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본문 : 고린도후서 1:3-4
찬송하리로다 그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이시요 자비의 아버지시요 모든 위로의 하나님이시며
우리의 모든 환난 중에서 우리를 위로하사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받는 위로로써 모든 환난 중에 있는 자들을 능히 위로하게 하시는 이시로다
강사: 김혜진 집사
- 옥소폴리틱스 프로젝트 매니저
- 전) 로블록스 프로젝트 매니저
- 「실리콘밸리를 그리다」 저자
(어릴 때부터 중고등학교 영어 교사가 되고 싶어서 연세대학교에서 영어교육학 & 영어영문학 전공 후에 2급 정교사 자격증 취득했으나, 결혼 후 박사과정을 시작하는 남편과 함께 텍사스 오스틴으로 이주하였다가, 이제는 귀국함)
요약
안녕하세요. 제 삶을 관통해 온 상처와 회복의 이야기를 나누고 싶습니다.
저는 모태신앙으로 자랐지만, 어린 시절은 정신적, 육체적 상처로 가득했습니다. 엄격하고 폭압적인 가정환경 속에서 저는 항상 두려움에 떨었고, 하나님을 저를 벌하고 시험하시는 분으로 오해하게 되었습니다. 매일 밤 "저를 빨리 하늘로 데려가 달라"라고 기도할 만큼 깊은 어둠 속에 있었습니다.
대학 진학 후 독립했지만, 억눌렸던 감정들은 우울증으로 터져 나왔습니다. 하지만 결혼 전 "너도 예수님처럼 혜진이를 죽기까지 사랑하라"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저를 깊이 사랑해 준 남편을 통해 복음의 본질을 깨닫는 전환점을 맞았습니다. 에스겔 말씀을 통해 "큰 물가에 뿌리내린 아름다운 나무"라는 새로운 정체성도 받았습니다.
하지만 회복의 길은 쉽지 않았습니다. 심각한 정신적 어려움으로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고, 그곳에서 처음으로 제 상처를 판단 없이 받아들여지는 경험을 했습니다. 이 경험은 사람과 하나님에 대한 신뢰를 서서히 회복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결혼 후 11년 동안, 7번의 임신과 5번의 유산이라는 가슴 아픈 시간을 보냈습니다. 특히 22주에 조산한 아이를 3시간 만에 떠나보내야 했던 순간은 말로 다 할 수 없는 고통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모든 과정이, 저도 모르게 제 안에 있던 왜곡된 양육 방식을 리셋하고 상처를 대물림하지 않도록 저를 준비시키는 시간이었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놀랍게도 문과 출신에 영어도 서툴렀던 제가 실리콘밸리에서 커리어를 쌓아가는 기적 같은 일도 경험했습니다. 남편이 저로 인해 힘들 때 받았던 "별들보다 혜진이의 미래가 더 빛날 것"이라는 예언의 말씀이 제 삶에서 이루어지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제 저는 제 어린 시절의 상처, 신앙의 회복, 고통스러운 상실, 그리고 예상치 못했던 커리어의 경험을 바탕으로 다른 이들을 돕고 있습니다. 진로 문제로 찾아온 사람들의 내면의 상처를 함께 나누고, 임신과 유산으로 힘들어하는 여성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주며, 제가 받은 위로를 전하는 '상처 입은 치유자'의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제 이야기를 통해, 어두운 상황 속에서도 우리를 치유하기 원하시는 하나님을 신뢰하며 함께 걸어갈 때, 그 위로가 또 다른 누군가에게 흘러갈 수 있음을 보여드리고 싶습니다.

이 자리에 서기까지의 망설임과 하나님의 부르심
저는 작년까지 미국 실리콘밸리 지역의 IT 회사에서 근무하며 아이들을 양육하다가,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따라 가족 모두가 한국으로 돌아와 평범하게 일하며 살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다니엘 기도회에 부어주신 은혜가 얼마나 큰지 저 역시 첫날부터 기도회에 동참하며 그 은혜를 경험하고 있습니다. 이 자리에 계신 여러분께서도 큰 은혜를 받고 계시리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은혜를 받음과 동시에, 첫날, 둘째 날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떨리는 마음을 감출 수 없었습니다. 마치 중요한 발표를 앞둔 사람처럼 긴장감이 더해졌기 때문입니다. 드디어 오늘 제 차례가 되었는데도 여전히 꿈만 같습니다.
저를 이 자리에 불러주신 것에 깊이 감사드리지만, 특별히 유명하거나 내세울 것이 없는 평범한 제가 혹시 다니엘 기도회에 누를 끼치지는 않을까 하는 부담감이 컸습니다. 그러면서 하나님께서 왜 저를 이 자리에 부르셨을까 깊이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다니엘 기도회 마감 이틀 전, 하나님께서는 꿈을 통해 제게 '빛으로 나아가라!'는 말씀을 주셨습니다. 완벽하고 대단한 삶이나 거룩한 신앙인의 모습이 아니라, 부족한 제 모습 그대로 빛으로 나아오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특별하거나 유명한 사람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며, 우리 모두가 그분의 귀한 자녀이기에, 저의 어떠한 모습과도 상관없이 오늘 저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도구로 쓰임 받을 것이라는 믿음을 주셨습니다.
