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자: 주경훈 목사님 @2025.09.21 오륜교회 주일예배 설교
성경 본문: 창세기 22:6~14
우리는 지난 9개월 동안 "너는 복이 될지라"라는 주제 말씀으로 아브라함의 인생을 함께 살펴보았습니다. 오늘은 그 아브라함 설교의 마지막 시간이 됩니다. 오늘 사건 이후로 사라와 아브라함은 그 사명을 다하게 됩니다. 그리고 오늘 사건은 아브라함의 인생 가운데 마지막 시험이자 최고의 시험을 받게 되는 장면입니다.
Ice-breaking
옛날에 범선을 타고 항해하던 시절에 선원이 되기를 원한다면 꼭 받는 첫 번째 훈련이 있었습니다. 그 훈련은 무엇이냐 하면, 그 배의 가장 높은 곳인 돛대 위에 올라가서 망을 보는 것입니다. 요즘도 이 훈련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높은 돛대 위에 올라가서 망을 보게 되면 얼마나 정신이 어지럽겠습니까? 거친 바람이 불고 파도까지 치기 시작하면 아마 현기증 뿐만 아니라 멀미도 나고 굉장히 혼란스러울 것입니다.
이때 많은 신참들이 비명을 지른다고 합니다. 고함을 치면서 살려달라고 외치는 것입니다. 이때 밑에 있던 고참들이 이처럼 격려합니다.
바다를 보지 말고 하늘을 보라
바다를 보지 말고 하늘을 보라. 하늘을 본다면 그 평온한 하늘만큼, 아무리 파도가 치더라도 아무리 배가 흔들려도 그 평온한 하늘을 보면 넉넉히 그 바다를 이겨낼 수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망망대해 거친 바다를 통과하기 위해서 바라보는 훈련이 중요합니다. 같은 바다를 항해한다 할지라도 어디를 바라보느냐에 따라서 그 바다를 감당하는 사람과 감당하지 못하는 사람으로 나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인생의 항해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인생이라는 항해를 할 때 수없이 불어오는 바람과 파도와 여러 가지 많은 어려움들이 있을 것입니다. 이때 우리가 무엇을 바라보느냐가 매우 중요합니다.
믿음 훈련은 '바라봄 훈련'
세상에서는 낙천적인 사람이 부정적(negative)인 사람보다 성공할 가능성이 높다고 합니다. 그 마음이 낙천적이어서 인생을 긍정적으로 해석하며 적극적으로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살면서 느끼는 것인데, 낙천적(cheerful)인 것보다 낙관적(optimistic)인 게 더 중요합니다. 낙천성은 성격이고 낙천적인 것은 태도입니다. 비록 태어나기는 낙천적이지 않지만 그가 인생을 바라보는 관점이 낙관적이라면 그의 어떠함과 상관없이 인생을 긍정적으로 대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런데 낙관적인 사람보다 더 강한 사람은 하나님만 바라보는 믿음(faithful)의 사람입니다. 그는 선천적으로 낙천적이지도 않고 관점 자체가 낙관적이지도 않은데 나와 함께하시는 그 하나님, 그 하나님을 바라보며 빛 가운데로 걸어가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가나안 땅을 정탐했던 12명의 사람이 있었는데, 그들이 큰 성, 여리고성과 아낙 자손을 보게 되었을 때 10명이 한 평가는 "우리는 메뚜기다."이었지만, 하나님의 관점으로 그 성을 바라보았던 두 명은 "그들은 우리의 밥이다"라고 말을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블레셋 앞에서 벌벌 떨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관점으로 블레셋, 특별히 골리앗을 바라보았던 다윗은 돌멩이를 들고 나아가 만군의 여호와 이름으로 그를 쓰러뜨립니다. 베드로가 오직 주님만 바라볼 때는 풍랑 위를 걸을 수 있었지만 파도를 볼 때는 그 풍랑 위에서 빠져들기 시작합니다.
문제는 환경이 아닙니다. 무엇을 바라보느냐가 중요합니다. 믿음 훈련은 결국 바라봄 훈련입니다. 우리가 무엇을 바라볼 것이냐는 것이 믿음 훈련의 핵심이 됩니다. 아브라함의 인생 전체가 바라보는 것에 대한 훈련이었어요. 그리고 오늘 본문의 말씀은 바라봄으로 가득 차 있는 본문의 말씀이 됩니다. 오늘 우리가 본문의 말씀을 중심으로 하여서 무엇을 바라보며 살아야 할 것인가, 그 부분을 우리가 세 가지로 정리하려 합니다.
