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하나님, 대체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 거죠?”
이렇게 말하게 되는 때....
욥처럼,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큰 그림'을 가지신 하나님을 신뢰하면서
우리의 '작은 그림'을 살펴보고 온갖 불신앙의 증거에도 불구하고 믿음을 붙드는 것이다.
믿음은 미래로 가서 되돌아볼 때 비로소 이해될 수 있는 것을 미리 믿는 것이다.
필립 얀시의 새로운 책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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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든 작든 '그림'보다는 '하나님' 그분께만 집중해야 하는데...
저는 여전히 그림에만 관심이 있고... 그것도 작은 그림에만 집중하니... 안타깝습니다. ㅠ.ㅠ
2.
“내 생각에 갇히지 않는 것이 믿음입니다.”
- 도저히 내 생각으로는 안 될 일들이 있습니다. 내가 아무리 싸워봐야 도저히 이길 수 없을 것 같은 상대가 있습니다. 다 내 생각입니다.
- 내 생각은 대부분 내 경험 속에 갇혀 있습니다. 내 생각은 모두 내 과거의 회로에 갇혀 있을 뿐입니다. 그래서 먼저 생각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 그러나 생각을 떨치는 일이 쉽지 않습니다. 내가 생각에 갇혀 있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고, 그 사실을 인정하려고 들지 않기 때문입니다.
- 신앙과 불신의 차이는 이 사실에 대한 인정과 부인의 차입니다. 신앙은 내 생각이 틀렸고 내가 가장 큰 장애물임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 다윗이 선택한 통일 왕국의 첫 과제는 헤브론에서 천도하는 일입니다. 새 수도로는 예루살렘이 적격이지만 여부스 족속의 철옹성입니다. 가나안 정벌의 대표적인 실패가 여부스 족속의 이 성을 빼앗지 못한 것입니다. 그들은 불구자라도 이 성을 지킬 수 있다고 자만합니다. 사실 예루살렘 성이 난공불락이 아니라 여부스 사람들의 이 생각이 난공불락이었습니다. 다윗의 군사보다 이 생각의 위험이 더 컸습니다. 이런 생각 때문에 노르망디가 뚫렸고, 마지노 선이 무너졌습니다. 흔히 하는 말로 설마가 사람 잡은 것입니다. 다 헛된 믿음의 결과입니다.
- 다윗은 삼면이 골짜기로 둘러싸인 이 산성의 허점을 발견했습니다. 골짜기에서 물을 끌어가는 좁디 좁은 수로가 뜻밖의 허점이었습니다. 다윗은 누구도 공략할 엄두를 내지 못했던 예루살렘 성을 점령합니다. 이 성이 난공불락이라는 모든 사람의 생각에 갇히지 않았습니다.
- 다윗은 그야말로 나를 알고 적을 알았습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다윗이 하나님을 알았다는 것입니다. 그 앎이 믿음이자 능력입니다.
- 다윗은 하나님을 앞서가지 않았지만 또한 뒤처지지 않았습니다. 교만은 앞서가게 하고 두려움은 뒤처지게 하지만 그는 언제나 평안함으로 동행했습니다. 그 평안함은 볼 수 있는 것을 놓치지 않을 뿐 아니라 볼 수 없는 것을 봅니다.
“믿음은 하고도 한 것이 없다는 깨달음입니다.”
신앙은 하나님으로부터 시작된 것입니다. 신앙은 결코 사람으로부터 시작된 일이 아닙니다. 신앙과 상관 없이 하나님은 사람을 사랑하십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방법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힘써 아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을 사랑할수록 하나님을 더 알아갑니다.
다윗은 세 차례 기름부음을 받았습니다. 사무엘을 통해서 처음 받았고, 사울이 죽은 후 유다 백성을 통해서, 그리고 그 이후 모든 백성을 통해서 입니다. 다윗은 그러나 단 한번도 사람들이 자신을 왕으로 세워주었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오직 하나님께서 자신을 왕으로 삼았음을 고백합니다.
다윗이 왕위에 오르자 두로 왕 히람이 백향목과 목수, 석공들을 보내 왕궁을 지어주었습니다. 그러나 나를 위한 것으로 여기지 않았습니다. 다윗은 이 왕궁조차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해 하나님께서 나라의 위상을 높여주신 것임을 깨달았습니다. 그의 겸손은 깨달음의 산물입니다.
사람은 하나님을 아는 만큼 겸손하고, 예수님을 아는 만큼 사랑하고, 성령님을 아는 만큼 절제합니다. 하나님을 모르면 착각 속에 삽니다.
한가지 주목할 점이 있습니다. 사람들이 나를 왕으로 세운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세워 주셨기에 사람들은 그냥 무시해도 상관없습니까? 때로 사람이 안중에 없는 듯 사는 믿음의 사람이 있습니다. 겉으로 겸손한 것처럼 행동해도 속에 있는 교만이 배어나는 사람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잘 모르는 사람이고 내가 누구인지를 잊은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나를 건져주신 분입니다. 죽음에서 살려주신 분입니다. 살아있다는 것이 기적인 사람이고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진 것을 설명할 길 없는 사람입니다. 입이 만개라도 불평할 말이 없는 사람입니다. 그 감사와 눈물의 섬김에 세상이 놀라고 감동합니다.
다윗은 아무리 사람 앞에 드러나도 이기적이 되지 않았습니다. 죽을 만큼 힘들게 고생해도 내가 했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다윗이 대견하기만 합니다.
*PS. 김은호 목사님의 어제 금요기도회 설교에서는 여호수아가 나옵니다. 여호수아는 가나안 정복의 대업을 이루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자기가 한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오직 하나님이 하셨다고 생각했습니다. 그의 명령으로, 그의 용기로 이루어진 정복 전쟁이었습니다. 그는 그 전장에 언제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이 이루셨다고 얘기합니다. 이것이 믿음의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보여주는 모습입니다.
기드온의 3백용사 얘기도 하셨습니다. 원래 3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모였었습니다. 하나님은 두려워하는 사람을 돌려 보내고, 남은 사람 중에서도 물먹는 모습에서 3백명을 추려 냅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들의 수가 많음으로 승리하는 것이 아님을 가르쳐 주고자 함입니다. 또 기드온은 원래 소심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큰 용사라고 부르십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이 선택하시고 인도하시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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