제가 살면서 오늘 두 번째로 간증을 하게 되었습니다. 첫 번째 간증은 작은 스튜디오에서 녹화로 진행되었기에, 이렇게 많은 분 앞에서 실시간으로 말씀을 나누는 것은 처음입니다. 혹시 제가 말씀을 전하는 과정에서 부족한 점이 있더라도 너그러이 이해해 주시기를 바라며, 오늘 이 시간 오직 역사하실 하나님만 바라보게 되기를 소망합니다.
위로의 하나님, 상처 입은 치유자
오늘은 '큰 물가에 뿌리내린 나무'라는 제목으로, 고린도후서 1장 3절에서 4절 말씀을 가지고 간증을 준비했습니다. 죽음 말고는 아무런 희망이 없던 제 인생을 하나님께서 어떻게 회복시켜 주셨는지, 그리고 망가졌던 저의 자아상을 어떻게 바꾸어 가셨는지 그 과정을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아까 본문 말씀을 읽었지만, 한 번 더 함께 읽고 시작하겠습니다.
"찬송하리로다, 그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이시요, 자비의 아버지시요, 모든 위로의 하나님이시며 우리의 모든 환난 중에서 우리를 위로하사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받는 위로로써 모든 환난 중에 있는 자들을 능히 위로하게 하시는 이시로다. 아멘."
이 말씀처럼, 오늘 위로하시는 하나님을 경험하시고 우리가 그 위로를 받아 다른 이들을 위로하는 자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상처로 얼룩진 어린 시절과 하나님에 대한 오해
이 본문 말씀은 하나님을 '위로의 하나님', '자비의 하나님'으로 증거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저도 이 말씀에 깊이 공감하며 고백할 수 있지만, 이 말씀을 마음으로 온전히 받아들이기까지는 수십 년의 시간이 걸렸습니다.
저는 모태신앙으로 어릴 때부터 교회에 다녔으나, 정신적으로 또 육체적으로 많은 상처를 받았던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그로 인해 하나님과 부모님을 동일선상에 놓고 하나님에 대해 굉장히 큰 오해를 하고 있었습니다. 저희 부모님 역시 상처가 많은 분들이셔서, 자녀를 잘 양육하고 싶은 마음은 크셨으나 감정을 올바르게 처리하는 데 어려움을 겪으셨습니다.
저는 어린 시절 분노, 우울증, 폭력과 폭언에 지속적으로 노출되며 항상 긴장과 두려움 속에서 살아야 했고, 이는 자연스럽게 하나님 아버지를 다음과 같은 분으로 오해하게 만들었습니다. 불꽃같은 눈동자로 저를 언제나 지켜보시다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벌하시고 쓸어버리시는 분. 하나님을 사랑하고 부모를 공경하라는 명령에 순종하지 않으면, 비록 하나님의 자녀라 할지라도 언제든 지옥 불에 던져버리시는 분. 저처럼 쓸모없고 벌레만도 못하며 아무 소망이 없는 죄인을 그나마 마음이 넓으셔서 봐주시는 분. 또한, 모든 것을 하실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제가 고통받고 있을 때 그저 지켜만 보시거나, '네가 그 상황에서도 나를 계속 사랑하고 믿음을 잃지 않나 보자'라며 저의 믿음을 시험하시는 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라는 단어조차 입 밖에 내기 싫었고, 세상에 의지할 분은 하나님밖에 없다는 생각에 하나님을 완전히 믿고 싶다가도, 동시에 미운 마음에 도망치고 싶은 상반된 감정들로 인해 극심한 혼란을 겪었습니다.
성경에 기록된 좋으신 하나님에 대한 말씀들은 저와 아무런 상관이 없는 이야기로만 들렸습니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부터 대학생이 될 때까지, 저는 매일 밤 숨죽여 울며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제발 내일은 아무 일 없이 무사히 지나가게 해 주세요. 그리고 하실 수 있다면 저를 빨리 하늘로 데려가주세요. 내일의 태양을 보지 않게 해 주세요."
하지만 저의 기도는 이루어지지 않았고, 어린 저는 가출이나 반항조차 할 수 없는 상황에서 하루하루를 지옥같이 버텨냈습니다.
이중적인 삶과 깊어지는 우울증
삶의 무게가 너무 무거웠기에, 천진해야 할 아이의 얼굴에 저는 늘 주눅이 들어 있었고 표정 또한 매우 어두웠습니다. 지금의 제 미소는 본래의 것이 아니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을 따라 하며 필사적으로 노력하고 겉모습을 포장하며 만든 것이었습니다.
성인이 되어 심리학 책들을 보면서, 부모의 다툼이나 학대를 경험한 아이들은 그것이 자기 탓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 역시 모든 학대의 상황이 제 책임인 것만 같아 '나는 가치 없는 아이'라는 생각과 큰 죄책감에 시달렸습니다. 하지만 아이인 저에게는 그 상황을 해결할 힘이 없었고, 그로 인해 자기혐오와 자기 학대가 극심해졌습니다.
제 자신이 보기 싫어 거울조차 기피했으며, 손과 얼굴 피부를 긁고 뜯어 상처를 내곤 했습니다. 그 상처들은 아직도 제 몸에 남아있습니다. 사람과 안정적인 애착을 형성하지 못하다 보니 인형이나 물건, 반려견에게 깊은 애착을 갖게 되었고, 항상 불안과 긴장 속에서 정신적으로 위태로운 시절을 보냈습니다.
저의 유일한 숨 쉴 수 있는 곳은 학교였습니다. 집에서 탈출할 유일한 방법은 공부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집에서는 무엇을 해도 상황이 바뀌지 않았지만, 학교에서는 공부를 열심히 하면 성적이 올랐고, 친구들에게 잘해주면 우정이 생겼습니다. 선생님들께서는 저의 노력을 가상히 여겨 도움을 주셨고, 저는 그 안에서 자신감을 얻어갔습니다.
