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본문 - 요한복음 8:31~32
31 그러므로 예수께서 자기를 믿은 유대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으로 내 제자가 되고
32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김유비 목사
- 김유비닷컴 대표 (https://kimyoubi.com/)
- 갓피플 치유설교
- 「나를 돌보는 시간」 저자
김유비 목사, 작가, 상담자.
알코올 중독자 가정에서 태어나 아동학대로 고통받은 그는 청소년기에 회심하여 목사가 되었다. 누구보다 뜨거운 열정으로 목회에 매진했지만, 그의 삶은 한순간에 무너져 내렸다. 아내와의 이혼 위기, 자녀와의 애착 부재, 완벽주의, 공황장애, 일 중독, 정서적 탈진, 상처를 외면한 채 돌보지 않은 대가였다.
하나님의 은혜로 다시 일어선 그는 예수님의 사랑과 말씀으로 자신 안의 상처를 돌보기 시작했다. 상처를 직면하고 돌보는 과정을 SNS에 적어 올렸고, 그의 글에 공감하는 사람이 하나둘씩 늘어갔다.
그는 결국 안정된 삶을 뒤로하고 2017년 8월 김유비닷컴(http://www.kimyoubi.com)을 시작한다. 상처받은 한 사람에게 편지를 써 내려가듯 매일 아침 글을 쓰고, 개인상담, 부부상담, 설교, 강연, 갓피플 TV를 통한 치유 상담 방송 등을 통하여, 상처받은 한 사람을 돌보는 사역에 매진하고 있다.
안산동산고등학교, 총신대학교 신학과(BA), 총신대 신학대학원(M.div)을 거쳐 미국 리버티 대학교에서 결혼과 가족치료 석사(Marriage and Family Therapy, MA)를 공부했다.
저서로 《나를 돌보는 시간》, 《아프면 아프다고 힘들면 힘들다고 외로우면 외롭다고 말하라》, 《돌봄의 기술》, 《치유의 고백》등이 있다. 역서로 《남자와 여자는 왜 달라요?》, 《내 몸이 변하고 있어요-우리 자녀 성경적 성교육 시리즈》, 《부부 문제로 꼼짝 못 하는 사람들에게》등이 있다.
예수님은 우리를 '진리'로 치유하십니다.
여러분, 저는 모든 사람을 위해 설교하지 않습니다. 오직 '상처받은 한 사람'을 위해 기도하며 설교합니다. 그리고 그 한 사람이 오늘 이 자리에 있는 당신이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을 치유하시고 질병과 상처에서 자유하게 하실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어떻게 치유하실까요? 예수님은 "진리"로 우리를 치유하십니다. 진리는 단순한 지식이 아니라, 곧 말씀이신 예수님 자신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말씀, 다시 오실 것이라는 약속, 은혜의 복음으로 오늘도 우리를 치유하십니다. 진리를 알면 자유를 누리지만, 진리를 모르고 거짓에 속으면 속박된 삶을 살게 됩니다.
많은 사람들이 진리를 외면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진리를 외면합니다. 왜 그럴까요?
첫째, 우리 안에 있는 결핍 때문입니다.
결핍은 거짓말을 만들어내는 공장이 됩니다. 우리가 가진 부족함과 상처는 진리가 아닌 거짓을 받아들이게 만듭니다.
둘째, 마귀의 부추김입니다.
마귀는 우리가 진리를 외면하게 하고, 거짓을 믿게 함으로써 우리를 억누릅니다. 그러나 우리는 진리의 말씀 안에 거하며 예수님 안에서 자유를 누릴 수 있습니다. 오늘 저는 예수님께서 제 삶 속에서 제 결핍과 상처를 치유하신 여정을 여러분과 나누고자 합니다.
가족 안에서의 상처와 치유
명절날 저는 가족들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여동생이 여러 해 동안 임신이 어려웠던 끝에 어렵게 낳은 조카를 귀여워하고 있었지요. 그런데 어머니께서 우리를 제대로 키우지 못해 미안하시다며 엉엉 우셨습니다. 어머니를 진정시키고 나니, 이번에는 여동생이 울기 시작했습니다.
여동생은 "나는 아직도 그 기억이 생생한데, 왜 다 지난 이야기처럼 말하느냐"라고 하며 과거의 아픈 기억을 꺼냈습니다. 여동생은 과거에 아버지가 저를 밤새 때려 시체처럼 만들었던 일을 이야기했습니다. 여동생을 달래고 나니, 이번에는 제 아내와 아이들이 울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가족들을 하나하나 달래고 나니, 제 자신도 알 수 없는 감정에 휩싸였습니다.
상처받은 것은 분명 나인데, 나를 위로하거나 공감해 주는 사람은 없다는 이상한 감정이 들었습니다. 저는 내내 상처받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섬겼지만, 정작 제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은 없었습니다.
그렇게 저는 예수님께 물었습니다. "예수님, 왜 저는 이렇게 방치하십니까?" 예수님께서는 제게 감정적으로 따뜻하게 느껴지지 않았고, 심지어 저는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난 목회자임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의 사랑이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제 처지는 정말 딱해 보였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저의 결핍에서 비롯된 거짓말이었습니다.
저는 오늘 저에게 일어났던, 예수님이 찾아오셔서 저를 치유하는 과정을 여러분과 나누고자 합니다. 예수님은 저의 결핍을 아시고, 그 결핍에서 나오는 거짓말이 저를 잔인하게 파괴하고 있다는 것을 아시며, 치유해 가시는 여정을 함께하셨습니다.
저는 제가 이런 결핍이 있는지도 몰랐고, 이 결핍이 저를 속박하고 있다는 것도 모른 채로 고통받으며 살아왔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알게 되었을 때, 저는 참된 자유를 누리게 되었습니다. 아멘! 그리스도를 바라봄으로 단번에 치유되었지만, 아멘! 그리스도와 함께 동행함으로 지속적으로 치유되고 있는 것입니다. 아멘!
예수님은 우리를 단번에 치유하시기도 하고, 과정 속에서 점진적으로 치유하시기도 합니다. 아멘! 그리고 그 예수님이 다시 오시는 그날, 우리는 완전하게 영화롭게 되어 치유될 것입니다. 아멘! 비록 그것이 괴롭고 힘들며, 더디고 쓸쓸하고 외롭게 느껴질지라도, 예수님은 그분의 일을 행하실 것입니다. 아멘!
제가 한 가지 이야기를 나누고 싶습니다. 어느 명절날, 가족 모임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그 자리에는 저희 어머니, 제 가정, 그리고 제 여동생의 가정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유일하게 그 자리에 없었던 사람은 저희 아버지셨습니다. 여러분, 명절에 자리를 비우시면 안 됩니다. 가족들이 이야기를 나눌 때, 그 자리에 꼭 있어야 합니다. 가기 싫어도 가야 합니다. 가지 않으면 당신 이야기가 나옵니다. 차라리 가서 듣는 게 낫습니다.
