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pport:
살다가 간혹 무기력을 느낄 때가 있다. 왜 그럴까?
‘당신이 메시지다’라는 책을 쓴 ‘케리 슉’은 “말과 삶이 불일치할 때 우리는 고통을 받는다”라고 한다. 예를 들어, 가족이 소중하다면서 가족과 함께 의미있는 시간을 보내지 않는다면, 고통을 받을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우리가 삶에서 헛된 다짐만 할 뿐 행동이 따르지 않을 때 우리는 질리게 되고 무기력하게 된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다. 기도하고 말씀을 읽어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실제로는 기도하지 않고, 말씀을 읽지 않고, 순종하지 않는 신앙은 무기력해진다. 말과 삶이 응집되지 않고 벌어지는 만큼 무기력해진다. 우리는 “말로 설명하고 삶으로 증명해 보여야” 한다. 바울은 그러했다.
말과 삶이 하나되기 위해서는?
첫번째 결심 : 말씀 안에서 사명을 발견하라
- 서기오 바울 Sergius Paulus - 바울과 바나바가 제 1차 선교여행의 첫번째 선교지 구브로 섬 바보(Paphos)에서 만나 바울이 말씀을 전했던 사람 (총독)
- 바보(Paphos)에서 ‘사울’의 이름이 ‘바울(Paul, Paulus)로 바뀌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선교팀의 명칭이 바뀌는 것을 본다. 즉, 바나바와 사울 ==> ‘바울과 및 동행하는 사람들’로 팀이 재정비 되었다.
바울과 바나바는 수리아 안디옥에서 파견되었고, 비시디아 안디옥을 선교지로 목표했다. 당시 안디옥은 16개 있었으나 성경에는 2곳만 나온다. 특히, 비시디아 안디옥은 타우르스 산맥 너머의 높은 고지대여서 험한 곳이었다.
선교팀이 바보를 떠나 버가에 도착했을 때, 요한(마가)가 버가에서 선교팀을 이탈한다. 왜 그랬을까?
여러 이유가 제시된다.
1) 고향 예루살렘에 대한 향수병에 빠졌기 때문이다.
2) 바울의 선교팀 내의 리더십에 대한 불만이 있었기 때문이다. 마가는 바나바의 사촌인데, 바나바의 리더십이 약화되었기 때문이다.
3) 앞으로 험난한 선교길이 예상되어, 부잣집 아드님으로서는 너무 힘들어서 돌아갔을 것이다.
이상의 3가지는 일리는 있으나 결정적인 이유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그러면 진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하나님께 직접 받은 사명”이 있던 바울과 바나바와 달리, 마가(요한)는 그렇지 못했기 때문이다.
- 우리가 신앙에서 무기력해지는 것도 붙자고 있는 “말씀”이 없기 때문 아닐까?
당신의 일주일 간의 삶은 어떤 말씀을 붙잡고 살아왔는가? 떠오르는 말씀이 없다면 붙들린 말씀이 없기 때문이다. - ‘삶이 메시지다’를 쓴 김기석 목사는 ‘무리인가 제자인가?’라는 챕터에서 ‘무리는 리(理)가 없는 사람이다.’라고 정의한다. 다스림이 없는 사람들이 무리(군중)라는 의미다.
바울이 받은 사명은 무엇이었나?
(행 13:47) 내가 너를 이방의 빛으로 삼아 너로 땅 끝까지 구원하게 하리라 하셨느니라
자신이 받은 사명을 그들에게 전하는 모습이다. 그 말씀을 갖고 살기 원한다.
믿음의 선배들은 항상 붙잡고 사는 말씀들이 있었다.
- 마틴 루터 킹= 아모스 5:24 오직 정의를 물 같이, 공의를 마르지 않는 강 같이 흐르게 할지어다. I have a dream....
- 윌리엄 윌버포스 = 갈라디아서 5:1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건하게 서서
- 마더 테레사 = 마태복음 25:40
두번째 결심 : 복음을 확신하라
비시디아 안디옥은 고향 다소와 가까워서 바울은 그곳을 잘 이해하고 있었다. 그래서 회당을 찾아갔다.
(행 13:15) 회당에서는 율법을 읽은 후에는 각자 생각을 나누는 것이 관례였기 때문이다.
사도행전에는 3개의 유명한 설교가 있다. 그 중 하나인 바울의 설교가 여기에 나온다. (바울의 설교 전문 (16:~41))
- 행 2장 베드로의 설교 (3천명이 믿게 됨)
- 행 7장 스데반의 설교 (돌에 맞아 죽음)
- 행 13장 바울의 설교 (반은 환호하고 반은 반대했다.)