1. 하나님이 준비하실 것을 바라보라
아브라함은 이제 그의 인생의 마지막 시험이 되는 모리아 산으로 올라가고 있습니다. 그가 지금까지 훈련받은 것은 이때를 위함이었어요.
(창세기 22:6) 아브라함이 이에 번제 나무를 가져다가 그의 아들 이삭에게 지우고 자기는 불과 칼을 손에 들고 두 사람이 동행하더니
이삭이 땔감을 지고 산을 올라갑니다. 번제를 드리는 땔감은, 정말 많은 땔감이 필요합니다. 왜냐하면 그 번제물 전체를 불태워 올려야 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 많은 땔감을 짊어지고 이삭은 올라가는데 그 땔감이 자기를 태울 용도라고는 상상도 못 했을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손에 불과 칼을 들고 올라갑니다. 그 칼은 이삭을 죽일 칼이고 그 불은 이삭을 태울 불이 되는 것이죠. 이렇게 두 부자는 각자 감당할 만한 것을 가지고 지금 모리아 산으로 올라가는 것입니다.
산을 오르는 동안에 이삭은 그동안 너무 궁금했던 것 한 가지를 질문합니다.
(창세기 22:7) 이삭이 그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말하여 이르되 내 아버지여 하니 그가 이르되 내 아들아 내가 여기 있노라
이삭이 이르되 불과 나무는 있거니와 번제할 어린 양은 어디 있나이까
이삭이 아버지를 불러요. "아버지" 이렇게 부르는 것이 아니라 "내 아버지여"라고 부릅니다. 아버지를 향한 애정의 마음을 담은 겁니다. 저에게 두 딸이 있는데 저를 부를 때 "아빠"라고 부르는 것이 아니라 "나의 아빠"라고 부르면 완전히 다른 느낌이잖아요? 애정을 담아서 아버지를 부른 것입니다. "나의 아버지." 아브라함 역시 말을 합니다. "아들아" 이것이 아니라 "내 아들아." 그러니 두 사람의 관계가 정말 좋았다는 것을 우리는 알 수가 있을 것입니다.
그 이삭이 너무 궁금했던 한 가지를 질문합니다. 너무 궁금했지만 3일 길을 오는 동안에 분위기가 너무 안 좋아서 묻지 못했던 그 한 가지를 질문합니다. "번제할 어린 양은 어디 있습니까?"
이삭은 번제 드리는 법을 알고 있었어요. 번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나무가 아닙니다. 칼이 아니고 불이 아닙니다. 제물이 가장 중요한데 다른 것은 다 있는데 제물이 없으니 "번제할 어린 양은 어디 있습니까?"라고 질문해요. 이 질문을 받는 동안에 아브라함 마음이 얼마나 놀랐을까요?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듯한 느낌을 받았을 것입니다. 이렇게 말할 수는 없잖아요. "바로 너다."
이 질문만은 하지 않기를 원했는데 지금 이 질문을 하는 것입니다. 그 질문 앞에 아브라함은 숨을 크게 한번 들이마신 다음에 다음처럼 말합니다.
(창세기 22:8) 아브라함이 이르되 내 아들아 번제할 어린 양은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시리라 하고 두 사람이 함께 나아가서
여러분, 지금 이삭의 질문에 아브라함은 놀라운 믿음의 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뭐라고 말하고 있냐면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시리라." 하나님이 친히 준비하시리라. 아브라함은 이미 알고 있었어요. 제물은 무엇이냐면 이삭입니다. 이삭을 번제로 드려야 됩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지금 이 고백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의 뜻대로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산에 오르고 있지만 하나님이 친히 준비하실 것이다. 나는 잘 모르지만 하나님이 준비하실 것이다." 믿음의 고백을 지금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문장, "하나님이 친히 준비하실 것이다" 이 문장을 원어로 보면 **엘로힘 이레 (Elohim yir'eh)** 입니다. 그 유명한 **여호와 이레**가 처음으로 등장하는 본문이 바로 이 본문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아브라함은 지금 어떻게 이 마지막 시험의 산을 오르고 있습니까? 그는 여호와 이레, 하나님이 준비하신다는 그분의 이름을 붙잡고 그 마지막 산 위로 지금 올라가고 있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명령이 이해가 되지 않았어요. 그런데 순종합니다. 이해보다 순종을 택한 것입니다. 그리고 믿음의 고백을 내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친히 준비하시리라. 나는 잘 모르지만 하나님이 준비하실 것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신앙생활이란 결국 여호와 이레, 하나님이 준비하십니다. 이 믿음의 고백을 붙잡고 날마다 하루하루를 믿음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에 명확한 답이라는 것은 없습니다. 이 사회가 정답 사회를 외치고 있지만 이 땅에 정답이라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여러 가지 많은 문제와 시험과 어려움이 우리 인생 가운데 찾아옵니다. 그때마다 우리는 그 모든 문제를 감당할 만한 능력이 없어요. 자원도 없어요. 도울 이도 없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아가서 붙잡는 믿음은 무엇이냐면 여호와 이레, 하나님이 준비하십니다. 나는 모르지만 하나님이 준비하고 계십니다. 이 믿음을 붙잡고 날마다 일상을 믿음으로 살아가는 오륜의 성도 되기를 축복합니다.
