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본문: 열왕기하 20장 1-7절
하나님을 자랑하는 간증의 주인공이 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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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다니엘기도회 1일차 말씀] 무릎으로 승부하는 사람 (김은호 목사)
1. 다니엘 기도회: 연합과 임재의 자리
우리가 그토록 사모하고 기도로 준비했던 2025 다니엘 기도회가 이제 시작되었습니다. 다니엘 기도회는 이 땅의 교회와 성도들이 교단과 교파를 초월하여 마음을 같이하여 함께 부르짖어 기도하는 연합 기도회입니다.
우리는 오늘부터 21일 동안 그리스도의 한 몸으로 동일한 찬양을 하나님께 드리고, 선포되는 동일한 말씀을 함께 받으며, 그 말씀을 붙들고 부르짖어 기도하게 될 것입니다.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지금 내가 부르고 있는 이 찬양을 나만이 아니라, 우리 교회만이 아니라, 16,600개의 교회와 50여만 명의 성도들이 함께 부르고 있습니다. 우리가 부르는 이 찬양이, 그리고 말씀을 붙들고 함께 기도하는 우리의 기도가 하나님의 보좌에 상달된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보좌에 앉으신 우리 주님께서 얼마나 기뻐하시겠습니까?
그러므로 다니엘 기도회는 어느 기도회와 달리 강력한 하나님의 임재가 있고, 상상을 초월한 기도의 응답이 있으며, 역전의 은혜가 있는 줄로 믿습니다.
2. 기도의 자세: 하나님께만 집중하라
그런데 21일 동안 기도하면서 우리가 유념해야 할 것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께 집중하는 것입니다.
가끔 성도들을 보면 하나님께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강사에게 집중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강사를 평가합니다. 끝나고 나가면서 좋았니, 안 좋았니 하며 강사를 평가하는 분들이 있는데, 강사를 평가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강사에게 집중하지 마십시오. 세우신 강사를 통해서 오늘 내게 말씀하시는 그 하나님에게 집중하시기를 바랍니다. 강사가 아무리 위대해도 강사가 위대한 것이 아닙니다. 그 강사를 부르시고, 세우시고, 연단하시고, 훈련하시며, 기도에 응답하시고 역사하신 그 하나님이 위대하신 것입니다.
또 우리가 유념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우리 각자에게는 많은 문제가 있는데, 많은 사람들이 그 자신의 문제에 집착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분들은 21일 동안 자신의 문제와 씨름하느라 기도하지 못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문제만을 붙들고 씨름합니다.
그러나 문제만을 바라보지 마시고, 인생의 풍랑만을 바라보지 마십시오. 여러분의 인생의 풍랑을 잠잠케 하실 수 있는 그 하나님, 그리고 내 인생의 문제를 넘어서 역전의 은혜를 허락하실 그 하나님께 집중하시기를 바랍니다.
3. 믿음의 본질: 하나님과의 '관계'
여러분은 예수를 믿는다는 것을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많은 사람은 예수를 믿는다는 것을 교회를 다니는 것으로만 생각합니다. 그래서 전도할 때 "교회 다니십니까?"라고 묻습니다. 맞습니다. 예수를 믿는 사람은 반드시 교회를 다닐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엄밀하게 말하면,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교회를 다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가 맺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다 '관계'로 말하고 있습니다. 종과 주인의 관계, 왕과 신하의 관계, 신랑과 신부의 관계, 목자와 양의 관계, 그리고 친구의 관계로 말합니다. 왜 하나님은 우리 사이를 관계로 말씀하실까요? 그 관계는 실제이기 때문입니다.
어떤 관계가 맺어지면, 사람들은 그 관계 속에서 동행도 하고, 음식도 함께 나누며, 기쁨과 슬픔도 나누는 실제적인 관계를 맺으며 살아갑니다.
그런데 관계가 맺어졌다고 해서 모든 관계가 다 친밀하고 좋은 것만은 아닙니다. 어떤 부부는 만나기만 하면 으르렁거리며 싸우기도 합니다. 또 어떤 부부는 함께 살아가지만 거의 대화를 하지 않고, 아내는 TV만 보고 남편은 핸드폰만 보는 부부도 있습니다. 아니, 어떤 가정은 자녀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의무감으로 살아가는 부부도 있습니다.
