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본문: 욥기 23:8-10
8 그런데 내가 앞으로 가도 그가 아니 계시고 뒤로 가도 보이지 아니하며
9 그가 왼쪽에서 일하시나 내가 만날 수 없고 그가 오른쪽으로 돌이키시나 뵈올 수 없구나
10 그러나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 같이 되어 나오리라
강사: 전요셉 목사
- 사랑이 아빠
-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M.Div)
- 전) 오산교회 담임목사
(충북 청주 옥산면 오산리 소재)
요약
전요셉 목사는 할머니의 신앙인의 모습과 청소년 수련회에서 주의 종이 되겠다는 서원을 한 이후 신학을 했으나, 큰 확신 없이 목사가 되어 죄책감과 무력감 등 내적갈등에 시달리다 병까지 얻었습니다. 하지만 딸 '사랑이'가 태어나며 비로소 진정한 사랑을 깨닫고 목회에서도 기쁨을 찾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사랑이가 치료제가 없는 '뒤센 근육병' 진단을 받으면서 그의 삶은 다시 무너졌습니다. 처음에는 자신의 잘못으로 딸이 병에 걸렸다는 죄책감으로 회개 기도를 했고, 아내와 함께 이 시련을 통해 신앙적 각성을 경험하며 진정한 목회자로서의 소명을 재확인하고, 딸을 향한 애타는 마음을 통해 비로소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뼈저리게 깨닫게 되었습니다.
딸의 치료를 위해 미국에 가려 했으나 연거푸 비자가 거절되는 등 모든 인간적인 길이 막혔을 때, 그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그리하지 아니하실지라도" 감사하는 믿음의 고백에 이릅니다. 이후 치료비 모금을 위해 홀로 시작한 국토대장정 길에서 하나님의 세밀한 도우심(엘리야의 까마귀와 같은 이웃들의 사랑 나눔)과 기적적인 동참(언론 보도와 모금)을 경험했습니다.
전요셉 목사는 여전히 길이 막막할 때도 있지만, 이제는 두려움 대신 하나님의 일하심을 '기대'하게 되었다고 고백합니다. 그는 이 모든 과정을 통해 '약할 때 강함 되시는' 하나님, '아빠'이신 하나님과 동행하는 법을 배웠으며, 이 위로를 환우들과 나누기 위한 기도를 요청하였습니다.

안녕하십니까. 사랑이 아빠, 전요셉 목사입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제가 많이 떨리는 관계로 기도로 먼저 시작하겠습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하나님, 오늘 사랑의 헌금 동영상을 통해 만난 루아를 위해서 기도합니다. 우리 가운데 아픈 자들을 위해서 기도합니다. 약해지고, 낮아지고, 비천에 처하고 하나님의 은혜 아니면 바랄 수 없는 그런 모든 자들을 위해서 기도합니다. 하나님, 낫게 하시고, 기적을 일으켜 주시고, 우리가 약할 때 하나님의 능력이 더욱 온전하게 드러날 수 있도록 하나님 더욱 힘써 역사하여 주시옵소서. 감사드리며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여러분, 오늘 ‘아빠와 함께 걷는 길’이라는 제목으로 간증을 나누려고 합니다.
사실 이 길을 걷게 되기까지는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제가 먼저 어떻게 이 길을 걷게 되었는지부터 짧게나마 소개해 드리려 합니다.
믿음의 유산
저는 목사입니다만, 원래 목사가 되려고 신학교에 간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제가 신학교에 간 것은 비전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목사가 되고 싶다는 꿈이 아니었습니다.
저는 할머니 손에서 자랐는데 저의 할머니께서는 제가 볼 때 참 '예수쟁이'셨습니다. 개척교회 사모님이셨는데, 걸인(乞人)이 와도, 어른을 부르니 할머니를 모시고 나왔는데 아직도 그 모습이 선명합니다. 옛날 돈 오천 원, 만 원이 귀하던 시절이었습니다. 사모님에게 무슨 돈이 있었겠습니까. 사례비도 거의 없으셨는데, 묻지도 않고 바로 내어 주셨습니다. 그리고 고구마와 물을 건네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교회 같이 다녀요. 우리 같이 예수 믿고 천국 가요. 하나님이 형제님을 참 사랑하세요."
저는 그런 모습을 보고 자랐습니다. 또 할머니께서 일평생 그렇게 사시는 것을 그 슬하에서 보고 자랐습니다. '그래, 우리 할머니가 믿는 예수를 내가 못 믿을 이유가 없겠다. 내가 저런 사람으로 살면 참 좋겠다.' 비전이 생겼습니다. 그리고 그 비전을 따라, 그렇게 저는 믿음을 유산으로 물려받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그날이 왔습니다. 뜨겁게 신앙생활을 하던 중, 청소년 수련회에 가서 저는 첫사랑을 경험한 것입니다. "주여, 나 때문에 십자가 지셨군요. 내가 죄인입니다. 나 하나님 위해 살겠습니다." 그날따라 그렇게 주를 위해 살겠다고 다짐했는데, 그날 그 목사님도 은혜가 충만하셨는지 "오늘 은혜받은 사람, 주님께 헌신할 사람 다 나오세요!" 하고 외치시는 것이었습니다. 아이들이 앞으로 나갔습니다. 그래서 저도 나갔습니다. 나가서 기다리고 있는데 목사님께서 "여러분, 은혜받으셨습니까?" 하시니 다들 "예!" 하고 외쳤고, 저도 "아멘" 했습니다.
"여러분, 주님을 위해서 헌신하겠습니까?" 제가 "아니요"라고 말할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다들 "아멘" 하기에 저도 "아멘" 했습니다. "여러분, 주의 종 되기로 헌신하는 겁니다!" 갑자기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저의 아멘 소리가 줄어들긴 했지만, 한두 명씩 대답했습니다. 저도 호승심(好勝心)이 있으니 "아멘!" 하고 외쳤습니다. 그렇게 하나님과 약속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2006년에 네이버 지식인에 "저 주의 종 되려고 하는데 신학교 가라는데 맞나요?" 하고 질문했고, "네, 신학교 가면 됩니다."라는 답변을 받았습니다.
그렇게 제 인생에 할머니의 믿음이 유산이 되어 눈덩이처럼 불어나더니, 저는 신학생이 되었고 동시에 제가 나고 자란 우리 오산교회에서 전도사님이 되어 사역을 시작했습니다. 교회 형편이 어려우니 사례비는 당연히 없었습니다. 하지만 무슨 상관이었겠습니까? 제가 나고 자란 교회, 우리 교회니까 그냥 마냥 좋았습니다. 그렇게 20대 청춘을 기쁘게 사역했던 것 같습니다. 너무 행복했고, 이 비천한 저에게는 참으로 영광스러운, 감히 제가 질 수 없는 하나님의 귀한 짐이었습니다.
부르심에 대한 의심
그렇게 섬기면서 결혼도 하고, 이제 서른 살이 되었습니다. 때가 온 것입니다. 서른 살이 되니 목사 안수를 받으라고 부르시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목사가 되려고 신학교에 간 것은 아니지만, 어쩌다 보니 계속 이 길을 율 염두에 두게 되었습니다. 그때마다 하나님께서는 이 강을 건너지 않을 수 있도록 몇 번 기회를 주셨습니다. 저희 어머니가 "요셉아, 꼭 목사가 되어야겠니?" 하고 물으셨고, 저는 "네, 되어야죠." 하고 대답했습니다.
