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본문: 로마서 1:14
헬라인이나 야만인이나 지혜 있는 자나 어리석은 자에게 다 내가 빚진 자라
강사: 이창우 장로
- 선한목자병원 병원장
- 굳셰퍼드 재단 이사
-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 「바디바이블」 저자
*다음 접은글은 장로님 간증을 가급적 그대로 스크립트로 정리한 것입니다. 원하시면 바로 아래 '더보기'를 누르세요.
이 귀한 다니엘 기도의 자리에 함께하게 되어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저는 선한목자병원에서 환자들을 돌보며 하나님의 부르심을 따라 의료 선교의 길을 걷고 있는 이창우 장로입니다. 지난 20여 년간 병원과 선교지를 오가면서, 절망 가운데 있는 사람들의 눈빛 속에서 하나님이 일하시는 은혜의 순간들을 보아 왔습니다. 이 시간 하나님께서 제게 주신 말씀을 다시 한번 봉독하겠습니다.
로마서 1장 14절 말씀입니다.
"헬라인이나 야만인이나 지혜 있는 자나 어리석은 자에게 다 내가 빚진 자라."
하나님이 일하신 5초의 공백
이 말씀을 마음에 새기며 짧은 영상을 하나 보시겠습니다. (영상) 방금 보신 영상은 어떠하셨습니까? 처음에는 어둡고 지쳐 있으며 고통스러운 얼굴들이 보였습니다. 그런데 아주 짧은 5초의 공백을 지나고 나서 그 얼굴들이 밝은 빛으로 바뀌었습니다. 저는 늘 그 순간이 궁금했습니다. 그 5초의 공백 안에는 무엇이 있었을까? 그 안에는 흘러가는 은혜가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흘러나온 은혜가 절망을 희망으로, 눈물을 웃음으로 바꾸는 하나님의 은혜의 흐름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 5초의 공백은 사람이 만든 시간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일하신 시간이었습니다. 그때 누군가 자신이 받은 은혜를 흘려보냈고, 그 은혜가 생명을 살리고 얼굴을 바꾸고 인생을 새롭게 했습니다.
은혜라 쓰고 빚이라 읽는다
저는 지난 21년 동안 굳셰퍼드 재단과 함께 의료선교 현장에서 그 은혜의 흐름을 보았습니다. 고통으로 굳어져 있던 얼굴이 웃음으로, 희망이 없던 사람이 찬송으로 바뀌던 그 순간들은 단순한 회복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일하신 장면이었습니다. 그때마다 제 마음속에 떠오른 한 문장이 있습니다. "은혜라 쓰고, 빚이라 읽는다." 그것은 단순한 문장이 아니라 제 인생 전체를 요약하는 하나님의 선언이었습니다. 방금 우리가 읽은 말씀처럼 사도 바울은 "헬라인이나 야만인이나 지혜 있는 자나 어리석은 자에게 다 내가 빚진 자라"고 고백했습니다. 바울이 말한 것은 세상의 빚이 아닙니다. 은혜의 빚이었습니다. 그 은혜가 바울을 멈출 수 없게 했고, 그를 복음이 필요한 곳으로 이끌었습니다. 저 역시 그렇게 살아왔습니다. 의사로, 병원장으로, 한 가정의 가장으로 살아왔지만 제 마음 깊은 곳에는 언제나 이 고백이 새겨져 있습니다. '나는 은혜의 빚을 진 사람이구나.'
어머니의 시력과 맞바꾼 생명
그 사실을 처음 깨달은 순간은 어린 시절, 제 어머니의 눈을 통해서였습니다. 저는 병원 옆에 작고 낡은 관사에서 자랐습니다. 환자들, 간호사님들, 모두가 가족 같았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릴 적 저는 늘 궁금했습니다. 왜 우리 어머니는 젊은 나이인데 두꺼운 안경에 돋보기를 겹쳐서 쓰셔야만 하는가? 나중에야 알았습니다. 제가 어머니의 뱃속에 있을 때, 어머니께서 임신중독증으로 생명이 위태로우셨습니다. 혈압이 치솟아 시신경이 손상되셨습니다. 의사는 말했습니다. "이 태아를 포기해야 산모가 삽니다." 그러나 우리 어머니는 저를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그 순간, 생명이 생명을 품어 주셨습니다. 그 대가로 어머니는 마흔이 되기 전에 시력을 잃으셨고, 평생 돋보기로 성경을 읽으셔야 했습니다. 그 이야기를 들은 날, 저는 마음이 무너졌습니다. 그리고 그날 이후 제 마음속에는 '나는 어머니의 시력과 맞바꾼 생명이구나'라는 지워지지 않는 한 문장이 생겨났습니다. 저는 어린 시절 어머니께서 읽기 힘들어하시는 성경을 큰 글씨로 옮겨 써 드렸습니다. 그 작은 손으로 쓴 성경을 보시며 어머님은 늘 제게 말씀하시곤 했습니다. "창우야, 하나님이 너를 살리셨으니 그 생명을 하나님께 돌려드려야 한다." 그 어머님은 장로님이 되셨고, 지금 아흔여섯이 되신 나이에도 여전히 그 성경을 읽으시며 저를 위해 눈물로 기도하고 계십니다.