그렇게 매일 밤 죽음을 생각하는 저와, 학교에서의 밝고 모범적인 저라는 두 자아 사이의 괴리는 점점 커졌습니다. 저의 어두운 모습을 누구에게도 들키고 싶지 않았기에, 저는 더욱 견고한 장벽을 쌓고 이중적인 생활을 이어갔습니다. 그것이 제가 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습니다.
스무 살이 되어 집에서 멀리 떨어진 대학에 진학하며 자취를 시작했습니다. 가족과 떨어지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줄 알았지만, 긴장이 풀리자 억눌렀던 감정들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우울증은 심해졌고, 낮은 자존감과 깊은 상처들은 일상과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계속 저를 가로막았습니다.
밖에서는 장학금을 받고 아르바이트를 하며 사람들과 잘 지내는 듯 보였지만, 집에 돌아와 현관문을 닫는 순간 주저앉아 몇 시간이고 소리 없이 울었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집에서 탈출하겠다는 목표 하나만 보고 달려왔기에, 저는 정서적으로 성장할 기회가 없었습니다. 시야가 좁고 세상 물정을 몰랐기에 이해할 수 없는 일들 앞에서 인생은 '산 넘어 산'처럼 느껴졌습니다.
너무나 지치고 고달픈 마음에 "제발 저 좀 빨리 데려가 주세요"라는 기도를 반복했습니다. 대학생이 되어 연애를 시작했지만, 안정적인 애착과 신뢰 관계를 맺어본 경험이 없었기에 사랑의 관계를 맺는 것은 너무나 어려웠습니다. 친구들에게는 좋은 모습만 보이며 저를 포장할 수 있었지만, 가까운 연인 관계에서는 그것이 불가능했습니다.
좋은 친구들이 헌신적인 사랑을 주었음에도, 저는 그것을 믿지 못하고 계속 상대를 시험하고 상처를 주는 패턴을 반복했습니다. 관계가 끝날 때마다 "너 같은 사람을 세상 누가 좋아하겠냐"는 어릴 적 들었던 말들이 떠오르며, '이 세상에 나를 사랑해 줄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부정적인 믿음만 굳어져 갔습니다. 몸은 대학생이었지만, 정서적으로는 어린아이인 채로 연애 흉내만 내고 있었습니다.
인생의 전환점, 남편을 통해 만난 복음
10년 넘게 매일 울며 드렸던 기도에 아무 응답이 없으시던 하나님께서, 제 인생에 역사하시기 시작했습니다. 현재 제 남편이 된 남자친구와 교제하게 되었는데, 제가 또다시 과거의 연애 패턴에 갇혀 관계를 망칠 것을 아셨는지 하나님께서는 처음부터 쐐기를 박고 시작하셨습니다.
저와 남편 모두 평범한 신앙생활을 해왔고 신비한 체험을 한 적이 없었는데, 남편이 기도 중에 하나님과 대화를 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남편에게 "네가 예전에 중학교 수련회에서 배우자 기도를 한 적이 있지? 그 배우자를 내가 준비했는데, 그게 바로 혜진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남편은 그 말씀에 크게 기뻐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이어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네가 좋은 배우자를 주시면 평생 하나님을 전하는 사람으로 살겠다고 약속했지? 그러니 그 약속을 지켜라." 우리 모두 뜨겁게 기도하며 서원 기도를 할 때가 있지만, 그것을 다 기억하지는 못합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은 작은 기도도 놓치지 않고 다 기억하고 계셨습니다.
남편이 10년도 더 지난, 기억도 잘 나지 않는 기도를 두고 말씀하시는 하나님께 당황하자, 하나님께서는 "이제 혜진이에게 가서 복음을 전해라"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모태신앙이었기에, 남편은 이 상황을 이해하기 어려웠지만 일단 제게 전화를 걸어 어색하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사랑하셔서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저는 이미 다 아는 이야기를 한다고 생각하며 건성으로 들었습니다. 남편이 다시 하나님께 "혜진이가 복음을 이미 알고 있다는데요?"라고 기도하자, 하나님께서는 "복음이 뭐니?"라고 되물으셨습니다. 남편이 "예수님이 우리를 죽기까지 사랑하셔서..."라고 대답하려는 순간,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래! 그러니까 너도 예수님처럼 그렇게 혜진이를 죽기까지 사랑하고, 혜진이를 위해서 죽어라."
그때는 저희 둘 다 그 말씀의 깊은 뜻을 다 이해하지 못했지만, 돌이켜보면 하나님께서는 저를 죽기까지 사랑한 남편을 통해 당신의 깊은 사랑을 경험하게 하시고, 그것을 통해 저와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시키려 하셨던 것입니다. 그것이 저에게는 진정한 복음이었습니다.
'파수꾼'과 '큰 물가에 뿌리내린 나무'라는 정체성
연애 기간에도 많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때마다 신기한 일들을 보여주시며 저희 관계를 지켜주셨습니다. 어느 날, 남편과 그리 친하지 않은 한 교회 친구가 갑자기 남편에게 연락해 '겔 317'이라는 이미지가 떠올랐다며 만나자고 했습니다. 저희의 연애 사정도 모르는 그 친구와 저희 셋은 어색하게 앉아 성경을 펴 들었습니다.
