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닷의 단정적인 판단
욥기 8장 1절에서 7절을 보면, 수아 사람 빌닷이 욥에게 말합니다. "네가 언제까지 이런 말을 하겠느냐? 네 입에서 언제까지 광풍 같은 말이 나오겠느냐? 하나님이 어찌 심판을 굽게 하시겠느냐? 전능하신 이가 어찌 공의를 굽게 하시겠느냐?"라고 묻습니다. 빌닷은 욥이 잘못된 말을 하고 있다고 질책합니다.
빌닷은 이어서 "네 자녀들이 주께 죄를 지었기에 주께서 그들을 그 죄에 넘기셨다"라고 말합니다. 즉, 욥의 자녀들이 죽은 것은 그들이 죄를 지었기 때문이라는 주장입니다.
그리고 빌닷은 욥에게 "네가 만약 하나님을 부지런히 찾고, 전능하신 이에게 기도하며 청결하고 정직하다면 하나님께서 너를 돌아보시고 네 의로운 집을 형통하게 하실 것"이라고 말하며,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네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라고 말합니다. 이 말은 우리가 자주 인용하는 유명한 성구입니다. 하지만 빌닷이 이 말을 한 배경을 보면, 이는 욥의 상황에 적합하지 않은 말입니다. 욥의 고난을 하나님의 심판으로 단정한 빌닷은 욥의 아픔을 이해하지 못한 것입니다.
빌닷은 욥의 고난을 하나님께서 그의 죄를 심판하신 결과로 해석합니다.
욥기 8장 4절에서 빌닷은 "네 자녀들이 주께 득죄하였으므로 주께서 그들을 그 죄에 붙이셨다"고 말하며, 욥의 자녀들이 죄를 지었기 때문에 그들이 죽음을 맞이했다고 단정합니다.
이는 모든 고난이 죄의 결과라는 편협한 시각으로, 빌닷은 욥의 상황을 완전히 오해한 것입니다.
바리새적 오류
윤리 실천을 하려는 사람들이 빠지기 쉬운 함정은 바로 '바리새주의'입니다.
바리새주의란, 자신이 옳다고 확신하면서 다른 사람들을 정죄하고 판단하는 태도입니다. 우리는 "나는 저 사람처럼 죄인이 아니다"라고 말하며 정직과 정의를 내세우지만, 이것이 오히려 남을 해치는 일이 될 수 있습니다.
저는 교회개혁을 하면서도 이와 같은 실수를 저질렀습니다. 교회에서 목사나 장로가 권력을 휘두르고 있는 것이 문제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개혁을 주장했지만, 그 과정에서 저 자신도 옳다는 확신에 빠져 다른 사람들을 비판하고 판단하게 되었습니다. 내가 옳다고 생각하면, 다른 사람들은 틀렸다고 여기게 되는 것이 바리새주의의 위험한 점입니다.
고난의 원인은 다양하다
욥기의 빌닷은 욥의 고난을 하나님께서 그의 죄를 심판한 결과라고 단정합니다. 그러나 모든 고난이 죄로 인한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도 의로운 사람도 핍박을 받을 수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욥의 고난은 죄 때문이 아닌, 의로움으로 인한 핍박이었습니다. 그러나 빌닷은 욥의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고, 그를 정죄하는 실수를 저지른 것입니다.
고난은 반드시 죄의 결과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에서는 의로운 사람도 고난을 겪는다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팔복 중 "의를 위하여 핍박받는 자는 복이 있나니"라는 말씀이 그것을 잘 보여줍니다. 고난은 때로는 하나님의 징계일 수 있지만, 모든 고난이 하나님의 심판이라는 결론을 내리는 것은 위험한 오류입니다.
남을 판단하는 확신이 그 사람에게 상처를 줄 수 있다
빌닷이 말한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네 나중은 창대하리라"는 구절은 많은 사람들이 사용하는 구절이지만, 욥의 상황에서는 맞지 않았습니다. 이 말은 빌닷이 자신의 확신으로 욥을 매도하는 말이었으며, 오히려 욥의 마음에 큰 상처를 주었습니다. 우리는 남을 판단할 때 쉽게 확신에 빠질 수 있지만, 그 확신이 상대방에게 상처를 줄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는 고난을 하나님의 심판으로 단정하는 편견에 빠지기 쉽습니다. 예를 들어, 제가 암에 걸렸을 때 어떤 사람은 제가 그들을 비판했기 때문에 암에 걸렸다고 말했습니다. 이처럼 고난을 죄로 단정하는 것은 위험한 생각입니다. 모든 고난이 죄로 인한 것은 아니며,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함부로 해석해서는 안 됩니다.
암에 걸린 사람을 향해 "죄가 있으니 고난을 받는 것이다"라고 말하는 것은 편견입니다. 암에 걸린 사람도 죄인이지만, 암에 걸리지 않은 사람도 죄인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가난한 사람은 게으르다고 판단하거나, 고난을 겪는 사람을 무조건 죄인으로 보는 편견에 빠지기 쉽습니다. 이런 판단은 사람들에게 큰 상처를 주며, 이는 하나님이 가장 싫어하시는 일입니다.
우리는 쉽게 바리새인처럼 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바리새인과 세리의 비유를 통해 "나는 저 사람과 같지 않다"고 말하는 태도가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것임을 강조하셨습니다. 바리새인은 자신의 의로움을 자랑하며 다른 사람을 판단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세리와 같은 겸손한 마음을 원하십니다.
오늘의 교훈
엘리바스와 빌닷은 모두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사람이었지만, 그들의 말은 결국 사람을 상처 주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이처럼 우리가 옳은 말을 한다고 해도, 그것이 사람을 해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욥기를 통해 우리가 배울 수 있는 중요한 교훈은, 자신이 옳다고 확신할 때일수록 더욱 신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욥기를 공부하면서 우리는 엘리바스와 빌닷처럼 다른 사람을 정죄하는 실수를 저지르지 않도록 경계해야 합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지만, 그것이 사람에게 상처를 주었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바가 아니었습니다. 우리는 남을 판단하는 대신, 그들의 상황을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의로움보다 겸손한 마음을 원하십니다. 우리는 자신이 옳다는 확신에 빠져 남을 판단하는 바리새적인 오류를 범하지 않도록 신중해야 합니다. 욥기를 통해 얻은 교훈을 바탕으로, 우리는 타인에게 상처를 주지 않도록 더욱 신중하게 말하고 행동해야 합니다.
욥기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남을 판단하는 것이 얼마나 큰 실수인지를 배울 수 있습니다. 빌닷은 욥에게 옳은 말을 했지만, 그의 말은 욥에게 큰 상처를 남겼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때, 그것이 사람을 해치는 일이 되지 않도록 신중해야 합니다.
빌닷과 엘리바스처럼 옳은 말로 사람을 해치는 실수를 저지르지 않도록, 우리는 늘 겸손한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바리새적인 오류에 빠지지 않고, 다른 사람들을 사랑하고 이해하는 마음을 가지기를 원하십니다. 오늘의 말씀을 통해 우리 모두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겸손한 마음을 갖게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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