2. 여호와 이레의 하나님을 바라보라
두 번째는 이것입니다. 여호와 이레의 하나님을 바라보라.
첫 번째 바라봄이 하나님이 준비하실 것들을 바라보는 것이라면 두 번째 바라봄은 하나님 그분 자체를 바라보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에게 말을 했습니다. "하나님이 친히 준비하시리라." 그 믿음을 가지고 산에 올랐어요. 나는 잘 모르지만 하나님이 이와 같은 제사를 명하실 리 없다. 그러니 반드시 뭔가가 있을 것이다, 하는 마음 가지고 올라갔는데 아무것도 없는 거예요. 그 순간에 아브라함은 분명히 하나님의 뜻을 깨달았어요. 이삭을 드리기를 진짜 원하시는구나. 그 순간에 아브라함은 칼을 번쩍 들기 시작합니다.
그는 이삭까지 오기 전까지 3일 동안 수도 없이 속으로 이 모습을 재현했을 것입니다. 내가 산에 올라가면 이 아들을 어떻게 잡을 수 있을까? 너무 두렵지만 해야 할 일이기 때문에 마음속으로, 생각 속으로 여러 번 수백 번 그 장면을 그렸을 거예요. 그리고 또 지우고 그리고 또 지우고를 반복하고 결단 내린 그것을 지금 단호하게 시행하는 거예요.
이 장면은 여러 많은 유명한 작가들의 상상력을 자극했어요. 특별히 렘브란트라고 하는 작가가 오늘 본문의 장면을 그림으로 그렸는데 그 그림을 한번 보도록 하겠습니다.
[렘브란트의 '이삭의 희생' 그림]
*작품 정보: 이삭의 희생 (The Sacrifice of Isaac), 렘브란트 (Rembrandt), 1635년, 예르미타시 미술관 (상트페테르부르크) 소장
이 그림을 보시면 아브라함이 칼을 번쩍 들고 있고요, 그의 손으로 이삭의 눈 전체를 가리고 얼굴을 뒤로 젖히고 있습니다. 칼로 찌르려고 하는데 천사가 나타나서 그의 손을 붙잡습니다. 이 그림에 대해서 서울대 종교학과 배철현 교수님은 다음과 같은 해설을 해놓으셨어요.
*첫째, 천사의 위로 치켜든 왼손. 그 왼손은 마치 "스톱! 멈춰라, 죽이지 마!"라고 말하는 하나님의 사인처럼 보인다.
*둘째, 천사의 오른손은 아브라함의 칼 든 손을 붙잡고 있는데 그 손을 가만히 보십시오. 힘이 들어가 있지 않습니다. 즉, 하나님의 권능은 살짝만 닿기만 하더라도 인간의 모든 힘을 빼게 만든다.
*셋째, 그의 칼을 보면 그 칼의 방향이 이삭을 향하고 있음을 알 수가 있습니다. 그러니 아브라함은 이삭을 정말 죽이려고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 칼날을 보면 뭉툭하다. 과연 이 칼을 가지고 그 아이를 죽일 수 있었을까? 라고 질문해요.
*또한, 천사의 얼굴을 보면 아브라함은 천사를 보고 있지만 천사는 이삭을 보고 있습니다. 그러니 이 사건 가운데 천사가 가장 집중하는 인물은 이삭이라는 말입니다.