그날, 제 여동생은 결혼 후 4~5년간 아이가 없었지만, 저희 가족의 기도 덕분에 너무 예쁜 남자아이를 낳았습니다. 조카가 너무 귀여워서 모두 즐거워하며 웃고 떠들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어머니가 뜬금없이 눈물을 흘리시는 겁니다. 분위기와 전혀 맞지 않았기에 저도 당황해서 어머니께 "왜 그러세요?"라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어머니는 울먹이며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들 어릴 때 이렇게 잘 키우지 못했어.”
그 좋은 날, 과거의 상처가 어머니에게 찾아온 것이었습니다. 저는 어머니를 위로해 드리고 싶어서 옆에 앉아 진정시켜 드렸습니다. "어머니, 힘드셨죠. 어머니의 헌신 덕분에 우리 가족이 복음을 받아들이게 되었고, 저도 예수님을 믿고 목사가 되어 이렇게 복음을 전하고 있잖아요. 어머니는 최선을 다하셨어요." 이렇게 말하며 어머니를 달래 드렸습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라고 말씀드리니 어머니께서 진정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뒤에서 여동생이 흐느끼며 울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속으로 ‘이게 왜 울지?’라고 생각했지만, 착한 오빠니까 여동생에게 다가가 "왜 그래? 무슨 일이야?"라고 물었습니다. 여동생은 저에게 짜증을 내며 말했습니다.
"오빠, 다 지난 일로 얘기하지 마. 다 지난 일이 아니야. 오빠는 어떻게 그렇게 말할 수 있어? 난 아직도 기억이 생생한데."
그리고 여동생은 초등학교 때 아버지께 밤새도록 맞아서 담요에 돌돌 말려 시체처럼 굳어 있었던 저를 보며 얼마나 두렵고 무서웠는지, 오빠와 함께 다니는 길이 유일한 안식처였던 시절을 이야기했습니다. 저는 충격을 받았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담요에 말려 있어서 그런 상황이 있었다는 것을 몰랐기 때문입니다. 여동생의 이야기를 들으니 저도 충격을 받았고, 마음이 혼란스러웠습니다.
속으로 ‘내가 담요에 말려 있었는데, 왜 네가 나한테 짜증을 내는 거야?’라고 생각하면서도, 저는 좋은 오빠답게 여동생에게 말했습니다.
"힘들었구나. 오빠도 쉽지 않았어. 오빠도 지금 치유 중이야. 서두르지 마. 천천히 해. 오빠가 오래 걸린 만큼, 너도 오래 걸릴 거야. 괜찮아."
이렇게 말하며 여동생도 진정시켰습니다. 그리고 내적으로 평화가 밀려왔습니다.
하지만 뒤에서 단체로 흐느끼는 소리가 또 들렸습니다. 돌아보니 제 아내와 토끼 같은 우리 아이들까지 울고 있었습니다. 저는 아이들을 감싸 안으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괜찮아. 지금 우리는 행복하잖아. 할아버지도 옛날엔 힘들었지만, 지금은 재밌잖아."
이렇게 모두를 위로하며 상황을 수습했습니다. 그리고 문득 한 가지 생각이 들었습니다. 상처의 당사자는 나인데, 왜 나는 다른 사람들을 위로하고 있지? 내가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 그때부터 제 인생을 돌아보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지금 김유비 닷컴에서 사역하고 있습니다. 그곳에서 상처받은 한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그들에게 예수님의 따뜻한 사랑과 말씀을 전하기 위해 매일 아침마다 글을 씁니다. 마치 밥을 짓는 심정으로 상처받은 한 영혼에게 매일 글을 보내며, 그들의 아픔에 공감하고 이야기를 들어줍니다.
그런데 정작 제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은 없는 것 같았습니다. 저도 아프고, 학대받은 과거를 완전히 뒤로하고 살고 싶지만, 그 상처의 영향력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채로,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도 아플 때가 있습니다. 그들의 아픔에 공감하며 예수님의 따뜻한 사랑을 전하고, 그 과정을 옆에서 목격하며 증인의 삶을 살고, 함께 치유받는 과정이 보람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가끔씩 이런 생각이 밀려오곤 했습니다. “나도 힘든데, 나도 무너질 때가 있는데, 나도 연약한데, 왜 내 옆에는 아무도 없지?” 이런 회의감이 밀려들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예수님께 이렇게 말했습니다.
"예수님, 저는요… 왜 저는 안 돌아보세요? 왜 저는 안 챙겨주세요? 왜 저는 안 사랑해 주시나요? 왜 저는 방치하시나요?"
이 질문은 저에게 가장 큰 고통이었습니다. 저는 예수님의 사랑이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이 따뜻하지 않은 분처럼 느껴졌습니다. 예수님이 제 마음속에 와닿지 않는 것 같았습니다.
여러분, 착하시네요. 갑자기 저를 되게 불쌍하게 쳐다보고 계시네요. (웃음) 어떤 분은 째려보시기도 하시네요. “목사가 왜 저래?”라고 생각하실지도 모릅니다. 죄송합니다. 이게 제 현실이었습니다.
저도 이게 잘못된 건 줄 알았습니다. “나는 목사인데, 내가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났는데, 말씀을 전하는 사람인데, 하루 종일 말씀을 묵상하고 기도하는 사람인데, 왜 나는 예수님의 사랑을 느끼지 못할까?” 이 질문은 저를 얼마나 고통스럽게 했는지 모릅니다. 저는 제가 고장 난 줄 알았습니다. 완전히 망가진 줄 알았습니다. 사실 그것도 맞는 말이었죠.
그런데 저는 오랫동안 저에게 중요한 질문을 던지지 않았습니다. “너 왜 그래? 너 고장 났어? 너 잘못됐어? 너는 목회를 할 자격이 없어. 너는 목사면 안 돼. 너부터 고쳐야 돼.” 이런 파괴적인 메시지를 진실처럼 받아들이며 살았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진공 상태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제 결핍이 쏟아낸 거짓말이었습니다.
왜 저는 그런 말을 진실처럼 받아들이고 오랜 시간 고통받았을까요? 저는 저에게 중요한 질문을 던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제가 저에게 중요한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을 때, 저를 바라보는 관점이 달라졌습니다. 과거에는 이렇게 질문했습니다. “너 왜 그래? 너 뭐가 문제야? 너 뭐가 잘못됐어?” 하지만 지금은 이렇게 질문합니다.
