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거리~
헌신적이면서도 진실 된 신앙속에서의 삶을 추구하는 최장로는 하나님의 희생적인 사랑을 몸소 실천하기 위해 고아원을 설립하여 자선사업을 하고 있다. 고아원의 아이들과 자신의 아이를 차별하지 않기 위해 아들을 고아원에서 함께 생활하게 하여 키우는데, 아들인 요한은 이 과정에서 어릴 때부터 의남매 지간처럼 돈독하게 지내온 명숙과 성장함에 따라 이성으로써 서로 좋아하게 된다. 요한은 일본으로 유학을 떠나게 되는데 아버지 최장로부터 결혼문제로 연락을 받게 된다. 요한의 결혼 상대는 평소에 최장로의 자선사업을 물질적으로 도와주고 있었던 교회 목사의 딸로 최장로는 정략결혼을 시키려한다.
명숙과 사랑하고 있는 사이에도 불구하고 요한은 고아를 며느리로 받아들일 수 없다는 아버지의 위선적인 태도에 갈등하고 이 사실을 알게 된 명숙을 고아원을 떠나게 된다. 결국 아버지의 뜻대로 목사의 딸과 애정 없는 결혼을 하게 된다.
시간이 지난 후 고등학교 동창 모임을 가진 요한은 2차 술집에서 우연히 명숙을 만나게 된다. 돈 많은 후실로 들어가 술집 마담으로 변한 명숙은 가정이 있는 요한에게 자신의 사랑을 고백하게 되고 애정 없는 결혼 생활일지라도 기독교적인 관념에 길들여 져버리는 요한은 이러한 명숙을 거절하고 만다. 요한에게 있어 명숙과의 사랑은 이미 하나의 아름다운 추억일 뿐이다.
명숙은 결국 자살을 택하고 요한도 불행한 삶을 살게 된다.
이 소설에 나오는 네 명의 주인공으로부터 실패한 사랑의 결과를 볼 수 있다.
최장로는 표면적으로는 헌신적이면서 희생적인 사랑을 고아원을 통해 보이지만 자신의 이해타산이 걸린 문제에서는 고아인 명숙을 받아들이지 않는 위선적인 태도를 보인다. 또한 자신의 뜻으로 고아원을 운영하는 것이 아닌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에 진정한 사랑과 믿음 없이 고아원 운영하는 위선적인 인물이다. 고아들을 친자식처럼 사랑하기 위해 자기 자식과 함께 기르지만 정착 고아와의 결혼은 반대한다. 이러한 최장로의 고아원 사업은 진정한 기독교 사랑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만을 위한 하나님에게 보이기 위한 위선적인 고아사업에 지나지 않는다. 또한 자신의 장로라는 직급 사명감 때문에 자선사업을 하는 인물로 신에게 충성을 받치는 것에만 몰두하는 인물이다.
최요한은 진정한 기독교인이 아니라 아버지의 강요에 순응적으로 길들여져 기독교 교리에 얽매어 자신의 의지 없이 따르는 나약한 인물이다. 논리적으로 설득하기 보다는 무기력한 태도를 보인다.
명숙을 사랑하지만 아버지에게 자신의 사랑을 설득조차 하지 않는 무기력한 인물로 용기없는 우유부단한 성격의 소유자이다. 자신의 장래인 결혼까지도 아버지 뜻에 따르는 나약한 인물로 도덕적인 선은 넘지 않지만 지극히 소시민적이라 할 수 있다.
명숙 또한 요한과 같은 맹락을 따르는 인물로 자신의 처지를 쉽게 인정하여 고아 며느리는 받아들일 수 없다는 최장로의 말에 쉽게 순응하여 무기력하게 고아원을 떠남으로써 자신의 인생을 좀 더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못하는 인물이다. 주홍글씨의 헤스더 처럼 낭만적인 사랑관을 지닌 인물로 가정을 꾸리고 있는 한 가정인 요한에게 자신의 사랑을 고백하고 현실적인 사랑을 나누기를 원하는 나르시스 적인 인물이다.
명숙과 요한이 결혼하지 못하고 결과적으로 무기력한 삶을 산 것은 그들의 성숙한 용기와 설득력 있는 자신의 의지 보여주지 못함에 따라 현실을 극복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것은 결과적으로 명숙의 자살로 까지 이어지게 된다.
요한의 아내는 맹목적으로 기독교를 신앙하는 기독교인으로 한 가정의 주부로서 한 가정의 아내로서의 정상적인 역할보다는 교회를 우선으로 하는 인물이다. 좋은 일은 신의 은총이고 나쁜 일은 인간의 죄업으로 보는 극단적인 인물이라 할 수 있다. 맹목적인 갈등은 없지만 인간적인 사랑은 차갑고 냉혹하기 때문에 요한이 수용하기에는 장벽이 있다.
결과적으로 가정을 꾸려나가고 있지만 애정이 없는 소외된 무관심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이 네 명의 주인공은 포괄적인 면으로 볼 때 아가페적인 사랑은 하고 있다고 볼 수 있지만 그 본질을 볼 때 기독교적인 사랑이 아닌 실패된 사랑을 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것은 사랑의 그 실천 방법에 근본적인 문제가 있었기 때문에 자연히 그 결과도 문제가 따를 수 밖에 없다. 무조건적인 사랑이 아니라 어느 하나의 수단으로 사랑을 하고 있기 때문에 이들의 사랑은 진정한 사랑이 아니다.
그 주인공의 사랑의 실패 과정을 보면, 최장로의 경우 이웃에 대한 사랑을 실천하기 위해 하나의 자선사업(고아원 운영)을 해 나가지만 이는 인간으로서 하나의 동정에 지나지 않는다. 인간적인 사랑에 머물지 않고 무조건적인 희생적 사랑인 기독교적인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주지는 못한다. 그 단면적인 예로 자신의 이해관계가 얽혔을 때 고아를 며느리로 받아들이지 않는 것을 볼 수 있다. 결국 이웃에 대한 사랑은 실패되었다고 볼 수 있다.
최요한의 사랑은 남녀간의 사랑으로 어른으로 성장하면서 이성으로 좋아하는 명숙과의 사랑을 지키지 못하고 무조건으로 아버지에게 순종하는 모습을 보인다. 아버지를 논리적으로 설득 하지 못하고 자신의 용기나 의지를 보여주지 못한다. 맹목적으로 순종하는 모습으로 아버지에게 길들여져 버린 모습을 보인다. 결국 아버지의 뜻대로 정략결혼을 따르는 소극적이면서도 무기력한 모습보여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하지 못하게 되어 사랑에 실패하게 된다.
명숙의 사랑 요한을 사랑하지만 최장로의 말에 스스로 무기력한 자괴감에 젖어 고아원을 떠나 돈 많은 사람의 후실이 되어 술집 마담으로 전략하게 된다. 요한과 마찬가지로 자신의 운명 개척하지 못하고 수용하고 자포자기한 모습을 보여준다. 사랑의 실패로 요한과 맺어지지 못한다.
요한의 아내 사랑은 부부간의 사랑보다는 하나님의 사랑을 우선시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는 곧 정상적인 가정을 지탱하지 못하게 되고 맹목적인 신앙의 모습만을 보인다. 인간의 나약함을 신앙적인 관점에서 보아 배타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부부로서의 인간적 사랑을 의식하지 못해 정상적인 주부의 역할보다는 교회의 생활에만 몰두한다. 인간적인 모습의 모든 것을 매도하고 부정한다. 특별한 갈등은 없지만 인간적인 사랑은 차갑고 냉혹하기 때문에 요한이 수용하기에는 장벽이 있다. 정상적인 부부간의 사랑을 유지 하지 못하고 방관하는 모습은 부부로서의 사랑 실패했다고 볼 수 있다. 인간적인 사랑은 상실한 여성으로 인간적인 삶을 죄로 돌려 부정적으로 생각한다.
주인공들 수행해야 될 직무는 사랑이지만 최장로의 그릇된 자선사업, 요한과 명숙의 소극적이면서도 나약한 모습의 사랑, 요한 아내의 잘못된 신앙관과 인간애의 결핍은 단면적으로 우리 기독교 사회를 보는 듯하다. 진정한 신앙생활이라고는 볼 수 없는 위선이 가득한 맹목적인 신앙관은 최장로와 요한 아내를 통해 기독교의 본질이 무엇인지 돌아보게 된다. 하나님만을 따르는 맹목적인 신앙보다는 자신 주위의 이웃들에게 무조건적인 사랑과 현실에 충실하는 것이 진정한 신앙생활이라 할 수 있을 것 이다. 가령 길거리에서 예수를 믿어야 천당에 간다는 설교를 하고 다니는 일부 기독교인과 그 맥락이 비슷하다 할 수 있을 것이다. 기독교를 많은 이에게 전파하는 것이 그들에게는 중요한 과업이겠지만 그러한 것보다는 자신의 가정이나 직장, 현실에 충실하면서 주위에 어려운 이웃들에게 사랑을 베푸는 것이 진정 하나님이 바라는 것이 아닌가 싶다.
또한 요한과 명숙의 미숙한 태도를 통해서는 자신의 가치관을 세우지 못하고 진정한 자아를 발견하지 못한 어린 시절에 주위에 강요에 의해 종교생활을 시작한 어린 아이들이 떠오른다. 진정 자신이 원하는 이념이 아니라 부모님의 뒤를 쫓아 성장하게 되면 결국에는 요한과 명숙처럼 자신의 뜻을 제대로 말할 수 없는 소극적인 태도를 보여 갈등 상황에서는 그 자리를 도피하는 것 밖에는 해결할 능력을 기르지 못하게 된다.
자신의 진정한 자아를 발견하여 뚜렷한 주관이 있었다면 이 소설의 두 주인공은 서로에게 사랑을 베풀며 행복한 삶을 영위해 나갈 수 있었을 것이다.
이 소설은 기독교적인 박애사랑 헌신적인 사랑을 우리에게 과연 무엇인지 인간적인 사랑과 대비시켜서 보여주고 있다. 기독교적인 사랑은 누구를 사랑해야하는 것이 아니라 무조건적인 무제한적인 사랑이라고 할 수 있다. 자기에게 도움을 주는 자에게만 한하여 주는 사랑은 조건적이고 이기적인 인간적인 사랑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사랑은 아가페적인 사랑으로 발전하지 못한다. 어떠한 이해 타산적인 저울질에 따른 사랑은 진정한 사랑이 아니다. 기독교적인 사랑 즉, 하나님의 사랑은 희생에 근거를 둔 무조건적인 사랑이다. 이기적인 인간적 사랑이 아닌 이러한 사랑이 이루어 질 때 오늘날 우리 현대사회에서 일러나는 갈등이 어느 정도는 해결될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또한 이 소설에서 말하고 있는 형식에 치우쳐져 본질을 등외시하고 표면적인 것만 따지는 한국의 기독교 사회의 한 단면 비판한 것으로 기독교의 본질을 바르게 알고 이를 실천해야 될 필요가 있다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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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전문
피해자(被害者) 이범선
1
「일요일. 그건 여러 가지 뜻을 가진 날이야요. 휴일, 공일, 안식일, 주일. 어쩌면 사람의 일생도 꼭 그 일요일과 같은 것인지도 몰라요. 어떤 사람은 일요일을 참 즐거운 휴일로 맞이하기도 하고, 또 어떤 사람은 애인과의 약속이 틀어져서 아무것도 하는 일없이 공일로 지내기도 하고, 또 어떤 사람 은 주일로 고스란히 교회에다 바치기도 하고……. 제 일요일은 공일이었어요. 그리고 요한(耀翰) 씨의 일요일은 주일이었어요. 공일과 주일. 그건 하늘과 땅처럼 달라요. 그러나…… 잘 생각해 보 면 같은 점이 하나 있어요. 공일도 또 주일도 둘다 제것이 아니었다는 점, 그 점만은 똑같아요. 제 일요일은 헛되이 우울하게 버려졌어요. 그리고 요한씨의 일요일은 교회에 바쳐졌어요. 받았던 곳으로 다시 바쳐졌어요. 그래요,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 그리고 지금은 아무것도 안 가진 저와 요한씨가 이렇게 마주 서 있는 거야요.」
20년 만에 만난 그녀의 말이었다.
양 명숙(梁明淑).
그렇게도 사랑하던 명숙이가 술집 마담이 되어 내 앞에 서서 한 말이었다.
그녀는 늙었었다.
그러나 그녀의 눈만은 아직도 옛날처럼 맑고 고왔다. 처음보는 세상에 놀라는 갓난 송아지의 그것처럼 까맣고 윤기 있는 그 순한 두 눈, 어딘가 먼 곳을 바라보는 꿈꾸는 듯한 그 눈.
그녀의 커다란 두 눈에 마침내 샘물처럼 치렁치렁 눈물이 괴는 것이었다.
나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였다.
그녀의 말대로 나는 아무것도 가지고 있지 못했다.
열정도 용기도, 또 지성도 신앙도, 아니 하다못해 허위나 악덕마저도 내게는 없었다. 완전한 등신이었다.
2
나는 장로의 외아들로 기독교 가정에 태어났다.
그러니까 태아 때부터 나는 예수를 믿은 셈이다.
첫돌을 맞이하던 날 나는 어머니의 품에 안겨서 잠이 든 채 유아 세례를 받았다고 한다. 글자 그대로 그랬다고 한다. 나는 전연 기억하지 못하는 사실이니까. 아버지가 나의 이름을 최(崔)라는 성 밑에다 성경 속에서 나오는 인물을 빌어다가 요한, 최 요한(崔耀翰)이라고 한 것처럼 그것은 아버지와 어머니가 완전히 자기들의 의사에 의하여 그렇게 했을 따름이었다.
말하자면 나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하나님 앞에서 나를 장차 하나님을 믿는 아들로 키울 것을 맹세하고 나에 대한 신원보증인이 되기를 서슴지 않았던 것이다.
그만큼 그들은 나를 믿었고 또 아들이란 말을 믿었던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들은 나를 업고 교회에 나갔다고 한다.
손목을 끌고 갔다고 한다. 연보돈과 사탕을 사 먹을 돈을 양손에 쥐어 주어서 교회로 보냈다고 한다.
과연 그들은 나를, 즉 아들을 교인을 만드는 데 성공하였다. 나는 교회라는 울타리 안에서 한 걸음도 밖으로 나오지 않고 자랐다. 그리하여 지금 드디어 집사(執事)라는 교회의 직분까지 맡았다. 뿐만 아니라 직장마저 교회 계통 학교인 T고등학교였다.
다들 나를 진실한 교인이라고 하였다. 주일마다 교회에 나가고 또 머리를 수그리고 눈을 감아 소위 기도를 하는 도수가 많은 것을 진실한 교인이라고 한다면 나는 과연 진실한 교인이었다.
남들은 한 주일에 두 번 예배를 보지만 나는 학교에서와 교회에서 한 주일에 수없이 예배를 보니까. 그야말로 생활 전체가 그대로 예배 속에 푹 잠겨 있는 셈이다. 그러니까 나는 최소한으로 쳐도 부지런한 교인이 되는 셈이었다. 그러나 <모든 것은 그저 아버지 하나님의 뜻으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하고 인간 만사를 마치 칠판에 쓴 분필 글씨를 지우개로 지우듯 간단히 해결해 버리는…… 손녀가, 그러니까 나의 딸이 소아마비로 다리를 저는 것까지도 성경 속의 소경의 이야기를 끌어다대어 하나님의 뜻이니라 하고 쉽사리 단념해 버릴 수 있는 그런 아버지의 믿음을 도저히 따라갈 수가 없는 것이었다.
그런데 어찌된 셈인지 나는, 그 딸애가 다리를 절게 된 것은, 결혼을 하고도 아직 옛날의 여인을 못 잊어 늘 마음 한구석에 접어 넣어 두는 그런 죄 때문이라고 나를 원망하는 아내의 말보다, 아버지의 그, 모든 것은 아버지 하나님의 뜻에서라는 어처구니없는 말이 더 불쾌한 것이었다.
그야 아버지 자신이 양복점 쇼우윈도우 안에 남의 이름이 박힌 새 양복을 입고 멍청히 서 있는 마네킨이 되는 것까지는 내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지만, 그렇다고 아들마저 서 있어야 할 아무런 까닭도 나는 발견하지 못하였기 때문이었다.
그래, 아버지의 말대로 나의 딸애가 다리를 절며 애들의 놀림감이 되고는 뒤뜰에 혼자 쭈그리고 앉아서 개미집을 들여다보며 소리 없이 우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 있어서라면 당장에 두 손바닥과 발등에 굵다란 대못을 땅땅 때려 박는 그런 참혹보다 오히려 몇 배나 더한 그 잔인한 짓의 대가로 얻어지는 하나님의 뜻이란 도대체 무엇인지 나는 알고 싶다.
또 아내의 말대로 그렇게도 악착스러운 벌을 받아야 할 죄를 내가 지었다면 그 벌은 마땅히 나 혼자 받아야 할 것이거늘, 그렇다면 아내는 딸애의 그런 꼴을 보고도 어머니로서 아무런 고통도 느끼지 않는다는 말인가? 어쨌든 나는, 아버지와 아내, 다같이 진실한 기독교 신자이면서 전연 그 질이 다른 두 사람, 좋은 일이나 궂은 일이나 다 하나님의 뜻이라는 아버지와, 또 하나는 좋은 일은 하나님의 은혜이고 궂은 일은 사람의 죄값이라고 생각하는 아내 사이에서, 이것도 저것도 아닌 맹랑한 교인이 되어 버렸다. 불행하게도 나는, 아버지처럼 마음이 태평일 수가 없었다. 마치 주인이 사주는 기차표를 손에 들고 이제 서울로 간다니까 그저 좋아서 얌전하게 시골 역 대합실에 앉아 있던 식모애처럼, 성경 한 권을 옆구리에 끼고 졸고 앉았기엔 내게는 너무나 대합실 창밖의 하늘이 맑고 고왔다.
또 나는 다행히도 아내처럼 자학증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저 태초의 남자인 아담이 죄를 지었대서 그녀는 죄인이라고 했다. 사랑하는 사람을 사랑했대서 죄라고 했다. 미운 사람을 미워했대서 죄라고 했다. 그녀는 그저 죄인이었다. 말하자면 인간으로 태어난 것이 벌써 죄값에 형무소에 던져진 것인 양 그녀는 생각하는 것이었다.
그녀는 목사의 딸이었다. 미인이었다. 나와 결혼을 해서 어린애를 셋이나 낳았으면서도 아직 처녀처럼 예뻤다. 그리고 또 그는 악착스러운 신자였다. 나는 악착스럽다고 한다. 그녀는 성경책을 채찍 대신으로 쓰고 있다.
6·25 사변 당시 다들 피난을 가는데 끝내 남았다가 죽은 그녀의 아버지 목사는 교회 앞뜰의 돌비석이 되었다.
「나는 교회를 지키련다.」
그것이 탱크를 끌고 밀려 들어오는 공산군의 폿소리를 들으며 그녀의 아버지가 한 말이었다.
그리고 그녀의 아버지는 과연 교회를 지켰다. 아니 교인은 한 사람도 없이 다 피난을 간 뒤에 남은 건물을 지켰다. 그녀 아버지는 결국 벽돌집을 지키다 공산군에게 죽은 것이었다. 그는 창고에서 예배를 본 일이 없어서 그랬던지 교회와 예배당을 분간 못했던 것이었다.
그의 딸이 바로 나의 아내인 것이다. 나의 아내도 꼭 그녀의 아버지와 같은 점이 있었다.
그녀는 매일 새벽, 새벽 기도를 드리러 예배당으로 간다.
그 바람에 나는 아침마다 어린애 우는 소리에 잠이 깨는 것이다. 아직 젖이 떨어지지 않은 셋째놈은 잠이 깨면 엄마를 찾으며 운다. 그러면 나는 이불을 머리 위에서부터 뒤집어써야 한다. 나는 세상에서 제일 싫은 것이 어린애가 우는 소리다. 그런데 아무리 이불을 뒤집어써도 소용이 없다. 나는 머릿속의 신경을 팽팽하니 당기고 그것을 손톱으로 빡빡 긁는 것 같은 것을 느낀다. 그럴 때마다 나는 참다 참다 못하여 부엌에서 밥을 짓고 있는 식모에게 애매한 소리를 지르곤 하는 것이다.
「야, 가서 아주머니 불러 와.」
그러면 식모에는 아내를 부르러 가는 대신 들어와서 어린것을 업고 나간다.
「엄마도 참. 오오, 가엾어라.」
식모애는 제법 어린 것을 다랠 줄 안다. 그러나 그때에는 벌써 나의 잠이 완전히 깨었을 때다. 우는소리로 시작된 나의 하루는 영락없이 불쾌할 수밖에 없다. 그것이 하루나 이틀이 아니다. 아주 날마다 꼭 그렇다.
「여보, 그 새벽 기도 좀 집에서 올리구려. 애가 우니 어디 잠을 잘 수 있소.」
언젠가 나는 아내더러 이렇게 말했다. 아내는 나의 말이 도시 무슨 뜻인지 알아듣지부터 못하겠다는 얼굴이었다. 그녀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은 채 돌아앉고 마는 것이었다.
그것은 분명히 미안하다는 태도가 아니라 그런 것도 말이라고 하느냐는 태도였다. 나도 더는 말을 하지 않았다.
다음날도 마찬가지였다. 울음 소리로 나의 하루는 시작되는 것이었다.
나는 생각하였다. 과연 그녀의 아버지는 예배당을 지키다가 공산군에게 죽을 만하다고. 아니 과연 그녀는 벽돌집을 지키다 총에 맞아 죽은 노인의 딸이라고.
어쨌든 그녀는, 기도는 꼭 예배당 마룻바닥에 엎드려서 해야만 되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 회수가 많으면 많은 그만큼 그녀의 심령이 깨끗해지는 것으로 아는 것이었다.
「여보, 당신은 뭐 교회를 목욕탕으로 아우?」
한 번은 그런 말을 아내에게 하였다고 밤새도록 울며 기도하는 바람에 꼬박 잠을 못 잔 일도 있었다.
그러기에 이즈음은 아무런 소리도 안 하기로 하였다.
그런 나는 정말 이것도 저것도 아니었다.
아버지처럼 모든 것을 하나님께 밀어 맡기고 방금 낮잠을 자다 깨어난 때처럼 허심할 수도 없었고, 그렇다고 아내처럼 마치 머리의 비듬을 털듯이 예배당 마룻바닥에다 쉽사리 마음의 괴로움을 떨어버릴 재주도 못 가지고 있다.
그렇다고 남들처럼 마음놓고 푸른 하늘 밑에 나가 꽃과 새와 더불어 뛰놀 만큼 대담하지도 못했다.
그것이 어려서부터의 오랜 습관에서인지는 몰라도 나는 주일이면 꼭 교회에 나가야 마음이 놓이는 것이었다.