생명을 살리는 길, 나실인의 서원
그 모습을 볼 때마다 감사함과 미안함이 교차했습니다. '이 생명을 어떻게 사용해야 할까?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겠습니까?' 그 물음에 답을 주신 분은 바로 저희 아버지였습니다. 아버지는 외과 의사였습니다. 장이 꽉 막혀 죽어가던 열 살짜리 여자아이를 수술로 살려내셨습니다. 그 아이의 뱃속에서 꿈틀거리던 회충 덩어리를 꺼내던 장면은 어린 제게 충격이었지만, 동시에 경이로움이었습니다. 그날 저는 결심했습니다. '나도 아버지처럼 생명을 살리는 사람이 되어야겠다.' 그때는 몰랐습니다. 그 결심이 훗날 하나님이 제 인생에 새기신 부르심의 시작이 될 줄은 몰랐습니다.
1973년 여의도 빌리 그래함 전도 집회, 그리고 이듬해 엑스플로 74에 중학생이었던 저는 어머님의 손을 붙잡고 100만 인파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날 제 마음에 불이 붙었습니다. "이 땅에 그리스도의 계절이 오게 하소서!" 수십만 청년들이 하늘을 흔들던 그날, 그 자리에 제 가슴에 성령의 화살이 꽂혔습니다. 그 불은 지금까지 한 번도 꺼지지 않고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 화살은 대학교 2학년 여름, 충북 영동의 CCC 수련회에서 제 인생의 방향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습니다. 그날 저녁 목사님께서 "선교를 결심한 청년들은 자리에서 일어나세요"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한마디가 제 가슴을 쳤고, 저는 그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서원했습니다. "주님, 저 선교사 되겠습니다. 나실인으로 살겠습니다." 그날 제 인생의 나침반이 바뀌었습니다. 그때 저는 하나님께 두 가지 약속을 드렸습니다. 첫째, 평생 술을 입에 대지 않겠습니다. 둘째, 시간의 십일조를 하나님께 드리겠습니다. 그 약속이 제 인생의 근육이 되었고, 그 이후로 지금까지 하나님은 그 약속을 통해 저의 길을 단련시키시며 은혜의 길로 인도해 오셨습니다.
잊지 않으신 서원, 예비하신 길
저는 확신합니다. 하나님께 드린 서원은 결코 잊혀지지 않습니다. 그때부터 제 인생의 방향은 분명해졌습니다. 저는 제 힘으로 인생을 설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미리 그려 놓으신 은혜의 지도 위를 걷고 있었습니다. 공부도, 선택도, 만남도 그러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수술실에 들어갈 때마다 "주님, 제 손이 아니라 주님의 손으로 하게 하소서"라고 기도했습니다. 그 기도가 제 인생의 중심이 되었습니다.
정형외과 전문의가 되고 의학박사 학위를 마친 뒤, 더 깊은 의학을 배우기 위해 미국 유학을 준비했습니다. 하지만 그동안 빚도 졌고 생활비도 어려워 가족의 책임이 제 어깨를 짓눌렀습니다. 그때 교회 목사님을 통해 한 선교사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함께 기도하는데 그분의 입술에서 나온 말씀이 제 영혼을 뒤흔들어 놓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말씀입니다. 이 집사님은 미국에 갈 것이지만, 2년이 아니라 3년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준비한 돈은 소용이 없게 될 것입니다."
그 순간 저는 속으로 웃었습니다. '3년이라니요, 저는 2년만 갈 것입니다. 돈도 간신히 다 준비해 놨는데.' 그런데 그다음 기도 말씀이 제 영혼을 무너뜨렸습니다. "창우야. 너는 잊었지만, 나는 너의 서원을 기억한다. 대학교 2학년 여름, 그 약속을 나는 잊지 않았다." 그날 저는 무릎을 꿇었습니다. 아내에게도 한 번도 얘기하지 않은 그 내용을 처음 보는 선교사님께서 어찌 아시겠습니까? 아내와 함께 저는 눈물을 쏟으며 기도했습니다. "주님, 제가 잊었지만 주님은 잊지 않으셨군요."
1997년 2월, 우리는 미국의 볼티모어에 도착했습니다. 존스홉킨스 병원에서 연구를 시작하게 되었는데, 곧 한국에 IMF가 터졌습니다. 환율은 800원에서 2,100원까지 한없이 뛰었고, 저희가 가져왔던 통장은 바닥이 났습니다. 통장 잔고에 6달러가 남던 그날, 식구들과 햄버거 하나 사 먹을 수 없던 그날, 저는 도서관 창가에 앉아 성경 위에 눈물을 떨어뜨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주님, 이제 무엇으로 살아야 합니까?" 그때 하나님은 불가능을 여셨습니다. 존스홉킨스의 박사 연구원이었던 저에게 경쟁 병원이던 하버드 병원이 장학금을 선지급하게 되었습니다. 인간의 계산으로는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그건 오직 하나님의 손길이었으며, 서원을 기억하신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그 예언대로 우리는 2년이 아닌 정확히 3년을 미국에서 머물렀습니다. 존스홉킨스뿐만 아니라 피츠버그 대학을 거쳐 하버드 대학까지 3년을 머물게 되었습니다. 그 3년 동안 하나님은 생존 훈련을 넘어 사명의 길을 준비시켜 주셨습니다. 그곳에서 저는 인공관절 수술, 재건의학 수술, 스포츠 의학, 유전자 치료술, 그리고 줄기세포 연구까지 배우게 되었습니다. 그 모든 의학의 끝에서 하나님은 저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창우야, 생명을 회복하는 일, 그것이 네 사명이다."