그러다가 이제 때가 차서 정말 목사가 되라고 부르시니, 내적 갈등이 밀려왔습니다. 왜냐하면, 신학대학원에는 교장 선생님을 하시다가 오신 분도 계셨고, 법조계로 가실 수 있는 그런 귀한 분이 주님의 십자가를 지겠다고 이 낮은 곳에 오셔서 섬기시는 분도 계셨기 때문입니다.
그런 분들을 보니, '저분들이 진짜 목사님이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아닌 것 같았습니다. '이게 맞나? 내가 저분들과 같은 그런 부르심의 확신이 정말 뜨겁게, 강력하게 있는가? 눈에 보이는가? 그냥 청소년 때 약속 한 번 잘못해서 신학생 되고, 때가 돼서 목사 안수받으라고 하니 받는 것 아닌가?'
너무 고민이 되어 하나님께 날마다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이제 목사 안수받는 날이 다가옵니다. 기도합니다. 하나님, 사인(sign) 좀 주십시오. 제가 이 마음으로는 도저히 이 십자가를 못 지겠습니다. 그렇다고 제가 목사 못 하겠다고 할 용기도 없으니, 제발 기도원처럼 저에게도 뭔가 사인 좀 주십시오."
그런데 사인이 있었겠습니까? 없었습니다. 그렇게 고민을 하다가, 결국 목사님이 되었습니다.
목사의 후회와 눈물
목사님이 되고 나서도 변하지 않는 것이 있었습니다. 기도가 똑같았습니다. 저는 저 자신을 잘 알지 않습니까. 제가 존경하는 목사님들은 다 공통점이 있었습니다. 기도하지 않아도, 성도, 아니 사람을 보면 마음이 불붙는 듯한 분들이었습니다. "주님이 저 사람을 사랑하시는 것이 내게 사무쳐서, 내가 못 견뎌서, 나 주님의 뜻대로 복음 전하겠다고 나섭니다." 하는 분이 진짜 목사님이셨습니다.
저도 그렇게 살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제 안에는 사실 그런 주님의 선한 마음이 부족하니, 늘 기도하는 것이었습니다. "주님 마음 주세요. 우리 오산교회 뜨겁게 사랑하는 마음 주세요. 제가 사는 이곳 옥산을 뜨겁게 사랑하게 해 주세요. 내가 우리 할머니만큼은 못해도, 어떤 사람을 보면 주님처럼 외모로 판단하지 않는 그런 주님 마음 주세요." 늘 그렇게 기도해서, 그렇게 마음을 주셔야만 섬길 수 있는, 저는 이렇게 사랑이 부족하고 무정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부족한 제가 목사가 되니 당연히 힘들었습니다. 제가 목사가 되고 나서 1년 동안은 너무나도 후회의 연속이었습니다. '우리 교회 성도님들은 저렇게 훌륭하고, 나같이 부족한 사람의 설교도 아멘으로 화답하시고, 목사인 저보다 더 교회를 가꾸시는 분들인데, 우리 교회에 좋은 목사님이 계셨다면 이분들이 더 사랑 많이 받고, 더 위로받고, 더 풍성해지고, 우리 교회도 더 부흥했을 텐데... 내가 우리 교회 발목을 잡는구나.'
늘 그렇게 자책했습니다. 이것이 얼마나 힘들고 괴로웠는지, 저는 결국 몸에 병이 나서 화장실에서 피를 한 바가지 쏟고 저혈압 쇼크로 쓰러졌습니다. 그렇게 119에 실려가서 두 달 동안 중환자실에 입원하고, 이듬해는 수술까지 하고, 지금도 난치병으로 계속 추적 관찰을 하고 있습니다.
생명의 선물, 사랑이
그렇게 괴로웠던 날들이었는데, 하나님께서 참 감사하게도 저를 불쌍히 여기셨던 것 같습니다. 그 모든 괴로움과 아픔을 다 덮으시고도 남을 만큼, 저에게 정말 소중하고 너무나도 고마운 그런 선물을 주셨습니다. 그게 바로 제 생명보다 소중하게 여기는 제 딸, 사랑이입니다. 사랑이가 태어났습니다.
제가 아빠가 되고 나니 너무 기뻤습니다. 저는 "내 이웃을 내 몸같이 사랑하라"는 말씀을 그 이상으로 알게 된 것 같습니다. 이것이 저의 아내에게는 됩니다. 그런데 우리 딸에게는 그 이상이 됩니다. "사랑아, 넌 어쩜 이렇게 예쁘니? 너라면 내 간, 쓸개 다 줘도 모자라겠다." 너무 사랑스럽고, 아이를 키우면 키울수록 사랑이 더 깊어지지 않습니까. 부모님 마음인 것을, 이제 부모가 되니까 그 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하나님의 선물인 이유는, 아이를 통해서 생명의 소중함과 귀함과 사랑이 무엇인지를 점점 알아가니까 제가 변하는 것이었습니다. 놀랐습니다. 교회를 가니까, 물론 여전히 우리 식구고, 제 할머니 같은 권사님, 이모 같은 집사님이니까 늘 가까이 지냈지만, 아니, 너무 사랑스러운 것입니다. 너무 귀하고, 어쩜 그렇게 귀하고 소중한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니까 이제 기도가 바뀌는 것입니다. 전에는 "주님 마음 주세요" 하고 성도님들을 위해 구했다면, 이제는 모든 시간을 그냥 기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요번 주에 누구누구 집사님 조금 어두워 보이는데, 하나님 신경 쓰여요. 하나님 위로해 주시고, 만져주세요." "하나님, 누구누구 지금 좀 잘 돼야 될 것 같아요. 좀 잘 되게 해 주세요." "하나님, 누가 기도 제목이 있는데요. 꼭 좀 들어주세요."
이제 그 사람의 일이 남의 일이 아니라 내 일처럼 여겨졌습니다. 그렇게 목회가 따뜻해지고 기뻐지니까 너무 행복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이 무정하고 사랑 없는 저에게 사랑이를 통해서, 이름 그대로 사랑이 무엇인지를 많이 알려주셨습니다. 그렇게 저는 감사하고 따뜻한 목회와 가정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첫 번째 시련: 근육병 진단
그렇게 시간이 흐르다가 사랑이가 두 돌 때쯤 되었을 때, 2023년 5월, 그 일이 저희 집에 일어났습니다. 폐렴 증상으로 병원에 입원을 했습니다. 원장님이 오시더니 "작년이랑 간 수치가 똑같이 높네요. 정상 대비 10배입니다. 빨리 정밀검사받으세요."라고 하셨습니다. 싸한 마음에 빨리 큰 병원에 가서 정밀검사를 받았습니다.
결과가 나오는 날, 처음으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사랑이 부모님, 근육 수치가 많이 높네요. 근육병인 것 같습니다. 유전자 검사 하셔야 합니다."
저는 그때 '근육병'이라는 단어를 처음 들었습니다. 이런 병이 있는 줄을 사실 정말 몰랐습니다. 저희 부부 둘 다 건강하고 평범하게 결혼해서 사랑하다가 남들처럼 아이를 낳았고, 무려 5년 만에 낳은 딸이었으니 더 기뻤습니다. 그러니까 이 병이 있다고는 상상도 못 했는데, 이 '근육병'이라는 단어를 듣자마자 한 가지 직감이 들었습니다. '아, 그래서 그랬던 건가?'