마치 6·1제 소작료를 바치는 것처럼, 6일은 세상을 위하여 일하고 하루는 교회를 위하여 일하는 자신이 속으로 우습기도 하였지만 그래도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어쨌든 오늘까지 사십 평생을 하루도 일요일을 가져본 기억이 없다.
내게는 주일만이 있었다.
3
주일은 도리어 여느 날보다 더 바쁜 날이었다.
아침 일찍부터 유년 주일학교다, 중등반이다, 그것이 끝나면 대예배, 곧 이어서 제직회(諸職會), 그리고 저녁에는 저녁대로 또 저녁 예배.
그야말로 나의 일요일은 주님의 일로 꽉 차 있었다.
그날도 나는 예배당 맨 뒷걸상에 앉아 있었다.
대예배 때의 집사로서의 나의 일은 모든 교인들이 다들 들어와 자리를 잡고 앉은 다음에 조용히 출입문을 닫고 뒷자리에 앉았다가 예배가 끝나면 다시 문을 열어 놓는 것이었다. 언제나 그랬지만 늙은 목사님의 그날 설교는 더욱 지리하였다.
나는 슬며시 왼팔 양복 소매를 밀어올리며 고개를 숙여 팔목 시계를 들여다보았다.
12시를 5분 지났다. 꼬박 35분간의 설교였다. 아니, 아직도 열심히 이야기를 하고 있으니 얼마를 더 끌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나는 한 번 교회 안을 둘러보았다. 가을이라고는 하지만 아직 낮에는 제법 더운 탓인지, 고개를 수그리고 있는 교인들 가운데는 졸고 있는 사람이 꽤 많았다.
강단 바로 밑에, 일반 교인들의 걸상과는 달리 벽에 기대어 세로 놓인 걸상에 나란히 걸터앉은 네 사람의 장로들도 무척 지리한 표정이었다.
맨 앞쪽에 나의 아버지 최장로가 까만 두루마기 앞자락을 쪽펴서 여미고 마치 나무를 깎아 만든 사람처럼 까딱도 하지 않고 앉아 있었고, 그 옆에 구공탄 공장 주인인 강장로가 다갈색 양복에 유난히 굵은 테 안경을 복면처럼 쓰고 앉았고, 그 다음에 시장에서 해산물 장사를 하는 김장로가 포개고 앉은 한 다리를 뚱뚱한 몸집에 어울리지 않게 아까부터 잠시도 쉬지 않고 한들한들 떨고 있고, 또 그 옆에, 그러니까 맨 안쪽에 앉은 의사 박장로는 언제나 그렇듯이 목이 부러진 것처럼 고개를 푹 수그려 가슴에 턱을 묻고 앉아 있었다. 그런데 그 박장로가 두손으로 움켜쥔 성경과 찬송가 책이 슬며시 무릎 위에서 흘러내리려고 하다가 다시 그의 손에 붙들려 제자리로 끌려 올라가고 하는 것으로 보아서 분명히 그는 졸고 있는 것이었다.
나는 또 한 번 눈을 내리깔아 팔목시계를 내려다보았다.
12시 8분이었다. 시계의 초침은 내가 보고 있는 사이에도 바지런히 돌고만 있었다.
「……몸과 마음을 한데 묶어서 하나님께 바쳐야…….」
쾅 하고 목사가 주먹으로 강대를 두드렸다.
나는 깜짝 놀라서 고개를 번쩍 들었다.
나의 바로 옆에 앉아서 아까부터 꾸벅꾸벅 졸고 있던 이집사도 흠칫하였다.
「오 주여!」
이집사는 잠꼬대처럼 중얼거렸다. 그는 아마 참아도 참아도 자꾸만 졸리는 자기를 저 겟세마네 동산에서의 베드로에게 비추어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저 앞에 앉은 박장로도 놀란 모양이었다. 그는 무릎 위의 성경과 찬송가 책을 챙기며 자세를 고쳐 앉았다.
나는 또 시계를 보았다.
12시 8분.
청량리서 명동까지 버스로 가면 35분. 15분 늦는다. 합승으로 가면 20분. 겨우 약속 시간에 댈 수 있다.
12시 20분. 명동 S다방.
그날은 일본서 같이 공부한 옛날 친구들이 일년에 한번 모이는 동창회가 있는 날이었다.
시간에 대어 가자면 지금쯤은 떠나야 한다. 점점 초조하여졌다.
왜 하필 주일로 정하였을까 하고 나는 속으로 그들을 택일을 나무라 보았다. 그러나 나의 그런 생각은 당치도 않은 것이었다.
그들의 일요일은 휴일이니까.
다들 직장을 가지고 있는 친구들이고 보니 한자리에 모이자면 휴일이 제일 적당할 수밖에.
「일요일.」
나는 입 속으로 가만히 뇌어 보았다. 그것은 어느 외국 말처럼 나에게는 귀에 선 말이었다. 일요일.
나는 그날 하루만이라도 일요일이 내게도 휴일이었으면 하고 생각하였다.
나는 또 시계를 내려다보았다.
12시 7분이었다.
「그러면 다같이 기도합시다.」
겨우 설교가 끝났다.
다들 눈을 감고 엎드렸다. 그런데 그 기도가 또 꽤는 길었다.
그래도 나는 차마 기도를 올리는 동안만은 시계를 들쳐볼 수가 없었다.
이제는 찬송가를 부르고, 헌금을 걷고 또 찬송가를 부르고 축도를 하고.
예배가 완전히 끝나자면 아직도 10분은 걸릴 것이라고 생각하며 나는 눈을 꾹 감고 있었다.
4
예배가 끝나자 나는 제직회가 있다는 말을 못 들은 체하고 빠져나오고 말았다. 성경을 낀 채 그대로 합승 정류장으로 달려갔다.
다방 층계를 올라가며 시계를 들여다보았을 때는 벌써 약속한 시간보다 20분이나 늦었었다.
나는 다방 문을 밀었다. 요란한 재즈 음악 소리가 매캐한 담배 연기를 밀고 마주 나왔다. 나는 한 바퀴 다방 안을 둘러보았다. 걸상마다에 들어앉은 남자 여자의 눈들이 나의 시선과 딱 마주쳤다. 그러나 내가 찾고 있는 얼굴은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나는 갑자기 쑥스러운 생각이 들었다. 나는 쓱 돌아서고 말았다.
레지의 새침한 눈이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아니 나를 쳐다보는 것이 아니라 내 옆구리에 낀, 가장자리에 빨강 칠을 한 성경책을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옆에 달린 메모판을 살펴보았다.
많다. 거기 지금 마주 앉은 사람들의 수효보다 만나지 못하고 간 사람들이 더 많았다.
X회사 K씨. 혜숙씨. ○○도 안과장. 박형. 김선생. 박선생. 마공. S대학 창원씨. 란씨. 무슨 형. 무슨 씨.
하아트형의 판대기에 쳐진 가는 고무줄에 생선 비늘처럼 꽂힌 비밀의 껍질들.
나는 그 쪽지를 하나씩 눈으로 젖히며 혹시 나의 이름이 있는가 하고 찾았다.
T고등학교 최목사.
나는 오른쪽 가장자리에 볼품없이 널따랗게 접어 찔러 놓은 쪽지를 발견하였다.
최목사. 그것은 친구들이 나를 부르는 별명이었다. 학교 이름이 T고등학교인 것으로 보아서 그것은 내게 써 놓은 것이 틀림없었다.
오래 기다렸소. 그러고 보니까 오늘이 바로 목사의 노동일 이었군. 못 오는 것으로 알고 다들 가오. 혹시 들르거든 바로 중국 집으로 오시오.
동창 일동
나는 곧 중국집으로 갔다.
보이가 인도하는 복도는 음침하였다. 거의 매방마다 문 앞에 여자와 남자의 구두가 나란히 놓여 있었다.
「여!」
문을 열자 앉아 있던 친구들이 일제히 함성을 올렸다.
「어서 들어오게. 그렇지 않아도 지금 자네가 온다 안 온다하고 떠들고 있던 참일세.」
「여전하군, 최목사.」
「목사 성경을 끼고 술집에 나타나다. 하하하.」
「설마 전도를 하러 온 것은 아니겠지.」
요리상을 가운데 놓고 빙 둘러앉은 그들은 벌써 얼근히 취해들 있었다.
나는 그들이 내미는 손을 하나하나 쥐어 보며 그대로 안으로 들어가 앉았다.
「자 그럼, 우리 목사님의 건강과 행운을 위하여.」
언제나 이런 좌석에는 사회격인 보험 회사의 경리과장이라는 뚱뚱보 R이 자기의 잔을 들어올렸다.
「늦어서 미안하네.」
나는 내 앞에 놓인 보리차 잔을 그대로 그들의 술잔과 같이 들어올렸다.
「아니, 그게 뭔가? 그건 잔은 잔이로되 잔은 아니노라, 야」
옆에 앉아 있던 간장 공장 S가 시조를 읊듯이 얼른 자기의 잔을 비워 가지고 나에게로 내밀었다.
「아니야. 내 어디 술을 할 줄 알아야지.」
나는 한 손으로 술잔을 밀어내었다.
「이러지 말어, 알고 모르고가 어딨어?」
S는 기어이 나의 앞에다 잔을 놓고 정종을 가득히 부었다.
나는 그저 그대로 앞에 잔을 놓은 채 앉아서 오래간만에 대하는 얼굴을 하나하나 둘러보고 있었다.
그러는 사이에도 술잔은 자꾸 왔다갔다하였다.
현재의 이야기보다 학창 시절의 이야기에 더 꽃을 피웠다.
어떤 동창회나 다 그렇게들 모여 앉아서 술을 마시며 다시 옛날 기분으로 돌아가 떠드는 것뿐이었다.
다들 그렇게 어울려 떠드는 가운데 나만이 맑은 정신으로 잘 끼어들지를 못했다. 그저 이 친구 저 친구의 얼굴만 번갈아 보았다. 그래도 그렇게 옛 친구들이 용케 한자리에 모여 앉았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즐거웠다.
「아, 이거 아직도 그대로 보기만 하네. 정 이러긴가?」
아까 술을 따라 준 S가 술잔을 집어서 나의 입가에까지 들어올렸다.
「가만, 가만 있게.」
나는 그의 손에서 잔을 받아 다시 상 위에 내려놓았다.
「하, 이 사람아, 주도를 통 모르는구만. 어서 마시고 잔을 내게로 돌려야지.」
「그러지 말게, 목사더러 술을 마시라면 되나?」
보험 회사의 R이 빙그레 웃으며 나의 편이 되어 주었다.
「목사? 그렇지, 최목사. 그런데 목사는 정말 술을 마시면 안 되나?」
「이 사람아, 목사 술 마시는 거 봤나?」
R이 자기의 잔을 비워서 S에게로 건네주며 말했다.
「그런데 말이야, 난 보지는 못했지만 듣자니까 목사도 곧잘 술을 마신다던데. 담배도 피우고.」
「그야 미국 사람이니까.」
R은 S의 손에 쥐어진 잔에 술을 따랐다.
「아니야, 그런 것도 아닌가 보던데. 내가 아는 장로 한 사람은 미국 유학을 가서는 술도 마셨대. 그러니까 이게 어째?……아, 그는 장로니까 그런가?」
「에이 나쁜 친구. 장로나 목사나 같은 거야. 그것도 모르나 아직? 하하하.」
R은 큰소리로 웃으며 나를 힐끔 쳐다보았다.
「그래. 그렇다면 이건 문제가 좀 복잡해진다. 한국 장로도 미국 가서 미국 술을 마시면 괜찮다. 그러니까 결국은 그 술이 어디서 만든 것인가가 문제 되는가 보군 그래.」
「점점 더하는군.」
「말하자면 양주나 양담배는 목사나 장로가 복용하셔도 죄가 안 되고, 한국산은 이게 원체 품질이 나쁘니까 죄가 되구. 음, 알았어. 그거 참 묘하다. 고 하나님 참 맹랑하구나. 그러니까 하나님은 술맛 을 잘 아는 모양이지, 하하하하.」
「아니야, 그런 게 아니야.」
나는 그저 그렇게 말해 두는 수밖에 없었다.
「아니야? 그럼 뭐야? 문제는 둘 중에 하나지. 하나님이 술맛을 잘 알아서 양주와 막걸리나 배갈을 척척 구별하든가, 그렇지 않으면 인종 차별을 하든가지.」
S는 벌써 상당히 취해 있었다. 그가 들고 있는 술잔에서는 술이 줄줄 흐르고 있었다.
「그런 게 아니야.」
나는 그저 같은 말을 되풀이하였다.
「아니긴 뭐가 아니야? 다 집어치워. 나도 이래 뵈도 한때는 예수도 믿었어. 아니야, 지금도 하나님 은 믿고 있어. 그렇지, 우리 누가 그래 하나님을 안 믿나?」
S는 훅 단숨에 술을 들이켰다.
「그러면 더구나지. 용서하게. 나 술 못 마시는 걸 자네도 알지 않나?」
「알지. 아니까 마시라는 거야. 목사, 장로, 집사, 술만 안마시면 별짓 다 하여도 천당에 간다고 생각 하는 그 작자들, 교회를 무슨 자기네 고리대금 연락소로 아는 그런 장로들. 난 자네도 그런 축이 될 까 봐서 그러는 거야. 그래, 깔고 앉아서라도 술을 먹이고 싶단 말이야. 하나님을 집어치우라는게 아냐. 오해 말어. 그 국산 예수 좀 집어치우란 말이야.」
「알았네. 알았어. 예수에 무슨 국산, 미제가 있나, 하하하.」
나는 그의 무릎을 두드려 가며 달래 보았다. 그러나 S는 좀처럼 그만두려고 하지 않았다.
「있지. 국산이지. 순 국산이지, 하하하.」
「자, 이제 그만두게. 어서 술이나 들게.」
R이 또 S의 잔에 술을 부었다.
「그럴까, 그만 할까. 하하하. 어때 기분 나쁜가. 응?」
S는 나를 쳐다보며 빙그레 웃었다.
「천만에, 자네 말이 하나도 틀린 것이 없어. 다만…….」
「다만?」
「한 가지 있다면, 남의 종교는 인정해야지.」
「그야 그렇지. 그러니까 난 자네더러 하나님을 믿지 말라고 한 일은 없어. 그저 우리 이렇게 즐거우니 같이 술이나 한잔 하자고 했을 뿐이야.」
「아, 그거야 좋은 일이지.」
「그렇지. 그러니까 한잔 하란 말이야.」
S는 또 내게로 잔을 내밀었다. 다들 와 하고 웃었다.
「그런데 내가 술을 못 마신단 말이야.」
「아니, 못 마시는 건가 안 마시는 건가?」
「사실은 그 어느 것도 아니야.」
「그 어느 것도 아니라니?」
「아직 한번도 술을 마셔 본 일이 없으니까 못 마시는 건지 마실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르고, 또 무슨 내가 기독교를 믿는대서 그래서 술을 안 마시는 것도 아니고. 하하하.」
「그래, 그럼 됐어. 오늘 한 번 시험해 봐.」
「그런데 아무런 흥미도 안 느낀단 말이야.」
「에이 나쁜 사람. 그럼 그만두게. 그러나 술을 안 마신다는 게 더구나 못 마신다는 게 무슨 자랑이 될 수는 없는 거야. 안 그래?」
S는 좌중을 둘러보았다.
「그렇지. 자랑이 될 수는 없지. 술을 마시는 것이 뭐 자랑이 될 수 없는 것처럼, 하하하.」
R이 받아 대꾸를 하고 웃었다. 그것으로 이야기는 딴 데로 흘렀다. 각기 현재의 자기 위치를 이야기하였다. 나중에는 식구 타령까지 나왔다.
다들 생활 문제로 고생들을 하고 있었다.
「결혼만 하지 않았더라도 좀 나았을 텐데.」
「그래 식구는 늘지, 봉급은 그대로지, 물가는 오르지. 결혼한게 후회 막급이야.」
「서양 속담에 이런 말이 있는 것 기억하나? 없이 지낼 수도 없고 또 함께 지낼 수도 없다. 그게 여 자야. 하하하하.」
다들 한바탕 웃었다.
「자넨 행복하지?」
S가 나에게로 비스듬히 몸을 돌리며 말했다. 그러나 그의 어조는 아까와는 달리 가라앉아 있었다.
「그저 다 그렇고 그런 거지 뭐.」
「아니야. 자넨 행복할 것 같애.」
「그래?」
「언제나 자넨 조용하거든. 무언가 생활이 가득 차서 조용히 넘치고 있는 것 같은…….」
「그래? 어쩌면 아무것도 들지 않고 텅 비어서 그런지도 모르지.」
「아니야, 모르긴 하지만 자네는 행복할 거야. 적어도 마시지 않고도 꽤 참아 갈 수 있을 만큼이라 도.」
「아, 그거야, 그저 습관이지 무슨 딴 뜻이 있겠나?」
「또 술 이야기가 되었군. 그 말은 이제 그만하기로 했지?」
「상관 있나?」
「아, 어쨋든 오늘은 참 즐겁네. 다들 만날 수 있으니. 아.」
S는 두 팔을 뒤로 돌려 방바닥을 짚고 비스듬히 몸을 젖히며 감개가 큰 듯이 좌중을 한 번 둘러보았다. 어쩐지, 그의 옆얼굴이 쓸쓸해 보였다. 나는 문득 아까 그렇게 그가 권하던 술을 한 잔쯤 받았어도 좋을 뻔 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사실 그가 나에게 한사코 술을 권하는 것도 우스운 일이었지만, 또 한 잔쯤 술을 마시기를 그렇게도 굳게 거절한 나 자신의 일도 우스운 것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그의 술을 그렇게도 끝끝내 거절한 것은 무슨 나의 신앙과 배치된대서가 아니었다. 나 자신 조금도 술을 죄라고 생각해 본 일이 없으니까. 그러면 나의 생리가 정말 한잔 술도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생각하였나? 그것도 아니었다. 나는 사실 지금까지 술을 마셔 본 일이 없었으니까 술에 대한 나의 생리는 전연 미지수였다. 그러면 아까 말한 대로 마시고 싶지 않으니까 안 마셨을 뿐이다. 잘 생각하면 그것도 있기는 있었지만 내가 정말로 꺼린 것은 기독교의 교리도 아니요, 또 나의 생리고 아니요, 다만 내 뒤에 있는, 남의 허물을 찾아 두 눈을 반들거리고 있는 가장 독실한 교인들이었던 것이다.
거기까지 생각하니까 나는 나 자신의 비겁하고 초라한 꼴이 구역이 나게 싫어졌다.
「집어치워라. 그 국산 예수.」
좀 전에 S가 하던 말이 한번 귓속에서 울렸다.
「이거 우리만 마시구 떠들어서 안 됐구만.」
내 이쪽 옆자리에 앉았던 통신사 기자인 K가 나의 손을 무릎 위에서 한번 두드렸다.
나는 그저 빙그레 웃어 보였다. 그들은 다시 이야기의 꽃을 피웠다. 어느 친구가 택시 영업을 하다 망했다느니, 어느 재벌은 7년 전까지 과자 배달을 했다느니.
그런데 나는 아무리 찾아도 그들과 공통되는 화제를 찾을 수가 없었다.
장로교가 두 파로 갈리고, 그것도 모자라서 총회에서 목사들이 멱살을 쥐고 치고받고 싸우고 또 갈라졌다는 이야기 따위는 그들이 나보다 더 잘 알고 있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그들은, 그것이 애당초에 이야기거리도 되지 않는 것으로 경멸해 버린 태도들이었다.
나는 무언가 이상한 열등감 같은 것을 느끼고 있었다. 그러나, 세상 일에 덜 물들고 그래도 종교 속에서 산다는 것이 왜 열등감을 가져야 하는 것이랴 하고 스스로 마음을 끌어올려 보는 것이었다.
그런데 내가 속해 있는 사회, 소위 기독교 사회를 생각하자 나는 술 안 마신 얼굴이 술 취한 그들 앞에서 아무도 모르게 확 달아올랐다.
그저 손가락 하나를 들고 내리는 것까지도 그것이 죄냐 아니냐로 따지려 드는 사회.
왜 그들은 세상 만사를 죄냐 아니냐로만 따지려 드는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예수님은 분명히 서로 사랑하라 하셨다. 그러나 그들은 남을 사랑하기에 노력하기보다, 남을 해치지나 않을까 두려워할 뿐이고, 선을 행하고자 하기보다는 죄를 범하지나 않을까 두려워 하는 것이었다.
모든 일에 소극적이고 이기적인 그들.
아버지 하나님 앞에 안타까이 원할 줄도 모르고, 진심으로 감사할 줄은 더구나 모르고, 그저 귀신딱지 앞에 엎드려 두 손을 삭삭 비는 무당과 흡사한 자세로 죄만 사해 달라고 빌고 있는……그러면서도 막상 죄가 무엇인지도 모르는.
나는 또 한 번 술 취한 그들을 둘러보았다. 다들 나이가 사십 줄이면서 꼭 어린애들처럼 떠들고 있었다. 무언가 마음이 푹 놓이는 친구들이었다. 하다하다 그들은 마침내 왜말로 된 교가까지 합창을 하였다. 모두들 어깨를 꼈고 좌우로 흔들고 있었다.
「자, 이제 그럼 이차로 가자.」
누군가가 소리를 질렀다.
「그래 그래.」
「어디로 갈까?」
「거기 가지. 그 평양집.」
「좋아. 그 마담말이지. 멋진 마담.」
5
중국집을 나와서 떠들썩하며 걸어서 간 곳은 종로 뒷골목이었다. 문등이 환히 밝은 어느 한식집 대문 앞에 섰다.
통신사의 K가 초인종 단추를 눌렀다. 안에서 째롱째롱한 여인의 대답하는 소리가 길게 들렸다.
대문이 삐걱하고 열렸다. 짙은 화장을 한 여인이 반쯤 열어잡은 대문 틈으로 갸름한 얼굴을 내어밀었다.
「아이, 난 또 누구시라고, 어서들 들어오세요.」
여인의 빨간 입술이 전등불 밑에서 방싯 웃었다.
「오늘은 아주 귀한 손님을 한 분 모시고 왔지.」
「정말 진객이지. 너희들은 아마 일생에 한 번 볼까말까한 손이다.」
와르르 대문 안으로 밀려 들어서며 그들은 또 한바탕 떠들었다.
「누구신데요?」
대문을 다시 닫아 걸고 돌아서며 여인이 물었다.
「목사님이야, 목사.」
「정말이세요?」
「자, 자세히 봐. 어때, 목사 같지 않아?」
보험회사의 R이 나의 어깨에 손을 걸고 가볍게 흔들었다.
그러지 않아도 어리둥절하던 나는 점점 더 시골뜨기모양 어물거리기만 하였다.
