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인지의 두 단계: 모니터링과 컨트롤
한국에서 메타인지는 '나 자신을 다시 바라보는 것'이라고 배웠습니다. 여기까지는 잘 배운 것 같습니다. 그런데 왜 메타인지가 아직까지 어렵게 느껴지고, 정확하게 메타인지를 어떻게 사용할 수 있는지, 무엇이 부족한지 생각해 보면, 더 설명해야 했는데 아직 못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메타인지는 두 단계가 있습니다. 하나는 모니터링이고, 다른 하나는 컨트롤입니다.
한국에서는 메타인지 관련하여 '모니터링'에 집중되어 있으나, 학습에는 '컨트롤'이 결정적 역할을 합니다
그래서 이 이야기는 여러 번 했지만, 한국에서는 “아, 메타인지는 모니터링, 즉 내가 나 자신을 다시 바라보는 것이다”라는 부분까지는 잘 배우신 것 같습니다. 그것이 틀린 것은 아니고, 우리가 우리 자신에 대해서 다시 한번 바라보는 것은 분명히 중요합니다. 그런데 제가 조금 더 설명했어야 했는데 아직 못했던 부분은 두 번째 단계인 컨트롤입니다. 컨트롤은 모니터링을 한 다음, 더 많은 것을 어떻게 배울 수 있을지 ‘행동’을 선택하는 것을 말합니다. 예를 들어 학생이 공부하면서 글을 읽다 보면 모니터링을 하게 됩니다. “이것은 왜 이렇게 어려운가? 너무 어렵다. 이거 너무 오래 걸리네.” 이런 식으로 자기 자신을 보면서 “아, 이 부분은 내가 아직 모르는 내용이구나. 너무 어렵기 때문에 한 시간 더 공부해야겠다.” 하고 결정하는데, 바로 이 행동을 선택하는 것이 컨트롤입니다. “내가 더 공부를 해야겠다”라고 판단하는 것이죠. 저는 한국에서는 이러한 컨트롤을 상상하기가 그리 어렵지 않고, 크게 문제가 된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컨트롤의 핵심: 사회적 소통의 필요성
하지만 우리가 “어떤 컨트롤을 선택해야 하는지, 어떤 행동이 우리에게 도움이 되는지”를 생각하다 보면, 사실 혼자서만 선택할 수 있는 행동들이 아니라는 점을 깨닫게 됩니다. 보통 우리가 공부하거나 무언가를 배울 때는 다른 사람과 함께 있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예를 들어 수업 시간에는 다른 학생들도 있고, 회사에는 다른 사람들도 있고, 집에서 뭘 배울 때도 가족이나 부모, 형제 등이 있지요. 우리는 정말 소셜 한 동물입니다. 그러다 보니 여기서 컨트롤이 발휘될 때 커뮤니케이션이 매우 중요하게 작용합니다.
그래서 요즘 많이 드는 생각이, “왜 메타인지가 아직까지 어렵게 느껴질까? 왜 어린아이들에 대해서 어렵게 느껴질까? 그리고 부모들도 정확하게 메타인지를 어떻게 사용해야 할지 잘 모르는 부분이 무엇일까?” 했을 때, 결국 커뮤니케이션, 즉 ‘소통’이 부족하다는 점을 떠올리게 됩니다.
바깥으로 표현되어야 하는 말, 이를테면 “선생님, 이거 너무 어려운데요. 한 번 더 설명해 주시겠어요?” 같은 질문을 하는 것부터가 사실 저에게도 어렸을 때 굉장히 어려운 부분이었습니다. 그리고 어른이 되어도 한국 문화 속에서는 이런 말을 직접 꺼내기가 쉬워지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한국에서는 말수를 줄이고 조용히 지내고, 질문을 많이 하지 않는 것을 ‘착하다’ 거나 ‘겸손하다’고 보는 문화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 때문에 메타인지의 두 번째 단계인 컨트롤이 어려운 것입니다. 사실 우리 모두 착하다고 해야 할까요, 혹은 착한 척이라도 해야 하는 분위기가 있어서, 나쁜 말을 하거나 의견이 달라도 쉽게 바로 말을 꺼내지 못합니다. 그러다 보니 메타인지에서 모니터링은 잘되더라도, 그다음 단계로 바로 넘어가는 데에 장애물이 생기고 멈춰 버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요즘에는 “커뮤니케이션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인지, 커뮤니케이션을 시도할 때 언제 그것이 멈추게 되는지, 무엇 때문에 중단되면 다시 이어지지 않는지, 커뮤니케이션을 길게 이어 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같은 것들을 많이 생각해 봅니다.
학습의 진짜 완성: 피드백과 순환 구조
사실 저 자신도 어른이 되어 살아가면서 일부러 커뮤니케이션을 멈출 때가 많습니다. 그런데 그러면 얼마나 억울한지 모릅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별로 큰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제가 보기에는 이 문제가 굉장히 중요합니다. 학생 때부터 어른이 될 때까지, 이 커뮤니케이션이 멈추면 학습도 멈추고 피드백도 멈추며, 대화 자체가 사라집니다. 그런데 서로 통이 잘 되면, 즉 소통이 잘 맞으면 사이클이 이어지게 됩니다. 모니터링에서 끝나고 행동을 선택하는 컨트롤로 넘어가는 것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모니터링과 컨트롤 사이에 피드백이 들어오고, 피드백이 들어오면 다시 모니터링을 하고, 그 과정에서 계속 적응이 일어납니다.