이상은 사도행전의 3대 설교이다. 반응은 달랐으나 공통점은 ‘무덤덤하던 영혼들을 깨워 흔들어 놓은 것’이다.
바울의 설교
바울은 먼저 청중을 분석하기 시작했다.
청중 : 1) 이스라엘 사람들, 2)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이방인)- 고넬료가 대표적
대지(요약) :
1) 구약의 역사 (16~25) 왕정 시대 등을 통해 역사의 주인이 하나님이심을 설파했다. 이스라엘 민족 향 내용.
2) 예수님의 부활과 죽음 (26~37) 구하러 오신 예수님을 죽였다.
3) 예수를 선택하라 (38~41) ‘이 사람을 힘입어 믿는 자마다 의롭다 하심을 얻는 이것이라’
바울은 율법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예수를 믿음으로 구원받는다고 설파했다.
바울 안에는 이러한 역사의식이 있었다. (역사의 주인은 하나님, 예수님이 구하러 오셨다. 예수님을 믿으면 구원얻는다.)
역사를 어떻게 이해할까? 1) 세속사로 바라본다. 2) 구속사로 바라본다. 하나님이 역사의 주관자이시며 예수님만 통해 우리는 구원받을 수 있다는 시각이다. 우리는 세속사 속에 살아가지만, 구속사에 대한 믿음을 갖고 살아가기 원한다.
‘영광의 무게’라는 책을 쓴 루이스의 말이다.
‘하나님과 다른 모든 것을 가진 사람이 하나님만 가진 사람보다 더 많이 가진 것이 아닙니다.’
무한대의 셈법과도 같은 표현이다. 하나님만으로, 주님 한 분만으로 나는 충분해요!
바울이 다음 안식일에 다시 방문하였을 때.... 유대인들은 '메시지를 공격할 수 없으니 메신저를 공격한다.'
이에 바울은 발의 티끌을 떨어 버리고 이고니온으로 이동했다. 왜 이렇게 행동했을까?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른 것이다. (눅 9:5)
발의 티끌을 떨어 버린다 = 복음을 거부한 사람들의 책임을 넘김. 그 지역의 아픔과 상처에서 자유하라
비시디아 안디옥을 떠나는 제자들의 내면은 어떠했는가? 기쁨과 성령이 충만했다.
행 13:52 제자들은 기쁨과 성령이 충만히니라. - 말씀이 그들 안에 살아있었기 때문이다.
말과 삶이 하나되는 삶을 원한다면, 그 말씀과 사명을 발견해야 한다.
‘다음 칸이 또 있습니다’라는 글이 있다. 지하철 잡상인 이야기인데, 몇 개 팔지 못할 때 그는 엄청 실망했으나 절망은 하지 않다. 왜냐하면 다음 칸으로 출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 모두 말뿐인 자리를 벗어나 말과 삶이 하나된 삶을 살아갑니다.
지하철에 가방을 든 한 아저씨가 승차하더니
승객들을 향해 우렁차게 말하기 시작했다.
"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제가 이렇게 여러분 앞에 나선 이유는
좋은 물건 하나 소개해 드리기 위해섭니다.
잘 보세요.
플라스틱 머리에 솔이 달려 있습니다.
이게 무엇일까요?
맞습니다. 칫솔 입니다.
이걸 뭐 할라고 가지고 나왔을까요?
......맞습니다. 팔려고 나왔습니다.
얼마일까요?...... 천원입니다.
뒷면 돌려 보겠습니다.
영어가 써 있습니다.
메이드 인 코리아! 이게 무슨 뜻일까요?
수출했다는 겁니다.
수출이 잘 됐을까요, 안됐을까요?
망했습니다.
자 그럼, 여러분께 하나씩 돌려보겠습니다."
아저씨는 칫솔을 사람들에게 돌렸다.
황당해진 사람들은 웃지도 못했다.
칫솔을 다 돌린 아저씨가 말을 이어갔다.
"자, 여러분, 여기서 제가 몇 개나 팔 수 있을까요?
여러분도 궁금하시죠? 저도 궁금합니다."
잠시 후 결과가 나왔다.
"자 여러분, 칫솔 네 개 팔았습니다.
얼마 벌었을까요?
칫솔 4개 팔아서 4천원 벌었습니다.
제가 실망했을까요? 안했을까요?
예, 실! 망! 했습니다.
제가 여기서 포기할까요, 안할까요?
절대 안 합니다.
바로 다음 칸이 있기 때문이죠!"
아저씨는 가방을 들고 유유히 다음 칸으로 건너갔다.
남아 있는 사람들은 웃음으로 거의 뒤집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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