밖에서 보기에는 그저 흔히 보는 헌 집이면서 막상 안에 들어와 보니까 그것은 흡사히 무슨 요술장이의 집처럼 이리저리 복도가 깔리고 마루가 있고 방이 있고 사통 오달이었다.
우리 일동은 아까 그 얼굴이 갸름한 여인의 뒤를 따라서 몇번이나 복도를 돌아 어떤 방으로 들어갔다.
빨간 장판이 유리처럼 반들거리는 온돌방이었다. 그들은 방 한가운데 놓인 교자상을 둘러싸고 앉았다. 상 복판에는 코스모스꽃이 꽃병 하나 가득히 꽂혀 있었다. 다들 양복 저고리를 벗었다. 여인은 익숙한 솜씨로 그것들을 받아 걸었다.
남들이 하는 대로 저고리를 벗어 여인에게 맡긴 나는 여기서도 또 성경과 찬송가 책을 간수하기에 쩔쩔매었다. 뒤에 놓았다가 옆으로 끌어다 놓았다가 하며 나는 그저 자꾸 거기에만 정신이 쓰였다.
「이 선생님은 정말 목사님인가봐. 이리 주세요. 제가 보관했다가 드릴께요.」
여인이 나에게로 손을 내밀었다. 매듭이 하나도 없는 가늘고 매끈한 귀여운 손이었다.
「괜찮습니다.」
「왜요. 저 같은 것이 만지면 안 되는 거야요?」
「아니요. 그런 게 아니라…….」
「그럼, 이리 주세요.」
나는 옆에 놓았던 성경을 집어들었다. 나는 성경을 그 여인에게 건네주려다 말고,
「저 혹시 신문지 있으면 한 장만 주십시오.」
하고 다시 무릎 위에 내려놓았다. 성경을 신문지에라도 싸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신문지요?」
여인은 방 한 모서리에 놓인 조그마한 탁자 위를 살펴보았다.
「이건 안 되겠어요?」
그녀는 파랑색 백화점 포장지를 한 장 집어들었다.
「아, 그거 좋습니다.」
종이를 받아든 나는 거기에다 책을 쌌다.
「역시 성경을 끼고 술집은 좀 안된 모양이군 그래.」
「그렇지, 벌써 걷어치워야지. 하하하.」
「아니, 그거 뭐 그러지 않으면 어떤가?」
둘러앉은 친구들이 나의 그 모양을 보고 제각기 한 마디씩 하였다.
「그러고 보니까 선생님은 가짜 목사님이야. 호호호.」
종이에 싼 성경책을 받아서 탁자 위에 올려놓으며 나의 등뒤에서 여인이 웃었다. 나는 공연히 안경을 만지고 이마에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쓸어올렸다.
「예수님은 잠깐 눈을 감고 계시라는 거지 뭘.」
쩔쩔매고 있는 나의 꼴이 재미있는 듯 통신사의 K가 벽에 기대어 앉으며 나를 건너다보고 빙그레 웃었다.
「그런 게 아니야.」
나는 정말 난처하였다.
「그럼 뭐야?」
이번에는 젊은 검사가 담배에 불을 댕기며 말했다.
「우리 나라에서는 아직 술을 안 마시는 사람만이 크리스찬인줄 알고들 있거든.」
「그거야 그렇지. 크리스찬들은 술을 안 마시니까.」
「그것 봐. 자네부터도 크리스찬은 술을 마셔서는 안 되는 것으로 알고 있지 않나? 그래서 그러는 거지. 나 때문에 딴 교인들까지 욕을 먹일 수는 없단 말이야.」
「아니, 누가 딴 교인들 욕을 했나? 그저 자네가 가짜 예수라고 했지, 하하하.」
「글세, 그거야 바로. 자네들은 잘 아니까 나만 가짜라고 하지만, 날 모르는 사람들은 내가 성경을 끼고 술집에서 나가는 것을 보면 정말 내가 무슨 기독교의 대표자이기나 한 것처럼 교인들 전체를 거들어 가짜라고 하거든.」
「그러니까 자네는 분명히 가짜라는 것을 자인하는군. 하하하」
「자넨 역시 검사야, 전문가 앞에서는 꼼짝할 수 없군. 사실을 말하자면 뭐 그리 신통한 교인도 못 되지. 그렇지만 술집에 들어왔대서 가짜는 아니야.」
「들어오긴 했지만 술을 마시지는 않았으니까, 그런 말이지.」
정말 검사가 죄인 심문을 하듯 하는 그들의 대화에 다들 와아 하고 웃었다.
「하하하. 아니 그렇게 묘한 이야기도 아니야. 술을 마시고 춤을 추었대도 마찬가지지. 뭐 그것이 무 슨 중대한 것은 아니야.」
「그래? 그럼 됐어. 오늘은 최목사님도 한 잔 해야 하는 거야.」
「목사 목사 하지 말게. 난 집사야.」
나는 술을 마셔야 한다는 Y의 말에는 대답을 하지 않고 딴 소리를 하고 빙그레 웃고 말았다.
나는 눈을 상 위로 돌렸다. 코스모스가 조용히 웃고 있었다. 이제 가을도 깊었다. 나는 문득 불국사 뒤뜰의 단풍을 생각하고 있었다. 다음날 새벽에는 고등학교 졸업반 애들을 인솔하고 경주로 수학 여행을 떠나게 되어 있었다.
방 안에 번쩍 형광등이 켜지자, 곧 이어서 음식이 들어왔다.
아까 그 얼굴이 갸름한 여인과 또 한 사람 아주 나이가 어려 보이는 여인이 같이 들어왔다.
어린 여인은 맞은편에 R과 Y사이에 가 앉았고, 처음의 그 여인은 나와 K사이에 끼여들었다.
「어, 이건 뭐야? 이렇게 되면 나만 외토리 아닌가.」
내 오른쪽에 앉았던 S가 어느 희극 배우의 흉내를 내며 떠들었다.
「선생님은 자꾸만 주정을 하니까 글허지 뭐유.」
나이 어린 여인이 살짝 눈을 흘겨 보였다. 다들 또 한바탕 웃었다.
「야, 이거 기분 나쁘다. 마담 어디 갔니? 마담 좀 나오라고해. 마담이 아니고야 어디 내 상대가 돼 야지, 하하하.」
「흥, 선생님이 뭐 사장이유?」
나이 어린 여인이 주전자 주둥이를 멀리 S의 잔으로 가지고 오며 말했다.
「아, 요것 봐라. 그래 사장이어야 마담을 배알할 수 있다는 수작이지?」
S는 그저 사람이 좋아 웃음을 띠면서 잔을 내밀었다.
「마담은 지금 ○○○이 왔어요.」
내 옆에 앉은 처음의 여인이 엄지손가락을 살짝 들어 보였다.
「알았다. 알았어. 마담이구 마님이구 내 무슨 상관이 있나요. 하하하.」
S는 술잔을 옆의 내게로 돌렸다.
「자, 어? 아니야. 여기야 여기.」
S는 무심결에 내 앞으로 내밀었던 잔을, 미안하다는 듯이 내게 머리를 한번 끄덕해 보이고 다음의 K에게로 건네었다.
「버릇이 돼서 그래.」
S는 다시 내게로 얼굴을 돌리며 무안한 듯이 웃어 보였다. 나도 마주 웃었다. 학생 시절부터 사람이 좀 헤식어서 걸핏하면 놀림감이 되곤 하던 그가 어쩐지 갑자기 좋아졌다. 그가 지금 주는 술이라면 한 잔쯤 받아 마시고 싶기까지 하였다. 아니 만일 그가 그대로 권했다면 그것을 거절하는 것이 도리어 큰 죄가 될 것만 같았다. 악의라고는 눈꼽만큼도 없는 그였다.
「아니야. 그러면 내가 도리어 미안한데. 한잔 주게.」
나는 내 앞에 그대로 빈 채로 놓여 있던 조그마한 유리잔을 집어들었다.
S는 내 얼굴에서 무엇을 찾아보려는 듯 한참이나 멍청하니 바라보고만 있었다.
「난 자넬 놀린 건 아니야.」
S는 내가 혹시 자기를 오해하고 역설로 나오는 것이나 아닌가 하고 당황하는 눈치였다.
「놀리긴. 그저 어쩐지 자네가 주는 술이라면 마셔도 좋을 것 같애.」
「그래? 그럼 꼭 한 잔만 하게. 취하진 말게.」
S는 내 옆에 앉은 여인의 손에서 술주전자를 받아 들었다. 조심스레 내 잔에다 반쯤만 따랐다.
나는 술잔을 입가로 가져갔다.
「야, 목사님이 드디어, 됐어, 됐어.」
좌중이 나를 보자 와아 하고 함성을 올리며 박수를 쳤다 나는 옆의 S를 돌아보았다. 그런데 다들 떠드는데 S만은 이상스레 진지한 표정을 한 채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S의 눈에다 웃음을 던져 주었다. 그래도 S는 웃지 않았다. 나는 훅 하고 술을 들이마셨다. 후춧가루 냄새 같은 것이 카하니 코로 뿜어 나왔다. 목구멍으로 윗속까지 무엇인가 따끔한 것이 싸악 훑어내렸다. 나는 나의 잔을 소위 주도에 의하여 S에게로 돌렸다. S는 마치 자기가 강제로 독약을 먹인 사람을 바라보듯이 불안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면서 잔을 받았다. 나는 처음 마신 독한 술에 입 안과 콧속이 이상하였지만 억지로 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렇게 억지로라도 웃어 보이지 않으면 안 될 만큼 S의 표정이 심각하였던 것이다.
「미안하네, 요한!」
참 오래간만에 그의 입에서 들어보는 나의 본명이었다.
「뭐가?」
나는 그의 잔에다 술을 따랐다.
「그게 설사 아무것도 아니라 해도 사람이 오래지켜 오던것을 잃어 버린다는 것은 서운한 일인데.」
「그런 것도 아니야. 실은 내가 지켜 왔다기보다 아무도 건드리는 사람이 없으니까 그대로 남아 있었던 것에 지나지 않지.」
「마찬가지 이야기지. 어쨌든 미안해.」
「그렇지만 새로 그 어떤 귀한 것을 발견한다는 것은 더 즐거운 일이 아닌가?」
S는 내가 부어 준 잔을 앞에 놓고 물끄러미 들여다보고만 있었다.
「그런데 최목사, 자네 하나님을 정말 믿을 수 있다고 생각하나?」
나와 S가 술자리에는 어울리지 않게 시무룩해서 이야기를 하는 모양을 본 검사 Y가 반 농조로 말을 던졌다.
「하나님?……그야 믿지.」
「믿어? 글세, 난 바로 그것을 묻는 거야. 어떻게 믿느냐구?」
「어떻게 라니, 그저 믿는 거지!」
「그저 믿어? 그거야 어디 되겠나? 난 암만해도 석연치 않단 말이야.」
「자네 자당께서는 안녕하신가?」
지금까지 나와 Y의 대화를 빙글빙글 웃으며 듣고들 있던 좌중의 시선이 일제히 나에게로 쏠렸다. 이 친구가 도대체 무슨 뚱딴지 같은 수작을 하는 건가 하는 눈들이었다.
「갑자기 우리 어머님은 또 왜? 하하하.」
Y검사는 크게 웃었다.
「자네가 그 어머님을 지극한 효성으로 모시듯이…….」
「어머니야 내 어머니니까.」
「그 어머님을 자네는 믿지?」
「그럼, 어머님을 안 믿어?」
「친어머니라고?」
「친어머니 아니고? 이 친구가 졸지에 날 고알(孤兒) 만들 셈인가?」
「그래? 분명히 고아는 아니란 말이지.」
「그야……? 하하하. 나를 낳은 것을 본 것은 아니니까, 하하하.」
Y의 말에 다들 웃었다.
「자기를 낳은 어머니를 본 사람이 세상에 어딨어요?」
나의 바로 맞은편에 앉은 나이 어린 여인이 웃음을 거두며 나를 향해 입을 삐죽거렸다.
「그러기 말입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자기 어머니를 의심하는 사람은 거의 없거든요.」
나는 Y대신 그 여인을 향해 말했다.
「그야 자기 어머닌데요, 뭐.」
어린 여인은 또 한 번 입술을 뾰족하니 내밀며 눈으로 웃었다.
「자, 이제 그만. 이거 뭐 기독교 연구회같이 되어 버렸어. 술, 술, 술이나 들어.」
R이 상 위에서 크게 한 번 손을 내저었다.
「꼼짝 못하고 졌어. 하하하.」
검사가 자기 이마를 툭 쳤다.
「그 참 묘한 말이야. 어머니를 믿듯이, 음 어머니를 믿듯이.」
내 옆에서 S가 머리를 크게 주억거리고 있었다.
「자, 그런 의미에서 내가 한잔 붓지.」
Y검사가 나에게 자기의 잔을 건네 주었다. 나는 그 잔을 또 받지 않을 수 없었다.
「역시 선생님은 목사님이야. 멋진 목사님이야요. 호호호.」
내 옆에 앉은 여인이 입을 가리며 웃었다.
그러다 보니까, 친구들은 내 잔도 내 잔도 하며, 각기 술잔을 나에게 건네주었다. 나는 꽤 여러 잔의 술을 받아 마셨다.
거의 10시나 되어서야 우리들은 그 집을 나왔다. 나는 신을 신고 일어설 때 한 번 머리가 핑 도는 것을 느꼈다. 그러나 밖에 나와 시선한 가을바람을 쐬자 꼭 목욕을 하고 나섰을 때처럼 낯이 시원하였다.
우리들이 여전히 떠들며 골목길을 빠져 나올 때 멀리서 교회의 차임 소리가 들려 왔다.
내 주를 가까이 하려 함은
십자가를 짐 같은 고생이나……
나는 속으로 차임 소리에 맞추어 찬송가를 부르고 있었다. 생전 처음으로 주일 저녁 예배를 빼어먹었다는 생각이 아까부터 자꾸만 마음에 걸리는 것이었다. 그렇게 막 큰길로 나선 때였다.
「자네 성경책은 어쨌나?」
누가 뒤에서 나의 어깨를 툭 쳤다. 나는 멈칫 했다. 술집에 두고 그냥 잊어 버리고 나왔던 것이었다.
「먼저들 가게.」
나는 지금 나온 골목길로 돌아 들어갔다.
「최목사, 술 마귀에 지다. 하하하하.」
「하하하하.」
골목길을 바삐 들어가는 내 등 뒤에서 그들은 크게 웃고들 있었다.
나는 아까 그 집 대문 초인종을 눌렀다. 아까와 같이 여인의 대답이 길게 들리고, 고무신을 끄는 소리가 났다.
「저, 잃어 버린 것이 있어서…….」
대문 안에 들어선 나는 쑥스러운 생각에 공연히 뒤통수를 긁적거렸다.
「네, 아이 참, 제가 책을 안 드렸네…….」
얼굴이 갸름한 그 여인은 곧 마루로 올라가 복도를 돌아 사라졌다.
나는 거기 마루 앞에 서서 마루방 천정에 걸린 형광등을 멍청히 바라보며 그녀가 돌아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저 안의 어느 방에선가 남자들과 여자들의 웃음 소리가 뒤섞여 멀리 들려 왔다. 나는 마치 그들이 문틈으로 내 모양을 내다보며 웃기나 한 것처럼 얼굴이 확 달아올랐다. 나는 슬그머니 뒤로 돌아서고 말았다. 얼마 안 있어 복도를 걸어오는 발소리가 들려 왔다. 마루가 삐걱거리는 소리가 차차 가까웠다. 이윽고 여인의 발소리가 마루로 나왔다. 나는 마루 쪽으로 다시 돌아섰다. 그 순간 나는 숨이 꽉 막혔다. 머릿속에서 바람개비 같은 것이 팽그르르 빠른 속도로 도는 것 같았다. 나는 눈을 꼭 감았다. 그리고 생각하였다.
(내가 술에 취하였구나. 이것이 바로 취한 것이구나. 그렇지 않다면 지금 내 눈앞에 명숙이가 서 있을 리가 있는가? 나는 취했구나.)
머릿속 바람개비의 속도가 차차 느려지더니 천천히 돌기를 멈추었다. 나는 가만히 눈을 떴다. 진한 자줏빛 양단 치마에 연한 보라색 저고리를 입은 여인이, 유리 상자에 든 인형모양 마루에 까딱도 않고 선 채 나를 쏘아보고 있었다.
「혹시 최 요한 씨 아니세요?」
여인의 조용한 목소리였다.
「명숙, 양 명숙이죠?」
나는 양복 저고리 호주머니에 찌르고 있던 두 손을 빼내며 자기도 모르게 큰 소리로 외치고 말았다.
「역시 최선생님이셨군요.」
그녀는 치맛자락을 끌며 한 걸음 내 앞으로 다가오다 말고 다시 그 자리에 섰다. 두 눈만이 나를 노려보았다.
「어떻게 이런 델 오셨어요.」
그녀의 어딘가 비꼬는 듯한 목소리였다.
「오랫동안 찾았습니다.」
「저를요?」
그녀는 입가에 야릇한 미소를 띠었다. 형광등의 파란빛을 받은 그녀의 커다랗고 까만 두 눈이 나의 어깨 위를 스치고 어딘가 먼 곳으로 점점 그 초점을 밀고 나갔다.
나는 그저 유령을 바라보듯 그녀의 모습을 바라보고 서 있었다.
「미안합니다. 오래 기다리게 해서.」
아까 그 여인이 백화점 포장지에 싼 책을 들고 마루로 나왔다. 여인은 거기 서 있는 그녀와 나를 한 번 번갈아 쳐다보았다.
「언니 아시는 분이오?」
「…….」
「오, 참 언니도 예수를 믿었다지, 어려서? 여기 있습니다, 목사님.」
여인은 나에게 책을 내주었다.
「미안합니다.」
책을 받아든 나는 다시 명숙에게로 돌아섰다.
「목사님?」
그녀는 빤히 나의 얼굴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나는 이제 돌아서야겠다고 생각은 하면서도 그저 그렇게 선 채 머뭇거리고 있었다. 무어라 그녀가 나에게 말을 해 주기를 바랐고, 또 나도 그녀에게 무슨 말이건 해야 될 것 같아서였다. 그러나 그녀는 끝내 말이 없었다. 나도 그녀에게 무슨 말을 해야 좋을지 통 알 수가 없었다.
옆에 선 여인이 이상하다는 듯이 우리들의 표정을 살피고 있었다. 나는 또 한번 현기증 같은 것을 느꼈다.
「그럼…….」
나는 그녀에게 목례를 하고 돌아섰다. 여전히 그녀는 말이 없었다. 뿐만 아니라 그녀는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안녕히 가십시오. 또 오세요.」
나는 대문까지 따라나온 그 얼굴이 갸름한 여인의 인사를 등뒤에 들으며 천천히 골목길을 걸어나왔다. 골목길을 다 빠져나올 때까지 나는 혹시 발소리가 들리지 않는가 하고 몇 번이나 뒤로 귀를 기울였는지 모른다.
(명숙이, 명숙이.)
버스를 기다리고 서서도 나는 수없이 그녀의 이름을 외고 있었다.
(취한 건 아니야.)
버스를 타고도 나는 그저 멍청히 서서 지금 본 그녀의 모습만 눈앞에 그려 보고 있었다. 어쩐지 온 몸의 기운이 쑥 빠져 흐르는 것 같았다. 왜 아까 나는 마루로 뛰어 올라가서 그녀를 얼싸안지를 못하였는지 모른다고, 나는 그 자리에 풀썩 주저앉아서 엉엉 울고 싶게 후회스러웠다.
(역시 나는 바보, 병신이다.)
나는 손잡이를 붙들고 있는 팔에다 머리를 가져다 대고 눈을 감아 버렸다. 바로 내가 선 앞에 앉은 여학생이 빤히 나를 올려다보았다. 옆에 선 중년 신사도 나를 힐끔 돌아보았다. 나는 그들에게 취한 사람 취급을 당하고 있는 것이었다. 사실 나는 그때 거의 정신이 없었다. 그러나 취한 것은 아니었다.
버스가 동대문에 머무르자, 앞뒷문으로 또 사람들이 많아 올랐다. 나는 떼밀리는 대로 한 걸음 더 안으로 물러섰다. 버스가 부르릉 하고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갑자기 머리가 핑하였다. 버스가 크게 커어브를 틀었다. 그러자 나는 왈칵 구역을 느꼈다. 나는 입을 꾹 다물며 눈을 감았다. 왼쪽 겨드랑이 밑에 낀 성경이 흘러 떨어지려 했다.
나는 버스가 정류장에 머물렀다 떠날 때마다 구토를 느꼈고 또 그때마다 자꾸 흘러내리는 성경을 챙기며 겨우 청량리까지 와서 내렸다. 나는 길에 내려서자 왈칵 구토를 느꼈다. 나는 손을 입에다 가져다 대고 바로 옆에 있는 여관 간판이 달린 골목 안으로 달려 들어갔다. 나는 거기서 쭈그리고 앉기가 무섭게 왈칵 토하고 말았다. 술내가 시크무레하니 코를 찔렀다. 역시 마실 줄 모르는 술을 몇 잔 마신 것이 좋지 않았다. 입 안이 떫었다. 나는 일어서서 양복 바지 주머니에서 수건을 찾았다. 이번에는 성경책을 오른손에 옮겨 쥐었다. 왼쪽 주머니를 뒤져 보자는 것이었다. 바로 그때였다.
「여기 있어요.」
등 뒤에서 여자의 소리가 났다. 나는 깜짝 놀랐다.
뒤를 돌아보았다. 나는 또 한번 놀랐다.
「……!」
「선생님!」
어스름한 전등빛에 잘 보이지 않으나 거기 내 앞에 손수건을 내어 들고 마주 선 것은 분명히 좀 전에 술집 마루에 인형처럼 서 있던 양 명숙이었다.
「아니, 어떻게……?」
그녀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은 채 자기의 수건을 내 손에 가만히 쥐어 주었다.
나는 그녀의 한 걸음 앞을 걸어 거리 모퉁이에 있는 조그마한 다방으로 들어갔다. 우리는 마주 앉은 채 차를 한 잔 다 마시고 날 때까지 그저 때때로 서로의 얼굴을 바라볼 뿐 말이 없었다. 나는 좀 전에 명숙에게서 받아 입을 닦은 그녀의 손수건을 호주머니에서 꺼내었다. 그녀에게 돌리려다 말고 다시 호주머니에 넣고 말았다. 분홍색 얇은 수건이 커다랗게 더럽혀져 있었다.
「저는 취해서 환상을 보는 것이라 생각했읍니다.」
「꿈인가 했어요.」
다소곳이 고개를 수그린 그녀의 긴 속눈썹이 눈 가장자리에 엷은 그늘을 짓고 있었다.