"너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네가 모르는 무슨 일을 겪었니? 왜 이렇게 무서워하는 거야? 왜 이렇게 불안해하는 거야? 왜 이렇게 고통스러워하는 거야? 너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거니?"
저는 모든 고통을 과거와 연결 짓는 것에 동의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과거를 수용하는 데는 굉장한 치료적 통찰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내가 기억하고 싶지 않은 과거, 도려내고 싶은 과거가 분명 있지만, 그 과거도 나의 일부라는 것을 받아들여야 했습니다.
여러분, 과거의 나도 나이고, 현재의 나도 나이며, 미래의 나도 나입니다. 내가 싫어하는 나를 예수님은 사랑하셨고, 어제의 나를 예수님은 사랑하셨으며, 오늘의 나를 예수님은 사랑하시고, 내일의 나를 예수님은 사랑하십니다. 아멘!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십니다. 아멘! 그 예수님이 과거의 나를 수용하고 사랑하셨다면, 내가 내 과거를 미워할 필요가 있을까요? 내가 내 과거를 싫어할 필요가 있을까요? 내가 그것을 돌아보지 않을 이유가 있을까요? 예수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십니다. 아멘! 그렇다면 나도 과거의 나를 따뜻하게 바라볼 수 있지 않을까요?
제 결핍의 뿌리와 예수님의 치유
저는 알코올중독자인 아버지 밑에서 늘 맞으며 온몸에 멍이 든 채로 살았습니다. 어머니는 우리들을 구해내기 위해 돈을 벌러 집을 나가셨지만, 어린 저로서는 그것이 버림받았다는 느낌으로 다가왔습니다.
어머니가 집을 나간 어느 날, 저는 친구네 집에 다녀왔습니다. 돌아와 보니 어머니는 급히 짐을 싸서 가출하셨습니다. 저는 그때부터 "애착의 불안"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후에 어머니가 돌아오셨을 때도 저는 반기지 않았습니다. 그저 또다시 떠날까 봐 불안할 뿐이었습니다.
아버지가 어머니를 찾아오라며 저를 때리시면, 저는 온 동네를 헤매며 울면서 어머니를 부르곤 했습니다. 그런 날들이 계속 반복되었습니다. 저는 어린 시절부터 하나님 "아버지"라는 단어에 전혀 감동을 느낄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가 저를 사랑하신다는 말씀은 제게 아무런 울림을 주지 못했습니다. 부모님을 제가 선택한 것도 아닌데, 저는 제 스스로를 정죄하며 살았습니다.
여러분, 저는 알코올 중독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는 술에 취하면 저를 정말 죽을 때까지 때리셨습니다. 아직도 기억나는 게, 목부터 발목까지 온몸이 검은색, 보라색 피멍투성이였습니다. 한참 전에 맞아서 생긴 검은 피멍 위에 다시 때려서 생긴 울긋불긋한 멍이 겹쳐져 있었습니다. 그렇게 어릴 때부터 그런 폭력을 당하며 자란 아이가 과연 정상적일 수 있을까요? 정상일 리가 없겠지요.
저희 어머니는 젊은 날 그런 남자와 결혼해서 얼마나 비참하셨겠습니까. 그래도 가정을 지키고 싶으셨겠지요. 하지만 그 가련한 여인은 자기가 밖에 나가서 돈을 벌어서라도 우리 아이들을 구출하고 싶었던 겁니다. 그래서 그런 목표를 가지고 집을 나가셨습니다.
그런데 당시 어린 저는 버림받은 것 같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어머니가 처음 집을 나가셨던 장면이 아직도 기억납니다. 제가 다섯 살 때였어요. 어머니는 제가 친구의 집에 놀러 간 사이, 급히 짐을 싸서 나가셨습니다. 순진한 저는 친구의 집에서 어머니가 주신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즐거워했지만, 집에 돌아왔을 때 깜짝 놀랐습니다. 집이 도둑이 든 것처럼 쑥대밭이 되어 있었거든요. 어머니는 저를 친구 집에 보내놓고 떠나신 것이었습니다. 그 충격으로 저는 실어증에 걸렸습니다. 말을 더듬었고, 사람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지도 못했습니다.
지금은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은 애착 트라우마였고, 저의 유일한 안정 기지가 무너졌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후로 어머니는 수시로 집을 나가셨습니다. 어머니가 집에 돌아오셔도 저는 환대하지 못했고, 애착 불안만 커졌습니다. 어머니가 집을 나가실 때마다, 아버지는 저를 때리며 "엄마를 찾아오라"고 했습니다. 다섯 살, 여섯 살 된 어린 저는 동네를 울며 헤매며 어머니를 찾았습니다.
“엄마! 엄마! 엄마!”
새벽녘이 되면 집에 조심히 돌아옵니다. 저희는 판잣집에 살았기 때문에 방이 단칸뿐이었고, 집 안이 조용한지 확인한 뒤에야 들어갔습니다. 그 후에는 아버지와 최대한 멀리 떨어진 구석에서 몸을 구겨 잠들었습니다. 이런 날들이 반복되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하나님이 당신을 사랑하신다”는 은혜로운 말씀도 저에게는 공허하게 들렸습니다. 은혜의 말씀은 저를 스쳐 지나가고, 잘못하면 벌받는다는 두려운 말씀만 저를 압도하고 짓눌렀습니다. 은혜로운 말씀은 잠깐 감동을 줄 뿐, 순식간에 사라져버렸습니다.
이것이 제 잘못인가요? 제 믿음이 부족한 걸까요?
저는 원하지 않았습니다. 만약 제가 원가족을 선택할 기회가 있었다면, 아마 다른 선택을 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선택할 수 있었을까요? 아니요, 주어진 것이었습니다. 그저 그 가정에 태어났을 뿐이었습니다. 그 학대받던 다섯 살짜리 아이의 유일한 잘못이 있다면, 그것은 그 집에 태어난 것이었습니다. 그 집에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그 일을 당하지 않았을 테니까요.
저는 이런 상황 속에서 저 자신을 비난하며 살았습니다. 지독한 가난과 학대 속에서 사춘기까지 모든 시절을 보냈습니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아버지는 갑자기 술과 담배를 끊고 교회를 다니시더니 목사가 되셨습니다. “너희 아버지가 변화되셨다”, “너희 집에 기적이 일어났다”는 말을 들었지만, 실제 우리 가정의 내부는 전혀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아버지의 가정폭력은 여전히 계속되었고, 저는 점점 기독교가 싫어졌습니다.
중학생이던 어느 날 기독교 잡지를 보았는데, 너무 멋있는 학교 사진을 보았습니다. 기숙사가 있는 안산 동산고등학교였습니다.
