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론
기도란 무엇일까요? 많은 이들이 기도를 “하나님과의 대화” 정도로 쉽게 정의하곤 합니다. 물론 기도에는 하나님과 마음을 나누는 교제가 포함되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닙니다. 영국의 신학자 P.T. 포사이스(P. T. Forsyth)는 기도의 본질에 대해 깊은 통찰을 주며, “기도는 언어가 쓰일 수 있는 가장 높은 용도(Prayer is the highest use to which speech can be put.)”라고까지 강조했습니다. 이는 기도가 그만큼 중요하고도 심오한 행위임을 시사합니다. 이제 우리는 포사이스의 저서 『기도의 핵심(The Soul of Prayer)』을 중심으로, 참된 기도 생활을 갈망하는 신앙인들을 위해 "어떻게 기도해야 하는가"를 깊이 있게 묵상해 보려고 합니다.
우리는 종종 기도를 가벼운 마음으로 대하거나 감정에 치우친 체험으로 생각하지만, 진정한 기도는 우리의 전 인격이 하나님께 항복하는 영적 행위입니다. 또한 기도는 영적 전쟁과 같아서 때로는 하나님 앞에서 씨름하듯 간구해야 할 때도 있습니다. 결국 기도를 통해 변화되는 것은 하나님이 아니라 기도하는 우리 자신이며, 기도는 우리를 깨어 있게 하고 하나님의 뜻에 우리 자신을 맞추는 영적 훈련입니다. 이러한 기도의 본질을 네 가지 핵심으로 나누어 살펴보겠습니다.
전 인격의 항복과 영적 전쟁으로서의 기도
기도는 단순한 대화가 아닌, 우리의 온 존재가 하나님께 항복하는 행위입니다. 포사이스는 “기도를 피상적인 독백이나 하나님과의 가벼운 대화로 축소시킬 때, 기도의 현실성을 잃어버린다”라고 경고했습니다. 하나님과 친밀히 동행하며 대화하는 것은 소중하지만, 거기에만 머물러 기도를 “친근한 대화(mere conversation)” 수준으로 만들면, 기도 본래의 능력과 영적 긴장은 사라지고 맙니다. 진정한 기도는 하나님과 의지와 의지가 맞부딪히는 충돌과도 같은 것으로, 우리의 뜻과 하나님의 뜻 사이에 벌어지는 거룩한 씨름입니다. 결국 이 씨름에서 우리의 완전한 굴복을 통해 하나님의 뜻이 승리하도록 하는 것이 참된 기도의 목적입니다. 우리의 교만과 자기 고집을 꺾고 전 인격을 드려 항복할 때, 비로소 하나님과 깊이 만나게 됩니다.
Prayer is a weapon, a mighty weapon in a terrible conflict.
Our prayers are to be a continual, conscious, earnest effort of battle, the battle against whatever is not God’s will.
동시에, 기도는 영적 전쟁입니다. 포사이스는 기도를 가리켜 “무시무시한 영적 분투 속에서 쓰이는 강력한 무기”라고 말했습니다. 우리의 기도는 그저 나지막이 중얼거리는 소망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어긋나는 모든 것과 맞서 싸우는 “지속적이고 의식적이며 간절한 노력의 전투”입니다. 이는 에베소서 6장에 묘사된 영적 전쟁과도 맥을 같이 합니다. 성경은 우리의 씨름이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라고 가르치며(엡 6:12), 이어서 “모든 기도와 간구로 무시로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라”라고 권면합니다(엡 6:18). 예수님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보여주신 기도 역시, 죄와 두려움과 싸워 이기시는 영적 전투의 장면이었습니다. 땀방울이 피가 되도록 간절히 기도하시며 (눅 22:44), 끝내 “내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라고 고백하신 예수님의 모습은, 기도가 곧 치열한 영적 싸움임을 극명하게 보여줍니다. 우리도 기도할 때 이렇게 마음과 영혼을 다해 하나님 앞에 항복하며, 동시에 죄와 자기 의지와 영적으로 싸우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거룩한 전쟁을 기뻐하시며, 이 과정을 통해 우리를 하늘의 경지로 들어 올리시고 승리하게 하십니다. 결국 기도의 자리에서의 항복과 분투가 우리 영혼을 정결케 하고 하나님의 능력을 붙드는 길이 됩니다.