*아브라함은 자신의 손으로 이삭의 눈, 얼굴 전체를 가리고 있어요. "내 아버지여"라고 말했던 그 아버지가 나를 죽이려고 했던 그 눈빛을 보지 못하게 하기 위하여 그의 눈을 가리고 칼로 찌르려고 했다는 것입니다.
정말 이 그림 전체가 오늘 본문의 현장을 잘 보여주는 것만 같습니다. 아브라함은 손을 번쩍 들었어요. 제정신이겠습니까? 이제 곧 아들을 찢어야 됩니다. 제정신이 아닐 것입니다. 칼을 번쩍 들었어요. 그 순간에 칼을 내려 찢으려고 하는 그 순간에 하나님이 당황하셨습니다. 너무나 급하셔서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그의 이름을 두 번 부르십니다. 11절 말씀 읽어보겠습니다.
(창세기 22:11) 여호와의 사자가 하늘에서부터 그를 불러 이르시되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하시는지라 아브라함이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매
하나님이 놀라셨습니다. 아브라함이 칼을 들었어요. 찌르려는 그 순간에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우리가 영화에서 많이 보았듯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이렇게 부르시면 이삭은 죽었습니다. 지금 그런 상황 아닙니다. 하나님 급하셨어요.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의 믿음은 하나님으로 하여금 당황하게 만드는 믿음이었어요. 그의 순종은 하나님이 손을 붙잡고 말리셔야만 멈출 수 있는 단단한 순종이었다는 것입니다. 드디어 하나님이 보기를 원하시는 믿음의 사람의 모습이 나온 것입니다. 이와 같은 믿음의 사람 만들기 위하여 그를 지금까지 훈련하셨는데 아브라함이 하나님이 기대하셨던, 하나님이 보셨던 믿음의 사람으로 지금 모리아 산 정상 가운데 서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믿음의 사람 되기를 축복합니다. 아멘. 순종의 사람 되기를 축복합니다. 아멘. 이때 사자가 다음처럼 말을 합니다. 우리 12절 말씀 읽어보겠습니다.
(창세기 22:12) 사자가 이르시되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그에게 아무 일도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까지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 시험받지 않았던 그의 믿음이 시험을 통과하는 놀라운 순간입니다. 학교에서의 시험은 알고 있는가 모르는가를 시험합니다. 알면은 좋은 점수 받습니다. 하지만 믿음의 시험은요, 아는 것이 중요하지 않습니다. 믿는 바 그 한 가지를 행할 수 있는 그 능력, 그 순종, 그것을 보시는 것입니다.
그러니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많이 알고 있는 것을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알고 있는 그 한 가지 위에 우리의 인생을 얹을 수 있는 믿음의 사람, 순종의 사람 되기를 축복합니다. 아브라함이 안도되었어요. 그리고 눈이 열리기 시작했습니다. 주변을 살펴봅니다. 살펴보았더니만 수풀 가운데 뿔이 걸려 있는 숫양 한 마리를 보게 되었어요. 13절 말씀, 우리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창세기 22:13) 아브라함이 눈을 들어 살펴본즉 한 숫양이 뒤에 있는데 뿔이 수풀에 걸려 있는지라 아브라함이 가서 그 숫양을 가져다가 아들을 대신하여 번제로 드렸더라
여러분, 눈을 들어 살펴 보았더니 또 '보다'라는 단어가 등장했죠? 한 수풀에 뿔이 걸려 있는 숫양 한 마리를 발견하게 된 거예요. 그 숫양을 가져다가 이삭을 대신하여 번제로 하나님께 올려 드립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질문은 이것입니다. 그 숫양은 언제부터 거기 있었던 것입니까? 그 숫양은 언제부터 거기서 준비하고 있었던 것입니까?
말씀을 묵상하는 가운데 한 가지 그림이 떠올려졌어요. 모리아 산으로 올라갑니다. 아브라함이 이 편에서 올라갑니다. 이삭과 함께 올라갑니다. 올라가는 그 길 동안에 하나님이 보시고, 여호와 이레. 하나님이 준비하십니다. 산의 반대편에서 숫양 한 마리가 같은 속도로 올라오고 있는 거예요. 여호와 이레의 하나님, 아브라함을 보신 그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위해서 준비될 것을 준비하시고 산 저편에서 몰고 가신 것입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행하시는 일에 놀라운 비밀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무엇이냐면 구원의 역사는 우리가 보지 못하는 반대편 능선에서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반대편을 볼 수가 없어요. 하지만 그곳에 여호와 이레의 하나님이 보시고 준비하신 숫양이 있다는 말입니다.