당시 우리 집은 시골에서 비닐하우스에 스티로폼을 깔고 담요 한 장 덮고 산 지 2년이 되던 시절이었는데, 그 열악한 환경에서 집을 탈출하기 위해 병아리용 온열기를 켜고 온 힘을 다해 공부했습니다. 그리고 불과 몇 달 치열하게 공부해서 그 고등학교에 입학하게 되었고, 기숙사 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 학교에는 전국의 수재들이 모여 있었습니다. 빈부 격차도 컸습니다. 사랑받은 정서의 격차도 느껴졌습니다. 주말마다 다른 부모님들을 온갖 케어를 잘해 주시는데, 저희 아버지는 오시면 늘 몇 시간씩 언어폭력으로 저를 학대했습니다. 기숙사 정문 앞에 차를 대고 저를 태우신 후, 몇 시간 동안 계속 비난하셨습니다. 처음에는 반박했지만, 나중에는 눈물만 흘렀습니다.
사람이 왜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지 아십니까? 그것은 의지가 약해서가 아닙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달라지지 않는 현실에 절망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절망을 들어줄 사람이 단 한 사람도 없을 때, 사람은 죽음을 선택하게 됩니다. 저도 아무리 노력해도 제 인생이 달라지지 않을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리고 그때부터 하루 종일 눈물이 멈추지 않았습니다. 교실 뒤에서도, 수업 시간에도, 야간 자율학습 시간에도 눈물이 나와서 견딜 수 없었습니다. 교실에 있을 수 없어서 운동장 구석에 나가봤지만, 거기서도 눈물이 났습니다. 그렇게 6개월 동안 매일 울기만 하다가 저는 극단적인 결심을 하게 되었습니다.
사춘기였던 저는 부모님께 복수하겠다는 생각으로 그들 앞에서 스스로 생을 마감하려고 했습니다. 평생 죄책감을 느끼게 하겠다는 의도였습니다. 그러나 정작 부모님과 애착이 형성되지 않았기 때문에, 어릴 적 저 혼자 놀면서 얘기했던 동네의 은행나무에 더 정이 갔습니다. 결국 부모님이 아닌 그 은행나무와 마지막 인사를 나누고 나무에 목을 매려 했습니다.
그날 밤, 저는 집에 들어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부모님은 평소처럼 밥을 차려주셨고, 아버지는 상투적으로 “많이 먹어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저는 그 말을 듣고 속에서 분노가 치밀어 올랐습니다. "많이 먹으라고? 밥 먹는다고 이 상황이 해결돼?" 그렇게 혼잣말로 화를 내며 상을 엎고 집을 난장판으로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준비해둔 노끈을 들고 울면서 은행나무가 있는 곳으로 향했습니다.
300m쯤 되는 거리를 걸어가는데, 논밭 사이의 깜깜한 밤길에서 너무 서러워서 오열했습니다. "내가 죽어도 아무도 모를 거야. 내가 태어났다는 것도 아무도 몰라. 행복했던 적이 단 한 번도 없어. 나는 왜 태어난 걸까?" 자책과 슬픔 속에서 칠흑 같은 어둠을 헤치며 걸었습니다.
은행나무 앞에 도착해 매듭을 짓고 준비를 마쳤습니다. 그런데 예상하지 못한 변수가 생겼습니다. 제가 머리가 커서 매듭에 들어가지 않았던 겁니다. 너무 짜증이 나고 서러워서 나무를 치며 울었습니다. 그러다가 정신이 몽롱해졌습니다.
그 순간, 제 머릿속에 아버지와의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아버지가 담배를 피우며 저를 때리던 모습, 피멍이 든 제 몸을 아무도 구해주지 않던 그 장면이 선명하게 떠올랐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 기억 속에서 처음으로 하나님께 분노하며 외쳤습니다.
"당신이 정말 하나님이라면, 왜 이런 일이 일어나게 했습니까? 당신은 도대체 어디에 있었던 겁니까?"
그런데 그 순간,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몽롱한 상태에서 제 기억 속 다섯 살짜리 제 등 뒤로 찬란한 빛이 비치는 장면이 떠올랐습니다. 저는 놀라서 오열하며 물었습니다.
"거기 있었어요? 구경만 하고 있었어요? 당신의 존재는 저주스러워요."
그때, 제 마음속에 울림 같은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그것은 제가 일생 동안 들은 최초의 진리였습니다.
"유비야, 미안하다. 조금만 견뎌다오. 내가 너를 상처 입은 사람들에게 보내고자 한다. 그들의 아픔에 공감하며, 그들의 상처를 외면하지 말아다오. 내가 그들의 아픔을 함께하기 위해 너를 이 가정에 보냈다."
저는 너무 놀랐습니다. 고등학생인 제가 상상할 수도 없는 깊은 통찰이 제 안에 찾아왔습니다. 그것은 저의 운명을 바꿔준 진리였습니다. 그날 밤 저는 그 자리에서 밤새도록 울었습니다.
"유비야, 살아야 한다. 너는 나의 사명을 가지고 이 세상에 보냄을 받았다. 너는 우연의 산물이 아니며, 내가 너를 고유한 목적으로 이 세상에 보냈다. 고통스럽지만 참아다오. 내가 너를 사용하기 원한다."
그 순간, 제 삶에 새로운 의미가 생겼습니다. 이전까지는 "나는 쓸모없는 존재야", "나는 잘못 태어났어"라는 거짓말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진리의 음성은 저를 살게 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날 이후, 다시 살아가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날 밤 혼자 울고 난 후, 아침이 되었을 때 저는 숨을 깊이 들이마셨습니다. 그때, 인생에서 처음으로 새소리가 들렸습니다. 그동안 듣지 못했던 자연의 소리였습니다. 꽃향기가 코끝을 스쳤고, 공기가 그렇게 신선하다는 것을 처음으로 느꼈습니다. 저의 폐 속으로 들어오는 신선한 공기가 제 마음까지 깨끗이 씻어주는 것 같았습니다.
그 순간, 제가 과거에 학대받았던 기억도, 고통 속에서 살았던 시간도, 부모님을 향한 원망과 미움도 모두 잊혀졌습니다. 마치 새롭게 태어난 듯한 기분이었습니다. 그 벅찬 감정 속에서 저는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집에 들어가 보니, 부모님은 밤새 한숨도 못 자고 걱정과 근심으로 가득한 얼굴을 하고 계셨습니다. 아들이 집을 나가 행방불명이 되었으니 얼마나 두려우셨겠습니까?
저는 신발도 벗지 않은 채로 부모님 앞에 섰습니다. 그리고 큰 절을 올린 뒤 이렇게 말했습니다.