저희 사랑이가 근력이 많이 약했습니다. 보통 아이들이 짚지 않고 걸어야 할 때 그러지 못했고, 아이들이 막 뛰어다닐 때 여전히 우리는 엉성하게 걸었습니다. 남들 따라 뛰어다니다가도 뒤뚱뒤뚱 걷다가 제 발에 걸려 종종 넘어지고, 그러다가 깨지고 피가 났습니다. 계단을 못 올라갔습니다. 다른 아이들은 폴짝 뛰면 점프를 하는데, 사랑이는 따라 한다고 뛰는데 발꿈치가 땅에서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걱정이 되어 어른들께 여쭤봐도 "늦게 출발하는 아이야. 나중에 다 따라오니까 걱정하지 않아도 돼."라고 하셨습니다. 어른들 말씀이니까 그런가 보다 했습니다. 그러다 '근육병'이라는 얘기를 들으니 이해가 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혹시나 하는 마음에 여쭤봤습니다. "교수님, 그 근육 수치라는 게 보통 몇 배입니까?" "정상 대비 한 150에서 200배 됩니다." "교수님, 근육병이 아닐 수는 없나요?" 교수님이 좀 안타까운 표정으로 "근육병일 거예요."라고 얘기를 하시더군요.
아내와 딸은 잠시 떨어져 있었습니다. 서울대로 전원(轉院)해서 따로 있을 때 제가 찾아보았습니다. 근육병은 10살 전후로 보행 능력을 잃어서 휠체어를 타게 되고, 20대가 들어서면 호흡기 근력도 많이 안 좋아져서 보조 호흡기를 사용하게 되며, 20대 후반이 되면 모든 근력이 많이 빠져서 거동을 못하고 눈동자만 움직이게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요즘 의학기술의 발달로 스테로이드제 덕분에 기대수명은 옛날보다 좋아져서 서른 살 정도인데, 스테로이드제로 보행 기간을 2년 정도 연장할 수 있겠지만, 현재 치료제는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머리가 새하얘졌습니다. 제가 태어나서 이렇게 심각해진 적도 없고, 이 심각한 얘기를 아내한테 할 수도 없었습니다. 아내도 근육병을 똑같이 찾아볼 테니까요. 제가 말했습니다. "여보, 괜찮아. 다른 걸 수도 있어. 아직 걱정하지 마." 또 아내는 믿음의 사람이니까, "그래, 괜찮아." 기도하고, 그렇게 담담하게 집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컴퓨터를 켜고 알아보았습니다. 혹시 이 수치에 어떤 유사한 경우가 있나, 희망적인 경우는 없나. 희귀 질환 환우 부모님들이 다 가입한 카페가 있는데, 아무리 뒤져봐도 유사한 경우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안되니 구글로 외국 자료를 찾아보았습니다. 영어로 몇 가지가 있었지만, 어느 하나 쉬운 게 없었습니다. 치료제가 없거나, 있어도 예후가 다 좋지 않았습니다.
절망 속의 첫 기도: 회개
제가 이날, 태어나서 처음으로 절박해졌습니다. 제가 원래 절박함을 모르는 사람입니다. 좀 많이 강합니다. 어릴 때 태권도장에서 외치던 "할 수 있다, 하면 된다"는 정신으로, 뭔가 해내야 하면 열심히 해서 해내는 그런 강인한 사람입니다. 또 저는 낙천적인 사람이라 불안한 것도 별로 없었습니다.
어느 정도냐면, 저희가 여행을 가면 아내는 '천상 야곱'이라 안전하고 편안한 것을 좋아하는데, 저는 '에서' 같습니다. 팥죽 한 그릇에 장자권을 바꾸는 에서의 마음을 저는 잘 압니다. 저도 첫째고 무사태평한 사람이니까요. 그렇게 강하고 교만한 사람이었던 제가 감당할 수 없는 이 사건, 마치 에서가 울고불고 매달려도 축복이 자기에게서 떠난 것을 알았을 때 맛보았을 그 절망감을, 저는 이때 맛본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기도밖에 없었습니다. 아직도 선명하게 기억이 납니다. 제가 이 일을 통해서 가장 처음으로 드린 기도는 회개 기도였습니다. 부모라서 그랬을 것입니다. 다 제 잘못 같았습니다. 잘한 것은 하나도 생각이 안 나고, 온통 잘못한 것들만, 그 짧은 순간인데도 필름처럼 머리를 스쳐가는데, 그 잘못한 것 한 장면 한 장면이 눈앞에 떠오를 때마다 심장이 내려앉는 것 같았습니다. '이것 때문인가?' 하나님이 이 죄 때문에... 다윗이 떠올랐습니다. 나단을 통해서 그의 죄를 드러내셨을 때, 다윗은 아프지 않았습니다. 아들이 대신 아프고, 아들을 데려가셨습니다.
저는 더 무서웠습니다. 싹싹 비는 것입니다. "하나님, 내가 죄인입니다. 내가 다 잘나서 한 줄 알았습니다. 내가 사명감 없이 목회해서 죄송합니다. 내가 어릴 적 그런 죄들을 지어서 죄송합니다. 내가 결혼하고 나서 교회를 위해서 살았다 해도, 여전히 내 중심은 주의 교회가 아니라 내 가정이 중심이어서, 내가 정말 삯꾼 목사였습니다. 죄송합니다."
싹싹 비는 것인데, 원망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원망할 생각이 들다가도 무서워서 못 했습니다. 혹시 하나님이 지금이라도 기적을 베풀어 주셔서 우리 딸 살려주신다고 하는데, 내가 그때 혀 한 번 잘못 놀려서 하나님 마음을 돌이키시면 어떡합니까. 무서워서 원망조차 못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피가 마르는 심정으로 매일 간청하는 것입니다. "내 근육 대신 가져가 주세요. 제가 평생 누워서 눈동자 굴려도 좋아요. 내 생명 지금 가져가셔도 좋아요. 근데 얘는 태어난 것밖에 죄가 없잖아요. 제발 살려주시면 안 돼요? 하나님, 이거 꿈이면 안 돼요? 하나님 제발, 제발 도와주세요."
그렇게 사람이 말 그대로 여름 가뭄에 마른 고목처럼, 어디를 찔러도 눈물이 나오는 것처럼, 걸어도 울고 누워도 울었습니다. 맨날 아이들만 보게 됩니다. 아이들을 보면 부럽습니다. '아니, 쟤는 어떻게 부모님 손을 안 잡고 뛰어다니지?' 신기하고, 다른 세상 같습니다. 늘 똑같은 거리, 우리 동네, 우리 집 가는 길이었는데, 어제만 해도 몰랐는데 지금은 왜 이렇게 낯설고 기이한지 모르겠습니다.
멸망의 길에서 생명의 길로
매일 가정예배를 드리는데, 제가 회개하다 못해서 결국 이렇게 고백하게 되었습니다. "여보, 사랑이 엄마. 우리 이 일 왜 왔을까? 내가 그때 생각이 났어. 이 일 없었다면 우리 지옥 갔을 거야." 아내는 놀랐습니다. 제가 이어서 말했습니다. "우리, 엘리 제사장이었어. 주님 위해서 헌신했던 것, 나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더라. 우리 목회자답지 못했잖아. 우리 가정이 우선이었잖아. 엘리 제사장처럼 우리 위해서 살았잖아. 하나님 다 아셨잖아. 이렇게 우리가 이 땅에서 적절하게 목회하고 적절하게 살다가 엘리 꼴 나서 지옥 가면, 우리 나중에 천국에서 못 만나는데... 그런데 여보, 하나님이 우리 너무 사랑하시나 봐. 우리 그동안 돌이킬 수 있는 기회 몇 번 주셨는데 안 돌아갔잖아. 근데 그대로 두면 우리 지옥 가니까, 하나님 우리 가족 셋 다 천국에서 만나게 하시려고, 지금은 힘들어도, 잠시 잠깐 고난당해도, 마지막 마지노선으로 사랑이 통해서 말씀하시는 것 같아. 우리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가야 돼. 우리 진짜 목회자 돼야 돼."