「그런데 어떻게 여길…….」
「제가 큰길까지 달려 나왔을 때 선생님은 막 버스에 오르고 있었어요. 그러자 곧 버스가 떠났어요.」
그녀는 고개를 약간 쳐들어 나를 한번 쳐다보았다. 다시 시선을 떨구었다.
「차를 잡았어요. 동대문에서 버스를 따라잡았어요. 선생님이 계신 것을 저만치 보았어요.」
명숙은 또 한 번 눈을 치떠서 나를 쳐다보았다. 나는 무슨 말을 해야 좋을지 몰랐다. 그저 그녀의 팔목에서 한들거리는 팔찌의 가는 금줄만 바라보고 있었다.
「선생님은 기어이 목사님이 되셨군요.」
명숙은 자리를 고쳐 앉으며 이번에는 정면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빨간 입술에도 엷은 미소가 피어 올랐다가 곧 사라졌다.
「아니요, 저는 목사가 아닙니다.」
나도 그녀의 얼굴을 비로소 정면으로 바라보았다.
「그래요. 그럼……?」
「교삽니다.」
「교사.」
「네, T고등학교의 말석 교삽니다.」
그녀는 또 한 번 입가에 미소를 띠었다.
20년. 그것은 나와 그녀 사이에 가로놓인 너무나 긴 세월이었다.
나는 그녀에게 묻고 싶은 말이 얼마든지 있었다. 또 하고 싶은 말도 한없이 많았다. 그러면서도 나는 아무런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그녀도 마찬가지로 말이 없었다. 나와 그녀의 시선이 서로 마주쳤다. 그러자 누가 먼저 일어섰는지도 모르게 우리들은 다방을 나왔다. 나란히 걸었다. 몇 걸음 안 가서 합승 정류장이 있었다.
「서울역 가요. 막차 떠나요. 막차.」
모포도 없는 학생모를 잔뜩 젖혀 쓴 합승 차장이 자동차 문을 열어 잡고 서서 큰 소리로 외치고 있었다.
나는 합승차 앞에서 그녀에게로 돌아섰다. 그녀는 고개를 까닥여 보였다.
「내일 또 뵙겠어요.」
그녀는 치맛자락을 감싸 쥐며 나를 쳐다보았다.
「제가 내일 새벽차로 경주 여행을 떠납니다.」
「경주로요?」
「네, 애들을 데리고 수학 여행을 떠납니다.」
「막차 떠나요. 빨리 타세요.」
합승 차장이 또 한 번 소리를 질렀다.
「어서 타시죠.」
나는 옆으로 한 걸음 물러섰다. 그녀는 한번 생긋이 웃었다. 차 안으로 올라갔다. 두 사람밖에 손님이 없는 차 안의 맨 뒷자리로 가 자리를 잡고 앉은 그녀는 무슨 할 말이 있는 듯 반쯤 열린 유리창으로 얼굴을 가까이 가져다 대었다. 나는 인도에서 아스팔트 길로 내려섰다.
「낼 뵙겠어요.」
그녀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차가 떠났다.
「차 시간이 너무 이릅니다.」
나는 구르기 시작한 차를 몇 걸음 따라가며 말했다. 그녀는 내 말을 알아들었는지 못 알아들었는지 뒤창으로 몸을 틀어 돌려다보며 머리를 한번 까닥하였다.
부채 모양으로 펴서 유리창에 가져다 붙인 그녀의 하얀 손이 꽤 멀리 갈 때까지 보였다.
6
대문을 벗겨 주는 아내는 아무런 말도 없었다. 으레 어디를 갔다가 저녁 예배를 빠졌느냐고쯤 물어야 할 아내가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다는 것은 그만큼 아내의 노함이 크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었다.
나는 아내보다 앞서서 방으로 들어갔다. 겨우 양복 저고리만을 벗어 걸고, 나는 베개에서 머리가 떨어진 채 구겨져 자고 있는 어린것들의 머리맡을 조심스레 지나 웃목에 펴놓은 내 자리로 가 누웠다.
「저녁 어떻게 했어요?」
아내의 말은 지금까지 결혼한 후로 한 번도 써 본 일이 없는 말이 되어서 그런지 몹시도 퉁명스러웠다.
「먹었어.」
나는 양복장이 있는 웃목으로 돌아누웠다. 피곤이 한 번에 온 몸을 덮어 왔다. 그러면서도 정작 잠은 오지 않았다.
아랫목에서 아내의 기도 소리가 들려 왔다. 입속으로 중얼거리는 아내의 그 기도 소리는 조용한 방안에 똑똑히 들렸다.
「오, 주여!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그는 지금 시험에 빠지고 있나이다…….」
나는 못 들은 체 눈을 감고 있었다.
아내는 나에게서 술내를 맡았음에 틀림이 없었다. 평생에 주일을 번한 일도 없었던 내가, 하필이면 주일날 저녁에 술까지 마시고 들어왔다는 것은 아내에게는 무서운 일이었으리라.
기어이 아내는 훌쩍훌쩍 울기 시작하였다.
「오, 주여. 그의 심령을 붙들어 주시옵소서. 그를 시험하는 마귀를 물리쳐 주시옵소서…….」
나는 무릎을 꿇어 이마를 방바닥에 대고 앉아서 울면서 기도를 올리고 있는 아내를 등 뒤에 번연히 느끼며 모른 체 눈을 감고 있었다. 아내의 기도는 끝이 없었다. 한 말을 또 하고 또 하고 수없이 되풀이하며 아내는 언제까지나 나의 죄를 대신 비는 것이었다.
나는 이불을 머리 위로 끌어올렸다. 아내의 기도 소리가 훨씬 멀어졌다. 대신 나의 눈앞에는 멀리 20여년 전 일들이 여름 하늘의 솜구름처럼 피어오르기 시작하였다.
평양 기림리(箕林里) 밖의 어느 고아원이었다. 개나리꽃이 노랗게 핀 울타리 밑에 키가 날씬히 큰, 열 서너 살 난 소년과, 흰 얼굴의 눈이 유난히 까만 열 살쯤 나 보이는 소녀가 나란히 앉아 있었다.
「숙이 너 왜 아까 학교에서 울었니!」
「…….」
「선생님한테 야단맞았니?」
「아니.」
「그럼 왜 우니?」
「…….」
소녀는 머리를 푹 수그리고 발 옆에 핀 오랑캐꽃을 손끝으로 건드리고 있을 뿐 대답은 하지 않았다.
「숙인 바보야. 왜 말을 못 해.」
「…….」
그래도 소녀는 대답이 없었다.
단발머리를 수그리고 앉은 소녀가 손끝으로 건드릴 때마다 오랑캐꽃은 옆에 핀 민들레와 꼭 꼭 입을 맞추는 것이었다.
「그럼 난 들어간다.」
소년이 벌떡 일어섰다. 옷에 묻은 먼지를 두어 번 털었다. 소녀는 조용히 고개를 들었다. 소녀의 시선이 운동화를 신은 소년의 발에서부터 점점 위로 훑어 올라왔다. 앉은 채로 얼굴만을 뒤로 젖혀서 옆에 선 소년의 얼굴을 올려다보는 소녀의 두 눈에는 눈물이 가득 괴어 있었다.
「가지 마.」
애원하는 듯한 소녀의 소리였다.
「말도 안 하면서 뭐.」
소녀는 다시 머리를 수그렸다. 그리고 또 가는 손끝으로 오랑캐꽃을 가만히 민들레꽃에 밀어 버렸다.
소년은 슬며시 그 자리에 다시 앉았다.
「애들이 또 뭐라고 그래?」
소년이 소녀의 얼굴을 옆에서 들여다보았다. 소녀는 약간 머리를 까닥거렸다.
「뭐라구?」
「…….」
「고아라구?」
「…….」
소녀는 이번에는 머리를 좌우로 흔들었다.
「그럼?」
「…….」
소녀는 대답이 없고, 소년은 마치 언제까지라도 대답이 있을 때까지는 그러고 있겠다는 듯이 소녀의 옆 얼굴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그들은 한참이나 그렇게 같은 자세로 앉아 있었다. 노랑나비가 한 마리 그들의 눈앞을 팔랑팔랑 날아 지나갔다. 소녀는 나비의 뒤를 따라서 시선을 저만큼 앞에 잔디밭으로 보냈다.
「나보고 요한의 색시라고 놀리는걸.」
소녀의 얼굴이 금시 울기라도 할 것처럼 빨개졌다.
「나쁜 새끼들이야.」
소년은 앞에 세워 안은 무릎 위에 턱을 올려놓았다. 그의 얼굴도 빨개졌다. 소녀는 조용히 소년에게로 얼굴을 돌렸다. 둘의 눈이 반짝 마주쳤다. 소녀의 조그마한 입이 생긋이 웃었다. 이번에는 소년이 자기 발끝으로 시선을 모았다.
7
기림리 밖의 최장로네 고아원 하면, 평양에서는 제일 큰, 아니 거의 유일한 고아원이었다.
그 고아원이 바로 나의 집이었다. 나의 아버지는 젊은 장로로서 그야말로 갖은 애를 써 가며 여러 고아들을 키워 왔다.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염려하지 말라 천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 아시느니라」
나는 지금도 그때 아버지의 방 벽에 아버지가 손수 모필로 써 붙였던 성서의 구절을 외고 있다.
그러나 그때의 아버지의 생활은 그 성서의 말씀과는 동떨어진 것이었다. 그는 그저 항상 많은 애들을 먹이고 입히기 위하여 염려하고 또 애를 써야만 하였다. 아버지는 쉬지 않고 일하였다. 또 어떤 때는 구걸을 하다시피 원조를 구해 다니기도 해야 하였다. 그러나 항상 애들을 먹이고 입히는 것이 부족하였다. 그럴 때면 아버지는 자기 방에 들어가 지친 다리를 끓고 앉아서 몇 시간씩 기도를 드리는 것이었다.
언젠가는 고아 한 애가 도망을 친 일이 있었다. 그날따라 비가 내리고 있었다. 아버지는 반 미친 사람처럼 되어서 빗속을 그 애를 찾아 헤맸다. 밤 늦게야 돌아왔다. 애는 찾지 못하고 아버지 혼자였다. 아버지는 자기 방에 들어가 쓰러졌다. 엉엉 우는 것이었다. 밤새도록 아버지의 기도 소리가 옆방에서 들려 왔다. 고아원 애들도 울었다. 다음날 아침이 되자 고아원 애들은 걸을 수 없는 어린애들만을 남겨 놓고는 다들 밖으로 나섰다. 잃어 버린 애를 찾아오자는 것이었다.
「아버지, 저희들이 찾아올께요.」
고아원 애들은 나의 아버지를 아버지라고 불렀다.
「아버지 하나님, 저 어린것들을 굽어 살피소서. 씨를 뿌리고 물을 주는 것은 사람들이로되 그것을 키우시는 이는 아버지 하나님이라 하신 말씀을 기억합니다.」
도망친 애를 찾아나서는 어린것들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섰는 아버지는 몇 번이고 이렇게 중얼거리는 것이었다.
나는 그런 속에서 고아들과 같이 자랐다. 자고 먹고 입는 게 딴 고아들과 똑같았다. 아니 도시 나는 딴 애들과 나 사이에 아무런 차이를 발견하거나 느끼지 못하였다.
그만큼 철저한 아버지였으며, 따라서 일반 사회의 사람들이 고아의 아버지라고 받들기에 아무런 부족도 없는 분이 나의 아버지였다.
그런 고아들 가운데서도 나는 양 명숙과는 더욱 가까웠다. 나와 명숙은 언제나 함께 다녔다. 명숙은 얼굴도 예쁘지만 마음씨도 퍽 순한 소녀였다. 나의 아버지와 어머니도 많은 애들 가운데서 명숙을 눈에 보이지 않으나 각별히 사랑하고 있었다.
국민학교에 다니던 시절에도 열 명도 넘는 애들이 한 집에서 한 학교에 갔지만 언제나 꼭 나란히 걸어가는 나와 명숙을 이웃집 아주머니들은 오랫동안 친오누이로만 알았다고 한다.
내가 중학교 3학년이 되던 해 명숙이도 여학교에 들어갔다. 어려서는 정말 오누이만 같던 정이 차차 커 가면서는 오누이가 아닌 오누이의 정으로 야릇하게 변하여 갔다. 나와 명숙은 아침마다 서로 기다렸다. 꼭 같이 집을 나서곤 하였다. 그러나 정작 길에 나오면 별로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그저 그렇게 둘이 걷는다는 사실만으로 충분히 우리들은 즐거웠다.
중학을 마친 나는 일본으로 유학을 갔다. 멀리 헤어져 있어도 둘의 애정은 멀어지지 않았다. 아니, 도리어 일주일에 두 번씩 꼭꼭 오는 명숙의 편지에는 가까이 얼굴을 대하고 있을 때에는 감히 하지도 못한 이야기로 꼭꼭 차 있었다.
「그렇게 즐겁고 기다리던 아침 저녁의 식사 종소리도 이제 그리 기다려지지 않습니다. 오빠가 앞에 마주 앉아 있지 않으니까…….」
나는 지금도 똑똑히 명숙의 편지 사연들을 기억하고 있다.
나는 안타깝게 방학을 기다리곤 하였다. 방학이 되어서 집으로 돌아가면 둘의 정은 불처럼 뜨겁게 타오르는 것이었다. 교회로 가고 오는 길이었다. 남몰래 서로의 손을 꼭 쥐고 걷는 골목길은 정말 은혜의 길이었다. 주일이 지나면 우리들은 목마르게 수요일 저녁을 기다렸고, 그 수요일이 지나면 또 주일 저녁을 고대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무엇인가 기다리며 살던 그때의 하루하루는 그저 희망과 즐거움으로 꽉 차 있었다.
명숙이 여학교를 마치고 고아원에서 애들을 돌보게 되던 해 여름 방학이었다. 줄기차게 비가 내리던 주일 저녁, 언제나처럼 나와 명숙은 교회 문밖에서 기다렸다 같이 교회를 나섰다. 좁은 뒷길로 들어서자 명숙은 자기의 우산을 접었다. 그리고 나의 우산 속으로 들어섰다.
「오빠.」
「응.」
「오빠, 이제 어떤 여자하고 결혼할라우?」
나이 열 아홉이면서도 내 앞에서는 언제나 그렇게 소녀인 명숙이었다.
「결혼? 글세 어떤 여자가 좋을까? 숙이는 어떤 남자하고 결혼하겠어?」
「오빠가 먼저 할 테니까, 오빠가 먼저 말해야지 머.」
「내가 먼저 해?」
「그럼 그렇지 뭐.」
「그럴까?」
「그렇지 뭐유.」
「그야 숙이와 한날 한시에 하게 될지 누가 아나?」
「나와 한날?」
명숙은 걸음을 멈추고 빤히 나를 쳐다보았다. 나도 따라 섰다. 우산 위에 쏟아지는 빗소리가 요란하였다. 나는 한 손에 들었던 성경책으로 명숙의 턱을 가만히 받쳐 올렸다. 머리를 뒤로 젖힌 명숙의 얼굴에 우산을 새어 내려온 비가 안개처럼 뽀얗게 젖어들고 있었다.
명숙은 조용히 눈을 감았다. 나는 그녀의 빨간 입술을 향해 나의 입술을 가져갔다. 나는 그때 가슴으로 느끼던 명숙의 심장의 고동을 잊을 수가 없었다.
다음해 봄이었다. 며칠 안 되는 봄방학이라 나는 그대로 일본에 남아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아버지한테서 전보가 왔다. 급히 귀국하라는 것이었다.
나의 혼담이 있었던 것이었다.
「아직은 결혼할 생각이 없습니다.」
나는 아버지 앞에서 분명히 말하였다. 그런데 다음날 주일 예배가 끝나자 교회 문 앞에서 아버지는 나를 불러 세웠다. 그리고 아버지는 어떤 중년 신사에게 인사를 시켰다.
「아, 바로 이 사람이…….」
평양 시내의 모 교회의 목사로서 아버지의 사업을 많이 원조하고 있다는 그 신사는 나의 어깨에 손을 얹으며 유심히 나를 훑어보는 것이었다.
그러던 그는 문뜩 생각이 난 듯이,
「오 참, 얘, 너 이 어른께 인사 드려라.」
하며, 자기 등 뒤에 숨어 서 있던 여학생을 앞으로 밀어내었다. 머리를 뒤에서 두 갈래로 매어 앞으로 늘어 뜨린 그 여학생은 아버지 앞에서 한번 허리를 굽혀 인사를 하고는, 그대로 고개를 수그린 채 홱 돌아서 다시 자기 아버지 등 뒤에 가 숨어 버리는 것이었다.
「여학교 졸업반인데도 아직 철이 덜 나서, 하하하.」
그 목사는 나의 아버지더러 하는 말인지 나를 향해 하는 말인지도 모르게 딸의 변명을 하고 나서 큰 소리로 웃었다.
그날 저녁 예배에는 명숙이가 빠졌다. 부모의 말에 의하면 머리가 아파서 자리에 누웠다는 것이었다.
그날 밤 교회에서 돌아오자 아버지는 나를 안방으로 불러들여 나무라는 것이었다.
「내, 네 어머니한테 다 들었다만…….」
아무리 애가 똑똑하다 해도 고아를 며느리로 맞아들일 수야 있느냐는 것이었다.
나는 정말 어안이 벙벙하였다. 딴 사람이라면 몰라도 나의 아버지 입에서―그렇게도 고아들을 위하여 헌신적인 아버지의 입에서 그런 말을 들을 줄은 정말 꿈에도 상상할 수 없었던 것이다. 아니 난 도리어, 누구 딴 사람이 반대를 하는 경우에도 아버지만은 나와 명숙의 편이 되어 주리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던 것이다.
「얘야, 그래도 혼사에는 지체란 게 있단다. 얘야, 그래 명숙이도 나무랄 데 없이 얌전하지. 그래도 어디 그러냐.」
나중에는 나의 어머니마저 아버지의 편에 서 버리는 것이었다. 나는 끝내 대답을 하지 않았다.
나는 다음날 일본으로 돌아갈 차표를 샀다. 하루라도 속히 내가 집에서 떠나 버리는 것이 제일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하였다. 아무리 아버지가 고집을 세운대도 당사자의 반대를 그냥 무시할 수는 없으리라는 속셈에서였다.
나는 일본으로 떠나기 전에 명숙을 만나서 이야기를 해 두고 싶었다. 나는 명숙이 있는 방문을 열었다. 명숙은 이불을 뒤집어쓴 채 아랫목으로 돌아누워 있었다.
「숙이, 나 내일 아침 차로 떠나.」
나는 문을 열어 잡은 채 서서 말했다. 명숙은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숙이, 몹시 아퍼?」
그래도 명숙은 아무런 기척이 없었다.
「내일 아침 다섯 시 차야.」
나는 기차 시간을 알리고 그대로 문을 닫았다.
나는 명숙이 왜 그러는지를 잘 알고 있었다. 그러기 아침 기차 시간에는 꼭 역에까지 나와 주리라는 것을 믿고 있었다.
「아마 양선생님은 못 나오실 거야요.」
가방을 들어다 주는 애의 말을 들으면서도 나는 꼭 명숙이 역에 나오리라고 끝내 믿고 있었다.
발차 신호 벨이 요란스레 길게 울리고 있는 그때까지도 나는 승강대에 서서 개찰구 쪽을 보고 있었다.
기차는 움직이기 시작했다.
「선생님, 안녕히 가세요.」
포옴에 선 애가 인사를 하였다. 나는 억지로 웃으며 손을 한번 흔들어 보였다. 그리고 또 개찰구 쪽을 살펴보았다. 그러나 끝내 명숙은 나타나지 않았다.
내가 일본으로 가서 나흘째 되던 날이었다.
아버지한테서 편지가 왔다. 내가 있었더라면 더욱 좋을 것이었으나 우선 그 목사님의 딸과 약혼을 했으니 그리 알고 있으라는 내용이었다.
나는 놀라고 분개하였다. 그러나 곧 나는 냉정을 되찾을 수 있었다. 나는 그 아버지의 편지를 차근차근히 접어 다시 봉투에 넣을 수 있었다.
「결혼은 내가 하는 것이니까.」
하고, 마음을 다지며 나는 콧노래를 부르기까지 하였다. 도리어 이렇게 방해가 들어오는 것이 나와 명숙이 사이의 사랑의 강도를 시험하는 데 좋은 자료가 된다고 생각하면, 이제 명숙에게서 과연 어떤 사연의 편지가 올까 하는 것이 궁금하고 즐거운 기대였다.
과연 다음날 또 한 장의 편지가 왔다. 그런데 그것은 눈에 익지 않은 필적이었다. 보모의 편지였다.
겉봉을 뜯고 편지를 펴 든 나의 손은 부르르 떨렸다.
명숙이가 아무도 모르게 집을 나갔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집을 나간 명숙이의 책상 위에서 발견한 것이라 하여 조그만 종이 쪽지가 한 장 동봉되어 있었다. 그 종이 쪽지에는 가로 세로 낙서가 씌어져 있다.
「아버지. 어머니. 同情. 崔耀翰. 孤兒. 어머니. 오빠. 사랑. 비 내리던 밤.」
나는 곧 집으로 달려나갔다.
나를 보자 보모는 울기만 하였다.
어머니는,
「자기 입던 옷도 한 벌 안 가지고 갔으니. 몹쓸 것 같으니. 어디 가서 고생을 하는지.」
하며, 애석해 하였다.
아버지는 나를 보고도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저녁에 상을 받고 앉았을 때 혼잣말로,
「이제 그만큼 컸으니…….」
하고, 역시 걱정이 되는 모양이었다.
나는 며칠 동안을 그저 미친 사람모양 평양 거리를 이 골목 저 골목을 기웃거리며 돌아다녔다. 원래 아무도 없는 그녀이고 보니 어디 찾아가 볼 만한 곳도 없었다.
나는 다시 학교로 돌아갈 생각도 없었다. 그대로 집에 눌러 있고 말았다. 집에는 명숙의 손길이 너무나도 많이 남아 있었다. 언제나 정해 두고 앉던 식당의 그녀의 자리, 분홍색 커어튼이 드리워진 채인 그녀의 방 창문, 어린것들과 손을 맞잡고 유희를 가르치던 뜰, 교회로 가고 오던 골목길.
그것들은 나를 괴롭혔다. 그러면서도 떠날 수 없는 것들이 또 그것들이었다.
나는 그저 하루하루를 그런 것들 속에서 명숙의 그림자를 찾아보는 것으로 지냈다.
아버지는 그런 나를 그저 못 본 체하였다.
「이제 세월이 흐르면…….」
아버지는 그저 시간이 흐르노라면 모든 것이 다 다시 제자리로 찾아드는 것이라고 믿고 있는 것이었다. 그는 그저 여전히 고아들의 아버지로서 부지런히 일만 하는 것이었다.