감정이 아닌 결단으로 드리는 진정한 기도
흔히 사람들은 기도를 특별한 분위기나 감정적인 열정과 연관 짓기도 합니다. 물론 뜨거운 마음으로 드리는 기도에는 힘이 있습니다. 그러나 진정한 기도는 일시적인 감정이나 분위기에 의존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자기 자신을 부인하고 하나님의 뜻에 굴복하기로 마음먹는 결단에서 비롯됩니다. 포사이스는 “기도는 감상이나 기분의 문제가 아니라, 무엇보다도 의지의 행위”라고 강조합니다. 다시 말해, 기도는 우리의 욕망이나 감정에 따라 하나님께 매달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붙잡기 위해 우리 의지를 드리는 능동적인 행위인 것입니다.
예수님의 겟세마네 기도를 떠올려 봅시다. 인간적으로 볼 때 예수님은 십자가의 고난을 피하고 싶으셨지만, 기도 가운데 자신의 뜻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구원 계획에 순종하기로 결단하셨습니다. “할만하시거든 이 잔을 지나가게 하옵소서”라고 간구하실 때 예수님의 마음에는 심한 고민과 슬픔이 있었습니다(마 26:38-39). 그러나 그 기도의 절정에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라고 하신 것은, 감정과 두려움을 뛰어넘어 하나님 뜻에 자신을 굴복시키기로 선택한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의 기도도 감정에 휘둘리기보다, 믿음으로 드리는 결단의 기도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이 내 생각과 다를 때조차도 그분의 지혜와 사랑을 신뢰하며 “주님의 뜻이라면 제가 기꺼이 따르겠습니다”라는 자세로 나아가는 것, 그것이 참된 기도의 태도입니다. 이런 기도는 자기 부인의 아픔이 따르지만, 그 속에서 우리의 신앙이 성숙해지고 하나님의 뜻이 우리의 삶에 이루어지는 열매를 맺게 됩니다.
포사이스는 지나치게 수동적이고 숙명론적인 태도로 기도하는 것을 경계했습니다. 어떤 이들은 기도를 처음부터 "하나님의 뜻이라면 알아서 해주십시오"라는 식의 체념으로 시작하여, 적극적인 간구를 포기해버리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는 “너무 이르게 ‘주의 뜻대로 이루어지이다’라고 말하는 것은 종종 나약함이나 태만을 의미한다”며, 기도에는 간구와 씨름의 요소가 필요하다고 역설합니다. 우리의 목적지는 결국 하나님의 뜻에 순복 하는 것이지만, 그 과정에서 진실한 소원과 고민을 하나님께 아뢰고 매달리는 간절함이 빠져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감정적인 열기에만 기대어 쉽게 단념하거나, 반대로 하나님의 주권을 오해하여 아무 열정 없이 체념하듯 기도해서는 안 됩니다. 진정한 기도는 뜨거운 마음보다 뜨거운 결단으로 드리는 법입니다. 내 뜻을 포기하고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선택하겠다는 각오로 드리는 기도는,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신앙을 한층 성숙하게 하며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는 통로가 됩니다.