여러분, 그렇게 멸망의 길에서 하나님이 벗어나게 해 주셨습니다. 우리가 고난당하기 전에는 참 그릇되게 행했습니다. 삯꾼이었습니다. 그런데 고난당하고 나니, 우리가 멸망의 길에서 벗어나는 유익을 주시고 생명 길로 인도하시는 주의 율례들을 배우게 하시더군요. 그리고 새 삶을 시작하는데, 이제 하나님 앞에서 한 번이라도 불의하게 살지 않을 테니 우리 사랑이 고쳐달라고, 날마다 머리에 재를 뒤집어쓰는 심정으로 살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게 된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심판이 얼마나 무서운지 알았습니다. 우리 인생이, 하나님이 한 번 '후' 하고 부시면 속절없이 무너질 수 있는 모래 위의 집과 같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런 불순종 덩어리고, 하나님 앞에서 무익하기는커녕 오히려 유해하기만 한, 벌레보다 못한 우리인데... '아직 엘리처럼 우리를 멸망시키지 않으셨네. 우리 살아있네.' 감사했습니다. '그런데 이 이상으로 우리에게 사랑이를 태어나게 해 주셨네. 여전히 얘 살아있네. 어이구, 숨을 쉬네. 여전히 걷네. 눈이 있네. 우리를 보고 웃네. 엄마, 아빠라고 말할 수 있는 입이 있네.'
'아이고, 하나님. 우리는 그럴 자격조차 없는 죄인 중의 괴수보다 못한 놈들인데, 감사합니다.' 그렇게 감사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은 사랑이시니까 괜찮아'라는 이런 망령된 마음이 싹 사라지고, "하나님은 사랑이시지만, 동시에 하나님은 경외받으시기에 마땅하신 지존자이심"을 고백하면서, 욥이 매일 아침마다 자녀들을 위해서 기도한 것처럼 아침저녁으로 기도하는 것입니다. "밤마다 성실하심으로 우리의 숨을 붙들어주신 하나님, 찬양합니다." "오늘 하루를 신실하게 지켜주시고 평안히 눕게 해 주시고 여전히 우리 함께 살게 해 주신 하나님, 감사합니다."
약할 때 강함 되시는 은혜
그렇게 하나님을 경외하게 되니까 하나님에 대해서 감사가 깊어지고 사랑도 깊어지는데, 저희가 그토록 몸에 힘이 잔뜩 들어 있어서 우리 몸집이 크고 우리가 에서처럼 교만하고 강인했을 때는 몰랐습니다. 그런데 모든 힘이 삼손처럼 쫙 빠지고, 약해지고, 이렇게 비천에 처하게 되고 나니까 우리가 무엇을 보게 되느냐, '아니, 하나님이 이렇게 크신 분이었어?'
이 작은 호흡 하나 신경 쓰지 못했는데, 하나님의 손이 아니면 붙들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우리 지난 인생을 돌이켜보니, 하나님의 은혜 아닌 것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아, 하나님의 사랑이 이렇게 크구나. 하나님의 강하심이 이렇게 크구나. 우리가 이렇게 비천에 처한 가운데서도 기도할 수 있도록 우리 마음을 열어주신 하나님. 하나님 정말 위대하고 크고 강하신 분이시구나.'
고후 12:9~10
9 나에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10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박해와 곤고를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한 그 때에 강함이라
하나님 말씀하시죠.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너의 약함 가운데서 온전하여짐이라." 바울은 한술 더 떠서 말합니다. "그러므로 내가 크게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한 그때에 강함이라."
이렇게 하나님의 은혜로 새 삶을 시작하고 하나님과 동행하기 시작했습니다.
무너지는 하늘
하지만 여전히 저는 아빠였습니다. 그러니까 치료의 희망을 품고 집요하게 조사를 했습니다. 얼마나 집요했는지요. 다시 말씀드리지만, 저희 아내는 믿음의 사람입니다. 야곱 같은 사람, 하나님 보시기에 약삭빨라서 좋은 것을 하나님이 주시는 사람입니다. 저보다 믿음이 좋습니다. 염려하지 않고 하나님이 해 주실 거라고 믿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저희 부부는 반대입니다.
저는 이번엔 도마입니다. 주님의 몸을 보고도 꼭 손을 넣어서 만져봐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입니다. '아직 근육병 확정 난 게 아니니까, 근육병 아닐 수도 있지 않을까? 의사가 못하는데, 하나님이 고쳐주실 거야.'라고 말은 그렇게 하지만, '그래도 할 수만 있다면, 이거 병 아니었으면 좋겠다. 하나님의 기적까지 안 가는 선에서 해결될 수 있으면 좋겠다.' 현실적인 생각을 하는 사람입니다.
그렇게 조사하다가 하나 찾았습니다. '피부근염'이었습니다. 근육병이 아닌데 현상이 비슷한 병이었습니다. 제가 호들갑을 떨면서 말했습니다. "여보, 피부근염일 수 있어! 이거 약으로 완치도 할 수 있는 거래! 우리 다음 주 서울대 갈 때 일주일치 입원할 캐리어만 싸서 가자!" 저희 아내는 또 믿음의 사람이니까 "하나님, 감사합니다. 근육병 아니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렇게 서울대를 갔는데, 진료실에서 분위기가 좀 다르게 흘러갔습니다. 저는 당연히 교수님이 "근육병 아니에요"라고 시작하면 좋겠다, 하고 기도하고 들어갔습니다. "하나님, 근육병 아니게 해 주세요." 그런데 교수님이 말이 없으셨습니다. 모니터만 보고, 사랑이를 보고, 이것저것 시켜보시다가 "우리 사랑이 계단 한번 올라가 볼까? 내려와 봐. 아, 체간 힘이 약하네."
'아, 피부근염 아니구나. 하나님, 근데 기적을 일으켜서, 제발. 근육병만 아니게 해 주세요.' 교수님이 입을 여셨습니다. "사랑이 부모님, 사랑이 근육병이에요. 유전자 검사 들어가고 4개월 후에 봅시다." 제가 진료실에 다시 들어가서 간청해서 겨우 붙들고 물었습니다. "교수님, 혹시 피부근염 아닌가요? 사진 좀 보세요. 우리 딸 이거 반점 있잖아요." "아니야, 사랑이 아빠. 피부근염 아니야. 피부근염이 이렇지 않아. 근육병이야."