'겔 3.1.7'이었는데, 콜론(:)이 없었기에 두 구절을 모두 읽어보기로 했습니다. 먼저 에스겔서 3장 17절 말씀입니다. "인자야, 내가 너를 이스라엘 족속의 파수꾼으로 세웠으니 너는 내 입의 말을 듣고 나를 대신하여 그들을 깨우치라." 이 말씀을 읽는 순간, 연애 초에 남편에게 하셨던 "하나님 전하는 사람으로 살겠다"는 약속이 떠올라 소름이 돋았습니다.
몇 달 뒤, 하나님께서는 이 말씀을 실제로 이루기 시작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저희 가족이 믿음이 약하고 상처가 많아 당신의 음성을 듣지 못하자, 남편을 통해 저희 부모님께 하실 말씀을 전하게 하셨습니다. 남편이 받아 적어 이메일로 보낸 그 편지에는 저희도 모르는 부모님의 과거 이야기들이 담겨 있었고, 이는 하나님께서 불러주셨다고밖에 설명할 수 없었습니다. 그렇게 하나님은 남편을 저희 집에 '파수꾼'으로 세우시고 몇 년간 당신의 말씀을 전하게 하셨습니다.
이어서 읽은 에스겔서 31장 7절 말씀은 이러했습니다. "그 뿌리가 큰 물가에 있으므로 그 나무가 크고 가지가 길어 모양이 아름다우매."
이 말씀은 바로 저에게 주신 말씀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제 마음에 "혜진아, 너는 평생 너 자신을 혐오하고 가치 없는 사람이라 여겼지만, 너는 내가 큰 물가에 심은 아름다운 나무란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오해로 좋은 말씀들을 저와 상관없는 것으로 여겼던 제가, 처음으로 저를 위한 말씀을 받게 된 것입니다. 그때부터 '큰 물가에 뿌리내린 나무'라는 정체성이 제 마음속에 자라나기 시작했습니다.
텍사스에서의 적응과 정신병원에서의 치유 경험
이후에도 많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결혼을 하고 남편의 박사 과정을 위해 미국 텍사스 오스틴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그곳에서 저의 우여곡절 많은 커리어 여정이 시작되었습니다.
저는 한국에서 영어 교육학과 영문학을 전공했지만, 막상 미국에 가니 말이 한마디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현지에서 직접 부딪혀야만 알 수 있는 용어들이나 사회 시스템, 문화적 이해가 부족하니 영어가 잘 들리지도, 제 의사를 표현하기도 어려웠습니다. 영어 교사의 꿈을 접고,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또다시 공부밖에 없었습니다. 문헌정보학, 생물학, 소프트웨어 개발, 간호학까지 몇 년간 쉬지 않고 공부했습니다.
새로운 공부와 교회에서의 좋은 만남들로 행복한 신혼을 꿈꿨지만, 제 삶의 근본적인 문제는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저를 비난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지만, 20년 넘게 들어온 파괴적인 메시지와 어그러진 자아상이 이제는 제 안에서 스스로 재생산되고 있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고통스러운 상황에서 벗어나려 평생을 노력했음에도, 저는 제 부정적인 자아상을 확인시켜 주는 환경 속에서 오히려 안도감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조금 행복해질 것 같으면 '너 같은 사람은 이런 삶을 살 자격이 없어'라는 생각에 사로잡혔고, 좋은 상황을 일부러 무너뜨리곤 했습니다. 성과가 좋아도 운이 좋았을 뿐이라고 생각하며 늘 불안에 떨었습니다. 여전히 밖에서는 멀쩡하게 생활하다가도, 집에 돌아오면 바닥까지 무너져 자살을 시도하는 등 괴로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결국 저는 정신병원에 입원하게 되었습니다. 저희 병동에는 저와 비슷하게, 겉은 멀쩡해 보이지만 속은 곪아있고 자기 파괴적인 성향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있었습니다. 그 안에서 유일한 외국인이었던 저는 영어도 서툴러 잘 적응할 수 있을까 걱정했지만, 그곳에서 하나님의 천사들을 만났습니다.
환자들과 의료진 모두가 제게 너무나 친절했습니다. 그들과 치료를 받는 과정에서 아무도 저를 이상하게 보거나 무시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다가와 손을 잡아주고 "정말 힘들었겠다"며 안아주었습니다. 그때 저는 처음으로 마음을 열고 제 속에 숨겨왔던 이야기들을 꺼내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그 과정은 쉽지 않았습니다. 20년 넘게 견고하게 쌓아온 마음의 장벽 속에 갇힌 아픈 기억들을 어디서부터 꺼내야 할지 몰랐습니다. 내면을 들여다보는 것이 두려웠고, 내면화된 폭언들은 무엇이 제 생각이고 무엇이 제가 들었던 말인지조차 구분하기 어렵게 만들었습니다. 처음 말을 시작했을 때는 앞뒤도 맞지 않았습니다.
어떤 기억들은 말하는 도중에 트라우마 반응을 일으켜 온몸이 떨리고 눈물이 쏟아졌습니다. 하지만 주위에 있던 사람들은 저를 판단하지 않고, "나도 그 마음 안다", "얼마나 힘들었니"라는 눈빛으로 저를 바라봐 주었습니다. 그 순간 제 주위의 공기가 포근해지고 마음에 안정감이 밀려왔습니다.