"어머니, 아버지, 죄송합니다. 저 다시 태어나고 싶어요. 다시 살아보겠습니다. 용서해 주세요."
그렇게 저는 새 출발을 결심했습니다.
그 후에도 저희 아버지는 자주 찾아오셔서 차 뒷좌석에 저를 태우고 여전히 혹독한 말을 쏟아내셨습니다. 하지만 그때와는 달랐습니다. 제가 달라졌습니다. 아버지의 언어폭력은 계속되었지만, 제가 변했기 때문에 모든 상황을 이겨낼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을 만나고 신학생이 되고 목회자가 되다
기숙사로 돌아가 새로운 교회를 찾고 있었습니다. 그때 한 선배가 저를 상가 교회로 이끌었습니다. 교회에 첫발을 내디딘 그다음 주, 뜻하지 않게 학생회장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학생회장이 된 후, 사역자 한 명 없던 작은 상가 교회 고등부가 하나님의 은혜로 무려 120명이 출석하는 놀라운 부흥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예수님 사랑에 '보답'하고자 신학교에 입학했습니다.
안산동산교회의 대학부 이야기를 들려드릴게요. 믿기 어렵겠지만, 어른들은 약 만 명이 출석하는 큰 교회였음에도 불구하고 대학부는 단 60명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때 새로운 대학부 목사님이 부임하셨습니다. 저는 신학교를 다니면서 교단에 속한 교회를 다녀야 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제가 나온 고등학교를 세운 안산동산교회의 대학부에 출석하게 되었습니다. 그 시절 저는 단지 주일마다 예배를 드리고, 주변을 그저 구경하며 돌아다니는 평범한 학생이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60명이던 대학부가 800명으로 성장한 것입니다! 저는 단지 구경꾼에 불과했어요. 아무런 역할도 하지 않았고, 단순히 그 놀라운 변화를 지켜볼 뿐이었습니다. 마치 병아리가 삐약삐약거리는 것처럼 저는 그저 우물쭈물하면서,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모습을 경이롭게 바라봤습니다.
그때 저는 깨달았습니다. “하나님이 역사하시면 이렇게도 되는구나!” 이 놀라운 일을 목격하면서 하나님의 능력과 역사의 크심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그 경험 덕분에 저는 사역을 시작하며 당연히 저도 그런 결과를 경험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본대로 될 것이다,”라고 막연히 믿었던 것이죠. 하지만 사역이 그렇게 단순히 따라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나중에 절실히 깨닫게 되었습니다.
일단 먼저 드리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요. 제가 그런 학대를 받으며 살다 보니까 사람들 앞에서 말을 또박또박 못 하는 거예요.
교실 안에서 남자애들끼리 있을 때는 편하니까 그냥 친구들이랑 얘기하곤 했어요. 그런데 교실 밖으로 나가면 이게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는 거예요. 시선을 어디에 둬야 할지도 모르겠고요. 그런데 저는 그런 제 모습이 싫었는데도, 아무렇지 않은 척하려고 애쓰면서 심장은 콩닥콩닥 뛰는 거예요.
여러분, 제가 얼마나 소심했는지 아세요? 우리는 남녀공학이었지만, 남자 여섯 반, 여자 다섯 반, 이렇게 나뉘어 있었고, 중간에 교무실이 있어서 마치 조선 시대 같은 학창 시절을 보냈거든요. 그런데 밥 먹을 때는 다 같이 모였어요. 교실 안에서 남자애들끼리 있을 때는 괜찮았는데, 밥 먹으러 갈 때가 문제였어요.
저는 진짜 착각했던 게, 밥을 먹고 식판을 들고 가서 퇴식구에 반납해야 하는데, 그 퇴식구가 여자애들 쪽에 있었거든요. 그런데 저는 지금도 확신하는데, 여자애들이 저를 보지 않아요. 아니, 절 왜 보겠어요? 그런데 그때 저는 '보면 안 된다'고 생각해서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고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식판을 들고 이렇게 저렇게 갔던 거예요.
그런데 어느 날 된장국이 나왔는데 너무 입맛에 안 맞는 거예요. 거기다가 청국장이 섞여 있었거든요. 그래서 거의 남겼어요. 그날도 이렇게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식판을 들고 가는데, 기둥에 부딪힌 거예요. 그러면서 식판이 뒤집혔고, 국물이 기둥에 다 쏟아진 거예요. 그 순간은 당연히 다 보죠. 그때는 여자애들이 다 쳐다봤어요.
얼굴이 새빨개졌는데, 여러분, 제 얼굴이 한 손으로 가려져요. 안타깝게도 이 머리 크기 때문에 그때는 가려졌지만, 그땐 감사하지 않더라고요. 두 손으로도 얼굴이 안 가려지니까요.
결국 망신당했습니다. 그 일이 저에게는 너무 큰 고통이었어요. 그래서 늘 쭈뼛쭈뼛하게 지냈죠.
신학교에서의 삶은 도전의 연속이었습니다. 매일 전도하겠다는 결심으로, 무작정 “아저씨, 교회 다니세요?”라며 다가갔지만 사람들을 놀라게 할 뿐 결과는 없었습니다. 사영리를 외우고도 입이 떨어지지 않았고, 지하철에서 가득 찬 사람들 앞에서 전도하려 했지만 심장은 뛰고 식은땀만 흘렀습니다. 그러던 중, 지하철에서 만득이 인형을 파는 상인을 보며 도전을 받았지만, 여전히 한마디도 할 수 없었습니다.
어느 날, 술에 취해 주무시는 분 앞에서 그동안 외웠던 내용을 용기 내어 전했습니다. 그는 계속 코를 골며 주무셨지만, 저의 심장은 뜨겁게 뛰었습니다. 그 순간, 저는 치유되기 시작했습니다. 몇 주 후에는 다시 지하철에서 전도를 시도했을 때 마침내 말이 터지고 박수까지 터졌습니다. 그렇게 하나님께서 제 혀를 풀어주시고 마음의 두려움을 치유해 주셨습니다.
신학교 1학년 때 감비아에서 사역하신 선교사님, 수염이 멋지신 이재원 선교사님이 오셔서 말씀을 전하셨는데, 그 말씀이 큰 도전을 주셨어요. 선교사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죠.