쐐기처럼 그 말이 박히는데, 그 순간에 제가 그 진료실에서 어땠냐면, 태어나서 처음으로 저의 하늘이 무너지더군요. "이-" 하고 이명이 들리더니, 교수님을 제외한 주변이 어그러졌습니다. 갑자기 구역질이 나더니 구토를 할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기도가 꽉 막힌 듯 숨이 턱 하고 안 쉬어졌습니다. 그런데 옆에 아내랑 딸이 불안해하면 안 되니까, 제가 아무렇지도 않은 것처럼 안간힘을 다해서 숨을 쉬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교수님이 갑자기 티슈를 꺼내면서 "사랑이 아빠, 왜 울어? 괜찮아, 괜찮아. 울지 마." 하셨습니다. 거기에 우리 아내가 놀라서 "여보, 왜 울어? 울지 마. 울지 말라고." 그럼 또 저는 거기에 놀라서 "여보, 나 운 거 아니야. 나 운 거 아니라고." 그런데 제가 티슈를 한번 보니까... (눈물을 닦고 있는) 제 모습을 보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때 알았습니다. 전쟁 영화에서 군인들이 시체 보면 갑자기 빈속에 토하는 것이, 사람이 절망을 맛볼 때, 자기가 감당할 수 없는 절망을 맛볼 때, 하늘이 말 그대로 무너질 때, 자연스레 일어나는 현상이었구나. 제가 아내를 안심시키려고 "여보, 나 운 게 아니고 숨을 고르고 있던 거야. 괜찮아." 그렇게 청주를 어떻게 내려왔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날부터 하늘이 무너졌으니까, 제가 다시 마른 고목처럼 살기 시작했습니다. 하루 종일 음식이 안 들어가니까 토하고, 밤낮 멍하니 먼 산만 바라보았습니다. 사랑이가 어린이집에 가면 안방에 들어가서 침대에 그렇게 누워있었습니다. 가슴에 구멍이 뚫린 것 같아서 소망이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그런 마음에 항상 나오는 것은 또 기도였습니다. 그런데 이번 기도는 좀 달랐습니다. 근육병이 맞다고 합니다. 그럼 "근육병 아니게 해 주세요" 대신 "하나님, 고쳐주세요. 우리 사랑이 살려주세요. 하나님, 저 치료 방법 좀 열어주세요. 하나님, 저요, 버티게 해 주세요. 제가 아니면 사랑이 지킬 사람이 없어요." 그렇게 기도를 하면서 정신을 차렸습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
그리고 다시 조사에 들어갔습니다. 여자 근육병 관련 데이터들을 다 긁어모으고, 비교분석하고, 온 세계의 박사들과 연구회사들, 대학 교수들에게 문의를 했습니다. 국제전화로 통화도 하고 약속을 잡기도 했습니다. "우리 딸 이런 것들이 의심되는데 이 근육병일 수 있나요? 저 근육병일 수 있나요? 여자 임상 안 되는 것 같은데 왜 안 되나요? 임상 안되면 시중에 나올 때 되나요?" 하나하나 꼬리에 꼬리를 물고 집요하게 물었습니다.
그렇게 학원에서 일을 하고, 퇴근하고 한 뭉치 치료제 관련 서류를 들고 집에 들어가는데, 사랑이는 자고 있고, 아내가 스마트폰을 하고 있었습니다. '뭘 보지?' 하는데 아내가 들썩들썩거렸습니다. 울고 있더군요. 스마트폰을 보니 '근육병'을 찾고 있었습니다. 아내가 믿음의 사람으로서 하나님 믿고 염려하지 않으려고 그동안 참아왔는데, 그날 불안했나 봅니다. 찾았는데, 그날 아내가 무너지더군요.
아내를 위로하다가, 그래도 가정 예배를 드려야 하니까 예배를 드렸습니다. 예배를 드리다가 갑자기 아내가 조용히 울면서 고백을 했습니다. 회개였습니다. "사랑이 아빠, 내 죄 때문인 것 같아." 아내는 이제 자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들어보니까 이랬습니다. "내가 목회를 위해 근육을 써야 했어. 근데 내가 우리 교회를 위해서 근육을 쓰지 않아서, 내 근육 쓸모없다고 하나님이 '너 쓸모없는 근육 필요 없으면 다시 데려가겠다'라고, 그래서 우리 사랑이 근육 가져가신 것 같아."
"아니야, 여보. 하나님은 그런 분 아니야." 제가 말했습니다. 그런데 아내가 이어서 말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이 마음을 주시는 것 같아. 우리는 사랑이 한 사람으로 인해서 가슴이 찢어질 듯 아프잖아. 근데 우리 하나님, 그동안 우리 교회 식구들, '죽지 말라고, 너 하나님의 사람아, 살아 있으라고. 내가 너 돌아오길 바란다'라고 얼마나 가슴이 찢어지며 애타고 기다리셨을까? 우리는 한 사람만으로도 이렇게 애타는데, 하나님은 오죽하셨을까? 사람들이 눈이 없어 하나님의 음성 듣지 못하니까, 우리한테 하나님 아버지 마음 대신 좀 전해달라고 우리 오상교회 목사로 세우셨는데... 우리가 그걸 몰랐네. 우리 이제 회개하고 진짜 목회 잘하자."
저는 오늘도 그 아내의 고백이 하나님의 음성이었다고 믿습니다. 저는 그 음성에 "아멘" 하고, 저도 이렇게 화답했습니다. "하나님, 우리 삯꾼이었습니다. 우리 무늬만 목사였습니다. 우리가 회개합니다. 우리가 악한 종이었습니다. 우리가 당신의 마음을 너무 몰랐습니다. 그러나 주여, 오늘 아내의 입술을 통해서 알게 하심 감사합니다. 이제 알았으니, 이 마음 가지고 남은 평생 진짜 목사 되겠습니다." 그렇게 기도를 했습니다.
욥이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사오나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라고 고백했듯이, 저희가 이 사건을 통해서 비로소 눈으로 무엇을 보았느냐, 하나님 아버지의 그 한 영혼을 향한 애타는 심정의 마음을 처음 뼈저리게 느끼게 된 것입니다.
그러면서 우리가 이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왜 졸지도 주무시지도 '아니하신' 게 아니라, '못하셨구나'. 우리 때문에. 예수님이 왜 그 십자가를 지셨을까? 아, 지실 수밖에 없었구나. 나도 사랑이 살릴 수만 있다면 내 생명 얼마든지, 백 번, 천 번이고 내어줄 수 있는데, 주님은 오죽하셨을까. 그래서 십자가 지셨구나.
그 하나님 아버지의 절실함과 일하심을 점점 보게 되니까, 놀랍게도 방금 전까지 저희 부부를 사로잡던 두려움이 조금씩 사그라지고 평안이 오기 시작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절실하심이 이렇게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지금 일하고 계셔. 하나님이 우리 사랑이 위해 지금 일하고 계셔. 하나님은 그런 분이야. 우리 안심할 수 있어.'
그러면서 그 두려움이 있었던 자리에, 대신 주님의 마음이 차올랐습니다. "하나님, 우리 이 마음 전하지 아니하면 우리가 죄인입니다. 우리 이 마음을 전하지 아니하고는 우리 마음이 불붙는 듯하여 견딜 수가 없사오니, 주여 우리를 보내주세요. 남은 평생 주를 위해 이 마음 전하며 살겠습니다."
저희 부부가 그렇게 뜨거운 마음으로 이날 처음으로 목회자 되기로 서원한 것입니다. 저는 이 날이 제가 진짜 목사가 되겠다고 서원한 날, 이 날이 제가 목사가 되었던 날이라고 믿습니다.
그렇게 저희는 만나는 모든 사람들과 항상 하나님의 사랑, 하나님의 위로, 낮은 곳에 찾아오시는 하나님을 나누고, 우리 환난 가운데 우리에게 주신 위로를 나눴습니다. 그런데 우리에게 주신 위로가 그들로 하여금 위로를 더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가득하기 시작했고, 그렇게 저희는 더욱더 하나님과 친밀하게 동행할 수 있는 그런 복을 누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올립니다.