저의 부족한 존재 자체를 품어주는 환경 속에서 사람에 대한 믿음이 자라나기 시작했습니다. 병원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따뜻하고 현명한 이들이었습니다. 그룹 상담을 통해, 그들 역시 다양한 학대 속에서 고통을 밖으로 터뜨리지 못하고 홀로 견디다 무너진 사람들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와 마찬가지로 그들은 작은 문제에도 크게 자책하고 절망했으며, 다른 사람에게 싫은 소리 한마디 못하고 인정받기 위해 애쓰며 살아온 모범생들이었습니다. 저희는 서로의 아픔에 깊이 공감하며 함께 눈물을 흘렸습니다.
며칠 동안 제 속의 감정들을 표현하는 연습을 하면서, 어둠 속에 있던 상처들을 좇아 객관적으로 바라볼 용기를 얻게 되었습니다. 사람에 대한 신뢰가 없었기에 하나님조차 제대로 믿지 못했던 저는, 안전한 환경에서 온전히 위로받는 경험을 통해 하나님에 대한 신뢰도 서서히 회복하게 되었습니다.
영적 부모와의 만남과 세례를 통한 회복
퇴원 후에도 남편과 상담사, 동역자들의 도움으로 회복의 과정을 이어갔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좋은 책들과 영상을 통해 저를 가르치셨고, 저는 제 마음을 글로 표현하는 연습을 꾸준히 했습니다. 그 15년의 긴 과정을 통해 지금 여러분 앞에서 이야기할 수 있는 상태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미국에서의 적응 과정은 쉽지 않았지만, 하나님께서는 좋은 사람들을 많이 붙여주셨습니다. 그중 저의 영적 부모님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미국 교회에 처음 간 날, 저희 앞에 앉아계시던 백인 노부부께서 저희 손을 잡으시며 "우리가 너희의 영적 엄마, 아빠가 되어줄게"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랫동안 교회에서 사역하신 장로님 부부셨던 그분들은, 그날 이후 매주 저희와 성경 공부를 하고 명절마다 저희를 초대해 주셨습니다. 제가 위기의 순간을 겪을 때마다 함께 달려와 울어주고 도와주셨던 진정한 영적 부모님이셨습니다.
이런 고마운 분들 덕분에 저는 웃음을 되찾았고, '나는 괜찮은 사람이고 사랑받을 만한 사람이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은 "여보, 내가 하루 종일 울지 않고 행복하다고 느끼면서 살 수 있네?"라며 놀라워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던 중 교회에서 세례식 공고를 보게 되었고, 남편과 저는 이미 세례 교인이었지만 다시 세례를 받기로 했습니다. 수백 명의 성도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야외에서 진행된 세례식은 축제와 같았습니다. 제가 물에 들어갔다가 나오면서 눈을 떴을 때, 눈부신 햇빛이 쏟아졌습니다. 그 순간은 마치 현실이 아닌 천국과 같이 느껴졌으며, 제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내가 다시 사는구나' 하는 깊은 깨달음이 밀려왔습니다.
그 이후, 저의 생각의 방향이 바뀌기 시작했고 극단적인 생각들도 많이 사라졌습니다. 제 내면의 아이는 사랑을 받으며 단단한 어른으로 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텍사스 오스틴에서의 격동적인 2년 반을 보낸 후, 저희 부부는 극적인 사건을 통해 남편이 취업하게 된 실리콘밸리로 이사를 가게 되었습니다.
11년간의 임신과 유산, 고통을 통한 깨달음
삶이 나아지면서 저는 예쁜 가정을 꾸리고 싶어 졌습니다. 이전에는 불행을 대물림할까 두려워 아이를 갖는 것을 포기했었지만, 회복되면서 미래를 꿈꾸게 된 것입니다. 이때부터 저를 엄마로 준비시키시는 하나님의 역사가 시작되었습니다.
결혼 4년 만에 첫 임신을 했지만, 11주 차에 계류 유산 판정을 받았습니다. 같은 시기에 임신했던 친구가 건강한 아이를 낳는 모습을 보며 축복하는 동시에 깊은 괴로움에 빠졌고, 그 아픔을 잊기 위해 공부에 몰두했습니다.
2년 후, 수많은 검사와 시도 끝에 두 번째 아이를 갖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22주가 되던 12월 31일 새벽, 양수가 터졌습니다. 병원에서는 아이가 살 가망이 없으니 수술로 아이를 보내는 것과, 혹시 진통이 멈추면 24주까지 기다렸다가 집중치료실로 보내는 두 가지 선택지를 제시했습니다. 24주 이전에 태어난 아이는 생존 확률이 희박하고, 24주를 넘겨도 장애 확률이 90%가 넘는다는 설명이 뒤따랐습니다.
아이의 심장이 건강하게 뛰고 있는 상황에서 저희는 생명을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 아이에게 장애가 생겨도 괜찮으니 살아만 있게 해 주세요." 배에 손을 얹고 기도하자, 몇 시간 동안 지속되던 진통이 기적적으로 멈췄습니다.
그 시간 동안 저희 부부는 부모가 되는 것에 대해 많은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저는 지난 6년간 피나는 노력으로 상처를 회복하려 애썼지만, 엄마가 될 준비는 아직 한참 멀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저는 '나는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애썼는데, 내 아이는 더 좋은 환경이니 당연히 더 잘해야 한다'는 왜곡된 생각을 갖고 있었습니다. 만약 아무 고난 없이 아이를 가졌다면, 저는 아이에게 높은 기준을 강요하며 폭력인지도 모르는 상처를 주었을 것입니다.