조용한 기도든 울부짖는 기도든 – 깨어 있고 간절한 마음의 기도
기도에는 다양한 모습이 있습니다. 때로는 골방에서 조용히 속삭이는 기도가 있고, 때로는 한나나 다윗처럼 눈물로 울부짖는 기도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기도의 외형이 아니라, 그 기도에 담긴 우리의 마음의 태도입니다. 마음이 깨어 있고 간절한지가 핵심이지, 소리의 크기나 자세가 본질은 아니라는 뜻입니다. 예레미야 애가 2장 19절은 “밤 초시간에 일어나 부르짖을지어다… 주의 앞에서 마음을 쏟아놓을지어다”라고 권면합니다. 여기서 ‘부르짖음’과 ‘마음을 쏟아 놓음’은 곧 간절함과 진심을 의미합니다. 조용히 기도할 때에도 혼이 깨어 하나님께 집중되어 있다면, 그 기도는 하늘 보좌를 움직이는 힘을 발휘합니다. 반대로 아무리 큰소리로 통성으로 기도한다 해도, 마음이 산만하고 하나님께 향하지 않는다면 그 소리는 공허하게 울릴 뿐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시험에 들지 않도록 깨어 있어 기도하라”라고 반복하여 당부하셨습니다(마 26:41). 겟세마네 동산에서조차 졸고 있던 제자들에게, 주님은 한 시간도 깨어 있을 수 없느냐 책망하셨지요(마 26:40). 이것은 기도할 때 정신이 깨어 있음의 중요성을 보여줍니다. 영적 나태함과 싸우며 우리의 심령이 하나님 앞에 각성되어 있도록 애써야 합니다. 포사이스도 “우리의 기도가 간절함을 잃어버리면, 형식적인 독백이나 상투적인 대화로 전락하고 만다”라고 지적했습니다. “기도의 끈질김(importunity)을 상실하고 기도를 독백이나 건성인 대화로 만들 때, 하나님의 응답을 붙잡으려는 실제적 싸움을 잃어버리게 된다”라고 한 그의 통찰은 우리의 마음을 날카롭게 일깨웁니다. 결국 잠든 영혼을 깨워 하나님께 부르짖는 일이야말로 참된 기도의 모습입니다.
한편, 간절함은 기도의 생명력입니다. 야고보서 5장 16절은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크다”라고 했는데, 여기서 ‘간구’로 번역된 말에는 간절하고 지속적인 기도라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예수님도 누가복음 18장에서 과부와 재판관의 비유를 통해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 것을 가르치셨습니다. 눈물로 부르짖든 고요히 속삭이든, 하나님을 향한 갈망과 믿음이 우리의 심령에 활활 타오르고 있는가가 중요합니다. 때로는 말조차 나오지 않아 탄식할 때도 있지만, 그 깊은 탄식을 성령께서 하나님께 상달되게 하십니다(롬 8:26 참조). 중요한 것은 우리의 심령이 하나님을 간절히 찾고 있느냐입니다. 우리의 몸은 무릎을 꿇고 있을지라도 마음이 딴 곳을 향해 있다면 그 기도는 힘을 잃습니다. 반대로 몸은 지쳐 누워 있어도 마음이 주님을 부르고 의지하면, 하나님은 그 중심을 귀히 여기십니다. 결국 “깨어 있는 마음, 간절한 심령”이야말로 하나님께 상달되는 기도의 핵심 요소입니다.
기도는 하나님을 변화시키는 것이 아닌 우리를 변화시키는 영적 훈련
많은 신자들이 때로 기도를 통해 하나님을 움직이고 세상을 바꾸고자 하는 소원을 품습니다. 물론 중보기도와 간구를 통해 하나님의 역사하심이 드러나고 현실의 변화가 일어나기도 합니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진리는, 기도의 궁극적인 목적이 하나님을 우리의 뜻대로 바꾸는 데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전능하시고 불변하시며, 언제나 가장 선한 뜻을 품고 계십니다. 진정한 기도는 그 하나님을 “변경”시키려는 시도가 아니라, 기도하는 우리의 마음과 상황을 하나님의 뜻에 맞게 변화시키는 과정입니다. 덴마크의 철학자 쇠렌 키르케고르는 이 점을 통찰하여 “기도의 기능은 하나님을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기도하는 자의 본성을 변화시키는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께 간구하는 가운데, 사실은 우리의 시야와 성품이 변화되어 하나님의 관점에서 세상을 보고, 하나님의 뜻에 우리를 조율하게 된다는 뜻입니다.
포사이스 역시 기도를 통해 우리 자신이 변혁된다고 강조합니다. 그는 만일 기도가 그저 아름다운 말로 꾸며진 종교적 수사(修辭)에 그친다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고 일침을 놓았습니다. 하나님과 씨름하는 간절한 기도를 잃어버린 채 멋진 말만 늘어놓으면, “아무리 아름다운 기도일지라도 소용이 없다… 결국 신앙의 현실을 잃어버리게 된다”라고 경고한 바 있습니다. 반면에 진실한 기도 생활이 지속될 때 우리의 인격은 깨어나고 변화됩니다. 포사이츠는 특히 기도가 인격을 빚어내는 “성품의 양식(food of character)”이요 우리의 의지를 새롭게 하는 능력이라고 보았습니다. 하나님과 씨름하는 기도를 통해 우리의 나약한 의지는 단련되고 하나님의 선하신 뜻에 순종하고자 하는 새로운 결의로 거듭납니다. 기도는 마치 영혼의 근육을 키우는 영적 체육과도 같습니다. 기도의 훈련을 거듭할수록 우리의 영혼은 강건해지고, 이전에 포기하거나 두려워하던 일들도 담대히 감당할 힘이 생겨납니다.