미국으로 가는 길
시간이 흘러 유전자 검사 결과가 나왔습니다. '뒤센(Duchenne) 근육병'이었습니다. 저는 이것이 가능할 리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우리나라 서울대 교수님도 "따님이 뒤센 근육병일 확률은 거의 없을 겁니다."라고 하셨고, 미국 교수님들도 "따님이 뒤센일 리는 없겠지만, 가능은 하지만 거의 불가능할 겁니다. 그렇다고 희망을 놓지 마세요."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뒤센 근육병이었습니다.
이제 저는 이 병에 집중했습니다. 온 세계 치료제 회사들에게 더 집요하게 매달렸습니다. 그리고 그 모든 집요함 가운데 나온 결론이 하나 있었는데, 모든 치료제는 다 미국에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어디로 가야 할까요. 딸을 살리기 위해서 태평양을 건너야 했습니다.
아내한테 말했습니다. "여보, 우리 미국 가야 돼. 준비하자." 아내가 고맙게 순종해 주었습니다. 미국 가기 위한 준비를 했는데, 세 가지 방법이 있었습니다. 하나, 치료 목적의 관광 비자. 치료비가 없지 않습니까. 46억 원인데, 못합니다. 두 번째, 목사로 초빙받아서 가는 종교 비자. 제 이력서에 무엇이 있었겠습니까? '오상교회 전도사', '오상교회 목사'. 2009년부터 최근까지, 이게 끝이었습니다. 그래도 일말의 희망을 가지고 새벽마다 미국 교회에 국제전화를 했습니다. "저 아무개 목사이고, 어디 교단 소속인데요, 저 미국에서 목회 하고 싶은데 혹시 가능할까요?" 답변은 "죄송합니다. 저희는 미국에 계신 현지 목사님들을 우선으로 하고 있습니다." 참 어렵더군요. 이것도 무산되었습니다. 나머지 제가 떠오르는 하나는 유학생으로 가는 학생 비자였습니다. 감사하게도 신학교에 합격을 했습니다. 이제 가면 되는데, 비자가 나와야 했습니다. 알아보니 학생 비자는 너무 어려웠고, 특히 신학교 비자는 더 어려워서 다 떨어진다는 분위기였습니다.
두 번째 무너짐, 그리고 항복
제가 너무 무서워서 기도하면서, 그 비자 준비하는 3개월 동안 정말 피가 마르듯 하나님께 기도하는 마음으로 준비했습니다. 그렇게 광화문 세종대왕 앞을 지나고, 그 전날 숙소에서 묵고, 새벽 일찍 일어나 기도부터 했습니다. "하나님, 느헤미야의 하나님, 술 관장 되게 하신 하나님. 한 사람 마음을 감화시켜 주시면 좋겠습니다. 영사(領事)의 마음을 감화시켜 주세요. 미국 길 열어주세요. 사랑이 치료하게 해 주세요. 아멘." 우리 아내가 또 평안하다고 했습니다. '좋아, 믿음의 사람인 당신이 평안하면 이건 응답이다.' 그렇게 자신만만하게 가서 인터뷰를 했습니다.
분위기가 좋았습니다. 묻는 말에 술술 자신감 있게 말하니까 영사님도 "오케이, 오케이" 하셨습니다. '야, 이제 됐다. 우리 갈 수 있겠다.' 그런데 모든 질문 끝에 하나를 더 물어보셨습니다. "목사님이라고 했죠? 성도님 몇 명 계세요?" 한국에 돌아올 것을 입증해야 하는데, 저에게는 '안정적인 곳'이 있느냐는 질문이었습니다.
제가 뭐라고 대답했을까요? "25명이요." 갑자기 영사님 표정이 확 굳더니, 뭔가 용지를 찾아서 주면서 "Not today. 오늘 안됩니다."라고 했습니다.
반박도 못 했습니다. 하늘이 샛노래졌습니다. 새벽부터 피곤했던 딸이 물었습니다. "아빠, 우리 이제 미국 가?" "사랑아, 우리 다음에 가자."
그날 하늘이 두 번째 무너지더군요. 하루 종일 또 구토하고, 하루 종일 누워있고, 자책하는 것입니다. "사랑아, 미안하다고. 내가 25명이라고 말해서 너 미국 못 간다고. 아니, 그전에 내가 이력이 없어서, 내가 내세울 게 없는 그런 무익한 사람이라서... 사랑아, 아빠가 너 못 데려간다. 아빠가 못나서 정말 미안하다."
제가 그날 처음으로 하나님께 역정을 냈습니다. "하나님, 왜 그러시냐고. 좀 한 사람인데 그것 좀 안되냐고. 제가 뭘 불의하게 말했냐고. 정직하게 25명이라 말하는데 왜... 왜, 하나님?" 그렇다고 불경제로 잡혀갈까 봐 대놓고 "하나님 계신 거 맞냐"는 말도 못 하고, 그렇게 한참 하염없이 울었습니다.
그날도 또 가정 예배를 드려야 했습니다. 찬양으로 시작하는데, 하필 그날 제가 찬양 선곡하는 날이었습니다. 입에서 찬양이 안 떨어졌습니다.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말라?'는 찬양은 도저히 못 부르겠습니다. 그렇게 한참 뜸을 들이다가, 결국 이 찬양을 불렀습니다.
주님여 이 손을 꼭 잡고 가소서 약하고 피곤한 이 몸을
폭풍우 흑암 속 헤치사 빛으로 손잡고 날 인도하소서
인생이 힘들고 고난이 겹칠 때 예수여 날 도와주소서
외치는 이 소리 귀 기울이시사 손잡고 날 인도하소서
"하나님, 어떡합니까? 제가 다 계획하고 지난 반년 동안 모든 걸 바쳐서 공들인 거, 다 물거품 됐어요. 이제 미국 길 막혔어요. 나 때문에 우리 딸 못 고친대요. 제가 할 수 있는 거 다 했거든요? 근데 할 수 있는 거 하나님이 다 꺾으셨어요. 이제 제가 할 수 있는 게 하나도 없어요. 하나 있네요, 하나님. 염려하는 것밖에 남은 게 없네요. 하나님, 근데요, 저 마지막 할 수 있는 거 하나 해볼게요. 염려하는 거, 안 해 볼게요. 염려하지 않아 볼게요. 하나님 신뢰해 볼게요. 그러니까 우리 손 좀 잡아 주세요. 저 놓칠 것 같아요. 도와주세요."
그리하지 아니하실지라도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아뢰라." 이 고백이 언제 나옵니까? 빌립보서 4장,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라고 한 그때입니다. 그런데 그다음에 "그러나 너희가 내 괴로움에 함께 참여하였으니 잘하였도다"라고 합니다.
바울이 "염려하지 말라"라고 했던 고백은 괴로울 때 나왔습니다. 고린도후서에서 그는 그 괴로움을 "힘에 겹도록 심한 고난을 당하여 살 소망까지 끊어지고, 우리는 우리 자신이 사형 선고를 받은 줄 알았다"라고 표현했습니다. 말 그대로 염려할 것밖에 남은 것이 없고, 손발이 차꼬에 묶여 감옥에 갇힌 채 내가 할 수 있는 선택지가 모두 끊어진 채, 이제 남은 거 하나, 하나님의 도우심밖에는 바라볼 수 없는 그때, 그는 말합니다. "그러므로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기뻐하라."