그때서야 아이가 건강하게 태어나는 것 자체가 기적임을 깨닫고, "이 소중한 존재를 선물로 주시면, 제가 엄마로 바로 서서 이 상처를 대물림하지 않겠습니다"라고 기도했습니다. 이 충격적인 경험이 없었다면, 저는 제가 배운 방식 그대로 아이를 키웠을 것입니다.
몇 시간 뒤, 다시 진통이 시작되었고 19시간 만인 1월 1일 새벽, 아들이 태어났습니다. 아이는 아무 문제 없이 건강한 신생아의 모습이었습니다. 아이의 심장은 규칙적으로 뛰었고, 몸은 따뜻했습니다. 저희는 3시간 동안 아이를 쓰다듬고, 기도하고, 노래를 불러주며 저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사랑을 전했습니다. 그리고 아이에게 이렇게 말해주었습니다. "아가야, 엄마를 성장시키기 위해서 이렇게 와줘서 고마워. 네가 다시 오면 그땐 부모로서 더 준비되어 있을게. 하늘에서 엄마, 아빠를 지켜봐 줘. 사랑해."
퇴원 후, 저희는 한 줌의 재가 된 아이를 샌프란시스코 앞바다에 보내주었습니다.
병원에서는 저희처럼 임신 중 후반기에 아이를 잃은 부모들의 모임을 소개해 주었습니다. 그곳에서 저희는 22주에 아이를 잃었다고 말하며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사람들은 저희를 따뜻하게 안아주었습니다.
하지만 이어진 다른 커플들의 이야기는 충격적이었습니다. 35주에 아이를 잃은 부부, 40주에 사산한 부부의 이야기를 들으며 '내가 겪은 것은 아무것도 아니구나' 하는 생각에 부끄러워졌습니다. 제가 미안하다고 하자, 그들은 제 눈을 보며 말했습니다. "아니야, 덜 힘들고 덜 충격적인 유산은 없어. 네가 겪은 일은 엄청 힘든 일이야. 충분히 아파하고 너 자신을 아껴줘야 해. 이건 누구의 잘못도 아니니까 절대로 자책하지 마."
아마 하나님께서도 제게 계속 그 말씀을 하고 싶으셨을 것입니다. 안 좋은 일이 생기면 스스로 죄책감을 느끼는 것이 익숙했던 저는, "네가 무리해서 그렇다", "유난 떤다"며 스스로를 다그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위로를 듣고 나서야, 저는 비로소 그 죄책감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습니다.
그들은 이어서 자신들도 그 아픔을 겪은 후 건강한 아이들을 낳아 행복하게 살고 있다고 말해주었습니다. 그때 저는 판단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위로하는 것의 힘, 그리고 같은 경험을 한 사람의 위로가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깨닫게 되었습니다.
세 번째 임신 때부터 병원에서는 저를 고위험 산모로 분류하여 최고의 전문의들이 동원되었습니다. 온갖 검사와 고가의 호르몬 주사를 맞으며 할 수 있는 모든 시술을 다 한 끝에, 첫째 아이를 무사히 출산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 과정 역시 순탄하지만은 않았습니다. 아이가 탯줄에 목이 감겨 태어나자마자 울지 않는 응급상황이 발생했고, 극적으로 생명을 건지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힘들게 아이를 얻었지만, 저는 여전히 건강하게 아이를 사랑하고 양육하는 구체적인 방법을 알지 못했습니다. 시행착오를 겪으며 아이에게 상처를 주는 부족한 엄마였습니다. 둘째를 간절히 원했지만, 하나님께서는 제가 이대로는 안 된다고 생각하셨던 것 같습니다. 세 번의 유산을 더 겪고 나서야, 일곱 번째 임신 만에 둘째를 낳을 수 있었습니다.
매번 유산을 겪을 때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을 통해 위로해 주시고, 제가 받은 모든 양육 방식을 '리셋'하고 백지상태에서 다시 시작하도록 처절하게 공부하게 하셨습니다.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저는 제가 배운 관성대로 아이를 키우며 영혼을 파괴하는 행동을 사랑이라 착각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11년이라는 긴 시간과 일곱 번의 임신을 통해, 저희 아이들에게 어두운 영향이 이어지는 것을 막아주셨습니다.
실리콘밸리에서의 기적 같은 커리어 여정
그 임신과 출산의 와중에도 저는 커리어를 놓지 않았습니다. 앞서 말씀드렸듯 저는 미국에서 여러 공부를 했지만, 경제적인 이유와 잦은 이사로 미국 학위는 하나도 따지 못했습니다. 결국 저는 한국 대학의 문과 졸업생으로서, 영어가 서툰 외국인의 신분으로 맨땅에 헤딩을 시작했습니다.
오스틴에 있을 때는 전문 간호사를 준비하며, 무작정 병원에 지원해 100시간 넘게 자원봉사를 했습니다. 내과, 외과, 수술실 등을 돌며 전문 간호사들을 찾아가 진로 상담을 하고, 환자들의 말동무와 행정 처리를 도우며 미국 병원의 시스템과 영어를 익혔습니다.
실리콘밸리로 이주한 후에는 경쟁이 치열한 학교 병원의 근로 장학생으로 운 좋게 선발되었습니다. 접수대에서 서툰 영어로 실수를 연발하면서도 전화 응대, 행정, 행사 기획 등 말도 안 되는 경험들을 쌓았습니다. 자기 검열이 심하고 소심했던 제가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났는지 돌이켜보면, 하나님께서 그때 저를 붙들고 이끄셨던 것 같습니다.