그러니 성도 여러분, 기억하셨으면 좋겠어요.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하여서 하나님이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은 제한적이에요. 보지 못하는 그곳에서 우리가 순종의 걸음을 내디딜 때 함께 딸려 오는 하나님이 준비하신 숫양이 있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그 숫양을 발견할 수 있는 장소는요, 정상입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신 그곳, 우리가 올라가야 할 그곳, 힘들지만 통과해야 할 그곳, 그곳에 올라갔을 때 우리를 위해서 준비하신 하나님의 예비된, 쌓아 두신, 준비하신 은혜를 보게 되는 줄 믿습니다.
그때 아브라함은 그 산의 이름을 여호와 이레라고 짓습니다. 14절 말씀 읽어보겠습니다.
(창세기 22:14) 아브라함이 그 땅 이름을 여호와 이레라 하였으므로 오늘날까지 사람들이 이르기를 여호와의 산에서 준비되리라 하더라.
아멘. 그 산의 이름을 아예 여호와 이레라고 지었어요. 여호와 이레 이 말은 하나님이 보신다라는 의미라고 말씀드렸어요. 아브라함이 산 중턱에서 이삭에게 말했습니다. "하나님이 친히 준비하실 것이다." 그것이 무엇인지 잘 모르지만 아브라함은 그와 같은 고백으로 선포하며 산을 올라갔어요. 그 선포로 올라갔더니 진짜 여호와 이레의 하나님이 준비하실 숫양을 보게 된 것입니다. 여호와 이레를 선포하고 그 산의 정상에 오르자 여호와 이레의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호와 이레의 하나님 그 이름이 여러분의 이름 되기를 축복합니다. 여호와 이레는 하나님이 보신다, 하나님이 준비하신다. 또 하나는 공급하신 하나님이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그래서 영어 성경으로 보면 여호와 이레를 갖다가 공급하신 하나님이라고 번역했어요.
그러니 보시는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것이고요, 그 준비된 것들이 공급받는 것입니다. 전부 다 같은 내용인데 다르게 지금 번역을 쓰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여호와 이레 보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보셨어요.
"내 아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번제로 바치라"라고 말씀하셨을 때 얼마나 괴로웠는지 괴로워하는 아브라함을 보셨습니다. 그 아들과 함께 일찍 길을 떠나는데 아내에게 차마 말을 하지 못하고 떠나는 아브라함의 그 괴로운 심정을 보셨어요. 모리아 산 밑에서 종들이 자신을 말릴까 봐. 그 종들을 산 밑에 내려두고 혼자 아이와 함께 올라가는 그 모습, 그 괴로워하는 모습을 하나님께서 보셨습니다. 아들이 "번제할 어린 양은 어디 있습니까?"라고 질문했을 때 하나님이 친히 준비하실 것이다. 여호와 이레를 외쳤을 때 그 모습을 보셨어요. 산 위에 올라왔더니 아무것도 없어서 절망했지만 순종하는 마음으로 칼을 들어 아들을 찢으려고 하는 그 순간, 그 모습을 하나님께서 보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를 보고 계세요. 우리가 얼마나 많은 시험과 어려움과 아픔으로 인하여 밤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는지, 얼마나 많은 삶의 고통으로 인하여 눈물을 흘리고 있는지, 이 문제에 대한 해답을 얻기를 원하지만 하나님의 말씀, 그 기도가 멀게만 느껴져 하나님께로 나오는 이 자리, 이 예배의 공간에 올라오는 그 마음도 얼마나 괴로워하고 있는지 하나님은 그 모든 것을 보고 계십니다.
보고 계시는 그 하나님이 우리 인생을 위한 가장 좋은 것, 그것을 준비해 놓으신 줄 믿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선한 일은 우리가 보지 못하는 우리 인생의 반대편에서 이미 시작된 줄 믿습니다. 그 예배하신 숫양을 보기까지 우리 가운데 주어진 그 높은 인생의 산 정상 위에 설 수 있는 저와 여러분 되기를 축복합니다.

3. 십자가에 달린 어린 양을 바라보라
세 번째, 우리는 무엇을 바라봐야 할까요? 십자가에 달린 어린 양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이 내용이 오늘 설교 가운데 가장 중요한 내용이자 아브라함 설교의 결론이 됩니다. 아브라함이 진짜 바라봐야 할 것은 무엇이었냐면 십자가에 달린 예수 그리스도였어요.