점수 자체보다는, 학습한 내용을 다시 설명하고, 피드백을 주고받으며 진짜 배움이 완성됨 (부모나 교사의 촉진자 역할)
예를 들어 공부를 하면서 “내가 이걸 아는가, 모르는가, 재미있는가”를 계속 모니터링했다고 합시다. 그리고 시험을 봤습니다. 점수가 나오면 그것도 컨트롤에서 비롯된 행동의 결과가 됩니다. 예를 들어 시험을 봐서 100점을 받았다면, 보통은 부모가 “너무 잘했어, 넌 너무 똑똑하구나” 하고 거기서 끝내 버립니다. 하지만 더 좋은 방법은 이 사이클을 계속 이어 가도록 하는 것입니다. 100점을 받았어도 “시험 문제지를 가져와 봐. 너 100점 받았지? 엄마도 이게 궁금해” 이렇게 해서 아이가 어떤 내용을 어떻게 이해했는지 설명하게 하고, 다시 대화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사실 제가 장담하건대, 상당수의 경우 시험을 본 지 하루만 지나도 아이가 어떤 문제의 정답이 왜 그런지 제대로 모를 수 있습니다. 그런데 대화를 계속 이어 간다면, 아이 스스로 알게 되고 발전하게 됩니다. 그냥 찍어서 운 좋게 100점을 맞았을 수도 있으니, 시간이 지날수록 그 100점은 ‘빵점’으로 전락할 수도 있지요. 그래서 부모들이 “결과인 점수 자체가 끝이 아니다”라는 사실을 알면 좋겠습니다. “100점이라니 대단하다, 잘했어”에서 끝내지 말고 “그런데 무엇을 배웠는지 엄마(또는 아빠)한테 설명해 줄래? 아니면 동생에게 가르쳐 줄래?”라고 물어보면, 그것이 피드백이 되고, 다시 모니터링이 이어집니다. (T3 class의 중요성)
그런데 막상 아이가 “사실은 깊게는 잘 몰라요”라고 고백할 수도 있지요. 그러면 그 아이는 자기 자신과도 충분한 커뮤니케이션(질문과 답변)을 하지 않았다는 뜻이고, 컨트롤 역시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던 것입니다. 만약 컨트롤을 제대로 했다면, “재미있다”라고 느낄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 100점이 가짜(우연히 얻은) 점수가 아니고, 아이가 실제로 배운 것과 자신감(100점)이 일치할 때의 쾌감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엄마 아빠도 완벽한 사람은 아니니, “그게 무슨 말이야?”라고 되물을 수도 있고, 그러면 아이는 “내가 설명을 잘 못했나? 다시 모니터링해 봐야겠다” 하면서 학습 사이클을 또 이어 갑니다. 이것이 바로 메타인지가 작동하는 방식입니다.
왜 학습을 ‘길게’ 만들려 하는지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계속 새로운 질문이 들어오고, 다시 모니터링하고, “아, 엄마, 난 이 생각은 못 했네. 이건 이런 것 같아” 하면서 대화를 계속 이어 가는 것입니다. 부모들은 아이가 길게 생각할 수 있도록, 새로운 질문이나 관점을 제시해 주면서 다시 모니터링하도록 이끌어 줄 수 있습니다. 똑같은 질문이라도 각도를 달리해서 계속 던져 줘야 합니다.
착함과 완벽주의가 만든 고립된 학습 태도
이것도 사실 ‘착하다’는 개념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예를 들어 “도움 좀 주세요”라고 적극적으로 요청하기보다는 혼자서 착실히 해내려는 태도를 좋은 성격 혹은 똑똑함이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자기 자신을 믿는 것이기도 하고요.
그런데 솔직히 말하면, 혼자서 하는 방법이라는 것이 대부분 빠른 검색이나, 다른 사람에게 부담 주지 않고 조용히 외워버리거나, 혹은 친한 친구에게 “야, 답이 뭐야?” 하고 살짝 물어보는 정도일 때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학습’이 아니고, 창의성이나 호기심도 아닙니다. 호기심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그중 ‘explorative 호기심’은 대부분 아기 때 누구나 가지고 있지요. “이건 왜 이럴까? 엄마, 왜 이거야?” 같은 ‘Why?’ 질문을 많이 하는 게 바로 그 좋은 호기심입니다. 더 좋은 것은 아이가 그런 질문을 던졌을 때, 엄마가 답을 모른다고 해도 함께 궁리하고 대화를 이어 가는 상황입니다. 그것이 explorative 한 태도입니다.
그런데 보통 한국 아이들이 초등학교 1학년쯤 되면, 답이 ‘없는’ 질문을 던지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수학을 예로 들면, “왜 이렇게 곱하기하는 거야?”라고 물으면 부모가 “그건 이렇게 해서 이런 답이 나오지” 하는 식으로 정해진 해설을 주기 때문에, 사실상 explorative 한 대화가 이뤄지지 않는 것입니다. 아이 입장에서는 “내가 궁금한 게 있는데, 네가 나한테 답을 주면 좋겠어”라고 하면서 그 ‘답’만을 요구하는 형태가 되고, 부모들은 “우리 애는 항상 나한테 물어봐”라면서 그것을 ‘호기심이 많다’고 여기지만, 사실은 어찌 보면 ‘빨리 답을 얻고 멈추는 호기심’ 일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이가 “나는 혼자서 해결해야겠다”라고 할 때, 정말 스스로 생각하고, 연구하고, 다른 사람에게도 물어보고, 힌트를 얻으면서 ‘왜 그럴까?’를 깊이 파고드는 과정을 거친다면 좋겠지만, 실제로는 대부분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사실 한국 아이들뿐 아니라 전 세계 아이들이 소셜 그룹 안에서 학습하고, 선생님이나 부모, 친구들끼리 피드백을 주고받으며 배웁니다. 그런데 “혼자서 하는 것이 착하다”는 인식이 있어서, “빨리 이 질문에 답을 찾고 끝내고 싶다”는 태도로 공부를 하게 되면, 결국 그것은 진정한 학습이 되지 못하고 ‘단순히 답만 빨리 알아내기’로 그칠 수 있습니다. 오히려 길게 소셜 도움을 받는 쪽이 정확한 메타인지를 형성하기에 좋다고 생각합니다.