반면에, 어떤 부부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대화를 나눕니다. 틈만 나면 손을 맞잡고 산책하며, 주변 사람들이 시기할 정도로 뜨거운 사랑을 나누며 살아갑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관계를 친밀하고 깊고 뜨겁게 만들어 주는 것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예배이고 기도라고 생각합니다. 여러분, 기도는 관계입니다.
그래서 故 박윤선 박사님은 신학생들에게 늘 "죽도록 공부하고 싱싱하도록 기도하라"고 말씀하셨다고 합니다. 아무리 신앙생활을 오래 했다고 할지라도 기도하지 않으면 썩고 부패하고 냄새가 납니다. 아무리 신앙생활을 오래 했어도 기도하지 않으면 그 영혼이 썩고 부패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 앞에 머무는 이 시간이 많으면, 기도의 무릎을 꿇으면 우리의 영혼이 싱싱해지는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과의 관계가 깊어지고, 이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께로부터 공급되는 생명의 영양분을 공급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기도의 응답보다도 관계가 중요합니다.
오늘부터 시작되는 이 다니엘 기도회를 통해서 하나님과의 관계를 깊고 뜨겁게 회복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렇게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가 회복되면, 우리가 구하는 것이나 생각하는 것에 더 넘치도록 능히 하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4. 무릎으로 승부한 사람, 히스기야
오늘 다니엘 기도의 첫날, 우리는 무릎으로 승부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보았던 한 사람, 유다의 왕 히스기야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히스기야는 인생의 위기와 문제를 만날 때마다 무릎으로 승부하여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드러내었던 사람입니다.
1) 첫 번째 위기: 앗수르의 침략
첫 번째 사건은 기도로 나라를 위기에서 구하여 낸 것입니다. 강력한 앗수르 나라가 유다를 침략해 들어왔습니다. 그때가 언제인가 하면, 히스기아 왕이 개혁을 해서 우상을 다 깨뜨리고 성전을 정화하여 예배가 회복되었을 바로 그때였습니다.
앗수르 군대는 파죽지세로 쳐들어와 예루살렘을 제외한 견고한 모든 성읍, 무려 46개의 성읍을 찬탈하고 20만 명의 포로와 엄청난 조공을 받아갔습니다. 그리고는 마지막 남은 예루살렘을 함락시키기 위해 쳐들어와, 그 막강한 군사력을 의지하여 유다의 군대와 왕을 능멸하고 조롱하며 하나님을 모독하는 말까지 서슴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나라가 풍전등화의 위기에 놓였을 때, 히스기아가 했던 것은 기도의 무릎을 꿇은 것이었습니다.
[히스기야의 기도 방식 1: 성전에서 기도하라]
그는 어떻게 기도했습니까? 첫째로, 여호와의 전에 들어가서 기도했습니다. 이사야 37장 1절은 "히스기아 왕이 듣고 자기 옷을 찢고 굵은 베옷을 입고 여호와의 전으로 갔고"라고 말씀합니다. 그는 극심한 분노와 슬픔, 회개의 표시로 자기 옷을 찢고 굵은 베옷을 입고 성전으로 들어갔습니다. 또한 14절과 15절을 보면, 성전에 들어가서 앗수르의 랍사게가 보낸 그 조롱의 글을 여호와 앞에 펴놓고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문제를 만나면, 인생 가운데 위기가 다가오면 가장 먼저 기도의 무릎을 꿇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우리 각 사람이 하나님의 성전이기에 어디에서든지 기도할 수 있지만, 할 수만 있다면 주님의 전에 나와서 기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예수님께서도 "내 집은 만민의 기도하는 집"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기도하는 사람들로 북적거려야 합니다. 기도의 부르짖음이 떠나지 않아야 합니다. 그것이 건강한 교회의 모습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전에 조용기 목사님이 "부도난 공장은 조용하다. 교회도 부도난 교회는 조용하다"는 말씀을 하신 적이 있습니다. 교회는 하나님을 찬양하는 소리, 부르짖음의 소리, 귀신들이 떠나가는 소리로 인해 조용할 수 없는 곳이라는 의미입니다. 최근 수도원적인 영성을 강조하며 침묵만을 강요하는 교회들이 있지만, 저는 개인적으로 축제적인 교회를 좋아합니다.