은혜의 빚을 갚는 통로
귀국 후 여러 대학 병원에서 교수 초빙 제안이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은 제 마음을 다시 선교의 자리로 이끌어 주셨습니다. 그때 저는 깨달았습니다. 하나님께 드린 서원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는 때때로 잊을 수밖에 없지만, 하나님은 잊지 않고 그것을 기억해 주십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께 기도드린 그 내용은 하나님께서 틀림없이 기억하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그분은 약속을 잊지 않으시고 그 약속으로 우리를 다듬어 주시며, 그 약속으로 세상을 살려 주십니다.
젊은 날의 그 작은 서원 하나가 제 인생의 길을 바꾸었고, 지금 저는 그 약속의 연장선 위에 서 있습니다. 생명을 살리고 회복시키는 일, 그것이 제 인생의 빚이고 하나님께 드린 약속의 열매입니다. 그때 저는 하나님께서 제 삶에 베푸신 은혜가 단지 한 사람의 생존기가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큰 그림 속에 이어진 은혜의 계보였음을 깨달았습니다.
그 순간 제 가슴이 뜨거워졌습니다. '이 은혜는 나 혼자서 끝나서는 안 된다. 흘러가야 한다.' 140년 전 언더우드, 아펜젤러, 스크랜튼, 알렌 선교사님들은 가난과 질병 속에 신음하던 조선 땅에 복음과 함께 병원을 세워 주셨습니다. 그 불씨가 희망이 되었고, 그 빛이 제 인생의 자리까지 흘러왔습니다. 저는 그분들이 세운 병원들에서 의술을 배웠고, 그분들의 신앙 유산 속에서 자라났습니다. 결국 제가 받은 은혜는 누군가의 눈물과 헌신 속에 주어진 복음의 유산이었던 것입니다.
그 사실을 깨닫는 순간, '하나님이 은혜를 나만의 간증으로 묻어둘 수는 없습니다. 이제 한국이 받은 복음을 세상으로 흘려보내야겠습니다'라고 다짐했습니다. 이제 우리가 그 빚을 갚아야 합니다. 누군가의 어둠 속으로 들어가서 병원을 세우고 복음을 전하자. 그렇게 세워진 것이 선한목자병원과 굳셰퍼드 재단이었습니다. 하나님께 받은 은혜를 세상으로 흘려보내는 통로요, 한국이 받은 복음을 열방에 돌려드리는 선교의 시작이 되었습니다.
흐를 때 위대해지는 은혜: 실리시
지금까지 제가 받은 하나님의 은혜를 이야기했다면, 이제부터는 그 은혜가 흘러가면서 일어난 놀라운 일들, 하나님이 만들어 가신 새로운 기적들을 함께 나누려고 합니다. 우리가 함께 확인해야 할 한 가지 사실은, "하나님의 은혜는 흐를 때 가장 위대해진다"는 것입니다.
그 은혜가 흘러간 아름다운 이야기가 있습니다. 미얀마의 13세 소녀, 저희는 발음이 어려워 '신리시'라고 불렀던 아이입니다. 어느 날 한 선교 단체에서 전화가 왔습니다. "선생님, 전에 선한목자병원에서 미얀마 어린이 뽕나이의 다리를 고쳐 주셨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이번에도 다리가 심하게 휜 아이가 있는데, 모든 병원에서 거절당했습니다. 마지막 심정으로 요청드립니다."
저는 그 아이의 사진을 보고 숨이 멎는 듯했습니다. 작고 마른 소녀, 사진 속 아이의 두 다리는 완전히 뒤틀려 있었습니다. 이미 미얀마에서 한 차례 수술을 받았지만 상태는 더 악화되었다고 했습니다. 금속판과 흉터만 남은 두 다리, 그리고 보살핌 없이 버려진 가여운 인생. 어머니는 일찍 세상을 떠났고, 아버마저 떠난 뒤 보호소로 보내졌습니다. 출생 신고도 되지 않아, 세상에는 존재하지만 법적으로는 존재하지 않는 아이였습니다.
저는 깊은 한숨을 쉬었습니다. 세계적인 학회지에도 이런 사례는 없었습니다. 여러 번의 대수술이 필요했고, 실패하면 평생 불구가 될 수도 있었습니다. 가는 병원마다 거절당한 것이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더 이상 피할 수 없었고, 그 순간 실리시의 마지막 의사가 되어 주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마치 하나님께서 저의 결심을 기다리셨다는 듯이, 실리시의 출생 신고가 만들어지고, 미얀마 정부가 여권을 발급해 주며, 한국 정부가 입국 비자를 허락해 주었습니다. 모든 문이 하나씩 순조롭게 열려갔습니다.
(영상) 뼈가 살지 않으면 어찌할 것인가, 1mm의 오차도 용납되지 않는 상황 속에서 저는 매일 머릿속으로 수술을 했습니다. 엑스레이를 다시 찍어보니 생각보다 훨씬 더 안 좋은 상태였고, 최소 네 번 이상의 수술이 필요했습니다.
저는 수술실로 그 아이를 데려가면서 하나님께 이렇게 기도드렸습니다. "주님, 제 능력은 너무나 부족합니다. 그러나 주님의 손길은 완전하오니, 오늘 제 손 위에 주님의 손을 얹어 주십시오. 이 아이 위에 주님의 보혈을 덮어 주십시오."