메타인지는 단선적인 과정이 아닙니다. 모니터링 → 컨트롤 → 피드백 → 다시 모니터링으로 이어지는 순환 구조를 가집니다. 이 사이클을 통해 진짜 학습이 완성됩니다. 예를 들어 어떤 학생이 시험을 보고 100점을 받았다고 해도, 그것이 진짜 배움인지 아닌지는 다시 피드백을 통해 확인되어야 합니다. “이 문제는 왜 이렇게 나왔을까?”, “엄마한테 설명해 볼래?” 같은 대화를 통해 아이는 자신이 이해한 바를 다시 점검하게 됩니다. 이 과정 속에서 단순한 점수가 아닌, ‘내가 무엇을 어떻게 이해했는지’에 대한 성찰과 조정이 일어나며, 학습은 훨씬 더 깊어집니다. 부모나 교사는 아이가 이 사이클을 계속 반복하도록 도와주어야 합니다.
저는 어렸을 때 정말 완벽주의가 심했던 것 같습니다. 늘 퍼펙트해야 하고, 그것이 들키면 안 된다고 여겼습니다. 그래서 절대로 길게 커뮤니케이션하면서 “이 부분이 잘 모르겠어요, 도와주세요” 같은 말을 하거나, 대화를 길게 이어 가면서 도움을 청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시험에서 늘 100점을 받아야 했고, 실제로 그렇게 해 왔습니다. 일종의 전형적인 조용한 모범생이었던 것이죠. 어느 정도는 ‘성공’처럼 보였지만, 어른이 되고 나니 정말 필요한 것은 바로 이 ‘소통’이었습니다. 무엇이든 혼자 해도, 사람들과 함께해도, 어느 나라에서 살아도, 결국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이란 거의 없습니다.
제가 보기에는 인생이 왜 힘드냐 하면, 죽기 전까지 만나는 여러 문제들을 해결하는 시간이 계속 주어지는데, 해결 방법을 찾아내는 과정 자체가 인생인 것 같습니다. 회사에 들어가도 마찬가지입니다. 회사라는 곳은 ‘크리에이티브하게 무언가를 만드는 것’이 주된 목표입니다. 그런데 모든 직원이 각자 혼자서만 생각하면 피드백이 전혀 오가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발전할 길이 막혀 버립니다. 우리가 개인적으로 알고 있는 지식은 한계가 있지 않습니까? 한 사람이 아는 것은 굉장히 제한적이니, 그 문제들을 해결하려면 서로 소통해야 합니다.
메타인지는 “못 해도 괜찮다. 다 못하니 시작해 보자, 생각해 보자, explore 해 보자.”라는 마인드를 배우는 것입니다. 원래 우리가 배워야 하는 과정이 이런 것이었고, 만약 그렇게 배웠다면 어른이 되어 새로운 문제에 부딪히더라도 겁먹지 않고 “내가 이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을 알고 있으니 시도해 보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저는 그런 어른이 되고 싶습니다. 그렇게 되면 두려움이 없습니다. 회사에서 사장님이 어려운 도전을 제시해도 “오케이, 해 보겠습니다!”라고 말할 수 있고, 실패하면 “제가 여기까지는 해 봤는데, 하루가 더 필요할 것 같습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가 생깁니다. 왜냐하면 이미 소통 속에서 노력했고, 그 과정을 공유했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소통하지 않고 “아, 이거 너무 어렵다. 싫다.” 하고 아예 포기해 버리면, 노력한 흔적도 없고 용기도 생길 수 없습니다. “원래 이 부분은 내 담당이 아닌데, 왜 나더러 하라고 하지?” 하고 일단 거부부터 해 버리면, 새로운 것도 못 배우고 관계도 형성되지 않고, 결국 용기는 점점 더 눌려 버립니다. 그러다 보면 점점 회사 생활이 싫어지고 스트레스를 많이 받으며, 결국 회사를 그만두는 사람도 많아집니다. 무엇이든 시작이 제일 어렵지만, 막상 시작해 보면 실패할까 봐 두렵고, 그게 들킬까 봐 사람에게 말도 꺼내기 어렵습니다. 그러다 보니 시작조차 못 하고 학습이 멈춰 버리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사람은 그 수준에서 멈춘 어른이 되고 맙니다.
게다가 우리는 각자 어떤 분야에 전문성이 있을 수 있지만, 다른 분야에 대해서는 부족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저는 메타인지에 대해서 많이 배웠지만, 통계 분야에서는 부족함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진짜 메타인지를 적용해서 이 연구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고 싶으면, 통계를 전문적으로 아는 분과 협력해야 합니다. 영어 표현 중에 ‘stay in your lane’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너는 수학 전공이니 수학만 해. 영어 전공이면 영어만 해”라는 식으로 각자의 분야만 고집하라는 뜻인데, 한국 사람들은 이런 말을 들으면 더욱 겁을 내기도 합니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우리가 문제를 해결하는 사람이 되려면 다양한 분야의 관점을 가져야 하고, 그만큼 학습도 해야 합니다. 하지만 한국 문화는 때때로 이런 도전을 막아 서기도 합니다.