고위험 산모였던 저는 유전자 검사를 받은 경험이 있었는데, 마침 그 서비스를 제공하는 회사(Counsyl)에서 경영진 비서로 추천을 받아 면접을 보게 되었습니다. 저는 창업자들에게 "여러 번의 유산을 겪으며 이 회사의 서비스를 통해 큰 도움을 받았다"라고 이야기했습니다. 저희 아이와 비슷한 또래의 자녀를 둔 그들은 깊이 공감했고, 저는 경영진 비서로 합류하게 되었습니다.
그곳에서 미국 스타트업의 최전선을 경험하고, 간호학을 준비하며 쌓았던 생물학, 유전학 지식들을 모두 활용할 수 있었습니다. 보통 경영진 비서는 감각이 뛰어나고 유능하며 외모 또한 단정한 분들이 맡는 자리입니다. 영어도 서툴고 문화도 낯선 제가 그 자리에 설 수 있었던 것은, 오직 하나님께서 하신 일이라고밖에는 설명할 길이 없습니다.
그 외에도 중요한 시기마다 저를 이끌어주는 사람들이 나타났고, 저보다 뛰어난 사람들이 떨어지는 곳에 취업하고 승진하는, 기적이라고밖에 말할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났습니다.
어느 날 남편이 이런 고백을 했습니다. 오스틴에서 제가 정신병원에 입원하고 자살을 시도하며 힘들어할 때, 남편이 너무 힘든 마음에 밤하늘을 보며 기도했다는 것입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저기 떠 있는 별들이 아름답게 반짝이지? 저 가장 빛나는 별보다 혜진이의 미래가 더 빛나고 아름다울 것이다"라고 말씀하셨다고 합니다.
그 후, 박사 과정 중이던 남편은 2년 반 만에 실리콘밸리에서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로 커리어를 시작했습니다. 문과생이었던 저희 부부가 실리콘밸리에서 커리어를 쌓아간다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별들처럼 너의 미래가 밝다'라고 하신 말씀을 기적으로 보여주신 것임을 깨닫고, 저희 부부는 감사 기도를 하며 함께 울었습니다.
상처 입은 치유자로서의 삶: 멘토링
저를 회복시키신 하나님께서는, 제가 받은 위로로 다른 사람들을 능히 위로하게 하셨습니다. 저는 몇 년째 진로 탐색, 실리콘밸리 취업, 회사 생활 등을 주제로 강연과 멘토링을 하고 있습니다. 제가 걸어온 길이 평탄하지 않았기에,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며 깊이 공감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힘들었던 어린 시절, 우울증, 커리어 전환, 워킹맘으로서의 도전 등, 하나님께서는 저의 모든 과정을 다듬으셔서 필요한 곳에 사용해 주셨습니다.
상담을 하다 보면, 커리어 문제 이면에 내면의 상처나 결핍으로 인해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분들을 많이 만나게 됩니다. 겉으로 보이는 문제만 해결하려 하면 답이 나오지 않지만, 삶의 깊은 부분으로 들어가 내면의 이해와 회복이 일어날 때 문제들이 자연스럽게 풀리는 것을 보게 됩니다.
예를 들어, 사람에 대한 불신으로 동료와의 관계에 어려움을 겪는 경우, 그 상황을 피한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지 않습니다. 어디에나 나와 맞지 않는 사람은 존재하기 마련입니다. 저 역시 회사 생활이 늘 순탄하지만은 않았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꾸준히 회복의 과정을 거치며, '큰 물가에 뿌리내린 나무'라는 건강한 정체성을 갖게 되자 마음에 여유가 생겼습니다.
그 결과, 나중에는 회사에서 가장 소통하기 어렵다고 알려진 동료와도 허물없이 지내게 되었고, 다른 동료들로부터 '저 사람과 대화하기가 어려우니 대신 이야기해 달라'는 부탁을 받기도 했습니다. 또한 까다로운 팀원들이 모인 팀을 끈끈하게 만드는 프로젝트 매니저로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하나님을 빼고는 제 인생을 설명할 수 없기에, 멘토링을 하며 자연스럽게 신앙을 나누게 됩니다. 그때마다 하나님께서는 귀한 믿음의 동역자들을 붙여주셔서 서로 기도하며 돕게 하셨습니다. 제 인생의 작은 부분 하나도 헛되이 쓰지 않으시는 하나님을 늘 경험하며 살고 있습니다.
상처 입은 치유자로서의 삶: 유산의 아픔을 나누며
임신, 출산, 유산과 관련해서도 제가 도울 기회가 많았습니다. 의학 드라마에나 나올 법한 희귀하고 위급한 사례들을 제가 직접 겪다 보니, 비슷한 아픔을 지닌 분들의 연락을 받을 때면 더 깊이 이해하고 구체적인 도움을 드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예를 들어, 임신 중기 유산은 일반 출산과 똑같은 몸의 변화를 겪습니다. 젖이 돌기 시작하고 산후 우울증이 오지만, 그 젖을 먹일 아이가 없기에 극심한 젖몸살을 겪게 됩니다. 출산의 고통을 겪었음에도 그 결과물이 눈앞에 없기에 고통은 몇 배로 다가옵니다.
아무도 제게 이러한 상황을 미리 알려주지 않았습니다. 저는 온몸으로 겪으며 배워야 했습니다. 유산 후에는 20주가 넘은 아이의 화장을 병원에서 해주지 않기 때문에, 제가 직접 출생 신고와 사망 신고를 하고, 소아 화장을 해주는 곳을 수소문해야 했습니다. 1월 1일에 출산하고, 1월 2일부터 그 추운 겨울에 갓 퇴원한 몸으로 서류 처리를 위해 뛰어다녀야 했습니다.
