deeds. Let us not seek to satisfy our thirst for freedom by drinking from the cup of bitterness and hatred. We must forever conduct our struggle on the high plane of dignity and discipline. We must not allow our creative protest to degenerate into physical violence. Again and again we must rise to the majestic heights of meeting physical force with soul force.
하지만, 정의의 궁전으로 향하는 따듯한 문턱에 서 있는 우리 국민들께 꼭 당부드리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정의를 이루어가는 과정에서 절대 불의를 저지르지 맙시다. 억울함과 증오의 잔을 마셔 자유에 대한 갈증을 풀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의 투쟁은 반드시 높은 수준의 존엄성과 규율을 영원히 지키며 수행해야 합니다. 우리의 창조적 항의인 이 시위가 폭력적으로 변질되는 일은 절대 없어야 할 것입니다. 재삼 말씀드리건대, 우리는 육체적 힘과 영혼의 힘이 만나는 장엄한 높은 곳에 이르러야 합니다.
The marvelous new militancy which has engulfed the Negro community must not lead us to a distrust of all white people, for many of our white brothers, as evidenced by their presence here today, have come to realize that their destiny is tied up with our destiny and their freedom is inextricably bound to our freedom. We cannot walk alone. And as we walk, we must make the pledge that we shall march ahead. We cannot turn back.
흑인사회를 뒤덮은 놀랍고도 유례없는 전투력(기운)이 모든 백인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져서는 안 됩니다. 오늘 이 자리에 모인 많은 백인 형제들이 입증하듯, 수많은 백인이 우리의 운명과 그들이 하나로 연결되어 있음을 깨닫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자유와 우리의 자유가 서로 떼어낼 수 없음을 깨닫고 있습니다. 우리는 혼자 걸을 수 없습니다. (함께 걸어가야 합니다.) 그리고 걸어갈 때, 언제나 앞으로 나아가자는 다짐을 해야 합니다. 우리는 결코 다시 뒤로 되돌아갈 수는 없습니다.
There are those who are asking the devotees of civil rights, “When will you be satisfied?” We can never be satisfied as long as the Negro is the victim of the unspeakable horrors of police brutality. We can never be satisfied as long as our bodies, heavy with the fatigue of travel, cannot gain lodging in the motels of the highways and the hotels of the cities. We cannot be satisfied as long as the Negro’s basic mobility is from a smaller ghetto to a larger one. We can never be satisfied as long as a Negro in Mississippi cannot vote and a Negro in New York believes he has nothing for which to vote. No, no, we are not satisfied, and we will not be satisfied until justice rolls down like waters and righteousness like a mighty stream.
어떤 이는 흑인의 시민권을 주장하는 사람에게 “도대체 언제 만족할 것이냐?”묻습니다. 흑인이 말로 다 표현할 수도 없이 잔혹한 경찰 폭력의 피해자가 되는 한 "우리는 절대 만족할 수 없습니다". 흑인이 고된 여행에 지친 몸을 이끌고, 고속도로에 있는 모텔이나 도시의 호텔에서 잠자리 방 하나 구하지 못하는 한 우리는 결코 만족할 수 없습니다. 흑인이 기본적으로 이동할 수 있는 곳이 그저 작은 빈민가에서 좀 더 큰 빈민가 뿐이라면, 우리는 만족할 수 없습니다. 우리의 어린아이들이 “백인 전용”이라는 문구로 인해 자아를 박탈당하고 자신의 존엄성을 빼앗긴다면, 우리는 만족할 수 없습니다. 미시시피에 사는 흑인이 투표를 하지 못하고 뉴욕에 거주하는 흑인이 투표할 아무런 이유가 없는 한, 우리는 만족할 수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고, 공정함이 강물처럼 흘러넘칠 때까지는 결코 우리는 만족하지 않을 것입니다.
어렵더라도 절망의 늪에 빠져 허우적대지 맙시다.
I am not unmindful that some of you have come here out of great trials and tribulations. Some of you have come fresh from narrow jail cells. Some of you have come from areas where your quest for freedom left you battered by the storms of persecution and staggered by the winds of police brutality. You have been the veterans of creative suffering. Continue to work with the faith that unearned suffering is redemptive.