진짜 학습은 ‘모르는 것을 인정하고, 도움을 요청하며, 함께 이야기하면서 배우는 것’입니다. 실패에 대한 두려움을 버리고, 자신을 드러내는 용기를 가질 때, 비로소 메타인지가 완전하게 작동합니다.
예를 들어 수학 전공자는 수학만 해야 하고, 영어 전공자는 영어만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런데 메타인지라는 것은 결국 “learning about learning”입니다. 수학을 학습하고, 피아노를 학습하고, 미술을 학습하고… 이 모든 것들이 인지의 대상이 되고, 또 “이제 새로운 문제다”라는 상황이 닥쳤을 때, 예전에 피아노를 배울 때 활용했던 메타인지적 학습 방법을 테니스 학습에도 적용할 수 있는 것입니다. “아, 피아노를 배울 때 이렇게 연습했더니 잘 안 됐으니, 테니스를 배울 땐 어떻게 적용하면 되겠다” 하고 연결시킬 수 있습니다.
소통이 만드는 관계와 행복: 진정한 메타인지의 완성
메타인지가 완성되는 순간은 관계가 생기는 순간입니다.
예를 들어 제가 딸과 딸 친구들을 차에 태워서 어디를 데려다줄 수 있지 않습니까? 어느 지점에 도착했을 때, 제 딸의 친구가 뒷좌석에서 내리기 전에 “Thank you very much for the ride”라고 말하는 것을 들으면, 저는 조금 놀랍니다. 그리고 “아, 참 착한 아이구나”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한국 아이들은 한국말을 하든 영어를 하든 보통 그냥 “땡큐” 한마디 하고 내려 버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길게 말하다 보면 자기에게 시선이 집중되는 것 같아서 불편해하는 것 같습니다. 저도 예전에는 누가 저를 차로 태워줬을 때 “땡큐” 하고 그냥 집으로 들어갔습니다. “Thank you very much for the ride”처럼 길게 말하면 괜히 저도 긴장되고 쑥스러웠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아이를 보면서 깨달았습니다. 상대방이 내 말을 정확히 이해하도록 ‘명확하게’ 표현하는 게 커뮤니케이션의 목표이고, 그렇게 해야 듣는 사람도 “아, 이 아이가 진심으로 고마워하는구나”라고 느낄 수 있습니다. 한국 사람들은 “감사합니다”라고만 해도 됐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고, 상대방이 못 들었어도 ‘나는 말했다’고 여기면서 넘어갑니다. 하지만 상대방을 좀 더 생각해 준다면, 그 사람이 분명히 들을 수 있도록 또렷하게 끝까지 말해 주는 것이 필요합니다. 예컨대 “Thank you very much, Miss Lee”라고 차 안에서 분명히 말하고, 내릴 때 문을 닫기 전에 다시 한번 “Thank you again for the ride”라고 전하면, 듣는 사람도 훨씬 명료하게 이해하고 기분 좋게 답할 수 있습니다.
이런 사소한 순간들을 보면서 “아, 내가 엄마로서 딸에게 이런 모습을 제대로 보여주지 않았구나” 하고 반성하게 됩니다. 저 자신도 길게 말하는 편이 아니고, 식사 후에 “오늘 정말 맛있게 먹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같은 말을 자세히 하는 문화도 익숙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길게 말하면, 마치 내가 ‘중심인물’인 것 같고, 과하게 나서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젠 바뀌고 싶습니다. 상대방에게 정보를 명확히 주는 것이 정확한 메타인지이고, 듣는 사람도 분명하게 이해해야 메타인지가 제대로 작동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제가 “땡큐”라고만 했는데, 상대방이 못 들어서 “You’re welcome”이라는 답이 나오지 않는다면, 서로 간에 ‘감사’와 ‘답례’의 느낌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 것입니다. 하지만 “Thank you very much!”라고 분명하게 이야기하면, “Oh, you’re welcome. It was my pleasure.”처럼 상대방도 기분 좋은 반응을 할 수 있고, 그럼 서로의 기분이 좋아지는 ‘소셜’한 관계가 만들어집니다.
저는 이것이 행복이라고 생각합니다. 메타인지를 살펴보면, 결국 모니터링부터 컨트롤까지 제대로 이루어졌을 때 관계가 형성되고, 그것이 곧 행복으로 이어집니다.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쌓아 가는 것은 절대로 외롭거나 슬픈 방향으로 흘러가지 않고, 점점 더 행복해지는 쪽으로 나아간다고 생각합니다.
메타인지는 ‘혼자서 다 해내는 능력’이 아닙니다. 오히려 모르는 것을 인정하고, 다양한 사람들과 함께 문제를 풀어나가며, 새로운 것을 배워가는 태도입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우리는 사람들과 더 깊이 연결되고, 더욱 풍요로운 인생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Others > 이것 저것' 카테고리의 다른 글
노낭최미 老娘最美 (1) | 2025.03.24 |
---|---|
부활절 결정하는 법 (0) | 2025.03.24 |
풍경 (0) | 2025.03.22 |
현대 사회의 법치에 대한 희곡 한조각 (1) | 2025.03.08 |
목로주점 (3) | 2025.03.03 |
잠실 송파의 옛모습은 왜 사라졌나? 을축년 대홍수 (0) | 2025.02.22 |
메타인지의 두 단계: 모니터링과 컨트롤
한국에서 메타인지는 '나 자신을 다시 바라보는 것'이라고 배웠습니다. 여기까지는 잘 배운 것 같습니다. 그런데 왜 메타인지가 아직까지 어렵게 느껴지고, 정확하게 메타인지를 어떻게 사용할 수 있는지, 무엇이 부족한지 생각해 보면, 더 설명해야 했는데 아직 못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메타인지는 두 단계가 있습니다. 하나는 모니터링이고, 다른 하나는 컨트롤입니다.