세상 사람들은 이 염려할 것밖에 없는 상황에서 의지할 데가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 하나님의 자녀들은, 염려할 것뿐인 이 상황에서 하나님밖에 의지할 데가 없습니다. 우리에게는 의지할 분, 하나님이 계십니다. 하나님이 그 기로로 우리를 부르시더군요. 그 사람이 아브라함이었습니다. "아브라함아,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비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그것이 저에게는 "요셉아, 너의 모든 길이 끊어진 이곳에서, 너 나 믿니? 내가 너의 하나님인 것 믿니? 내가 너의 가는 길을 알고 있고, 이곳에서 너 나 믿니? 이 연단 후에 반드시 너를 순금같이 되어 나오게 할 것을, 요셉아, 내가 너의 하나님이고 내가 너를 참 아낀다는 거, 너 믿니?"
한참 뜸을 들이다가, 항복하면서 말했습니다. "예, 하나님. 믿어요. 그러니까 아빠, 우리 사랑이 좀 고쳐주세요. 하지만요, 그리하지 아니하실지라도, 저 하나님 믿을게요. 제 원대로 마시고요, 아빠 원대로 하세요. 그래도... 마지못해 하실 만하거든 좀 고쳐주세요..."
여러분, 제가 이 기도, 이전에 못 했습니다. 왜요? 정말 이 기도대로, 제 원대로 안 해주실까 봐 무서웠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나를 지키시고, 나는 길을 잃었고, 모든 길이 끊어졌고, 살 소망까지 끊어졌다 여겼던 그 막다른 길에 다다랐을 때, 나도 나의 길을 모르는 그때, 욥의 고백이 나오게 됩니다.
"그러나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 같이 되어 나오리라." 욥이 인생에서 생명 단 하나 빼고 모든 것을 잃었을 때 했던 이 고백, 하나님이 이 마음 가운데 다시 저에게 새 힘을 주셨습니다.
아빠의 길: 국토대장정
그렇게 새 힘을 얻고 다시 비자 준비를 하는데, 어느 날 영국에서 한 교수님에게 메일이 왔습니다. "사랑이 자료 보니까 전형적인 남자아이처럼 유전자 치료가 필요합니다. 미국에 가려고 한다고 들었습니다. 하지만 보험비 적용은 어려울 것 같습니다. 이건 남자만 걸리는 병이고, 댁의 따님은 여자라서 그럽니다. 행운을 빕니다."
기도하자마자 엎친 데 덮친 격이었습니다. 미국 가면 되는 줄 알았는데, 치료비에 문제가 생겼습니다. 제가 하나님께 또 호기롭게 기도했죠. "아빠, 저 그래도 믿어요." 하지만 제가 누구라고요? 도마라고요. 그래서 속으로는 또 전전긍긍하며 '치료비 어떻게 모으지?' 하고 있었습니다. 아무리 해도 불가능했습니다. 이 '마이너스의 손'으로는 이룰 수 있는 게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날, 그 기사를 봤습니다. 칠레의 한 엄마가 저희 사랑이랑 똑같은 근육병을 가진 아들의 유전자 치료제를 받게 하려고, 자기 아들 이름이 적힌 조끼를 입고 칠레 전역을 걸었는데, 50억이 넘는 금액이 모여서 미국에 갈 예정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이야, 제가 저걸 본 순간, '이거다! 나도 이걸 해야겠다!' 왜냐하면, 제가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고, 어차피 시꺼먼 세상인데 빛 한 줄기 조금 보인다고 해서 못 갈 이유가 없었습니다. 가야 했습니다. 모든 걸 던져서라도. 그게 아빠니까, 그게 부모니까.
그렇게 2주 동안 빠르게 준비를 하게 되는데, 가장 큰 어려움에 봉착했습니다. 가족들이 말리는 것이었습니다. 제 건강이 안 좋으니까요. 무릎 수술 4번에, 다리가 망가질까 봐 걱정했습니다. 근데 제가 뭐라 했겠습니까. "나 그동안 기도해 온 거라고. 나 지금 안 가면 평생 후회할 거라고. 난 아빠라서, 이 두 다리 망가지는 한이 있어도 꼭 가야만 하겠다고." 그렇게 출발을 했습니다.
보이지 않는 손, 함께 걷는 동역자
국토대장정을 그렇게 출발을 하는데, 제가 참 홀로 걸었습니다. 날마다 하나님께서 때를 따라 돕는 은혜들을 많이 입혀주셨습니다. 엘리야의 은혜들을 많이 입혀주셨습니다. 차가 설 수 없는 곳에서 차가 서더니, 딱 목이 마를 때 물병을 주고 가시고, 어느 날은 사과밭에서 일하시던 어르신이 "청년, 나 좀 도와줘." 하시기에 "어르신, 저 이것 때문에 못 도와드립니다. 죄송해요." 했더니, "그럼 좀 와봐. 어, 애기 아빠네? 아이고, 딸이 아프네. 이거 사과요. 먹어봐." 그렇게 배고프니까 그런 걸로 채워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정말 제가 알려지기 전부터 완주하는 그날까지 하루도 빠짐없이 엘리야의 까마귀들과 천사들을 보내주셨고, 그 은혜로 감사하게 완주를 했습니다. 그런데 그 가운데서 제가 무엇보다 참 두려운 게 하나 있었습니다. 하루가 지나갈수록, 원래 국토대장정을 하면 '야, 이제 완주다. 내가 해냈다!' 이래야 하는데, 저는 반대였습니다. 내일이 두려웠습니다. '아니, 아직 1억 원 밖에 안 모였는데, 벌써 절반밖에 안 남았네? 하나님, 어떡해요? 좀 도와줘봐요.'
그렇게 전전긍긍하다가, 어느 날 제가 거하는 청주에 온 그다음 날, 서울 사는 친구한테 전화가 왔습니다. "야, 요셉아. 너 뉴스 나왔어." "너 서울이잖아. 청주 뉴스 아니고?" "야, 서울 뉴스여."
전 제가 혼자 걷는 줄 알았습니다.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식으로도 저를 채워주셨지만, 제가 모르는 곳에서 사랑이의 기적을 위해서 함께 걷는 믿음의 동역자들을 세워주셨습니다. 참 고마운 분들의 덕분으로 저희의 사연이 그렇게 알려지게 되고, 그렇게 하나씩 하나씩 작은 빛들이 모이더니 큰 빛이 되어서, 제가 대장정에 도착할 때는 참 감사하게도 13억 7천만 원이 모였고, 오늘까지 감사하게도 24억 8천만 원이 모였습니다.
정말 모든 국민분들의 은혜와 사랑이 있었고 하나님은 오늘도 여전히 저희들로 하여금 용기를 내어 새 힘으로 이 길을 걸어갈 수 있도록 이 여정 가운데 함께하고 계십니다.
아빠와 함께 걷는 길
여전히 사실 염려가 됩니다. 저희가 미국 들어가는 게 또 요원해졌습니다. 이번에 비자 상황이 전국적으로 안 좋아서 또 거절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참 감사한 것은, 하나님이 영적인 체력을 많이 키워주셨습니다. 그날, 그 대사관 바로 앞에서 감사 예배를 드렸습니다. "하나님, 지금 아닌 거죠? 막아주셔서 감사해요. 하나님의 길로 인도해 주실 것을 믿고 감사합니다."
