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가슴을 뛰게 하는 사도행전
저는 질풍노도의 청소년기를 사도행전을 읽으며 이겨낼 수 있었습니다. 목회자가 되는 과정에서도 늘 사도행전은 내 가슴을 뛰게 했습니다. 부흥을 간절히 열망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날마다 새로우신 분이시며 날마다 우리를 새롭게 하실 것이라는 믿음, 우리 인생의 가장 좋은 날은 아직 오지 않았다는 기대 속에 사도행전을 통해 늘 부흥을 꿈꾸었습니다.
그런데, 진정한 부흥은 사람이 만들지 않고 하나님이 주도하시며, 하나님이 내게로 다가 오시는 것입니다. 우리 심령과 모든 것이 하나님 곁에 머물며 하나님을 열망하는 것입니다.
역전의 하나님은 늘 부흥을 통해 교회를 새롭게 하셨습니다.
1907년 헤이그 밀사 사건이 실패하고 정미7조약이 만들어지던 그 암울한 해에, 하나님은 한국교회에 평양 대부흥을 일으키셨습니다.
근래에 일어난 미국 켄터키 주의 에즈베리(Asbury) 대학교의 부흥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작은 대학교를 통해 전환기에 큰 부흥을 일으키셔 새로운 소망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모든 부흥의 원형은 ‘사도행전적 부흥’입니다.
오륜교회는 다시 본질로 돌아가길 원합니다.(Ad Fontes) 그 근원에서 다시 출발하길 원합니다.
또한 오륜교회는 많은 교회들이 생존(Survival)을 고민하는 시대에 교회 부흥(Revival)을 외치길 원합니다. 그래서 35년간 지속된 오륜의 부흥의 이야기가, 여전한 부흥의 이야기, 아직도 진행되는 이야기,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속되는 이야기가 되길 소망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1년간 '하나님 나라를 열망하라'라는 주제로 사도행전을 살펴볼 것입니다.(강해 설교)
다른 어떤 열망보다 '하나님 나라를 열망'하는 오륜 공동체가 되길 소망합니다.
강해설교 講解說敎 , expository preaching
성경의 한 책, 정해진 본문을 순서대로 설명해 가면서 그 본문을 통해 하나님께서 회중에게 주시는 메시지를 깨닫게 하는 설교이다. 이는, 성경의 메시지를 성도 각자의 삶에 적용시키는 데 효율적인 설교로서, 성경의 한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연속해서 설교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한 회의 설교 범위는 몇 구절에서 한 장 전체를 강해하기도 한다. 설교자와 듣는 청중이 함께 성경의 가르침에 몰입하며 연구할 수 있는 좋은 설교 형태이다. [네이버 지식백과](교회용어사전 : 예배 및 예식, 2013. 9. 16., 가스펠서브)
하나님 나라를 경험하기 위한 3가지 단계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은 동일한 저자(누가, Luke)와 수신자(데오빌로, Theophilus)로 이루어져 있어 요즘 드라마 표현으로는 시즌 1과 시즌 2로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누가복음은 시즌 1로서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통해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내용, 사도행전은 예루살렘에서 세상으로 복음이 퍼져나가는 내용입니다.
사도행전의 기록은 예수님의 승천 이후에 시작되며, 사도행전의 역사는 다른 말로 '하나님 나라 확장의 역사'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공간의 개념이 아니라 '다스림(통치)'의 개념입니다. 언제 어느 곳이든, 하나님의 통치가 일어나는 그 곳이 바로 하나님 나라입니다.
또한, 하나님 나라는 '소유하는 경험'이 아니라 '소유되는 경험'입니다. 내가 정복하는 것이 아니라 정복당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가 우리 가운데로 밀고 들어오심으로) 하나님 나라가 확장되면 결국 (성령 안에서의) 자기 소멸을 경험합니다.
나는 사라지고 예수로 가득 차게 되는 삶이 바로 하나님 나라를 경험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를 경험하기 위한 3가지 단계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1. 적극적으로 기다리라
- (행 1:4절) 사도와 함께 모이사 그들에게 분부하여 이르시되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서 들은 바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하나님 나라를 경험하기 위한 첫 번째는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는 것입니다.
약속하신 것은 무엇입니까? '성령'이며, 위로부터 주어지는 능력입니다.
- (행 1:5절)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하셨느니라
하나님 나라의 원동력은 성령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내 힘으로 세우는 나라가 아닌 '성령님이 이끄시는 나라'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을 받기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5절 말씀은 특별히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라'고 합니다. 이는 요한의 물세례와는 다른 세례입니다.
성령 세례는 성령의 힘에 완전히 사로 잡혀 성령의 지배를 받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예수님이 약속하신 보혜사 성령의 강림과 함께 강력한 하나님 나라의 통치가 시작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성령님을 기다린다는 것은 어떤 의미입니까?
첫째, 성령님보다 앞서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둘째, 성령님에게 나의 시간을 맞추겠다는 것입니다.
셋째, 성령님을 기다린다는 것은 가장 역동적인 믿음의 행위입니다.
성령님 앞에서의 침묵은 우리가 드릴 수 있는 최고의 찬미가 됩니다. 기다림의 시간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이 아니라, 최고의 경배의 시간입니다.