한국에서는 메타인지 관련하여 '모니터링'에 집중되어 있으나, 학습에는 '컨트롤'이 결정적 역할을 합니다
그래서 이 이야기는 여러 번 했지만, 한국에서는 “아, 메타인지는 모니터링, 즉 내가 나 자신을 다시 바라보는 것이다”라는 부분까지는 잘 배우신 것 같습니다. 그것이 틀린 것은 아니고, 우리가 우리 자신에 대해서 다시 한번 바라보는 것은 분명히 중요합니다. 그런데 제가 조금 더 설명했어야 했는데 아직 못했던 부분은 두 번째 단계인 컨트롤입니다. 컨트롤은 모니터링을 한 다음, 더 많은 것을 어떻게 배울 수 있을지 ‘행동’을 선택하는 것을 말합니다. 예를 들어 학생이 공부하면서 글을 읽다 보면 모니터링을 하게 됩니다. “이것은 왜 이렇게 어려운가? 너무 어렵다. 이거 너무 오래 걸리네.” 이런 식으로 자기 자신을 보면서 “아, 이 부분은 내가 아직 모르는 내용이구나. 너무 어렵기 때문에 한 시간 더 공부해야겠다.” 하고 결정하는데, 바로 이 행동을 선택하는 것이 컨트롤입니다. “내가 더 공부를 해야겠다”라고 판단하는 것이죠. 저는 한국에서는 이러한 컨트롤을 상상하기가 그리 어렵지 않고, 크게 문제가 된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컨트롤의 핵심: 사회적 소통의 필요성
하지만 우리가 “어떤 컨트롤을 선택해야 하는지, 어떤 행동이 우리에게 도움이 되는지”를 생각하다 보면, 사실 혼자서만 선택할 수 있는 행동들이 아니라는 점을 깨닫게 됩니다. 보통 우리가 공부하거나 무언가를 배울 때는 다른 사람과 함께 있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예를 들어 수업 시간에는 다른 학생들도 있고, 회사에는 다른 사람들도 있고, 집에서 뭘 배울 때도 가족이나 부모, 형제 등이 있지요. 우리는 정말 소셜 한 동물입니다. 그러다 보니 여기서 컨트롤이 발휘될 때 커뮤니케이션이 매우 중요하게 작용합니다.
그래서 요즘 많이 드는 생각이, “왜 메타인지가 아직까지 어렵게 느껴질까? 왜 어린아이들에 대해서 어렵게 느껴질까? 그리고 부모들도 정확하게 메타인지를 어떻게 사용해야 할지 잘 모르는 부분이 무엇일까?” 했을 때, 결국 커뮤니케이션, 즉 ‘소통’이 부족하다는 점을 떠올리게 됩니다.
바깥으로 표현되어야 하는 말, 이를테면 “선생님, 이거 너무 어려운데요. 한 번 더 설명해 주시겠어요?” 같은 질문을 하는 것부터가 사실 저에게도 어렸을 때 굉장히 어려운 부분이었습니다. 그리고 어른이 되어도 한국 문화 속에서는 이런 말을 직접 꺼내기가 쉬워지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한국에서는 말수를 줄이고 조용히 지내고, 질문을 많이 하지 않는 것을 ‘착하다’ 거나 ‘겸손하다’고 보는 문화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 때문에 메타인지의 두 번째 단계인 컨트롤이 어려운 것입니다. 사실 우리 모두 착하다고 해야 할까요, 혹은 착한 척이라도 해야 하는 분위기가 있어서, 나쁜 말을 하거나 의견이 달라도 쉽게 바로 말을 꺼내지 못합니다. 그러다 보니 메타인지에서 모니터링은 잘되더라도, 그다음 단계로 바로 넘어가는 데에 장애물이 생기고 멈춰 버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요즘에는 “커뮤니케이션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인지, 커뮤니케이션을 시도할 때 언제 그것이 멈추게 되는지, 무엇 때문에 중단되면 다시 이어지지 않는지, 커뮤니케이션을 길게 이어 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같은 것들을 많이 생각해 봅니다.
학습의 진짜 완성: 피드백과 순환 구조
사실 저 자신도 어른이 되어 살아가면서 일부러 커뮤니케이션을 멈출 때가 많습니다. 그런데 그러면 얼마나 억울한지 모릅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별로 큰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제가 보기에는 이 문제가 굉장히 중요합니다. 학생 때부터 어른이 될 때까지, 이 커뮤니케이션이 멈추면 학습도 멈추고 피드백도 멈추며, 대화 자체가 사라집니다. 그런데 서로 통이 잘 되면, 즉 소통이 잘 맞으면 사이클이 이어지게 됩니다. 모니터링에서 끝나고 행동을 선택하는 컨트롤로 넘어가는 것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모니터링과 컨트롤 사이에 피드백이 들어오고, 피드백이 들어오면 다시 모니터링을 하고, 그 과정에서 계속 적응이 일어납니다.