[히스기야의 기도 방식 2: 함께 기도하라]
둘째로, 히스기야는 함께 기도하며 기도를 부탁했습니다. 그는 자신 홀로만 기도한 것이 아니라, 대신들에게도 굵은 베옷을 입게 했습니다. 이는 그들도 함께 기도했다는 것을 말합니다. 더 나아가 당시 하나님의 사람이었던 이사야 선지자에게 "그런즉 바라건대 당신은 이 남아 있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사 37:4)고 부탁했습니다.
성도 여러분, 기도가 무엇인지 아는 자, 기도의 능력이 무엇인지 아는 자, 합심 기도의 위력을 아는 자는 절대로 나 홀로 기도하지 않습니다. 더불어 기도하고, 함께 기도하며, 끊임없이 누군가에게 기도를 부탁합니다. 이것이 바로 기도의 능력을 아는 사람들입니다.
야고보서 5장 14절도 "너희 중에 병든 자가 있느냐? 그는 교회의 장로들을 청할 것이요, 그들은 주의 이름으로 기름을 바르며 그를 위하여 기도할지니라"고 말씀합니다. 사도 바울도 복음 사역의 모든 과정 속에서 자신을 위하여 기도해 줄 것을 강력하게 요청했습니다(엡 6:19). 심지어 우리 예수님도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실 때 "내 마음이 매우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희 여기 머물러 나와 함께 깨어 있으라"(마 26:38)고 제자들에게 기도를 부탁하셨습니다.
이번 다니엘 기도회 기간에 자존심을 내려놓고, 함께 기도할 수 있는 기도의 동역자를 찾으시기를 바랍니다. 그 기도의 동역자와 기도 제목을 나누고, 할 수만 있다면 주님의 전에 나와 마음을 같이하여 부르짖어 기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히스기야의 기도 방식 3: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기도하라]
셋째로, 히스기아는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위하여 기도했습니다. 이것은 굉장히 중요합니다. 이사야 37장 20절입니다. "우리 하나님 여호와여, 이제 우리를 그의 손에서 구원하사 천하만국이 주만이 여호와이신 줄을 알게 하옵소서."
앗수르 왕 산헤립은 "너희 하나님도 다른 나라의 신들처럼 너희를 구하지 못할 것"이라며 조롱했습니다. 그래서 히스기아는 "천하만국으로 주만이 여호와이신 줄을 알게 하옵소서"라고 기도합니다. 그는 모든 열국이 보는 앞에서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구원하심으로써, 여호와 하나님만이 참신이심을 드러내 보이고 싶었던 것입니다.
히스기아는 위기 속에서도 하나님의 이름이 높아지는 것을 더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히스기아 기도의 핵심은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곧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데 있었습니다.
우리의 기도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기도가 아무리 간절해도, 그 기도는 우리가 원하는 것을 얻어내기 위한 수단이 아닙니다. 그 기도의 응답을 통해서 내가 믿는 하나님이 어떤 하나님이신가를 드러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주변에 하나님이 없다고 조롱하는 자들, 아직 주께로 돌아오지 않은 자녀들, 우리를 핍박하는 부모들에게, 이번 다니엘 기도의 응답을 통해서 내가 믿는 하나님이 얼마나 위대하시고 신실하시고 좋으신 분이신가를 드러낼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이 드러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응답: 두려워 말라]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히스기아의 기도에 응답하셨습니까? 먼저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서 말씀을 주셨습니다.
첫 번째 말씀은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이었습니다. 이사야 37장 6절입니다. "나를 능욕한 말로 말미암아 두려워하지 말라."
기도하는 당신의 자녀들에게 하나님 아버지께서 가장 들려주고 싶은 음성은 바로 "두려워하지 말라"입니다. 다니엘이 하나님의 뜻을 알고자 금식하며 기도를 시작했을 때, 천사가 나타나 "큰 은총을 받은 사람이여, 두려워하지 말라. 평안하라. 강건하라. 강건하라"고 했습니다. 기도하는 우리 모두에게 정말 하나님이 들려주고 싶은 음성은 '부자가 되라'가 아니라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왜 두려워하지 말아야 할까요? 그 두려움은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 두려움은 우리의 가정과 인격을 파괴시키고, 우리의 심신을 약하게 만듭니다. 더구나 두려움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것들을 보지 못하게 만듭니다. 두려움에 빠지면 하나님의 은혜를 보지 못합니다. 또한 내가 두려움을 품으면 사탄이 나를 공격하도록 기회를 열어 주는 것이며, 두려움 가운데 있으면 영적인 전쟁을 치를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기드온의 300 용사를 선발할 때에도, 하나님은 가장 먼저 두려워 떠는 자는 돌아가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히스기아의 기도에 응답하시며 가장 먼저 들려주신 음성이 바로 "두려워하지 말라"였습니다.