Go back to Mississippi, go back to Alabama, go back to South Carolina, go back to Georgia, go back to Louisiana, go back to the slums and ghettos of our modern cities, knowing that somehow this situation can and will be changed.
Let us not wallow in the valley of despair.
여기 모인 여러분 가운데 어떤 분들은 큰 시련과 고난을 겪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비좁은 감옥에서 이제 막 나온 분들도 있습니다. 그리고 자유를 추구하였다는 이유로 박해의 폭풍에 부수어지고, 경찰 폭력의 잔혹한 바람에 시달림을 겪은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온갖 종류의 창의적인 고난을 겪은 역전의 용사들입니다. 고난이 구원을 가져온다(부당한 고난은 반드시 보상을 받는다)는 것을 믿고 계속 자유를 위해 일해 주십시오.
이러한 현실은 어떻게든 바뀔 수 있고, 바뀌게 될 것입니다.
미시시피로 돌아갑시다. 앨라배마로 돌아갑시다. 사우스캐롤라이나로 돌아갑시다. 조지아로 돌아갑시다. 루이지애나로 돌아갑시다. 우리의 북쪽 도시에 있는 빈민가로 돌아갑시다.
여러분, 부디 절망의 늪에 빠져 허우적대지는 맙시다.
지금도 여전히 내게는 꿈이 있습니다.
I say to you today, my friends, that in spite of the difficulties and frustrations of the moment I still have a dream. It is a dream deeply rooted in the American dream.
여러분, 오늘 지금 이 순간의 어려움과 좌절에도 불구하고, 저에게는 여전히 꿈이 있습니다. “'아메리칸 드림”에 깊이 뿌리를 두고 있는 그 꿈 말입니다.
I have a dream that one day this nation will rise up and live out the true meaning of its creed: “We hold these truths to be self-evident; that all men are created equal.”
I have a dream that one day on the red hills of Georgia the sons of former slaves and the sons of former slave owners will be able to sit down together at the table of brotherhood.
I have a dream that one day even the state of Mississippi, a desert state sweltering the heat of injustice and oppression, will be transformed into an oasis of freedom and justice.
I have a dream that my four little children will one day live in a nation where they will not be judged by the color of their skin but by the content of their character.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이 나라가 언젠가는 “모든 인간은 평등하게 창조되었음을 자명한 진리로 받든다.”는 신조의 진정한 의미대로 살아갈 것을 꿈꿉니다.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언젠가는 조지아의 붉은 언덕에서, 과거 노예였던 흑인의 자녀와 그 노예의 주인이었던 백인의 자녀가 형제처럼 식탁에 마주 앉게 되길 꿈꿉니다.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언젠가는, 불평등의 열기로 숨이 막히고, 탄압의 열기에 찌든 미시시피 주가 자유와 정의의 오아시스로 거듭나기를 꿈꿉니다.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언젠가는, 나의 네 아들과 딸이 그들의 피부색이 아닌, 인격의 내용으로 평가되는 나라에 살게 될 것이라는 꿈을 꿉니다.
I have a dream today.
I have a dream that one day the state of Alabama, whose governor’s lips are presently dripping with the words of interposition and nullification, will be transformed into a situation where little black boys and black girls will be able to join hands with little white boys and white girls and walk together as sisters and brothers.
I have a dream today.
I have a dream that one day every valley shall be exalted, every hill and mountain shall be made low, the rough places will be made plains, and the crooked places will be made straight, and the glory of the Lord shall be revealed, and all flesh shall see it together.
오늘, 나는 꿈을 꿉니다.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증오에 가득 찬 인종차별주의자와 ‘중재’와 ‘법령실시 거부’라는 단어를 뱉어내는 주지사가 있는 저 남쪽의 앨라배마 주에서도, 언젠가는 흑인 소년소녀가 백인 소년소녀와 형제자매로 손을 마주잡기는 상황으로 변화될 것이라는 꿈을 꿉니다.
오늘, 나는 꿈을 꿉니다.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언젠가는, 움푹 파인 계곡은 메꾸어질 것이고, 모든 언덕과 산이 평평해질 것이며, 울퉁불퉁한 곳은 완만해지고, 구부러진 곳은 곧게 펴질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며 모든 이가 그 영광을 함께 보게 될 것’을 꿈꿉니다.