점수 자체보다는, 학습한 내용을 다시 설명하고, 피드백을 주고받으며 진짜 배움이 완성됨 (부모나 교사의 촉진자 역할)
예를 들어 공부를 하면서 “내가 이걸 아는가, 모르는가, 재미있는가”를 계속 모니터링했다고 합시다. 그리고 시험을 봤습니다. 점수가 나오면 그것도 컨트롤에서 비롯된 행동의 결과가 됩니다. 예를 들어 시험을 봐서 100점을 받았다면, 보통은 부모가 “너무 잘했어, 넌 너무 똑똑하구나” 하고 거기서 끝내 버립니다. 하지만 더 좋은 방법은 이 사이클을 계속 이어 가도록 하는 것입니다. 100점을 받았어도 “시험 문제지를 가져와 봐. 너 100점 받았지? 엄마도 이게 궁금해” 이렇게 해서 아이가 어떤 내용을 어떻게 이해했는지 설명하게 하고, 다시 대화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사실 제가 장담하건대, 상당수의 경우 시험을 본 지 하루만 지나도 아이가 어떤 문제의 정답이 왜 그런지 제대로 모를 수 있습니다. 그런데 대화를 계속 이어 간다면, 아이 스스로 알게 되고 발전하게 됩니다. 그냥 찍어서 운 좋게 100점을 맞았을 수도 있으니, 시간이 지날수록 그 100점은 ‘빵점’으로 전락할 수도 있지요. 그래서 부모들이 “결과인 점수 자체가 끝이 아니다”라는 사실을 알면 좋겠습니다. “100점이라니 대단하다, 잘했어”에서 끝내지 말고 “그런데 무엇을 배웠는지 엄마(또는 아빠)한테 설명해 줄래? 아니면 동생에게 가르쳐 줄래?”라고 물어보면, 그것이 피드백이 되고, 다시 모니터링이 이어집니다. (T3 class의 중요성)
그런데 막상 아이가 “사실은 깊게는 잘 몰라요”라고 고백할 수도 있지요. 그러면 그 아이는 자기 자신과도 충분한 커뮤니케이션(질문과 답변)을 하지 않았다는 뜻이고, 컨트롤 역시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던 것입니다. 만약 컨트롤을 제대로 했다면, “재미있다”라고 느낄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 100점이 가짜(우연히 얻은) 점수가 아니고, 아이가 실제로 배운 것과 자신감(100점)이 일치할 때의 쾌감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엄마 아빠도 완벽한 사람은 아니니, “그게 무슨 말이야?”라고 되물을 수도 있고, 그러면 아이는 “내가 설명을 잘 못했나? 다시 모니터링해 봐야겠다” 하면서 학습 사이클을 또 이어 갑니다. 이것이 바로 메타인지가 작동하는 방식입니다.
왜 학습을 ‘길게’ 만들려 하는지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계속 새로운 질문이 들어오고, 다시 모니터링하고, “아, 엄마, 난 이 생각은 못 했네. 이건 이런 것 같아” 하면서 대화를 계속 이어 가는 것입니다. 부모들은 아이가 길게 생각할 수 있도록, 새로운 질문이나 관점을 제시해 주면서 다시 모니터링하도록 이끌어 줄 수 있습니다. 똑같은 질문이라도 각도를 달리해서 계속 던져 줘야 합니다.
착함과 완벽주의가 만든 고립된 학습 태도
이것도 사실 ‘착하다’는 개념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예를 들어 “도움 좀 주세요”라고 적극적으로 요청하기보다는 혼자서 착실히 해내려는 태도를 좋은 성격 혹은 똑똑함이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자기 자신을 믿는 것이기도 하고요.
그런데 솔직히 말하면, 혼자서 하는 방법이라는 것이 대부분 빠른 검색이나, 다른 사람에게 부담 주지 않고 조용히 외워버리거나, 혹은 친한 친구에게 “야, 답이 뭐야?” 하고 살짝 물어보는 정도일 때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학습’이 아니고, 창의성이나 호기심도 아닙니다. 호기심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그중 ‘explorative 호기심’은 대부분 아기 때 누구나 가지고 있지요. “이건 왜 이럴까? 엄마, 왜 이거야?” 같은 ‘Why?’ 질문을 많이 하는 게 바로 그 좋은 호기심입니다. 더 좋은 것은 아이가 그런 질문을 던졌을 때, 엄마가 답을 모른다고 해도 함께 궁리하고 대화를 이어 가는 상황입니다. 그것이 explorative 한 태도입니다.
그런데 보통 한국 아이들이 초등학교 1학년쯤 되면, 답이 ‘없는’ 질문을 던지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수학을 예로 들면, “왜 이렇게 곱하기하는 거야?”라고 물으면 부모가 “그건 이렇게 해서 이런 답이 나오지” 하는 식으로 정해진 해설을 주기 때문에, 사실상 explorative 한 대화가 이뤄지지 않는 것입니다. 아이 입장에서는 “내가 궁금한 게 있는데, 네가 나한테 답을 주면 좋겠어”라고 하면서 그 ‘답’만을 요구하는 형태가 되고, 부모들은 “우리 애는 항상 나한테 물어봐”라면서 그것을 ‘호기심이 많다’고 여기지만, 사실은 어찌 보면 ‘빨리 답을 얻고 멈추는 호기심’ 일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이가 “나는 혼자서 해결해야겠다”라고 할 때, 정말 스스로 생각하고, 연구하고, 다른 사람에게도 물어보고, 힌트를 얻으면서 ‘왜 그럴까?’를 깊이 파고드는 과정을 거친다면 좋겠지만, 실제로는 대부분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사실 한국 아이들뿐 아니라 전 세계 아이들이 소셜 그룹 안에서 학습하고, 선생님이나 부모, 친구들끼리 피드백을 주고받으며 배웁니다. 그런데 “혼자서 하는 것이 착하다”는 인식이 있어서, “빨리 이 질문에 답을 찾고 끝내고 싶다”는 태도로 공부를 하게 되면, 결국 그것은 진정한 학습이 되지 못하고 ‘단순히 답만 빨리 알아내기’로 그칠 수 있습니다. 오히려 길게 소셜 도움을 받는 쪽이 정확한 메타인지를 형성하기에 좋다고 생각합니다.