두 번째 음성은 "앗수르 왕이 죽으리라"는 것이었습니다. 7절입니다. "내가 그를 그의 고국에서 칼에 죽게 하리라." 스스로 교만하여 하나님을 모독하던 앗수르 왕 산헤립을, 하나님께서는 고국으로 돌아가 칼에 죽게 하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이 말씀대로, 산헤립은 자기 고국 땅, 그의 신전에서 두 아들에 의해 칼에 맞아 죽게 되었습니다.
히스기아가 하나님의 전에 들어가 함께 기도하며,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위해 기도했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날 밤에 천사들을 동원하여 앗수르의 군사 18만 5천 명을 쳐 죽이셨습니다. 36절입니다. "여호와의 사자가 나가서 아수르의 진중에서 18만 5천 인을 쳤으므로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본즉 시체뿐이라."
우리는 그날 아침 하나님께서 어떤 방식으로 그들을 치셨는지 알지 못합니다. 하지만 역사가 폴 존슨은 헤로도토스의 역사를 인용하며 "쥐들이 전염시킨 페스트"라고 말하고, 요세푸스는 "하룻밤에 수많은 쥐 떼가 나타나 앗수르 군의 활과 무기를 쪼아 놓았다"고 기록합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온갖 수모를 당하며 성전의 금까지 뜯어다 조공을 바쳐야 했던 유다 백성들이, 하룻밤에 역전의 은혜를 경험하게 된 것입니다. 유쾌, 상쾌, 통쾌한 승리를 거두게 하신 것입니다. 그들은 무릎으로 승부하여 승리의 감격을 누렸고, 그 땅에 평강이 임했습니다. 이렇게 히스기아는 절대 절명의 상황에서 무릎으로 승부하여 나라를 구하였고,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드러낼 수 있었습니다.
2) 두 번째 위기: 죽을 병
두 번째로, 그는 죽을 병에서 고침을 받았습니다.
이런 승리의 감격이 사라지기도 전에, 히스기아는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너는 집을 정리하라. 네가 죽고 살지 못하리라"(왕하 20:1)는 청천벽력과도 같은 말씀을 듣게 됩니다. '집을 정리하라'는 것은 죽음을 준비하라는 말입니다.
그때 히스기아의 나이가 얼마였을까요? 성경적으로 계산해 보면 39살입니다. 한참 일할 젊은 나이에 죽음에 대한 선고를 받았으니 얼마나 앞이 캄캄했겠습니까? 연세가 드신 분들도 암으로 사형 선고를 받으면 쉽게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우리는 히스기아가 왜 이런 병에 걸렸는지, 이 병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지 못합니다. 그보다 중요한 것은, 히스기아가 이 엄청난 인생의 위기를 만났을 때 어떻게 이 문제를 해결받고자 하였느냐는 것입니다. 히스기아는 주저앉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기도의 무릎을 꿇었습니다. 기도를 통해서 문제를 해결받고자 하였습니다.
[히스기야의 기도 방식 1: 벽을 향한 집중]
이번에는 어떻게 기도했습니까? 첫째로, 자신의 낯을 벽으로 향하여 기도했습니다. "히스기아가 낯을 벽으로 향하고 여호와께 기도하여 이르되"(왕하 20:2).
왜 낯을 벽으로 향하여 기도했을까요? 이는 왕으로서 자신이 행할 수 있는 모든 수단과 방법을 내려놓고, "이제 나는 오직 주만을 의지하고, 오직 주만을 바라보겠습니다"라고 하는 강한 의지의 표현입니다. 왕이기에 할 수 있는 많은 행동을 내려놓고, 주님만을 전적으로 의지하겠다는 표현입니다.
