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기업과 실리콘밸리 기업의 가장 큰 차이점은 업무의 배분 방식입니다.
실리콘밸리 기업은 애자일(Agile) 업무 프로세스 템플릿을 사용하여 오너(owner)가 굉장히 명확하게 관리됩니다. 그리고 제가 책임을 지는 범위도 명확하며, 이를 조직 차원에서 매주매주 투명하게 공유하니 일을 떠넘겨 놓고 방치할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한국은 어떠냐 하면, 과장해서 표현하자면 업무의 분배 시스템 자체가 인형에 눈 붙이는 알바처럼 분배됩니다.
저는 『실리콘밸리 프로세스의 힘』의 저자이자 국내 기업을 대상으로 실리콘밸리식 업무 시스템 설계를 컨설팅하고 있는 더바른컴퍼니 대표 신재은입니다.
제 커리어를 돌아보면, 이직의 계기는 항상 트렌드에 맞춰서 “지금 배워야 할 것은 무엇인가?”를 질문했던 데서 비롯되었습니다. 저는 영국에서 대학을 나왔는데, 2003년 당시 영국은 금융의 중심지이자 금융이 굉장히 트렌디하다고 느껴서 “나도 금융을 좀 배워봐야겠다”라는 생각에 모건스탠리에 입사했습니다. 일을 하다 보니 “내가 클라이언트가 되어 금융을 소비하는 바이사이드를 경험해보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사모펀드로 가서 바이사이드 경험을 쌓았죠.
그 뒤에는 나이가 어느 정도 들었을 때 전 세계적으로 핀테크 붐이 일었습니다. “핀테크를 배워봐야겠다”라고 마음먹고 안정적인 직장 생활을 접고 창업에 뛰어들었습니다. 핀테크 창업을 하다가 전 세계적으로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DX) 붐이 일어나는 것을 보고 “이것도 배워야 하는데 어디로 가야 하나” 고민하던 중, 현대카드에서 제안을 받았습니다. 현대카드가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을 아주 적극적으로 추진하던 시점이라, 그곳에서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뒤에는 실리콘밸리 테크 기업들이 급부상하기에 “저걸 한번 배워봐야겠다”라고 생각해서 아마존에 가서 일했습니다.
시대에 맞는 정보와 경험을 습득해야겠다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시대의 변화를 쫓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먼저, “저를 고용하는 기업 입장에서 왜 제가 매력적인가?”를 생각했습니다. 이력서에 그들이 원하는 인재상에 맞춰서 저의 경험을 스토리텔링하고, 면접 때도 마찬가지로 “이 일이 왜 저한테 주어져야 하는가”를 어필한 것이죠. 예를 들면, 제가 아마존에 입사할 당시 프로젝트 매니저(PM) 타이틀을 달고 일한 적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외국인인 데다 PM 경험이 없으니 아마존 입장에서는 저를 뽑을 이유가 없어 보입니다. 그런데 아마존의 잡 디스크립션을 보니 “진취적이고 문제 해결력이 뛰어나며, 능동적으로 일하는 사람”을 원했습니다. 생각해 보니 예전에 창업했을 때, 팀 멤버 리크루팅부터 사업 모델 개발, 투자 유치까지 모두 해본 경험이 있었습니다. 그 경험을 바탕으로 “아, 이 사람이 우리가 찾는 PM의 인재상에 부합한다”라는 확신을 주었다고 생각합니다.