“신학생들, 신학만 하지 말고 공부만 하지 마세요. 한 명도 전도하지 못하면서.... 나는 신학교 다닐 때 단 하루도 복음을 전하지 않은 날이 없었습니다. 여러분도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그 말씀이 이상하게 제 마음에 은혜가 되더라고요. 그래서 실천해봐야겠다고 결심했죠. 사람을 보면 겁이 나지만, 그래도 해야 하니까 기숙사에서 똘똘 뭉쳐 나와 주변을 서성거렸어요. 문제는 우리 학교 주변엔 다 신학생들뿐이었어요. 게다가 그 당시엔 밤늦게까지 하는 편의점도 별로 없었고요. 학교를 조금 벗어나면 허름한 상가가 몇 개 있었는데, 거기 담배 가게 앞에 앉아 있었어요. 그러면 아저씨들이 밤에 담배를 사러 오시잖아요. 그때 떨리는 목소리로 “아저씨, 혹시 교회 다니세요?”라고 물어봤어요. 아저씨들은 깜짝 놀라셨겠죠. 제가 워낙 덩치도 큰 데다 떨면서 말을 걸었으니 꿈에라도 나왔을 것 같아요.
그런데 그런 상황이 너무 고통스러웠어요. 저는 신학교에 와서 목사가 되겠다고 했는데, 설교는커녕 말조차 제대로 못 하는 제 자신이 너무나 힘들었거든요. 그래서 사영리 책을 사서 외우기 시작했어요.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시며, 당신에게 놀라운 계획을 가지고 계십니다.” 이 문장을 5분 만에 외웠죠. 하지만 외우면 뭐하나요. 써먹질 못했으니까요.
그때 신학교에서 다니던 교회까지 4호선을 타고 다녔는데, 한 50분 정도 걸렸어요. 어느 날, 지하철에서 연습해보면 되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평소에는 그냥 편안하게 창밖을 보며 다녔는데, 복음을 전하려고 타보니 심장이 터질 것 같았어요.
그렇게 비장한 마음으로 맨 첫 칸에 타서 사람들을 보며 마음을 다잡았지만, 결국 아무 말도 못 하고 그냥 집으로 돌아왔어요. 심장은 뛰고, 시간만 허비하며 제 자신이 너무나 한심하게 느껴졌죠.
그러던 어느 날, 지하철에서 물건을 파는 분을 만났는데, 그분이 풍선에 밀가루 반죽을 넣고 눈코입을 붙인 인형을 팔고 계셨습니다. 가격은 1,000원이었죠. 제가 보기엔 금방 굳어버릴 장난감이었는데, 그분은 세상에서 제일 좋은 장난감처럼 열정적으로 프레젠테이션하셨어요. 놀랍게도 사람들이 그걸 사더라고요. 그걸 보면서 제 안에 열정이 생겼어요.
‘저런 장난감도 저렇게 담대하게 파는데, 나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아는 사람으로서 전하지 못하고 있구나.’
그렇게 마음을 다잡았지만, 여전히 실천은 쉽지 않았어요. 결국 한 달쯤 포기하고 말았죠.
그러던 어느 날, 막차에 가까운 지하철을 타고 피곤한 몸을 이끌고 교회에서 학교로 돌아가던 중이었어요. 멍하니 앉아 있는데, 제 마음에 평안이 밀려오더라고요. 그때 지하철 구석에 술에 취해 주무시는 아저씨가 보였어요. 저는 살짝 건너편에 앉아 아저씨를 한참 바라봤습니다. 용기를 내서 조심스럽게 말했죠.
“아저씨,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시며, 당신을 향한 놀라운 계획을 가지고 계십니다.”
아저씨는 계속 코를 골며 주무셨지만, 그 순간 저는 알 수 없는 감동을 느꼈어요. 마치 마가의 다락방에서 성령의 역사를 체험한 베드로처럼, 저도 설교를 할 용기를 얻은 거예요. 기숙사에 돌아와 누웠는데 제 마음속에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나도 할 수 있다. 하나님은 살아계신다!’
그리고 주말을 손꼽아 기다렸어요. 비장한 마음으로 이번에는 낮에 한 번 해보자고 결심했죠. 낮에 지하철을 탔는데, 그날따라 사람이 정말 많더라고요. 하필이면 그런 날 제가 용기를 내야 했으니, 마음이 더 떨렸습니다. 제가 얘기를 해야 하는데, 바로 앞에 사람들이 너무 가깝게 있어서 부담감이 어마어마했어요. ‘큰일 났다. 어떻게 해야 하지?’
그런데 저는 성실한 사람이라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제 눈을 감고, 심호흡을 하면서 간신히 용기를 냈어요. 다리는 막 벌벌 떨리고, 손은 어디에 둬야 할지도 모르겠고, 몸은 완전히 굳어버렸죠. 그리고 제가 처음으로 꺼낸 말이 이거였어요.
“여러분, 저는 미친 사람이 아닙니다.” 사람들이 갑자기 집중하더라고요.
“저는 총신대학교 1학년 신학생입니다. 그런데 저는 사람과 눈을 못 마주칩니다. 말도 제대로 못 하는 제가 어떻게 설교를 할 수 있겠습니까? 여러분, 저를 불쌍히 여기시고 딱 5분만, 제 얘기를 들어주십시오.”
그 말을 하고 나니까 몸에 전율이 흐르더니, 갑자기 몸이 풀리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말이 나오기 시작하는 겁니다.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을 향한 놀라운 계획을 가지고 계십니다.”
그렇게 말하니 사람들이 듣다가 박수를 쳐주셨어요. 심지어 어떤 분은 다가와 저를 안아주면서 이렇게 말했어요. “학생, 할 수 있어요. 당신의 교회가 어디인가요? 저 그 교회로 가볼게요.”
그 순간 저는 성령의 역사를 느꼈습니다. 믿을 수 없었지만, 하나님께서 제 마음과 혀를 풀어주신 거예요.
그다음 칸으로 갔고, 또 그다음 칸으로 갔습니다. 복음을 전하면서 점점 제 발걸음이 가벼워지고, 말도 술술 나오기 시작했어요.
오늘 제가 어떻게 원고 없이 이렇게 설교를 할 수 있을까요? 바로 하나님께서 복음을 전하기 위해 제 고통과 상처를 치유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혀를 풀어주신 하나님, 아멘. 앉은 자를 일으키시는 하나님, 아멘. 눈먼 자의 눈을 뜨게 하시는 하나님, 아멘. 죽은 자를 살리시는 하나님, 아멘.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지금도 그 일을 행하고 계십니다. 아멘.저는 그래서, 제 눈이 작더라도 여러분과 교감하며 이렇게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겁니다.아멘.
시간이 흘러, 학생이 아무도 없는 고등부 담당 목회자가 되었습니다. 중등부 옆에서 혼자 예배드리며, 하루에 코코아 300잔을 나눠주며 학생들을 기다렸지만, 누구도 교회로 오지 않았습니다. 실패의 그림자가 저를 짓눌렀습니다. 끝난 줄 알았던 순간, 하나님의 음성이 제 마음에 울렸습니다.