이것이 수술도 받지 말고 약도 먹지 말아야 한다는 말은 결코 아닙니다. 수술도 약도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일반 은총입니다. 필요하다면 받아야 합니다. 그러나 히스기아처럼 인간의 힘으로 해결될 수 없는 문제가 아니라고 한다면, 우리도 자신을 온전히 쳐서 복종시키면서 하나님께만 집중하고 하나님만을 의지하며 기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히스기야의 기도 방식 2: 통곡의 기도]
둘째로, 그는 심히 통곡하면서 기도했습니다. 3절입니다. "여호와여, 구하오니 내가 진실과 전심으로 주 앞에 행하며 주께서 보시기에 선하게 행한 것을 기억하옵소서 하고 심히 통곡하더라."
히스기아는 강한 척 하지 않았습니다. 왕으로서의 체면을 따지지 않았습니다. 아주 간절하게 통곡하며 기도했습니다. 우리는 체면을 굉장히 중요하게 여깁니다. 그래서 체면 때문에 사람들 앞에서 식사 기도도 제대로 하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히스기아는 왕으로서의 모든 체면을 내려놓고 심히 통곡하며 기도했습니다.
여기서 '심히 통곡하다'(베케 가돌)라는 말은 '크고 맹렬한 울음, 절제할 수 없는 통곡'을 말합니다. 히스기아는 절망적인 상황 앞에서, 왕의 자존심과 체면을 다 내려놓고 심한 통곡의 기도를 드린 것입니다.
히브리서 5장 7절은 우리 예수님도 이 땅에 계실 때에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고"라고 기록합니다. 여기서 '간구'는 절실하게 도움을 요청하는 기도이며, '소원'은 은혜와 긍휼을 간청하는 기도입니다. 예수님께서도 겟세마네 동산에서 땀방울이 핏방울이 되도록, 모세 혈관이 터져 피가 스며 나올 정도로 간절하게 기도하셨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하나님의 사람들은 한결같이 모두가 눈물로 기도했던 사람들입니다.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보좌를 움직였던 사람들은 모두 눈물의 사람들이었습니다. 한나는 술 취한 여자로 오해받을 정도로 눈물로 기도했고, 다윗은 자신의 죄를 괴로워하며 요가 젖을 정도로 눈물로 기도했습니다. 예레미야는 '눈물의 사람'이라 불릴 정도로 "내 머리는 물이 되고 내 눈은 눈물의 근원이 될꼬"라며 주야로 울었습니다. 디모데 역시 눈물의 사람이었습니다.
성경을 보면, 울며 기도한 사람들은 한결같이 기도의 응답을 받았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어떤 교회가 부흥하고 성장합니까? 수분이 많은 교회, 피와 땀과 눈물이 있는 교회입니다. 메마르고 척박한 땅에서는 식물이 자라지 못합니다. "눈물은 사막에 흐르는 맑은 샘과 같다"는 말이 있습니다. 눈물의 기도가 주님의 보좌를 움직이는 줄로 믿습니다.
[히스기야의 기도 방식 3: 확신의 기도]
셋째로, 그는 응답을 확신하면서 기도했습니다. 이사야 38장 20절입니다. "여호와께서 나를 구원하시리니 우리가 종신토록 여호와의 전에서 수금으로 나의 노래를 노래하리이다."
히스기아는 하나님이 자기 기도를 들으시고 구원해 주실 것을 믿고 확신했습니다. 그래서 "여호와께서 나를 구원하시리니"라고 선포하며, "내가 종신토록 여호와의 전에서 수금으로 나의 노래를 노래하겠습니다"라고 고백합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자기 생명을 연장시켜 주실 것을 의심하지 않고 믿었습니다.
기도의 시간이나 기도의 분량보다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응답에 대한 확신입니다. 기도는 확률이 아니며, 흥정도, 계산도 아닙니다. 그러므로 기도는 내 마음에 확신이 올 때까지 해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나사로를 살리실 때 "아버지여, 내 말을 들으신 것을 인하여 감사하나이다"라고 확신을 가지고 기도하셨습니다.
(술집 주인의 예화: 교회 옆 술집이 망하게 해달라고 기도한 교회와, 그 기도로 불이 났다며 교회를 고소한 술집 주인의 이야기. 재판관 앞에서 "기도한다고 불이 납니까?"라고 말한 목사보다, 기도의 능력을 믿은 술집 주인의 믿음이 더 좋아 보이는 상황을 통해, 우리는 기도의 분량보다 응답을 확신하며 기도하는 것이 중요함을 배웁니다.)