척수 마취가 시작되자 실리시의 눈가에 조용히 눈물이 맺쳤습니다. 제가 짧게 영어로 기도하면 통역 선생님이 미얀마어로 그 기도를 전했습니다. 언어는 달랐지만, 마지막에 함께 외친 '아멘'은 하나였습니다. 수술이 시작되었습니다. 휘어 있던 뼈를 자르고 돌려서 각도를 맞추고, 비어 있는 자리를 채워갔습니다. 1mm의 오차라도 생기면이 아이는 평생 잘못된 다리로 살아가야 합니다. 순간순간 손끝이 떨렸지만, 그때마다 "주님, 제 손 붙잡아 주세요"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러면 마치 보이지 않는 손이 제 손을 감싸주는 듯했습니다.
감사하게도 모든 과정이 차분히 잘 끝났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구나, 주님의 손이 내 손 위에 있구나 확신했습니다. 마침내 휘어져 있던 두 다리가 곧게 펴졌습니다. 그동안 그림으로만 그려왔던 그 모습이 눈앞에 현실이 되어 있었습니다.
마취가 풀릴 즈음, 실리시가 천천히 눈을 떴습니다. 그리고 자기 다리를 바라보더니 조용히 눈물을 흘렸습니다. 고통 속에서 피어난 희망의 눈물이었습니다. 이후 실리시는 놀라운 속도로 회복했습니다. 여덟 곳의 수술 부위에 줄기세포 치료를 시행했고, 손짓과 눈빛으로만 통하던 마음이 어느새 웃음과 한국어로 이어졌습니다. 저는 완벽한 의사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의지해 한 걸음 내디뎠을 때, 가장 완벽하신 손이 제 손 위에 놓여 있었던 것입니다.
(영상) 수술 후, 실리시는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저는 세상에서 가장 운이 좋은 사람입니다. 병원은 평화롭고 아름답습니다. 항상 여러분 모두 기억할 거예요. 사랑해요."
그날 이후 저는 더욱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은혜를 흘려보내면, 하나님은 그 은혜를 통해서 놀라운 기적을 만드신다는 것을 말입니다. 저는 그저 빚진 자로서 받은 은혜를 흘려보냈을 뿐인데, 하나님은 그 작은 순종을 통해 한 생명의 삶을 새롭게 하여 주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나는 빚진 자라"고 말했습니다. 저 역시 빚진 자입니다. 하나님께 받은 은혜의 빚이 제 삶을 이끌어 신리시에게로 데려갔습니다. 여러분의 삶에도 반드시 여러분만이 만질 수 있는 신리시가, 여러분만이 내밀 수 있는 손길이 있을 것입니다. 은혜라 쓰고, 빚이라 읽으십시오. 받은 은혜를 사랑으로 갚아 나가시기를 바랍니다.
멈추지 않는 은혜: 조이
실리시의 이야기보다 훨씬 전에, 은혜의 씨앗이 심겨진 첫 만남이 있었습니다. 그 씨앗은 라오스라는 나라의 한 모퉁이에서 시작되었습니다. 2004년, 저는 처음으로 라오스의 땅을 밟았습니다. 불교의 나라, 전쟁의 상처가 남아 있는 작은 땅, 찢어진 러닝셔츠를 입고 맨발로 걸어오는 사람들. 그 연약한 발걸음 하나하나가 제 가슴을 찔렀습니다. 그때 저는 하나님께 기도드렸습니다. "하나님, 이제는 일회성 의료 선교가 아니라, 이 땅에 뿌리를 내리는 선교를 하게 해 주세요."
그 기도는 현실이 되어, 수도 비엔티안의 한 마을에 무료 진료소가 세워졌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차트가 제 눈에 들어왔습니다. '20세 청년, 흉통, 잦은 감기.' 그런데 제 앞에 서 있는 그 20세 청년은 초등학생 같았습니다. 가족들은 "선생님, 제 동생은 병원에 가면 죽는대요. 그냥 약만 주세요"라고 말했습니다. 청진기를 그의 가슴에 댄 순간, 말발굽이 뛰는 듯한 '쿵-슉-쿵' 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저는 직감했습니다. '이 아이는 오래 버티지 못하겠구나.' 그의 이름은 '조이(Joy)'였지만, 그의 삶은 기쁨이 아니라 죽음의 문턱에 선 절망이었습니다.
한국으로 돌아왔지만, 제 마음은 계속 조이에게 붙잡혀 있었습니다. "여보, 라오스에 연락을 해 봅시다. 그 아이가 아직 살아 있는지." 얼마 뒤 소식이 왔습니다. "아직은 살아 있대요." 그 순간 제 마음이 뜨거워졌습니다. "하나님, 이 아이를 한국으로 데려와 수술하겠습니다."
하지만 벽은 너무나 높았습니다. 이 아이도 출생 기록이 없어 여권도 비자도 만들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때마다 조용히 문을 열어 주셨습니다. 마지막 관문은 비행기였습니다. 항공사는 "이 아이가 비행기에서 죽을 수 있어서 태울 수 없습니다"라며 단호했습니다. 저는 새벽 2시까지 항공사 직원들과 싸워야 했고, 결국 서류에 서명했습니다. "비행기 안에서 이 아이가 죽으면, 제가 전적으로 책임지겠습니다."
비행 내내 제 손은 의사의 손이 아니라 아버지의 손처럼 떨렸습니다. 한국에 도착했을 때, 그 아이는 이미 숨이 넘어가기 직전이었습니다. 열은 39.5도, 귀에서는 고름이 나오고 호흡은 가늘었습니다. 그날 저는 하나님께 울부짖었습니다. "하나님, 제 힘만으로는 어떻게 할 수가 없습니다. 조이, 제발 살려 주세요!"