물론 염려가 됩니다. 하지만 동시에 이제는 기대도 됩니다. '아, 하나님이 어떻게 일하실까?' 하나님의 일하심이 기대가 됩니다. '하나님이 어디로 부르실까?' 하나님의 부르심이 기대가 됩니다. 우리를 어디로 부르셔서 누구를 만나게 하시고, 부르신 곳에서 어떤 예배자로 살게 하시고, 부르신 곳에서 어떤 일을 만나 그들에게 위로를 전하게 하실까. 우리 가운데 위로의 위로를 풍성하게 역사하게 하실까. 그런 기대감을 주시더군요.
오늘 본문, "그러나 내가 앞으로 가도 그가 아니 계시고 뒤로 가도 보이지 아니하며, 그가 왼쪽에서 일하시나 내가 만날 수 없고 그가 오른쪽으로 돌이키시나 뵈올 수 없구나." 사방이 막혔지만, "그러나 나의 가는 길을 주님이 아시는 걸 믿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같이 되어 나올 것입니다."
또한 저는 하나님이 우리 사랑이의 아버지이심을 믿습니다. 하나님이 사랑이의 길을 아시고, 사랑이를 하나님이 친히 연단하신 후에, 사랑이를 하나님이 순금과 같이 되어 나오게 하실 것을 믿습니다. 또한 우리 가운데 모든 사람들의 하나님이심도 믿습니다. 우리 모두를 하나님께서 친히 연단하신 후에, 우리의 가는 길 끝에서 반드시 하나님이 가장 좋은 때에 순금같이 되어 나오게 하실 것을 믿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말씀을 마칩니다. 하나님이 지금 우리를 위해서 일하고 계십니다. 우리를 이렇게 하나님의 사람으로 하나씩 빚고 계십니다. 우리 가는 길을 아십니다. 하나님은 어떻게 그리하실 수 있느냐? 우리의 '아빠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나의 아빠 하나님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여러분, 우리 모두가 아빠와 함께 이 믿음의 길을 끝까지 걸어갈 수 있기를, 여러분이 반드시 하나님의 영광의 찬송으로, 하나님이 친히 들어 일으키시기를, 그리고 우리 가운데 모든 이에게 위로와 은혜가 차고 넘쳐흐르게 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진심으로 축복합니다.
기도 요청
이 시간 기도를 좀 요청하려고 합니다.
첫 번째는, 우리 이웃, 우리의 교회, 우리 주변의 모든 사람 가운데, 또는 우리 가정 가운데, 나의 삶 가운데 하나님의 손길이 필요한 자들이 있습니다. 환난 당한 자가 있습니다. 루아처럼 기도가 필요한 사람이 있습니다. 울고 있는 자가 있고, 사방이 막혀 하나님의 음성조차 들리지 않아 하갈처럼 슬피 흐느껴 우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나님, 내가 가서 저와 함께 그 십자가 나눠지게 해 달라고" 기도하기 원합니다.
두 번째는, 우리나라에 근육병 환우들이 많습니다. 하늘이 날마다 무너지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우리 아이는 오늘이 가장 강해요." 그러니까 내일은 모릅니다. 하루하루 살아갑니다. "하나님, 기적 일으켜주세요." 울고 있는 수많은 환우와 부모님들이 많습니다. "하나님, 그들의 이웃되어 주세요. 그들의 아빠 되어주세요. 하나님이 친히 그들의 십자가가 되어주세요. 하나님께서 대신 져주세요. 그들에게 평안함 주시고 그들을 고쳐주세요." 기도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부디 바라건대, 마지막으로 사랑이의 치료를 위해서 기도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치료의 길 열어주시기를, 하나님이 친히 사랑이를 치료해 주시기를, 함께 이 시간 기도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기도하겠습니다.
(기도)
하나님 감사합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이 우리 가운데 차고 넘치기 원합니다. 우리 가운데 하나님, 울고 있는 자가 있습니다. 우리 가운데 내일의 소망이 없이 울면서 하루하루 흐느끼며 "주님 도와주세요, 아빠 도와주세요" 그렇게 하갈의 심정으로 울부짖는 자들이 있습니다. 하나님, 한 사람도 놓지 말아 주세요. 모든 사람 만나주세요. 우리 가운데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자도 있습니다. 무엇이 그의 마음을 위로하겠습니까? 무엇이 욥처럼 모든 것을 잃은 저들의 마음을 위로하겠습니까? 하나님의 십자가 은혜 외에는 그 누구도 그들을 일으켜 세울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 그들을 일으켜 세워 주옵소서. 우리를 일으켜 세워 주옵소서. 하나님 아버지, 우리의 아버지가 되어주옵소서. 우리를 이 기도 가운데 하나님 신뢰하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반드시 순금같이 나오게 하실 것을 믿고, "주여, 믿습니다. 하나님, 믿습니다." 그렇기에 하나님과 함께, 아빠와 하나님과 함께 우리의 십자가를 지고, 나를 부르시는 소명의 길로 걸어갈 수 있도록 하나님 아버지, 도와주시옵소서.
김은호 목사님
은혜를 받으려고만 하지 말고, 받은 은혜를 흘려보냈으면 좋겠습니다. 여러분들이 보내준 그 사랑의 헌금은 아까 우리가 영상을 보았던 것처럼 루아 자매와 같이 한 생명을 살리고, 많은 사람들에게 위로와 힘이 될 것입니다. 여러분들, 은혜를 받으려고만 하지 말고 받은 은혜를 흘려보내 주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사랑의 아빠의 간증을 들으면서, 저렇게 사랑하는 딸, 그 사랑이를 사랑하는 아버지의 모습을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알 수가 있을 것 같습니다. 목사님의 간증처럼, 사랑하는 딸을 통해서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알았고, 아버지의 사랑을 알았고, 아버지의 위로를 경험했다. 그래서 오늘 이 시간에는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깨닫게 해 주세요. 이 다니엘 기도회 기간에 나를 향한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이 무엇인지, 정말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깨닫게 해 주세요." 그렇게 기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1. 하나님 아버지 마음을 깨닫게 하소서.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은 어떠할까? "다시 시작해 보자. 내가너화 함께 할게."
2. 제게 영적인 근육을 갖게 하소서.
하나님 말씀으로 전신갑주를 입게 하소서.
3. 사랑이를 하나님께 올려드립니다. 치료할 길을 열어 주시고 필요한 재정을 공급해 주소서.
[중국을 위한 기도]
1. 중국 교회가 혹독한 박해 속에서도 복음의 진리를 굳게 붙들게 하소서
2. 구속된 23명의 목회자들이 속히 풀려나게 하시고, 정의롭고 담대한 변호사들이 일어나 법률적 도움의 길이 열리게 하소서
3. 갑작스러운 체포로 두려움에 떨고 있는 가족들을 위로해 주시고, 흩어진 성도들의 마음을 붙들어 주소서
'Jesus Christ > 다니엘 기도회' 카테고리의 다른 글
| 2025 다니엘기도회 17일차. 김혜진 집사. 큰 물가에 뿌리내린 나무 (1) | 2025.11.17 |
|---|---|
| 2025 다니엘기도회 16일차. 최광 선교사. 본 어게인(Born again) (1) | 2025.11.16 |
| 2025 다니엘기도회 15일차. 김지선 바이올리니스트. 우리의 삶은 주님의 것입니다. (1) | 2025.11.15 |
| 2025 다니엘기도회 13일차. 장성호 감독. 고난이 축복이다 (1) | 2025.11.13 |
| 2025 다니엘기도회 12일차. 이유원 목사. 락(樂) (1) | 2025.11.12 |
| 2025 다니엘기도회 11일차. 박인경 사모. 고난과 사명 (1) | 2025.11.11 |