기도가 변화시키는 대상은 다름 아닌 나 자신임을 깨달을 때, 우리는 비로소 하나님께 더욱 겸손히 나아가게 됩니다. 기도하면서도 내 고집을 내려놓지 못하면, 기도가 끝난 뒤에도 상황은 달라지지 않고 마음의 평안도 얻지 못합니다. 그러나 기도의 자리에서 눈물로 하나님께 매달리다 보면, 어느새 내 마음이 하나님의 평강으로 변화되어 있는 것을 발견할 때가 많습니다. 때로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간구와는 다른 방식으로 응답하시지만, 기도를 통해 우리의 욕심과 집착이 내려지고 하나님의 지혜와 섭리에 대한 신뢰가 깊어지는 것입니다. 결국 기도의 가장 큰 응답은 기도하는 사람이 변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에 순복 하는 법을 배우고, 하나님의 선하심을 닮아가며, 하나님의 시간표에 우리 삶을 맡기는 법을 배우는 것 – 이 모든 변화가 기도를 통해 이루어지는 귀한 열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도를 통해 무엇을 얻을까에 급급하기보다, 기도 자체가 주는 변화와 성숙을 기뻐해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의 기도는 더 이상 일방적인 요구나 투정이 아니라, 하나님과 동행하며 우리 자신이 새로워지는 거룩한 훈련의 시간이 될 것입니다.
결론
기도는 신앙생활의 호흡이자, 영혼의 호소입니다. 우리는 포사이스의 통찰을 통해 기도가 단순한 종교행위나 감정적 경험이 아님을 배웠습니다. 기도는 전 인격을 동원한 항복이며 동시에 영적 전투이고, 감정이 아니라 믿음의 결단에서 나오는 행동임을 깨달았습니다. 또한 기도의 형태가 어떠하든지 깨어 있는 간절한 마음이 중요하며, 기도를 통해 변화되는 것은 하나님이 아니라 우리 자신임을 확인했습니다. 이러한 깨달음은 우리로 하여금 지금의 기도 생활을 돌아보게 합니다. 혹시 형식적인 기도나 나 자신만을 위한 기도에 머물러 있었다면, 이제는 기도의 무릎에서 하나님 앞에 온전히 항복하고 씨름하는 자리로 나아가야 할 때입니다.
기도의 모범이신 예수님은 언제나 간절함과 순종으로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대로, 우리도 삶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구하며 “하나님, 제 뜻보다 주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원합니다”라고 기도해야겠습니다. 때로는 그 과정이 영적 전쟁처럼 느껴질 수 있습니다. 내 욕심과 하나님의 뜻이 충돌할 때, 기도는 고통스러운 씨름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바로 그러한 기도를 통해 우리의 옛 자아는 깨어지고 새 사람으로 빚어지며, 하나님과 더 깊은 사귐 가운데 들어가게 됩니다.
이제 우리의 기도 생활을 새롭게 다잡을 때입니다. 존귀하신 하나님 앞에 겸손히 엎드려 전심으로 기도하는 삶을 결단합시다. 포기하지 않고 끈질기게 매달리되, 결국엔 “주님 뜻대로” 순종하는 기도의 자리로 나아갑시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기도를 통해 우리 안에서 역사하시고, 우리를 변화시켜 주님의 선하신 계획에 동참시키실 것입니다. 기도에 헌신하는 모든 이들에게 하나님께서 새 힘과 은혜를 주시기를 바랍니다. 기도의 사람이 됩시다. 오늘도 무릎으로 하나님과 씨름하며, 그분의 임재 안에서 참된 평안과 승리를 누리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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