밭에서, 또 돼지우리에서, 헛간에서, 아버지는 애들을 데리고 그저 수걱수걱 일에만 정성을 모았다.
그러나 나는 아버지를 도울 생각이 조금도 나지 않았다. 또 아버지도 나더러 일을 도우라고 하지는 않았다.
나는 그렇게 열심히 노력하고 있는 아버지의 심정을 영 이해할 수 없었다.
아버지는 분명히 고아를 위하여 헌신적인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그 점만은 아무도 부정할 수 없었다. 그러면서도 그는 끝내 자기의 손으로 그렇게 애써서 키운 고아를 며느리로 맞아들이기를 거절하였던 것이다.
나는 그런 아버지의 생각을 아무리 해도 이해할 수가 없었다. 고아들을 위하여서는 그렇게도 노력을 아끼지 않는 그가 그 고아들을 사랑하고 있지 않다고 생각할 수는 없었다. 도대체 저들을 사랑하지 않고서 그렇게도 지극히 그들을 위하여 애 쓸 수 있을까?
그렇다면 명숙을, 아버지와 어머니가 고아들 가운데서 가장 아끼고 귀여워하던 그 명숙을, 아버지와 어머니가 고아들 가운데서 가장 아끼고 귀여워하던 그 명숙을 며느니로 맞을 수 없다고, 아들을 나무라는 아버지의 사고를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 것일까?
나는 아버지를, 내 마음속에서 위선자(僞善者)를 만들지 않기 위하여 며칠을 두고 그의 심정을 분석해 보았다.
그러다 마침내 나는 아버지의 그 모순된 듯하면서도, 그 자신으로서는 얼마든지 정당화할 수 있는 어처구니없는 생각을 발견하고 말았다.
반드시 고아들―그 버릇이 나쁘고, 비틀리고, 게다가 남의 은공도 그리 깊이 느끼려고 하지 않는 그들을 진심으로 사랑하지 않고도 나의 아버지처럼 열심히 고아들을 위하여 애 쓸 수 있다는 사실을 나는 나의 아버지를 통하여 발견하였다.
나의 아버지는, 즉 기독교의 최장로는 실은 고아들을 사랑하고 동정한 것이 아니라 그가 믿는 소위 하나님 아버지에게 충성을 하려고 하였을 뿐이라고. 다시 말하면 그는 정말 고아들의 불쌍한 정경에 눈물을 참지 못하여 고아 사업을 하는 것이 아니라, 그런 애들을 돌보아 주는 것이, 그것이 바로 주님의 뜻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괴로움을 참고 그 일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결과에 있어 똑같을지는 모르나 고아를 위한 고아 사업과 하나님을 위한 고아 사업은 다르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그것은 나의 아버지가 하나님의 말씀을 잘못 이해하였을 뿐이고 하나님의 말씀 자체가 그릇된 것은 아니다.
어쨌든 아버지는 하나님을 위하여, 하나님께 충성하기 위하여, 주인의 양떼를 지켜 찬이슬 내리는 들에서 밤을 새우는 목자의 역할을 충실히 하였을 따름이고, 한 번도 양 자체를 사랑해 보지 못한 목자와 같은 것이었다.
그것은 마치 남들이 나의 아버지를 부르는 말―<고아의 아버지>라는 말과 <고아원 최장로>라는 말이 똑같은 나의 아버지를 두고 하는 말이면서도 그 뜻이 사뭇 다른 것과 같았다.
나는 나의 아버지가 장로이기 전에 아버지이기를 바라는 것처럼 고아원 최장로보다는 고아의 아버지가 되어 주기를 더 바랐다. 나는 나의 아버지가 만일 고아들을 위하여 도둑질을 하다가 감옥살이를 한 대도 나는 아버지를 사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주인에게 충성하기를 위하여서만 밤을 풀밭에서 새우는 목자로서 아버지를 생각하기는 역시 불쾌하였다.
예수님은 사랑을 모든 것 위에 두셨다. 그런데 아버지는 잘못 생각하고 있는 것이었다.
사명감과 사랑.
아버지는 결코 위선자는 아니었다. 그러나 어떤 면에서는 교만한 인간이었는지도 모른다. 모든 사명감이라는 것부터가 엄밀히 따지고 보면 자기만이 여러 사람 중에서 주인에게 미덥게 보였다고 믿는 교만에서인 것이다.
어쨌든 나는 명숙이가 집을 나간 것에 대하여서는, 그녀를 그때까지 키워 준 공이 아버지에게 있었던 것처럼 그 책임도 또 아버지에게 있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는 사이에도 시간은 거침없이 흘렀다. 그러나 나의 명숙에 대한 사랑은 좀처럼 식지 않았다. 아니 시간이 흐를수록 도리어 명숙의 위치는 나의 마음 한복판으로 파고들어 반드시 자기의 자리를 차지하고 놓여지는 것이었다.
나의 아버지는 가만히 나의 동태를 살피다가는 때때로, 어머니를 통하여 결혼식 이야기를 해 왔다. 그럴 때마다 나는 몸이 편치 않다는 구실을 내세우곤 하였다.
번번이 그렇게 피하기를 2년이 지났다.
그래도 나는 언젠가는 꼭 명숙을 만나리라고 하는 막연한 기대를 버릴 수가 없었다.
제정 말기였다. 전쟁에 쫓기는 그 속에서 일반 배급에도 콩깻묵이 나오던 때였다. 그런 시국에 수십 명의 고아를 거느리고 지낸다는 것은 정말 비참하였다. 이제는 그저 그 목사님의 교회에서 걷어 주는 약간의 원조만이 그들 어린애들의 생명선이었다.
그 무렵 어느 날이었다. 나는 보모에게서 명숙의 소식을 들었다. 어느 정도 믿을 수 있는 소식인지는 몰라도 명숙이 어떤 부자의 후실이 되어서 남서 어느 지방에서 살고 있다는 것이었다.
나는 당장이라도 그녀에게로 달려가고 싶었다.
그러나 나는 이미 남의 후실이 되어서 평온하게 살고 있다는 명숙의 주소를 물을 용기가 없었다. 또 보모도 그 이상 더 말하지 않았다.
「예쁘게 생긴 애니까.」
밭에서 뽑아온 열무를 다듬으며 말하는 보모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옛날 명숙이가 저녁때면 곧잘 나와 앉곤 하던 뜰 가운데 목련화나무 밑 바위 잔등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며칠이 고민 속에서 흘렀다.
어느 날 저녁에 아버지는 나를 안방으로 불러 앉혔다.
「…… 내 체면도 좀 생각해야지. 이미 남의 아내가 되어 버렸다는 사람을 언제까지나 생각한다 는 것은 그것만으로도 죄다. 그리구 넌 저 기운 없이 늘어진 어린애들을 못 보느냐? 목사님의 후원이 아니었던들 벌써 애들은 다 죽었을 게다… 모든 게 다 하나님의 뜻이니라.」
이제 거의 기진맥진한 아버지의 반 애원이었다.
나도 지쳤었다. 명숙에 대한 나의 사랑이 깊었던 만큼 나의 실망도 또 컸다.
나는 아버지의 말대로 모든 것이 그저 하나님의 뜻 가운데서만 이루어지고 마는 것인지도 모른다고 단념해 버리고 말았다. 아니 어쩌면 명숙에 대한 원망의 표시였는지도 모른다. 아니 그것보다도 자포 자기하였는지도 모른다.
그 해 가을에 나는 그 목사님의 딸과 식을 올리고 말았다.
지극히 평범한 부부였다.
어린애도 셋이나 생겼다.
처음 한동안은 나와 아내의 감정의 갈피에서 가시처럼 따끔거리던 명숙의 일도 이제 거의 사라지고 말았다. 역시 아버지의 말대로 세월이 흐르면 그대로 모든 것이 가라앉아 버리는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래도 어쩌다 문득 명숙의 생각이 머릿속에서 떠오를 때면 나는 빈혈증을 일으킨 때처럼 앞이 아찔하곤 하였다. 그런 때면 나는 눈을 감았다. 그리고 속으로 기도를 올리는 것이었다.
「아버지 하나님, 모든 것은 오직 하나님의 뜻으로 이루어진다고 하셨습니다.」
비록 그것이 일순간이라 할지라도 아내가 있는 나로서 명숙을 생각하고, 만일 내가 그와 결혼했더라면 하는 어떤 후회로운 생각을 한다는 사실은, 분명히 아내에게 대하여 죄스러운 일임에 틀림없었다.
그러면서도 나는 언제나 인생이 허전한, 무엇인가 잊어 버린 것 같은, 그런 생각을 금할 수가 없었다. 그것이 꼭 명숙이로 해서라기보다는 나 자신도 잘 알 수 없는 공백이라고 하는 것이 옳았다.
어쨌든 그 공백은 공백대로 메워지지 않은 채 근 20년이라는 세월이 느리게 느리게, 그러나 쉬지 않고 흘러서 나의 옆을 지나갔다.
8
다음날 아침도 나는 날마다 그렇듯이 어린애가 우는 소리에 잠이 깨었다. 머리가 무거웠다. 나는 여느 날처럼 이불을 뒤집어 쓰지 않고 벌떡 일어나 앉았다. 수학 여행을 떠나는 기차 시간이 일렀다. 어린애는 여전히 빽빽 소리를 지르며 울어 대었다. 얼굴이 아주 자줏빛이 되어 가고, 젖혀진 자라모양 두 팔과 두 다리를 허위적거리며 악을 써 울어 대었다. 나는 또 뇟줄이 팽팽히 당기기 시작하였다. 자칫하면 입으로 터져 나오려는 저주를 꾹 다물고 앉아 있었다.
(이것이 바로 지옥이다. 아예 인생이란 그 자체가 지옥인지 모른다. 그리고 아내는 천당으로 갔다. 예배당으로.)
나는 속에서 끓는 거품 같은 것을 꾹꾹 누르며 장 속에서 백을 꺼내었다.
「아주머니 불러올까요?」
내가 여행을 떠날 준비로 백을 챙기고 있노라니까 식모애가 문을 열었다.
「응?……그만둬, 금방 다녀올걸 뭐.」
나는 식모애의 그 말이 무척 고마왔다. 아니 부럽기도 했다.
나는 아내의 일이―그래도 여행을 떠난다는데 겨우 와이샤쓰 한 벌을 그의 머리맡에 내놓았을 뿐 집에 있지부터 않은―아무리 하나님께 기도를 올리기 위해서라 해도 몹시 섭섭하였다.
「울지 말고 누나하고 잘 놀아야 한다.」
큰애들은 아직 곤히 잠이 들었고, 두 살짜리, 그 매일 아침 악을 쓰며 울어대는 놈만이 식모애의 등에 업혀 대문 밖까지 나왔다. 나는 어린애의 머리를 가만히 쓰다듬어 보았다.
「아빠 안녕 해야지.」
식모애는 어린애를 돌아보며 내 앞으로 등을 돌려 밀었다.
어린놈은 아직도 울음이 덜 멎어서 간간이 흑흑 느끼면서도 그래도 빤히 나를 쳐다보았다.
「집 잘 보거라. 그리구 애기도 울리지 말고.」
「네, 안녕히 다녀오십쇼, 아저씨.」
나는 길이 꺾이는 곳에서 한 번 뒤를 돌아보았다. 열 여덟 살이라는 식모애는 어린애를 업느라고 잔뜩 뒤틀려 올라간 치마 밑으로 드러난 두 다리를 번갈아 디뎌 흔들흔들 아기를 달래며 멍청히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시간이 이렇게 이른데도 서울역은 사람이 들끓고 있었다.
나는 애들과 미리 약속한 지점으로 갔다. 벌써 애들이 10여명 모여 있었다.
「안녕하십니까? 선생님.」
「선생님이 역시 젤이야.」
「일착입니다, 선생님.」
「내가?」
애들은 나를 가운데로 하고 빙 둘러서며 떠들어댔다.
「네, 저희들이 내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어느 선생님이 일착으로 나오시나 하고.」
「그런데, 역시 저희들 대부분의 예상대로 였어요.」
「그래? 어째서 내가 제일 먼저 나온다고들 했나?」
「선생님은 부지런하시거든요.」
「내가 부지런해?」
「자식아, 선생님이 뭐가 부지런해?」
「그럼 뭐야?」
「선생님이 부지런하신 게 아니라 사모님이 부지런하신 거야.」
「아 참, 그렇다, 하하하.」
애들이 일제히 와아 웃었다.
나도 따라 웃고 말았다.
처음으로 여행을 떠나는 흥분한 애들은 아무래도 학교에서처럼 그렇게 규율이 서지 않았다. 인솔 책임을 진 세 사람의 동료와 나는 무척 애를 써서 겨우 인원을 파악하였다.
우리들은 교감 선생 이장로의 지시에 따라 일반 승객들과는 다른 딴 개찰구로 해서 플랫포옴으로 나갔다.
나는 아까부터 자꾸 주위를 둘러보곤 하였다.
「낼 뵙겠어요.」
하던, 어젯저녁 명숙이의 말이, 학생들이 줄지어 선 맨 끝에서 따라가는 나의 머리를 또 한 번 뒤돌아보게 하였다. 그러나 지금까지 학생들이 모여 섰던 광장은 갑자기 두 배나 세 배가 넓어진 것처럼 휑하니 비었고 완전히 빛을 잃은 가로등만이 희미하게 졸고 있었다.
나는 얼른 학생들 쪽으로 얼굴을 돌리고 말았다. 기차 시간도 모르고 있는 명숙을 그래도 행여나 하고 기다리고 있는 나자신의 생각이 쑥스럽고 어처구니없었다.
플랫포옴으로 향해 구름다리 층계를 천천히 걸어 내려가는 내 눈앞에는,
「안녕히 다녀오십시오, 아저씨.」
하던, 식모애의 순박한 모습이 떠올랐다. 예배당 마룻바닥에 이마를 대고 꿇어앉은 아내의 모습이 지나갔다. 아직 잠이 든 채로일 명숙의 화장하지 않은 얼굴을 상상해 보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내가 상상하는 명숙은 어젯저녁 그 명숙이가 아니라 옛날 평양의 명숙이었다.
학생애들이 거의 다 지정된 객차 안으로 올라갔을 때였다. 일반객의 개찰이 시작된 모양으로 쿠덩쿠덩 구름다리를 사람들이 뛰어 내려오는 소리가 났다.
나는 우리의 객차로 올라가다 말고 한 번 구름다리 쪽을 바라보았다. 막았던 둑을 터놓았을 때의 물처럼 사람들이 와르르 밀려 내려오고들 있었다. 가지각색 복장의 남녀 노소들. 어떤 청년의 파나마 모자가 뛰어 내려오는 사람에 뒤로 날아갔다. 그는 모자를 잡느라고 밀고 내려오는 사람들 짬에서 애를 썼다. 나는 피시시 웃고 말았다. 그러나 내가 웃는 것은 반드시 그 모자를 잡느라고 허둥대는 청년 때문만은 아니었다. 승강대에 서서, 그 많은 사람들 틈에서 은근히 명숙의 모습을 찾고 있는 나 자신이 우스웠던 것이다.
기차가 떠나자 다들 제각기 자기 좌석에는 일단 안정하였다.
선생들은 입구에서 가까운 좌석에 교감을 중심으로 하고 네 사람이 마주 앉아 있었다.
중앙선인 기차가 용산역을 지나 청량리 쪽으로 하여 훨씬 시골로 나왔었다.
나는 달리는 기차 창으로 오래간만에 대하는 시골 풍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여행이란 참 좋은 거야.」
앞에 앉은 교감이 중얼거리며 몸을 반쯤 일으켜 뒤에 앉은 학생애들을 살펴보았다.
애들은 다들 창문에 붙어 있었다. 기차가 시원한 물줄기를 따라 달릴 때면 애들이 와아 함성을 올렸다. 그러면 반대편에 앉았던 애들까지 와르르 이쪽으로 몰려왔다. 그러다가 또 누가 저쪽 벼랑의 단풍을 보고 소리를 지르면 이번에는 또 와르르 그쪽으로 몰렸다.
몇 시간이 지나 그렇게 왔다갔다하던 애들도 이제는 심상해 졌는지 그들은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였다.
「아 참, 아침에 집사람이 싸 준 사과가 있지.」
교감이 구두를 벗고 걸상에 올라서서 시렁 위에서 보자기를 내렸다.
그 속에서는 별의별 것이 다 나왔다. 사과, 사이다, 캐러멜, 비스킷, 심지어 휴지까지 들어 있었다.
「꼭 국민학교 어린애 소풍 보따리 같습니다.」
옆에 앉은 수학 교사가 웃었다.
「그러게 말이요. 뭘 꿍꿍 싸더니, 이거 어디 어린애 같아서 하하하.」
교감은 정말 어린애처럼 웃었다.
나는 그가 집어 주는 사과를 깎아 들고 한 입 물다 말고 갑자기 명숙이 생각을 하였다.
「안녕히 다녀오십쇼, 아저씨.」
식모애의 소리가 들렸다. 예배당 마룻바닥에 엎드린 아내의 모습이 보였다.
「낼 뵙겠어요.」
명숙의 얼굴이 웃었다.
갑자기 어떤 외로움이 꽉 가슴에 찼다. 그것은 내가 집을 떠날 때 아내가 없었다는 사실보다도, 딱이 약속을 한 것도 아니었고, 또 그러리라고 꼭 믿고 있었던 것도 아니면서 명숙이 역에 나타나지 않았다는 데서 오는 마음의 그늘이었다.
무슨 게임을 하는지 저만큼 모여 앉은 애들이 떠들썩 웃었다.
나는 그 학생들이 부러웠다. 다시 한 번 재들 같은 학창 시절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정말 하루의 공백도 만들지 않고 청춘을 꽉 채워 살겠다고 생각하였다.
나는 인생을 연극이라고 한 사람이 누구였는가 하고 생각하였다. 인생은 결코 연극은 아니었다. 그렇게 지리하고 권태로와도 중간에서 그만둘 수는 없는 것이 인생이기 때문에, 또 그렇게 안타까이 후회를 하여도 다시 할 수 없는 것이 인생이기 때문에.
나는 또 한 번 뼈저리게 공허감을 느꼈다. 텅 빈 나의 지난날들. 자고 깨고 자고 깨고 그저 단조로운 짓을 용케도 40년간이나 계속해 왔다고 나는 생각하였다.
회색 청춘, 아니 완전히 블랭크 그대로인 청춘. 다시는 채울 수 없는 그 블랭크.
나의 아버지의 말에 의하면 사람이란 일생을 오직 하나님만을 위하여 살아야 한다고 한다. 사실 또 나의 아버지는 그렇게 살려고 노력하였고, 또 그는 자신이 그렇게 살아왔다고 자부도 하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렇지도 못하였다.
나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나의 아버지처럼 사람은 오직 하나님만을 위하여 살아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 일도 없었고, 또 그렇게 생각하려고 노력도 해 본 일이 없었다.
아니, 그와는 반대로 하나님은 우리에게 귀한 생명을 주셨다. 그러니까 나는 봄동산에 내놓은 어린애처럼 마음대로 새와 꽃과 어울려 놀 수 있어야 하고, 또 하나님도 그러기를 원하실 것이라고 생가가해 왔다. 또 그러니까 저녁에 해가 지기 시작하면 나는 아버지 집으로 달려 돌아가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었다.
아버지 하나님. 그것은 정말 글자 그대로 아버지 하나님으로 내가 떼를 쓰고 울며 조를 수는 있어도, 항상 무서워서 비실비실 피하거나 또는 그 앞에서 얌전하게 고개를 수그리고 말 한마디 할 수 없는 그런 하나님 아버지는 아니라고 나는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기에 나는 괴로울 때면 하나님에게 떼를 쓰고 애원을 하여도, 즐겁고 좋을 때에 하나님에게 감사하는 것은 곧잘 잊어버리는, 아니 그거야 아버지가 으레 주시는 것이거니, 마치 당연한 것으로 여겨 그대로 넘겨 버리는, 심히 무례하고 비위 좋고 염치 없는 신자였다.
그래도 나는 일찍이 그런 나의 태도가 아버지 하나님에게 죄라고는 생각해 본 일이 없었다. 그것이 철없는 자식이기는 할 망정 왜 아버지에게 죄 지은 자식이 되겠느냐는 것이었다.
나는 도시 아버지 하나님에게 죄를 지을 수라도 있을 만큼 나 자신을 하나님 앞에 크게 내세울 수조차 없다고 생각하였다.
심장이, 나의 가슴 왼쪽에서 지금도 요렇게 팔랑거리는 심장이, 요것이 40년간을, 1만 4천 6백 10일간을, 35만 6백 40시간을, 2천 1백 3만 7천 4백 분간을, 그야말로 춘하추동, 밤낮, 맑으나 흐리나를 가리지 않고, 그렇게도 잠시도 쉬지 않고 뛰었고 또 뛰고 있다는 사실에 매초마다 감사하자면 우리는 도시 그 밖에 또 무엇을 할 수 있을 것인가?
그래도 나는 심장이 뛰고 있다는 이 사실에는 감사하고 있다.
내일 아침도 또 동녘에서 해가 떠오르리라는 사실을 아무도 우리에게 보증한 사람이 없건만 우리는 그것을 의심하거나 오늘 저녁에라도 지구가 돌다가 찌겅 하고 마지막 회전을 멈추지나 않을까 하고 걱정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
우리는 누구나 다 믿고 있는 것이다. 누구나 다 그냥 믿고 있는 것이다. 너무나 큰 믿음이기 때문에 우리들이, 그 소리가 너무 커서 지구의 도는 소리를 못 듣는다는 것과 같이, 그 믿고 있는 대상도 또 사실도 의식하지 못하고 있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고 보면, 새삼스레 나는 하나님을 믿노라고 까부는 것은 도리어 하나님을 믿고 있지 않다는 말과 통할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또 새삼스레 감사하다고 떠드는 것은 사실은 아직 자기의 가슴의 고동 소리를 깊이 들어 보지 못하였다는 수작밖에 안 된다.
그러기에 나는 생각하였다. 인간이란, 나의 아버지가 생각하듯이 하나님 아버지의 종으로 태어난 것도 아니고, 또 나의 아내가 생각하는 것처럼 영원히 아담과 이브의 원죄를 면할 수 없는 그런 지옥 같은 죄 속에 던져진 죄인도 아니고, 실은 무한히 너그럽고 크신 은총으로 주어진 것이라고.
우리의 일생은 아버지께서 주신 축복의 선물이라고.