산후조리는커녕 아이 부검, 화장, 산골까지 처리해야 할 일이 태산 같았습니다. 유산 휴가도 없어 짧은 병가 후 일터로 복귀해야 했습니다. 11년간 다섯 번의 유산을 겪으며 쉼 없이 일하고 몸을 돌보지 못하니, 제 몸은 극도로 상했지만, 그 과정 덕분에 다양한 어려움을 겪는 분들께 실질적인 조언을 드릴 수 있게 되어 감사했습니다.
때로는 하나님께서 제 인생의 모든 부분을 이토록 효율적으로 사용하시기 위해 그토록 집약적인 고통을 허락하셨나 하는 섭섭한 마음이 들 때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저처럼 부족한 사람의 인생을 다른 이들을 위로하는 데 사용해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맺음말 및 기도
이제 마무리를 하려 합니다. 40대에 접어든 저는, 어릴 적에는 제가 이렇게 오래 살게 될 줄 전혀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지금 이 순간 살아있는 것 자체가 기적입니다. 언제 쓰러져 죽을지 모르던 그 초라한 나무를, 위로가 흘러넘치는 큰 물가에 뿌리내리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삶의 과정이 너무나 괴롭고 힘들어서 그만두고 싶을 때도, 좌절할 때도 많았지만, 저를 포기하지 않으시고 오늘까지 세심하게 인도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의 위로와 사랑을 전할 수 있도록 오늘까지 저를 살게 하신 줄 믿습니다.
그 하나님께서 지금 여러분의 삶에서도 역사하고 계심을 믿습니다. 혹시 이곳에 끝없이 어둡고 괴로운 상황을 지나는 분이 계시다면, 늘 발 앞의 등불로 우리 길을 비추시는 하나님을 신뢰하며 지치지 말고 함께 걸어가자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작은 기도도 외면하지 않으시고, 매일 성실하게 우리를 회복시키시며 더 좋은 방향으로 이끌어주시는 분이십니다. 우리를 큰 물가에 뿌리내린 아름다운 나무로 자라게 하시는 그 하나님을 믿고 함께 나아가기를 소망합니다.
같이 기도하겠습니다.
사랑의 하나님, 죽음 말고는 아무 희망이 없던 저를 회복시켜 주시고 그 은혜를 나눌 수 있게 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지금 이 자리에도 임하셔서 한 영혼, 한 영혼을 살리고 계심을 믿습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우리의 고통이 크다 작다 판단하지 않으시고 한없는 위로와 자비를 베푸시는 하나님, 있는 모습 그대로 빛 되신 주님께 나아갑니다.
홀로 어두운 시간을 견뎌내는 영혼들을 사랑으로 안아주시고, 무너진 마음을 다시 세워주시길 기도합니다. 상처 입고 고통에 신음하는 우리를 만나주시고 새 생명과 소망으로 회복시켜 주실 줄 믿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받은 위로로 다른 이들을 능히 위로하게 하시고, 은혜의 강물가에서 가지가 길고 아름다운 나무로 자라 세상에 위로를 전하는 삶이 되게 해 주세요. 우리의 삶을 통해 이 땅에 자비와 위로의 하나님이 드러나길 소망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김은호 목사님 정리
큰 물가에 뿌리를 내린 나무처럼, 상처 입은 치유자로서 이 땅에 상처를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을 치유하고 회복하는 일을 감당하시는 우리 집사님께 격려의 박수를 드립니다.
정호승 시인의 시에도 '풀잎에도 상처가 있다'는 구절이 있습니다. 이 땅을 살아가는 모든 사람에게는 크고 작은 상처가 있습니다. 표현하지 않을 뿐, 우리에게는 많은 상처가 있습니다.
김혜진 집사님께서 간증해 주셨듯이, 모태신앙으로 자랐지만 어린 시절의 폭언과 폭력으로 인해 왜곡된 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갖게 되고, 차라리 내일이 없었으면 좋겠다고 말할 정도로 큰 아픔을 안고 자랐습니다. 11년 동안 일곱 번의 임신과 유산을 경험했다면 그 아픔이 얼마나 컸겠습니까?
한 번의 유산도 견디기 힘든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이렇게 상처 입은 치유자로서, 아름다운 별이 되어 귀하게 쓰임 받는 모습이 우리에게 큰 위로와 도전이 되었습니다.
이제 찬양하며 기도회로 나아가겠습니다.
시편 147편 3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상심한 자들을 고치시며 그들의 상처를 싸매시는도다."
우리 하나님은 우리의 상처에 무관심하거나 무정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상처를 치유하기를 원하십니다. 집사님의 간증처럼, 우리가 상처를 안고 살아가면 자기 학대와 폭력 속에서 인생이 비참해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오늘 주님은 우리의 상처를 치유하기를 원하십니다. 여러분이 겪는 모든 고통은 주님 안에서 헛되지 않습니다. 그 고통과 아픔이 주님 안에서 치유될 때, 우리는 그 고통을 가지고 살아가는 다른 이들을 위로하고 싸매어주는 하나님의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비 준비하시니' 찬양 2절에는 '상한 자들 고치시며 상처를 싸매시도다'라는 가사가 있습니다. 이 찬양을 부를 때, 성령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의 상한 마음을 치유하시고 회복시켜 주시기를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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