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는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고전 6:20)
고대 로마의 거리에는 노예, 해방 노예, 자유인이 뒤섞여 살았습니다. 하지만 사람들 사이의 서열을 결정한 것은 단순한 신분이라기보다 “누구에게 속해 있는가”였습니다.
바로 이 사회적 감각이 초기 기독교 복음의 핵심 언어—속량, 입양, 성만찬, 교회—를 더욱 선명하게 밝혀 줍니다.
1. 속량(소속을 바꾸는 은혜)
로마의 노예가 자유를 얻으려면 누군가 값(λύτρον)을 대신 지불해야 했습니다.
초대 교회는 이 익숙한 제도를 복음의 은유(메타포)로 삼았습니다. 그리스도의 피가 속량의 값이 되어, 죄의 노예였던 우리가 새 주인—하나님께 속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속량은 억압에서의 탈출이 아니라 _귀속의 전환_입니다.
속량은 영어로는 redemption인데 라틴어 redemptio에서 왔습니다. 그리스어 성경에서는λύτρωσις(lutrosis), ἀπολύτρωσις(apolutrosis) 등으로 번역됩니다. 로마 시대에 노예가 자유를 얻는 방법 중 하나가 ‘속량’이었습니다.
📜 고대의 속량 절차
노예의 ‘페쿨리움(peculium)’, 즉 개인적 자산을 축적하거나, 외부인이 속량 대가(금액)를 지불하여 그 노예를 자유인으로 만들 수 있었습니다. 노예가 자기 자신을 살 수는 없었기 때문에 종종 신전이나 제사장의 중개 하에 ‘의례적 속량’이 이루어졌고, 그때는 노예가 ‘신의 소유’가 됨으로써 자유를 얻었다고 여겨졌습니다. 즉, 속량은 노예가 자신의 힘으로는 결코 얻을 수 없는 자유를, 외부로부터의 대가 지불을 통해 선물처럼 받는 사건이었습니다.
로마의 속량 제도 | 기독교 복음의 속량 개념 |
노예가 외부인의 돈으로 자유를 얻음 | 죄의 종인 우리가 예수의 피로 자유함 |
자신은 값을 낼 수 없음 | 우리는 구원받을 자격도 힘도 없음 |
속량 후 신전의 소유 또는 해방인 | 속량 후 하나님의 백성, 자녀가 됨 |
정식 등록, 법적 신분 변화 | 영적 정체성의 변화, 새 피조물 |
속량은 단순히 억압 상태에서 벗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더 중요한 것은 ‘누구에게 속하게 되었는가’의 변화입니다.
“너는 값을 주고 사신 바 되었으니, 이제 더 이상 죄의 종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다.”
속량은 과거의 속박으로부터의 해방일 뿐 아니라, 새로운 주인을 얻고 새로운 정체성을 살아내는 시작입니다.
이는 단지 법적 상태의 변경이 아니라, 존재론적 전환이며, 모든 그리스도인의 신앙 고백의 핵심입니다.
2. 입양 (새아버지의 집으로)
신약 성경은 속량을 단순한 죄의 용서가 아닌, 하나님의 가족으로 입양되는 과정의 일부로 설명합니다.
📖 갈라디아서 4:5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을 속량 하시고 우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심이라.”
속량이 법적 신분 전환 (죄의 종 → 자유인)인 반면, 입양은 관계적・정서적 수용 (외인 → 아들/딸)입니다.
속량은 ‘자유’ 자체보다, 그 자유가 하나님 아버지의 품으로 인도되는 통로임을 보여줍니다. 고대 로마 사회에서도 해방 노예가 해방인(patron)의 집안과 특별한 후견 관계를 맺듯, 복음의 속량도 새로운 가족으로의 소속 전환을 동반합니다.
속량 된 노예는 종종 해방 후에도 전(前) 주인의 집안에 머물며 후견을 받았습니다.
바울은 이 현실을 넘어, 우리는 해방을 넘어 “아들의 명분”(갈 4:5)을 받았다고 선언합니다. 자유인 정도가 아니라, 상속자가 된 것입니다.
3. 성만찬(속량의 식탁)
고대 해방 의식에서는 신전 제사가 곧 자유의 증서가 되었습니다. 초기 교회는 떡과 포도주로 그리스도의 희생을 기념하며, 새 언약 공동체의 식탁을 열었습니다. 한 몸을 먹고 마심으로, 속량이 개인의 체험을 넘어 공동체의 현실이 됩니다.
성만찬은 '속량의 피로 맺어진 새로운 언약 공동체'의 식사입니다.
📖 마태복음 26:28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포도주는 속량의 대가(예수의 피)를 기념합니다.
떡은 공동체의 지체됨(몸의 나눔)을 상징합니다 (고전 10:16-17).
결국, 성만찬은 속량이 가져온 ‘개인 구원’이 공동체적 현실로 구체화된 자리입니다.
속량 받은 자들은 함께 먹고 마심으로 한 몸을 이루며, 더 이상 혼자가 아닌 구속된 자들의 연합체가 됩니다.
4. 교회 (속량 된 자들의 새로운 집)
로마의 해방 노예는 사회적으로는 애매한 위치였으나, 때로는 황제 가문에 속해 막강한 영향력을 누렸습니다.
마찬가지로, 세상 눈에는 미미해 보이는 교회가 만왕의 왕께 속한 거룩한 백성(벧전 2:9)으로 세워졌습니다.
교회란, 속량으로 모인 사람들이 하나님의 통치를 맛보는 가시적 공동체입니다.
속량은 개인적 체험에 머물지 않고, 가시적 공동체인 교회로 귀결됩니다. 교회는 속량 된 자들의 공동 거처, 곧 새로운 집(oikos)입니다.
📖 디도서 2:14
“그가 우리를 대신하여 자신을 주심은… 우리를 속량 하시고 선한 일에 열심하는 자기 백성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속량은 하나님의 소유된 백성으로 부름 받은 것입니다.
교회는 단순한 모임이 아니라, 속량 된 자들이 하나님의 통치 아래 모인 백성 공동체입니다 (벧전 2:9).
✨ 맺음말: 가장 복된 소속
속량은 죄에서 벗어나는 '출애굽'일 뿐 아니라, 하나님 나라 공동체로 들어가는 '도착'입니다.
이것은 단지 법적 무죄 판결이 아니라, 새로운 가족, 새로운 식탁, 새로운 정체성 속으로 초대되는 사건입니다.
“속량은 하나님께로 돌아온 자들이, 다시 함께 살기 시작하는 이야기의 시작이다.”
속량으로 시작된 여정은 입양으로 이어지고, 성만찬에서 맛보며, 교회 안에서 완성됩니다. 고대 로마가 던진 질문—“너는 누구의 사람인가?”—에 복음은 이렇게 답합니다.
“나는 그리스도의 것이요, 하나님의 가족입니다.”
이 고백이 오늘도 우리 삶을 자유케 하고, 사랑으로 묶어 줍니다.
속량(Redemption) | 죄와 사망의 종에서 해방 | 법적・존재론적 전환 |
입양(Adoption) | 하나님의 자녀로 받아들여짐 | 관계 회복, 상속자 됨 |
성만찬(Eucharist) | 속량을 공동체적으로 기념 | 신앙의 연합과 몸의 실제적 나눔 |
교회(Ecclesia) | 속량받은 자들의 삶의 터전 | 공동체적 정체성, 선한 사명 수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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