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가 3층 건물의 구입을 결정하면서 모든 교인이 힘껏 건축헌금을 하기로 결정했다. 누구의 욕심이 아니라, 모든 교인에게 필요성이 너무나 큰 교육관의 구입이기 때문에, 또 오랫동안 기도해온 것이기 때문에, 모두가 구입에 한 마음이 되었다.
그러나, 은행 대출을 통해 구입이 정해진 지금, 이제는 모두가 진정한 Moment of Truth에 서 있다. 각자의 경제 상황 속에서, 작정하여 헌금해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우리는 불가피하게 다른 사람의 신앙을, 그리고 내 신앙을 판단하게 된다. 그런데, 사람의 신앙을 결정하는 다양한 factor들 중에서, 헌금을 얼마나 하느냐의 중요성이 지나치게 부각되는 시점이 되었다는 데 문제가 있다.
헌금을 많이 한 사람은 적게 한 사람의 믿음이 부족하다고 생각할 수 있고, 적게 한 사람은 많이 한 사람을 기복적인 신앙의 사람이라고 판단할 수 있다.
헌금 액수는 차이일 뿐, 믿음의 정도로 보지 말자
오늘은 이러한 것을, 하나의 잣대 기준이 아닌, 차이로 인정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된다. 건축헌금의 작정을 가지고 교회가 나뉘고 성도의 교제가 소홀해지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닐 것이다. 각자의 믿음의 분량의 문제도 아니고, 어쩌면 각자의 상황의 차이일 수도 있다. 또, 헌금이 축복을 가져온다는 믿음도, 혹시 그것이 옳지 않더라도 교회를 깨뜨릴 정도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믿음의 공동체 안에서 남을 비판하는 이유 중에 하나는 믿음의 차이 때문이다.
바울 당시에 소위 믿음이 강하다는 사람들은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구약의 율법과 전통에서 자유로웠다. 그들의 눈에 구약의 율례를 따라(레 11~16장) 고기를 먹지 않고 채소만 먹는 사람들은 복음이 가져다주는 자유를 전혀 모르는 것으로 비쳤다. 따라서 복음 안에서 자유를 구가하는 사람들은 채소만 먹는 믿음이 연약한 사람들을 종종 업신여기기도 했다.
바울은 이런 문제로 성도들끼리 서로 비판하지 말아야 한다며 성도들의 믿음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주권을 제시했다(롬 14:4).
믿음의 차이도 인정하고 극복하자
우리는 믿음의 주님이시고 온전케 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주권적 구원과 섭리를 바라보면서 믿음의 차이로 발생하는 문제들을 극복해야 한다. 성도들이 무슨 일을 하든지 중요한 것은 ‘주님을 위해’, ‘주님의 나라를 위해’ 감사함으로 하겠다는 마음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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