우리는 아버지 하나님에게 빚진 자가 아니라 아버지 하나님에게 상 받은 자라고, 그것은 결코 교만은 아니라고 나는 생각하였다. 그러나 나는 이 아버지가 나에게 주신 즐거워야 할 청춘을, 저 한껏 아름다왔어야 할 청춘을, 성경에 있는 불충한 종이, 주인이 맡기고 간 돈을 실수할까 두려워한 나머지 아무 사업도 하지 않고 그대로 땅 속에 묻어 두었다 도로 돌리듯이 혹시나 더럽힐까, 또 혹시나 죄 지을까 하는 마음에서 예배당에 맡겨 둔 채 아무것도 못 하고 지낸 것이었다. 이제 만일 내가 하나님께서 받았던 청춘을 아무런 보람도 더함이 없이 그대로 그에게 돌릴 때 과연 하나님 아버지는 나를 두고,
「이 어리석은 자식아.」
하고, 웃지 않으리라고 누가 단언할 수 있을까?
그러나 나의 이런 생각과는 아주 딴판이었다. 나는 지금까지 사십 평생을 교회라는 가시 철망 속에서 살아왔다. 어려서 아버지가 나의 구두 속에 넣어 준 돌 때문에 나는 어디를 가나 항상 절름거리며 살아왔다. 분명히 나는 40년간을 살아왔다. 그러나 또 잘 생각해 보면 단 하루도 살지 못하였다. 한 번도 나의 생각대로 살아 본 기억이 없다.
나의 아버지는 나의 이름을 그의 뜻대로 요한이라 지어 준 것처럼 나의 모든 생활을 성경이라는 설계도에 의하여 그의 뜻대로 진행시켜 왔던 것이었다.
내가 그것을 깨달았을 때는 벌써 모든 사람에게 내가 최 요한으로만 통하게 되어 버렸을 때였다. 나는 이미 소금물 속에 들어간 김장 배추처럼 무엇엔가 숨이 죽어 있었다.
어쨌든 나는 엊저녁에 명숙을 다시 만난 뒤로 더욱 더 나의 생활이 무언가 채워지지 않은 채 텅 빈 것이었다는 것을 느꼈다.
아내에 대한 감정만 해도 그랬다. 토요일 저녁이면, 소위 주일을 위해 준비하는 날이라 하여 잠자리부터 나와는 멀리 끌어다 깔고 자는, 부부의 성생활마저 무슨 추잡한 인간의 죄로 생각하는 아내가 불만이기도 하였으나, 불평은 일찍이 해 본 일이 없는 나였으나, 점심때가 되어서 다들 자기 집에서 꾸려 가지고 온 점심밥들을 펴며 기찻간 안이 웅성거릴 때, 별로 식욕도 없으면서 동료들이 민망해 할까 염려하는 생각에서 창밖으로 도시락을 사야 했던 나는 정말 아내가 원망스러웠다.
아내는, 그녀의 생각에는 훌륭히 순교하였다고 생각되는 아버지 목사의 딸로서는 충분하였을지도 모르나 한 남자의 아내로서는 지극히 등한하였고, 또 자식에게는 무책임하였다고 할 수 있었다.
아내라는 것은 좀더 따스하고 사랑스러운 인생의 길동무가 아니겠는가? 차라리 아침에 부부 싸움이라도 하고 점심을 못 준비하고 왔다면 그 편이 도리어 마음 편할 것 같았다.
나는 그저 종일 창밖을 내다보며 여러 가지 생각을 하였다. 그러나 그 생각의 대부분이 과거의 일들뿐이고, 한 걸음도 앞으로 나가지는 못하는 것이 답답하였다. 나는 역시 구두 속에 든 돌 때문에 절름거리고 있었다.
9
우리 일행이 경주에 닿은 것은 어두워진 뒤였다. 곧 미리 연락을 해 두었던 여관으로 들어갔다. 여관은 방마다 수학 여행을 온 학생들로 꽉 차 있었다.
겨우 낯을 씻고 마악 방으로 들어가려는 때였다. 우리들이 들어 있는 여관집 사환애가 학생애를 붙들고 최 요한 선생이 누구냐고 묻고 있었다. 손님이 찾아왔다는 것이었다. 나는 사환애 뒤를 따라 여관 사무실로 나갔다.
경주에서 나를 찾아올 만한 사람이 없었다. 나는 혹시 옛날 친구로서 어느 학교의 교사로 있는 사람이 우연히 같은 때에 경주 여행을 왔다가 학교 학생을 통해 알고 찾아온 것이나 아닌가고 생각하며 우선 사무실 안을 둘러보았다. 그럴 듯한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나는 뚱뚱한 여관 주인에게 물었다.
「네, 바로 이 사람인데요. 요 앞의 여관에서 왔군요.」
여관집 주인은 거기 사무실 문밖에 서 있는 소년을 가리켰다.
「이거 저의 집 손님이 전하라고요. 그리고 선생님을 꼭 모시고 오라던데요.」
소년이 메모 용지를 한 장 내어주었다.
<잠깐이라도 뵈옵고 싶습니다. 식사 전이면 더욱 좋겠습니다.>
나는 무슨 영문인지 통 알 수가 없었다. 쪽지에는 그것뿐이고, 상대방의 이름도 적혀 있지 않았다.
「얘, 이분이 어떤 분인데?」
나는 소년에게 물었다.
「오시면 아신다고요.」
소년이 빙그레 웃었다.
「그래, 날 안다데?」
「그런가 봐요.」
「어느 학교 선생님이데?」
「아니요. 혼자 오셨는걸요.」
「혼자, 언제?」
「아까 차에 오셨어요.」
「그래, 너의 여관이 여기서 머니?」
「아니요. 바로 저 큰길 건너예요. 어쨌든 같이 모시고 오라던데요.」
「그래.」
나는 소년을 따라 나섰다. 소년은 과연 얼마 안 가 서 있는 조그마한 호텔로 나를 인도하였다.
이층으로 올라갔다. 제법 깨끗한 복도를 ㄱ자로 꺾어 돌아서며 둘째 방문을 노크하였다.
「들어오세요.」
여자의 목소리였다. 소년은 문을 밀어 열었다.
「모시고 왔습니다. 들어가시죠.」
소년은 문 옆으로 비켜서며 빙그레 웃었다. 나는 소년의 얼굴을 쳐다보며 머뭇거렸다.
「아니, 혹시 방이…….」
경주서 여자 손님이 나를 찾을 까닭이 전연 없는 것이었다.
「죄송합니다, 선생님.」
나는 깜짝 놀랐다. 명숙이었다.
「아니 어떻게, 언제 오셨습니까?」
「바로 선생님과 같은 차로 왔어요.」
「……?」
「오늘 뵙겠다는 말 거짓말인 줄 아셨죠?」
나의 뒤로 돌아 문을 닫으며 명숙은 나를 돌아다보았다.
「이리 들어오세요, 선생님.」
나는 명숙이 인도하는 대로 방 가운데 놓인 걸상에 가 그녀와 마주앉았다. 그리 넓지는 않으나 아담한 양실 한옆에는 침대가 놓였고, 한가운데 놓인 탁자에는 빨갛게 타는 단풍이 한 가지 꽃병에 꽂혀 있었다.
나는 그저 멍청히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고 앉아 있었다. 같은 차로 내려왔다니 도무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명숙은 어제와는 달리 연한 보라색 치마저고리를 입었고 화장도 훨씬 가벼웠다.
「불러내어서 불쾌하시죠?」
그녀는 탁자 위의 화병을 약간 한옆으로 밀어놓으며 빤히 나를 쳐다보았다.
「아니요.」
「그럼 놀라셨죠?」
「아니요.」
「그래요? 그럼 왜 그렇게 말이 없으세요?」
「어떻게 된 일인지 그걸 생각하고 있습니다.」
「버스도 따라잡고, 기차도 따라잡고, 호호호…….」
그녀는 자기 말에 자기가 웃었다. 나도 빙그레 웃고 말았다.
「명숙이 참 변했죠?」
나는 대답 대신 또 한 번 빙그레 웃었다.
「도망을 가던 명숙이가 따라 다니는 명숙이로.」
이번에는 그녀도 웃지 않았다. 나는 그녀의 그 말을 어떻게 듣고 뭐라고 대답해야 좋을지를 몰랐다. 나는 그저 명숙의 시원한 눈을 바라보고 있었다.
「참, 선생님 아직 식사 전이죠?」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 곧 돌아가야 합니다.」
나도 따라 일어섰다.
「식사라도 같이 하고 싶어서요.」
「아니 저, 애들이 기다리니까.」
그녀와 나는 마주 선 채 또 한참이나 서로 얼굴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래요? 그럼 그대로 좀더 앉아서 이야기라도…….」
그녀는 조용히 다시 걸상에 앉았다. 그러나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그녀도 말이 없었다. 그녀의 얼굴에는 점점 그늘이 지기 시작하였다. 전등불빛 밑이 되어서만이 아니라, 그녀의 얼굴이 차차 핼쑥해졌다고 느끼자 마침내 그녀는 탁자 위에 푹 엎드리고 말았다. 부르르 그녀의 어깨가 떨렸다. 나는 일어서 그녀의 등 뒤로 갔다.
「명숙씨.」
나는 조심스레 그녀의 어깨를 흔들었다.
그녀는 조용히 몸을 일으켰다. 저고리 소매 속에서 수건을 꺼내어 얼굴을 찍어내었다.
「선생님, 가지 마세요.」
그대로 나에게 등을 돌린 채 고개를 수그린 그녀의 말이었다.
「이제 울지 않을게 선생님 가지 마세요.」
그녀는 그대로 앉은 채 천천히 나에게로 얼굴을 돌렸다. 그녀는 거기 그녀의 어깨 옆에 늘어뜨린 나의 손을 가만히 잡았다. 그녀는 나의 손등에다 자기 얼굴을 가져다 대었다. 도리질 하듯이 몇 번이고 손등에다 볼을 비볐다. 나는 그녀가 하는 대로 손을 내어맡기고 우두커니 서 있었다.
탁자 위의 단풍만이 빨갛게 타오르고 있었다.
「선생님, 전 이제 우리들의 인생마저 따라잡고야 말겠어요.」
그녀는 또 한 번 나의 손등에 자기의 볼을 비볐다. 나는 그녀의 윤이 자르르 흐르는 귀밑머리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선생님은 왜 말이 없으세요?」
그녀는 얼굴을 들어 나를 쳐다보았다. 나는 나의 손 안에 그녀의 손을 꼭 쥐었다. 그리고 한 손으로 그녀의 턱을 가만히 받쳐 올렸다. 그 옛날 비 오는 밤길에서처럼.
그녀는 머리를 뒤로 젖혔다. 까만 두 눈에서 맑은 눈물이 수은처럼 괴어 있었다.
「선생님.」
「…….」
「선생님, 가지 마세요.」
그녀는 몸을 돌이켜 나의 허리를 꽉 부둥켜안았다. 나는 눈을 감아 버렸다. 그리고 나는 생각하였다.
어쩌면 나와 명숙은 지금까지 먼 곳에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닌지도 모른다고. 마치 오늘 같은 기차를 타고 같은 곳을 향하여 달리면서도 나만이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던 것처럼.
「숙이!」
나는 그녀의 두 어깨를 꽉 붙들었다. 숙이. 참말로 오래오래 못 부르던 이름이었다.
전날 그녀를 만났을 때도 그렇게 반가우면서도 어쩐지 옛날 그대로 숙이로 부를 수 없었던 그였다.
「요한씨!」
그녀는 떼를 쓰는 어린애처럼 마구 나의 가슴으로 파고들었다. 긴 꿈에서 지금 막 깨어난 것처럼 우리들은 거기 침대에 가서 나란히 걸터앉은 채 한동안 말이 없었다.
「요한씨.」
나는 대답 대신 그녀에게로 얼굴을 돌렸다.
「저는 이제 제 인생을 도로 찾아야겠어요.」
「……그렇지만 어디 시간을 무를 수가 있어?」
이번에는 명숙이 대답이 없었다. 한참 동안 둘이 다 말이 없었다.
나는 창밖의 밤하늘을 내다보고 있었다. 하늘에는 별들이 유난히 반짝거리고 있었다. 둥실 하늘로 떠오르는 것 같았다.
영원.
나는 문득 그런 생각을 하였다.
나는 옆에 앉은 명숙에게로 얼굴을 돌렸다. 그녀도 창밖을 내다보다 말고 얼굴을 돌렸다.
「무슨 생각을 하셨어요?」
「별을 바라보고 있자니까 문득 영원이란 말이 생각나서.」
「그래요. 저는 꼭 반대 생각을 했어요. 순간을, 바로 이 순간을.」
「순간과 영원과…….」
「뭔지 전 모르겠어요. 그저 제게는 이 순간이 한없이 귀하다는 것밖에.」
둘이는 다시 창밖으로 시선을 보냈다. 다시 잠잠하였다. 우리들은 그저 언제까지나 그렇게 앉아 있었다.
이제 나는 명숙의 지난 일들에 관하여서는 아무것도 알고 싶지도 않았고, 또 알아야 할 필요도 느끼지 않았다. 아니 명숙이는 하나도 변한 것이 없었다. 명숙이와 나의 인생은 어느 한 지점에서 잘랐다가 그대로 두었던 그 끝에 다시 가져다 대어 놓은 것이었다.
「숙이, 이제 가 봐야겠어.」
나는 천천히 침대에서 일어섰다.
「숙이, 이제 가 봐야겠어.」
나는 천천히 침대에서 일어섰다.
「그래요.」
명숙이도 따라 일어섰다. 나는 문을 향하여 걸었다.
그녀는 나의 뒤를 따라왔다. 내가 마악 문 핸들을 쥐었을 때였다. 명숙이 등 뒤에서 불렀다.
「요한씨.」
「…….」
나는 그녀에게로 돌아섰다. 그녀의 그 어딘가 먼데를 바라보는 듯한 눈. 그녀는 그대로 고개를 떨구고 말았다.
「내일 저녁은 불국산(佛國寺)가요?」
「불국사.」
「낼 뵙겠어요.」
「…….」
「그럼 안녕히.」
「안녕.」
10
다음날은 종일 경주시 주변에 있는 고적들을 버스로 돌며 구경하게 되어 있었다.
나는 아침에 잠깐만이라도 명숙의 숙소엘 다녀오고 싶었다.
그러나 종내 그녀를 찾지 못한 채 학생들과 함께 버스로 여관을 떠나고 말았다.
점심때가 다 되어서였다. 우리 일행은 무열왕릉에 닿았다.
「에, 이 능으로 말하면 여러분이 이미 학교에서 배워서 다 잘 아는, 김 춘추(金春秋)무열왕의 무덤으로서, 바로 여기 있는 이 귀부(龜趺)는 비석을 받쳤던 것입니다.」
방금이라도 엉금엉금 기어갈 것 같은 커다란 돌거북 앞에서 안내인은 여러 학생들을 세워 놓고 일장 설명을 시작하였다. 학생들은 귀로는 안내인의 설명을 들으면서 눈은 다들 놀라운 빛으로 귀부를 쳐다보고 있었다.
나는 애들 뒤에 두어 걸음 떨어져 서 있었다.
차를 타고 다닌다고는 하지만 퍽 피곤하였다. 나는 어서 그 긴 설명이 끝나고 잔디밭에 가 죽 다리를 뻗고 좀 누웠으면 하는 생각뿐이었다.
나는 어젯저녁 경주에 와 내리자마자 애들이 성급하게 사다쥐어 주던 벚나무 지팡이를 뒤로 돌려 짚으며 한 걸음 더 물러섰다. 누군가 뒤로 돌린 손을 건드렸다. 나는 여전히 안내인을 바라보는 채 무심코 한 걸음 옆으로 비켜섰다. 그런데 또 따라오며 나의 손을 건드리는 것이었다. 뒤를 돌아다보았다. 나는 당황하였다. 언제 왔는지 거기 명숙이가 옆에 서 있지 않은가?
그녀는 눈으로 웃었다. 그리고 아무런 말도 없이 조그마한 종이 봉지를 얼른 내 손에 들려 주었다. 그녀는 성난 사람모양 홱 돌아섰다. 노란 잔디밭을 저쪽으로 걸어갔다. 거기 택시가 한 대 머물러 있었다. 그녀는 그 택시에 올랐다. 그러자 차는 곧 떠났다. 그녀는 시종 얼굴을 앞으로 하고 한 번도 돌아보지 않았다. 택시는 저만큼 송림 사잇길을 꿰고 사라졌다.
나는 그때까지 얼빠진 사람모양 서서 사라지는 택시를 바라보고 있었다. 정신이 들자 나는 파란 끈을 열십자로 맨 흰 종이 봉지를 한 손에 들고 있었다.
「그러면 여기서 점심 식사를 한다.」
고적 설명이 다 끝난 모양으로, 수학 선생이 애들에게 지시를 하고 있었다.
애들은 와아 하고 사방으로 흩어져 끼리끼리 그럴듯한 자리를 찾아갔다.
선생님들은 능 옆의 소나무 숲으로 들어가 둘러앉았다.
여관집에 싸 준 점심을 애들이 날라 왔다.
「그건 뭡니까? 먹을 거면 내놓으시오. 하하하.」
점심 식사가 대충 끝나고 사과들을 깎고 있을 때, 내 맞은편에 앉았던 선생이 내 앞에 놓아 둔 종이 봉지를 가리켰다.
「아 참, 이게……가만.」
나는 우선 봉지를 들어 내놓다 말고 다시 들어올렸다. 사실 그것이 무엇인지를 나도 모르고 있었던 것이었다. 나는 내 손으로 끈을 풀었다. 그건 길가에서 구워 파는 호도과자였다. 모양이 꼭 호도 같은 그것은 감촉이 보들보들하였다.
「자, 하나씩 드십시오.」
나는 봉지째로 가운데 밀어 내놓았다.
「이게 뭐야? 허, 최선생은 아직 어린애군요.」
「호도과자, 이거 우리가 국민학교에 다닐 때에 먹던 거군 그래.」
교감도 하나 들고 들여다보고 입에 넣었다.
「선생님 때에도 이런 게 있었습니까? 사실은 저도 어려서 먹던 생각이 나서 샀습니다.」
나는 멀쩡한 거짓말을 하였다. 그러나 그 호도과자로 해서 어렸을 때의 생각이 났다는 것만은 거짓말이 아니었다. 내가 국민학교 다닐 때에 학교에서 집으로 오는 길가에 호도과자를 구워 파는 할아버지가 있었다. 나는 거의 날마다 어머니가 주는 돈으로 그 호도과자를 샀다. 그 할아버지는 돈을 내가 내는 데도, 과자 봉지는 언제나 명숙에게 주는 것이었다. 그러면 명숙은 그것을 받아 들고는 나보다 나이는 어린 것이 마치 누나가 동생에게 주듯이 한 개를 꺼내 주고는 자기도 한 개 먹고, 또 내가 다 먹으면 한 개를 주고는 자기도 한 개 먹고, 그렇게 하기를 집 가까이 올 때까지 계속 하며 오곤 했던 것이다. 나는 그때에 그것이 참 재미있었다. 아마 명숙이도 그날 나와 똑같은 추억에서 그것을 샀을 것이라고 나는 생각하였다.
「응? 이게 뭔가??」
봉다리에 손을 넣어 호도과자를 꺼내던 선생이 과자와 함께 명함만한 종이 쪽지를 집어내었다.
나는 그에게로 손을 내어밀었다. 그는 무슨 레테르인 줄 알았던지 뒤집어 보았다.
「아, 사, 녀, 이게 무슨 소리야?」
나는 그에게서 종이 쪽지를 받아들었다. 분명히 쪽지에는 <아, 사, 녀>라고 석 자가 적혀 있었다.
「그게 뭐요? 아사녀?」
「글세, 아마 봉투를 만드는 데서 장난한 쪽지가 들어 있었나 보군요.」
나는 얼굴이 확 달아올랐다. 그것은 분명히 명숙이가 적어넣은 것임에 틀림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나는 애써 심상한 태도를 취하며 그 종이 쪽지를 돌돌 말아서 거기 잔디밭에 버리고 말았다.
「아사녀라면 그 여자 이름이죠. 불국사 석가탑을 만든 석공의 아내 아사녀(阿斯女) 말이오.」
교감이 말했다.
「아 참 그렇죠. 영지(影池)에서 탑 그림자를 기다리다 빠져 죽은…….」
「그렇죠. 비련이야 참.」
「그러고 보면 지금 그게 보통 종이가 아니게? 하하하.」
방금 종이 쪽지를 집어낸 선생이 나를 보고 웃었다.
「그러게 말이오. 그거 멋진 이야긴데, 어디 그럼 한 개 더 맛을 봐야지.」
수학 선생이 또 하나 과자를 집어내며 따라 웃었다.
「설마 아사녀의 혼이 우리 최선생에게 연애 편지를 했겠소? 하하하.」
교감도 한마디 하였다.
「그야 누가 아나요, 선생님?」
수학 선생이 받았다.
「그것만은 알 수 있지요. 아마 선생님께라면 몰라도 장로님의 아드님이고, 목사님의 사위고, 이름까 지도 요한인 우리 최집사만은 절대로 그럴 리 없지요. 그렇죠? 하하하.」
「하하하하.」
다들 교감의 말에 따라 웃었다. 나도 피시시 웃는 수밖에 없었다.
식사가 끝나자, 각기 흩어져 이리저리 나무 그늘에들 누웠다. 나도 소나무 밑에 가서 번 듯이 누웠다. 나뭇가지 사이로 보이는 가을 하늘은 청포도색이었다.
(아사녀.)
나는 속으로 아까 그 명숙이의 것이 분명한 쪽지의 뜻을 생각해 보았다. 아사녀. 비련의 주인공 아사녀. 수천리 길을 사랑하는 남편을 만날 수 있다는 희망으로 하여 찾아왔다가 성스러운 공사 도중에 여인을 만나게 할 수 없다 하는 대사의 거절을 당하고, 그러면 남편이 쌓는 탑의 그림자라도 보며 기다리겠다고 못가에 앉아 날마다 기다렸건만 그 탑에는 그림자마저 없었던지 끝내 지쳐 물에 몸을 던져 죽고 말았다는 그 전설의 여인 아사녀.
그러나 나는 명숙이 왜 하필이면 그 쪽지에다 아사녀라고 써넣었는지 알 수가 없었다.
호루라기 소리가 길게 났다.
뒤미처 「집합」 하는 수학 선생의 큰소리가 들렸다. 나는 미처 아사녀의 뜻을 풀지 못한 채 일어났다.
나는 버스를 타고 앉아서도 그 아사녀의 뜻을 생각하고 있었다. 여관 이름인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해 보았다.
전등이 들어온 뒤에야 우리들은 불국사에 닿았다. 여관은 바로 불국사 밑이었다. 저녁을 먹기가 바쁘게 애들은 피곤한 줄도 모르고 밖으로들 나갔고 선생들은 상을 물리자 두 방에 갈려서 그대로 누워 버렸다.