메타인지는 단선적인 과정이 아닙니다. 모니터링 → 컨트롤 → 피드백 → 다시 모니터링으로 이어지는 순환 구조를 가집니다. 이 사이클을 통해 진짜 학습이 완성됩니다. 예를 들어 어떤 학생이 시험을 보고 100점을 받았다고 해도, 그것이 진짜 배움인지 아닌지는 다시 피드백을 통해 확인되어야 합니다. “이 문제는 왜 이렇게 나왔을까?”, “엄마한테 설명해 볼래?” 같은 대화를 통해 아이는 자신이 이해한 바를 다시 점검하게 됩니다. 이 과정 속에서 단순한 점수가 아닌, ‘내가 무엇을 어떻게 이해했는지’에 대한 성찰과 조정이 일어나며, 학습은 훨씬 더 깊어집니다. 부모나 교사는 아이가 이 사이클을 계속 반복하도록 도와주어야 합니다.
저는 어렸을 때 정말 완벽주의가 심했던 것 같습니다. 늘 퍼펙트해야 하고, 그것이 들키면 안 된다고 여겼습니다. 그래서 절대로 길게 커뮤니케이션하면서 “이 부분이 잘 모르겠어요, 도와주세요” 같은 말을 하거나, 대화를 길게 이어 가면서 도움을 청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시험에서 늘 100점을 받아야 했고, 실제로 그렇게 해 왔습니다. 일종의 전형적인 조용한 모범생이었던 것이죠. 어느 정도는 ‘성공’처럼 보였지만, 어른이 되고 나니 정말 필요한 것은 바로 이 ‘소통’이었습니다. 무엇이든 혼자 해도, 사람들과 함께해도, 어느 나라에서 살아도, 결국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이란 거의 없습니다.
제가 보기에는 인생이 왜 힘드냐 하면, 죽기 전까지 만나는 여러 문제들을 해결하는 시간이 계속 주어지는데, 해결 방법을 찾아내는 과정 자체가 인생인 것 같습니다. 회사에 들어가도 마찬가지입니다. 회사라는 곳은 ‘크리에이티브하게 무언가를 만드는 것’이 주된 목표입니다. 그런데 모든 직원이 각자 혼자서만 생각하면 피드백이 전혀 오가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발전할 길이 막혀 버립니다. 우리가 개인적으로 알고 있는 지식은 한계가 있지 않습니까? 한 사람이 아는 것은 굉장히 제한적이니, 그 문제들을 해결하려면 서로 소통해야 합니다.
메타인지는 “못 해도 괜찮다. 다 못하니 시작해 보자, 생각해 보자, explore 해 보자.”라는 마인드를 배우는 것입니다. 원래 우리가 배워야 하는 과정이 이런 것이었고, 만약 그렇게 배웠다면 어른이 되어 새로운 문제에 부딪히더라도 겁먹지 않고 “내가 이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을 알고 있으니 시도해 보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저는 그런 어른이 되고 싶습니다. 그렇게 되면 두려움이 없습니다. 회사에서 사장님이 어려운 도전을 제시해도 “오케이, 해 보겠습니다!”라고 말할 수 있고, 실패하면 “제가 여기까지는 해 봤는데, 하루가 더 필요할 것 같습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가 생깁니다. 왜냐하면 이미 소통 속에서 노력했고, 그 과정을 공유했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소통하지 않고 “아, 이거 너무 어렵다. 싫다.” 하고 아예 포기해 버리면, 노력한 흔적도 없고 용기도 생길 수 없습니다. “원래 이 부분은 내 담당이 아닌데, 왜 나더러 하라고 하지?” 하고 일단 거부부터 해 버리면, 새로운 것도 못 배우고 관계도 형성되지 않고, 결국 용기는 점점 더 눌려 버립니다. 그러다 보면 점점 회사 생활이 싫어지고 스트레스를 많이 받으며, 결국 회사를 그만두는 사람도 많아집니다. 무엇이든 시작이 제일 어렵지만, 막상 시작해 보면 실패할까 봐 두렵고, 그게 들킬까 봐 사람에게 말도 꺼내기 어렵습니다. 그러다 보니 시작조차 못 하고 학습이 멈춰 버리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사람은 그 수준에서 멈춘 어른이 되고 맙니다.
게다가 우리는 각자 어떤 분야에 전문성이 있을 수 있지만, 다른 분야에 대해서는 부족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저는 메타인지에 대해서 많이 배웠지만, 통계 분야에서는 부족함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진짜 메타인지를 적용해서 이 연구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고 싶으면, 통계를 전문적으로 아는 분과 협력해야 합니다. 영어 표현 중에 ‘stay in your lane’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너는 수학 전공이니 수학만 해. 영어 전공이면 영어만 해”라는 식으로 각자의 분야만 고집하라는 뜻인데, 한국 사람들은 이런 말을 들으면 더욱 겁을 내기도 합니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우리가 문제를 해결하는 사람이 되려면 다양한 분야의 관점을 가져야 하고, 그만큼 학습도 해야 합니다. 하지만 한국 문화는 때때로 이런 도전을 막아 서기도 합니다.