우리 창세기 12장 1절 말씀 읽어보겠습니다.
(창세기 12:1)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처음 부르실 때 뭐라고 말씀하셨냐면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라고 말씀하셨어요. 그 땅이 어딘지를 모릅니다. 이때부터 아브라함의 인생은 땅 찾기 인생이었어요. 그 땅이 어디일까? 계속해서 찾아가는 여정이 아브라함의 전체 여정이에요.
그런데 그 땅은 크게 보면 가나안 땅 전체를 말합니다. 그 가나안 땅이 아브라함과 이스라엘 백성이 살아갈 약속의 땅이 되는 것이죠. 그런데 아브라함은 그 가나안 땅 가운데 계속해서 장소를 이동하며 살아갔어요. 그리고 그의 인생 가운데 가장 마지막에 올라갔던 땅, 가장 마지막에 바라본 땅은 어디냐면 모리아 산이었어요.
오늘 본문 전체 가운데 네 번이나 '보다'라는 단어가 등장했어요. 한번 확인해 보겠습니다.
* 4절 말씀 보니까 "제삼일에 아브라함이 눈을 들어 그곳을 멀리 바라본지라." 멀리 바라본지라. 보여줄 땅으로 가라고 말씀하셨는데 멀리 바라본지라. 마지막에 바라본 산이 모리아 산이 되는 것입니다.
* 8절의 말씀 보니까 "번제할 어린 양은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시리라." 여호와 이레인데 '준비하시리라'가 '보신다'라는 의미라고 말씀드렸어요.
* 13절에 보니까 "아브라함이 눈을 들어 살펴본즉." 눈을 들어 살펴 보아서 무엇을 발견했습니까? 숫양을 보았어요.
* 14절에 보니까 "아브라함이 그 땅 이름을 여호와 이레라 하였으므로." 이레, 하나님이 '보신다'라는 의미라고 말씀드렸어요.
그러니 오늘 본문 전체는 아브라함이 봐야 할 그 땅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처음 부르실 때 보여줄 땅으로 가라고 말씀하셨는데 그 땅이 어디인지 명확하지 않지만 그의 인생 마지막까지 봐야 할 땅은 어디냐면 모리아 산이었어요. 아브라함의 전체 인생은 보여줄 땅으로 시작과 끝이 마무리되어집니다. 이것은 우연이 아니에요.
아브라함은 이곳에서 번제를 드리려 했습니다. 자기의 아들 이삭을 번제로 드리려 했어요. 그런데 그 번제는 실패했습니다. 제물이 대체되었어요. 아들의 번제가 아니라 어린 양의 제사로, 번제로 대체되었습니다. 그리고 천 년의 세월이 흘러갑니다. 천 년의 세월이 흐른 이후에 그 장소 모리아 산에서 솔로몬은 이스라엘 성전을 세웁니다. 역대하 3장 1절 말씀, 우리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역대하 3:1) 솔로몬이 예루살렘 모리아 산에 여호와의 전 건축하기를 시작하니
아브라함 이후 천 년이 지나 솔로몬은 그 많은 땅 가운데 모리아 산 위에다가 예루살렘 성전을 건축했어요. 성전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제사입니다. 제사는 죄를 사하는 일입니다. 즉, 번제를 드리려 했던 그 공간 속에 솔로몬은 성전을 재건하여 그 이후로 그 장소가 인간의 죄를 사하는 성전의 기능을 하도록 건설해 놓은 거예요.
그리고 솔로몬 이후에 시간이 흘러 천 년이 흘러갑니다. 천 년이 지나 예루살렘 성전이 서 있는 그 산맥의 한 언덕의 이름, 그 언덕의 이름이 골고다인데, 그 골고다 위에 십자가 세 개가 놓여집니다. 가운데에 어린 양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가 나무를 짊어지고 올라와 그곳에서 우리를 위한 번제 제물이 되신 것입니다.
그러니 정리해 보면, 하나님이 보여줄 땅으로 가라고 말씀하셨는데 그 보여줄 땅이 크게는 가나안이고, 마지막까지 봐야 할 땅은 모리아 산이었으며, 그 땅 가운데 성전이 세워졌고, 또 천 년이 지나 골고다 언덕에 세워진 십자가를 바라보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부분에 대해서 다음처럼 말씀하셨어요. 요한복음 8장 56절 말씀, 읽어보겠습니다.