2. 자신을 깨뜨리라.
- (6절) 그들이 모였을 때에 예수께 여쭈어 이르되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 때니이까 하니
예수님께서 기다림에 대해서 말씀하실 때, 제자들은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 때니이까?"라고 물었습니다.
제자들의 질문은 '이스라엘 나라, 회복, 이때라는 세 단어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 세 단어를 살펴보면 제자들이 아직도 자신들의 틀 안에서 하나님 나라를 이해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첫째,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를 말씀하시는 것이지 지역적•민족적 의미의 '이스라엘 나라'를 말씀하시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이스라엘이라는 하나의 민족만을 위한 나라가 아닙니다.
둘째, '회복'의 의미는 정치적인 회복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제자들은 여전히 정치적인 의미에서 로마의 통치에서 벗어나는 회복을 말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 나라의 회복은 정치적인 회복이 아닌 '죽음에서 생명으로의 회복'을 의미합니다.
셋째, 제자들은 '이 때니이까'라고 말하며 지금 당장에 대해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하나님 나라는 이제부터 시작하여 점진적으로 완성되어 가는 나라입니다. 갑자기 완성된 하나님 나라가 임하는 것이 아니라 그 나라를 향하여 내가 나아가는 것입니다. 나의 온 시간을 들여 그 나라를 향하여 전진해 가는 것입니다.
흔히 시간을 두 가지 단어로 표현합니다. 24시간이 흘러가는 물리적인 시간으로서의 크로노스의 시간과 질적인 시간인 카이로스의 시간입니다. 하나님 나라란 의미 없이 흘러가는 크로노스의 시간을 건져 하나님 나라를 위한 카이로스의 시간을 변혁시키는 사건입니다.
결국, 하나님 나라의 범위는 열방이며, 그 내용은 영원한 생명과 관련된 것이며, 그 시작은 지금부터 영원까지입니다. 하나님 나라 속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나의 나라를 깨뜨려야 합니다. 내 머릿속에 내가 세운 나라가 무너져야 하나님 나라를 품을 수 있습니다.
이 시대의 최고의 '신'神은 자'신'(自身)입니다. 자기에 대한 몰입, 끝없는 자기애가 최고의 신이 되어버린 시대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는 자신을 깨뜨리는 것으로부터 시작됩니다. 자기를 삶의 중심에 놓으면 하나님 나라를 경험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자기가 사라지고 성령의 지배를 받아야 누릴 수 있는 곳입니다. 자신을 깨뜨리지 않으면 곧 두 번째 신을 만나게 됩니다. 바로 배'신'(背信)입니다.
1년 동안 사도행전을 계속해서 묵상하는 가운데 내가 섬겨온 자'신'(自身)이 전부 무너질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하나님이 더 이상 중심 무대를 차지하지 않으시기에 자기 사랑, 자기표현, 자기 확신, 자기 충족처럼 성경에 전혀 나오지 않는 용어들이 교회에서 벌어지는 대화를 점령하기 시작한다.
반면 성경에서 찾아 볼 수 있는 또 다른 '자기'라는 단어가 사용된 단어들인 자기복종, 자기희생, 자기부인, 자기통제 같은 단어들은 금세 사용하지 않게 된다
- David Handersen
3. 권능을 받으라.
아직도 자기 안에 갇혀있는 제자들에게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 (행 1:7) 이르시되 때와 시기는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가 알 바 아니요
그리고 사도행전의 중심 뼈대이자, 우리 삶의 등뼈가 되어야 할 말씀을 주십니다.
- (행 1: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약속하신 성령이 임하게 되면 '권능'을 받게 됩니다. 그리고 권능을 받으면 재창조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삶을 재창조하고 싶으십니까? 성령을 사모하시기 바랍니다. 간절히 열망하시기 바랍니다.
또한, 권능을 받으면 우리 삶에 성령이 일으키는 역동성이 생깁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삶을 계속해서 확장하길 원하십니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삶의 영역이 전부가 아닙니다. 우리 삶이 예루살렘, 온 유대와 사마리아, 땅 끝까지 확장되길 원하십니다.
더 나아가, 우리는 '증인'이 되어야 합니다. 무엇에 대한 증인입니까? 권능을 받아 내 삶의 경계를 넘어 예수님의 증인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반드시 우리를 증인 되게 하실 것입니다. '내 증인이 되리라!(You will be my witness.)'는 명령문이 아닙니다. 내가 직접 보고 들은 바가 없는데 명령을 한다고 무작정 증인이 될 수 없을 것입니다. '되리라'는 명령문이 아니라 (의지)미래형입니다. 즉 예언적 말씀입니다. 성령을 부어 주고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중인 되게 만들 거야!라는 예수님의 다짐입니다. 결국, 우리를 그런 존재로 만드시겠다는 것입니다. '되리라'는 초청이자 부르심이며 또한 간절한 소망입니다. 하나님이 하시겠다고 하시면 그 일은 반드시 이루어질 것입니다. 하나님이 초대하시고 이끄시는 삶으로 함께 들어가는 오륜의 공동체 되길 축복합니다.
https://youtu.be/93waNpakMTs?si=f9qnI2JgHReLpWb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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