진짜 학습은 ‘모르는 것을 인정하고, 도움을 요청하며, 함께 이야기하면서 배우는 것’입니다. 실패에 대한 두려움을 버리고, 자신을 드러내는 용기를 가질 때, 비로소 메타인지가 완전하게 작동합니다.
예를 들어 수학 전공자는 수학만 해야 하고, 영어 전공자는 영어만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런데 메타인지라는 것은 결국 “learning about learning”입니다. 수학을 학습하고, 피아노를 학습하고, 미술을 학습하고… 이 모든 것들이 인지의 대상이 되고, 또 “이제 새로운 문제다”라는 상황이 닥쳤을 때, 예전에 피아노를 배울 때 활용했던 메타인지적 학습 방법을 테니스 학습에도 적용할 수 있는 것입니다. “아, 피아노를 배울 때 이렇게 연습했더니 잘 안 됐으니, 테니스를 배울 땐 어떻게 적용하면 되겠다” 하고 연결시킬 수 있습니다.
소통이 만드는 관계와 행복: 진정한 메타인지의 완성
메타인지가 완성되는 순간은 관계가 생기는 순간입니다.
예를 들어 제가 딸과 딸 친구들을 차에 태워서 어디를 데려다줄 수 있지 않습니까? 어느 지점에 도착했을 때, 제 딸의 친구가 뒷좌석에서 내리기 전에 “Thank you very much for the ride”라고 말하는 것을 들으면, 저는 조금 놀랍니다. 그리고 “아, 참 착한 아이구나”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한국 아이들은 한국말을 하든 영어를 하든 보통 그냥 “땡큐” 한마디 하고 내려 버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길게 말하다 보면 자기에게 시선이 집중되는 것 같아서 불편해하는 것 같습니다. 저도 예전에는 누가 저를 차로 태워줬을 때 “땡큐” 하고 그냥 집으로 들어갔습니다. “Thank you very much for the ride”처럼 길게 말하면 괜히 저도 긴장되고 쑥스러웠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아이를 보면서 깨달았습니다. 상대방이 내 말을 정확히 이해하도록 ‘명확하게’ 표현하는 게 커뮤니케이션의 목표이고, 그렇게 해야 듣는 사람도 “아, 이 아이가 진심으로 고마워하는구나”라고 느낄 수 있습니다. 한국 사람들은 “감사합니다”라고만 해도 됐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고, 상대방이 못 들었어도 ‘나는 말했다’고 여기면서 넘어갑니다. 하지만 상대방을 좀 더 생각해 준다면, 그 사람이 분명히 들을 수 있도록 또렷하게 끝까지 말해 주는 것이 필요합니다. 예컨대 “Thank you very much, Miss Lee”라고 차 안에서 분명히 말하고, 내릴 때 문을 닫기 전에 다시 한번 “Thank you again for the ride”라고 전하면, 듣는 사람도 훨씬 명료하게 이해하고 기분 좋게 답할 수 있습니다.
이런 사소한 순간들을 보면서 “아, 내가 엄마로서 딸에게 이런 모습을 제대로 보여주지 않았구나” 하고 반성하게 됩니다. 저 자신도 길게 말하는 편이 아니고, 식사 후에 “오늘 정말 맛있게 먹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같은 말을 자세히 하는 문화도 익숙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길게 말하면, 마치 내가 ‘중심인물’인 것 같고, 과하게 나서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젠 바뀌고 싶습니다. 상대방에게 정보를 명확히 주는 것이 정확한 메타인지이고, 듣는 사람도 분명하게 이해해야 메타인지가 제대로 작동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제가 “땡큐”라고만 했는데, 상대방이 못 들어서 “You’re welcome”이라는 답이 나오지 않는다면, 서로 간에 ‘감사’와 ‘답례’의 느낌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 것입니다. 하지만 “Thank you very much!”라고 분명하게 이야기하면, “Oh, you’re welcome. It was my pleasure.”처럼 상대방도 기분 좋은 반응을 할 수 있고, 그럼 서로의 기분이 좋아지는 ‘소셜’한 관계가 만들어집니다.
저는 이것이 행복이라고 생각합니다. 메타인지를 살펴보면, 결국 모니터링부터 컨트롤까지 제대로 이루어졌을 때 관계가 형성되고, 그것이 곧 행복으로 이어집니다.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쌓아 가는 것은 절대로 외롭거나 슬픈 방향으로 흘러가지 않고, 점점 더 행복해지는 쪽으로 나아간다고 생각합니다.
메타인지는 ‘혼자서 다 해내는 능력’이 아닙니다. 오히려 모르는 것을 인정하고, 다양한 사람들과 함께 문제를 풀어나가며, 새로운 것을 배워가는 태도입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우리는 사람들과 더 깊이 연결되고, 더욱 풍요로운 인생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Others > 이것 저것' 카테고리의 다른 글
노낭최미 老娘最美 (1) | 2025.03.24 |
---|---|
부활절 결정하는 법 (0) | 2025.03.24 |
풍경 (0) | 2025.03.22 |
현대 사회의 법치에 대한 희곡 한조각 (1) | 2025.03.08 |
목로주점 (3) | 2025.03.03 |
잠실 송파의 옛모습은 왜 사라졌나? 을축년 대홍수 (0) | 2025.02.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