(요한복음 8:56) 너희 조상 아브라함은 나의 때 볼 것을 즐거워하다가 보고 기뻐하였느니라
여기 보니까 예수님께서 뭐라고 말씀하셨냐면 "너희 조상 아브라함은 나의 때 볼 것을 즐거워하다가 보고 기뻐하였느니라." 여기서 '나의 때'는 언제를 말하는 것이냐면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시고 부활하실 때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뭐라고 말씀하시냐면 아브라함이 2000년 전에 나의 때, 나의 십자가 죽음을 보았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렇다면 언제 아브라함은 예수님을 보았습니까? 그 모리아 산에서 자신의 아들을 잡으려고 하는 그 순간에 번제물이 대체되어 어린 양이 불타오르는 그 불빛 속에서 하나님께서는 2000년 이후에 동일한 그 땅 가운데 세워질 십자가 그 위, 그 위에서 우리의 모든 죄를 대속하기 위해서 죽으실 예수 그리스도의 그림을 보여주셨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보고 아브라함은 "보고 기뻐하였느니라."
"하나님, 이것이었군요. 저를 보여줄 땅으로 가라고 말씀하신 하나님, 지금까지 나의 인생을 이끄신 하나님, 이거 보여주기 위하여 나에게 이런 인생을 허락하셨군요." 믿음의 눈으로 아브라함은 2000년 이후에 동일한 장소에서 벌어질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을 목격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이 믿음의 조상이 되는 거예요. 하나님은 한 인물을 택하셔서 그 인물의 인생 가운데 복음의 이야기를 심어 놓으셨습니다. 그래서 이 사람이 걸어왔던 모든 과정의 인생길대로 우리의 인생을 인도해 가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결국 우리가 바라봐야 할 것은 무엇이냐면 우리의 죄를 대속하기 위하여 돌아가신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만 바라봐야 되는 줄 믿습니다.
이삭과 예수님은 많이 닮아 있어요. 이삭은 예수님의 예표하는 인물입니다. 공통점이 정말 많아요. 몇 가지만 예를 들어보면,
* 둘 다 독생자입니다.
* 둘 다 기적적인 잉태로 태어났어요. 아이를 낳을 수 없는 상황에서 아이를 낳았습니다.
* 둘 다 출생에 대한 예언을 받았습니다.
* 둘 다 태어나기 전에 이름을 받았습니다.
* 둘 다 희생 제물이에요.
* 둘 다 3일 길을 걸어가 부활의 은혜를 경험하게 됩니다.
* 둘 다 자기를 멜, 자기를 죽일 나무를 지고 모리아 산으로 올라가
* 둘 다 모리아 산에서 죽음과 부활의 경험을 하게 되는 것이죠.
결국 2000년 전 창세기 22장에 아브라함이 자기 아들을 번제로 올린 그것을 실패한 그 번제를 하나님이 2000년 이후에 이루신 것입니다. 자신의 독생자를 십자가에 매달아 우리의 죄를 위한 대속의 은혜로 우리에게 주신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마지막까지 바라봐야 할 것은 무엇이냐면 오직 골고다 언덕 위에 서 있는 그 십자가, 그 위에서 우리를 위하여 피 흘리신 예수 그리스도만 바라봐야 되는 줄 믿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그 자리 가운데로 인도하십니다. 그러니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살아가는 모든 날 동안에 우리가 만난 그 험난한 산이 얼마나 높든지 간에, 그 시험이 얼마나 어렵든지 간에 여호와 이레의 하나님, 그 하나님의 이름 붙잡고 그 정상 위에 설 수 있는 오륜의 모든 성도 되기를 축복합니다.
여호와 이레 하나님 감사합니다. 사랑하는 모든 날 동안에 우리에게 주어진 시험의 산이 얼마나 높든지 간에 그 모든 능선을 여호와 이레의 하나님 붙잡고 올라갈 수 있는 우리 모두가 될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아멘. 우리가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 바라봅니다. 십자가만 바라봅니다. 십자가의 능력, 그 영광, 그 생명이 우리의 삶을 덮어 흘러넘치게 하여 주시옵소서. 아멘. 우리 인생 가운데 함께하여 주시사 살아계신 하나님, 능력 많으신 하나님, 나와 함께하신 하나님, 그 하나님 붙잡고 날마다 승리하며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될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주님 감사합니다. 영광을 받아 주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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