“넌 이 아이들을 얼마 동안 사랑했니? 나는 이 땅을 향해 수천 년의 열정을 가지고 있다. 이제부터 한 영혼을 보내줄 테니, 네 목숨을 다해 사랑하라.”
그다음 주, 설교를 마칠 즈음 한 남학생이 들어왔습니다. 저는 그 아이를 껴안고 울었습니다. 이후 한 명씩, 두 명씩 학생들이 늘어났습니다. 그렇게 12년 동안 저는 그 교회에서 목회하며 하나님의 사랑을 배우고 나누었습니다. 그리고 모든 지원 약속을 사양하고 빈손으로 새로운 길에 나섰습니다.
빈손으로 떠난 그 길은 쉽지 않았습니다. 공황장애와 결핍이 저를 덮쳤습니다. 그러나 그 어둠 속에서도 예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네 잘못이 아니다. 상처받은 한 영혼을 보내주겠다.”
그때 깨달았습니다. 제 불안은 결핍에서 오는 것이었고, 그 안에서 진리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을.
아르바이트로 돈을 조금 모은 후에 공유 오피스를 빌려 글을 읽고 쓰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던 중, 출판사 대표님이 “돕는 자가 돼라”는 기도 응답을 받고 저에게 연락을 주셨습니다. 그렇게 김유비닷컴이 시작되었습니다.
교회에서 "너의 사역을 5년, 10년 동안 지금 받고 있는 사례비로 지원해 주는 걸 논의해 보겠다"라는 말을 들었어요. 너무 감사해서 울었죠. 그런데 집에 가서 기도하는데 이상하게 기쁨이 없고, 평안도 없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결정을 내렸어요.
"저는 괜찮습니다. 빈손으로 나가겠습니다."
주위 사람들이 묻더라고요. "스폰서라도 있는 거야? 아니면 로또라도 당첨됐니?"
그런데 하나님께서 제 안에서 일하셨습니다. 이상한 일들이 벌어지기 시작했어요. 저는 현실적인 사람이에요. 뜬구름 잡는 얘기는 하지 않죠. 하지만 제 안에는 한 영혼에 대한 열망이 있었고, 제가 생각하는 사역의 방향이 있었어요. 그래서 말도 안 되는 선택 같았지만, 모든 서포트를 거절하고 빈몸으로 나왔습니다.
그런데 그 이후에 저는 완전히 무너졌습니다. 모든 걸 거절하고 나왔으니 당당해야 할 텐데, 제 결핍이 저를 끊임없이 공격하더라고요. “너의 잘못된 선택으로 너의 인생은 망했어. 너의 가족과 자녀들은 가난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을 거야. 너의 한 번의 잘못된 선택으로 인생은 끝났어.”
그때 저는 공황장애를 연구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그걸 실제로 경험하게 되더라고요.
하나님께서 제게 말씀하셨어요. “유비야, 책으로 배울 수 없어. 직접 체험하자.”
공황장애가 찾아왔어요. 식은땀이 나고, 숨이 막혀서 주저앉아 죽을 것만 같은 고통이 계속됐습니다. 목회는 끝난 것 같았고, 누가 저를 기다려주지도 않았어요.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 절망 속에서 새벽에 예수님께서 제 마음에 진리를 말씀해 주셨습니다.
“이건 너의 실수가 아니다. 내가 너를 인도할 것이다. 내가 너를 돕는 자를 보낼 것이다. 상처받은 한 영혼을 너에게 보낼 것이다.”
하지만 저는 의심이 들었어요. ‘이게 정말 주님이 말씀하신 걸까? 아니면 내가 듣고 싶은 대로 스스로 만든 생각일까?’
그런데 이상하게도, 마음에 평안이 생겼어요. 그리고 이렇게 생각했죠. ‘내가 무얼 두려워하고 있는 거지? 최악의 상황은 뭘까?’
최악의 상황을 떠올려봤어요.
아침에 우유 배달을 하고, 신문을 돌리고, 인력시장 앞에서 외국인 노동자들과 함께 차를 타고 일하러 가는 거예요. 저녁에 집에 와서 샤워하고, 아이들과 저녁을 먹고, 기도해 주고, 대리운전을 나가요. 그리고 쪽잠을 자고 다시 일을 반복하는 삶이죠.
그런데 생각했어요.
‘이게 뭐가 두려운 거지? 내가 못할 것도 없는데. 이건 내가 20대 때도 해왔던 일인데 뭐가 무섭지?’ 그렇게 생각하니 평안이 찾아왔습니다.
그래서 통장을 확인해 보니 두 달 정도 생활비가 남아 있더라고요. 그 돈으로 공유 오피스를 두 달 동안 계약하고, 그동안 하지 못했던 책 읽기와 글쓰기를 하기로 했어요.
그리고 문구점에서 달력을 사와서 ‘60, 59, 58... 1, 0’ 이렇게 카운트다운을 적었어요.
“남은 두 달, 나 자신에게 최고의 선물을 준다. 그리고 두 달 뒤에는 현실이 될 일을 묵묵히 받아들인다.”
두 달이 끝나면 내가 두려워했던 일이 현실이 될 테지만, 그 두 달 동안은 내가 원하는 걸 할 거라고 결심했어요. 그리고 정말 그 시간을 평안히 받아들였어요.
그런데 두 달 동안 열심히 사역을 준비하고 글을 쓰고 있던 어느 날, 전화가 왔어요.
“여보세요?” “안녕하세요. 저희는 규장 출판사입니다.”
전 너무 당황했어요. “혹시 저한테 책을 내자는 말씀이신가요?” “네, 맞습니다. 대표님과 만나서 이야기 나눠보면 좋겠어요.”
그리고 대표님을 만났습니다. 대표님께서 제 간증을 들으시고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하나님께서 저에게 말씀하셨어요. 나의 사랑하는 아들이다. 내가 너를 돕는 자로 보냈으니 그의 사역을 지원하라.”
그렇게 규장에서 첫 책을 내게 되었고, 이후 사역이 시작됐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저를 죽을 지경까지 몰아가시고, 다시 은혜로 일으키셨습니다. 아멘.
진리로 나아가는 삶
여러분, 저는 오늘 이곳에 상처 입은 한 영혼을 위해 초대받았다고 확신합니다. 이 자리에 있는 상처 입은 영혼들에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내 안에 있는 혼자라는 감정, 실패했다는 감정, 절망이라는 감정. 그 감정들을 무시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그 감정에서 멈추지 말고, 진리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진리로 나아갈 때, 그 감정을 뛰어넘어 진실을 알게 되고, 그곳에 참된 자유가 있습니다. 아멘.