나는 방 앞의 마루에 걸터앉아 있었다. 어젯저녁처럼 명숙에게서 사람이 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였다. 달이 밝았다. 그러나 꽤 밤이 깊어도 아무도 오지 않았다. 무언가 쓸데도 없는 물건들을 호기심에서 사들고 떠들던 학생애들도 이제 대개는 자기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나는 차차 초조하여졌다. 그러나 명숙이 편에서는 학생애들의 모표를 보아 내가 든 숙소를 알 수 있겠지만, 내 편에서는 명숙의 숙소를 알 도리가 없었다.
나는 여관 문 밖으로 나서 보았다. 어쩌면 명숙이도 식후에 밖으로 나왔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였다. 주춤주춤 언덕길을 걸어 올라갔다. 길 양쪽에는 선물을 파는 상점들이 죽 늘어서 있었다. 흡사 야시 같은 그 상점에는 집집마다 문앞에 빨간 끈이 달린 벚꽃나무 지팡이들이 단으로 세워 있었고 두 명 세 명 아직도 학생애들이 물건을 사고들 있었다.
나는 옛날 학창 시절에 일본 어느 명승지를 찾아갔던 때를 생각하며, 얼마 멀지 않은 불국사까지 올라갔다. 굵은 소나무들이 빙 둘러싼 불국사 아래 뜰에는 때마침 보름달빛이 서리처럼 깔려 있었다.
나는 돌로 쌓은 육교를 올라갔다. 거기 층계 위에 커다란 문이 섰다. 나는 그 밑을 돌아 안뜰로 올라섰다. 거기에도 환히 달빛이 깔렸다.
「선생님이세요?」
학생들이 너덧 몰려서 마주 나왔다.
「오, 아직도 나와 다니나? 내일 아침이 이른데 일찍 자야지.」
나는 안뜰 편에 서 있는 다보탑 앞으로 걸어갔다. 엇비슷이 위에서 달빛을 받은 다보탑은 그 그늘이 뚜렷한 게 정말 고왔다. 그건 돌이라기보다 밀가루를 반죽하여 빚어 세운 것같이 부드러운 살결을 가진 탑이었다. 나는 다보탑을 지나 대웅전 뒤뜰로 들어섰다. 거기도 달빛이 가득 차 있었다. 뜰 가장자리에는 단풍잎에 달그림자가 그 색채를 잃은 채 낙엽처럼 깔려 있었다. 나는 그 안으로 더 걸어 들어가려다 말고 되돌아 이번에는 이쪽으로 해서 대웅전 안뜰로 다시 내려섰다. 거기 또 하나 탑이 서 있었다. 다보탑과 마주 이쪽에 선 그 탑이 바로 낮에 교감이 아사녀의 전설에서 말하던 석가탑, 즉 무영탑이었다.
나는 석가탑 앞에 가서 섰다. 무거운 정적이 가득 차 있는 옛날 뜰 한가운데 마치 눈 감은 부처님의 자세를 그대로 닮은 석가탑은 우주의 중심이 바로 여기라는 듯 태연히 섰다.
나는 주춤주춤 탑 뒤로 돌아갔다.
누군가 탑 그림자 속에서 희끗 나타났다.
나는 멈칫 섰다.
「숙이.」
「기다렸어요.」
달과 마주 선 그녀의 얼굴은 연꽃처럼 웃고 있었다.
(아사녀의 무영탑.)
나는 비로소 낮의 그 쪽지의 뜻을 깨달았다. 아사녀가 불국사에 왔다면 그녀는 과연 어디부터 찾아가겠는가.
「오래 기다렸지?」
「지쳐서 죽은 여인도 있는데요, 뭐.」
그녀는 또 한 번 소리 없이 웃었다. 둘이는 나란히 걸어서 돌층계를 내려왔다. 왼쪽으로 꺾어 숲 속의 좁은 길로 들어섰다. 그녀는 나의 뒤를 조용히 따라왔다. 숲속에 산장 같은 조그마한 다방이 있었다. 깨어진 다방 유리창으로는 <바위고개> 레코오드 소리가 애처롭게 흘러나오고 있었다. 우리는 다방 문앞을 그대로 지나쳐서 올라갔다. 그 이상은 길이 없었다. 달빛 아래 갈꽃이 소복이 모여서 피어 있었다. 풀잎 속에는 가을 벌레들이 서늘한 소리로 울고 있었다.
나는 갈꽃을 손으로 헤쳤다. 그녀는 치마를 감싸쥐며 따랐다. 바로 거기 반반한 잔디밭이 있었다. 우리는 거기 가서 나란히 앉았다. 사방을 소나무가 병풍처럼 둘러막았다.
「낮에는 고마워.」
「옛날만큼 맛이 없었어요.」
바람이 앞의 갈꽃을 스쳐 지나갔다. 명숙에게서 향수내가 그윽히 피어 왔다. 어디선가 놀란 새가 짹 하고 소리를 질렀다.
명숙이 흠칫 뒤를 돌아보았다.
「왜? 무서워?」
「아니요.」
명숙은 아니요라고 머리는 저으면서도 역시 내게로 바싹 다가앉았다. 또 한 번 가을바람이 갈꽃을 쓸고 지나갔다. 명숙이 저고리 앞자락을 여몄다.
「추워?」
「바람이 제법 싸늘해요.」
「옷이 너무 얇지.」
나는 양복 저고리를 벗어서 그녀의 어깨에 걸쳐 주었다. 그녀는 고개를 떨군 채 양복 저고리의 단추만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나는 달을 쳐다보았다. 거울 같은 보름달이었다.
「또 영원을 생각하세요?」
「…….」
나는 그저 그녀를 돌아보기만 하였다. 그녀는 둘러쓴 나의 양복 저고리 깃을 자기의 턱 밑에서 꼭 마주잡은 채 저만큼 앞의 소나무 그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저는 지금도 순간을 생각했어요.」
「…….」
「영원. 그건 즐거운 사람들만의 말이야요.」
「그럴까?」
「저는 방금 다음 순간을 위해서라도 이 순간을 버릴 수 없어요.」
나의 눈과 명숙의 눈이 조용히 마주쳤다.
「제가 무서우시죠?」
「숙이가?」
「술집 마담이.」
「이제 하나님이 미워졌어.」
나는 다시 눈을 앞의 갈꽃으로 돌렸다.
「제게는 미워할 하나님마저 없었어요. 천애의 고아야요.」
「실은 누구나 다 혼자야.」
「그런지도 몰라요. 그러나 저는 일생에 단 한 번만이라도 혼자가 아닌 저이고 싶어요.」
구름이 커어튼을 치듯이 달을 가리워 들어갔다. 구물구물 주위가 어두워졌다.
「요한씨!」
나는 그녀에게로 얼굴을 돌렸다. 그녀는 나의 무릎 위에 엎드리고 말았다. 그녀는 엎드린 채 나의 손을 더듬어 쥐어다 자기의 볼에 비비며 조용히 말하였다.
「요한씨, 한 번만이라도 저를 안아 주세요.」
나는 그녀의 등을 어루만지고 있었다. 나는 그대로 그녀를 꼭 쥐어짜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무어라고 설명할 수 없는 잔인한 생각이 번갯불처럼 나의 머릿속을 찢고 나갔다.
「네, 꼭 한 번만이라도. 오늘 이 밤 하룻밤만이라도 저를 고아에서 건져 주세요. 네, 네. 그 이상은 더 바라지 않겠어요, 요한씨.」
그녀는 나의 한 손을 자기의 볼에다 꼭꼭 누르며 몸을 뒤틀었다. 달이 구름을 헤치고 다시 나온 모양이었다. 그녀의 얼굴이 배꽃처럼 희게 밝아 왔다.
「아, 이렇게 눈이 부시게 달이 밝은데, 요한씨…….」
나는 달을 쳐다보았다. 허벅다리와 손바닥에 그녀의 체온이 따스하게 스며들고 있었다. 나는 무릎 위에서 그녀의 몸을 꽉 안아 당겼다.
「참는 수밖에 없잖아?」
「참아 왔어요. 일생을 마치 미결수처럼 참아 왔잖아요?」
「끝까지 참을 수밖에 없잖아? 그게 우리의 운명인걸.」
「운명이요? 하나님의 뜻이란 말씀이죠? 차라리 그런, 자기가 한 일에 대하여 책임을 지지 않을 수 있는 운명이란 편리한 게 있다면 좀더 편할 수 있겠어요.」
「어쨌든 참는 수밖에 무슨 도리가 있겠어? 응, 숙이.」
나는 한 번 그녀의 어깨를 꽉 안았다 놓았다. 그녀는 쥐었던 나의 손을 가만히 놓고 자기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몸을 일으켜 앉았다.
「자기를 속이자는 거죠.」
「속여?」
「참는다는 건 자기를 속이자는 거야요.」
「자기를 이기는 거지.」
「어느 한편 자기가 또 한편 자기에게 진 체 하자는 거죠. 저는 이십 년간을 두고 요한씨 사랑하지 말자고 애썼어요. 이제 꽤 사랑하지 않은 체는 할 수 있었어요. 참은 거죠. 이긴 거죠. 그러나 사랑하고 있는 사실에는 아무런 변동도 없었어요. 결국 나를 내가 속이고 있었어요. 그러나 끝내 자기를 속 일 수는 없었어요. 이제 이상 더는 자기를 속여 보려고 하지 않기로 했어요. 무의미했어요.」
「그러나 이젠 이미 늦었어. 너무 늦었어. 시간을 돌려 세울 수 없다는 건 마찬가지 아니야?」
「시간을 돌려세울 수는 없어요. 그렇지만 어제까지가 불행했대서 오늘도 또 내일도 마저 불행해야 한다는 법이 어디 있어요?」
「숙이, 그러면 도대체 지금의 내가, 남의 남편이고 아버지인 내가, 숙이와 나를 위하여 무엇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해, 응? 그저 이제 고개를 수그리고 나머지 내리막길을 마저 걸어 내려가는 도리밖에.」 「모든 책임은 제게 있어요. 저는 바보였어요. 바보 숙이였어요. 사랑이란 꽃처럼 피어나는 것으로 알았던 바보였어요.」
「숙이, 이제 와서 지난 일을 더 말하지 말어.」
「아니야요. 저는 과거를 이야기하는 게 아니야요. 오늘을 위하여 말하는 거야요. 저는 늦게나마 알았어요. 사랑은 싸워서 얻어지는 것이란 걸. 저는 제 인생을 꼭 도로 찾고야 말겠어요.」
「숙이, 이제 더 말하지 말어요.」
「요한씨가 어떻게 생각하시든, 저는 요한씨를 사랑하고 있어요. 그것뿐이야요. 그리고 참아도, 아무 리 나를 내가 속여도 사실대로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어요. 이제 제 앞에 단 하루만이 남았대도 좋아 요. 저는 그 하루라도 결코 누구 남을 위하여 버리는 어리석은 짓을 다시는 않기로 했어요. 마지막 한 순간까지라도 저를 위하여 살겠어요. 저를 위하여 요한씨를 사랑하겠어요. 참는다는 무의미한 짓 을 않기로 했어요.」
「숙이, 이제 정말 더 말하지 말아 줘, 응.」
「요한씨는 두 눈을 가리고 애써 자기 자신을 보지 않으려고 하고 있어요.」
「그런지도 몰라, 나는 무서울 때면 눈을 감아 버리곤 했어. 두꺼운 성경책 뚜껑으로 눈을 가리곤 했어.」
「지금도 무서운 거죠? 제가 무서운 거죠?」
「숙이가 무서운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이 무서워.」
「거짓말, 거짓말, 거짓말. 그건 거짓말이야요. 요한씨는 거짓말을 하고 있어요. 요한씨가 무서워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저는 다 알고 있어요.」
「글세. 어쩌면 나는 아직 내가 무서워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그 정체를 잘 모르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지.」
「요한씨가 무서워하고 있는 것은 결코 요한씨 자신이 아니야요.」
「그럼 무얼까? 우리는 지금까지 자신이 저지른 일에 대하여 책임을 지고 있는 것처럼, 앞으로도 내 가 한 일에 대하여서는 책임을 져야 할 게 아니야? 나는 바로 그 내가 져야 할 책임이 무섭다는 거 야.」
「책임이요? 요한씨는 아무것도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될 거야요.」
「그건 무슨 뜻이지?」
「요한씨는 지금까지 자기 의사대로 행한 행동이란 거의 없으시니까요.」
「뭐?」
「저는 그렇게 봤어요. 혹시 제가 잘못 본 것일지도 모르지만, 그럼 요한씨가 자기의 뜻대로 행했다 는 일이 있어요?」
「그야…….」
「요한씨는 모든 일을 그저 하나님의 뜻대로, 아니 교회의 뜻대로, 아니 그것도 아닌 교인들의 관례대로 따라왔을 뿐이야요.」
「교인들의 관례대로?」
「그러기에 저는 지금도 요한씨가 무서워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고 있어요.」
「하나님?」
「아니요. 하나님을 진정 믿는다면 하나님은 결코 무서운 하나님이 아닐 거야요. 저희들 인간의 마음 과 처지를 어느 인간보다도 자세히 아시고 계실 테니까.」
「그럼 뭐야?」
「그건 교회야요. 한국 교회, 구하기보다 벌하기에 더 열심인 한국 교회. 아니, 요한씨가 한 주일에 한 번씩 나가시는 무슨 무슨 교회. 아니요. 더 자세히 말씀드리면 교회도 아니고 그 교회의 장로 아무개, 집사 아무개, 교인 중에 가장 남의 말하기 좋아하는 아무개 아무개 그런 사람들이죠.」
나는 그녀의 열기를 띠고 하는 그 말에 아무런 대답도 할 수 없었다. 그녀의 말은 나도 미처 못 느꼈던 나 자신의 가슴속의 생각을 샅샅이 뚫어본 것이라고 할 수 있었다.
「결국 사람은, 그 앞에서는 자기를 감추어 두어야 하겠다고 생각하고 있는 그런 대상만을 무서워하는 거 아니겠어요? 그러니까 하나님은 무서워할 필요가 없지요. 하나님 앞에서까지 자기를 감추어 둘 수 있는 인간은 절대로 없으니까요. 다 아시는 하나님인 걸요, 뭐. 그러나 장로나 목사나 집사, 교인쯤은 속여 주려면 속여 줄 수 있거든요. 그러기에 그들을 두려워하는 거죠. 알리지 않을 수도 있는 것을 알게 되는 것이. 그렇지 않을까요? 제가 말씀드린 것이 틀렸어요?」
「…….」
나의 머릿속에서는 며칠 전처럼 바람개비 같은 것이 팽그르르 돌기 시작하였다.
「저는 이제 아무것도 무서운 것이 없어요. 저는 아무런 사람 앞에서라도 저 자신을 속일 필요가 없으니까요. 아무리 교묘히 속요 봐도, 자기가 죽고, 인류가 끝나기까지 그 사실을 아무도 몰랐다고 해 도, 하나님마저 몰랐다고 해도, 그 사실은 엄연히 존재한 것이 아니겠어요? 저는 이제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기로 했어요. 그저 사실 그대로 살기로 했어요. 그대로, 나대로요.」
「숙이! 지금 숙이가 한 말이 다 옳아. 나는 혹시 꿩인지도 말로, 암탉이 품어 까서 병아리들과 같이 키운 꿩. 숙이는 날더러 하늘을 날아 보라고 해. 너도 날 수 있는 날개가 있다고. 그러나 이미 날 수 있는 꿩으로서의 용기를 잃어 버렸어. 훌쩍 의외로 쉽게 날 수가 있을지도 몰라. 그러나, 그 다음에 오는 꿩으로의 생활은? 나는 뿌려 주는 모이를 주워 먹을 줄은 알아도 산에서 이리저리 모이를 찾아 낼 재주를 미처 못 배웠어. 나는 나의 모든 것을, 생명까지도 주인의 뜻 하나에 맡겨 두고 그 대신 사는 날까지는 답답하지만 안전한 뜰 안에서 사는 닭이야. 용기를 내어 산으로 날아가기에는 너무 크도록 닭의 생활을 했어. 내가 두려워하는 것은 지금 숙이 이야기한 대로 독수리가 아니라, 지금까지 나와 함께 지내온 닭들인지도 몰라. 장로, 집사, 목사, 권사, 말 많은 교인들, 가지 각종 닭들. 그 들 닭들이 실은 내가 닭이 아니라 꿩이라는 정체를 알까봐 그것을 제일 겁내고 있는지도 몰라.」
달이 또 구름 속으로 숨어들었다. 바람에 갈꽃들이 한쪽으로 비스듬히 눕다 말고 다시 일어섰다.
「인생의 고아. 사랑의 고아.」
명숙은 나부끼는 갈꽃을 바라보며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그렇지만 숙이를 사랑하는 내가 있지 않아?」
「제게도 부모는 있었을 거야요. 그래도 세상에선 고아라고 했어요. 요한씨가 저를 사랑하신대도 역시 저는 사랑의 고아죠.」
명숙은 고개를 조용히 내게로 돌렸다. 조그마한 입술이 배시시 상냥스레 웃고 있었다. 달이 또 구름을 헤치고 얼굴을 내밀었다. 나는 그녀의 눈을, 그녀는 나의 눈을 서로 마주 지켜보는 자세로 둘이는 한참이나 말이 없었다.
「그만 내려가요.」
이윽고 그녀가 거기 풀밭에 떨어진 나의 양복 저고리를 집어들며 일어섰다. 나도 따라 일어났다.
그녀는 나의 등 뒤로 돌아와 양복 저고리를 입혔다. 내가 막 소매에다 팔을 끼고 있을 때였다. 그녀는 갑자기 나의 등에다 얼굴을 대고 흐느껴 울기 시작하였다.
「숙이, 왜 그래, 응?」
나는 그녀에게로 돌아섰다.
「으응, 아무것도 아니야요, 그저……. 서투르죠? 부인보다.」
그녀는 생긋이 웃고 있었다.
나는 어느 사이 그녀를 부서져라 끌어안고 있었다. 달을 향하여 얼굴을 약간 뒤로 젖힌 그녀의 볼에는 눈물 자국이 두 줄 또렷이 그어져 있었다.
나는 그녀의 이마로 입술을 가져갔다. 싸늘한 이마였다. 나는 입술을 꼭 눌렀다. 발밑에서 짜르르 하고 가을 벌레가 처량하게 울기 시작하였다. 나는 그녀의 이마에서 입술을 떼며 한걸음 물러섰다. 벌레가 울기를 뚝 멈추었다. 나는 돌아섰다. 천천히 걸었다. 그녀는 두어 걸음 뒤를 고개를 수그리고 따라오고 있었다.
숲 속의 다방 앞을 다시 지나 불국사 앞뜰을 가로질러서 이쪽 가장자라의 소나무 밑으로 들어섰다.
「먼저 내려가세요.」
나는 멈칫 섰다. 따라오던 그녀의 거기 굵은 소나무에 기대어 서 있었다. 나는 다시 그녀의 앞으로 두어 걸음 되돌아갔다.
「늦었는데 그만 내려가.」
「먼저 내려가세요.」
「여관까지 바래다 줄께.」
「괜찮아요. 제가 갈 길은 제가 알고 있으니까요.」
그녀의 목소리가 심상치 않았다. 나는 한참이나 그저 그녀와 마주 서 있었다. 그녀는 내게서 얼굴을 옆으로 돌려 또 달을 쳐다보았다. 달빛을 담뿍 받은 그녀의 얼굴은 잔잔한 채 움직이지 않았다.
「자, 이제 그만 내려가, 숙이.」
「내버려 두세요. 저는 언제나 외로운 고아였어요.」
「숙이, 왜 그런 말을 해?」
나는 그녀의 등을 가만히 밀었다. 그녀는 걷기 시작하였다. 이번에는 나란히 걸었다. 어느 여관 문 앞에서 그녀는 걸음을 멈추었다. 나를 돌아보았다.
「안녕히 주무세요.」
그녀는 얼른 다시 돌아섰다. 그리고 여관 안으로 들어갔다. 나는 그녀가 안으로 사라질 때까지 거기 그냥 서 있었다. 무언가 하나 잊어버린 것이 있는 것처럼 마음이 허전하였다. 꼭 무언가 그녀에게 해 두어야 할 말이 있는 것만 같았다. 또 그녀가 꼭 나에게 해야 할 말을 안 하고 들어간 것만 같은 그런 차지 않은 심정이었다.
나는 돌아서 나의 여관 쪽으로 천천히 걸어 내려왔다.
(사랑의 고아.)
그러고 보면 나 자신도 역시 사랑의 고아였다. 아니 뿐만 아니라 가정의 고아이기도 했다. 직장의 고아이기도 했다. 또 교회의 고아이기도 했다. 남편이면서 남편이 아니었고, 아버지면서 아버지가 아니었고, 스승이면서 스승이 아니었고, 기독교인이면서 기독교인과 어울리지 못하였고, 나는 나를 비로소 발견하는 것이었다. 모든 면에서 나는 고아였다고 새삼스레 생각해보는 것이었다.
나는 갑자기 생각할 수 없는 고독감에 휩싸이고 말았다.
여관에서는 다들 곤히 자고 있었다.
나는 조심히 들어가 나의 자리에 누웠다. 곤하면서도 잠은 오지 않았다. 몇 번이나 몸을 뒤채었다.
나는 그때에야 문득 명숙이와 헤어질 때면 꼭 하던 말을 오늘 저녁에는 하지 않았다는 생각이 났다. 그녀는 내일 또 만나겠다는 말을 하지 않았었다.
나는 갑자기 서운한 생각이 들었다.
이제 그녀는 또다시 나의 앞에서 떠나고 만나 주지 않으려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자 나는 자리 위에 일어나 앉았다. 팔목의 시계를 보았다. 두 시였다. 이제 그녀의 숙소로 찾아갈 수는 없는 시간이었다. 한 번 그런 생각에 미치자 꼭 그럴 것만 같았다. 내일 새벽에는 일찍이 일어나 곧 그녀의 숙소를 찾아가야 한다고 생각하며 나는 다시 자리에 누웠다.
11
석굴암에서 해돋이를 보기 위하여 우리 일행이 여관을 출발하는 시간은 세 시 반이었다. 나는 한잠도 쉬지 못한 채 세 시에 일어났다. 너무 시간이 일러서 조금 주저하였으나, 나는 그녀가 머무르고 있는 여관을 향해 올라갔다. 여관마다 석굴암으로 올라가기 위하여 사람들이 웅성거리고 있었다.
「네, 서울서 오신 여자 손님 말씀이죠? 지금 막 떠났는데요.」
여관집 사환애의 말이었다.
「떠나다니, 어디로 가신다고?」
「석굴암으로 올라가셨어요.」
나는 그 여관을 나오며 공연히 하룻밤을 꼬박 걱정을 한 것이 스스로 우스웠다. 이제 떠난다고 하면 틀림없이 석굴암에서는 그녀를 만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자 한결 마음이 가벼웠다.