영어 표현으로 “Blessing in disguise”라는 말처럼, 숨겨진 축복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금융업계 안에서는 비슷한 사람들만 모이는데, 막상 창업을 하면 온갖 사람들이 다 있습니다. 그 사람들을 한마음 한뜻으로 모아서 뭔가 추진한다는 것이 정말 힘들다는 걸 배우게 되었습니다. 그 창업 실패가 제 삶의 관점을 완전히 바꾸는, 일종의 트랜스포메이션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솔직히 현대카드에서 저는 ‘외국인 취급’을 많이 받아서인지 굉장히 관대하게 대해주셨습니다. 덕분에 즐겁게 일을 했습니다. 당시 제가 맡았던 일이 국내 카드사 최초의 해외 송금업 업무를 기획하고 추진하는 것이었는데, 신한은행도 제가 파트너로 데려오고, 영국의 핀테크 업체 ‘커런시 클라우드’와 독점 파트너십도 맺었습니다. 다만 처음 카드사가 이런 일을 하다 보니 기획재정부 승인이 잘 안 났습니다. 또 해외 핀테크 업체가 들어와서 함께 하는 방식이라, 한국 쪽에서는 더욱 모르는 부분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이건 기재부에 직접 가서 설명해야겠다”라고 생각해, 커런시 클라우드 영국 직원들을 한국으로 불러 세종시 기재부에 함께 가서 두 시간 동안 PT를 했습니다. “고객들에게 큰 혜택이 될 것이고, 송금 수수료를 낮출 수 있으며, 해외에선 이미 이렇게 하고 있다”라고 설명했습니다. 기재부에서는 긍정적으로 검토하겠다는 분위기였지만, 금융위원회 승인도 필요하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마침 임종용 금융위원장님께서 영국에 가신다는 기사를 보고, 저는 당시 상무님께 “저도 영국에 가서 이 파트너십에 대해 금융위원장님께 직접 어필을 하겠다”라고 말씀드렸습니다. 다행히 “그래, 가보라”는 허락을 받아, 영국에서 금융위원장님 앞에 가서 “영국 핀테크 업체와 이런 파트너십을 추진하고 있다”라고 적극적으로 설명했습니다. 그러고 한국에 돌아온 뒤 몇 주 지나니 승인이 떨어져서 업무를 실제로 추진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아마존에서 배운 고객 중심 문화
아마존에 처음 입사했을 때 가장 놀랐던 건, 다른 부서 동료가 와서 “네가 제안한 방안이 우리 고객을 위한 최선의 방법이야? 고객이 불편해하니 최대한 빨리 처리해 줬으면 좋겠어” 같은 식으로 ‘항상 고객을 전제로 두고’ 업무 요청을 한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실제로 ‘고객의 소리’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주기적으로 고객의 불편과 불만 사항을 접수하고, 해결 방향을 논의하고, 액션 아이템까지 도출합니다.
그리고 아마존에서는 평가 또한 ‘리더십 원칙(Leadership Principles)’에 기반해 피드백을 주고받습니다. 제1원칙이 ‘고객 중심(Customer Obsession)’이니, 어떤 인물을 평가할 때 그가 얼마나 고객 중심적으로 행동했는지 살펴봅니다. 모든 업무 시스템에 이 사상이 녹아 있으니 저조차도 모르게 고객 중심적인 표현을 하게 되더군요.
고객 중심 인재의 문제 해결 방식
어떤 문제가 생기면, 단순히 불편함을 ‘당장’ 줄이는 1차원적인 접근을 하기보다는, 그 불편이 생기는 근본 원인을 파괴해 완전히 해결하고 싶어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문제의 뿌리를 찾아서 해결하는 방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6페이지 문서 기반 회의: 어떻게 진행되는가?
6페이지 분량으로 내용을 정리한 문서를 미리 작성해 둔 뒤, 회의 중에 모든 참석자가 같은 시간을 할애해 그 문서를 읽습니다. 미리 읽어온 사람이 있고, 회의 직전에 대충 읽는 사람이 있으면 토론의 질이 달라지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회의실에 모여 모두가 6페이지 문서를 꼼꼼히 읽고 나서 토론을 시작합니다.
실무 차원에서 경험해 보니, 구두 브리핑보다 글로 정리하는 과정이 훨씬 더 객관적이고 비판적이며 논리적으로 사고하게 만듭니다. 또 문서를 통해 피드백을 주고받으니, 더 체계적으로 방안을 개선해 나갈 수 있습니다.
먼저 “이 문서를 읽고 전반적인 코멘트가 있는가”를 묻습니다. 그러고 나서 해당 부분에 대한 질문이나 모순적인 부분을 짚어가며 문서를 파헤칩니다. 실질적으로는 서로 비판적인 토론 문화가 형성되는 셈이죠. 그런데 이런 피드백을 개인이 아니라 ‘문서’에 대한 피드백으로 받아들일 수 있으려면 꽤나 성숙한 자존감이 필요합니다. 한국 직장인들 중에는 그런 비판을 개인에 대한 공격으로 받아들여 상처받는 경우도 있으니, 그런 부분을 미리 설명해 드립니다. “이건 나를 비판하는 게 아니라, 우리가 더 나은 의사결정을 내리기 위해 문서를 비판하는 것이다”라고 말이죠.