예수님께서도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히스기아는 죽을 병에 걸렸다는 통보를 받았지만, 응답을 확신하며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의 응답: 눈물의 기도]
하나님은 마침내 그 히스기아의 기도에 응답하셨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말씀하셨습니다.
첫 번째 말씀은 이것이었습니다. "여호와의 말씀이 내가 네 기도를 들었고 네 눈물을 보았노라. 내가 너를 낫게 하리니, 네가 3일 만에 여호와의 성전에 올라가겠고"(왕하 20:5).
이번 다니엘 기도회 기간에 육신의 질병을 놓고 기도하는 분들이 많이 계신 줄 압니다. 여러분도 히스기아가 들었던 이 음성, "내가 네 기도를 들었고 내가 네 눈물을 보았노라"는 음성을 들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첫째,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이십니다(시 65:2, 요일 5:14). 둘째, 하나님은 우리의 눈물을 보시는 분이십니다. 여러분이 기도하며 흘리는 눈물을 하나님은 외면하지 않으시고 반드시 보십니다.
여러분, 눈물은 가장 강력한 기도의 언어입니다. 부모는 자녀가 흘리는 눈물을 보면 그냥 지나치지 못합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하나님 아버지도, 하나님의 자녀 된 우리가 흘리는 눈물을 보시면 그냥 지나치실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히스기아처럼 자존심과 체면을 내려놓고 눈물로 기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눈물로 기도하지 못하는 것은 체면 때문일 때가 많습니다. 동양에서는 눈물을 약함과 부끄러움으로 여겨 눈물을 흘려서는 안 된다고 가르칩니다. 하지만 이번 다니엘 기도회만큼은 마음껏 울면서 기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통곡하며 기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어느 교회도 우는 사람을 제지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오히려 눈물 흘리지 못하며 기도하는 것을 부끄럽게 생각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히스기아가 기도하는 소리를 들으셨고, 그가 흘리는 눈물을 보셨습니다. 그러므로 살아가면서 답답하다고 사람들을 찾아가 하소연하며 서러움의 눈물을 흘리지 마십시오. 그럴 시간이 있으면 한나처럼 하나님의 전에 나와 간절히 눈물을 쏟으며 기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인생이 힘들고 괴롭다고 혼자 방에 앉아 술이나 담배에 의지하지 말고, 그럴 시간이 있으면 하나님의 전에 나와 부르짖어 기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기도 소리를 들으시고 여러분의 눈물을 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다 아십니다. 그럼에도 우리가 입술을 벌려 구체적으로 간절히 기도하기를 원하십니다. 그 내용을 몰라서가 아닙니다. 하나님만을 간절히 찾는 그 모습, 오직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그 모습, 하나님께만 집중하는 그 모습 자체를 귀하게 여기십니다.
"눈물의 기도가 눈물을 멈추게 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여러분이 하나님 앞에서 흘리는 그 눈물의 기도가, 여러분의 인생에서 흘리는 눈물을 멈추게 할 것입니다. 하나님이 보시기 원하는 것은 거짓이 없는 여러분의 눈물의 기도입니다.
하나님은 "내가 너의 기도를 들었고 너의 눈물을 보았기 때문에 내가 너를 낫게 하겠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은 히스기아의 생명을 15년이나 연장시켜 주시겠다고 말씀하셨고(왕하 20:6), 앗수르의 손에서 구원하여 성을 보호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징표로 해 그림자를 십 도 물러가게 하셨습니다.
5. 결론: 무릎으로 승부하는 하나님의 사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인생을 살다 보면 히스기아처럼 마주하고 싶지 않은 인생의 위기와 고난을 만날 때가 있습니다. 내 힘과 능력으로는 뛰어넘을 수 없는 인생의 벽을 만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람들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들은 인생의 위기와 고난 앞에서 좌절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무릎을 꿇었습니다. 무릎으로 승부하여 고난과 위기를 돌파했고, 두터운 현실의 벽을 뛰어넘을 수가 있었습니다.
히스기아를 보십시오. 그는 인생의 위기와 고난을 만났을 때, 뛰어넘을 수 없는 현실의 벽을 만났을 때,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좌절하지 않았습니다. 겸손히 무릎을 꿇었습니다. 무릎으로 승부하였습니다. 그래서 풍전등화와 같은 나라를 위기 가운데서 구하여 내었고, 죽음과 질병이라는 절망의 벽을 뛰어넘었습니다. 히스기아는 무릎으로 승부하여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드러내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사람은 머리로 사는 사람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무릎으로 승부하는 사람입니다.