전국 방방곡곡에 자유의 노래가 울리게 합시다
This is our hope. This is the faith with which I return to the South. With this faith we will be able to hew out of the mountain of despair a stone of hope. With this faith we will be able to transform the jangling discords of our nation into a beautiful symphony of brotherhood. With this faith we will be able to work together, to pray together, to struggle together, to go to jail together, to stand up for freedom together, knowing that we will be free one day.
이것이 우리의 희망이자 믿음입니다. 우리는 이 희망과 믿음을 품고 남부로 돌아갈 것입니다. 이 믿음으로 절망의 산을 깎아 희망의 돌을 캐낼 수 있을 것입니다. 이 믿음으로 지금 이 나라에 울리고 있는 불협화음을 아름다운 형제애의 교향곡으로 바꿀 수 있을 것입니다. 이 믿음을 품고, 우리는 함께 일하고, 함께 기도하며, 함께 투쟁하고, 함께 감옥에도 갈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함께 자유를 위해 일어설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언젠가 자유를 누리게 될 것입니다.
And this will be the day--this will be the day when all of God’s children will be able to sing with new meaning:
“My country’tis of thee, sweet land of liberty, of thee I sing. Land where my fathers died, land of the pilgrim’s pride, from every mountainside, let freedom ring.”
And if America is to be a great nation this must become true.
그리고 바로 그 날, 그 날이 오면,
하나님의 모든 자녀들이 새로운 의미로 이 노래를 부를 수 있을 것입니다.
“나의 조국, 나의 노래, 감미로운 자유의 땅. 아버지가 묻힌 땅, 필그림의 자랑이여, 모든 산비탈에서, 자유여 울려 퍼져라!”
우리나라가 위대한 나라가 되려면, 반드시 이 노랫말처럼 돼야 합니다.
So let freedom ring from the prodigious hilltops of New Hampshire.
Let freedom ring from the mighty mountains of New York.
Let freedom ring from the heightening Alleghenies of Pennsylvania!
Let freedom ring from the snowcapped Rockies of Colorado!
Let freedom ring from the curvaceous peaks of California!
But not only that; let freedom ring from Stone Mountain of Georgia!
Let freedom ring from Lookout Mountain of Tennessee!
Let freedom ring from every hill and molehill of Mississippi.
From every mountainside, let freedom ring.
뉴햄프셔의 경이적인 구릉 꼭대기에서 자유가 울려 퍼지게 합시다.
뉴욕의 거대한 산에서 자유가 울려 퍼지게 합시다.
높이 솟아 있는 펜실베이니아의 앨러게니에서 자유가 울려 퍼지게 합시다.
눈으로 덮인 콜로라도의 로키산맥에서 자유가 울려 퍼지게 합시다.
캘리포니아의 굽어진 경사면에서 자유가 울려 퍼지게 합시다.
이게 끝이 아닙니다.
조지아의 스톤 마운틴에서 자유가 울려 퍼지게 합시다.
테네시의 룩아웃 산맥에서 자유가 울려 퍼지게 합시다.
미시시피의 크고 작은 언덕에서 자유가 울려 퍼지게 합시다.
미국의 모든 산비탈에서 자유가 울려 퍼지게 합시다.
When we let freedom ring, when we let it ring from every village and every hamlet, from every state and every city, we will be able to speed up that day when all of God’s children, black men and white men, Jews and Gentiles, Protestants and Catholics, will be able to join hands and sing in the words of the old Negro spiritual,
“Free at last! Free at last! Thank God Almighty, we are free at last!”
이처럼 자유가 울려 퍼진다면, 모든 크고 작은 마을에서 자유가 울려 퍼진다면, 미국의 모든 주와 모든 도시에서 자유가 울려 퍼진다면,
모든 하나님의 자녀, 흑인과 백인, 유대인과 비 유대인, 기독교인과 가톨릭 신자들이 손에 손을 맞잡고 오래된 흑인 영가를 부르게 될 날이 더 빨리 올 것입니다.
마침내 자유다! 마침내 자유가 왔노라!
오 전능하신 하나님, 감사합니다. 마침내 우리가 자유를 찾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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