제가 국내 기업에 이 글쓰기 기반 업무 방식을 소개했을 때, 실무자들이 아주 좋아했습니다. “내 생각을 굉장히 투명하게 정리할 수 있다”는 피드백이 많았습니다. 또한 피드백 주는 방식도 중요합니다. “보고서 대충 써 왔네”라고 말하는 대신, “이 문장은 이해하기 어렵다. 구체적인 데이터를 보완해 달라” 같은 식으로 구체적으로 코멘트를 달도록 교육합니다.
문제를 미리 막는 시스템
업무 회의 방식이 있습니다. 핵심 취지는 “명확한 업무 목적을 설정하고, 그 목적 달성을 위한 실행 계획을 꼼꼼히 세우며, 주기적으로 그 실행 상황을 관리한다”는 것입니다. 목적 달성을 방해할 문제가 생기기 전에 사전 대응하는 거죠.
보통 기업에서는 문제가 터진 뒤에 경영진이나 팀 리더들이 그 문제를 수습하느라 시간을 보냅니다. 그러면 항상 모든 문제가 딜레이 되고, 리더들은 문제만 해결하다가 하루를 끝내게 됩니다. 하지만 주간 회의 때 결과만 보고하는 것이 아니라 “이런 문제가 생길 것 같고, 이 문제가 생기면 내 업무가 지연될 수 있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언제까지 누가 무엇을 해줘야 한다”라고 미리 얘기해 둡니다. 그 자리에서 해결안이 도출되고, 실제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선제적으로 방지할 수 있습니다. 이런 업무 관리 프로세스는 우리가 알고 있는 실리콘밸리 테크 기업들이 다 사용합니다. 아직 한국에서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한 번쯤 주목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렇게 문제를 미리 제거하려 하다 보면, 혹시 “자기가 하면 될 일을 남에게 떠넘기거나, 발생하지도 않을 문제를 부풀려 다른 부서에 과도하게 지원을 요청한다” 같은 일이 벌어질 수 있지 않을까요?
우선, 업무 관리 템플릿에는 ‘오너(Owner)’라는 필수 항목이 있습니다. “이 업무의 최종 책임자는 누구인가”가 명확히 기재됩니다. 결국 “이것은 내가 해결해야 하는 문제다”라는 것을 분명하게 의식하게 되니, 떠넘길 수가 없습니다. 또한 “이 태스크가 지연될 만한 리스크”를 미리 말하고 해결책도 제안합니다. “현재 팀 A에 있는 어떤 자원이 필요하니 일정 조율을 부탁드린다” 하는 식이죠. 이런 식으로 서로 조율하며 투명하게 공유하다 보면, 발생하지 않을 문제를 막연히 들고 와서 떠넘기는 일은 일어나기 어렵습니다.
한국 기업과 실리콘밸리 기업을 모두 경험해 보니, 업무 분배 시스템이 큰 차이를 만듭니다. 실리콘밸리 기업은 이러한 템플릿을 통해 오너십이 명확하고, 책임 소재도 분명합니다. 조직 차원에서 투명하게 관리하니, 누군가 일을 미루는 것이 불가능해집니다. 반면 한국은 과장해서 말하자면 인형 눈 붙이듯이 업무를 쪼개서 분배합니다. 업무 전체에 대한 오너십이나 책임감은 상대적으로 희미해집니다. 결국 업무 분배 시스템 자체가 바뀌어야 이런 문제가 개선될 것 같습니다.
직장 생활이 내 인생에서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
제가 20년 넘게 일하며 느낀 점을 공유해드리고 싶습니다. 직장 생활이 힘들다는 걸 저도 압니다. 그러나 “직장에 있는 이 시간이 나에게 어떤 의미인가”를 생각해보셨으면 합니다. 예를 들면, 직장에서의 시간을 ‘배움’의 의미로 쓰거나, 개인적인 ‘성장’의 의미로 삼거나, 혹은 “너무 힘들다” 싶으면 조금 여유로운 직장으로 옮겨서 쉬는 것도 좋다고 생각합니다. 즉, “직장 생활이 내 인생에서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라는 관점으로 접근하면 조금 더 주체적으로 직장 생활을 할 수 있다고 봅니다.
면접을 볼 때 수많은 면접관이 “우리 고객”이라는 표현을 쓰는지 한번 살펴보시면 좋습니다. 그 기업이 고객이라는 존재를 얼마나 중요하게 인식하는지를 엿볼 수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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