아직도 밝지 않은 산길을 애들은 군가를 부르며 올라갔다. 나는 교감과 또 수학 선생과 셋이서 애들의 행렬 뒤로 따라 걸었다. 길은 넓었으나 굽이굽이 산을 타고 도는 길이라 꽤 힘이 들었다. 그래도 애들은 기운이 만장이었다. 길이 한 굽이씩 꺾일 때마다 거의 한두 패씩 일반 사람들을 따라잡았다. 그때마다 나는 어두워서 잘 보이지는 않았으나 그 일반인들 가운데서 명숙의 모습을 찾아보곤 하였다.
「학생들이야 당해 내는 재주 있나 어디.」
우리 일행보다 앞섰던 일반인 패들은 뒤로 처지며 이렇게들 말하며 웃었다. 애들은 이제는 그 먼저 출발하였던 일반 사람들을 따라잡는 데 재미가 나서 더욱 빨리 올라갔다. 그렇게 한참을 올라가서, 산마루에서 길이 ㄱ자로 꺾이는 곳에 조그마한 오막살이가 한 채 있고, 그 앞에는 나무 걸상을 놓고 법주를 팔고 있었다.
애들은 그런 것은 본체만체 그냥 지나쳐 계속하여 걸었다. 우리 선생들도 하는 수 없었다. 점점 학생애들의 행렬에서 멀리 떨어지면서도 쉴 수 없는 노릇이었다. 나는 그 법주를 파는 오막살이 앞에 쉬고 있는 사람들을 한 사람 한 사람 유심히 보며 걸었다. 그 가운데도 명숙은 없었다.
거기서부터는 평평한 길이었다. 이제 동녘이 훤히 밝아 오기 시작하였다. 오른편은 그 위로 낭떠러지고 왼쪽에는 제법 큰 나무들이 들어선 산인 그 길이, 커다란 바위가 있는 데서 또 한 번 꺾이는 데였다. 저만큼 앞에 가던 학생애들 행렬이 꺅꺅하고 이상한 소리를 질렀다.
「저녀석들이 뭘 보고 야단들인가 원.」
교감이 중얼거렸다. 그러자 수학 선생이 길 한옆으로 나서 걸으며 학생의 행렬 쪽을 살폈다.
「이 산중에도 멋쟁이가 있군요. 그러니까 애놈들이 놀려 보는 모양이죠.」
「원 그놈들, 참 맹랑한 놈들이라니까. 하하하하.」
「하하하하.」
우리들은 걸음을 좀 빨리하여 학생들의 뒤를 따라갔다. 우리들이 거의 학생들 행렬 뒤에 다가온 것과, 대여섯 사람되는 일반인 한 패가 학생들 행렬의 끝을 앞세우고 떨어지는 것과 맞먹었다.
우리가 일반인 패를 지나치려던 때였다. 나는 그 가운데 세째번에서 걷고 있는 명숙이의 뒷모습을 보았다. 우리들과 그들은 꽤 여러 미터나 나란히 걸었다. 나는 될 수 있는 데까지 명숙의 눈앞으로 가까이 걸었다. 공공연히 인사는 못 하더라도 서로 눈인사라도 하고 싶었다. 나는 그녀에게 눈을 떼지 않고 걸었다. 그녀는 고개를 떨구고 길만 보고 걷고 있었다.
우리들은 그녀의 앞을 지나쳤다. 그러니까 나는 그녀의 바로 한 발 옆으로 걸어 지나쳤다. 그래도 그녀는 종내 눈을 들지 않았다. 나는 모른 체 지나쳐 버리는 수밖에 없었다.
「그 세 번째 여자, 미인이던데.」
우스운 소리를 곧잘 하곤 하는 수학 선생이 나의 옆구리를 쿡 쥐어지르며 힐끔 옆의 교감을 돌아보았다.
「허, 이선생님이 큰일나겠군. 예수님은 그것도 죄라고 하셨는데. 허허허.」
교감이 점잖게 웃었다.
「아, 정말입니다. 미인입니다, 교감 선생님. 그렇죠, 최선생? 」
나는 그저 빙그레 웃고 말았다. 그보다도 나는 내심으로 지금 그 명숙의 태도가 궁금하였다. 딴 선생들 앞이라 부러 그러는 것으로치고는 어쩐지 그녀의 몸 전체에서 느껴지는 것이 너무 차가왔다. 나는 무의식중에 뒤를 한 번 돌아보았다. 여전히 그녀는 발부리만 보며 걷고 있었다.
「어때? 미인이지? 그러나 그저 한 번 보기만 해요. 공연히 …….」
나는 또 빙그레 웃고 말았다.
석굴암에까지 다다른 학생애들은, 석굴암 밑에 있는 조그마한 절 앞뜰에 여기저기 흩어져 앉아서들 쉬고 있었다. 나는 뜰 가장자리에 있는 큰 바위에 가 앉았다.
「선생님, 거기 위험합니다.」
학생 하나가 나의 두에서 일러주었다. 그러고 보니까 그 바위 밑은 그대로 절벽이었다. 나는 일어나서 좀 뒤로 물러나 앉았다. 바로 바위틈에서 나서 이상스레 구부러진 벚나무 가지가 나의 머리 위를 덮고 있었다.
「왔다, 왔어. 어이, 왔어.」
애들이 우수수 저쪽 올라오는 길목 상점 쪽으로 고개를 돌리며 수군거렸다. 휙휙 휘파람을 부는 학생들까지 있었다.
나는 무심히 그리로 돌아보았다. 벚나무가 양쪽에 우거진 길을 좀 전 우리에게 떨어졌던 명숙이가 섞인 한 패가 올라오고 있었다. 그 중에서도 산길을 걷기에는 너무나 어울리지 않게 긴치마를 곱게 입고 있는 명숙이가 제일 눈에 띄었다.
그들은 물건들을 파는 상점 앞으로 가서 거기 놓인 나무 걸상에 걸터앉았다. 이제 곧 해가 솟아오른다고 하였다. 다들 와르르 앞으로 몰려 섰다. 절간 뜰 가장자리에 진을 치듯 한 줄로 죽 늘어섰다. 교감과 수학 선생과 또 딴 선생들도 다들 학생들 틈에 끼어서 동녘을 향해 서 있었다.
나는 불국사의 아침해보다 명숙의 거동에 더 관심이 갔다. 저편에 명숙이가 섞여 있는 패에서도 우르르 일어서서 앞으로 나왔다. 그런데 명숙이만은 그대로 혼자 걸상에 앉아 있었다. 나는 그녀의 시선이 이리로 돌려지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한참을 기다려도 그녀는 그저 길 가운데 한곳에 눈을 준 채 도무지 얼굴을 들지 않았다.
「와, 해가 뜬다. 빨간 해구나, 야아.」
나의 등 뒤에서 애들이 큰 소리로 떠들었다. 거기 선 사람들의 시선은 다들 해를 향하고 있었다. 그러나 저만큼 앉아 있는 명숙이만은 처음 그 자세대로 길 가운데 어느 한 점을 보는 채 움직이지 않았다.
점점 사방이 밝아 왔다. 빨간 빛이 모든 물건을 비추기 시작하였다. 상점의 유리창이 반사하여 빨갛게 빛을 발하였다. 그 빨간 유리창 앞에 앉아 있는 명숙은 마치 불붙는 가운데 앉아있는 것 같았다.
그러나 종내 명숙은 눈을 들어 나를 보려고는 하지 않았다.
「자, 갑시다. 이젠 불상을 봐야지.」
수학 선생이 나의 어깨를 툭 쳤다. 나는 일어섰다. 애들은 와르르 석굴암 돌층계를 뛰어 올라갔다. 나는 딴 선생들과 함께 석굴암까지 올라갔다. 천 2백 년. 그것은 짧은 세월이라고 할 수는 없었다. 그런데 그 석가여래상은 그대로 앉아 있었다. 의젓이 미소를 지으며 그 부처님은 천 년을 앉아 있는 것이다. 암자 입구에 팔을 번쩍 들고 주먹을 불끈 쥐고 서서 부처님을 지키고 있는 사천왕상(四天王像). 십일면 관음보살의 그 아름다운 몸매. 그것은 종래에 보아 온 무언가 난장이 불구자 같기만 하던 여러 불상들과 비하여 생각할 때 분명히 아름답고 기품있는 예술이었다.
나는 자꾸만 마음이 저 밑에 앉아 있는 명숙에게로 끌리면서도 그 좁은 암자 안을 몇 번이나 학생들 틈에 끼어 돌며 근 반시간이나 지냈다.
암자를 나오자 마치 꿈에서 깨어난 것처럼 다시 현실로 생각이 되돌아오는 것이었다. 나는 아침 햇빛을 정면으로 받으며 돌층계를 걸어 내려왔다.
돌층계 밑에는 바위를 쪼아서 판 샘이 있었다. 학생애들이 샘 둘레에 빙 둘러서 제각기 자기들 물병에 물을 채우고 있었다.
나는 층계를 다 내려와 그 샘으로 갔다. 샘 위를 지붕처럼 덮고 있는 바위에 굵다란 글씨로 <감로수>라고 새겨 있었다. 나는 애들의 어깨 너머로 샘을 들여다보았다. 맑은 물이었다. 무색 투명, 나는 중학교 때에 화학 선생이 물을 설명해 주던 생각이 났다.
「선생님, 약물이랍니다.」
한 학생이 나를 돌아보고 비켜서며 말하였다.
「한 사발만 마시면 천 년은 산답니다, 선생님.」
또 한 녀석이 거기 스님이 그러더라며 웃었다.
「그럼 한 컵만 마시면 백 년쯤은 되겠군 그래.」
나도 농담을 하며 그들 틈에 들어섰다.
「선생님, 그럼 이거로 하나만 마시십시오. 세 컵은 될 겁니다. 3백 년.」
한 녀석이 나무를 파서 만든 소박하기 짝이 없는 물 주걱을 내게 건네주었다. 둘러섰던 애들이 와아 하고 웃어 대었다.
「그래 볼까? 한 3백 년 살아 볼까?」
나는 물주걱을 받아들었다.
「그런데 선생님, 조건이 하나 있습니다.」
한 녀석이 말했다.
「무슨 조건인데?」
「마시되 단숨에 마셔야지 쉬었다 마시면 안 된답니다.」
「그래? 쉬었다 마시면 죽었다 다시 나는 건 아닌가?」
「그런지도 모르죠.」
「그렇다면 참 편리하겠는걸. 그러면 난 한 방울만 마시고 쉬었다 마시겠는데, 하하하.」
「선생님 마음대로 하세요. 그까짓 거 뭐 부처님 거지 우리건 아니니까요.」
애들이 또 와아 웃었다.
나는 물주걱으로 물을 하나 가득히 떴다. 주걱에서 떨어지는 물방울이 보석알처럼 아침 햇빛에 반짝였다. 샘에는 떨어진 물방울이 일으킨 파문이 사르르 퍼져 나가고 있었다. 나는 물을 마시려고 주걱을 들어올렸다. 바로 그때였다. 누구가 등뒤에서,
「쉬이!」
하고, 이상한 소리를 내었다. 애들이 일제히 뒤를 돌아보았다. 나도 물주걱을 들어올린 채 뒤를 돌아보았다. 바로 거기 내 등뒤에서 어느 사이에 또 명숙이가 와서 서 있었다. 나는 주춤 한 걸음 옆으로 비켜섰다.
그녀는 내 옆으로 샘을 들여다보았다. 물에 비친 분홍색 새벽 하늘색과 푸른 나뭇잎 색과 그녀의 흰얼굴색이 내가 들고있는 물주걱에서 떨어지는 물방울로 해서 일어나는 수문(水紋)에 마치 현대 회화의 한 폭처럼 뒤섞여서 신비스레 출렁거리고 있다.
둘러선 학생들도 나도 또 그녀도 어색할 정도로 조용하였다. 나는 내가 들고 있던 물주걱을 물이 가득히 담긴 채 그녀의 앞으로 손잡이를 돌려 내밀었다.
그녀는 그 시원한 눈으로 한 번 나를 쳐다보았다. 웃는 듯 마는 듯 이슬 같은 미소가 그녀의 입 가장자리에 떠오르다 말고 사라졌다. 그녀는 오른손에 쥐고 있던 수건을 왼손으로 옮겨 쥐고 나서 살며시 물주걱을 받았다. 그녀는 물주걱을 받아들고 또 한 번 나를 쳐다보았다. 그녀는 조심스레 물주걱을 빨간 입술로 가져갔다. 흘려넣듯이 조용히 한 모금 마셨다. 그녀는 물주걱에서 입을 떼었다. 두 손으로 물주걱을 받쳐 들었다. 내게로 살며시 내밀었다.
「에, 선생님 백 년 손해 보셨다.」
누군가 한 녀석이 우스운 소리를 하였다. 나는 학생 해들을 한바퀴 둘러보았다. 어쩐지 애들 앞에서 그녀가 마시다 남겨주는 그 물을 마시기가 좀 멋적어서였다.
「선생님, 2백 년만 사세요 뭐.」
또 한 녀석이 놀려 대었다. 나의 앞에 그대로 서서 마치 내가 그 물을 마시는 것을 감시나 하려는 듯이 마주 서 있는 그녀를 한 번 쳐다보았다.
나는 물주걱을 입으로 들어올렸다.
「와아…….」
애들이 마구 함성을 올렸다. 나는 크게 한 모금 마시고 나머지 물을 주르르 발 밑에 쏟아 버렸다. 그녀는 아무런 말도 없이 돌아섰다. 그리고 사뿐사뿐 다시 저 밑으로 걸어 내려갔다. 학생애들과 나는 멍청하니 서서 그녀의 걸어가는 뒷모습을 언제까지나 바라보고 있었다. 우리들은 석굴암 밑의 절간 앞뜰에 애들을 모아 세웠다. 거기서 아침 식사를 하게 되어 있었다.
해산을 하자 애들은 다들 산 속으로 숨어들었고, 우리 선생들은 절간 마루로 둘러앉았다.
김밥을 풀어 놓고 식사를 하고 있을 때였다. 나의 바로 맞은편에 앉았던 수학 선생이 나를 건너다보며 김밥을 집어든 손을 자꾸만 저쪽으로 내질렀다. 나는 그가 몰래 가리키는 쪽을 돌아보았다. 나의 등 뒤 저만큼 있는, 아침에 내가 앉아 있었던 바로 그 바위 위에 명숙이가 저편 낭떠러지 쪽을 향하여 앉아있었다.
앞에 앉은 수학 선생이 한쪽 눈을 감았다 떠 보이며 김밥을 입에 집어넣었다. 나는 식사를 대강 하고 마루 끝으로 나와 걸터앉았다. 그녀는 여전히 이쪽으로 등을 돌린 채로 무엇을 생각하는지 망연히 동해를 바라보고 있었다.
「역시 멋쟁이지?」
수학 선생도 식사를 끝낸 모양으로 나의 옆에 와 앉았다. 나는 그저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아마 10분도 더 그렇게 앉아 있었다.
「우리 저 밑에나 가 봅시다.」
수학 선생이 일어서며 웃음을 털었다. 나는 한 번 더 명숙이 쪽을 바라보았다.
바로 그때 그녀가 살며시 일어섰다. 얇은 치맛자락이 아침바람에 한번 크게 나부꼈다. 그녀는 치마 꼬리를 더듬어 앞으로 감아쥐었다.
「쓸데없이, 자 저 밑에나 가 봅시다.」
수학 선생이 나의 손을 잡아 끌어 일어켰다. 나는 따라 일어섰다. 우리는 뜰로 내려섰다. 그때였다. 명숙이 한 번 고개를 이리로 돌렸다. 순간 나의 시선과 마주쳤다. 그것은 정말 순간도 채 못 되는 짧고 뾰족한 시간이었다. 그녀는 다시 고개를 돌려 버렸다.
우리는 거기서 좀더 앞으로 뻗어 나간 산줄기 끝에 사리탑(舍利塔)이 있다는 곳으로 내려가고 있었다. 우리가 그러니까 절간 뜰에서 낭떠러지 밑으로 내려가는 언덕길을 뛰어 내려가던 때였다. 갑자기 뒤에서 소란하게 애들이 떠드는 소리가 났다. 여럿이 떠드는 소리가 무슨 일인지는 잘 알 수 없었다. 나와 수학 선생은 주춤 섰다. 귀를 저 절간 있는 쪽으로 기울였다.
「사람이 떨어졌어요! 사람이 떨어졌어요!」
나는 분명히 들었다.
「사람이 떨어졌다구?」
수학 선생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 갔다.
「글세.」
「큰 사고 났구만. 에이, 애놈들이 너무 까불더라니.」
쿠덩쿠덩 학생애들이 이리로 언덕을 마구 뛰어내려왔다.
「누가 떨어졌어?」
「여자가 떨어졌어요. 아침에 그 여자가요.」
학생애들은 양복 저고리 단추는 전부 따 헤진 채로 마고 뛰어 내려갔다.
나는 정신이 아찔하였다.
「아, 바로 그 여잔가?」
수학 선생이 그래도 학생이 아니라는 데 직접 책임에서 풀려난 듯 말하였다.
나는 그때에야 지금 달려간 애들의 뒤를 따라 달리기 시작하였다. 칡덩굴이 얽히고, 잡목들이 틀고 들어선 바위 잔등을 나는 어디를 어떻게 뛰었는지 모른다.
학생들이 빙 둘러서 있었다. 나는 그들을 두 손으로 헤치고 달려들었다.
두 팔을 아무렇게나 내던지고 바위 잔등에 엎어진 것은 분명히 명숙이었다.
「숙이!」
나는 그녀를 안아 일으켰다. 목이 건들하며 머리의 무게를 지탱하지 못하였다.
「숙이! 숙이!」
나는 그녀의 몸을 안아 흔들었다. 그러나 그녀는 이미 숨을 거두고 있었다. 그녀의 입에서 피가 주르르 쏟아져 나왔다. 나는 그녀의 두 팔로 들어 안고 일어섰다. 둘러섰던 애들이 뒤로 물러섰다. 그녀의 목과 팔과 다리는 제각기 축 늘어졌다. 내가 바위 위를 뛰어 디딜 때마다 그녀의 팔과 다리가 흔들거렸다.
학생 중 하나가 떨어졌던 그녀의 손수건을 주워 들고 와서 그녀의 얼굴에다 덮어 주었다. 나는 그녀를 안고 천천히 언덕길을 걸어 올라왔다. 애들이 여남은 명 마치 조객처럼 뒤를 따라오고 있었다. 아무도 말이 없었다. 절간 뜰까지 올라온 나는 그녀의 시체를 뜰 한모퉁이 잔디가 깔린 빨간 단풍나무 밑에 눕혔다.
나는 양복 저고리를 벗었다. 전신이 땀이었다. 나는 그녀의 가슴에다 양복 저고리를 덮어 주었다. 나는 울 수도 없었다. 애들이 빙 둘러서고 일반 사람들이 그 가운데 드문드문 끼어 섰다.
「암만 해도 좀 수상했어요.」
「아침에 같이 떠났는데 한마디도 말을 하지 않는단 말이야.」
「자살일 거요, 모르긴 하지만.」
아마 같은 여관에서 묵고 함께 석굴암에 올라온 패들인 모양이었다.
「아니, 그분이 바로 아침의 그분이 아닙니까?」
학생이 사고라도 일으킨 줄 알고 놀라서 달려온 교감의 말이었다.
「그렇습니다.」
「허, 그 참 안됐군. 어쩌다 실수를 한담, 원.」
「자살이랍니다. 선생님.」
「자살?」
「네.」
「자살이라니? 원 저런. 무슨 까닭이 있었는지는 몰라도 자살이야……그것은 죄지.」
「죄요? 교감 선생은 이것까지 죄로 따지시렵니까?」
나는 교감의 눈을 노려보았다.
「아, 그야 하나님이 주신 생명을…….」
「선생님! 물러서 주십시오.」
나는 교감의 가슴을 한 손으로 떼밀었다. 애들의 눈이 휘둥그래졌다.
「아니, 최선생!」
「죽음까지도 죄로 따지시려거든 교감 선생은 영생하십시오.」
「아, 나는 자살을 말하는 것이요.」
「이를 죽도록 괴롭힌 자가 누군지 아십니까? 바로 당신들이요.」
교감은 여러 학생들 앞에서 혹시 애매한 치정 관계의 오해나 받을까 두려워하는 듯 당황하였다.
「그녀는 죽었습니다. 죽은 것입니다. 죽음은 절대적인 행위올시다. 그렇게 다시는 돌이킬 수 없는 막다른 골목으로 그녀를 몰아넣은 사람이 바로 당신들이란 말입니다. 당신들 한국 교회의 목사, 장로, 그리고 말 많은 교인들이란 말입니다.」
「아니, 목사, 장로가 어떻다는 겁니까? 최선생, 진정하십쇼.」
「저는 지금 세상에 나온 뒤로 제일 똑똑한 내 정신을 가지고 있습니다. 한 번 더 똑똑히 말씀드려 두지요. 그녀를 이렇게 만든 것은 바로 당신들이라는 것을. 그녀는 피해자입니다. 그리고 그를 죽인 하수인은 접니다. 당신들의 사주를 받은 어리석은 등신 요한입니다. 아니, 하수인인 동시에 저도 역 시 그녀와 마찬가지로 피해잡니다. 그리고 또 당신들도, 한국의 목사, 장로, 그리고 기독교인 모두 다 실은 피해자인지도 모릅니다. 반세기도 더 전에 한가하던 우리 조상들이 마을 어귀 느티나무 밑에 앉아서 허리에 차고 다니던 장도로 심심풀이로 깎아 세운 기독이란 목상의 피해잡니다.」
「최선생, 학생들 앞에서 하나님을 모독하십니까?」
「저는 하나님을 모독하지는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진정 하나님은, 당신들이 소위 예배당이라고 부르는 저 서낭당 저 너머에 계십니다.」
「그래, 도대체 이 분이 누구요? 최선생이 아시는 분입니까?」
「아사녀요. 어제 교감 선생이 이야기하신 아사녀요. 인간은 잊어 버리고 하나님 아닌 기독교만을 위하는 자들의 피해자, 죽음을 보고 눈물보다 먼저 죄를 생각하는 자들의 피해를 입은 여인 양 명숙이 요. 제가 일생을 두고 사랑하던 여인 숙이요. 술집 마담이요.」
「선생님, 저기 자동차가 한 대 있어요.」
눈치 있는 학생들이 손님들이 타고 올라왔던 자동차를 불러놓았다.
나는 그녀의 시체를 다시 일으켜 안았다. 애들이 가운데 통로를 내놓고 죽 양쪽에 늘어섰다.
나는 그 가운데로 천천히 걸어나갔다. 비로소 눈물이 콱 솟아올랐다.
「저는 아무것도 무섭지 않아요.」
「제가 갈 길은 제가 알고 있으니까요.」
어젯저녁에 그녀가 하던 말이 생각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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