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유튜브의 홈 화면에 TV 시리즈 드라마의 몰아보기 영상이 알고리즘 추천으로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대개 그냥 흘려보내지만, 자막이 너무 자극적이어서 클릭을 하는 경우도 있고 그 후에는 1시간이 넘는 전체 영상을 보게 됩니다.
지성 배우가 열연한 '악마 판사'를 보았습니다.
폐수가 흐르는 것을 방치하여 수십 명의 마을 사람들을 죽게 만든 사업주 회장이 피고인이었습니다.
변호인은 '업무상 과실치사'로 몰고 갑니다. 그 경우, 5년 형刑이 최대입니다. 국민 참여 재판이어서 압도적으로 유죄 판정이 난 후에 지성 판사는 형량을 선고할 때 사망한 피해자 47명의 이름을 일일이 호명하고 5*47=235로서 235년 형을 선고합니다.
드라마를 보면서 희생자의 이름이 하나하나 불릴 때 제 가슴도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들 한 분 한 분의 삶이 너무 소중한 사연을 갖고 있고 유가족들의 아픔이 절절하게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폐수 방류 한 건이 아니라, 47건이 맞다고 생각되었습니다.
대형 사고가 날 때마다 그 희생자 한 명 한 명의 이름과 사진을 언론에 드러내는 것에 대해 당국과 유가족 또는 사회단체의 의견이 대립되는 것을 보게 됩니다. 너무 일반적이고 반복적인 현상이어서 양쪽의 생각이 잘 이해되지 않았었는데, 이번에 드라마를 보면서 깊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2011년 동일본 지진으로 많은 사람이 죽었을 때, 어느 일본 작가는 그것은 수많은 사람이 죽은 하나의 사건이 아니라 수만 명의 개인적 존재가 죽은 수만 건의 사건이라고 했다고 합니다. 각각의 사람의 소중함은 퉁쳐서 하나의 숫자로 바꿔 표현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제가 어느 재난의 책임자이거나 그 악영향을 강하게 받을 위치에 있다면, 아마도 그 재난으로 인해 희생된 이름이 '드라마에서처럼' 호명되는 것이 무척 싫거나 두려울 것 같습니다. 그 이름들 하나하나가 불러일으킬 사건의 슬픔이 너무 커서 숨기거나 회피하고 싶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 반대 편에 서 있는 분들은 아무도 책임지려 하지 않는 야속한 세상에 맞서는 방법으로서 굳이 그 사고로 인해 죽어간 이들의 이름을 공적으로 호명하고자 하는 것 같습니다.
여기에 대한 제 생각은 여기서 이야기할 바는 아닌 듯합니다.
누구 탓이냐 보다는 '우리가 함께 지금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를 생각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지금 무너진 사람들이 일어서고 나면 곧바로 반드시 해야 할 일을 해야 합니다.
복구에 전념하고 이유는 나중에 따지자는 주장이 책임져야 할 사람들의 회피를 위한 주의 돌리기가 아니어야 하고, 미연에 방지할 수 있었던 일이 엄청나고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가져온 요인들이 무엇인지를 살피는 것을 미루는 잔머리가 되어도 안 됩니다. 우리가 할 일은 비난도 아니지만 회피도 아니어야 하고, 그러한 요인들을 찾아서 즉조치하고 장기적으로 재발을 방지할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그것이 수많은 슬픈 이야기들을 조금이나마 치유할 수 있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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