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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木백일홍

Others/이것 저것 2011. 2. 11.

정채원


여름이 깊어야 비로소 피던 꽃
다른 꽃 다 폈다 져도
백일 동안 지지 않고 버티던 꽃잎들
아무리 못 본 척해도 고집스레 붉던 꽃잎들
연못 가득 떨어져 있다
그래, 잘 가라
외나무다리 건너
나도 언젠가 너 따라 가리니
가서, 나도 백일 동안 지지 않고 붉을 것이니
너를 향해 한결같이 피어 있을 것이니
그 때 너, 나를 모른다 모른다 하라
첫서리 내릴 때까지
내가 너에게 그랬듯이



** 어느 지하철역에서 비상문 앞에서 잠깐 읽었는데 가슴에 와 닿았다.

정채원님은 1951년 서울에서 태어나 이화여대 영문과를 졸업했다. 1996년 <문학사상> 신인상으로 등단했다. 시집 <나의 키로 건너는 강>이 있다.
일부러 이 분의 시를 몇 개 찾아 읽어 봤는데, 공감이 팍팍 간다.
1990년 풍납동 물난리 때 태양금속 앞을 가슴과 어깨까지 차오른 물을 헤치며 건너 본 경험이 있는 내게,
나의 키로 건너는 강이라는 표현은 그야말로 공감백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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