저는 얼마나 외로웠는지 모릅니다. 예수님의 사랑이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에, 때로는 예수님께 버림받았다고 느끼기도 했습니다.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 들어주셔도 제 이야기는 들어주지 않는 것 같았고, 예수님이 저를 방치하신 것 같았으며, 잘못하면 벌만 주실 것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예수님은 나를 인격적으로 사랑하지 않으셔. 난 혼자야. 예수님은 멀리 계셔. 아무도 날 사랑하지 않아. 그래서 난 외로워.”
그러나 이제 저는 저의 외로움을 향해 이렇게 선포합니다. "외로움은 감정이다. 예수님은 내 감정과 상관없이 지금 여기 나와 함께하시는 임마누엘의 하나님이시다. 아멘."
내 감정은 느껴지지 않을 수 있습니다. 혼자라는 생각이 들고, 내 옆에 아무도 없는 것 같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내 감정과 상관없이 지금 여기 나와 함께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아멘.
여러분, 감정을 존중하십시오. 그 감정을 수용하십시오. 그러나 그 감정에서 멈추지 말고, 그 감정 그대로 예수님께 나아가십시오.
예수님이 말씀하실 것입니다.
“내가 너를 책임질 것이다. 내가 너와 함께할 것이다. 내가 너를 살려낼 것이다. 너의 도전이 멈출지라도, 너의 도전이 실패할지라도, 내가 너를 살려낼 것이다.” 아멘.
여러분, 내가 살아나면 나의 도전도 살아납니다. 내가 살아나면 나의 사업도 일어납니다. 내가 살아나면 나의 육체의 질병도 치유됩니다. 아멘. 이것이 감정에서 멈추지 않는 진리입니다. 예수님은 저와 여러분을 치유하기 원하십니다. 오늘 이곳에 예수님이 함께하십니다. 아멘.
제가 이렇게 부족한데도 하나님께서 왜 저를 부르셨을까요? 저는 주님께 절규하며 물었습니다. “주님, 제가 어찌 이 사역을 감당할 수 있겠습니까?” 그때 주님께서 저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치유에 대해 말하지 말고, 나의 능력의 말씀을 전하라. 나의 말씀만이 상처를 치유할 것이다.”
오늘 제가 여기 부름받은 이유는 저의 언어와 경험으로 여러분이 치유되는 것이 아닙니다. 살아 있는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으로, 그 말씀을 믿고 고백함으로 여러분은 치유될 것입니다. 주님은 여러분을 살리시기를 원하십니다. 아멘.
기도할 때, 감정에 의존하지 마십시오. 좋은 느낌으로 기도하는 것이 아닙니다. 병이 나을 것 같은 감정으로 기도하는 것이 아닙니다.
아무 감정이 느껴지지 않아도 말씀의 능력을 힘입어, 그 말씀을 입으로 고백하며 그리스도의 능력을 초청하는 것입니다. 아멘.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을 내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아멘.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함이 없습니다. 아멘.
감정이 없다 할지라도, 말씀을 붙잡으십시오. 주님, 저를 치유하여 주시옵소서. 주님, 저에게 치유의 능력을 행하여 주시옵소서.
의사가 말했습니까? “3개월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현대 의학으로는 고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주님, 저의 믿음이 상식에서 멈추지 않게 하소서. 상식을 존중하고 수용하되, 상식을 넘어 진리이신 예수님의 말씀을 듣게 하소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너는 산다. 너는 치유된다. 너는 고쳐진다.”
감정을 넘어, 상식을 넘어, 진리로 나아가십시오. 진리의 말씀을 붙잡으십시오. 하나님은 하실 수 있습니다. 아멘.
우리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우리의 결핍은 우리를 속입니다. 결핍은 수많은 거짓말을 만들어내며 우리를 파괴하려 합니다. 사탄은 우리의 믿음을 꺾으려 합니다.
이 시간, 말씀의 능력을 힘입어 주님 앞에 나아갑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면, 감정을 넘어 진리로 치유될 것입니다. 아멘.상식을 넘어 진리로, 우리의 육체적 질병도 치유될 것입니다. 아멘.
하나님, 우리의 병마와 싸우는 영혼을 치유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의 능력으로 우리를 고치시고, 회복시켜 주옵소서. 하나님은 불가능이 없으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으며 간절히 기도합니다. 하나님, 우리를 이끌어 주시옵소서. 아멘.
우리의 아픔과 상처가 주 안에서 빛나는 별이 되게 하소서.
상처 받은 한 영혼의 치유를 위한 기도문
사랑과 은혜가 충만하신 하나님 아버지,
우리 모두의 삶 속에 크고 작은 상처가 있음을 고백합니다. 그 상처로 인해 마음의 문을 닫아버리고 숨고 싶었던 우리의 모습을 주님 앞에 내려놓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이사야의 말씀을 통해 약속하신 것처럼, 마음이 상한 자를 치유하시기 위해 오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주님, 우리 안에 있는 상처와 아픔이 더 이상 우리의 삶을 무너지게 하지 않게 하시고, 도리어 그 상처가 주님 안에서 치유되고, 다른 사람들을 위로하고 세워주는 빛나는 별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슬픔과 두려움과 외로움과 같은 감정에 매몰되지 않게 하시고, 진리의 말씀을 붙들며 나아갈 수 있는 힘을 더하여 주옵소서.
하나님 아버지,
병으로 고통받는 이들에게도 동일한 은혜를 베풀어 주시옵소서. 암으로 고통받던 보디 오스틴 여사가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며 치유받았던 것처럼, 주님께서 주시는 약속의 말씀을 매일매일 고백하며 선포하게 하시고, 하나님의 기적과 회복을 경험하게 하여 주옵소서. 말씀대로 이루어지는 치유의 역사가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님,
한 영혼을 향한 사랑과 열정을 우리 안에 심어주시옵소서. 우리 교회와 목회자들이 한 영혼을 소중히 여기며, 그 영혼을 위해 기도하고 사랑할 때, 그를 통해 하나님의 위대한 부흥의 역사를 이루어 주옵소서. "왜 많은 영혼들이 우리에게 오지 않을까?"를 고민하기보다, 한 영혼을 사랑하고, 그를 통해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교회와 성도들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성령님,
이 시간 우리에게 기름부어 주시옵소서. 우리의 상처를 치유하시고, 우리의 삶을 회복시키시며, 주님의 진리 가운데로 이끄시는 성령님의 강력한 역사를 경험하게 하여 주옵소서. 우리의 삶이 상처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주님 안에서 회복되어 빛나는 별이 되게 하시고, 주님 나라의 확장을 위해 쓰임받게 하여 주옵소서.
이 모든 말씀을 우리를 사랑하시고 치유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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