한양대학교 병원과 여러 교수님들이 크게 도와주셨습니다. 검사 결과, 심장은 지쳐서 거의 멈춰가고 있었고, 피는 산소를 실어 나르지 못했습니다. 몸 전체가 서서히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저는 조이와 그의 누나에게 마지막으로 말했습니다. "사람의 힘으로는 어렵겠습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께서 하시면 살 수 있습니다."
수술을 위해 조이는 마취가 채 끝나기도 전에 제게 속삭였습니다. "이제... 제가 죽는 거죠?" 눈가에 맺힌 눈물이 제 마음을 무너뜨렸습니다. 저는 그 손을 꽉 잡아 주었습니다. "조이, 걱정하지 마. 하나님은 반드시 너를 살려내실 거야."
심도자 수술이 시작되었습니다. 오른쪽 허벅지의 혈관을 통해 심장까지 긴 도관을 넣어, 막힌 판막을 풍선으로 찢는 고위험 수술이었습니다. 풍선을 부풀리자, 심장이 멈췄습니다. 모니터의 소리도 '삐-' 하고 멈춰 버렸습니다. 수술실 전체가 얼어붙었습니다. "주님, 이 아이 살려 주셔야 합니다." 그리고 죽음의 순간이 지나가고, 생명이 다시 들어왔습니다. 멈췄던 심장이 '콩탕, 콩탕' 다시 뛰기 시작했습니다. 피가 돌기 시작했습니다. 조이가 살아났습니다. 우리는 서로 껴안고 울었습니다. 그날 수술실은 병원이 아니라 예배당이었으며, 그 눈물은 의학의 승리가 아니라 은혜의 승리였습니다.
이후 조이는 놀라운 속도로 회복했습니다.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해 열 발짝도 걷지 못하던 아이가 일어나 걷기 시작했고, 창백했던 얼굴에 핏기가 돌기 시작했습니다. 죽음이 떠난 자리에 생명이 피어났습니다.
세월이 흘러 저는 다시 라오스를 방문했습니다. 공항에 내리는 순간, 설렘과 두려움이 뒤섞여 있었습니다. '조이는 지금 어떻게 되었을까?' 공항 문을 나서자, 저 멀리서 누군가 달려오고 있었습니다. 그 아이, 조이였습니다. 그 아이가 제 품에 안기면서 외쳤습니다. "닥터 리! 닥터 리!" 우리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한참을 울었습니다.
그날 저는 다시 깨달았습니다. 은혜는 멈추지 않는다. 흘러가는 은혜는 반드시 생명을 낳는다는 것을 말입니다. 조이가 제 품에 안겨 '닥터 리'를 외칠 때, 저는 그날의 심장 소리를 다시 들었습니다. '콩탕, 콩탕.' 그것은 조이의 심장 소리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다시 세상에 생명을 불어넣는 소리였습니다. 그 순간 제 마음 깊은 곳에서 고백이 흘러나왔습니다. "하나님, 은혜는 이렇게 살아 움직이는 것이군요." (영상) 조이의 생명이 다시 숨을 쉬었듯이, 하나님은 지금도 누군가의 심장에 생명을 불어넣고 계십니다.
증오의 담을 넘는 은혜: 반다아체
그리고 그 은혜의 이야기는 또 다른 땅에서 계속되었습니다. 2004년 12월 26일, 크리스마스 찬양이 끝나기도 전에 바다가 도시를 삼켰습니다. 인도네시아 수마트라섬 반다아체였습니다. 순식간에 수십만 명의 목숨을 잃었고, 그곳은 지옥이었습니다. 한 달 뒤, 저도 그 땅에 있었습니다.
(영상) 아버지, 동생, 저희 부부, 그리고 병원 식구 11명이 빚진 자의 마음으로 그 땅을 향했습니다. 입원 환자분들을 다 퇴원시키고 병원 문을 닫았습니다. 이틀 만에 반다아체에 도착했지만, 도착하자마자 들은 소식은 충격적이었습니다. 약품 가방을 싣지 못했다는 것이었습니다. 사람을 먼저 태워야 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당신네 사람들을 돕기 위해 여기 왔는데, 군용기라도 띄워야 하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그들은 아무 말이 없었습니다.
그때 알았습니다. 그것은 단순한 행정 실수가 아니라, 이 땅을 막고 있는 보이지 않는 '담'이 있다는 것을. 무슬림 반군의 본거지였던 그곳을 정부도, 국제 사회도 외면했습니다. 그들을 도울 이유가 없다는 그 말 속에는 오랜 증오와 차별, 그리고 하나님께서 가장 미워하시는 인간의 담이 있었습니다. 저는 속으로 중얼거렸습니다. "하나님, 이번 선교는 실패하는 것입니까?"
그런데 하나님은 우리의 원망보다 먼저 길을 준비하고 계셨습니다. 한 중국계 목사님이 조심스럽게 말씀하셨습니다. "혹시 저 옆 사무실에 있는 약 상자들이 도움이 될까요?" 그 문을 여는 순간, 포장도 뜯지 않은 40여 개의 약 상자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습니다. 대만 의료팀이 두고 갔지만 의사가 없어 아무도 쓰지 못한 채 버려져 있던 새 약들이었습니다. 그 자리에서 저희는 무릎을 꿇었습니다. "하나님, 예비해 주셨군요. 보지 못하고 불평한 것을 용서해 주세요."