오늘부터 시작되는 이 다니엘 기도회에서, 매일매일 선포되는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붙들고 히스기아처럼 무릎으로 승부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볼 뿐만 아니라, 그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드러내고, 하나님을 자랑하는 간증의 주인공이 다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 하나님께만 집중하는 기도의 시간이 되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는 '다니엘 기도회'라는 특별한 은혜의 장에 함께 모였습니다. 다니엘 기도회는 교단과 교파를 초월하여, 예수님을 믿는 16,600여 개의 교회, 50만 명의 성도들이 한마음으로 부르짖어 기도하는 연합 기도회입니다.
이 거룩한 기간에 우리가 힘써야 할 가장 중요한 자세는 바로 '하나님께 집중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때로 강사에게 집중하여 그를 평가하려 하거나, 혹은 나 자신의 문제에만 갇혀 씨름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기억하십시오. 강사가 훌륭한 것이 아니라, 그를 세우고 그를 통해 역사하시는 하나님이 주인공이십니다. 또한, 우리 인생의 풍랑을 잔잔하게 하실 분은 내 문제가 아니라 오직 하나님 한 분뿐이십니다.
그렇다면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단순히 '교회 다니는 것'일까요?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과의 살아있는 '관계'를 맺는 것입니다.
이 관계는 '실제'이기 때문에 성경은 하나님과 성도의 사이를 여러 관계로 묘사합니다. 하지만 모든 관계가 깊고 아름다운 것은 아닙니다. 부부라 할지라도 서로 싸우며 친밀함이 없는 '투견 부부'가 있는가 하면, 금슬이 좋고 깊은 교제를 나누는 부부도 있습니다.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를 깊고 싱싱하게 만드는 것, 그것이 바로 예배와 기도입니다. 고 박윤선 박사님은 "죽도록 공부하고 싱싱하도록 기도하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무리 신앙생활을 오래 했어도 기도하지 않으면 그 영혼은 썩고 냄새나게 됩니다. 그러나 기도하면, 하나님께로부터 공급되는 생명의 영양분 때문에 그 영혼이 다시 싱싱해집니다.
이번 기도회는 기도 응답 이전에, 하나님과의 관계가 온전히 회복되는 축복의 시간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오늘 우리는 인생의 모든 위기를 '무릎'으로 돌파하여, 마침내 하나님을 자랑하는 간증의 주인공이 되었던 한 사람, 유다 왕 히스기야를 만나보고자 합니다.
2. 무릎으로 승부한 사람, 히스기야
히스기야 왕은 인생의 위기와 문제를 만날 때마다 오직 무릎으로 승부했던 사람입니다.
첫째, 기도로 나라의 위기를 구해냈습니다.
히스기야가 우상을 깨뜨리고 예배를 회복했을 때, 앗수르가 유다를 쳐들어왔습니다. 46개의 성읍이 찬탈당하고 20만 명이 포로로 잡혀갔습니다. 마침내 앗수르의 군대장관 랍사게는 예루살렘을 포위하고 하나님을 모독했습니다.
이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히스기야는 어떻게 기도했습니까?
여호와의 전으로 들어가 기도했습니다.
그는 랍사게가 보낸 조롱의 글을 하나님 앞에 펴놓고 성전에서 기도했습니다. (사 37:14-15) 하나님의 사람은 위기를 만나면 기도의 무릎을 꿇어야 합니다. 우리는 어디서나 기도할 수 있지만, 가능하면 '교회당'에 나와 부르짖어야 합니다. 교회는 기도하는 성도들로 북적여야 합니다.
함께 기도하며 기도를 부탁했습니다.
그는 혼자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대신들에게 굵은 베옷을 입혀 함께 기도하게 했고, 이사야 선지자에게 기도를 부탁했습니다. 기도의 능력을 아는 사람은 '합심 기도'의 능력을 압니다. 예수님도 "나와 함께 깨어 있으라"(마 26:38)고 기도를 부탁하셨고, 바울도 "나를 위하여 구할 것은"(엡 6:19)이라며 기도를 요청했습니다. 이번 기도회는 우리의 기도의 동역자들과 함께 부르짖는 시간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위해 기도했습니다.