그리고 바로 진료가 시작되었습니다. 그 순간 저는 깨달았습니다. 은혜는 담을 넘는다는 것을. 하나님께서는 이미 그 담 너머에서 기다리고 계셨습니다. 해변은 여전히 폐허였고, 소금기가 남은 물길, 연분에 죽어 있는 나무들, 그리고 코와 마음속까지 시체 냄새가 스며들었습니다. 3일 동안 1,200명이 넘는 사람들이 몰려왔습니다. 다리 한쪽을 끄는 아이, 팔이 찢어진 채 아이를 안고 있는 엄마, 온몸에 소금기가 되어 살갗이 벗겨진 노인들. 그들이 줄을 서서 몰려오고 있었습니다. 끝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바닷물이 다시 밀려오는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눈물의 파도였습니다.
우리는 그들의 상처를 꿰매고 고름을 빼고 썩은 살을 도려냈습니다. 그런데 가장 많은 환자들이 한결같이 호소하는 것이 있었습니다. "의사 선생님, 여기가 너무 아파요." 그래서 청진기를 대면 심장은 멀쩡했습니다. 맥박도 리듬도 이상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모두가 가슴을 움켜쥐고 울고 있었습니다. "우리 가족이 눈앞에서 휩쓸려 갔어요. 눈을 감으면 다시 물소리가 들려요. 이러다 또 쓰나미가 오면 우리는 어떡하죠?" 그들의 심장은 고통이 아니라, 두려움과 상실로 찢겨져 있었습니다.
저는 속으로 기도했습니다. "주님, 저들의 심장을 만져 주옵소서. 눈에 보이지 않는 상처를 치유해 주세요." 그때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이들이 두려워하는 것은 물이 아니라 관계의 끊어짐이다.' 이 땅에는 이미 오래전부터 종교의 담, 민족의 담, 상처의 담이 세워져 있었습니다. 심지어 현지 크리스천들조차 "저들은 우리를 괴롭히던 사람들입니다. 이번에는 하나님이 벌하신 거예요"라고 말했습니다. 그 순간 하나님께서 제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내가 가려는 것은 바로 그 담 너머이다.'
그래서 우리는 단지 은혜의 통로가 되기로 했습니다. 치료하면서 그들의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 주었습니다. 말없이, 오래, 그리고 묵묵히 치료를 이어갈 뿐이었습니다. 그런데 마지막 날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현지 크리스천들의 눈빛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아, 저 무슬림들도 우리와 똑같은 사람들이구나.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불쌍한 우리와 같은 사람들이구나." 그들도 함께 울기 시작했습니다. 그 지옥 한가운데서 저는 새 하늘과 새 땅을 보았습니다. 사망도, 애통도, 곡하는 것도 없는 나라. '주님, 우리 병원을 그 생명수의 통로로 써 주세요.'
다음 세대로 흐르는 은혜의 강
한국으로 돌아오니 우리 병원은 또 다른 쓰나미를 맞았습니다. 진료는 중단됐고 재정은 고갈되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제 마음에 꿈을 주셨습니다. "세계에 고통받는 이들을 돌보며 100개의 무료 진료소와 세 나라의 대학 병원을 세워, 대한민국이 받은 은혜를 빚으로 갚으라." 이것이 하나님께서 맡겨 주신 말씀이었습니다.
그 꿈은 아버지에게서 시작되었습니다. 저희 아버지는 생애 마지막까지 "고통의 자리로 가라. 그곳이 하나님이 계신 자리야"라고 말씀 주셨습니다. 그 사명은 제게 이어졌고, 지금은 두 아들 사무엘과 다니엘에게 흘러가고 있습니다. 3대에 걸친 이 흐름은 인간의 유업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멈추지 않고 흘려보내 주신 은혜의 강이었습니다.
(영상) 지금은 21개국 24곳에서 굳셰퍼드 재단을 통해 그 은혜가 복음과 치유로 흘러가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 모든 이야기는 한 문장으로 모입니다. "은혜라 쓰고, 빚이라 읽는다."
언더우드, 아펜젤러, 스크랜튼, 에비슨 선교사님들이 피와 눈물로 이 땅에 복음을 심었습니다. 그 은혜 위에 우리 부모 세대가 교회를 세웠습니다. 그 교회 위에 우리가 지금의 복을 누리고 있습니다. 이제는 우리의 차례입니다. 우리 세대가 받은 은혜의 빚을 사랑으로 갚아야 합니다. 우리가 그 빚을 갚는다면, 다음 세대는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우리 부모 세대는 하나님께 빚진 세대였고, 그 빚을 사랑으로 갚은 세대였습니다." 그 고백이 세대의 찬송이 되고, 그 찬송이 민족의 부흥이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의 은혜는 멈추지 않습니다. 그 은혜는 언제나 담을 넘습니다. 오늘 그 은혜의 흐름 위에 서십시오. 그리고 다음 세대로 흘려보내십시다. 은혜라 쓰고, 빚이라 읽으십시다.
기도하겠습니다.
사랑과 은혜의 하나님 아버지, 우리의 원망보다 앞서 길을 준비하신 주님 감사합니다. 우리 안에 담을 허물고 보이지 않는 상처를 치유하시는 은혜를 경험하게 하옵소서. 주님, 그 은혜가 세대를 넘어 흐르게 하시고, 우리의 자녀들이 다시 그 은혜의 강을 이어가게 하옵소서. 선교사님들의 눈물 위에 세워진 이 나라가 다시 세상을 치유하는 나라 되게 하옵소서. 우리의 인생이 멈추지 않는 은혜의 강물이 되어 이 땅을 적시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은혜의 빚진 사람
지난 20여 년간 병원과 선교지를 오가며, 저는 절망 속에 있는 사람들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지켜보았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마음에 새기며, 짧은 동영상 한 편을 먼저 보시겠습니다. (영상 재생)
방금 보신 것처럼, 처음에는 지치고 어두운 얼굴들이었습니다. 그러나 5초의 공백이 흐른 뒤, 그들의 얼굴은 놀랍도록 밝은 얼굴로 바뀌었습니다. 그 짧은 공백의 시간은 다름 아닌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흘러나온 은혜가 그들 위에 흐른 시간이었습니다.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친히 일하신 시간이었습니다.
저는 지난 21년간, 바로 그 은혜의 흐름을 선교 현장에서 목도하여 왔습니다. 그것은 단순한 회복이 아니라, 하나님이 일하신 거룩한 현장이었습니다. 그리하여 "은혜라 쓰고, 빚이라 읽는다"는 이 문장은 제 인생 전체를 묘사하는 글이 되었습니다. 오늘 본문 사도 바울의 고백처럼, 저 또한 헬라인이나 야만인에게나 다 빚진 자이기 때문입니다. 그 빚은 바로 은혜의 빚입니다. 그리고 그 은혜의 빚이 저를 복음이 필요한 땅으로 이끌었습니다. 저는 '은혜의 빚'을 진 사람입니다.
어머니의 시력과 맞바꾼 생명
저는 병원 옆의 작고 낡은 관사에서 자랐습니다.
어린 시절 저는, 왜 우리 어머니는 저토록 젊은 나이에 그토록 두꺼운 돋보기안경을 쓰셔야만 하는지 늘 궁금했습니다. 훗날 그 이유를 알게 되었습니다. 제가 태중에 있을 때, 어머니는 저를 포기하지 않고 품으셨고, 그로 인해 40세가 되기 전에 시력을 거의 잃고 평생 두꺼운 돋보기 너머로 성경을 읽으셔야 했습니다.
저는 비로소 깨달았습니다. '아, 나는 어머니의 시력과 맞바꾼 생명이구나.' 어린 시절 저는 어머니를 위해 큰 글씨로 성경을 필사하여 쉽게 읽으실 수 있도록 해드렸습니다. 제 어머니는 지금 96세의 장로님이 되셨습니다.
어머니의 희생으로 얻은 제 생명을 어떻게 살아야 할까 고민했습니다. 그 답은 아버지를 통해 찾을 수 있었습니다. 외과의사이셨던 아버지를 보며, 저 또한 아버지처럼 생명을 살리는 사람이 되겠다고 결심했습니다.
1973년 빌리 그래함 목사님의 집회, 그리고 이듬해 엑스플로 74 집회를 거치며 제 마음에 불이 붙었습니다. 그 자리에서 제 가슴에 성령의 불이 꽂혔습니다. 대학교 2학년 여름, CCC 수련회에서는 선교를 결심하고 그 자리에서 일어나, 나실인으로 살겠다고 서원하였습니다. "평생 술을 입에 대지 않겠습니다. 시간의 십일조를 하나님께 드리겠습니다." 이 두 가지 결단을 하였고, 하나님은 평생 그 서원을 지키게 하셨습니다.
은혜의 지도를 따라가는 삶
저는 그때부터 하나님이 미리 그려 놓으신 은혜의 지도를 따라가는 삶을 살아왔습니다. 저는 수술실에 들어갈 때마다 "하나님께서 이 수술을 직접 집도하여 주시옵소서"라고 기도하며 들어갑니다.
그 하나님의 은혜의 지도를 따라 저는 정형외과 의사가 되었고, 유학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저를 위해 기도해 주시겠다던 한 선교사님을 만났는데, 그분에게서 예언의 말씀을 듣게 되었습니다. 미국 유학이 2년이 아니라 3년이 될 것이며, 준비한 돈도 필요가 없을 것이라는 말씀이었습니다. 처음에는 믿기 어려웠지만, '내 서원을 잊지 않으셨다'는 하나님의 메시지를 받고 깜짝 놀랐습니다.
그런데 미국에 도착한 지 얼마 되지 않아 IMF가 터졌습니다. 한국에서 준비해 간 돈은 그 가치를 잃었고, 제게는 단 600달러만 남았습니다. 절망적이었습니다. 바로 그때,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습니다. 존스홉킨스 연구원이던 제게 하버드에서 장학금을 주겠다는 연락이 온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의 손길이었습니다. 그렇게 저는 3년을 미국에 머물게 되었습니다. 존스홉킨스, 피츠버그를 거쳐 하버드까지 인도하셨습니다.
그곳에서 저는 인공관절과 재건의학, 그리고 줄기세포 연구까지 배우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생명을 회복하는 길'이 저의 사명임을 그렇게 일깨워주셨습니다.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여호와시라는 잠언 16장 9절 말씀을 깊이 체험했습니다.
귀국 후 여러 대학에서 초빙 제안이 있었으나, 저는 하나님께 드렸던 서원을 따라 은혜를 흘려보내는 삶을 살고 싶었습니다. 그 은혜의 빚을 갚기 위해 병원을 세웠습니다.
지금까지는 제가 받은 하나님의 은혜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지금부터는 그 하나님의 은혜가 흘러간 아름다운 이야기 몇 가지를 나누고자 합니다.
은혜는 흐를 때 가장 위대해진다
하나님의 은혜는 고여 있을 때가 아니라, 흐를 때 가장 위대해집니다.