그의 기도의 핵심은 이것이었습니다. "천하 만국이 주만이 여호와이신 줄을 알게 하옵소서!" (사 37:20) 우리 기도의 목적도 단순히 내가 원하는 것을 이루는 것이 아니라, 나의 응답을 통해 '하나님이 하나님 되심'을 드러내는 것이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이 기도에 어떻게 응답하셨습니까?
먼저, 이사야를 통해 "두려워하지 말라"(사 37:6)는 말씀을 주셨습니다. 두려움은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 아닙니다. 두려움은 우리의 인격과 가정을 파괴하여 약하게 만들고, 사탄이 공격할 기회를 열어줍니다.
그리고 그날 밤, 여호와의 사자가 앗수르 군사 185,000명을 쳤습니다. (사 37:36) 앗수르 왕 산헤립은 고국으로 돌아가 그의 신전에서 두 아들의 칼에 맞아 죽었습니다. 무릎으로 승부할 때, 하나님은 상상할 수 없는 역전의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둘째, 죽을병에서 고침을 받았습니다.
오늘 본문 1절입니다. "그때에 히스기야가 병들어 죽게 되매... 너는 집을 정리하라 네가 죽고 살지 못하리라" 당시 그의 나이 39세로 추정됩니다. 나라를 구한 영웅에게 닥친 사형선고였습니다.
그러나 히스기야는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고, 다시 한번 기도의 무릎을 꿇었습니다.
낯을 벽으로 향하여 기도했습니다. (2절)
이것은 왕으로서 자신이 기댈 수 있는 모든 수단과 방법을 내려놓고, 오직 하나님만 전적으로 의지하겠다는 '결단의 표현'이었습니다. 이는 병들었을 때 약도 먹지 말고 수술도 받지 말라는 뜻이 아닙니다. 이 땅의 모든 일반 은총을 누리되, 우리의 마음 중심은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며 기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심히 통곡하며 기도했습니다. (3절)
그는 강한 척하지 않았고 체면을 차리지도 않았습니다. '통곡하다'는 말은 '베키'(울음)와 '가돌'(큰, 위대한)의 합성어로, '크고 격렬하며 절제할 수 없는 울부짖음'을 뜻합니다. 예수님도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습니다." (히 5:7) 한나, 다윗, 디모데 모두 눈물로 기도했습니다. 성경에서 울며 기도한 사람들은 한결같이 응답을 받았습니다. 피와 땀과 눈물이 있는 교회가 부흥합니다. 우리의 눈물의 기도가 주님의 보좌를 움직입니다.
응답을 확신하며 기도했습니다.
그는 남은 생을 여호와의 전에서 하나님을 찬양하며 살겠다고 다짐하며 기도했습니다. (사 38:20) 기도는 확률이나 흥정이 아닙니다. 기도는 내 마음에 '받은 줄로 믿으라'는 확신이 올 때까지 하는 것입니다. (막 11:24)
3.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눈물을 보시는 하나님
히스기야의 이 절박한 기도에 하나님은 즉각 응답하셨습니다.
첫째, "내가 네 기도를 들었고 네 눈물을 보았노라" (5절)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요일 5:14), 우리의 '눈물을 보십니다.' 성도 여러분, 답답하다고 사람을 찾아가 하소연하며 서러움의 눈물을 흘리지 마십시오. 혼자 소주 마시며 한탄하지 마십시오. 하나님 전에 나와 눈물을 쏟으며 기도합시다.
눈물의 기도는 우리의 눈에서 눈물을 멈추게 한다.
눈물의 기도가 눈물을 멈추게 한다
둘째, "내가 너를 낫게 하리라" (5절)
하나님은 구체적으로 "삼일 만에 네가 여호와의 성전에 올라가겠고... 네 날을 십오 년을 더할 것이라"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인생에 문제없는 날이 하루라도 있었습니까? 우리는 날마다 위기를 만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람은 인생의 위기와 고난 앞에서 좌절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머리로 살지 않고, 무릎으로 승부합니다.
이번 다니엘 기도회는 우리가 무릎으로 승부하는 시간입니다. 히스기야처럼 낯을 벽으로 향하고, 심히 통곡하며,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부르짖읍시다.
기도함으로 이 고난을 뛰어넘고, 마침내 "하나님이 하셨습니다!"라고 외치며 하나님을 자랑하는 간증의 주인공이 되시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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