철든 아이, 실리시
첫 번째 이야기는 '철든 아이, 실리시'입니다. 미얀마의 13세 소녀 실리시, 그 아이의 사진을 보았을 때 저는 숨이 멎는 것 같았습니다. 보잘것없이 버려진 아이였습니다. 세상에 존재했지만, 법적으로는 존재하지 않는 아이였습니다. 가는 병원마다 거절당한 것이 어쩌면 당연한 아이였습니다. 저는 그 순간, 실리시의 마지막 의사가 되어주기로 결심했습니다.
기적처럼 실리시의 출생신고와 여러 수속이 진행되었고, 마침내 그 아이가 우리 병원에 들어섰습니다. 2019년 1월 30일, 첫 수술이 시작되었습니다. 수술을 하는 내내 하나님께 기도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저는 실리시를 '철없는 아이'로 만들어 주고 싶었습니다. 1mm의 오차만으로도 이 아이는 평생 불구가 될 수 있는 고난도의 수술이었습니다.
그날 저는 하나님이 저와 함께하심을 똑똑히 느꼈습니다. 마침내 그 아이의 발이 펴졌습니다. 눈앞에 그토록 그리던 일이 현실이 되어 있었습니다. 아이는 놀라운 속도로 회복되었고, 줄기세포 치료를 통해 그 아이는 웃음을 되찾게 되었습니다. 저는 부족했지만, 하나님의 완전하심이 저와 함께해 주신 것입니다.
그날 이후 저는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은혜를 흘려보내면, 하나님은 그 은혜로 상상할 수 없는 놀라운 기적을 만드신다는 것을 말입니다. 그리고 1년 후, 실리시는 거의 정상적인 아이처럼 걷게 되었고, 2년 후에는 뛰어다닐 수 있게 되었습니다.
생명의 씨앗, 조이
두 번째 이야기는 '생명의 씨앗, Joy'입니다. 2004년, 저는 라오스를 처음 방문했습니다. 전쟁의 영향으로 매우 가난하고 헐벗은 상황이었습니다. 그 땅에 복음의 뿌리를 내리기 원했고, 병원을 세우게 되었습니다.
그곳에서 스무 살의 한 청년을 만났습니다. 이름은 'Joy'였지만, 그의 모습은 거의 초등학생처럼 왜소했습니다. 청진기를 가슴에 대었을 때, 마치 말발굽이 달리는 듯한 거친 심장 소리가 들렸습니다. 그는 죽음의 직전에 서 있었습니다. 한국으로 돌아왔지만, 그 아이를 잊을 수가 없었습니다.
여러 어려움이 있었으나, 하나님께서 하나씩 길을 열어주셔서 마침내 그 아이를 한국으로 데려올 수 있었습니다. 한양대학교 병원과 여러 교수님들이 크게 도와주셨지만, 그의 심장은 너무나 지쳐 있었고 아이는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Joy는 폐로 가는 심장이 막혀 있었고, 간의 상태도 심각했습니다. '심도자' 수술을 시작했습니다. 풍선을 부풀려 막힌 혈관을 뚫는 순간, Joy의 심장이 멈추었습니다. 저는 그 아이를 살려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잠시 후, 멈추었던 심장이 기적처럼 다시 뛰기 시작했습니다. Joy가 살아난 것입니다. 우리는 서로를 껴안고 울었습니다.
그 이후 Joy는 놀라운 속도로 회복되기 시작했습니다. 일어나 걷고, 창백하던 얼굴에 핏기가 돌아왔습니다. 세월이 흘러 다시 라오스를 방문했을 때, 저는 건강해진 Joy를 다시 만나 서로를 껴안고 한참을 울었습니다. 하나님, 하나님의 은혜는 이렇게 살아 움직이는 것이군요. 그렇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은혜는 멈추지 않습니다. 은혜는 흘러 생명을 살리고, 다시 세상을 은혜로 적십니다.
증오의 담을 넘은 은혜
2004년 12월 26일, 인도양에 거대한 쓰나미가 덮쳤습니다. 특별히 인도네시아의 반다아체는 종교적인 증오와 차별로 '담'이 쳐진 곳이었습니다. 구호의 손길조차 그곳을 외면했습니다. 저희가 도착했을 때, 공항에서는 사람만 태우고 약상자는 싣지 못하게 막았습니다.
그런데 절망적인 그 순간, 어느 선교사님의 소개로 대만 의료팀이 버리고 간 새 약들을 발견하게 되었고, 저희는 다행히 치료를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그곳에서 저희는 무슬림을 향한 기독교인들의 증오가 치유되고, 복음으로 그 상처가 아물어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제 이 은혜의 강은 저의 두 아들, 사무엘과 다니엘을 통해서도 계속 흘러가고 있습니다. 아들들은 세계의 의료 취약 지역을 다니며 의료선교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고통받던 해외 환자들이 새 삶을 얻고 있으며, 국내에서도 굳셰퍼드재단이 여러 교회와 함께 의료선교 활동을 전개하고 있습니다.
이 모든 이야기는 결국 "은혜라 쓰고, 빚이라 읽는다"는 한 문장으로 요약됩니다.
사도 바울은 '나는 빚진 자라'고 하였습니다. 저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의 삶에도 여러분만의 실리시가, 여러분만의 Joy가 있을 것입니다. 은혜라 쓰고 빚이라 읽으며, 우리가 받은 그 은혜를 사랑으로 갚아나가는 삶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멈추지 않고, 언제나 우리가 세운 담을 훌쩍 넘어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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